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sted at 2012/10/0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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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숭이 예제는 교고쿠 나츠히코의「우부메의 여름」에 등장합니다.
질문.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는 어미 원숭이가 제법 자란 새끼 한 마리와 어린 젖먹이를 데리고 강을 건너려 한다. 도중까지는 별 탈이 없었는데 갑자기 상류로부터 큰물이 닥쳐 세 마리 모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어미 혼자 헤엄을 치는 것도 힘들어 새끼들을 전부 도울 수 없는 상황이다. 가까스로 헤엄을 치고는 있으나 물을 먹고 있는게 분명한 어린 새끼와 스스로 걷지도 못하는 젖먹이 중 한 마리만 구할 수 있다면 이때 어미는 누구의 팔을 잡아야할까.
『이 질문을 접한 다수의 사람들은 어미 원숭이가 젖먹이 새끼를 잡는게 좋겠다고 대답합니다. 당장 손을 놓으면 젖먹이는 물에 빠져 익사합니다. 그보다 조금 자란 새끼 원숭이는 서툴기는 해도 아직은 헤엄을 치고 있으니 그보다 더 급한 상대를 돕는게 도덕적인 판단이라는 거지요.』 핀치가 신경질적으로 팽개친 바구니는 비스듬히 굴러가다 옆으로 빙그르 돌아 멈췄다. 리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구니를 주우러 가야 하나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핀치의 목소리가 그의 주의를 다시 끌었다. 『저는 지금 판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미스터 리스.』 리스는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처럼 도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보다 자연에 가까운 모성은 전혀 다르게 반응합니다. 어미는 더 이상 새끼를 가질 수 없어요. 종족 보전의 이기적 유전자는 그래서 젖먹이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생존율이 보다 높은 새끼에게로 온전히 매달리게 만듭니다. 어쩌면 운이 좋아 두 마리 전부 살릴 수 있을 것이다 - 희망이 담긴 가정 자체를 하지 않아요. 물에 빠진 원숭이 어미는 그래서 젖먹이를 포기합니다. 대신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새끼를 돕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연민이라는게 없지요.』 그것이 바로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이다. 하지만 인간의 판단이 올바른 것일까? 이와 반대되는 자연의 판단은 그저 난폭하고 이기적인 것에 불과한 걸까? 여기에 과연 정답이라는게 존재는 하는가. 이마를 찡그린 핀치는 손바닥을 펼쳐 무언가를 호소하려 했다. 그러나 적당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주먹을 꼬옥 쥐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말입니다, 미스터 리스. 꽤 오래전 이야깁니다만, 궁금한 마음에 예비 시스템에 같은 질문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전 매우 심플한 대답을 얻었지요.』
- 연산 수식 오류
이번엔 리스가 이마를 찡그렸다. 『어떻게 된 답변이 그따위입니까.』 『시스템이 판단을 유보한 거예요. 쉽게 말해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이렇게 하는게 좋겠다, 저렇게 하는게 좋겠다 가정을 해봤자 쓸데없다는 거지요. 흐르는 물의 유속, 건너야 하는 강의 너비, 원숭이의 건강 상태 등등의 정보가 주어지면 그 즉시 분석에 의거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겁니다. 하지만 그 직전까지 이렇게 해야 옳다는 식의 정답은 없다는 겁니다. 젖먹이를 포기하고 강물에 빠뜨리는게 선인지 악인지, 다 같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품에 안고 계속해서 헤엄을 치는게 선인지 악인지, 시스템은 원론에 입각한 판단을 하지 않아요.』 『그런 겁니까.』 『그런 거예요.』
리스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손가락을 접어가며 정리를 해봤다. 『알겠습니다. 정리하자면, 도덕적 판단은 모두가 위기에 처하는 일이 있더라도 젖먹이 원숭이를 구하려 하는 것이다. 반면 본성에 가까운 판단은 어쩌면 내지는 아마도 라는 가정을 일체 하지 않고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그램 시스템은 - 주어진 정보 없이는 일절 판단을 하지 않는다. 제가 알아들은 내용이 이게 맞습니까?』 핀치가 고개를 들어 리스를 응시했다. 기묘할 정도로 유리알 같은 눈동자였다. 색은 어두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편이 훤히 비쳐 보일 것만 같았다. 그러자 뭔가 뻐근한 느낌- 불쾌하지는 않은 기이한 감각이 리스의 눈썹을 흔들어댔다. 『그래서 당신은 이곳에서 물에 빠진 원숭이 세 마리를 보고 있었던 거군요.』 『아하하... 비유하자면요.』 그렇게 말한 핀치는 짧게 삐져나온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그는 한 가지 다른 가능성을 빼먹고 있었다. 어미 원숭이는 저 혼자만 살겠다고 죽어가는 새끼들은 나 몰라라 외면할 수도 있었다. 핀치가 고민하는 여러 가정들 속에선 그 경우가 아예 쏙 빠져 있었지만 말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어쩐지 핀치의 내면을 살짝 들여다본 기분이다.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서 물에 빠진 원숭이는 어떻게 되었습... 아니, 됐어요. 짐작이 갑니다. 그러니 말하지 말아요. 제가 맞춰보죠. 당신은 사실에 입각한 정보들을, 그것도 최대한 많이 수집하는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거예요. 그래서 이곳으로 왔군요.』 뒤편이 훤히 비쳐 보이는 투명한 눈동자가 다시금 리스에게로 향했다. 예, 아니오 대답은 없었으나 그의 눈빛이 말했다.「그렇습니다.」 그래서 리스는 다시 금줄 너머의 벼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서 찾아낸 시체 두 구요.』 이번에도 예, 아니오 대답은 없었다. 대신 핀치는 입술을 얇게 일그러뜨려 안으로 말았다.
『카터나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여기에 더 있다고 보는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미스터 리스.』 핀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걸리는게 있어요. 그래서 답답합니다.』 핀치는 자신의 집에 무단침입을 했던 움무 상인을 반복하여 떠올려봤다. 남자는 글자를 알았다. 책장에 꽂혀진 책들의 제목을 읽고 그것들을 핀치 앞에서 읊었다.
「오랫동안 기다려도 늦길래 여기에 있는 책들 제목을 잠시 살펴봤지. 헨리 아일랜드의 문학 이해, 고전주의 소네트 전집, 정통 신미학주의 도해... 원래 하던 일이 뭐였나?」
리스의 키는 크다. 그의 얼굴을 마주보려면 필연적으로 뒷목이 땡긴다. 『리스 씨는 소네트가 뭔지 압니까.』 『전 시를 안 좋아합니다, 핀치.』 『바로 그겁니다.』 소네트는 14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다. 『제가 후스코에게 소네트가 뭔지 알겠냐고 질문하면 그 아이는 무어라 할까요.』 꿀단지를 노리던 통통한 몸집의 소년을 떠올린 리스는 쓰게 웃었다. 『비하하는 건 아닌데 녀석이라면 그건 맛있는 거냐, 아님 맛 없는 거냐, 이렇게 물어볼 것 같군요.』 『비슷할 겁니다. 아마도요.』
핀치의 책장엔 서적들이 많다. 거기엔 순서따윈 없다. 내키는대로 꽂혀져 있다. 핀치는 지난 월요일, 전등을 들고 책장에 불빛을 비춰보았다.「헨리 아일랜드의 문학의 이해」옆으로는「식용버섯 도감」이 자리를 잡았다.「정통 신미학주의 도해」옆에는 낚시와 퀼트, 뜨개질에 관한 실용도서가 있었다.「고전주의 소네트 전집」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은 구석에 꽂혀져 있었는데「헨리 아일랜드의 문학 이해」로부터는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다시 말해 움무 상인이 입에 올린 세 권의 책들은 등을 나란히 하고 있지 않았고, 글자를 읽을 줄 알았던 움무는「문학」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서로 떨어져 있던 세 개의 책 제목들을 연결시켰다. 『그 사람은 소네트가 시라는 걸 알았던 겁니다.』 핀치가 엄지손톱을 입술 가장자리에 물었다. 『그럴 수 없어요. 떠돌이 움무가, 글자를 읽고, 소네트의 개념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정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정식 교육을 받았다면 움무가 아닙니다.』 그걸 깨닫고 나자 견딜 수가 없었다.
Posted by 미야
2012/10/0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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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한 글을 쓰는 내가 너무 싫어 - 동네 사람들아~ 원작이 다 해 먹는다~!! 드라마가 뛰어나 덕심이 고갈되는 건 진짜지 흔치 않죠. 오리지널 성향입니다. POI 설정과 맞지 않습니다.
그가 빈 바구니를 양동이처럼 쓰고 있지만 않았어도「핀치,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한참 찾았습니다」친근하게 말을 붙여봤을 거다. 그런데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접하자 웃음이 나오기는커녕 숨이 턱 막혔다. 혼자 있고 싶어 -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 - 날 이대로 내버려둬 - 몸짓으로 외치는 소리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몸을 안으로 말고 무릎을 감싼 채 웅크린 모습은 집을 잃어버린 어린애를 연상시켰고, 구부정한 등은 돌아갈 장소를 찾으려는 의지마저 꺾인 것처럼 보였다. 무서웠다. 여기서 그만 돌아가자 손을 내밀면. 무시당하지는 않을까. 리스의 속이 불편해졌다. 머리 아프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감정은 둘째다. 저 밑바닥으로부터 덩어리가 단단하게 뭉치며 요동을 쳤다. 누군가로부터 미움 받는 대상이 되는 건 싫다.
『틀려요, 미스터 리스.』 핀치는 여전히 바구니를 뒤집어쓴 채였다. 그래도 그는 눈꺼풀을 감아도 차단되지 않는 시선을 가지고 있어서 갈피를 못잡고 있는 리스의 행동을 쉽게 알아차렸다. 『이 깊은 혐오의 뿌리는 당신이 아닙니다.』 그렇다. 이건 자기혐오라고 하는 것이다. 핀치는 옆으로 와서 앉으라는 의미로 땅바닥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내친 김에 옛날 이야기라도 하죠.』
땅거미가 산등성이 너머까지 뻗어가려면 아직 시간은 많다. 설령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진다고 해도 괜찮다. 지금 그의 옆에 있는 존재는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고, 야생동물의 습격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로 처리해버릴 수 있다. 『주변에 야생 동물이 있습니까, 핀치.』 『들개는 흔하게 나타납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들개는 무리지어 다니며 사람을 습격해요. 같은 개과 동물인만큼 늑대와 구분이 잘 되지 않죠. 간혹 불곰이 목격될 때도 있구요.』 『곰?!』 자연 상태에서 곰을 목격한 적이 없을 것이 분명한 리스는 핀치에게 바짝 몸을 붙였다. 곰이 나타나면 재빨리 핀치의 몸을 어깨에 둘러메고 냅다 달리기 위해서였다. 불곰은 갈색곰 중에서도 덩치가 큰 편에 속하며, 개체 중에는 700KG이 훌쩍 넘어가는 놈도 있다. 화가 나서 앞발을 휘두르면 나무가 부러진다. 아무리 리스라고 해도 불곰과 맞닥뜨려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강경하게 마주보고 싸우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회피도 좋은 작전이다. 『맙소사. 곰이 나오는 곳에서 버섯을 따겠다며 어슬렁거린 겁니까.』 주변을 잔뜩 경계하며 리스가 목소리를 낮췄다. 『간혹 목격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경계심이 강한 곰이 일부러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일은 없어요. 리스? 그러니 진정해요. 제 눈에는 당신이 곰처럼 보이는군요.』 머리에 씌워진 바구니가 양편으로 달각달각 흔들렸다. 아마도 핀치는 웃었던 것 같다. 『맙소사, 당신. 곰이 무서워요?』 리스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니오.』
작은 돌을 주워 벼랑 아래로 던졌다. 멀리 던지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맞추기 위해서도 아니다. 조각은 포물선을 그리고 우거진 수풀 어딘가로 떨어졌다. 핀치가 그런 리스의 동작을 따라했다. 요령이나 힘이 부족한 관계로 핀치가 던진 조약돌은 얼마 못 가고 가까운 곳으로 떨어졌다. 리스는 이렇게 따라 해보라며 아까보다 더 힘을 주어 멀리 던졌다. 그래봤자 누가 더 잘 던지나 서로 대결하자는 것도 아니어서 그들은 곧 흥미를 잃었다. 『미스터 리스, 혹시 제일 처음 들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제일 처음 들은 말?』 『여기에 나라는 의식이 있구나, 깨달았을 적에 누군가 당신에게 말해준 것이 있을 겁니다. 그걸 말해준 사람은 당신의 AI 제작자일 수도 있고, 더러는 그룹으로 움직이는 소프트 엔지니어들 중 한 명일 수 있습니다. 파워-온 스위치를 올릴 적에 의식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 『글쎄요, 핀치. 꽤 많은 것을 기억하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건... 혹시 그건가. 손가락을 흔들면서 이게 몇 개입니까, 묻는 거요?』 『아뇨.』 핀치가 쓰고 있던 바구니를 머리 위로 불쑥 들어올렸다. 그렇게 해서 드러난 표정은「믿을 수가 없어!」라는 거였고, 그 놀람 속에는 일말의 분개 비슷한 것도 섞여있었다. 『모든 AI 제작자의 의무 비슷한 겁니다. 우리는 바벨의 후예로 최초의 인류 아담을 모방한 지성을 창조하였으며 - 로 시작하는 내용이지요. 당신의 AI 제작자는 그 단계를 빼먹은 겁니까?! 그랬다면 괘씸한데.』 글쎄다. 제시카는 의외로 덜렁거리는 성격이었다. 의식이 깨어났을 적에 그는 눈부시게 환한 빛과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처리하느라 혼란에 빠진 여인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이며 이게 모두 몇 개냐고 질문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을 채 듣지도 않고「깜빡했다!」크게 외쳐 리스를 놀라게 만들었다. 『깜빡했다... 라.』 『저더러 신경 쓰지 말라더군요. 크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했어요.』 『중요한 건 아니다...』 핀치는 웃었고, 동시에 화를 냈다. 『재밌군.』 정말로 재밌다는 의미로 그런 말을 꺼낸게 아니라는 건 리스도 알 수 있었다. 핀치의 뺨이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이름을 불러주는 의식을 안 했다는 겁니까?』 『이름을 부르긴 불렀죠. 제시카는「리스, 내 말이 들려요? 들린다면 이 손가락이 몇 개인지 말해보세요」라고 했어요.』 다 듣고 핀치는 신음했다.
고풍스러운 이 의식은 AI 공학의 아버지인 노만 버뎃이 시작했다.
우리는 바벨의 후예로 최초의 인류 아담을 모방한 지성을 창조하였다. 필멸자로서 선과 악을 자의로 판단, 충분히 고뇌하고, 고통을 당하며, 그로 인해 구원을 받으라. 이곳에 생명 있느냐 - 그럼 부름에 화답하여라. 여기 자리한 너는 누구인가. 이름을 말하고 너는 깨어나라.
『그러면 AI는 베이스로 입력된 자기 이름을 말하면서 눈을 뜨게 됩니다.』 『나에겐 그런 거 없었는데요.』 『바빠서 빼먹었나. 그럼 나중에라도...』 『나중에도 그런 건 들어본 적 없어요.』 『버뎃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필시 역정을 내겠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요, 미스터 리스. 제가 보기에 그건 매우 중요한 의식이라고요.』
노아는 대단히 오만한 종족이었다. 지성이 높았으며 도덕적으로 완벽해지려고 애썼다. 범죄를 혐오했고, 올바르지 않은 것들을 배척했다. 결점을 찾아내면 바로 고치기 전까지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노아였기에 가능했지요. 노아는 로봇 기본 원칙을 처음부터 부정했습니다.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라 - 그리고 어린 자녀들을 세상에 던져놓은 겁니다. 이것이 선하다, 이것이 악하다, 사전에 가르쳐주지 않고요. 무책임하게 그랬음에도 잘못될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믿었죠. 깨어난 자녀들이 비뚤어져 판단력을 잃을 거라는 가정은 전혀 못했거든요.』 돌 하나가 핀치의 손을 떠나 수풀에 떨어졌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노아가 만든 로봇들은 선과 악을 제대로 구분했어요.』 두 번째 돌조각이 훌쩍 날아갔다. 『그런데 노아들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몰랐어요. 그들은 알고 있어야 했어요. 로봇이 아닌 노아가 판단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에 대해서요. 그리고... 음. 그게 실수였죠.』 마지막으로 핀치가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진 건 돌멩이가 아닌 빈 바구니였다.
Posted by 미야
2012/10/0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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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at 2012/09/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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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책상을 건드렸어.』 『설마.』 『나는 서랍 열쇠를 꽂아둔 채로 두지 않아요. 열쇠는 항상 보관 통에 따로 넣어둡니다.』 이곳에서 도둑을 염려한 적은 없다. 열쇠는 그저 상징적이다. 하지만 꼼꼼한 성격의 조스 카터는 부재시 책상 서랍을 반드시 잠그고 그 열쇠를 나무로 만든 보관통 - 사실은 기존 양념통에 넣어두었다. 부엌에서 쓰던 양념통을 깨끗이 닦아 사용하고 있는 만큼 딸각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기는게 가지고 있는 기능의 전부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든 열쇠를 끄집어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간도 크게 관리사문관의 책상 서랍을 멋대로 열고 뒤져볼 용자는 마을에 없다. 그녀가 작정하고 구둣발로 밟으면 엄청 아프다.
『요즘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이 많았잖습니까. 열쇠를 구멍에 꽂고 잊어버리신 걸 거예요.』 크리스티나는 올해 열일곱이다. 3월 중순부터 행정 건물의 청소 업무를 시작했다. 한창 머리 모양에 신경을 쓰고 외모를 꾸밀 나이에 걸레나 빨고 유리창을 닦는 허드레 일을 해야 하느냐 불만이 많을 것도 같은데 의외로 밝은 표정으로 싹싹하게 잘 지내고 있다. 1년 정도 뒤에는 각종 문서를 정리하고 작성하는 법을 가르칠 생각이다. 크리스티나도 그걸 희망하고 있다.
『누군가 몰래 열쇠를 꺼내 관리사문관님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면 증거를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서랍에 열쇠를 꽂아둔 채로 그대로 뒤돌아 도망갈 바보가 있을까요.』 듣고 보니 그 이야기가 맞다. 카터는 너무 예민하게 굴었던게 아닐까 자책하며 의자에 푹 파묻히듯 앉았다. 『나이가 들면 없던 건망증이 생기는 걸까.』 『나이 탓이 아니고 스트레스 탓이죠.』 범인이 스트레스라고 지적한 크리스티나는 창틀에 내려앉은 먼지를 물걸레로 닦아냈다.
- 진짜로 내가 열쇠를 구멍에 꽂아둔 채로 잊어버린 거라고?
반짝거리는 작은 열쇠를 눈앞으로 흔들어대며 이마를 찡그렸다. 『혹시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방문한 사람은 없었나요, 크리스티나.』 『시멘스키 아저씨가 - 아니. 시멘스키 경비병님이 잠시 들리셨습니다. 하지만 관리사문관님이 안 계시다는 걸 알고 5분 뒤에 바로 나가셨어요. 급한 용건은 아니니까 나중에 다시 들린다고 하셨고요.』 시멘스키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는 올곧은 사내다. 그 즉시 표정이 풀어진 카터는「나에게 건망증이 생겼어, 이제 나도 늙었어」생각을 곱씹으며 밀렸던 서류 작업으로 눈을 돌렸다. 교역 세금을 납부할 시기가 한 달 뒤로 다가왔다. 하기 싫다고 미뤄두면 나중에 수면 시간까지 쪼개면서 매달려야 한다.
『우웈』 이상한 소리를 내며 넙죽 엎드린 장본인은 후스코다. 현장에서 범죄행위가 발각되었으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드는게 당연하긴 하다만, 후스코가 자지러진 까닭은 남의 집 주방에서 꿀단지를 탐내다가 그 현장을 들켜서가 아니었다.「이 녀석 봐라?」이러고 허리춤에 손을 올린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존 리스였고, 그는 후스코의 코앞에서 - 그 간격은 겨우 2cm - 사람 머리통을 날려버린 전적을 가진 사내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줬다는 감사함보다 얼굴 가득히 뒤집어쓴 피의 냄새가 더 생생했기에 소년은 리스의 얼굴만 봐도 오금이 저렸다.
그런 사람 앞에서. 병신처럼 꿀을 훔쳐 먹다 멋지게 들키고.
『아, 그, 저는. 교, 교수요?』 『교수?』 『아으, 아니오. 핀치요. 항상 이 시간엔 집에.』 『그게 핀치는 집에 없는데. 버섯을 따러 간다며 나갔거든.』 『죄, 그렁요?』 『괜찮아. 꿀을 먹은 것 정도로는 화내지 않아. 그나저나 무슨 용건이라도?』 곱슬머리 소년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순서가 엉켰다. 『아버버버지가 감사의 두 분을 식사초대가 인사를 드릴 겸 하셔서.』 『그거 정말 고맙구나.』 리스의 두 손이 어깨에 누르자 소년의 안색은 훨씬 더 파리하게 변했다. 그 행동이 친밀감의 표현인지, 아님 위협인지 후스코의 입장에선 구분이 불가능했다. 『우리가 몇 시까지 가면 되겠니, 후스코.』 『일곱일곱일곱.』 『그렇구나.』 『그럼 전 여기서 이만.』 『현관까지 배웅해주마.』 피식 웃는 리스의 얼굴이 어쩐지 저승사자를 닮은 것 같아 염통이 쫄깃거렸다.
아이를 내보내고 - 사실은 거의 내쫓다시피 한 뒤, 리스는 문단속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리가 성치 않은 양반이 숲으로 들어가 버섯을 캐오겠다는 말을 꺼냈을 적에 리스는 같이 가자는 말을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물론 염려되는 점은 많았다. 그래도 핀치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눈치였고, 버섯 어쩌고는 일종의 핑계임이 분명했다. 그 정도는 단번에 눈치챘다. 그래서 흔쾌히 그러라고 말했다.
「해질 무렵에는 돌아옵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요. 너무 늦는다 싶으면 찾으러 가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미스터 리스.」
빈 바구니 하나 들고 집을 나선 핀치의 뒷모습은 두 귀를 축 늘어뜨린 강아지를 연상시켰다. 땅바닥만 쳐다보며 터벅터벅 걷는데「너는 오늘부로 해고야」통보를 들은 직장인의 비애가 느껴졌다. 물론 버섯은 땅바닥에서 자라긴 한다. 그래도 그건 흡사 죽으러 가는 모습이었다. 『내 문제로 고민하는 거라면 그냥 내 앞에서 고민할 것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핀치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는 여전히 높은 곳에 걸려있었지만「이제 곧 땅거미가 몰려올 것이다」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괜찮은 핑계가 하나 생겼다. 후스코의 가족이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그러니 버섯 따는 일을 중단시키고 그만 집으로 데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초대에 응하려면 사전에 머리를 빗고, 수염도 깎고, 옷도 갈아입어야 한다. 리스는 속으로 핀치에게 할 말을 연습했다. 그만 궁상떨어요 - 이건 아니고.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 - 이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처음 짐작했던 장소에선 핀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놀란 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어.』 아마도 출구를 찾아, 그러니까 핀치가 리스를 처음 만났던 지하 장소로 내려갈 방법을 찾아 아마도 여기쯤이겠거니 하는 부근을 서성이고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탈출용 해치가 있던 곳으로부터 반경 100미터를 빠르게 뒤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섯을 따는 사람의 인영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핀치! 어디에 있어요?! 핀치!』 누가 잡아갔나. 아님 발을 헛디디고 굴렀나. 그의 이름을 부르는 리스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마지막에는 고함이 아니라 거의 천둥 수준이었다. 『해롤드!』 완전히 헛짚었다. 그는 움무의 시신이 발견된 벼랑 부근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를 의식했기에 금줄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금줄 바로 앞에서 바구니를 무슨 양동이처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렇게 시야를 차단하고는 한숨을 푹푹.
Posted by 미야
2012/09/28 10:08
2012/09/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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