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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one for night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redemption 이야기가 도중에 엉성하게 끝나버렸다며 옆구리 찔림을 무지하게 당한 관계상 추가분으로 나갑니다. 배경은 여전히 2006년입니다. 현대물에는 쥐약이오니「이건 아니잖아」할지라도 살짝 넘어가주는 당신의 멋진 센스를 보여주세요. ※


저기요, 제가 이래뵈도 살인 용의자로 수배되었거들랑요.
그래서 남들 이목이 집중되는 건 하나도 반갑지 않지라.

한 명은 쭈구렁바가지 흑인 할머니로 기관지가 닳은 기침을 터뜨리며 갖고 있던 나무 지팡이를 신경질적으로 들었다 놓았다 했다. 척 봐도 심상치 않은 가래 끓는 기침을 하고 있으니 환자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단순히 야간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기엔 병원 비상구 쪽을 힐끔거리는 눈매가 지나치게 날카롭다는 문제가 있다. 어찌나 매섭게 비상구 쪽을 쳐다보던지 굵은 주사바늘을 들고 엉덩이를 위협하는 간호사로부터 재빨리 도주해야할 처지의 가여운 환자가 아닌가 의심이 갈 지경이다.
뭐,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 노인네 옆으로 앉은 청년은 짙은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흰둥이다. 할머니의 보호자라고 하기엔 아무래도 피부색이 적절하지 않았다. 손주, 조카, 질녀의 남자친구 등등의 가족 관계는 사실상 무리다.
그렇다면... 에이, 말을 말자. 뒷골목 건달들이나 입고 다닐 법한 오래된 가죽 재킷이 거동이 힘든 노인을 돕는 사회 복지국 직원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의료용 실로 바느질을 한 이마의 상처가「공무원」이미지와 100만년 정도 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새파랗게 변색된 턱 아랫부위의 멍자국이「복지」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러니 최소한 반 세기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이들 두 사람은 이도 저도 아닌 남남이 맞을 거다. 공통점이라고 해봤자 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 벽에 걸린 시계를 20분씩이나 열심히 보고 있는게 전부, 어쩌다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를 차지하였을 뿐인 남이다.
뭐? 틀렸다고? 아님 말고.

째깍 소리에 어쩐지 침이 말라간다. 남자 쪽이 부지런히 손바닥을 비볐다.
『미치겠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라바.』
딘은 무표정한 얼굴로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딱딱한 병원 의자가 불편해서 그렇다는 점은 둘째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조합이라는게 어찌나 이질적이던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안 빼놓고 그들을 힐끔거렸다. 게중엔 노골적으로 쳐다본다는게 큰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위 아래로 쳐다보는 인간들도 나왔다.
짐 크로우법 (흑인 차별법) - 흑인 할머니와 백인 청년은 같은 의자에 나란히 앉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딘은 지금이 2006년이 아니라 혹시 1956년인 건 아닌가 의심해가며 다리를 흔들었다. 정말로 그랬다간 큰일이다. 아직 암살당하지 않았을 - 1968년은 멀었으니까 -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거품을 물고「주여, 저 불손한 자들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내렸던 뜨거운 불벼락을 내리소서!」라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게 될 터인데, 그 기도에 응답할 하느님은 그 눈이 너무나 커서 사람 개개인을 잘 구분 못 하시는 관계로 광범위한 구역으로 엄청난 불똥을 쏟아부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얌전히 앉아 있을 뿐인데 잠시 뒤엔 신이 내리는 불벼락에 튀겨지게 생겼군.」
그렇게 생각한 딘은 만성 두통이 짜증난다는 식으로 고개를 숙인 채 손바닥으로 눈 아래를 가렸다.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사가 이상한 커플을 다 봤다는 식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나갔다. 구내 전화기를 들고 경비실로 연락해「이곳에 수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신고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안해져서 먹은 것이 없는 속이 울렁거리려 했다.

『이러고 있는지 벌써 20분이나 지났단 말예요.』
라바는 딘의 불평에 무어라 대꾸하는 대신 다시금 비상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쥐처럼 영리하고, 고양이처럼 교활한 눈빛이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토마스 영감이 아직 오케이 신호를 안 보내주고 있는 걸.』
『신호가 올 거라는 건 맞아요? 알고 보니 영감님이 천국으로 황급히 돌아갔다거나, 저승사자의 호출을 받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거나...』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연 안 되겠니, 얘야. 나도 짜증이 나는 건 마찬가지란다. 젠장, 담배 한대 피울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군. 어째서 병원 건물에선 흡연 금지라는 거야! 빌어먹을 것들.』
『사탕 하나 드릴까요.』
『아니. 괜찮다. 이럴 줄 알고 니코틴 패치를 팔뚝에 붙이고 나왔거든.』
『그렇다면서 빈 손가락을 쪽쪽 빨며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요?』
『시끄럿!』
『저기요? 나에게 화낼 기운이 있으면 토마스 스테이플러 할아버지에게 영험한 전자파나 쏘아보내쇼. 이제 25분 지났거든요. 정말로 그 영감님이 신호를 보내긴 보내준대요?』

다시 째각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였다.
그 소리가 시한 폭탄이라도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딘은 병원 로비에서 주워온 오래된 잡지를 - 순전히 건성으로 - 팔랑거렸다. 조류에 휩쓸려 실종된 스쿠버 다이버가 무려 27시간 30분동안 허우적거린 끝에 해변으로 올라왔다는 기사가 눈에 밟혔다. 그거 참 고생 꽤나 했수다. 딘은 내키지 않은 글자들을 휙휙 넘기고 쭉쭉빵빵의 누나들을 찾았다. 이야, 이거 괜찮다. 기대하던 여자 가슴 사진이 나왔다. 전구에 불이 반짝 들어왔다. 그런데 제목이「보다 간편한 유방암 검사법」이다. 뭐 이런게 다 있어. 1초도 지나지 않아 필라멘트 전구가 다시 꺼졌다. 병들고 아픈 가슴이 아니라 건강하고 통통한 젖가슴을 보여달라. 쓴 웃음을 지으며 다시 페이지를 넘겨 반라의 여자들이 나오는 화장품 광고와 속옷 광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여간 남자들이라니. 라바는 잡아먹을 눈빛을 하고 지팡이로 딘의 발잔등을 찍었다.
무지하게 아팠음이다. 딘은 오른발을 움켜쥐고 신음소리를 토했다.
『컁...! 갑자기 왜 이래요?!』
『점잖치 못한 녀석! 목덜미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묻히고 나온 주제에 속옷 광고를 보고 뜨거운 콧김을 뿜어?! 겁 대가리 없이 85B컵 브래지어를 손에 쥐고 무덤에 들어갈 놈 같으니!』
『에?! 여자의 머리카락이라뇨.』
『놀란 척하긴. 증거물을 눈앞으로 들이밀어야 마지 못해 인정할 거냐? 옛다, 이 칠푼아. 짧은 머리가 네 취향이었구나.』
그러면서 라바는 딘의 셔츠 깃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머리카락 하나를 잽싸게 집어올렸다.

갈색에 가까운 금발. 살짝 컬이 져서 구불거린다. 길이는 대단히 짧아 한 뼘도 채 되지 않았다.
딘은「이게 뭐야」라며 눈썹을 찡그렸다. 진짜로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머리카락이 다른 곳도 아닌 목깃에 붙어 있었다는 거냐. 우와, 그게 사실이라면 진짜 짜증난다. 같이 자지도 않은 창녀의 머리카락이 옮겨 붙은 거라면 정말로 심각하다. 거미가 기어다니게 생긴 싸구려 모텔에서 잠을 청했다고 해도 그렇지, 먼젓번 손님의 머리카락조차 쓸어내지 않았다면 더 심한 것도 잔뜩 굴러다닌다는 얘기가 된다. 청결이나 위생에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 몸이라고 해도 충분히 소름 돋는 일이었다.
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침대 밑에서 쓰다 버린 콘돔을 찾아내기라도 하는 날엔 벽에다 모두 열 두발의 총질을 해버릴테다.

그런데 잠깐만. 아무리 봐도 이거, 여자의 것이라고 하기엔 무지하게 짧다.
『남자... 거네요.』
『에?』
이번엔 라바가 뒤집어졌다.
『남자?! 나암자~?! 허어억! 설마, 너?!』
『워워, 진정하세요, 할머니. 그러다 틀니 튀어나오겠수. 아무렴, 게이도 아닌데 내가 뜬금없이 남자랑 잤을 거 갔...』
거기까지 말한 딘은 진실이 뭔지를 깨닫고 즉각 입을 다물었다.
맙소사. 따지고 보면 남자랑 잔게 맞다. 동생의 염색체는 XX가 아니라 XY니까. 하늘에 맹세코 부끄러운 짓은 요~만큼도 하지 않았지만, 한 침대에 누워 이불 하나 덮고 잤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웃던 걸 멈추고 획 소리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맞춰오는 라바 역시 냉기 폴폴 날리는 냉동고 고드름이었다.
고드름은 팔을 뻗어 말썽쟁이의 잘난 머리통을 쥐어패려고 했다.
『이 녀석, 이 녀석!! 여기가 쾌락의 도시 라스베가스라고 정신이 헤이해져서 사고를 친 거냐?!』
『우왓?! 아녜요, 아니라고요. 어흠! 이거, 동생 새미의 머리카락이예요. 라바도 저번에 봤었죠? 곰처럼 덩치 커다란 녀석 말예요.』
『설명 안 해도 알아. 내가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인줄 아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샘의 머리카락이 거기에 왜 붙니.』
그런 곳에 머리카락이 붙으려면 상당한 신체적 접촉이 우선되어야 한다. 오늘 그가 동생의 옷을 빌려 입었다고 한다면야 설명은 제법 간단해지지만, 두 사람의 체격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적었다.

딘이 팔을 벌리며「그딴 식으로 오해받는 건 억울해」타령을 했다.
『그야 녀석이 갑자기 다섯 살짜리 골칫덩이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열이 40℃ 가까이 펄펄 끓어선《엄마, 안아줘. 형아, 가지마》이러면서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 바람에 조금 고생이라는 것을... 아,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바. 샘은 이제 다 나았어요. 오늘 아침에도 해열제를 숟가락으로 직접 먹여주려던 저에게《징그러우니까 당장 떨어져!》라고 고함을 질렀답니다. 그리고《어째서 킹 사이즈 베드 하나에 둘이 나란히 누워있는 거야?》라며 제 모가지를 움켜잡았죠. 하여간 자랑스런 통뼈라니까요. 언제 아팠느냐며 도로 튼튼해졌어요. 그러니 제 동생에 대해선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그제야 라바는 딘에게 동생의 안부를 전혀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수치스러워 노인의 뺨이 새빨갛게 되었다. 죽은 사람의 영기에 닿아 살짝 머리가 돌았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체스터 문제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네 동생은 이제 괜찮니?》라고 단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다.
제 코가 석자라는 말이 있다. 그래도 이렇게나 사람이 뻔뻔해질 수 있는 거였나.
당황하여 노인은 말을 더듬었다.
『나, 나는... 그러니까...』
『아, 이제 30분이 다 되어가네요.』
딘은 별 상관 없다며 동생의 머리카락을 바닥에 버리는 대신 셔츠 호주머니 속으로 잘 집어넣었다.

어차피 동생 말고는 모두가 남.
아픈 건 다 나았느냐 진작에 물어봐주지 않았다고 왜 화를 내야만 하나.
이 넓고 넓은 세상에 가족은 오로지 단 두 사람만 남아서...
괜찮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니까 아직은 살아갈 수 있다.
딘은 돌돌 말아 쥐고 있던 잡지책으로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어디 보자. 탈모로 고생하는 남성들의 눈이 번쩍 뜨일 법한 획기적인 정보가 나왔다고 한다. 음, 대머리여 안녕. 기사 내용을 고스란히 외워두었다가 돌아가서 샘에게 알려주면 분명히 멋질 것이다.

『정말 미안하구나, 얘야.』
『에? 뭐가요.』
어리둥절해 하는 딘의 반응에 라바는 조금 놀랐다.「왜 이 사람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지?」라며 긴장하고 있다. 그래서 라바는 깨달았다. 이 아이는 사람이 무안해질까봐 단순히 겉치례로「우리들 형제에게 신경 안 써주셔도 됩니다」라고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심이었고, 그에겐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도와달라 손 내밀지 않을 것이다.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어도 잡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며 있지도 않은 실력으로 설쳐대는 주제에.
자기들 문제엔 신경 끄라며 두께 20미터의 콘크리트로 벽을 쌓고 있다.
진짜지 지랄 맞은 아이들이다.

노인은 가슴으로 불이 치솟는 걸 느끼며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딩딩.』
『왜요, 할머니. 아까부터 사람 불안하게 자꾸 눈을 야리고.』
『후우. 이걸 어쩐다. 잔소리를 한다고 들을 귓구녕도 아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어나서 움직이자. 토마스 영감이 손짓하면서 우릴 찾고 있으니까 내 가방을 챙겨서 날 따라오렴. 3층으로 올라가자.』

그들이 비상구 쪽으로 이동하자마자 전등이 깜빡깜빡 움직였다. 환상적인 효과다. 덕분에 빳빳하게 굳은 시체와 악수라도 한 기분이 들었다. 섬짓해진 어깨를 부르르 떨며 난간을 잡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이 탓에 근력이 부족한데다 지팡이까지 지참한 라바는 한참 뒤에서 어기어차 소리를 내며 어렵게 뒤따라왔다.
힘을 내라는 의미인가, 전등의 깜빡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닥쳐, 영감!』
아닌게 아니라 어깨 높이까지 차오른 숨을 씩씩거리며 어렵게 삼키던 라바가 불평을 퍼부어댔다. 카바레 조명등처럼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조명 탓에 눈앞이 뱅뱅 도는게 더욱 심해졌다. 인기척 없는 비상 계단에서의 우웩, 헉구역질 소리는 엄청 큰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평범한 보통 사람의 눈을 가진지라 라바와는 다르게 죽은 사람을 볼 수 없는 딘은 어디를 보고「전등을 갖고 하는 장난은 제발 그만두세요」를 애원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라바의 구토가 더욱 심해진다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안아들고 위로 올라가야 한다. 체격적으론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라바는 말랐는데다 몸집도 어린애처럼 작았다. 단, 할멈의 그 알량한 자존심이 큰 문제였다. 송장 취급은 싫다 - 그녀의 성격이라면 흰둥이 애송이 놈이 어부바를 외치며 등을 돌리는 순간, 이때다 하고 지팡이를 휘둘러댈 것이 분명했다. 노파가 휘두른 지팡이에 이미 맞아본 역사가 있는 딘은 6년 전의 실수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라바가 에베레스트산을 정복 중인 산악인의 역경을 흉내내는 걸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라바.』
『다 올라왔어, 다 올라왔다고! 제기랄, 200달러 받은 것만큼 일 하기 진짜 힘드네.』
다행이었다. 씩씩거리는 노인의 손이 마침내 3층 출입구에 닿았다. 암스트롱이 달에다 착륙 깃발을 꽂았다.

병원이라는 건 어디를 가든 대략적으로 비슷비슷하다. 토끼굴처럼 복잡하고, 다람쥐의 도토리 창고처럼 정신 사납다. 지나가는 사람도 많고 시선도 많다. 비상 출입구에서 튕겨나오기 전, 딘은 숨을 죽이고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복도 중앙을 차지한 간호사들의 데스크는 번쩍거리는 분위기의 아래층과는 달리 보다 현실적이었다. 절전 중인 컴퓨터 모니터가 시커먼 화면을 드러내고 있었고, 뒤로는 챠트를 든 수 간호사가 볼펜을 입에 문 모습으로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호출을 받았는지 의사 가운을 입은 젊은 남자가 총총 걸음으로 뛰어갔다. 옳커니, 지금이다. 라바가 아무도 없는 복도 구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인 토마스 영감으로부터「진격!」싸인을 들은 모양이다. 좌우를 두리번거리지도 않는다. 믿음으로 아멘이다. 머뭇거림 없이 312호실을 향해 지팡이를 놀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런 라바와는 대조적으로 딘은 꼬리가 잘려나간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저편으로 베버리 홀리가 남동생 부부와 심각한 모습으로 잡담을 나누는게 눈에 보였다. 서둘러 고개를 돌려 벽을 쳐다보며 라바의 뒤를 따라갔다. 베버리 홀리와는 이미 안면이 있는 처지다. 행여라도 마주치는 날엔「어머, 이게 누구야~」라는 즐거운 인사를 나누게 되는 수준으론 절대로 안 끝난다.
청소부인 것이 확실한 덩치 큰 흑인이 운반대를 밀고 T자형으로 꺽어진 복도 저편을 지나갔다.
흠칫해서 제자리에 멈추어섰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라바가 그런 딘을 손짓으로 재촉하며 도둑이 개 꾸짖듯 했다.
『서둘러! 우리에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어!』
뺨이 푹 꺼진 모양새의 체스터는 2인실 병동에 저 혼자 누워있었다. 여전히 창백한게 많이 아파 보인다. 저 사람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딘은 그저 황송하기만 했다.
『됐다! 딩딩은 가방에서 도구를 꺼내라. 영감은 밖에서 단단히 망 보고 있으쇼.』
병실 문을 찰칵 소리내어 닫음과 동시에 라바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체 데올레, 치치, 루에아스 데 모주바!』
그게 어느 나라 말인지 딘은 모른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그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마담 라바 본인도 모른다.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다시 그 딸이 딸에게로 전수한 비밀의 주문이다. 먼 옛날 아프리카의 주술사들이 사자의 발톱에 할퀴어진 전사들의 영혼을 그 몸뚱이에 도로 붙들어 놓고자 읊어대었던 힘 있는 말이라고 한다. 물론 사실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다. 어쩌면 변비에 좋은 치료 말이 혼란 중에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다. 정말로 그런 거라면 눈물 빠지는 일이긴 하다. 그러니 믿는 바 그대로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한 고결한 주문일 거라고 넘기자.
『첫 번째 거울을 침대 밑으로.』
신호를 받고 재빨리 가방 속 물건을 꺼내 침대 아래로 집어넣었다.
『두 번째 거울은 체스터의 얼굴 앞으로.』
네모난 손거울을 평평하게 들고 잠에 빠져든 환자 앞으로 가서 섰다.
『폼바지라 다스, 토그마토 지 초초!』
다시 주문을 외우며 어쩐지 똥 냄새를 풍기는 붉은 연고를 체스터의 이마에 찍어 발랐다.
주사를 놓으러 방으로 들아온 간호사가 에그머니나 비명을 질러대고 서둘러 창문을 여는 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세우만토 페 데올레, 품파지라 모토!』
기도에 반응, 순간 체스터가 후우... 하고 제법 긴 호흡을 토해내었다.
어쩐지 계란 썩은 냄새가 나는 호흡이었다. 거울을 들고 옆에서 보조 역을 자처하던 딘은 어이쿠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 방귀 냄새가 차라리 달콤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바는 눈썹 하나 꿈쩍이지 않았다.
아니, 멀리 달아나기는커녕 오히려 체스터에게 고개를 숙여 귓가에 입술을 바싹 가져갔다.

『나는 네가 200달러를 주며 부탁한 것에 대하여 답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야.』
그리고는 비쩍 마른 손으로 체스터의 가슴을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네 할애비로부터의 전언이다. 잘 귀 기울여 들으렴. 늦게 알려주게 되어서 정말 미안하다. 네 진짜 엄마에 대한 걸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야. 우린 네가 상처받는 걸 보기가 무서웠단다. 하지만 그렇게나 원한다면 지금껏 감추어왔던 비밀을 알려주마. 단, 후회하지 않겠다고 말해주렴.』
체스터가 퉁퉁 부운 눈을 어렵게 치켜떴다.
『후...회하지 않아요, 할아버지.』
『알았다. 비밀을 말해주마. 네 엄마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스낵바를...』
이야기를 전하는 라바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반대로 어린애가 내는 듯한 체스터의 가느다란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딘은 아찔해졌다.
이것은, 이것은... 병원에서 존이 자신에게 비밀을 말해주었을 때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동생을 지켜주어라.」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도 엿들어선 안 된다며 매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만약 지킬 수 없게 된다면...」
입술만 움직이는 건 아닐까 싶도록 작은 목소리였다.
「동생을 네 손으로 죽이거라.」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체스터가 그들을 쳐다보았다.
안타깝게도 그가 원하는 자비를 내려줄 수 있는 자는 라바나 딘이 아닌, 오로지 하느님 뿐이었다.
딘은 들고 있던 손거울을 내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구원에서 멀어졌음을 깨달은 체스터 스테이플러가 숨 죽여 흐느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쩐지 불만인 듯한 얼굴이구나, 딩딩.』
『그럴지도.』
『왜. 그 아이에게 끝까지 비밀을 지켰어야 옳았다고 생각하니?』
『때로는 진실이라는게 더 나쁠 때가 있어요. 체스터를 봐요. 자기 엄마가 아무에게나 몸을 팔던 술집 창부라는 걸 알아버렸잖아요. 나아가 미군의 사생아로 태어난 자기 아이를 다시는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까지요. 태평양 전쟁 시절의 살육 행위를 속죄한답시고 덜컥 입양해서 키웠다는 것까지 뭐 하나 대단한 거 없네요. 200달러를 내고 자신이 알아낸 진실이 뭔지를 봐요. 똥 같잖아요. 이건 형편 없다고요.』
병원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담배에 불부터 붙이던 라바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담뱃불은 흡사 반딧불처럼 반짝였다.
『진실은... 원래 그런 거란다. 꿈처럼 달콤한 건 오로지 거짓 뿐이지.』
딘의 눈이 칼날처럼 가늘어졌다. 뜻을 알 길이 없는 불편한 미소를 띄우고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라바는 담배를 하늘 높이 튕겼고, 다시금 반딧불의 불꽃이 반짝였다.

『이제... 가야지?』
『갈 거예요, 라바.』
『오늘 같이 와주어서 고마웠다.』
『별 말씀을.』

라바는 어둠 속을 걸어가는 딘의 등을 묵묵히 쳐다보기만 했다.
단 한 번도 뒤돌아보는 법 없이, 그녀가 애뜻하다 생각하는 어린 흰둥이는 사람과, 자동차와, 이질적 어둠에 먹혀 순식간에 그 형체조차 없어졌다.

우주의 절대 온도에 가까운 신이여, 36.5℃의 체온을 가진 우리들 인간들과는 멀어도 너무나 먼 당신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신이여!

어쩐지 그게 슬퍼져 라바는 사막으로 올 리 없는 눈을 찾으며 천천층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Posted by 미야

2007/02/04 19:22 2007/02/0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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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양

손안의책 블로그에 놀러갈 때마다 매번 열어보며 웃어버리곤 하는 나방양 사진.

사실 지금의 내 얼굴이 딱 저렇다.
어제 너무 놀았나 보다. 어지럽구낭. 지끈거리는 머리는 그렇다치고 다메한 이 삭신 통증들은 다 무엇이다냥. 날씨도 그렇고 우중충하니 아무 것도 하기 싫다. 빨리 퇴근시켜줘어어~

- 사무실에서 부지런히 딴짓 중 -

PS : 내가 원하는 건 딘이 도망가고 샘이 잡으러 가는 거다. 샘이 없어지면 맨날 딘만 눈 벌개져서 찾으러 다녀... 씨잉.

Posted by 미야

2007/02/03 09:30 2007/02/0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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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redemption 13

※ 딘 윈체스터의 곰 덩치 동생 돌보기 프로젝트,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이후 내용은 judgment로 곧장 이어집니다. 슬레이어즈 팬픽 쓰던 버릇이 여기서도 고스란히 나오네요. 줄줄, 끊어질락 말락 비엔나 소시지... 켕. ※


익숙한 헤비매탈의 전자 기타 멜로디가 오늘따라「요단강 건너서 얼굴 좀 봅시다」장송곡 가락으로 들리는 건 순전히 기분 탓이다. 아니, 어쩌면 현실일지도.
딘은 땅이 꺼져라 한숨부터 쉬고 보았다. 마음 같아선「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결번이오니, 확인하시고 이쪽으론 다신 연락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친절한 전화 서비스의 안내 문구를 흉내내고 싶었다. 물론 상대방이 전혀 안 속아줄 거라는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서도.

《딩딩, 이 망할 자식아~!! @(!*#*!_~!!》
폴더를 열자마자 기다렸다며 터져나오는 우렁찬 할머니의 욕설에 핸드폰을 얼른 귓구멍에서 떼어내고 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눈을 질끈 감고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막았다.
그래봤자 마담 라바 애브리의 속사포 같은 욕설은 그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이쪽에서 듣던지 말던지 상관 없다는 식이다.「의자에 앉았다가 엉덩이에 난 종기가 터져 방석에 피바람을 일으킬 자식!」으로부터 시작하여「발가벗고 냉장고에 깔린 모습으로 일주일 뒤에 바퀴벌레랑 같이 세트로 발견될 놈!」까지, 내용도 다양하고 표현도 가지각색이다.
「고양이처럼 세수하고 세균 박멸했노라 우길 놈!」이라는 건 욕인지 아닌지 약간 헷갈린다.
「일주일 내내 셔츠도 안 갈아입는 놈!」라는 표현은 부정 못할 사실이니 감히 반박을 못 하겠고...
그래도「똥개랑 같이 유통기한 지난 햄버거를 놓고 싸워댈 자식아!」라는 말이 욕이라는 건 쬐끔 알겠다.

흘끔 눈꺼풀을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해봤다. 쉬지 않고 악담을 퍼부어 3분 4초가 지났다.
《일을 그따위로 하려면 당장 집어치워! 고향으로 내려가 차라리 동냥질을 하란 말이닷!》
 여기까지가 3분 12초.
마침내 라바는 참았던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길었던 여정에 쉼표를 찍었다.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딘은 재빨리 끼어들어 넙죽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라바. 안부 전화 고마웠습니다.』
《딩딩~!! (#&!(@#~!!》
괜한 짓거리였던 것 같다. 덕분에 예정에 없던 4분 16초짜리 욕설이 추가되었다.

딘은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주무르며 1년간 들을 욕말을 단 10분 내에 압축해서 한꺼번에 들어야 하는 자신의 팔자를 저주했다. 욕 먹을 짓을 저질렀다는 점에선 감히 불평해선 안 되는 거긴 하지만...「질펀한 염소똥을 헤어젤 대신 머리에 바르고 다닐 주변머리」운운엔 질려버렸다. 그래서 울컥했다.
『저기요, 라바. 전 귀찮아서 헤어젤 같은 건 안 쓰거든요?』
《목소리 낮게 내리까는 거 봐라. 그래서 뭐. 지금 나에게 신경질 부리겠다는 거야? 100년은 빨라! 이 무우를 깍뚝썰기한 놈아!》
무우를 깍뚝썰기를 하면 안 되는 거였던가. 그렇다면 채썰기는 괜찮다는 건지.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라바의 으르렁거림에 딘은 곱절의 피곤함을 느끼며 두툼한 반창고를 붙인 아픈 이마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애가 야구 배트 대용품으로 휘두른 권총에 얻어맞아 - 그것도 같은 자리를 연거푸 두 번이나 맞은 탓에 병원 응급실에서 무려 네 바늘이나 꿰맸다. 구멍이 뚫리지 않았으니 천만 다행 아니냐고? 그런 섭섭한 말은 말자. 골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아 지금도 눈앞이 어지럽다.
딘은 인상을 찡그리며 얼른 상처에서 손을 떼었다. 살짝 닿기만 했을 뿐이데 피멍이 든 자리가 오줌을 지리도록 쓰라렸다.

『아무튼 잘못했어요.』
《얼씨구! 이젠 우는 소리까지!》
『하.하.하. 그럼 웃을게요.』
《됐어! 억지 웃음도 징그럽다. 아무튼 이번에 너희들 두 사람, 전문가답지 않았어.》
 
그 점에 대해선 변명할 말이 없다. 그래서 딘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애꿎은 천장만 노려봤다.
사람을 제대로 구하기를 했나, 오쿠림바의 주문을 회수하기를 했나.
스코어로 따지자면 0점. 퍼펙트로 망한 게임이다.

『후우... 체스터는 어떻대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고 앉았냐! 머저리 같은 자식. 놀란 제 고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관들에게 발견된 이후부터 계속 병원 신세다. 전신 타박상에 갈비뼈 골절로 당분간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래서 말인데, 지금 꼭 할 말은 아닌 듯 하다만... 많이도 때렸더구나, 너희들.》
딘은 찔끔해서 숨을 삼켰다.
거듭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게 맞았거든요? 그냥 어깨동무하고 동점 처리 하도록 하죠.

라바는 혀를 끌끌 차며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경찰은 약물 중독을 의심하는 모양이야. 흰자위를 드러낸 채 칼을 휘둘렀다고 증언이 나왔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게다가 수류탄이 터지네, 철모가 날아가네, 눈 뜨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으니 점수가 팍팍 깎였지. 앞으로도 경찰 신세 제법 지게 생겼어. 덧붙여 약물 재활치료 센타에 강제 등록될 거야. 올해가 몇 년이냐는 의사의 질문에 체스터가 무어라 대답했는지 아니? 소화 17년이라고 하드라. 그걸 서기로 고치면 1942년이라나? 놀란 의사가 그럼 여기가 어딥니까, 하고 물었더니 연합군 포로 수용소라고 하면서 마구 울더래. 대마초 한 번 안 피워봤다고 주장해봤자 씨도 안 먹히게 된 거지.》
딘은 신음했다. 빙의되었을 적의 충격이 아무래도 기억의 혼란을 가져온 듯하다. 자신의 경험인지, 타인의 기억인지조차 구분을 못하는 걸 봐선 앞으로도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거다.
회복은 과연 될까. 그건 아무도 장담하지 못 한다. 최악의 경우엔 자신이 누구인지 평생 헷갈릴 거다. 맞지도 않은 헤로인 치료는 그렇다치고 이래저래 힘들겠다.

『끄응... 토마스 할아버진 뭐래요. 아직 거기에 있나요.』
《아니. 손주 상태를 살피러 진작에 떠나 지금은 이곳엔 없다. 아마도 그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여 돕고 있겠지. 가여운 양반! 죽어서도 쉴 짬이 없다니... 쯧. 아무튼 너희들에게 전언이다. 이를 갈며 나중에 어디 두고 보자고 하더라.》
큰일났다. 죽은 사람에게 원한을 샀다. 후환이 무서워서 이젠 함부로 죽지도 못 한다.
목소리만 들어도 불처럼 전화기를 노려보고 있을 마담 라바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딘은 화염이라도 튀어나오진 않을까 싶어 귓밥에서 핸드폰을 살짝 멀리했다.

《그래, 체스터는 그렇다고 하자. 아무튼 죽지는 않았으니까. 오쿠림바의 주문은 어떻게 된 거냐, 딩딩.》
딘은 적당한 단어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입술을 문질렀다.
그거요? 깔끔하게 망했죠. 오른쪽 손가락이 모두 여섯 개인 계집애가 갑자기 튀어나와선 우리들 눈앞에서 낼름 채갔답니다 - 라고는 입을 찢는다고 해도 말 못 하겠고.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여자가 들고 있던 총으로 실탄이 아닌 공포탄이 장전되어 있었다는 걸 진작에 알아차렸더라면 양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상대방은 키도 작은 어린애였다. 눈 딱 감고 주먹으로 때리곤「용서해, 난 신사가 아니거든」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팔을 길게 뻗어 총신으로 머리를 때리려고 들었을 때, 딘은 비로소 동생에게 신경을 쓰느라 자신의 주의력이 한참 흐트러졌음을 깨달았다.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몸으로 어쩜 그걸 까마득히 몰랐을 수가 있냐! 상처가 벌어지든 말든 벽에다 머리를 박고 싶어졌다.
공포탄에 쫄아 그 천하의 윈체스터가 꼼짝을 못 하다니. 완전히 바보 멍청이 짓을 했다.

『드릴 말이 없습니다.』
쓰러진 채 성경책에서 떨어진 낡은 종이를 손으로 쥐고 빼앗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봤다. 그러나 물체가 둘로 겹쳐서 보이는 판국에 손가락으로 힘이 들어갈 리 없었다. 여자는 다시금 권총을 휘둘러 딘의 머리를 때렸고, 그것으로 블랙 아웃 해버렸다.
오쿠림바의 주문은 하늘로 훨훨.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여자의 차가운 눈동자가 콜 투브- 유태식으로 안녕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꼭 쥐었던 손을 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놓아라 말아라 옥씬각씬 씨름하면서 종이의 일부가 찢어져 나갔다는 점이다. 더하여 천운이 따라주어 딘의 손아귀에 남은 일부분은 텅 비어 있는 공란이 아니었다.
《螢の息》
꼼꼼하고 예쁜 글씨체이다. 모르긴 해도 여성이 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걸 무어라 소리내어 읽으면 되는 건지 그는 모른다. 솔직히 딘의 지식으로는 이것이 어느 나라 글자인지조차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게 초밥을 먹는 사람들이 쓰는 글자라는 건가. 거꾸로 보이도록 종이를 들었다는 것도 모르고 딘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행인게 전부가 날아가진 않았어요, 라바.』
그렇고말고. 싸움은 이제부터다.
딘은 다시 주먹을 쥐었다. 두고 보라지, bitch! 다음에 만나면 눈물 쏙 빠지게 만들어주마.

설욕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던 것도 잠시, 갑자기 껴안아오는 힘에 떠밀려 벌러덩 쓰러졌다.
출렁이는 침대 쿠션이 무시무시하다. 딘의 안색이 당장 새파랗게 변했다.
『으앗?! 새, 새미잇!!』
오쿠림바가 다 뭐라냐. 마담 라바고, 체스터고, 육손의 여자고 순식간에 새카맣게 잊어먹었다.
『진정하자, 샘! 임마!』
곰에게 덮쳐졌다 - 그렇게밖엔 말 못 한다. 형의 팔과 다리가 제대로 붙어있는지를 확인하면서 그 커다란 손으로 피부를 더듬어댔다. 셔츠를 목 위로까지 들어올리고 뱃가죽을 눌러댔다. 맨 살에 닿는 동생의 뜨거운 호흡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엄마야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놈의 자식은 왜 이렇게 뜨겁느냔 말이다. 열에 들떠서 그렇다고 해도 이래선 불타는 석탄 더미에 깔린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진다. 망할. 젠장, 얼어죽을.

『배에 구멍 안 났어, 안 났다고! 형은 안 죽었다고 했지! 으...읏!』
손으로 만져선 영 만족이 되지 않는지 뺨을 가슴에 대고 살갗을 비벼댔다. 온기를, 체온을, 하다못해 위장에서 나는 꾸루룩 소리까지 들려달라고 요구하며 샘은 매달려왔다. 멀쩡하게 잘만 살아 있다고, 죽지 않았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못 믿는 눈치다. 울다가, 잠들었다가, 깨어나선 다시 울곤 했다. 그리고는 코를 문질러대며 자신의 형이라는 인간의 체취를 기를 쓰고 확인하려고 했다.
『형이... 나무 높이 올라가 있었어.』
『Shit! 이게 누굴 원숭이로 만들고 있어.』
『원숭이 아니니까 다신 나무에 올라가지 마. 안 올라갈거지? 그렇지?』
『안 올라갈게. 그러니까 제발 떨어져~!!』
너무 엉겨붙어서 숨 쉬기가 힘들었다. 체중이 90kg에 가까운 몸뚱이는 흉기나 다름 없다.
딘은 동생의 머리를 뒤로 밀치며 놀란 것이 분명한 마담 라바에게「잠시만요」라고 말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일단 이 망할 것부터 처치하도록 하자.

『딘... 죽지 마. 죽으면 안돼.』
『새미? 네 멋대로 날 죽였다가 살렸다가 막 해라?』
『유령... 아니지?』
『사람이다! 사람!』
『진짜로 딘이야? 정말로 살아 있는 거야? 만약 이게 꿈이면 난 어쩌지.』
『어쩌긴, 이대로 한대 맞자.』
『흐읏! 정말 딘이야...?』
『뚝 그쳐! 지겨워서... 또 우냐! 창피해서 이걸 그냥!!』

때리겠다고 윽박질러놓은 주제에 손가락을 내려 동생의 귓볼을 쓰다듬었다.
어렸을 적에도 이렇게 하면 동생은 곧 잠이 들곤 했었다. 샘은 귀를 만지는 걸 좋아한다.
가볍게 만지작대는 촉감에 크게 훌쩍이던 소리가 살짝 잦아들었다.
『하는 수 없지. 이리 와. 형이 안아줄테니 조금 더 자.』
『안 죽은 거지?』
『지금은 안 죽은게 맞는데 너 때문에 곧 죽겠다, 야.』
『미안... 미안... 그러니까 죽지 마.』
『닥치고 빨리 정상으로 돌아와라. 다섯 살짜리 애 보는 건 이제 그만 졸업하고 싶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형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민폐쟁이 동생은 또다시 잠으로 빠져들었다.

전화, 전화. 동생의 몸부림이 가라앉기가 무섭게 딘은 정색하고 핸드폰을 다시 귀로 가져갔다.
『라바?』
진작에 끊겨 뚜뚜 신호음만 들려왔다.

아아, 피곤하다.
낯 뜨거운 킹 사이즈 베드에 동생과 같이 나란히 누워 전화기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다 냅두고 도망이라도 가버릴까. 라스베가스까지 온 김에 카지노라도...
슬쩍 몸을 빼려 하자 눈치가 귀신인 동생이 으스러져라 껴안아오며 움직임을 원천봉쇄했다.
정신 나갔음에도 끝까지 용의주도한 놈.
투덜거리며 눈을 감았다.

『귓볼 만져줘... 형.』
『바랠 걸 바라세요.』
욕을 바가지로 퍼부으며, 동생이 원하는대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슬프다. 아기 요람 속으로 다 커다란 남자 둘이 들어가 참 잘 하는 짓이다.
한숨지으며 열에 들떠 손가락을 입에 문 동생의 등을 토닥거렸다.

Posted by 미야

2007/02/02 15:36 2007/02/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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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3 16:15 # M/D Reply Permalink

    이번편은 그야말로 모니터를 부여잡고 킹콩처럼 울부짖으며 봤답니다.. ㅠㅠ 으헝헝..
    정말이지 이런 샘딘 너무 귀엽잖아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샘은 딘에게 약간 냉정한 것이 사실이라 이렇게 격한(;;)애정표현을 하는 샘은 너무너무 기특하군요- 다음편이 무지 기다려집니다--^^

  2. 크림베리 2008/12/26 18:52 # M/D Reply Permalink

    꺄아아아~~샘 너무 귀여워요~~오오~ 어리광쟁이 샘이라니 ㅋㅋㅋ 2미터 거구의 샘이 딘한테 매달리는게 너무 웃기고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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