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딘의 음주량이 곱절로 늘었다.
그래봤자 자기 앞가림은 분명하게 할 줄 아는데다, 사냥 일을 당장 망칠 정도로 절제를 못 하는 편은 아니라서 샘은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가끔은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편이라는게 필요했고, 알콜이라는 물질이 몸속에 들어가면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줄을 부드럽게 손봐준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고장이 안 나게 하려면 총기류도 가끔씩 나사를 풀고 분해해서 그 속을 닦아줘야 하는 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바짝 날이 선 상태로 독충이 우굴거리는 정글을 언제까지고 헤집기만 하면 금방 미쳐버린다. 때로는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나무 아래로 앉아 햇빛 찬란한 - 반라의 젊은 여자들이 꽃 목걸이를 걸어주며 알로하를 외치는 - 파라다이스를 꿈꿔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심신을 유지할 수 있다.
기껏해봐야 싸구려 술이고, 입간판으로 꾸며진 가짜 낙원이라고 할지언정.
샘은 억지로 누워 잠을 청해보기로 했다.
초자연적인 것들과 계속해서 싸워온 딘은 그곳에서 짧게나마 휴식을 취할 자격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파라다이스는 그럼 어디에? 휴식은 어떻게? 쉼을 얻을 자격은 과연 있기는 있나.
차분하게 손깍지를 한 자세로 천장을 응시했다. 짤각거리며 반복적인 소음을 자아내는 모텔의 벽걸이 시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험한 폭약 장치의 아찔함을 닮은 그 소리는 머리통을 삽으로 긁어대며 끝도 없는 잔념의 생산에 이바지했다.
견딜 수가 없게 된 샘은 두 귀를 막은 채 엎드려 코를 베개 위로 눌러댔다.
싫은 느낌.
숨이 막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반복하여 주문을 외웠다. 그만둬. 닥쳐. 사라져버려.
이불을 차고 벌떡 일어나 벽걸이 시계의 건전지를 빼놓는 건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그러나 곧 그것이 수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낙담했다. 시계 초침이 움직임을 멈추면 이번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를 고문하기 시작할 것이다. 신통치 않은 수도꼭지를 수건으로 틀어막는다? 다음으로는 바람에 달각달각 흔들리는 유리창을 총으로 쏘고? 관두자. 죽지 않은 세계는 어떤 식으로라도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그걸 멈추라고 요구하는 건 콘크리트 구조물인 자유의 여신상더러 대서양을 향해 열 발자국 걸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쪽에서 억지를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무거워지려 하지 않는 눈꺼풀을 감았다 도로 떴다.
작은 날벌레를 닮은 어둠이 방 건너편에서부터 살며시 떠올랐다 도로 가라앉았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온몸이 미치도록 가려워졌다.
마침내 샘은 겉옷을 쥐고 방문을 나섰다.
『뭐? 지금 나에게 아프가니스탄이 어디냐고 물었어? 몰라. 난들 아나. 아마도 남쪽이겠지!』
완전히 쩔어 맛이 간 털복숭이 사내가 킬킬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군인처럼 목덜미를 짧게 다듬은 바텐더가「지랄하지 말아라」는 의미로 손칼로 목을 쳤다. 그 동작은 이성을 잃은 원숭이에겐 술은 더 이상 팔지 않겠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 지미. 당신, 오늘 충분히 오버했다고.』
『허어~! 이거 왜 이러시나. 술 마실 돈은 아직 많아. 나, 부자야! 게다가 내 얘긴 안 끝났어. 빈 라덴? 확 불질러 죽여야지. 부시? 거꾸로 매달아 볼기짝을 때려야지. 클린턴은 오입질이나 하는 멍청이다. 그리고 난 외칠 거야. 안녕하쇼, 끝내주게 멋진 사모님.』
『지미!』
탁 소리를 내며 하얀색 행주가 튕겨올랐다.
이래서 술주정뱅이들은 끔찍스럽다. 바텐더에게 혹시 딘을 봤느냐 물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졸지에 힐러리 클린턴으로 착각당했다. 샘은 균형도 잘 잡지 못하는 털보를 피해 몸을 사리며 좁은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래봤자 코가 뒤틀리게끔 확 풍겨오는 악취는 피할 재간이 없어서 남이 게워놓은 토사물을 밟은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몸서리가 쳐진다. 더럽다. 샘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봐. 내가 뭘 어쨌다고 피해! 똥 밟았냐?! 나, 그렇게 나쁜 놈 아냐. 아니라고! 내가 욕을 했어, 떠밀기를 했어. 왜 범죄자 취급이야! 에이, 씨잉~!』
샘은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안 되는 불가사의한 미소를 지은 채 지미라는 이름의 사내를 무시했다.
『그래, 젊은 형씨에겐 뭘 드릴까.』
지친 인상의 바텐더가 마침내 고개를 들어 샘과 시선을 맞춰왔다.
『술은 필요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지금 샘에게 필요한 건 술이 아니라 입술을 델 만큼 뜨겁고 진한 커피였다. 뱃속에 화로가 들었다고 착각하게 될 만큼 아주 뜨겁게 덥힌 커피 말이다.
정중히 사과하며 손짓발짓을 섞어 가죽재킷을 걸친 딘의 인상착의를 상세히 설명했다.
『혹시 보셨어요?』
매상을 올려주지 않는다면 손님도 뭐도 아니다. 바텐더는 왕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눈치였다. 손가락으로 토닥토닥 테이블 바닥을 두드리는 동작엔 짜증이 넘실거렸다.
『아... 그 예쁘장하게 생긴 친구. 알지. 지금 안에서 한창 재미 보고 있을 걸.』
『어.』
『안젤라는 손이 빠르니까. 그치만 그 총각도 만만치 않게 빠르더군. 둘이서「하자」고 결정하는데 단 5분도 안 걸렸어. 내가 알기론 우리 가게 오픈하고 나서 신 기록이야.』
『어.』
『잘 됐네~ 당신 친구라고? 그럼 가서 우리 가게 화장실은 호텔이 아니라고 나 대신 얘기 좀 전해줘. 그리고 바닥에 쓰고 난 콘돔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하고. 아무튼 지긋지긋한 금요일이야. 헤이, 지미! 열쇠는 이리 내놔. 운전은 절대 안돼! 산드라를 생과부로 만들 작정이야?!』
이어지는 건 나발을 부는 소리와 원시인이 횟불을 켜고 둥둥둥 북을 치는 리듬 뿐이었다.
《아이, 거기... 좀 더... 응응... 좋아...》
안쪽에서 재주껏 걸어잠군 화장실에선 듣기 민망한 여자의 신음 소리가 노골적으로 흘러나왔다.
날아오는 공을 정면으로 세게 얻어맞은 감각이었다. 샘은 곧 얼굴이 누래졌다.
《아앙, 아앙...》
기겁을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른 술꾼들이 터질 듯한 방광을 처리하러 닥치기라도 하면 낭패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키는 건 어디까지나 샘이 아닌데도 심장이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쿵쾅거렸다. 이런 식으로 본능적 행태의 꼴사나움을 생중계 하다니, 취미가 고약스럽다.
- 제기랄, 딘. 이게 뭐냐고. 대로변에서 발정하고 여자 치마 들추는 것과 뭐가 달라
정신 사나운 음악 소리에 섞여 가까운 곳에서 발자국 기척이 들렸다.
흠칫 몸을 사린 샘은 마술이라도 써서 그 누구도 이리로 올 수 없게끔 콘크리트로 차단 벽을 쌓고 싶었다. 핵폭탄이 떨어져도 절대로 붕괴되지 않는 단단한 벽을 말이다.
《조, 좋아... 거기, 거기! 아흑, 아흑!》
처음, 중간, 나중으로 나눈다면 확실히 후반부다. 일을 치룬지 제법 되었는지 여자는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 흐느끼고, 울고, 까무라치고. 한층 격해지는 남자의 움직임에 맞춰 교성을 질러댔다.
샘은 갑자기 목 놓아 울고 싶어졌다.
《새, 새미잇~!!》
그리고 화장실 안에 들어간 남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짧게 외쳤다.
주먹을 불끈 쥐고 화장실 문을 쾅 하고 때렸다.
안에서 놀란 여자가 꺅 소리를 질렀다.
앞을 보지 않았다. 뒤도 보지 않았다. 샘은 눈을 감고 오로지 뛰었다.
사고라는 건 이미 불가능했다. 생각이라는 걸 멈추어야만 살 수 있었다.
뭐지. 나는 지금 화가 난 건가.
왜. 무엇 때문에. 분노한 건가.
입술을 마구 깨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흉한 마음이 송곳이 되어 등가죽을 꿰뚫었다.
이런 감정, 더럽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다.
- 내 이름을 불렀으면서! 그런데 어째서 그 순간 딘과 같이 있는 건 내가 아닌 거지?!
숨을 쉬기 위해 열심히 집중했다. 눈가에 차오른 물기를 제거하려 노력하며 눈꺼풀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하지만 두통이 너무 심해 그 단순한 동작조차 계속하기가 버거웠다. 세상의 모든 불면의 밤이 샘의 등짝에 매달려 무거운 추처럼 좌우로 흔들거렸다. 이가 시려왔고, 위가 조여왔다.
지난 20여년동안 그는 이렇게나 빨리 달려본 적이 없었다. 샘은 후욱 소리를 내며 어두운 공기를 한 웅큼이나 집어 삼켰다. 그 즉시 심한 어둠이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 나여야만 해. 오로지 나! 제기랄, 이름도 모를 그 여자가 아니라!
짧은 쉼을 얻을 수 있는 그만의 낙원.
어떻게든 간절히 붙잡고 싶어 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바로 그 순간, 샘은 자신이 지금 엎드려 누운 상태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초침 소리에 취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옆 침대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