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무게를 가진 망치를 찾아 자신을 향해 재빨리 휘둘러야만 했다. 맹세하거니와 그것이 그가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공구 상자 비슷하게 생긴 건 어디에도 없었고, 당연한 얘기로 딘은 스스로의 머리통을 박살낼 수가 없었다. 그는 낙담했다.
『딘? 자다 말고 갑자기 왜 그래.』
어리둥절해 하는 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굴러다니던 셔츠를 아무렇게나 끌어당겨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아이고, 예수님. 이로 씹히고 빨린 가슴을 어떻게든 가리고 봐야 했다. 그리고 딘은 그보다 곱의 곱절로 씹히고 빨린 샘의 가슴 역시 모자이크 시각 처리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거친 애무로 붉게 부어오른 가슴돌기로 시선이 흘러가자 시속 100㎞로 질주하는 자동차가 주유소를 정면으로 들이받은게 되어버렸다. 쉽게 말하자면 펑 소리를 내고 뇌로 불 붙었다.
멸망을 알리는 불꽃이 속수무책으로 하늘을 찔러대는 가운데 딘은 사람 살리라고 외쳤다.
『너도 나처럼 뭐라도 걸쳐. 당장!』
그나마 다행이었다. 절망에 사로잡힌 구조 요청을 귀담아 들은 샘은 상체를 구부려 파자마 바지부터 찾기 시작했다. 이걸로 한 시름 덜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 간밤에 전혀 다른 의도로 같은 동작을 했을 거라는 깨달음에 그조차 얼른 그만뒀지만, 아무튼 침대에서 단숨에 뛰어내려온 딘은 활활 타는 주유소는 나 몰라라 내버려두고 거실로 탈출했다.
난 안 본 거다. 하얀 엉덩이. 안 봤어. 그런 거 있었어? 끝내주는 하얀 엉덩이. 난 못 봤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그런데 거기에「끝내주는」이란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면 어쩌자는 거야!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견딜 수가 없어 창문을 벌컥 열고 외쳤다.
『이 빌어먹을 괴물아! 바꿔! 바꾸라고!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잭 팟을 터뜨리고, 양편으로 늘씬한 미녀 둘을 꿰차고선 VIP룸에서 으쌰으쌰!!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거야! 이런게 아니야~!!』
놀란 동네 똥개가 화답하여 컹컹 짖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3자의 입장에선 딘이 완전히 돌은 사람처럼 보였을 거다. 덩달아 맨발로 뛰쳐나온 샘은 어쩐지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딘이 보이고 있는 비이성적 행동에 대한 타당한 설명은 딱 하나였다. 바로 약에 취했다는 것, 그것도 대단히 해롭고, 부작용 또한 심각한 규제 약물 말이다.
『아냐, 임마! 내가 그런 거 싫어한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입김이 뿌옇게 나오는 2층 창가에서 몸을 떼어내고 강하게 부정했다.
『약 같은 건 안해. 내가 미쳤냐! 그런 걸 하게.』
『나도 알아, 딘.』
말로는 수긍하면서도 샘은 조심스럽게 딘을 주시했다. 그리고 이 정도면 도발하지 않겠다 싶은 선에서 가까이 접근하려 기를 썼다.
손바닥을 들어보이는 건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라는 제스츄어.
어이가 없어 눈알을 굴렸다.
『그거 알아? 여긴 2층이지만 거기서 뛰어내리면 상당히 아파, 딘. 무척 아프다고.』
『아이고, 혈압 오른다. 네 말인 즉, 내가 여기서 점프라도 할 것처럼 보인다는 거냐?! 앙?!』
『제발... 거기 서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줘. 내가 이렇게 애원할게. 응?』
『야! 나, 안 미쳤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 맛이 간 건 맞지. 남동생과 같은 침대에 누워 벌거벗고 뒹구는게 어디 정상이냐. 미친 놈의 대명사라던 네로 황제도 로마를 홀라당 불태웠을망정 남동생 엉덩이를 거시기로 마구 쑤시진 않았거든.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딘은 무엇으로 수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샘. 넌 들어가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도록 해라. 넌 잘못 없고, 잘못 되지도 않았어. 다 이 형님이 못난 탓이니까 내가 책임지고 알아서 정리할게.』
숨부터 돌리고 보자. 담배라도 태웠음 좋겠다. 입맛을 다시며 땀이 벤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그런데 이놈의 집구석에 담배가 과연 있으려나... 현실에서의 샘은 담배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환상 속의 샘도 똑같이 담배를 싫어할 수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대충 훑어본 협탁에는 재떨이처럼 생긴 것이 올라가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집안 서랍을 모조리 열어봐도 원하는 걸 찾아내기는 어려울 거라는 말씀.
답답한 마음에 날짜가 지난 신문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곳곳을 기웃거렸다.
허나 그런다고 없던 담배가 허공에서 쨘 하고 굴러 떨어질 리는 없었다.
좋아. 진정하는 거다, 딘 윈체스터. 담배가 없다면 그 다음엔 맥주가 있다. 설마하니 남자 둘이서 사는 집에 그 흔한 맥주 하나 없겠어? 냉장고를 열기만 하면 된다고. 가자! 주방으로!
결심하고 이쪽이겠다 싶은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다 기겁하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어느새 기척을 죽이고 가까이 다가온 샘이 냉큼 손목을 잡아챘고, 그 즉시 딘의 입에서는 생으로 털이 뽑히고 있는 오리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아이고, 아파!』
짓눌린 손목뼈가 똑 소리를 내며 부러지려 했다. 그래도 샘은 손아귀의 악력을 줄이지 않았다.
『아프다고 했잖아!』
동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것만이 최선이라며 딘을 와락 안았다.
처음에는 몸을 좌우로 비틀며 반항했다.
하지만 밀착된 가슴 저편으로부터 광란하며 질주하는 심장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딘은 그 즉시 샘을 뒤로 밀쳐내려던 걸 멈췄다. 쾅쾅거리며 혈관을 때리는 세찬 진동이 심상치 않았다. 해머로 벽을 때려도 이럴 수는 없다. 놀라서 눈을 크게 치켜떴다.
『어이, 어이. 너,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무서워서 졸도할 거 같아.』
『엇, 그럼 안되지.』
비록 현실이 아닐지언정 샘이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건 질색이었다. 딘은 울기 직전의 동생을 달래며 양팔을 위아래 방향으로 반복하여 문질렀다. 아, 이건 추워서 소름이 돋았을 적의 요령. 틀렸다는 걸 깨닫자 방법을 바꿔 등 한 가운데를 마사지했다. 어라, 이건 딸꾹질이 멈춰지지 않을 적의 요령. 그렇다면 기절 직전의 아이를 진정시키는 방법은 뭐지. 눈자위가 새빨갛게 된 동생을 소파로 인도하며 한참을 허둥거렸다.
『부기맨 없다, 부기맨은 없다... 그러니까 안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워.』
어렸을 적에 샘은 벽장 속에 사는 괴물을 끔찍이도 무서워했다. 부기맨이 잡으러 온다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코로 부드러운 살내움을 하나 가득 빨아들이며 딘은 그의 소중한 아기 형제를 다독거렸다.
『하나도 안 무섭네. 형이 있으니까 하나도 안 무섭네.』
보람이 있어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던 샘의 호흡은 서서히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잔뜩 찌푸려진 이마는 평평하게 펴질 생각이 좀처럼 없는 듯했다.
『딘.』
『응.』
『아까부터 쭉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형」이라는 말을 써?』
『그야 내가 네 형이니까.』
『누가.』
『내가.』
『딘이?』
이거 뭔가 이상하다. 어떻게 거기서 1초도 안 기다리고 반문이 나오냐.
딘은 콧잔등을 찡그리며 샘을 똑바로 응시했다.
『웃기는 자식. 그럼 넌 내가 네 삼촌이라고 생각해?』
『아니.』
샘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딘은 내 삼촌이 아니야. 그렇다고 내 형도 아니지. 이건... 맙소사, 진짜지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왜 갑자기 딘이 내 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에.』
『나, 딘의 동생 아니야.』
『에.』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죽어도 동생 같은 거 안해.』
『뭐시라.』
『난 딘의 애인이야. 그거 말고는 다른 거 절대 안해. 안 한다고.』
그는 창문을 벌컥 열고 다시 외쳤다.
《야, 이 나쁜 자식아~! 설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이래선 적응을 할 수가 없잖아~!》
쩌렁쩌렁 울리는 그 외침을 듣고 건너편 건물로 불이 켜졌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