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샘이다.』
젠슨이 던진 이 짤막한 한 마디로 제러드는 대서양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① 저번처럼 촬영 중에 딴죽질하면 내손에 죽을 줄 알아
② 나에겐 사생활은 매우 소중한 거니까 지나치게 졸라대면 후환이 두려울 거다
③ 삼층석밥은 구경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빨리 식사에 열중하도록
④ 내 베이컨에서 눈 돌려. 넌 식탐 제로의 샘 윈체스터를 연기하는 몸이잖니
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면 나는 눈물이 나도록 지루해질 거야
⑥ 우리집엔 숨겨둔 꿀단지 같은 건 없어. 왜 호기심을 갖는 건지 이해가 안 가
⑦ 에소프레소 머쉰은 이미 가지고 있거든? 처치 곤란한 물건은 선물받고 싶지 않아
라는 복잡한 내용을「너는 샘이다」딱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느냔 말이다.
제러드는 잔뜩 부어터진 얼굴로 기껏해야 이 말밖엔 할 수가 없었다.
『샘이 아니라 새미예요.』
퉁명스럽게 내뱉고 나서야 대본에 맨날 나오는 말,「새미가 아니라 샘」과 정 반대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뭐, 콧구멍으로 치즈를 집어넣느라 바빠 죽겠는데 그런 사소한 걸 누가 신경쓰겠어. 그는 통밀가루를 발라 튀긴 큼직한 생선 살을 둘로 쪼갠 다음, 하나를 입에 넣고 삼켰고, 다른 하나는 요구르트 드레싱을 발라 후룩 들이켰다.
어금니로 씹고는 있나요 - 젠슨이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진공 청소기 같은 주둥이로 케이준 라이스를 하나 가득 주워담고는 두어 번 턱을 움직이곤 곧장 꿀꺽이다. 그러고도 성이 차질 않았는지 빵조각에 구운 감자를 손가락에 나란히 끼워두고는 번갈아 베어물고 있다. 입이 하나라서 진실로 섭섭한 종족이다. 항상 느끼는 건데 저러고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하니 신의 축복이다.
볼이 통통하게 부풀어오른 상태에서 제러드가 접시에서 눈을 들었다.
『그치암 딩은 날 새미라오 불러오 괘안차요. 딩은 젠응이고, 제니은 딘이으까 나는 새미.』
『삼키고 말해.』
『응.』
『삼켰어?』
『응.』
젠슨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연하라고 해도 키가 2미터에 육박하는 공룡인데 하는 짓은 완전히 다섯 살 아기이고, 같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나중에 당신이 아빠가 되면 이런 심정이 된답니다」라는 걸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스콰치 몸매는 말짱 꽝이었다.
근육만 키우지 말고 다른 것도 키워야 한다니까.
당근을 씹다 말고 젠슨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그로부터 5초 뒤에 머릿속으로 떠올린 문장을 실수로 소리내어 말했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제러드가 길게 뻗은 다리를 민망하게 좌우로 벌리고는「글쎄요. 키우는 건 어렵지 않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라며 말꼬리를 흐렸기 때문이었다.
이게건방지게어디서지똘똘이를자랑하고있어.
숟가락으로 손등을 때렸다.
『아얏!』
『인터뷰를 하던 기자 앞에서 아침부터 상큼한 마스터베이션 어쩌고 떠들 적부터 알아봤다만, 네놈 머리 구조는 일반인들과 정 반대로 되어 있는 거냐. 내가 키우라고 한 건 감수성, 남을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진실성이야.』
『쳇! 셋 다 가지고 있다, 뭐.』
『가지고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부족하니까 그렇지.』
『하나도 안 부족해요. 그거 알아요? 나는 새 전자레인지를 주문했어요.』
뭐? 감수성, 남을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진실성이 부족하지 않아 새 전자레인지를 주문했어?
젠슨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소화불량에 걸렸다.
『아이고, 골치야. 부탁이다. 주석을 달아줘.』
『젠슨은 요리를 못 하니까요.』
『영문을 모르겠군. 내가 요리를 못 하는 거랑 네가 구입한 전자레인지는 서로 무슨 관계지?』
『나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거든요. 판매원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단추만 누르면 완벽한 그라텡을 만들어준대요.』
『이봐? 설명이 완전히 꼬이고 있잖아.』
『걱정 말아요. 나도 그라텡을 좋아해요.』
『네가 싫어하는 음식이 있음 가르쳐줘, 이 식충아. 그나저나 난 아직도 이해를 못 했다고.』
『오! 간단해요. 난 젠슨과 같이, 젠슨의 주방에서, 젠슨이 보는 앞에서 그 단추를 누르고 싶고, 블랙박스를 닮은 그것이 카다로그에 적힌 그대로 엄청난 성능을 발휘하는지를 알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주소는? 배달하는 사람에게 빨리 가르쳐줘야 할 거예요. 아님 가엾은 그 사람, 길바닥에서 무작정 하룻밤 자게 될 지도 몰라요.』
흥분한 젠슨은 목이 빨개지도록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인간아! 물건이 어디로 갈 지도 모르면서 덥썩 주문부터 했다는 거야?!』
『네. 왜냐면 나는 감수성이 뛰어나거든요.』
가끔 파달렉키 어쩌고가 지구인이 아니라 화성인이 아닌 건가 의심했던 젠슨은 이번 기회에 확신했다.
화성인 맞다. 의심하면 바보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