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생업이 바쁩니다.
피는 굳어 검게 변한다. 그래서인지 형체를 드러낸 검은 뱀의 어둠에선 쇳가루 섞인 비린내가 진하게 났다.
『드디어 나오셨군.』 『젠장, 생각 외로 크잖아!』 전설에 등장한 괴수 오로치는 이렇게 묘사된다. 「머리는 여덟이고 눈은 빨갛다. 커다란 등에는 나무와 이끼가 자란다. 배는 피로 물들어 붉으며, 여덟 봉우리에 몸을 걸쳐있을 정도로 그 몸집이 매우 거대하다. 성격이 흉악하여 이즈모노쿠니의 고시자토 지역으로 일 년에 한 번씩 내려와 고기가 부드러운 젊은 여인을 먹었다. 이에 딸을 연달아 잃은 노부부가 이를 한탄했고, 우연히 이 모습을 본 스사노오노 미토코가 공양물로 희생될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약조하고 괴물을 죽이러 갔다.」
단순히 과장을 섞어 지어진 영웅호걸 이야기인지, 아니면 괴물이 실재했는지 알 수 없다. 닭이 먼저인지, 아님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 과거 일본 땅에 악어가 살았는지는 그렇다 치고, 일반인들은 전설 속 괴물이 식인악어 비슷했을 거라 추측한다. 가죽이 매우 두꺼운 악어를 잡아다 배를 갈랐더니 잡아먹힌 사람이 나왔다고 말이다. 하지만 남들이 보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주술사들은 오로치가 단순히 상상력의 산물일 거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인간의 지식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존재가 여전히 많았다.
떨어지는 부산물을 피하며 머리를 감싼 게토 스구루는 답지 않게 평정심을 잃었다. 중학생들을 구조하기 위해 건물 내부에 풀어놓았던 개구리 주령들 전부가 장막의 완성과 동시에 일시에 훼파된 건 둘째다. 몸통이 문에 낄 정도의 거대한 뱀이 머리를 세워 천장을 부셨다. 여덟 봉우리에 걸쳐있었다는 오로치와 비교하자면 새끼 수준이었어도 사진으로 보았던 기네스북에 등재된 진짜 뱀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게 컸다. 움직임도 빨랐다. 주력을 쏘아 날렸을 적에 이미 옆으로 비켜나 있었다. 비늘도 제법 단단해서 이이지마 하나에가 5kg은 족히 되어 보이는 우승 트로피를 집어 들고 세게 집어던졌어도 작은 생채기 하나 남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그걸 운동부 우승 트로피로 잡을 수 있겠느냐고 – 중학생의 목덜미를 잡고 뒤쪽으로 던졌다.
『조심해!』 고죠 사토루가 경고를 날린 것과 동시에 뱀이 몸을 휘게 만들며 바닥을 찼다. 발 달린 공룡이 몸무게를 실어 한바탕 발을 구른 것 같았다. 건물 전체가 울리는 묵직한 진동음과 같이하여 교장실 바닥이 푹 꺼졌다. 세 명 중 고죠 사토루는 아무렇지도 않게 균형을 잡았지만 게토 스구루는 한쪽 무릎이 꺾였고, 이이지마 하나에는 벌렁 넘어져 볼썽사나운 포즈가 되었다. 더하여 뱀이 몸통 구르기를 재차 시도하자 자리한 교장실 바닥에 큰 구멍이 뚫렸다. 동시에 마대자루에 퍼 담아지는 것처럼 온갖 잡동사니들이 구멍 아래로 그대로 쓸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굴러가던 이이지마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며 팔을 뻗었다. 그래봤자 손에 닿은 건 하등 쓸모가 없는, 방금 전 집어던졌던 우승 트로피였다. 축, 1999년 센다이시 중등부 야구 우승. 이딴 거 필요 없다며 악을 쓰던 이이지마가 구멍 속으로 모습을 감췄고, 이루고자 한 목표는 그게 전부였다며 뱀이 움직임을 딱 멈췄다. HP도 바닥이 났는지 주먹질 한방에 그대로 바스러졌다.
『제기랄!』 허겁지겁 상체를 기울여 구멍 아래를 내려다보자 반짝반짝 광이 나는 우승 트로피가 보였다. 같이 떨어진 중학생은 무언가로부터 끌려가기라도 했는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다. 대략의 깊이를 가늠한 뒤에 구멍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내려오자 잔예를 추적할 필요도 없이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이 보였다. 출혈량은 많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피부가 베인 정도일 거다. 그러니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냄새를 잘 맡는 종류로 골라 저급 주령을 꺼내 옅은 피 냄새를 따라가도록 명령했다. 『어서.』 무슨 영문인지 복속되어 자아가 없을 주령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명령을 거부했다. 『따라가!』 평소보다 몇 곱절 강하게 말하자 그제야 쿵쾅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쓸 만한 것들을 미리 꺼내놔, 스구루. 멀리 가진 않았어.』 빛 투과도가 낮은 시커먼 선글라스 너머로 주변을 관찰하던 고죠 사토루가 답지 않은 참견을 해왔다. 주력을 낭비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놈도 아니고 그러라는 말을 꺼낸 사람이 고죠 사토루다. 무시해서 좋을 것 없다 판단하고 일절 말을 삼간 채 전투력이 높은 걸로 주령 셋을 꺼냈다. 그 중 하나는 미와(新酒) 미미미, 이름만 보면 진한 술 냄새 풍기고 있을 이이지마를 찾는데 찰떡궁합이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미와 미미미는 고독이라는 이름의 금지된 주술로 만들어진 주령이다. 커다란 독 안에 천 마리의 지네를 넣어 서로를 잡아먹게 만든 뒤, 딱 한 마리가 살아남았을 적에 이를 항아리에서 꺼내 저주로 만들었다. 제대로 길러 식신으로 부리고자 했던 저주사마저 복속을 포기하고 달아났을 정도로 강하고 난폭했다. 게토 스구루가 그렇게 열두 개의 다리로 엎드려 기어가는 미와 미미미 뒤쪽으로 위치를 잡는 걸 보고 나서야 고죠 사토루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지하통로 안으로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좁았던 통로는 앞으로 향할수록 나팔관인양 서서히 넓어졌다. 바닥은 더 이상 콘크리트가 아니고 흙이었다. 『...!!』 악의, 또는 살의라고 할 만한 기운이 게토 스구루의 목 부위를 스쳤다. 재빠르게 어깨를 뒤틀지 않았더라면 좋은 꼴은 못 봤을지도 모르겠다. 비켜난 바람이 흙벽을 때렸고, 먼지가 비산했다.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고죠 사토루와 반대 방향으로 뛰면서 미리 꺼내둔 주령을 움직여 방어에 적합한 역삼각형 진형을 짰다. 주령술사이면서도 체술에 강해 근접전에 익숙했지만 신중하게 굴어 나쁠 것은 없다. 무하한의 술식 탓에 두들겨 맞을 일이 없는 고죠 사토루와는 사정이 달랐다. 강 스파이크가 날아오길 기다리는 배구 선수처럼 자세를 낮추고 주령 세 마리를 앞으로 전진시켰다.
압축된 공기가 회전하며 빠르게 내려앉았다. 앞장선 미와 미미미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거대한 부처님 손바닥으로 대형트럭 사이즈의 바퀴벌레를 후려친 모습이 연출되었다. 머리 윗부분부터 갈가리 찢긴 주령은 뭐 대단한 거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채 철퍽 소리를 내고 납작하게 주저앉았다. 「뭐야. 단 한 방에 종잇장이냐!」 기겁을 하고 옆으로 미끄러지듯 굴렀다. 같은 공격이 본인의 머리 위에서 곧장 떨어지고 있음이다. 제대로 맞으면 300톤 중량의 트레이너에 깔린 모양새가 되어버릴 거다. 그렇게 되고나면 주걱으로 살점 찌꺼기를 떼어내는 일도 곤란하게 된다.
검지를 맞닿게 만들어 간단한 인을 맺는 것으로 인력의 상쇄 효과를 불러온 고죠 사토루는 상대적으로 덜 분주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고먹을 입장은 결코 아니었다. 일단 벽과 천장이 무너지는 건 사절이다. 출구는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 더하여 본인은 아무 영향을 안 받아도 제대로 지랄하고 싸우면 게토 스구루는 압사당할 거다. 「최대 출력으로 싸우기에는 최악의 장소군.」 아무렇게나 마구 날리는 방식이 아니라 총알처럼 작게 압축한 주력을 정밀하게 운용해야 한다. 손짓으로 권총 모양새를 만든 다음, 이이지마 하나에의 머리채를 움켜쥔 인영을 향해 주력을 쏘았다. 빵야. 멍청한 중학생이 실수로 맞는 일이 없도록,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세밀하게 컨트롤했다.
25층 고층에서 그랜드 피아노가 곤두박질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쳇, 빗맞았어.」 고죠 사토루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소리만 요란했을 뿐으로, 흰자위가 사라진 검은 눈을 가진 자는 팔을 들어 몸을 가린 것만으로 피해를 거의 제로로 돌려놓았다. 「좀 전의 교장실에 나타난 큰 뱀은 미끼고 이쪽이 본체인가.」 기분 나쁜 기척을 가진 자였다. 최초의 감상은 하찮은 생쥐 수백만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있는 것 같았다는 거다. 정통으로 시선이 마주쳤을 적에 수백만의 쥐떼로부터 주목받는 기분이 들어 뼛속까지 불편해졌다. 미키마우스도 너무 많으면 괴기스러워지는 법이다. 「쥐가 아니라 뱀이지만.」 탄창이 거덜 날 일은 없기에 재차 조준하여 연거푸 주력을 쏘아 보냈다.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목소리를 내던 그것이 성을 내었다. 『어르신들에게 건방지게 구는 게 원래 체질이라서. 너무 잘나면 고개가 빳빳해지는 법이지.』 총알처럼 날려 보낸 주력은 일종의 페이크였다. 적의 시선을 훌륭하게 교란시킨 뒤, 공간을 접어 순식간에 앞으로 이동하면서 주력을 가득 채운 손바닥을 그것의 면상에 지긋이 대었다. 지금이다. 무천도사의 에네르기 파를 상상하며 힘을 쏘아날렸다.
《■■□ ■■▲○◇■■!!》 아마도 욕설이지 않을까. 그것이 얼굴을 감싸 안고 인간의 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생각 외로 튼튼했다. 머리를 통째로 날려버릴 작정이었는데 금이 가고 깨졌을지언정 여전히 목 위에 붙어 있었다.
※ 1학년 고죠 사토루는 생득술식만 사용 가능하다는 설정으로 갑니다. 토우지에게 모가지 썰어지기 전이니까요.
Posted by 미야
2021/05/13 11:07
2021/05/1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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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전개가 매우 느립니다. 원작만화와 궤도가 다릅니다. 노트북 사고 싶다. (응?)
이시즈미 루미는 자신이 어디까지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수업시간에 ‘카르네아데스의 널빤지’ 라는 걸 배운 적이 있다. 한 사람의 무게만을 견딜 수 있는 판자에 조난당한 두 사람이 동시에 매달리게 되었다. 두 사람이 매달리면 가라앉는다. 둘 중 하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손을 강제로 판자에서 떼어낸다면 나는 무죄인가, 유죄인가. 이시즈미는 친구 하시모토와 같이 바다에 빠진 장면을 상상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번갈아가며 널빤지를 잡는 건 어때? 내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리코가 널빤지를 잡는 거야. 한 3분 정도? 그 뒤에 교대하고 내가 널빤지를 잡는 거지.」 「그랬다간 금방 기진맥진해져 둘 다 죽어버릴 걸.」 하시모토는 자신의 팔을 주물러 근육의 단단함을 짐작해보고 이내 이시즈미의 물렁 팔뚝을 주물럭거렸다. 「아무래도 판자는 루미 네가 붙잡아야 할 것 같아. 헤엄을 치는 건 내가 하는 게 좋겠어.」 물에 빠져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은 누구 팔뚝이 더 굵네, 알통이네, 이러고 한참을 다퉜다.
21세기 현대 일본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한다는 개념은 낯설었다. 지진이나 태풍 같은 인간이 맞서 싸우기 힘든 천재지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대피소라던가, 긴급 구호활동, 비상식량 같은 것들이 제공되었다. 하시모토 리코는 교과 과정 - 카르네아데스의 널빤지를 무시하고 바다에 빠졌을 적에 바지로 구명조끼 만드는 법을 알아 와 모두 앞에서 발표를 했다.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이라는 원래의 수업 내용과는 100만년 정도 거리가 떨어진 내용이었지만 구명조끼를 얻기 위해 살인도 불사한다는 결론을 유추해내기 싫었던 아이들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 아이들은 유죄냐 무죄냐를 따지기 전에 배를 탈적엔 만약을 위해 스커트를 입지 말자 입을 모으는 것으로 기원전 2세기 그리스의 안타까운 난파 사고를 정리했다. 하필이면 그리스 사람들은 바지를 입지 않았다. 그리스의 기본 복식은 키톤으로 장방형의 천을 몸에 둘러 핀으로 고정시켜 입었다. 비극은 바지를 입지 않아서 벌어졌다.
그런데 지금 출렁이는 바다에 펄럭이는 키톤 복장으로 빠졌다. 「큰일이야. 저 아래로 집어던져지면 끝이야.」 개구리 모습의 괴물이 나카소네를 삼키는 모습은 뇌리에서 금방 사라졌다. 대신 널빤지가 아른거렸다. 판자는 오직 한 사람만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커터 칼을 쥔 3학년이 칼날을 길게 빼들고 남은 1학년들을 돌아봤다. 곧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자 스트레스성 토가 나오려 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커터 칼은 이시즈미가 아닌 스가와라 쪽으로 향했다.
『다음은 너다. 내려가.』 그 말을 들은 스가와라 미즈키는 편의점에 간 귀가 어두운 노인처럼 행동했다. 커터 칼을 쳐다봤다가, 선배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소비세 계산을 실수한 노인과 거스름돈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편의점 점원 같았다. 내려가라고? 스가와라의 머릿속에서 판자가 떠올랐다. 이시즈미가 떠올린 카르네아데스의 판자와는 다른 종류였다. 그것은 해적의 판자였다. 망망대해를 향한 판자의 끝, 그리고 후크 선장은 갈고리가 달린 팔을 흔들며 판자를 걸으라고 위협한다. 3학년생이 드륵 소리를 내며 칼날을 길게 빼냈다. 위협적인 몸짓도 했다. 계단을 내려가지 않으면 얼굴에 흉터가 남을 상처를 내주겠다는 협박도 했다. 문제는 스가와라 미즈키의 눈에는 아직까지도 주령이 보이지 않아서 상어 밥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위협이 딱 절반만 유효했다는 거다.
그랬다. 그녀의 눈에는 상어가 보이지 않았다. 저 너머로 어쩐지 소란스런 기척이 들려왔다. 그 기척은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와 흡사해서 몹시 거슬렸다. 하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자 시야가 물결치며 흔들렸다. 눈을 비비자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던 게 약간 가라앉았다. 그래서 다시 눈을 비볐다.
『질질 짜봤자 소용없어.』 우는 거라고 착각한 3학년이 비아냥거렸다. 『울면 봐줄 거 같았어? 그리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1학년들. 왜 지금은 조용하지? 코쿠리님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다시 말해보지 그러냐. 계단 아래로 던져버리면 저주가 내릴 거라고 떠들어야지 어째서 입 다물고 있는 건데.』 감정을 담아 반장 하시모토를 노려봤다. 그리고 이시즈미 루미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너, 다음은 저 녀석이라고 찍었을 때 속으로 안심했지? 표정에 다 보이더라. 아주 웃겼어. 배꼽이 빠질 지경이야. 코미디가 따로 없었어.』 웃음이 나왔노라 말을 했어도 3학년은 전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하여간 이놈의 학교는 처음부터 재수가 없었어. 전부 밥맛이었다고.』 그렇게 말한 3학년은 스가와라 미즈키를 힘주어 계단 아래로 떠밀었다. 양심의 가책 이런 건 없었다. 두 팔에 힘을 잔뜩 주고 밀었다. 얼마나 세게 밀었는지 스가와라 미즈키의 몸은 계단을 구르는 게 아니라 허공을 날았다.
「역시 꿈이구나.」 무서워서 질끈 눈을 감기는커녕 스가와라의 눈은 뒤집혀진 창밖의 풍경을 향해 있었다. 여기는 이상한 나라다. 엘리스가 있고 모자장수와 토끼가 있는 꿈속 세계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램 수면? 아닌 것도 같고. 스가와라는 멍한 눈으로 어둠이 짙어지는 하늘을 응시했다. 어스름이라고 하는 것들이 산을 넘어오는 중이었다. 저녁이 내려앉은 땅의 모양은 낯설었다. 매일 등교하면서 보던 현대식 건물도, 편의점 간판도, 가로수도, 신호등도 사라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매우 오래되었고, 낡았으며, 지저분했다. 먼지와 잡초만 잔뜩 있어 멋대가리 하나 없었다. 「저런 학교 밖 풍경, 난 몰라. 모르는 곳이야.」 이윽고 단단한 계단 표면에 어깨가 닿았고 내동댕이처진 몸뚱이가 반동으로 절반쯤 더 돌아갔다. 꿈인데, 꿈이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충격으로 팔이 부러진 것 같았다. 머리 위로 3학년 선배들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반장, 그리고 토할 것처럼 보이는 이시즈미가 보였다. 그리고 스가와라 미즈키의 의식이 뚝 끊어졌다.
반면 이쪽의 의식은 천천히 돌아오는 중이었다. 몸이 두 번 뒤집어진 느낌이었다. 쭉 빨려간다는 기분도 들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한 바퀴 빙 돌았을 적에 맛보았던 현기증 비슷한 감각이 몸을 흔들었다.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 올린 이이지마 하나에는 자신이 차가운 바닥에 뺨을 대고 대자로 뻗은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다. 신음하며 두 팔로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후들거리는 팔이 체중을 이기지 못한 탓에 얼굴이 다시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몸이 무거웠다. 중력이 1이 아니라 4인 외계행성에 불시착한 우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면 프라이팬에서 요리되고 있는 오코노미야끼 같았다. 팔과 다리, 몸통과 머리. 그렇게 나눠서 새긴 다섯 개의 봉인술식 중 하나가 풀렸을 뿐인데 땅바닥에 붙어 움직일 기력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속이 메슥거렸다.
『정신이 들어? 기분은 어때, 중학생.』 『물어봐줘서 정말 고맙네. 우욱...! 답을 하자면 개떡 같... 욱.』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며 원망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던 이이지마 옆에서 고죠 사토루는 보는 사람 무안하게 냄새가 지독하다며 코를 움켜쥐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달한 복숭아 향과 섞여 술 냄새가 진동했다. 『토지신이라더니, 으웩. 술주정뱅이 신이었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세상에, 술독에 빠졌다 나온 냄새가 나잖아! 어우. 냄새만 맡아도 취할 것 같다.』 『그게 내 탓이야? 내 탓이냐고!』
말과는 달리 바닥에 누운 채 바르작거리는 모양이 취객의 그것과 너무 흡사했던지라 보고 있던 게토 스구루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며 붉어진 눈빛이며, 이마에 넥타이를 두르고 새벽 택시를 부르는 샐러리맨과 너무나 똑같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전봇대와 다투려 할지도 모른다. 옆구리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우자 농밀하게 익은 과일주의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알코올에 면역력이 없는 고죠 사토루가 코를 쥐고 저만치 달아날 법도 했다. 자칭 우주 최강 주술사는 육안과 무하한의 상전술식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 대단한 몸뚱이에는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었다. 『설마, 내가 한 일이 봉인술식 해제가 아니라 100년 묵은 술독의 봉인을 푼 건 아니겠지.』 그래서 질색하며 얼굴을 구겼다. 미성년의 신분으로 숙취의 고통을 진작부터 경험 중인 이이지마는 닥치라는 의미로 가운데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뇌가 바글바글 끓는 중에도 감각은 기민해져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을 소음이 들려왔다. 수백만의 생명체가 제각각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고, 물이 사방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건물은 뒤틀렸고, 하늘은 위로부터 닫혔다. 쏟아지는 정보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잘 됐다. 손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도와주지 않겠니? 미술 교사 다나베 고우지가 커다란 뱀의 머리를 들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1학년인 스가와라 미즈키가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그리고 뱀의 머리를 두 손으로 공손히 들고 따라갔다. 네 눈엔 이게 무엇으로 보이니? 검은 뱀의 커다란 머리를 들고 있던 다나베 고우지가 자세히 보라며 앞으로 내밀었다. 몸통에서 잘려나간 뱀의 머리는 크기가 너무 커서 진짜라는 느낌이 나지 않고 모형물 같았다. 잘린 머리의 뱀이 눈을 흡떴다. 검고 검은 눈. 그러자 기모노 차림새의 젊은 여인이 손도끼를 들어 뱀의 머리를 내리쳤다. 소원을 빌어라. 머리가 잘린 뱀이 외쳤다. 칼을 차고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공양물을 올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검게 변한 눈을 하고 그 남자가, 그 여자가, 그 무리가, 뱀의 쉭쉭 소리를 흉내 내었다. 대일본제국의 번영을. 신이여, 외치자 바닥이 검게 변한 피로 물들어갔다.
Posted by 미야
2021/05/06 16:01
2021/05/0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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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만화 원작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폐가 아팠다. 숨을 참은 채 무리하게 전력질주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엎어진 자세에서 등을 밟혀 그런 건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아마도 후자 탓이 더 크지 않을까 싶었지만... 3학년 선배가 더 힘을 주어 밟은 탓에 생각의 흐름마저 끊겼다. 벌레처럼 밟혔다는 굴욕감 이전에 제대로 숨을 쉬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눈앞이 하얗게, 검게, 다시 하얗게 변했다. 사진기의 플래시 라이트가 정면에서 터진 것 같았다. 퍽, 하는 소리와 같이해서 등가죽이 타들어갔다. 이번엔 걷어찬 거다.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 같으니. 누구냐. 누가 1학년의 콧쿠리님이냐고.』 하시모토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시즈미와 스가와라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저 혼자 살겠다며 도망치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항할 용기나 의지 따윈 아무리 끌어 모아봤자 티끌이어서 등을 밟힌 채 쓰러진 하시모토를 도와줄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거다. 3학년은 덜덜 떨고 있는 이시즈미를 눈여겨 본 뒤에, 다시 말문이 막힌 것처럼 보이는 스가와라를 쳐다봤다. 『그래서 누가 콧쿠리님이냐고.』
대답은 반장이 했다. 『제가 1학년의 콧쿠리님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선배님.』 숨을 헐떡이며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콧쿠리님을 다치게 하면 앙화가 내립니다.』 그 즉시 3학년의 안색이 바뀌었다. 짜증이 분노로 바뀌었다. 『시끄럽다, 1학년. 나는 안 모시는 쪽이라고!』
누구는 콧쿠리님이 비가 오는 날에 해가 날 것을 기대하며 처마 아래 걸어두는 테루테루보즈 인형과 똑같은 거라고 했다. 그런가보다 싶었다. 그는 이 미신 같은 짓거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쪽이었다. 어쩌다 매점에서 마주쳤던 3학년의 콧쿠리님은 보통 체격에 평범한 인상이어서 섞어놓으면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오죽하면 등에다 파란 점을 찍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자꾸 실수로 말을 걸게 된다면서 같은 학급 아이들이 불평했다. 표정이 어두웠던 것만 기억났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interrupt, schedule, restaint, 어쩌고 하면서 영어 단어를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친구 말에 따르면 공부는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다고 했다. 「올해는 잘못 뽑은 거 같아.」 「괜찮아. 그냥 이대로 별 일 없으면 되는 거야. 재작년의 악몽 같은 상황만 안 벌어지면 돼. 이번 콧쿠리님은 옥상에 올라가 다 죽어버려 고함칠 성격은 아니니까 그걸로 된 거야.」 「아, 몰라. 솔직히 내가 콧쿠리님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엔 안 들어.」 「대신 숙제가 없잖아. 선생님들께 말만 하면 답안지도 보여 준다더라.」 「그건 헛소문.」 「숙제만 없어도 어디냐. 수학 숙제 너무 많아 힘들어.」 「차라리 과제에 치어 죽지. 그냥 왕따잖아. 나 같으면 집어 치우고 전학 갈 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3학년의 콧쿠리님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듣자하니 가게도 팔고 아예 가족 전부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버렸다고 했다.
『또 콧쿠리님 모시기를 했다고 들었다.』 이후로 체육 교사 히무라는 돌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을 수준으로 기합 넣기 체조를 시켰다.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 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그럴 거야. 저주 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인간의 나약한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는 거다. 그러니 너희들의 나약함을 체력으로 바로 세워라. 기합을 넣어서 하나! 기합을 넣어서 둘!』 원래부터 귀신같은 건 믿지 않던 입장에선 히무라 선생님의 비난은 억울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학을 간 콧쿠리님의 스케치북이 치워지지 않고 미술실에 남았다는 얘기가 소문처럼 돌았다. 수채화물감으로 까맣게 붓질을 한, 사진을 베껴 그린 풍경화라고 했다. 「본인도 까먹고 갔는데 그냥 버리면 되지.」 그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친구의 표정이 굉장했다. 일단 땀을 엄청 흘렸다. 그리고 담임으로부터 부모님을 모셔 오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굳었다. 「그런 말 하지 마. 그걸 어떻게 치워.」 「왜 못 치워?」 「아, 그랬지... 너는 안 모시는 쪽이지. 속 편한 놈. 것보다 올해 겨울에 닌텐도 DS가 나올 거래.」 콧쿠리님은 서로에게 불편한 화제였기에 친구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
그림은 계속해서 치워지지 않았다. 미술부 활동을 하다 잠시 자리를 떠나기라도 한 것처럼 스케치북은 자연스럽게 펼쳐진 채로 방치되었다. 어째서인지 금방이라도 그림의 주인이 자리로 돌아와 붓으로 칠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물통과 물감, 붓 같은 도구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고, 검게 칠해진 그림은 아직 미완성이었다. 스케치북을 슬쩍 들었다가 도로 제자리에 놓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치울 수 없다는 뜻이 무엇인지 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징그러워.」 꺼림칙한 손을 5분 내내 비누칠을 하며 씻으며 다시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다짐했다. 외면하면 남의 일이다. 그는 모시지 않는 쪽이었다.
『쟤가 콧쿠리님이에요!』 그때 이시즈미 루미가 스가와라 미즈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자질을 했다. 『다른 애들에게 물어보시라고요! 진짜에요. 쟤가 콧쿠리님이에요!』 선배들이 스가와라를 데리고 가서 무슨 짓을 저지르든 말든 이시즈미는 아무 상관없었다. 친하게 지낸 것도 아니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도 않았다. 나자렛 예수를 팔아 은 30냥을 받았는데 콧쿠리님을 팔아 친구를 구하는 건 왜 안 되는가.
그런데 선배는 하시모토 리코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3학년 무리들 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리코는 아니에요!! 진짜에요.』 싹싹 빌어도 3학년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말리려고 하는 이시즈미의 입 부분을 주먹으로 치기까지 했다. 치아가 부러진 것 같은 느낌에 턱 부분을 감싸 쥐고 소리도 못 냈다. 그저 눈물만 줄줄 흘렀다.
화가 난 3학년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한 나카소네 키요타카는 5층으로 끌려갔다. 체육복을 입은 애가 1학년의 콧쿠리님이다, 1학년 2반이 아닌 척해서 죄송하다, 반복하여 용서를 구했지만 선배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건데. 그저 분풀이가 하고 싶었던 건가. 눈알을 굴려 눈치를 보다가 시선을 느낀 선배가 흰자위가 보이도록 희번덕 노려보자 그 짓도 관뒀다. 지금은 그냥 무조건 빌어야 할 때였다. 『얘 진짜 웃기네. 네가 뭘 잘못했는데?』 『글쎄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용서를 구하는 거니?』 『가르쳐주시면 사과할게요, 선배님.』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애를 썼다. 통증 탓에 기괴한 웃음이 되어버렸지만 거울이 없으니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울상으로 바뀌었다. 웃음은 여유가 있을 적에나 나오는 거다, 그 말을 누가 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담임이었다. 「웃음은 여유가 있을 적에나 나오는 거다. 성적이 좋아야만 성적표를 보며 웃을 수 있는 거다. 너는 웃을 자격이 없다.」 배불뚝이가 볼펜으로 머리를 툭툭 치며 했던 말이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요!』 카제야마 중학교는 원래 5층 건물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해야 한다는 점이 아찔하지만, 5층 건물이었다. 5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일단 초록색으로 빛나던 비상구 표지판이 사라지고 표지판으로 바뀌었는데 적힌 내용은 층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고 유계(幽界)라는 글자였다. 이쪽이 현계이면 저 아래는 저승이라는 의미인지 5층과 6층의 경계선엔 까드득 뿌르륵 소리를 내는 이상한 것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위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것들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표현이 불가능했다. 눈알은 개구리처럼 컸고, 피부는 양서류처럼 반질반질하면서 색이 파랬다. 덩치는 사람 크기인데 다리와 팔은 빗자루처럼 가늘었다. 그런 게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까드득 뿌르륵 요상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던져버려.』 『이러지 마세요! 아아악!』 떠밀려지자 아래에서 서성이던 것들이 저마다 난리가 났다. 나카소네는 울부짖었다. 팔을 뻗어봤지만 잡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개구리처럼 생긴 괴물이 빠르게 저를 삼켰고, 보고 있는 선배들은 하나같이 무심했다.
붙잡혀 온 하시모토 리코가 그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카소네가 눈앞에서 통째로 잡아 먹혔다. 『무슨 짓을...』 『어쩌겠어. 삼킨 놈은 사라지거든. 봐,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지? 애들 일곱을 삼키고 괴물 일곱이 없어졌어. 이제 하나 더 사라졌고.』 선배들은 남은 괴물의 머리 숫자를 헤아리다 이제 열 하나가 남았다며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는 반항하다 벗겨져버린 나카소네의 한쪽 실내화를 무슨 쓰레기 치우듯 아래를 향해 마저 던져버렸다.
※ 게토 스구루, 여덟 명 구조 완료.
Posted by 미야
2021/04/28 14:38
2021/04/2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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