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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올린다고 했는데 그만 깜빡했습니다. ^^ 으아, 몸에서 식용유 냄새가 진동하네요. 다들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즐거운 설날 보내세요. 그런데 올라가는 글은 꾸리꾸리하다...;; ※


피부 위로 도드라진 속박의 문양이 파랗게 빛을 내기 시작했을 적에 지니는 숨어 있던 장소로부터 뛰어나와 먹이를 향해 팔을 뻗었다. 갑작스런 기척에 흠칫하고 떨던 남자는 평균치보다 반응이 월등하게 빨라서 이쪽에서 채 덤비기도 전에 호전적인 호박색 눈을 크게 부릅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니는 그 눈빛에 겁이 났다. 그러나 결심하고 방아쇠를 채 당기기도 전에 부채꼴 모양의 푸른 광선이 남자의 이마를 눌렀고, 인간의 의식은 숟가락처럼 구부러졌다.「이럴 수는 없어!」라는 낭패감 어린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눈꺼풀이 감겼다.
잡아 먹고, 먹히는 그런 세계... 누가 먼저 상대의 목덜미로 이빨을 들이박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보다 빠르면 살 것이고, 처지면 죽는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남자가 떨어뜨린 산탄총을 멀찍이 치워놓은 뒤, 지니는 짧은 숨을 들이켰다. 말로만 들었던 헌터와 직접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싫든 좋든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헌터는 그를 죽일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을 정확히 꿰고 있는게 분명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코 집어들 수 없는 것 - 양의 피가 묻은 은칼을 발견한 지니는 몸서리를 쳤다.

《20년 이상이나 완벽하게 숨겨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길 어떻게 찾아낸 거지.》
이제 그의 둥지는 심각한 위험에 처했으며,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떠나야겠군.》
허리를 펴고 햇빛이 닿지 않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위쪽으로 다른 헌터들이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 했다. 갈지자로 느릿느릿 기어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나무 판자를 옆으로 치웠다. 얇은 판자로 어설프게 가려놓은 바닥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크기의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는데 그곳을 통해 매설 하수관까지 직접 내려갈 수 있었다. 악취가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 있긴 있었지만 냄새에 둔감한 정령에겐 다행스럽게도 코를 찌르는 썩은내는 그리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끙끙 신음하며 의식이 없는 남자의 두 다리를 힘껏 끌어당겼다. 머리부터 구멍 속으로 밀어넣을 작정이었다. 그렇게 남자를 거꾸로 떨어뜨리고 나면 다음으로는 위장용 판자를 도로 덮고 그 또한 하수관으로 얌전히 내려가면 되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오랫동안 그곳을 출구로 이용한 탓에 눈을 감고도 외벽으로 삐져나온 철근을 사다리처럼 밟을 줄도 알았다. 행여 재수가 없어 미끌어지더라도 저 아래엔 젖은 낙엽과 들쥐의 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곁눈질로 구멍의 위치를 짐작하며 지니는 남자의 발을 세게 잡아당겼다.

『씨발! 그만 좀 잡아당겨!』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모른 채 엉덩방아를 찧고 바닥을 굴렀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던 것도 같다. 아니, 그것보단 발길질을 당한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손에는 무슨 영험한 보물인양 낡은 신발 한짝이 쥐어져 있었고, 덤으로 외짝 양말도 하나 얻었다.
믿을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앉은 남자는 주먹을 아무렇게나 휘둘러댔다.

《어, 어떻게?》
몸을 곧추세우기도 전에 사내가 곧장 덤벼들었다. 그리고는「볕에 널어 말리려다 엉망으로 상해버린 영양 고기 - 임팔라」에 대한 억울한 심정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쓰벌 놈의 자식아! 임팔라를 몰고 최대 속도로 곧장 가로수를 향해 돌진해야만 했던 내 마음이 어땠는지 상상이 가냐?! 피눈물 나왔어, 피눈물! 제기랄, 에어백을 달던가 해야지... 쇠창살도 아닌 운전대가 사람 갈비뼈를 그렇게 쑤셔대도 되는 거냐고. 야! 듣고 있냐?! 내 보물단지 임팔라가 종잇장처럼 부숴졌단 말이다! 쾅, 와직, 우직끈! 표정이 그게 뭐야. 내가 지금 외계어로 떠들고 있냐?! 아니잖아. 산산조각난 유리창 밖으로 내 뼛조각이 튕겨나갔다고!』
눈에 보이는게 없는 듯했다. 남자는 고함을 지르며 눈앞에 자리한 정령을 있는 힘껏 떠밀었고, 지니는 얼굴을 바닥에 문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내 임팔라!』
양탄자는 알아도 자동차는 전혀 모른다. 당황한 지니는 몸을 굴려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남자는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고자 애쓰는 그의 노력을 삽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무릎을 세워 등짝을 힘껏 찍어눌렀다.
『으으, 내 임팔라!』
숨을 몰아쉬고, 욕설을 퍼부으며, 이판사판 죽어보자는 식의 태도로 날뛰었다.
『젠장! 새벽 다섯 시에! 나체로 발광하는 새미 앞에서!』
지독하게 흥분한 탓에 목소리가 철쑤세미처럼 갈라졌다.
『최악이야!』

고통과 모멸감이 뒤섞인 어지러운 눈빛이 지니의 머리 꼭대기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지니는 깨달았다. 이것은 분노다. 사악하리만치 깊고 어두운 분노였다. 어째서? 지니는 그가 귀신처럼 화를 퍼붓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잠에서 깨어난 것도 놀라웠지만 바위를 둘로 쪼개버릴 기세로 폭발하는 것 역시 놀라웠다.
뭐가 잘못된 걸까. 지니의 힘은 사막을 횡단하는 자에게 푸른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보여준다. 그 낙원과도 같은 푸르름에 나그네는 고단한 여정을 포기하고 마침내 평온한 안식을 얻었음에 기뻐하게 된다. 그것은 미끼이자, 먹이로 바쳐진 목숨에 대한 댓가였다.
지니는 자신의 힘이 혹시 송두리째 메말라버린 건 아닌가 의심하며 질문했다.
《꿈을... 꿈을 꾸지 않았는가.》
『그~래, 신나게 꿨다. 이 개자식아. 무지하게 야한 꿈이었다! 검정색 끈팬티를 입은 여자가 한 다스나 나와서 랩댄스를 췄다고. 그래서 내가 네놈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냐?』
펄펄 뛰며 퍽 소리가 나게끔 지니의 콧잔등을 내려쳤다.
지니의 얼굴은 교수형을 당한 여자의 것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그러든 말든, 아무래도 헌터는 그 순간만큼은 주먹질 정도로는 정령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걸 깜빡 잊은 듯했다. 빠른 속도로 되감기는 비디오 테이프의 한 장면처럼 두두다다 양손 펀치가 작렬했다.

『형? 지니는 목졸라 죽일 수 없어.』
『오야.』
『그리고 아무리 막대기로 때려도 코피가 안 나와.』
『누가 뭐랬냐.』
『그런데 왜 막대기를 들고 때렸어?』
사냥이 끝나면 형제들은 의무적으로 늘 가까운 술집에 들려 회포를 풀었다.
단순히 긴장을 풀고 즐기려는게 목적은 아니다. 뭔가를 죽였다는 사실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황폐케 만들었고, 특히나 감정이 예민한 샘은 한동안 소리내어 웃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정서적으로 어두워지곤 했다. 그리고 사흘 가까이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다녔다.
『내가 왜 막대기를 들었냐고?』
술 자체가 그리 큰 위안이 되어주진 않는다. 하지만 텁텁해진 뱃구멍을 속일 뭔가로는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것 역시 딘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딘은 주량이 늘었다.
『흥! 너도 봤잖아, 새미. 그 그지 똥갱이 자식이 내 신발을 홀랑 벗겨갔다고. 순간 꼭지가 확 돌더라고.「오늘 저녁은 오뚜기 카레」라는 식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게 아니잖아?』

샘은 데킬라를 두 잔 마셨고, 주량이 센 딘은 이미 그 세 배를 먹었다.
앉아서 시작한지 이제 15분이다. 속도가 너무 빨랐다.
눈썹을 찌푸린 샘은 형의 몫으로 놓여진 유리잔을 슬그머니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알콜을 감추려는 행동에 딘의 한쪽 눈썹이 활처럼 휘었다. 우직스런 사내들의 세계에서 그런 치졸한 행동은 선전포고와 마찬가지였다. 아닌게 아니라 딘은 노골적으로 불평했다.
『뭐하는 거냐. 내 동생이 아니었음 앞니가 부러졌어, 새미.』
『그렇다면 난 위조한 보험증을 들고 치과에 가야겠네.』
『좋아. 선생님 앞에서 아~ 하고 입 벌리렴.』
『싫어. 딘은 의사 선생님이 아니잖아.』
『겁 먹지 마. 형이 어금니가 썩지는 않았는지 살펴볼테니. 아아~ 크게 입을 벌리세요.』
『저리 가, 영감탱이!』
『어익후, 우리 동생 화났다.』
『내가 딘보다 곱의 곱절로 양치질을 한다는 걸 잊지마.』
『엣헤헤. 그건 그렇지.』

낄낄거리고 웃음를 터뜨리는 딘을 보고 나서야 샘은 마음을 놓았다.
솔직히 쇠몽둥이로 지니를 두둘겨 패는 그를 발견했을 적엔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딘은 쓸데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다. 필요하면 비무장인 여자를 향해 총을 쏠 수도 있었지만 그럴만한 까닭이 충분하지 않으면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요컨대 샘이 목격한 광경은 하수구에서 순결한 천사가 올라오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양의 피를 묻힌 은칼은 고스란히 냅두고 다짜고짜 쇠몽둥이로 퍽퍽? 당신이 정녕 딘 윈체스터 맞소이까?

『저어... 있잖아, 딘.』
『저 갈색머리 아가씨, 네가 보기엔 어떠냐, 새미.』
캐묻는 듯한 동생의 시선을 피해 딘은 왕가슴 바텐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일부러라고밖엔 설명이 안 되는 꾸며낸 목소리로 음담패설을 주워담았다.
『형은 저 여자 다리를 가로로 찢고 싶어. 와우, 무지하게 뜨거울 것 같아. 저 멋진 엉덩이를 보라고. 예술이 따로 없구나. 가서 말을 붙여볼까?』
「어디 한 번 그렇게 해보시지?」순식간에 샘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형은 천치 바보야!』
『그래. 그러는 너는 구제불능의 얼간이고.』
『못난이.』
『계집애.』
『술이나 잔뜩 마시고 취해버려랏.』
『네 말대로야. 이 형은 머리가 망가지도록 잔뜩 취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찰나이긴 했다. 딘은 샘을 똑바로 응시했다.
은폐된 비밀들과 결코 누설되지 않을 거짓이 그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회전목마가 광대의 우스꽝스런 음악을 연주하며 거꾸로 뒤집히려 했다. 그의 시선이 동생의 눈동자에서 코로, 다시 입술로 내려갔다.「안돼」주머니 깊숙이 찔러넣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붕대로 묶인 주먹은 이미 바위처럼 단단했고, 어깨가 경련을 일으켰다.「나는 그걸 하지 않을 거야」가만히 눈을 감았다. 좋은 꿈, 그리고 원하던 꿈...「참아」딘은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샘은 바짓자락의 주름을 잡아당기다가 무척이나 어색해하며 물어왔다.
『괜찮아? 저어... 정말 괜찮은 거야?』
폭주하는 영혼따윈 암염탄으로 쏘아버리면 된다.
딘은 가슴에 박힌 커다란 소금 결정을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거짓말했다.
『괜찮고 말고.』

Posted by 미야

2008/02/07 11:52 2008/02/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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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맛만쥬 2008/02/08 14:32 # M/D Reply Permalink

    디이인~, 참지마, 참지마, 참지마...울면서 무한반복하는 중이에요. 딘의 샘에 대한 마음이 안타까워요. 둘이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ㅜ.ㅜ
    미야님, 남은 설 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세요~

  2. oka25 2008/02/10 21:06 # M/D Reply Permalink

    쇠막대기로 진을 마구 때리는 딘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ㅋㅋ
    진짜 현실이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안타까운 딘...
    진짜 재밌게 잘 봤어요 ~~^^

  3. 로렐라이 2008/02/21 15:06 # M/D Reply Permalink

    안타까운 딘 ㅠㅠ
    에휴...잘 보고 갑니다 ~ ㅠㅠ
    두 형제가 편한날은 언제 오련지~..

  4. 마리 2008/02/23 15:58 # M/D Reply Permalink

    으휴...바보같은 딘 윈체스터. 형제가 뭐라고...<<
    니넨 이미 자타가 공인한 부부란 말이다...

  5. 언니햐 2010/02/20 02:26 # M/D Reply Permalink

    유혹하는샘은 정말이지 ..... 너무섹시해!!!
    그걸 뿌리치는 딘도 정말 딘 답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번하고 깨어나지 그랫니..ㅠㅠㅠ 이 애타는 마음은 쩌라는거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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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야

2008/01/27 23:32 2008/01/2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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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맛만쥬 2008/01/28 00:19 # M/D Reply Permalink

    헤벌쭉 웃으며 좋아하다가 막판에 딘이 불쌍해서 으앵 울고 있어요.
    이왕이면 숟가락을 꽂아보고 깨어나도..<;;
    현실에선 정녕 불가능한 건가효.

  2. 2008/01/28 01:43 # M/D Reply Permalink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사실 딘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계속 상상해봤었거든요.
    아아~ 너무, 너어-무, 너무!!! 좋았습니다.; 물론 딘이 좀 안쓰럽긴 하지만...

    요즘 새미에 대한 애정이 솟구쳐서 말이죠. 딘이 샘에게 남몰래 감정을 품어왔다는 게 참으로 좋으네요..;; 흠흠 정말 맘에 듭니다~

  3. 장인득 2008/01/28 01:45 # M/D Reply Permalink

    하루에 딱 두 번 정도만 생각했다고, 자기 그렇게 미친 놈은 아니라고 절규하는 부분이 너무 마음 아파요....ㅠㅠ

  4. 2008/01/28 08:43 # M/D Reply Permalink

    역시 얘네들 머리위에 태양 같은건 없는거에요... 없어요...흑흑 ㅠ.ㅠ

  5. hoya 2008/01/28 12:06 # M/D Reply Permalink

    흑흑흑 ㅠ_____ㅠ

  6. 소나기 2008/01/28 15:25 # M/D Reply Permalink

    새미의 고백에 한번 울고 딘의 고백에 또 한번 웁니다. ㅠ.ㅠ
    크흐흑..
    이게 끝은 아니겠지요?

  7. 로렐라이 2008/02/21 15:04 # M/D Reply Permalink

    ㅠㅜ 아...딘의 말이 가슴에 박히네요 ㅠㅠ
    안타까워요...이 안타까운 윈체스터 형제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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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지고 황량한 그 모습은 제시카의 장례식 직후의 샘을 연상시켰다.
『어째서냐.』
멍한 눈빛으로 비가 내리는 창밖을 응시하며 축 처지는 노래를 듣는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다. 울적한 마음의 틈새로 사악한 악몽이 한쪽 발을 들이민다. 상복을 입은 숙녀는 묘비에 엎드려 통곡하고, 냄새를 맡고 몰려든 까마귀떼는 시든 장미꽃을 부리로 남김 없이 물어뜯는다.
저주가 강림한 땅, 하프를 켜는 건 죽음의 나라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님프.
뼈만 남은 앙상한 손가락이 음울한 가락을 자아내면서 결코 마르지 않는 눈물을 댓가로 받아간다.
『망할 똥강아지! 왜 내 앞에서 불행해 죽겠다는 낯짝을 하고 있냐고!』
딘의 외침에 붉게 젖은 눈이 스륵 감겼다.

머리를 쥐어싸맸다. 차라리 직불카드를 훔쳐 달아났다며 냉랭한 목소리로 힐난했음 좋겠다. 졸업식 날을 망치고, 남의 댄스 파트너와 대놓고 뒹굴었다고 야단을 쳐라. 우리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거든.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에나 가끔 연락할 정도에 불과하다고 - 누구라도 좋으니 딱딱한 얼굴을 하던 동생을 이리로 데려왔으면 한다. 사람을 찾는 전단지에 들어갈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짜증 덩어리 샘을 보신 분은 이리로 연락 바람. 후하게 사례하겠음.

주름진 미간을 꾹꾹 찔러댔다.
『그깟 키스 한 번 망쳤다고 우거지상? 새미... 살려줘.』
『그깟 키스라면서 왜 해주지 않는 거야. 딘의 말대로라면 고작 키스 따위야.』
『미안해. 내가 말을 잘못했어. 키스를 망쳤으니 세상이 아작났구나.』
『응. 끝났어.』
『망하긴 뭐가 망해! 거기서 낼름 동의를 하면 어쩌자는 거얏!』

발끈해서 키를 3cm나 크게 했다. 그래봤자 샘의 키는 이미 10년 전에 한 뼘 이상이나 추월해버려 그가 아무리 발돋음을 해봐도 올려다보는 각도는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키높이 구두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머리 위를 차지하는 자가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건 상식이다. 엄마는 아이를 내.려.다.본.다. 선생님은 학생을 내.려.다.본.다. 총리는 장관을 내.려.다.본.다. 시선의 우위를 차지하는 자가 권력도 높은 법이다. 따라서 승리한다. 그런데 형님은 동생보다 키가 작아 효과적으로 윽박지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서른이 내일 모레인 마당에 사과 상자에 올라가「이 형이 자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부터 가라고 그랬지!」소리를 질러대는 건 모양이 우습고... 마땅한 타협점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 딘은 샘의 앞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겨 고개를 숙이게 했다.

『자식아, 웃어.』
『딘, 아파.』
『웃으라고 했다, 샘.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정 같은 건 짓지 마.』
『날 대머리로 만들려고 작정했으면서... 지금 나더러 웃으라고?』
푸념을 늘어놓긴 했어도 샘은 어떻게든 웃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하는 말은 뭐든지 들어주고 싶다. 딘이 요구만 한다면 번화가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그 신발에 입을 맞출 수도 있었다. 하늘의 별따기라던 월드 시리즈 결승전 입장권도 구해다 바치고, 인류 문화 유산이라는 스핑크스의 머리 꼭대기로「우리 사랑 영원히」문장을 낙서할 의향도 있다. 태양을 거꾸로 돌게 만들고, 바다를 거꾸로 뒤집어 육지로도 만들 것이다.

『뭐든지?』
『뭐든지.』
간신히 차분함을 되찾은 샘이 이마를 이마로 톡톡 찧으면서 속삭였다.
포근한 앙고라 코트에 푸근히 감싸인 듯한 감각이었다. 딘은 어쩐지 신이 났다.
『구멍난 양말을 꿰메줄거야?』
『바느질엔 소질이 없지만 딘이 하라고 하면 할게.』
『그럼 나는 네 옆에서 피투성이가 된 엄지손가락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야 해?』
『아니. 입으로 빨아주면 돼.』
『먹고 싶다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애플 파이도 구을 거야?』
『기꺼이.』
『너... 요리 무진장 못 하지 않냐. 오븐 타이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물론 몰라. 결국 나 때문에 온 집안으로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차겠지.』
『그건 곤란해. 출동한 소방관이 집에다 불을 지르려 했다며 널 잡아가려 할 거야.』
『딘? 소방관은 불만 꺼. 체포는 하지 않아.』
『오, 물론 그렇겠지.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막 안심이 된다. 정말 고맙다, 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동작은 어느새 쓰다듬는 쪽으로 바뀌었다. 부드럽고 고운 머릿결이다. 손가락으로 차분히 빗질을 하며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청록색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늘 딘을 따라다니던 바로 그 시선이었다. 반쯤 울며 젖병과 엄마를 찾던 그 가엾은 아기 말이다.
애간장이 살살 녹았다. 이건 내 새끼다. 강하게 끌어안아서 달랬다.

『파이... 못 만든다고 헤어지자고 하는 거 아니지? 내 말이 맞지?』
덩치와는 맞지 않게 샘이 징징거리며 콧소리를 냈다.
『온 집안을 그을음 투성이로 만든다면 당연히 내쫓아 버릴테다.』
『나빠. 그럼 난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 거야.』
『험악한 소리 지껄이고 앉았다. 벌레가 머리를 파먹었냐.』
『진짜야. 죽을 거야.』
『쇼부하고 있네. 어리광은 그만 피워.』
『어리광 부리는 거 아니야.』
그치만 손가락으로 옷깃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는 걸 봐선 어리광이 분명했다. 게다가 귀부터 목덜미까지 온통 분홍색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홍조는 가슴까지 번져있을 것이다.

절대로 응하지 않겠노라 결심했던게 송두리째 흔들렸다.
「겨우 키스일 뿐이야.」
주저하며 샘의 붉어진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간단한 인사 같은 거라고. 왜 있잖아. 별 거 아닌, 일종의 친밀함의 표시 같은 거.」
증명이라도 하듯 서로의 입술이 닿은 뒤에도 아무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딘은 내심 마음의 안도감을 느꼈다. 촉촉하게 포개어지는 얇은 피부 한 장 탓에 벼락이 수직으로 내리꽂는 일은 없었다. 평온하고 따스했다. 이불을 덮고 굳 나잇. 엄마가 말씀하셨어, 새미. 천사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왔다. 희미한 숨결과 익숙한 샴푸의 냄새가 코를 간질이려는 찰나 쪽 하고 과장된 소리를 내고는 샘에게서 떨어졌다.

분명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얼랍쇼.」
뭐가 잘못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가위를 내겠다고 하고 보자기를 내밀었다. 습윤한 소리에 자극이라도 받은 건가, 무의식중에 혀를 내밀어 샘의 윗입술을 핥았다.
『으응...』
방문을 열기에 앞서 정중하게 노크를 할 필요도 없었다. 목이 빠져라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게 분명한 샘은 얼른 입을 벌리고 열성적으로 반응했다.
「아냐, 아냐. 이건 계획에 없었다고. 중지! 멈추라니까!」
그래봤자 츄웁, 하고 입안에서 미끌어지는 혀의 움직임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척추를 타고 민들레를 닮은 간지러움이 달려나갔다. 의식이 아득히 멀어지려 했다. 파도에 휩쓸려가는 모래처럼 팔과 다리, 그리고 형체라는 것 자체가 붕괴될 조짐을 보였다. 샘이 얼른 그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지 않았더라면 산산히 부수어졌을지도 모른다.

『샘.』
『응... 여깄어.』
갈증에 허덕이며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고 삼켰다. 그때마다 눌러 죽인 소리를 내는 그가 좋았다. 이름을 불렀을 적에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그가 좋았다. 금방에라도 끊어질 것 같은 투명하고 가느다란 실 하나에 체중 전부를 맏기고 그의 어깨로 팔을 둘렀다. 밀착되는 온기에 몸도 마음도 훨씬 편안해졌다.
「엑?! 편안하다고? 지금 편안하다고 그랬어?!」
소스라치게 놀라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 얼마 되지 않았을 분량의 호흡을 샘이 전부 훔쳐냈다. 딘은 눈을 떴다. 샘은 더욱 더 깊게 빨아당기며 폐속에 든 공기, 혈관을 돌아다니는 산소, 세포 하나하나에 심어진 영양소 전부를 강탈해갔다. 여기서 난 꼴딱 죽는 거구나. 포기하고 눈을 감는 것과 같이하여 웃음을 머금은 손길이 턱 아랫부분의 민감한 장소를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기뻐하며 허리가 튕겨올랐다.
「큰일났다!」
재난이었다. 결국 둑은 무너지고 마을에는 홍수가 닥칠 것이다.

마침내 입술을 떨어뜨리고서 샘이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딘은 깊게 패인 보조개를 정신 놓고 쳐다봤다.
그의 시선이 한곳으로 고정되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샘은 입고 있던 파자마 바지를 아래로 내렸고, 위태롭게 범람하던 물은 누런 진흙탕을 만들며 삽시간에 거리를 쓸어버렸다.

Posted by 미야

2008/01/23 22:39 2008/01/2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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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맛만쥬 2008/01/23 23:24 # M/D Reply Permalink

    10시부터 계속 들락거린 보람이 있네효!! 어머어머어머~너무 좋아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실실 웃고 있어요. 난 몰라, 잉.<;;

  2. oka25 2008/01/24 05:41 # M/D Reply Permalink

    엄머~엄머~어떻한데요~~ㅋㅋㅋ 딘은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으으~둘이 너무 예쁘게 닭살 돋아요~

  3. 소나기 2008/01/24 16:39 # M/D Reply Permalink

    여기가 현실인겁니다!!! 둘의 대화가 정말이지^^

  4. 2008/01/24 18:02 # M/D Reply Permalink

    나이스 지니!! >.<
    네가 비록 딘이의 은제 칼날에 스러져가더라도
    누님들은 널 잊지 않을끄다~~

  5. hoya 2008/01/28 12:02 # M/D Reply Permalink

    허헛..... ㄷㄷㄷㄷㄷㄷㄷㄷㄷ
    너무 재미있어요~ ㅋㅋㅋㅋㅋ

  6. 로렐라이 2008/02/21 15:01 # M/D Reply Permalink

    /ㅁ/ 엄머 어떻게 한대요 ~ 얼레꼴레~
    보기 좋네요(?) 와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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