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어요, 젠슨.』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남편을 향해 아내가 격려의 말을 던진다.
『늦었는데 아직도 안 잤던 거야?』
억지로 깨어있느라 눈이 붉게 충혈된 아내를 향해 남편이 고맙다는 의사 표현을 한다.
『와우, 새벽 2시가 좀 넘었네요. 많이 힘들었어요?』
『늘 그렇지 뭐.』
『사람을 너무 들들 볶는 거 아니냐고 한 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관둬, 제러드. 그 사람들도 다 똑같이 월급 받고 일 하는 거야.』
『저녁은요?』
『간단히 먹었어.』
두 사람 다 지금의 대화 내용이 부부 놀이를 닮았다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하는 듯했다. 젠슨은 긴장이 풀리는 걸 느끼며 하품을 했고, 제러드는 그런 친구의 모습에 환하게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멋져.
남들이 들으면 콩깍지가 다섯 겹이라고 난리를 칠 거다. 머리엔 흙이 잔뜩 묻었는데다 구정물이 튀어 뺨으로 얼룩을 남겼다. 무릎 부위가 늘어난 싸구려 청바지에 걸레로 쓰면 딱일 것만 같은 중국제 티셔츠 차림, 푹 꺼진 눈자위에 지저분하게 자라난 수염... 그런데도 제러드는 젠슨의 지금 모습이 무척이나 화끈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이 말을 들으면 어이가 없다며 눈동자를 데굴 굴리겠지만, 어깨의 잔근육이 도드라진 곳을 정신 못 차리고 곁눈질로 훔쳐보는 사람의 입장에선「당신은 천사인가요?」라는 질문이 입안을 뱅뱅 돌았다.
『너도 잘 알잖아, 제러드. 흙속에서 30분만 구르면 일주일은 물 구경도 못한 사람처럼 변신한다는 걸.』
흝어보는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오해한 젠슨이 인상을 찡그리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아뇨아뇨아뇨아뇨아뇨아뇨×100. 깜짝 놀란 제러드는 황급히 팔을 휘저었다. 냄새가 나니까 빨리 가서 샤워하라고 눈총을 준게 아니란 말예요~!!
『무, 무, 물론 당신은 트레일러로 빨리 돌아가 샤워를 하고 싶겠지만 말이죠...』
우물거리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니까 난 잠시나마 둘이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저어, 내가 지금 미운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아요. 피곤한 사람 붙잡고 늘어져서 정말 미안해요. 그치만 꼭 말하고 싶었어요. 지난 사흘 내내 젠슨에게 집구경 시켜달라고 억지를 부려서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그것 때문에 젠슨이 날 싫어하지 않았음 좋겠어요. 저어... 젠슨?』
젠슨은 프리실라의 설명을 떠올렸다.
너무 좋아서 얼굴만 봐도 입을 헤 벌리게 되는 선생님이 있는데, 그 숭배의 대상이 죽어라 공부해서 어떻게든 칭찬받고 싶어 안달인 멀더는 냅두고 똑 소리 나는 스컬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멀더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시간일 것이다. 젠슨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은 어른의 표정을 하고는 후배 연기자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렀다. 모르긴 해도 100마디의 말보다 이것이 훨씬 더 많은 걸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
제러드는 예상치 못한 젠슨의 행동에 놀라 꿈질거렸다. 그러나 피하지는 않았고, 긴장한 모습으로 어깨를 뾰족 세웠다가 도로 내렸다. 새카만 밤이었음에도 제러드는 눈부신 태양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서서히 그의 뺨이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가볍게 툭, 하고 젠슨이 제러드의 어깨를 쳤다.
『좋아, 똘똘아. 나는 무덤을 팠어. 그리고 도날리 2호라는 이름의 시신 - 이라기 보다는 밀납 모형을 불태웠어. 자! 그렇담 네가 자동차 안에 앉아 마녀를 감시하는 건 언제지?』
『다음 주 화요일이오. 음... 일정이 아직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았대요.』
『나는 내일 오후 4시까지 오프야. 너도 비슷하지?』
『내일 점심에 쇼핑하러 안 갈래요?』
『무덤을 팠다니까. 삽으로 흙을 옮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잖냐. 멀리 나가긴 싫어.』
『그렇담 가까운 곳으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어요, 젠슨.』
『난 아이스크림이 싫어.』
거절당했다고 생각한 제러드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젠슨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그치만 난 네가 좋으니까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어줄게.』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