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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오래 전에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빌딩이 주저앉고 도시에 사는 사람이 전부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사담 후세인의 계략이었거나 사악한 우주인의 침공 비슷한... 아무려먼 어떠랴. 딘은 줄거리 전부를 기억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 장면만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거리로 눈부신 섬광이 내려앉고, 핫도그를 맛있게 베어물던 택시기사는 입을 벌린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음속으로 질주하는 엄청난 폭풍이 그의 몸에서 살을 발라놓고, 해부학 실습실에 전시된 뼈 모형처럼 변한 남자는 0.3초가량 파란 인광을 뿜다가 이내 먼지 조각으로 바스라진다.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그 섬짓한 모습 중에서 유독히 딘의 공포심을 자극했던 건 다름아닌 택시기사의 안구였다. 살이 타고 머리로 불이 붙는 와중에 남자의 눈동자는 좌우로 움직여 자신의 흉측한 죽음을 정확히 인지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0.001초는 찰나에 불과했을지언정 남자의 눈동자는 사신이 휘둘러대는 낫에 제대로 반응했던 것이다.
알면서 죽어갔다... 딘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오랫동안 마음이 찝찝했다.
《그래, 말 그대로 눈 뜨고 그냥 당하는 거지.》
샘이 그의 손을 끌어당겨 입술로 가져갔다. 맛난 아이스크림을 핥듯이 손바닥을 정성스레 핥았다. 마침내 침으로 흥건해졌다 싶자 만족해하며 그걸 자신의 하복부로 데려가 이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그 위를 조용히 덮었다.
딘의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자신의 것 말고 다른 남자의 페니스를 쥐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흥분 상태의 - 외계인 광선이 우주선으로부터 발사되어 맨하탄 57번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 굵기도, 크기도 전부 생소했다.
『샘!』
『으응... 좋아.』
부르르 떠는 그 모습에 본능적인 저항감도 잊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지나치게 민감해져 있는 그것이 목소리에 반응하여 한층 더 단단해졌다. 이제 불타는 석탄을 손에 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닌게 아니라 손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고, 딘은 손가락이 열기에 녹아 고스란히 눌러붙은게 아닌지 걱정이었다.
《의사가 외과적 수술로만 떼어낼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하지.》
꿈틀거리는 페니스의 움직임에 짧게 숨을 들이켰다.
《미치겠네. 제발 빤히 쳐다보지 좀 마!》
전전긍긍해하며 떨어봤자 열과 마찰, 맥박치는 고동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 세게 만져봐. 어서.』
샘이 귓가에 대고 노골적으로 유혹했다.
『그건 딘의 거야.』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딘은 덩달아 흥분해버렸다. 포화가 빗발치는 전쟁터를 군인들이 뛰어갔다. 군화의 투박한 발소리를 닮은 박자로 심장이 마구 진동했다.
『그래, 이건 내 거야.』
미리 흘러나온 맑은 액이 손바닥을 적시는 걸 느끼며 위 아래로 쓸어내렸다. 초조하게 만드는 쾌감에 샘이 얼굴을 찌푸리며 체중을 어깨로 기대왔다. 차츰 빨라지는 손동작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달궈진 숨결이 목덜미를 간질이자 딘은 어쩐지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세게 쥐고 리듬에 맞춰 아까와는 달리 반대 방향으로 밀어넣자 샘이 헉 소리를 냈다.
『시, 싫어.』
입으로는 싫다고 했으면서 조르는 듯한 표정으로 더 매달려왔다. 딘은 이런저런 요구들을 짐짓 무시한 채 땀을 흘릴 지경이 된 샘을 그만의 방법으로 교묘히 몰아붙였다. 문지르고, 잡아당기고, 강약을 조절해서 쥐었다.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간 샘은 주저앉기 일보직전이었다.
『딘. 아까 그거... 그거...!!』
『쉬잇.』
샘은 입술을 꽉 다물었고, 가여울만큼 새빨개졌다.
『그치만... 딘, 딘!』
『팔을 내 어깨에 둘러. 너, 여기서 정신 놓으면 나 혼자선 못 일으켜 세워.』
『응.』
『정신 꽉 차리고 있어, 샘.』
『알았어. 노력은 할게.』
『노력만 하면 안돼. 이건 진짜야. 쓰러지면 냅두고 나 혼자 화장실에 갈 거야.』
『싫어, 싫어... 혼자 가면 안돼.』
금방에라도 울 것 같은 귀여운 목소리가 좋았다. 흐믓해져서 쪽 소리를 내고 입을 맞췄다. 아닌게 아니라 샘은 엉덩이를 옴짤거리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좋아해. 정말 좋아해, 딘.』
『나도 네가 좋아.』
『아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코맹맹이 소리가 살짝 목덜미를 덧그렸다.
『기억 나? 처음에 내가 죽을 용기를 내어 고백했을 적에... 딘이 그랬잖아.「미안하지만 넌 내 취향이 아니거든. 나는 덩치 커다란 알라스카 곰보단 금발의 글래머 미인이 좋아.」그 말을 듣고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단숨에 죽으려고 했었어. 왜냐면 나... 딘이 좋아하는 왕가슴도 안 달렸고, 엉덩이는 볼품 없고, 키만 크고, 쓸데없는 근육만 많아서... 이런 못 생긴 몸을 가진 나는 살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감정이 북받친 샘은 창피함도 잊고 콧물을 들이마셨다.
『내가 여자였음 좋았을텐데 바라고 또 바랐어. 그러면 불법으로 약을 먹여서라도 딘과 억지로 관계해서, 몇 번이고 하고 또 해서, 보란 듯이 임신해서, 당당히 딘의 아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허. 기가 막혀서. 그런다고 당당히 내 마누라가 될 수 있을 거 같냐.』
『딘은 의외로 상냥하니까... 필요도 없는 아기따윈 지우라고 윽박지르지 않을 거라 생각해. 대신 무뚝뚝하게 목덜미를 긁고는「할 수 없지. 이제부터 난 유부남이네. 좋은 시절은 다 갔어」투덜거렸을 걸.』
『나라면 물론 그랬겠... 잠깐!』
『딘의 아기, 갖고 싶었어.』
눈물로 젖은 뺨을 부비며 샘이 사과했다.
『미안해. 금발의 글래머가 아니라서.』
입술이 뺨을 지나 눈썹을 간질였다.
『그리고 고마워. 마음을 바꿔 이런 나를 좋아해줘서.』
커다란 아기 동생에게 정중히 끌어안겨 사과와 감사의 인사를 동시에 받았다. 샘은 다시 우는 소리를 냈고, 절정이 머지 않았음을 눈치챈 딘은 눈치껏 손바닥으로 끝부분을 감싸 분출되는 뜨거운 액체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샘...』
『좋아해, 딘.』
여운으로 남은 미약한 떨림 같은 건 발뒷꿈치로 밀어버리고 샘은 계속해서 몸을 밀착해왔다.
엉망진창이다. 손은 정액으로 끈적거리고, 샘은 딘의 손아귀로 시들어버린 페니스를 계속해서 찔러넣으려 들었다.
『부탁이야. 그러니까 계속 여기에 나랑 같이 있겠다고 말해줘.』
이곳에서 계속. 샘과 둘이서 사랑을 나눈다.
부릅떴다가 조용히 감았다.
광분하여 날뛰며《그럴게! 계속 너랑 이곳에 있을게!》라고 소리치는 딘이 가가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딘도 있었다. 두 명의 딘은 서로의 존재를 깨닫자마자 강한 눈빛으로 노려보았고, 기꺼이 무기를 들고 죽이려 들었다.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뼛속까지 추웠다. 이런 거지 같은 꿈이라니.
『딘?』
『분해.』
『뭐?』
『분하다고!』
혼자 절정에 이르렀다고 야단을 치는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샘은 허둥대며 코를 문질렀다.
『어. 미안. 나만 즐겨서. 내가 좀 둔해서... 기다려. 금방 기쁘게 해줄게.』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자세를 낮춘 샘은 딘의 하복부로 얼굴을 가져가려 했다.
『아냐, 샘. 그런게 아니야.』
딘은 샘이 바지 위로 키스하려던 걸 제지하고 얼른 밀쳐냈다.
『내가 분하다고 한 건... 그 때문이 아니야!』
깨달았다.
언젠가 그의 어머니가 기이한 죽음을 맞지 않고 계속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도 사실.
그렇다면.
머리를 앞뒤로 쓸어넘기며 신음했다.
지니가 만들어낸 이 거짓된 낙원 또한 마찬가지로 그가 내심 간절히 바란 것이다.
딘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발잔등만 쳐다봤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샘이 그의 기분을 물어왔다.
『딘?』
『안돼! 우린 이런 건 해선 안돼! 하면 안 된다고!』
『해도 돼. 우린 연인이니까.』
『아냐! 이 모든 건 죄다 거짓이고, 내가 몰래 꿈꾸던 어리석은 환상일 뿐이야. 죽었다 깨어나도 너는 내 동생이고... 제기랄! 돼지랑 말과 자도 괜찮아도 너랑은 섹스하면 안 된단 말이야!』
『동생이 아니야.』
『적당히 해! 그래, 내가 유죄다. 이렇게 증거까지 들이밀지 않아도 인정한다고! 네가 내 동생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했어. 나에게 반해서 자존심이고 뭐고 팽개치고 이제 가게 해달라 애원하는 바보 모습도 다 내가 멋대로 상상한 거야! 떠나지 말라고 부탁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나 혼자서만 가슴이 두근거리는게 아니면 좋겠다고... 그치만 이거 하나는 맹세할게, 샘. 그렇게 자주 생각하진 않았어. 하루에 한 번 정도... 아니, 딱 두 번 정도? 나, 그렇게 미친 놈은 아니야.』
한 번이나 두 번이나.
진짜 샘도 아닌데 여기서 구차하게 변명해봤자지.
이 마음을 들켜서.
엿 같이 조롱당하고.
분하다.
『지니... 이 똥 같은 새끼, 돌아가면 멱을 비틀어 버릴테니 각오하는게 좋을 걸.』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을 현실인양 꾸며 덫으로 내민다. 유혹이 너무 커서 알면서도 빠져버린다. 절대적으로 말하거니와, 빠진 쪽이 바보다.
거친 동작으로 눈가를 쓱쓱 닦았다.
간절히 원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닿을 수 없는 상대에게로 돌아가는 거다.
질끈 감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