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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9 [S☆N-fanfic] judgment 02 by 미야

[S☆N-fanfic] judgment 02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이번 편에선 샘이 나오지 않으니까 글 쓰는 것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역시 두 사람은 같이 있어줘야만 해요. ※


생전 처음 만났음에도 10년지기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길거리 술집은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친 나그네에겐 일종의 오아시스다. 풍요로운 야자나무가 있고, 유목민의 노랫가락이 있고, 발효된 낙타의 젖이 있으며, 흥에 겨운 웃음소리가 있으니 진실로 낙원이다.
그래도 딘은 호주머니로 손을 넣은 채 같이 목을 축이자는 사내의 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하죠.』
『에이, 10분도 못 기다려주는 야박한 애인이라면 그냥 차버리라고. 다들 엉터리 같은 축구 본다고 호들갑이라 외로워 죽겠어. 잠시만 와서 우리랑 말 상대를 해줘요.』
『애인에게 전화하려는게 아녜요.』
『어, 그럼 마누라야? 아직 젊어 보이는 사람이 일찍도 장가들었군. 실례했수다. 그럼 당장 전화해야지. 모름지기 남자는 부인에겐 잘 해야 하거든. 동전은 있소? 뭐 하면 내가 빌려줄게요.』
딘은 멎적게 뺨을 긁었다. 누가 마누라냐. 동생이 알았다간 거품을 물고 기절하겠다.

『뭐? 마누라가 아니야?』
딘에게 줄 동전을 찾겠노라 주섬주섬 옷을 뒤지던 사내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가뜩이나 쌍커풀 짙은 눈이 앞으로 쏟아질 지경이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외모로 보자면 지중해쪽 출신이다. 체격이나 인상이 르네상스 시대의 매끈한 대리석 조각상을 많이 닮았다. 살짝 구부러진 매부리코가 매력적이다. 그런 남자가 혀를 끌끌 찼다.
『한심한 사람이군! 그럼 코가 꿰였다며 전화통만 쳐다보고 있을 까닭이 없잖소. 자, 이리 와서 편안하게 앉아요. 내가 맥주 한 병 쏠테니. 이보쇼, 주인장? 이 친구에게 나랑 똑같은 밀러라이트 주시게. 그리고 형씨는 얼굴 좀 펴요.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으려 한다고 오해하게 생겼잖소. 길게는 안 잡을테니 이리 와서 같이 마셔요. 딱 10분만! 응? 딱 10분만.』
그가 눈웃음을 치며「위하여! 주정뱅이들의 신 바커스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는 일부러 옆 의자의 쿠션을 손바닥으로 치며 어서 이곳에 앉으라 채근했다.
『빨리, 빨리!』
성격도 급하다. 못 말릴 사람이었다. 어린애처럼 박수까지 쳐가며 종용하는데 분위기로 보아 이젠 뒤로 뺄 수도 없게 되었다.

저편에서 한 테이블을 점령하고 앉은 축구광들의 웃음 섞인 함성 소리가 다시금 터져나왔다. 누가 골을 넣기라도 했나 보다. 구석에 앉은 노인이 셔츠를 벗어던지며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그게 꼭 코미디 드라마의 가식적인 웃음 효과처럼 보여 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말릴 사람들이다.
그 난리통에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 매력적인 여자가 재빠른 몸동작으로 성에가 낀 차가운 맥주를 가지고 달려나왔다. 시녀는 은쟁반에 세례자 요한의 목을 담아 살로메에게 바쳤다.
『IN VINO VERITAS!』
술 속에 진리 있소. 분봉왕 헤롯이 기뻐하며 외쳤다. 군중은 새롭게 환호했다.

상호가 찍힌 병 뚜껑만 봤음에도 입안으로 쌉쌀한 술 맛이 돌았겠다.., 머뭇거리던 딘은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공짜 맥주의 유혹에 굴복했다.「딱 10분만」이라는 말을 믿기로 하고 사내가 손바닥으로 가리킨 라운지 의자로 가서 살짝 엉덩이를 내렸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앓지도 않은 치질이 걱정되는게 뒷맛이 영 나빴다. 뭐랄까, 해고 예고 통지서를 받으러 사장님 앞에 앉은 평사원이 된 듯한 기분이다.
손목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이제 9시 18분이 되었다.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시간. 톱니바퀴가 살짝 어긋났다는 불길한 확신.

『어디서 오셨는가?』
뚜껑을 돌려 따면서 딘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했다.
『뉴올리언즈.』
『진짜로? 뉴올리언즈쪽 말투가 아닌데요.』
『거기서 그렇게 오래 살진 않았거든요. 직업상 여행을 자주 다녀야 해요.』
『호오, 그거 억세게 부럽수다. 여행을 자주 해야 하는 그 환상의 직업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형씨.』
『스포츠용품을 통신판매 합니다.』
검정 재킷의 남자가 자신의 콧망울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한쪽 눈썹을 살짝 비틀었다.
『에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좀 그럴 듯한 말로 둘러대슈.』
딘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티가 많이 납니까. 그럼 솔직히 말하죠. 성인용품을 팔아요, 저는.』
훤칠하니 생긴 남자가 푸웃,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배가 아프다며 몸을 구부리는데 그게 꼭 쇼트트랙 선수 안톤 오노가 보인 과장된 헐리우드식 액션 같아서 보는 입장에선 기분이 언짢았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배꼽을 쥐는 건 심했다.
『와하하~! 그건 좀 낫다. 이건 진짜요. 아까보단 나아요. 어차피 둘 다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점수를 주자면 전자는 25점, 후자는 71점. 나 말이지, 형씨가 쬐~끔 좋아졌소.』
이어「코가 비뚫어지게 마셔보자!」구호가 요란스럽게 합창되었다.

딘은 인상을 찡그리며 공짜 맥주를 천천히 기울였다. 어쩐지 상대하기가 싫어지려 했다. 이 남자는 호들갑스럽고, 시끄러웠으며, 천박했다. 면전에 대놓고「당신 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새빨간 거짓말이잖아」이라고 못을 박는 법이 어딨냐. 알면서도 속아주는게 주당들의 미덕이다.
『그럼 내가 뭘 하는 사람으로 보이나요.』
짜증이 살짝 섞인 딘의 질문에 남자가 눈 크게 뜨고 대답했다.
『난들 아나~ 여하간 댁이 최소한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요.』
젠장. 차라리 배불뚝이 아저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파도 타기」를 하는 편을 선택하는게 좋았을지도. 남자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음을 확신한 딘은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일행인 것이 분명한 여자가 쓰고 있던 모자의 챙을 짐짓 올렸다 내리며 미안하다 사과했다.
『이해해줘요. 지금 이 남자, 부인에게 버림을 받아서 화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랍니다. 평소에도 재수 없지만 덕분에 지금은 더 재수가 없어졌네요. 부인이 개인적인 용건이 있다면서 이 사람을 냅두고 혼자 뉴욕으로 떠났거든요. 그래서 짜증이 치솟아 어제부터 계속 이래요.』
여자가 하는 이야기를 엿들은 남자가 수탉이 홰치는 흉내를 내며 펄펄 뛰었다.
『그 입 다물라! 누가 마누라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거냣!』
『자기 뒤를 따라오면 그 날로 헤어지는 거라고 소중한 그녀가 말했다면서, 네마 나타스.』
『따라가지 않았으니 헤어지지 않은 거고, 버림도 받지 않은 거지. 우리 사이의 애정 전선은 이상 무! 누가 뭐래도 난 그녀를 사랑하고, 허니도 마찬가지로 날 좋아할 거라고 생각... 콜록. 생각은 하지만... 어, 어쩌지. 나 말고 딴 남자가 생긴 거면! 그, 그러면 나, 나는...!!』
『말도 더듬고 잘 한다. 봤죠? 이 남자, 완전히 이거예요.』
혀를 끌끌 차던 섹시한 카우보이 걸이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모르겠다. 부인이 혼자 여행을 떠났다고 불륜을 의심하는 주제에 양편으로 멜론 사이즈의 가슴을 가진 언니 두 명을 양쪽으로 꿰차고 술을 마셔도 되는 거였나. 딘은 어쩐지 이 모든게 광대 놀음이 아닌가 싶어져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아, 상관 없소. 다른 자들에겐 마음을 절대로 주지 않거든.』
딘의 생각을 읽었나 보다. 자기 몫의 술병을 기울이며 네마 나타스가 딱 잘라 선언했다.
고개를 돌리고 이쪽을 쳐다보는 그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쓸쓸하고 비참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 마음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오. 누가 뭐래도 그녀는 나의 지배자라오.』
듣다가 현기증을 일으키고 쓰러질, 너무나도 뻔뻔해 뺨히 화끈 달아오를 수준의 사랑 고백이다.
그런데 그걸 부인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찔찔 짜면서 하고 있으니 대단히 처량맞다.

도저히 못 참겠다며 카우보이 걸이 으이그 소리를 냈다.
『그만 울어. 계속 그러면 사진 찍어 회람으로 돌려버린다. 그나저나 왜 뉴욕이야? 이런 계절에. 뉴욕은 춥잖아? 휴가를 보내기엔 별로일 것 같구먼.』
『잊어먹었냐. 몇일 지나면 1월 26일이잖아.』
『아... 깜빡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여자는 그게 뭔 소리인지 알아들은 모양이다. 하지만 제3자에겐 땅 짚고 헤엄치는 소리였다.
1월 26일이 친정 어머니 생일이라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잠자코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딘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저울질했다. 그녀는 이렇게까지 목놓아 부르짖는 - 여보, 제발 날 버리지 마 - 남편을 두고 왜 혼자서 떠나겠다고 했을까.
그 첫 번째 가능성, 헤어진 전 남편과의 재산 분할권을 놓고 변호사와 만날 약속을 했다.
두 번째 가능성, 헤어진 전 남편과의 자녀 양육권을 놓고 판사 앞에 서야만 했다.
『말이 되는 소릴 해요.』
네마 나타스는 화가 난 표정으로 딘을 쏘아보았다.

호기심이 동했다.
『어떤 여자인가요? 당신의 부인이라는 사람.』
딱히 할 얘기가 없어 꺼낸 딘의 질문에 네마 나타스는 사탕을 선물받은 어린애처럼 활짝 웃었다.
『최고!』
좌우로 몸을 흔들며 종달새처럼 노래했다.
『마음은 불덩이 같고, 몸은 얼음인 여자. 진짜지, 진짜지 세상에서 둘도 없이 멋진 여자!』
그리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테디 베어 인형을 마구 껴안는 동작을 취했다.

왼편에 선 갈색 머리의 여자가 혀를 차며 네마 나타스의 등을 쥐어박았다.
『사랑에 눈이 멀어 등신이 되었구나. 슬프다, 과거와 미래를 꿰뚫는 왕이여.』
『꿰뚫긴 뭘 꿰뚫어. 과거와 미래를? 그녀의 따뜻하고 촉촉이 젖은 그곳도 제대로 꿰뚫지 못해 고자가 아닌가 의심이 되는 판국에 그딴 걸 잘도 꿰뚫겠다.』
『꺄악! 지금 뭔 소릴 하는 거야, 색광! 비단 도포를 벗은 우리의 왕을 보라. 베옷을 입은 헐벗은 백성이 되었도다. 위엄 가득했던 왕년의 자기를 상상도 못 하겠어. 상대는 그냥 헬레드에 속한 여자인데 어쩜 이렇게 타락했니.』
『그냥 여자?! 혀를 조심해. 여차하면 주둥이를 확 찢어버린다.』
『하! 누가 누구의 입을 찢어?! 어이가 없으려니까... 말을 말아야지. 하여간 아스모다이가 질투에 눈이 멀어 사라레이의 남편 셋을 참살했던 것보다 더 웃기게 되었다니까.* (->토비트서에 나오는 악마 이야깁니다)
『이봐! 날 지금 그놈의 쪼다와 비교하는 거야?!』
『그게 비교가 되겠냐... 쯧쯧. 네쪽이 더 형편없다. 지금의 너를 봐.《이혼수속 밟으면 난 끝장이예요》라고 술주정이나 부리며 울고 있잖아. 최소한 아스모다이는 위엄을 부리며 뒤로 물러서는 법을 알았어. 그런데 넌 뭐니. 시뻘건 풀무불에 던지워졌을 적에도 실실거리고 웃던 자식이《아무래도 우리 허니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어, 난 이제 끝났어. 어쩌지》이러고 징징거리기나 하고. 넌 미쳤어. 단단히 미쳤다고.』
『INSANUM QUI ME DICET, TOTIDEM AUDIET. (날 미쳤다고 하는 너도 같은 소리를 들을 거다)』
가만히 듣고만 있을 여자가 아니었다. 빨갛게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으로 사내의 턱을 가만히 쥐었다. 피어싱을 한 혀를 길게 빼고 낼름거렸다.
『골룸! 골룸! LIBERA ME. (날 살려주라)』

남의 말싸움을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는 취미는 없다. 딘은 기회를 보아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모르는 척하고 동생에게 전화나 걸러 가자.
네마 나타스가 놀라서 딘의 소매춤을 붙잡았다.
『워워, 어딜 도망가우!』
『두 분이 심각한 분위기인 듯하여... 싸움을 중재할 제3자가 필요합니까?』
『안 싸웠어. 그냥 사소하게 의견이 대립했을 뿐이예요. 에이, 그러지 말고... 앉아요. 전화는 그만 신경 끄고! 형씨 동생은 물건을 사러 밖에 나가선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이 동네엔 썩 괜찮다 싶은 가게가 없거든요.』

그건 또 뭔 소리? 딘은 인상을 찌푸렸다. 맹세코 이들 앞에서 동생 얘기를 꺼낸 적이 없음이다.

남자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며 버럭 화를 냈다.
『했어! 덧붙여 그 동생 이름이 샘이라는 것도, 그가 스케치북과 미술용 연필을 사러 나갔다는 것도 말해줬다고. 기억 안 나? 당신, 우리보다 늦게 시작했으면서 벌써 취했어? 보기와는 달리 술이 약하잖아. 아님 오늘 컨디션이 별로인 거야?』
바싹 끌여당겨진 딘은 실례가 아닐 정도로만 해서 그 팔을 뿌리쳤다.
『컨디션이 별로라는 건 맞지만... 이봐요? 동생은 나에게 어떤 종류의 물건을 사러 간다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어요. 거기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다고. 그런데 내가 뭘 말했다는 거요.』
『오우.』

물건을 훔치다 주인에게 들켰다.
주춤거리는 동작으로 멜론 가슴이 남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찔림을 당한 쪽도 헛기침을 터뜨리며 들고 있던 맥주병을 테이블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여자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핀잔을 주었다.
『너무 많이 말했어, 네마 나타스. 이건 분명히 네 실수야.』
남자가 등을 구부리며 손바닥으로 턱을 고였다. 어쩐지 심드렁한 표정이다.
『괜찮아. 실수한 건 맞는데 상관은 없을 거야. 이 친구는 자기 동생이 점잖케 생긴 어른용 스케치북을 구하지 못해서 안절부절해 하고 있다는 걸 알려줘도 놀라지 않을 걸? 아, 그러니까 말입니다요, 형씨. 댁의 동생 샘은 가게를 다섯군데나 돌아 분홍 바탕에 피카츄가 그려진 스케치북을 겨우 샀어요.「형이 이것들을 보고 화가 나 날 잡아먹으려 할텐데, 큰일났다」라고 크게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죠.』
『피카츄... 입니까.』
『봐, 내 말이 맞지? 하나도 놀라지 않잖아. 사실 이 자는 우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진작부터 눈치 챘다고.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음에도 내색 안 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준 거야. 그렇죠? 딘 윈체스터.』

딘은 긍정을 표시하며 자기 손목시계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분침과 시침은 움직이는데 초침이 안 움직이고 있었어. 그때부터 알아챘지.』
『겨우 그 정도만 갖고 이 모든게 다 조작된 가짜라는 걸 알았다고?』
남자는 두 팔을 머리로 올리고 끄응 신음했다.
『쳇, 시시한 부분에서 걸렸군. 나름대로 애 많이 썼는데.』
『그래도 맥주 맛은 진짜 같았어요. 네마 나타스.』
『병 주고 약도 줘요. 그런 칭찬은 하나도 안 반갑네.』

네마 나타스. NEMA NATAS. 뒤집으면 SATAN AMEN. 사탄 아멘.

어느새 연보라색 눈동자로 돌아온 사내가 맥이 풀려버렸다며 손가락을 탁 튕겼다. TV소리가 꺼지면서 응원의 파도 타기를 하던 스포츠 팬들이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순식간에 가게 안은 깊은 바다처럼 고요해졌다.

반면 여자는 유혹하듯 손가락을 쪽 빨았다.
『그래? 난 지금부터 흥이 나는데. 소문 그대로잖아? 잘 생겼는데다 머리도 좋아.』
『그래서 뭐. 건드려보고 싶어? 관두는게 좋아. 저 친구, 이쪽에서 조금 부추겼다고 동생의 누드를 꿈꾸는 남자야. 190cm의 거구인, 그것도 남자의 누드.』
딘은 당연히 발끈했다.
『동생인줄 몰랐어! 내가 변태인 줄 알어?! 여자인줄 알았다고!』
그 투덜거림에 멜론 가슴이 두 손바닥을 삼각형으로 모으고 경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자폭성 발언이야, 딘 윈체스터. 그 덩치를 여자로 착각했다면 그건 더 웃기지.』
『그치만 눈 감고 있었는 걸! 기분도 그리 나쁘진 않았고...』
『한술 더 떠서 핵폭탄 수준의 발언까지! 어쩜.』
『웃지 마! 난 문제 없다. 그런 꿈을 꾸게 만든 당신네들이 문제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여자의 눈이 서서히 뱀의 그것으로 변화했다.
『무슨 꿍꿍이냐고? 그야 경고하기 위해서지. 조심해라, 딘 윈체스터. 1cm로 잘게 토막친 그대의 시신이 고속도로에 뿌려지기 전에 알아서 몸을 사리는게 좋을게다.』
여자가 의지를 분명히 하며 혀를 낼름거렸다. 두 갈래로 갈라진 뱀의 혀다. 길고도 가늘었다.

약이 바짝 오른 딘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이거 미치겠네. 영문이나 알자. 도대체 나에게 뭘 경고하겠다는 거냐.』
끽 소리가 나도록 의자를 뒤로 끌며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니까 내 마누라에게서 손 떼라는 거다, 이 자식아!』
『왜 소리지르는 건데. 환장하겠군. 당신 부인? 이봐, 난 댁의 마누라 이름이 뭔지도 몰라.』
『흥! 바로 그랬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거야, 딘 윈체스터. 아니었음 진작에 목이 달아났을 걸. 마침 바이킹 촌색시인 동생이 스케치북을 사가지고 돌아온 모양이군. 그러니 오늘은 그냥 보내줌세. VADE IN PACE. 잘 가게.』

순간 시야가 확 하고 변하면서 눈에 익숙한 모텔 벽지가 앞으로 불쑥 쳐들어왔다.

Posted by 미야

2007/02/09 20:16 2007/02/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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