※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지구를 무려 한 바퀴 반이나 돌은 끝에 가까스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찾았다. 발바닥이 지면에 내려서는 그 안착의 순간, 딘이 느낄 수 있었던 최초의 감각은 우습게도 악취를 닮은 지독한 입냄새였다.
『오랜만이야. 드디어 돌아왔군. 장미꽃은 없지만 귀환을 환영해, 친구.』
누군가 격려의 의미로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래봤자 딘은 그것에 반응하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지난 밤에 대단한 음주 파티를 벌였던게 분명하다. 입안엔 하얗게 백태가 꼈고, 눈꺼풀 속엔 깔깔한 느낌의 모래가 하나 가득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는 몸뚱이는「네까짓게 아무리 눈앞에서 현찰을 흔들어봤자 나는 오늘 결단코 파업할테다」의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허리가 침대 아래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위스키를 나발로 불었나, 아님 데킬라를 통째로 목구멍에 부었나. 빵빵해진 방광이 변기가 그립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지만 화장실에 가려면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야 할 참이다. 인간이 오랜 시간동안 진화를 거듭하여 두 다리로 직립 보행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다던 학자들의 주장은 지금 이 순간엔 하나도 맞지 않았다. 맙소사, 딘은 네 다리로도 걸을 수 없었다. 그 점이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저어...』
『왜.』
이불을 코까지 뒤집어쓴 상태에서 딘은 얼굴을 붉혔다. 이름도 잘 모르는 하룻밤 상대 앞에서 추태를 부리는 건 노땡큐다. 덕분에 달라붙은 입술이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자존심이 있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으니 손을 빌려달라는 말을 어떻게 꺼내느냔 말이다. 그렇다고 침대에 오줌을 지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환장한다. 딘의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가셨다.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린 여자는 그런 그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왜냐고 물었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어흠.』
갈증으로 목이 타는 것 같았다.
사실 그는 방광을 비우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상태다. 햇님이 머리 꼭대기 높이까지 떠올랐는데 그는 생판 모를 모텔 침대에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나체로 누워 있었다. 조만간 흥분한 동생이 펄펄 뛰면서 그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그들 윈체스터 형제들의 규칙 제8번. 어른의 오락에 심취하는 건 괜찮지만 사전 통보 없이 새벽까지 안 돌아오면 엉덩이를 걷어차인다. 딘은 오늘 그 규칙을 어겼다. 샘에게 전화를 걸어「자기야? 나 오늘 무지 바빠. 그러니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창틀에 소금 뿌리는 건 네 몫이다. 알았지?」라는 말을 했던가. 기억에 없다. 고로 고지식의 대명사 샘 윈체스터는 몽둥이를 들고 규칙을 어긴 형을 징벌하려 할 것이다.
돌아가야 한다. 아니, 넓적다리 높은 곳으로 시퍼런 멍자국이 생기기 전에 서둘러 도망쳐야 한다. 딘은 죽을 힘을 다해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내 팬티는 어디에 있지. 내 셔츠는. 내 임팔라 열쇠.
『워워, 진정하라고!』
여자가 다소 강한 힘으로 그의 어깨를 눌렀다.
『이봐. 올해가 몇 년인지 기억은 해? 지금 미국 대통령이 누군지 알아?』
『누굴 바보로 아나.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잖아.』
『억.』
『아님 로날드 레이건... 미안해, 숙녀님. 지금 그게 문제는 아닌 것 같어. 율 브리너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상관 안 할래. 내가 지금 무척 바빠서 말이야.』
나이 든 노파처럼 부들부들 떨며 겨우 한 발을 내딛었다. 순간 뇌리에서 활 시위를 당기는 듯한 핑 소리가 나면서 천장과 바닥이 서로 그 위치를 바꿔버렸다. 역행하는 중력의 법칙 아래선 남성의 자존심이고 뭐고 다 소용 없었다. 오장육부가 뒤틀렸다. 그는 무너지듯 쓰러져 식초의 맛이 나는 액체를 한웅큼이나 게워냈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 아래로 흘러가는 것.
다시 위로 솟구치며 올라가 모두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둥글게, 둥글게.
그는 샘을 보았다. 초최한 얼굴이었다. 면도를 잊은 뺨은 거뭇거뭇했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 했던지 눈자위가 푹 꺼져있었다. 딘은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신나게 얻어맞은 권투 선수가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켜 가까스로 링 아래로 내려온 듯했다. 무슨 일인가. 샘은 제정신이 아닌 건가. 깍지 낀 손을 어금니로 잘근잘근 씹어대며 미친 사람처럼 뭔가를 중얼거렸다.
《여호와여 그와 다투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내 형제를 도우소서. 창을 빼사 그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딘의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그의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그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기도다. 샘이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촉촉이 젖은 동생의 눈자위에서 맑고도 뜨거운 방울이 떨어졌다. 샘은 훌쩍대며 손등으로 코를 훔치고는, 반 박자 쉬고 난 뒤에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야! 임마! 계집애처럼 훌쩍거리긴 왜 훌쩍거려!』
삿대질을 하며 야단쳤다. 딘은 평소에도 동생을 향해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를 왜 하느냐 타박했다. 그래서 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기도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몰래 숨어 자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 뭐랄까... 민망하다.
『그만해, 새미! 누가 죽기라도 했어?!』
샘은 그가 화를 내며 하는 말을 전혀 못 듣는 것 같았다. 누렇게 타서 속이 텅 빈 잡초처럼 샘의 마음 중심엔 알맹이가 쏙 빠져 있었다. 동생은 바스라졌고, 구부러졌고, 갈라지고 터져 그 바닥을 드러냈다. 뜨거운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들판엔 황폐한 흙먼지만 가득했다. 싱그러운 녹색을 망각한 그곳에서 동생은 말 그대로 넋을 놓고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딘은 그의 머리를 꼭 끌어안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너는 죽지 않았어. 너는 죽을 수 없어. 왜냐면 내가 그걸 바라지 않으니까. 넌 안 죽어.
차갑게 식은 그 뺨으로 따스한 온기를 후, 하고 불어넣고 싶었다. 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 귀를 만지길 간절히 원했다. 목덜미를,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떨리는 속눈썹을 하나하나. 위로의 말을 속삭이며 그 눈물을 그치게 하고 싶었다. 그는 졸라댈 것이다. 애원할 것이다. 환하게 웃으라고. 미소를 지으라고. 손바닥으로 계속해서 어루만질 것이다.
그러나 딘은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샘은... 그리고 그는...
- 내가 녀석에게 총을 겨눴어!
깨달음에 감겨졌던 눈이 번쩍 떠졌다.
무방비한 상태로 자신을 쳐다보던 샘이 기억났다! 그는 저항조차 안 하는 동생을 죽일 뻔했다!
1초라도 빨리 딘은 그에게서 떨어져야 했다.
잘못된 자신으로부터 샘을 안전하게 떼어놓아야 했다.
하느님. 딘은 그조차 할 수 없었다.
「맙소사. 이게 뭐지. 샘은 다른 방에 있어. 난 녀석과 같이 있지 않아! 그런데도 녀석이 입은 셔츠가 얼빠진 분홍색이라는 걸 알 수 있어. 거기다 사흘 내내 단 한 번도 갈아 입지 않았다는 것까지도 알겠어!」
이걸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접신한 무당이라도 된 모양이다. 몸은 이쪽에, 정신은 다른 세상에 절반쯤 걸려 있었다. 콘크리트 벽이 투명하다. 눈이 핑핑 돌았다. 젊은 여자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을 등뒤로 돌려 검은색 브래지어의 훅을 풀렀다. 202호실. 남자가 가방을 꾸리고 체크 아웃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204호실. 미친 사람의 터무니 없는 환상 - 딘은 이것들이 제발 멈추어지길 간절히 원했다. 이건 흡사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몸속의 뼈들, 몸속의 근육들,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가 사진의 한 부위를 손가락으로 지적한다.
「바로 이곳입니다. 여기에 시커멓게 보이는 부분이 바로 병원(病原)인 암입니다.」
손이 아래로 쑤욱 꺼지는 느낌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짚었던 손을 떼어냈다.
『멈추게 해줘! 이거 싫어! 이 바보 같은 것들이 빨리 사라지게 해줘!』
이것도 꿈인가. 현실이 아니었던 건가. 그는 서둘러 눈을 감았다. 그래봤자 이미 그의 시선은 카펫을 뚫고, 바닥을 지나, 지하실을 유유히 돌아다니는 쥐를 보고 있었다. 그 아래로 얽혀있는 수 많은 파이프, 구정물이 흐르는 하수구... 진저리치며 몸을 떨었어도 보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 생생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숨을 쉬어야 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그런데 그 단순한 동작마저 너무나도 힘들었다.
여자가 손을 잡고 부드럽게 흔들었다.
『진정해.』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세상에. 눈을 어디다 둬야 하는 거야. 맙소사... 당신, 실수로 팬티를 뒤집어 입었어. 그, 그러니까 앞으로 달려야 하는 작은 리본 장식이 엉덩이 쪽으로 있다고. 그, 그리고 당신 음모는... 털 색깔이 검정이군. 뭐야, 머리는 미용실에서 밝게 탈색한 거였어?』
『이 호색한! 어딜 보고 있어! 눈 돌렷!』
『눈을 돌려도 보인다니까! 내 잘못이 아냐!』
그리고 딘은 완전히 오그라들었다. 샘이 하던 기도를 중단했다. 이쪽의 기척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동생이 눈을 크게 치켜떴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겁이 났다. 샘은 아마도 몰랐겠지만 방금 전에 그들의 시선은 벽을 투과하여 서로 마주쳤다. 오, 아직은 안돼. 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허우적거리며 침대 위에 있던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동생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가릴 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얇은 홑겹의 천조각에 불과할지라도 딘은 어떻게든 숨어야 했다. 신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가 꽉 다문 어금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샘이 손잡이를 잡았다. 이제 곧 문이 열릴 것이다. 딘은 공포에 질렸다.
『못 들어오게 해! 못 들어오게 하라고! 제발! 이러면 나 죽어! 나 죽는다고! 새미가 나에게 가까이 오지 못 하게 해! 문 잠궈! 닫아! 막아!』
『딘. 침착해. 괜찮아.』
『아냐. 하나도 괜찮지가 않아! 내가 샘에게 총을 겨눴어. 녀석을 죽이려 했어! 최악이야!』
『넌 총을 쏘지 않았어.』
『쏜 거나 마찬가지야! 난 새미에게 위험해. 제발 문을 잠궈. 녀석이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해줘. 저 아일 데려가. 멀리 데려가! 나에게서 새미를 데려가! 이렇게 빌게. 부탁할게!』
달그닥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이불에 덮힌 몸이 움찔 움직였다. 늑대가 울부짖는 것 같은 우우 소리는 더욱 커졌고, 리는 그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어린애처럼 몸을 앞뒤로 마구 흔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드레날린이 피부를 통해 빠져나오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그는 절망적인 공황 상태에 빠질 것이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부탁할게요! 제발 새미가 나에게 가까이 오지 않게 해줘요!』
어쩔 수 없었다.
리는 먼지를 털고 일어나 그가 애원한바 그대로 문이 열리지 않도록 등을 대고 막았다.
《리? 딘이 정신을 차렸나요?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녀는 어두운 허공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정신을 차렸어.』
달각달각 소리가 다시 들렸다. 샘이 손잡이를 돌려대고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자 그는 적잖게 당황한 것 같았다. 그 까닭을 묻는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리? 들여보내줘요. 왜 이래요. 딘이 정신을 차렸다고 했잖아요! 안에서 뭘 하고 있죠? 왜 막는 거예요! 리! 문 열어! 우우... 당장 열어! 이년아! 열어! 안 그러면... 경고하는데...》
『샘. 화내지 마. 딘은 지금 널 보기가 괴롭다고 했어.』
리는 일부러 교과서를 읽는 목소리를 냈다.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뭐요?》
『딘은 괴롭다고 했어.』
《뭐라고요?!》
『지금 널 볼 수 없다고 했어. 그러니까 샘... 마음을 가라앉히고 뒤로 물러서.』
샘은 그 제안을 거부했다.
《싫어! 열어! 당장! 사흘이나 기다렸어! 사흘이나! 뭐가 문제야! 수작부리지 말고 당장 열어!》
『샘!』
리가 부드럽게 나무랐음에도 불구하고 흥분한 샘이 주먹으로 쾅 하고 문을 세게 때렸다.
《열어! 몽땅 죽여버리기 전에 열어!》
이불을 뒤집어쓴 딘은 까무라쳤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