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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of interest (55)

A. 복도를 지나가던 시멘스키가 카터를 향하여 가볍게 눈인사를 해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건 그쪽도 마찬가지여서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서로 어깨를 스치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멘스키에게는 일행이 따로 있었다. 남자가 둘, 그리고 여성이 한 명이었다. 세 사람 모두 고위직 공무원 분위기가 풀풀 풍겼다.
「저 양반이 이곳엔 무슨 일이지.」
나중에 들었는데 속칭 데상트로 불리우던 인터넷 포르노 업자 하나가 구치소에서 돌발 폭력 사태에 휘말려 사망했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사고이고, 그 데상트라는 자가 일라이어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시멘스키는 일라이어스의 암살 지령이 어떻게 구치소 내부로 전달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데상트? 흠. 이름이 기억이 나. 그 친구를 음주운전으로 체포했던 적이 있었지? 자기.』
비디오 자료를 뒤적거리던 동료가 간덩이가 부어 아무렇지도 않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
『자기?』
급격한 온도 하강을 눈치 챈 쿠싱은 데스크에 한쪽 발을 걸친 난봉꾼 자세를 허겁지겁 바로잡았다. 졸음에 취해서 실수를 했다. 3시간 내내 비디오 판독만 했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쿠싱은 용서를 구하는 표정으로 카터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선 관대하지 않은 편이었고, 쿠싱은 방금 지탄을 받을 짓을 저질렀다는 자각이 있었다.
『어흠! 아무튼 이쪽은 건진게 없어.』
어색하게 헛기침을 해가며 쿠싱이 설명했다.
『동네 CCTV 카메라가 단체로 망가진 모양이야. 중요한 타이밍에 죄다 화질이 엉망이야. 이쪽 신호등 앞의 카메라는 노이즈가 없지만 대신 각도가 나빠. 판독이 힘들어.』
『그러니까 저격 장면이 나오는 카메라 녹화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건가요.』
『이런 경우는 생전 처음 봐. 45개 카메라를 확인했는데 하나같이 녹화가 되지 않았어. 솔직히 난 오싹한 기분이 들어.』
사람들이 지나간다. 평화로운 장면이다. 오전 8시 12분 30초. 시스템 에러로 인한 급격스런 노이즈. 12분 52초. 총격 사건 발생. 이후 4분간 데이터 복구 불가. 카메라는 혼란에 빠진 군중의 모습을 담는다.
『이래선 마치 카메라가 자기네들끼리 짜고 담합이라도 한 것 같잖아. 망할 놈의 무생물 주제에.』
짜증 섞인 욕설을 퍼붓던 쿠싱이 쥐고 있던 연필을 던졌다.

B.『어얼둬스로 가는 비행기 편을 알고 싶소.』
남자는 잘 나가는 사업가처럼 보였다. 눈매가 날카롭긴 했으나 호감형이었다.
항공사 직원은 어얼둬스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고「컴퓨터로 조회하여 알아보겠습니다.」상냥히 대답했다.
『아, 미안하오. 오르도스요. 미국에선 그렇게 발음을 하지.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 위치한 도시요. 몽골어로「궁의 수호막」이라는 의미지.』
『중국입니까.』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중국이오.』
『사업차 방문하시는 건가요.』
『아니오. 마누라 몰래 바람을 피러 가는 겁니다.』
모니터를 주시하며 마우스를 달각달각 클릭하던 항공사 직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한 걸 여쭤봤군요. 죄송하지만 직항 코스는 없습니다. 일단 베이징으로 가셔서...』
『베이징!』
존슨 클라이너는 속으로 총 여행 시간을 가늠해봤다. 아무리 빨라도 18시간도 더 넘게 걸리겠다. 그리고 경험상 2시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연착될 거다. 한숨이 푹푹 나온다.

C. 남자는 자신이 허공에서 날아온 총알에 귀를 잃어버린 피해자라고 밝혔다.
『당신의 이름이 해롤드인가요.』
『해롤드?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요. 내 이름은 해리 베커만이오.』
카터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다섯 명의 증인이「저 사람이 맞아요」일제히 합창을 했다는게 문제다.
얼굴 반을 붕대로 칭칭 감은 피해자는 성을 내며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려댔다.
『빨리 범인을 잡아주시오!』
당신을 부축하여 같이 현장으로부터 도망치려 한 남자는 누구였습니까, 라는 질문은 덕분에 흐지부지 사라졌다. 공식적으로 베커만은 자신을 도와주려한 남자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베커만은 개인적으로 진 빚이 많은 사내였다. 그런 배경 탓에 이후 조사는 개인 원한과 채무 쪽으로 치우쳤다.

D. 핀치는 잠에서 깨어났다.
솔직히 잠을 잤다는 인식은 없었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사이 제법 시간이 흘러갔고, 창밖은 어느새 어두웠다. 눈만 감고 있던게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지금 몇 시입니까.』
『22시 17분입니다. 좀 어때요? 핀치.』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리스는 물을 가져와 마시게 했다. 침 삼키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물을 억지게 마시게 해서 짜증이 치솟았다. 그러나 일단 한 모금의 물로 목을 축이자 갈증이 제법 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핀치는 고맙다는 시늉을 해보이고 빈 컵을 돌려주었다.

 
리스는 이불을 끌어당겨 목덜미 부근까지 잘 덮어주었다.
『생각 같아선 공복 상대로 있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리우 말로는 억지로 식사를 하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내일 아침까지는 더 자도록 해요. 아편 탓에 어지러울 거예요.』
『배는 고프지 않아요, 존. 당신이 식사를 권했다면 나는 정말 괴로웠을 겁니다. 그런데 잠을 잘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원래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선 잠을 이루지 못해요,』
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침대 모서리에 살짝 걸터앉았다.
『그치만 이곳은 익숙하지 않은 장소가 아니죠. 그죠?』
핀치는 그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두어 번 와봤을 뿐입니다.』
『그런 것 같았어요.』
『오해하지 말아요, 존. 나는 고용주로서 당신의 복지 환경에 신경을 쓴 겁니다. 나쁜 의도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보다 편안하게...』
약기운 탓도 있거니와 얼굴 반쪽을 붕대를 감아선 제대로 앞을 보기 힘들었다. 리스의 팔을 잡고 싶었을 뿐인데 손가락은 엉뚱한 허공을 훑었다.
그런 건가, 유령은 아무리 노력해도 잡을 수 없는 건가. 지친 마음에 쓸쓸한 감정이 끼어들었다.

『당신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해요.』
리스가 그의 손을 얼른 붙잡았다.
『아뇨. 솔직히 나는 매우 기뻤답니다. 그러니 사과하지 말아요.』
그의 손을 붙잡은 손아귀로 힘이 들어갔다.


갑자기 글썽글썽 눈물이 차올랐다.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당신이 무사히 살아 있어서 기쁩니다.
당신을 잃어버릴까봐 많이 무서웠어요.

『존?』
『잠시 이대로 손을 잡고 있어도 될까요.』
『괜찮습니다.』
『어디 멀리 가지 말아줘요.』
『나는 지금 당신 옆에 있습니다.』

핀치는 긴장을 풀며 잠을 청하기 위해 두 눈을 감았다.

Posted by 미야

2012/08/16 13:57 2012/08/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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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of interest (54)

실내등을 켜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현관문을 다급하게 노크했다.
톡, 톡도독, 톡.
매직미러에 눈을 대고 밖을 쳐다보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간 뇌가 날아가게 된다. 인기척을 내어 방안에 있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문짝에 대고 총을 쏘는 일은 제법 흔하다. 것보다는 장전된 권총을 든 채 측면에 바짝 붙은 자세로 거기 누구냐 물어보는게 더 좋다.
《나야, 존.》
리스는 재빨리 자물쇠를 돌려 문을 열고 상대방을 집안으로 들어오게끔 했다.

《연락을 받자마자 뛰어왔네. 환자는?》
《침대에.》
《침대? 저런. 의식이 없어?》
《그렇진 않아. 다만 편한 의자가 없어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남자는「의자가 없다」는 말에 콧잔등을 찌푸렸다. 머리는 짧게 잘랐고, 둥근 안경을 쓰고 있었다. 리스와 남자는 북경어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눈치다.
《네놈에게 없는게 의자 한 가지 뿐이겠냐. 으이그.》
《이쪽으로.》
《그럼 실례하겠수다.》

쇼크 상태이긴 해도 낯선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왔다는 인식은 할 수 있었다. 핀치는 긴장해서 침대에서 일어서려고 했고 - 기력이 모자라 그건 실패했다 - 여의치 않자 주먹을 쥔 두 손으로 방어하듯 가슴을 가렸다. 권투 선수의 자세라고 불리우는 동작이었다.
『이 사람은 리우라고 합니다. 당신을 도와줄 사람이에요.』
설명에도 불구하고 핀치는 드러난 적개심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의 도움은 필요가 없었다. 그저 죽일 듯이 노려보며 아픔을 참듯 짧게 숨을 토해냈을 뿐이었다.

리우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존, 통역을 해줘. 아저씨? 나는 가슴 큰 금발 여자가 취향이야. 댁처럼 나이든 영감은 트럭으로 줘도 싫어. 그러니 날 강간범 쳐다보듯 하지 말아줄래? 그렇게 쏘아보면 내가 막 몹쓸 짓을 하려고 그러는 것 같잖아.》
통역을 해달라고? 존은 부탁대로 영어로 그가 말한 내용을 옮겼다.
『지금부터 상처를 치료할 겁니다. 상당히 아플지도 몰라요.』
《아, 씨발. 그만 쳐다보고 눈 깔아.》
『다친 귀가 보이도록 고개를 돌려주세요.』
《마취는 못해. 대신 이따가 환으로 된 아편을 줄게.》
『진통제는 나중에 줄게요. 일단은 참아주세요.』
《그런데 존,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통역하고 있는 거 맞아?》
『맞아.』
핀치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리스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뭔가 좀 아니다 싶었지만 영어를 전혀 모르는 리우는 그런가보다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리우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소독된 일회용 장갑을 손에 끼었다.

《총탄은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때문에 스치기만 해도 귀가 뿌리째 뽑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돼. 가까이에서 맞은게 아니라서 고막은 날아가지 않았어. 청력엔 크게 문제 없을 거야. 눈알을 다치는 것과는 많이 다르지. 소리를 듣는 기관은 머리 안쪽에 들어가 있어서 귓바퀴가 찌그러진 정도로 못 듣게 되는 건 아니거든.》
핀치는 까무라칠 지경이었지만 리우는 무너진 귀를 잡아당겨 바느질로 찢어진 부분을 적당히 이어나갔다. 바늘이 살과 연골을 뚫자 눈을 질끈 감고 있었음에도 눈물이 흘러넘쳐 허벅지를 적셨다. 그래도 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으니 지독한 사람이다.
《허어! 그렇게 울 것 없어, 영감. 요즘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FDA에서 허가가 난 메드포어라는게 있어. 합성 인조 뼈야. 여기에 연골 일부를 떼어내어 D-나이프를 만들어. 영구적으로 변형이 되지 않고 모양도 아주 예쁘게 나와. 병신 되었다고 자책할 거 없다니까. 옳지... 그런데 붕대를 자를 가위가 없군. 어이, 존! 가위!》
『가위?』
《맙소사... 너네 집엔 의자는 물론이거나와 가위도 없는 거냐.》

여전히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지만 리스가 영어로 반문한「가위」라는 단어에 반응한 핀치는 손가락을 들어 찬장 서랍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두 번째 서랍 안쪽에 들어가 있어요, 존. 가져오세요.』
『어, 그게. 가위를 본 기억이 없는데...』
『거기에 있어요.』
좁은 집구석이다. 가구는 침대와 서랍장 하나, 냉장고와 식탁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살림살이는 더더욱 없어 데운 음식을 담을 접시 한 장이 절실한 판국이다. 그렇다고 생전 처음 집안에 들어온 사람이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다는 걸 한 눈에 꿰찰 정도는 아니다.
리스는 눈을 가늘게 떴고, 핀치가 지적한 서랍을 열었다. 가위는 정확히 그곳에 있었다.
『흠.』
복잡한 기분이었다.

《소독과 응급조치는 이것으로 끝. 상태를 조금 더 지켜봐야하긴 하겠지만.》
리우가 벗은 일회용 장갑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둥굴게 만 장갑은 완만한 호를 그리며 쓰레기통으로 빨려 들어갔다. 핀치는 의식이 날아갔는지 옆으로 누운 자세로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어쨌든 이 사람 귀는 성형이 필요할 거야. 상처가 아물면 전문가에게 보여.》
《고맙네, 리우.》
《고맙긴. 우리 금룡회는 자네에게 빚을 진게 있으니까.》
순간 리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꼈다.
《기왕 빚을 갚는 김에 더 크게 갚는 건 어때.》
《얼씨구?》
《가짜로 증언할 현장 목격자가 다섯 정도 필요해. 그리고 이 사람을 대신할 사람도.》
《뭐? 나더러 지금 귀가 날아간 사람을 가짜로 한 명 만들어 내라는 건가. 그건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게다가 대신하려면 백인이어야 하잖아. 왕 웨이 어르신의 이름으로 차이나타운을 뒤져 가짜 목격자 정도는 수백 명도 만들어줄 수 있지만...》
《추적할 수 없는 금괴 다섯 개.》
《오케이. 귀 날아간 백인을 데려다 주지.》
리우의 주름진 미간이「금괴」에 반응하여 반반해졌다.

Posted by 미야

2012/08/15 21:29 2012/08/1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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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of interest (53)

카터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경계하는 편이다.
「엄마는 아직도 군인 같아요. 정시 기상, 차렷, 경례, 물건은 각 맞춰서 제자리에.」
테일러는 자기 물건 정리를 만족스럽게 못하는 편이다. 기껏해야 색깔 빨래와 흰 빨래를 구분하여 내놓는게 전부다. 10대 청소년들 중에 누가 자기처럼 빨래를 구분할 줄 알겠느냐 본인은 자랑스러워하는 눈치지만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책상을 보면 울화가 치솟는다. 침대 시트는 늘 구겨져 있고, 초코바 봉지라던가 빈 음료수 깡통이 무슨 보물단지처럼 꼭꼭 숨겨져 있다. 방 청소는 내킬 적에 가끔씩 하는 눈치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지 않으면 아들 방에서 이상한 홀애비 냄새가 나기도 한다.
『이걸 확 체포할 수도 없고.』
카터는 두 팔을 벌렸다가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죄 지은 표정을 지은 아들은 눈치가 백단이어서 쏜살같이 도망치며 크게 외쳤다.
『프랭키랑 같이 학교에 갈 거니까 데려다주지 않으셔도 되요. 엄마, 사랑해~!!』
카터는 아들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따라서 귀신 소굴인 자녀의 방을 대신 청소하지도 않을 것이고, 넘치기 일보직전의 쓰레기통을 대신 비워주지도 않을 것이다.
『할머니와 같이 저녁 먹으렴. 엄마는 오늘 늦는다. 테일러!』
걸리면 제대로 훈계를 듣게 될 거라 생각하고 양손에 운동화를 쥔 채 현관문 밖으로 달아난 아들이 그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지는 미지수다. 아무튼 테일러는 학교로 향했고, 카터는 자동차 열쇠를 움켜쥐었다. 오늘 그녀는 출근이 늦었다. 그래봤자 퇴근한지 이제 겨우 7시간 지난 상황... 하늘에서 사건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있다. 지쳐서 몸이 문드러질 지경이다. 식욕마저 잃은 그녀는 아침 식사를 거르기로 결정했다.


『카터. 코드 434(*총격사건). 인원이 모자란다고 하니 지원 나가봐.』
『다른 사람은요.』
『라이오넬이 뻗었으니 핸더슨과 같이 나가 보게.』
경찰서 내부로 때 아닌 식중독이 유행하고 있다. 라이오넬 후스코도 그 희생자 중 하나다. 설사 증상이 심하고 배가 환장하게 아프다고 했다. 그는 병가 신청을 냈고 요청이 받아들여져 사흘간 자택에서 쉬고 있다.
글쎄다... 카터는 책상 위의 볼펜이나 스템플러 같은 문구류를 정돈하며 인상을 구겼다. 몸은 좀 어떠냐 안부 전화를 걸었을 적에 많이 나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하던 후스코의 목소리는 설사병 환자의 것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베이스로 묘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덕분에 육군 심문관 이력이 꿈틀거리며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
「이 남자는 지금 꾀병을 부리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모래 빛깔의 군복을 입은 또 한 명의 카터가 굳은 표정으로 경고했다.
라이오넬은 인사부다. 그는 부패한 경찰이다.
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좋지 않은 종류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핸더슨은 어디에 있나요.』
복잡한 생각은 나중으로 미루자. 카터는 억지로 웃었다.
『식사 중. 그 친구는 굴착기식 식사를 하니 뱃속으로 음식물을 처넣는데 시간도 얼마 안 걸릴게야. 현장에서 합류하도록.』
지시를 마친 부서장은 비만한 몸을 흔들며 다른 동료 형사를 향해 이리 가까이 오라는 손가락질을 했다. 카터는 이미 안중에도 없다는 투였다.

자동차 시동을 끄고 차 밖으로 내렸을 적에 핸더슨은 끄윽, 이러고 복잡한 표정으로 트림을 하고 있었다. 좋은 경찰이고, 모범적인 남편이자, 훌륭한 아버지였으나 그의 식사 습관은 야만인에 가까웠다. 그는 점보 사이즈 햄버거를 단 1분만에 먹어치운다. 그렇게 먹고 난 뒤에는 또 무식하게 트림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대단히 혐오스러워 한다는 걸 잘 알기에 주의는 하는 눈치다. 그치만 방구와 트림은 불가항력이었고, 핸더슨은 주먹으로 입가를 가린 채 급하게 삼킨 공기를 눈치껏 배출했다.
진짜지 때려주고 싶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핸더슨?』
『여~어, 어서 와요. 카터.』
핸더슨은 황급히 표정을 달리하고 유능한 경찰관 모습으로 돌아갔다. 키가 큰 흑인인 그는 구식 트위드 정장을 잘 차려 입어서 트림만 하지 않으면 풍채가 아주 보기 좋았다. 그리고 목소리도 아주 근사했다.
『신고가 빗발쳤어요. 지금은 목격자 진술을 받는 중입니다. 중구난방이지만 누군가 건물 꼭대기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고성능 라이플로 쐈어요.』
『에?! 저격?!』
『단 한 방, 퓨슝.』
핸더슨은 손가락으로 총잽이 흉내를 내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사람이 쓰러진 흔적은 안 보였다. 순찰 경관들이 보도블럭 위로 접근 금지선 테이프를 설치하고 있긴 했지만 주변엔 엠블런스도 보이지 않았고 검시관처럼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바람막이 점퍼 차림새의 감식 요원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구석구석 증거 사진을 찍어대는게 전부였다.

『라이플로 단 한 방 쏘긴 했는데 아무도 총에 맞지 않았다는 건가요.』
『아뇨. 피를 흘린 사람이 있었대요. 쓰러져 죽지는 않았고요. 실력이 똥이라서 빗맞은 거죠.』
『그 사람은 지금 어딨고요. 병원에?』
『에밀리 탄 양의 설명에 의하자면 - 저쪽에 보이는 큰 가방을 든 여자분입니다. 많이 놀란 상태지만 사건 묘사가 정확해요. 키가 큰 남자가 부축해서 사건 현장에서 재빨리 도망쳤답니다.』
『흠... 도심 한복판에서 갱들의 전쟁인가.』
『글쎄요, 카터. 총에 맞은 사람은 백인, 175cm 정도의 신장. 50대 후반. 깔끔한 옷차림에 안경을 쓰고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답니다. 변호사 분위기였다는군요. 늦게 출근하는 모습이었답니다. 그리고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었대요. 탄 양의 남동생이 소아마비라서 아무래도 그 사람이 다리를 절며 걷는 모습이 눈에 띄었답니다. 뒤따라온 사람도 백인. 키는 더 컸고, 마른 체격. 짧은 머리. 탄 양은 이 사람 얼굴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무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런데.』
여기까지 말한 핸더슨은 메모를 적은 수첩을 반으로 접었다.
『키 큰 남자가 피해자의 이름을 불렀답니다. 해롤드, 라고요.』

순간 카터의 눈이 확 벌어졌다.
『거짓말.』
『왜요, 짐작가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핸더슨의 질문에 그렇다 아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다만 카터는 땀이 찬 인중을 검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오전의 태양빛이 건물의 유리창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12/08/14 22:17 2012/08/1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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