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뭥미~ 하실 분들이 많을 거예효. 그치만 단편은 단편이 아니고, 이야기의 끝도 아니죠. ※
샘은 신중한 아이다. 원래부터 생겨먹길 그렇기도 했거니와「어쨌든 진격! 그런데 이 망할 캠코더의 야간 모드는 어떻게 작동시키는 거지?」인 아버지와「어라, 소금인줄 알았는데 후추였네. 엣취!」인 형이 가족으로 있는 이상 그것은 샘이 짊어져야 할 숙명이었다.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하나가 그것을 대신 채운다 - 세상의 이치는 그렇게 돌아갔고, 나이 어린 샘은 침착하고 고요한 얼굴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음식은 열 번씩 꼭꼭 씹어서, 걸고리는 꼭 잠궈 문단속을 철저히. 덕분에 새로 사귄 여자 친구를 만나러 몰래 창문을 뛰어넘고 하던 딘은 새벽마다 봉변을 당하기 일수였다. 차가운 이슬에 젖어 오들오들 떨었던게 모두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융통성 끝장인 막내는 누가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도 딘이 반쯤 조작해둔 뒷문의 열쇠까지 강제로 돌려놓곤 했던 것이다. 그랬던 샘이... 그딴 건 내 알바 아니라는 식으로 구는 건 생각하기 힘들다.
『문이 그냥 열려져 있더구나.』 기세가 한 풀 꺾인 딘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출입구 쪽을 흘깃거렸다. 문짝을 발로 걷어차며 제7기병대를 습격하는 인디언인양 한바탕 이야이야호를 계획했던 그가 곤두선 눈썹을 도로 내린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손잡이를 돌리자 거짓말처럼 문이 스륵 열려버린 것이다. 빗장이 풀린 성문 앞에서 적의 요새를 함락하라 고함을 지른 장군님은 얼굴이 벌개졌다. 성루 높은 곳에선 제갈량이 한가롭게 금을 뜯었다. 튼튼한 사다리를 준비하고 성벽을 기어올라갈 준비를 마친 부하들은 저마다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부주의하게 잠금 장치를 눌러놓는 걸 잊다니, 어이가 없다. 아니, 사실 어이가 없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좀도둑 환영이라고 아예 푯말이라도 써서 붙여놓지 그래.』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샘은 대답을 하기에 앞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를 내는 건 의외로 까다로워서 삼류 코미디 배우가 교과서를 읽는 어투로 대사를 읊는 것만큼이나 어색했다. 그리고 코맹맹이 소리는 노력한다고 빠르게 감춰지지도 않았다. 『어차피 훔쳐갈 것도 없혀. 가방엔 양말밖에 안 들었혀.』 『그러냐. 척 보기에도 그런 것 같긴 하다.』 『갖고 싶다면 와서 가져가라고 그래. 멍청한 도둑 같은 거, 내가 알게 뭐햐.』
뻣뻣한 통나무 동작으로「우리 마을」이란 제목의 무대에 올랐던 동생이다. 그래서 저 아래 객석에선 킥킥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더랬다. 딘은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억지로 참았지만 당혹스러워 하는 동생과 눈이 마주쳤을 적엔 설사가 터지는 것처럼 해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샘의 장래 희망이 배우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었다. 애가 셋이나 딸린 삼류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겠다고 해도 기꺼이 응원해줄 작정이었지만 배우가 되겠다고 하면 그때는 얘기가 달랐다. 천둥과 번개 사이를 달려나가는 슬프고 아름다운 공주의 이야기를 유니콘이 거억 트림하는 이야기로 바꿔놓는게 바로 샘 윈체스터였으니까.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계속 실수하는 저 아이, 참 귀엽네」웃던 아줌마의 옆 얼굴이 빠른 속도로 딘의 마음을 헤집었다. 십 수년이 흐른 오늘에 이르러 다시금 뱃가죽에 힘을 주었다. 연기가 그게 뭐냐 야유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중이다. 『너, 혹시 내가 와서 데리고 가주길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거냐?』 멍청하다 싶도록 똑바로 날아온 직구에 샘은 곧바로 몸을 경직시켰다. 『아냐!』 『그래?』 『미쳤혀?! 내가 형을 왜 기다혀!』 『흐음. 그렇구나.』 딘은 평범한 인간이라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에서 징조를 보고, 바닥에 떨어진 자갈에서 신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그는 크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사실 이건 그다지 고차원적인 것도 아니다. 카드에 적힌 숫자가 3이면 눈으로 보고「3」이라고 소리내어 읽기만 하면 되었다. 바람에 섞여 비릿한 냄새가 나니까 오후 늦을 무렵부터 비가 올 것 같다고 말한다. 구태여 예레미야가 가진 놀라운 능력따윈 필요치 않았다. 지팡이를 쥐고 푸른 연기가 피어오른 산등성이로 올라가라. 그곳에 인가가 있다. 아무렴 야생 곰이 밥 짓겠다고 장작불을 지피겠는가.
『그럼 전화번호부 책자에 제일 먼저 등재된 모텔로 짐 락포드라는 이름으로 투숙은 왜 했어.』 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치다. 사과 파이에 사과가 왜 들어가느냐고 질문하면 할 말이 궁진해진다. 너무도 당연한 걸 묻다니? 이마에 가는 주름이 잡혔다. 이래선 열 세 번째 종소리를 내는 괘종시계를 찾아 전국을 쏘다니는 괴짜 수집가의 이야기가 훨씬 자연스럽다. 『무슨 소리야, 딘? 그게 우리끼리의 약속이잖아. 떨어졌을 때 서로를 찾는 방법... 아!』 짧게 외마디 소리와 같이 해서 얼굴이 확 하고 달아올랐다. 그랬다. 그런 거였다. 사전에 약속된 짐 락포드의 가명을 사용한 건 결국「날 찾아주세요」라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도 몰랐던 걸 한 번 깨닫고나자 피가 머리로 몰렸다.
『모, 몰라!』 『야! 이불 속으로 도로 숨지 마!』 『시끄럿! 난 자는 중이야!』 죽을 힘을 다해 이불 끝자락을 움켜쥐었다. 얄팍한 자존심이 푸쉭 소리를 내고 주저앉은 마당에 벌겋게 달아오른 뺨까지 들키는 건 꼴불견이다. 팔꿈치로 등 한가운데를 꾹꾹 찔러대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걸죽한 녹색으로 가득찬 단지가 스푼으로 마구 휘저어지는 걸 상상하며 모로 돌아누웠다. 순간 마녀의 요술 솥단지를 닮은 그릇 속에서 쿨렁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하게는 낡은 침대 스프링이 체중에 못 이기는 소리였지만, 아무튼 샘은 고슴도치처럼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난 몰라. 하나도 몰라. 그렇게 개구리 뒷다리를 잘게 썰어놓은 것에 쓴 맛이 나는 잡초를 버무려 아무도 입에 대지 않을 죽을 쑤었다.
화덕에서 냄새 고약한 연기가 피어오르자 딘은 제대로 짜증이 났다. 『샘!』 『다 필요 없어. 날 그냥 내버려둬.』 『고집은 그만 부리고 돌아가자.』 『어디로?』 집이라고 할 장소가 그들에겐 없다. 따스한 불빛이 스며나오는 곳, 매일 밤 돌아가 지친 머리를 뉘일 수 있는 곳... 한줌의 안식이 허락된 장소... 샘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어디로 돌아가자는 거야? 딘.』 냉소적으로 쏘아붙이며 주먹을 쥐었다. 『형의 임팔라가 주차된 모텔? 웃기지 말아.』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뚫어진 즐거움이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거긴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니야. 깔깔한 소금이 사방에 그득그득하고, 베개춤에 칼이 숨겨져 있고, 서랍속엔 권총이 들어가 있고... 단지 그뿐이잖아. 지긋지긋한 그딴 것들, 내가 알게 뭐람!』 등유를 입에 가득 머금고 있는 것처럼 해서 혀가 굴러갔다. 입속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아님 형은 싸구려 계집들이랑 뒹굴 동안 짐을 안전하게 지켜줄 사람이 필요한 거야? 하! 그거 참 미안하네. 내가 이렇게 나와버렸으니 더러운 병균 투성이 여자들과 재미를 못 봤겠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웃고 있는가. 아님 찡그리고 있는가. 『도대체 딘은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 거야? 형이 밤새도록 창녀들과 놀아날 적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모텔방에서 죽치고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어? 음? 그쪽이 네 다섯 병의 맥주를 마시는 동안 나는 손톱의 반을 먹어치우지. 딘이 샹들리에 귀걸이와 배꼽 피어싱에 눈길을 돌릴 적에 나는 벽장이나 노려보고 있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딘은 지금 웃고 있는가. 아님 찡그리고 있는가. 『다 알고 있으면서!』 모든게 엉망진창. 『돌아가! 내 옆에 다정하게 누워줄 것이 아니라면 당장 꺼져버려!』 덧붙이는 말은 완전히 정 반대. 『혼자는 싫단 말이야!』 아마도 머리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샘은 낄낄거리고 미친 사람처럼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온 딘은 발버둥치려던 샘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건 샘이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흔들면서 뿌리치려 했다. 『만지지 마! 꺼져!』 『알았어. 갈게.』 『아냐! 가지 마. 가지 말아줘! 여기에! 여기 있어!』 막내가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는 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딘은 눈을 감았다.
『있잖아, 새미.』 부드러운 머릿결을 반복하여 쓰다듬으며 딘이 말했다. 『듣자하니 스톱워치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드라. 그러니까... 거 뭐시다냐. 너무 붙어 있으면 인질이고 범인이고 하나가 되어버린다는 거야. 나와는 달리 머리가 좋으니까 넌 그게 뭔지 이미 알고 있겠지?』 『재미 없어. 지금 스톡홀름 신드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거였나. 아무튼 지나치게 가까이 있으면 서로 머리가 돌아버린대.』 『뭐? 그러니까 딘이 테러리스트고 내가 인질이라고?』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리고 왜 내가 범인이야! 네가 범인일 수도 있잖아.』 『눈 흘기고 그래도 어림 없어. 난 죽어도 범인 안 해.』 『그려. 내가 악당 할란다. 알았으니 네가 인질 해.』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하고 딘이 불평했다.
『들어봐, 새미. 형도 그동안 많이 고민해봤는데 말이지... 우리가 지금 그 상태가 아닐까 싶어. 있잖아... 때로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해. 총을 전자렌지에 데워 먹어버려야 한다고 믿어버리거나... 모듬 발로 껑충껑충 뛰어서 기찻길을 건너는게 옳다고 하거나... 그게 의무이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그리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되묻는 거야. 뭐가 잘못되었나요. 나는 정상이랍니다. 그런 눈초리로 쳐다보지 마세요...』 『딘?』 『스트레스 때문이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63번 고속도로를 타고 계속해서 달린 다음, 불 켜진 술집에 들러 데킬라를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버려선 아침까지 쭉 뻗어버리면 돼.』 『딘...』 『착각이야.』 강한 어조로 반복해서 말했다. 『이 혼란스런 감정들은 그저 착각에 불과해.』
노란 스탠드 조명 아래서 딘의 얼굴은 유령처럼 떠다녔다. 목소리도 유령 같았다. 『여자를 안아, 샘. 그럼 알 수 있어.』 『나더러... 여자를 안으라고?』 『개나 소나 아무나 안으라는 건 아니야. 좋은 사람을 찾아. 네 마음에 드는... 괜찮은 사람을.』 못이 박힌 손바닥이 샘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럼 지금의 이 모든 소동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질 거다. 지나고 나면... 웃기기만 할 걸. 맥주를 마시면서 농담조로 지껄일 이야기 꺼리가 될 거라고.』
샘은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딘은「날 믿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샘은 혼잣말을 했다.
그의 얼굴이 가라앉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뭐랄까, 표백제로 깔끔하게 지워진 하얀 담벼락 비슷했다. 이것은 좋지 않았다. 안색을 살피며 그 눈을 머뭇머뭇 응시했다. 『샘?』
동생은 가게에서 양파를 뺀 햄버거라도 주문하는 투로 명랑하게 대꾸했다. 『죽여버릴 거야.』
Posted by 미야
2008/05/04 22:25
2008/05/0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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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강을 따라 바다까지 갑니다. 개인의 취향과 시각에 따라 대단히 불쾌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마우스 버튼을 재빨리 눌러 윈도우 화면을 닫아주세요. ※
드디어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샘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양이 세 마리, 다섯 마리, 여섯 마리...」 내용물이 텅 비다시피한 가방은 아래로 떨어질 적에도 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다. 소지한 짐이 하나도 없으면 남들에게 의심을 사니까 부득이 양말이니 손수건이니 하는 걸 몇 점 들고 나왔을 뿐이다. 소복히 무너지는 모습은 그래서 여자들이 잘 착용하는 스카프를 많이 닮았다. 그걸 발로 밀어 구석으로 치워놓고 곧바로 침대로 직행, 벌목꾼이 내지르는「나무가 넘어간다~!」외침을 뒤로한 채 베개에 얼굴을 박았다. 전등을 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온몸이 물에 젖은 타올처럼 축 늘어졌다. 불순물이 섞인 듯한 눈꺼풀은 진작부터 작동이 여의치 않은 상태다. 신발을 벗고, 전등을 끄고,「오늘 하루는 정말 죽도록 힘들었다」자조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의 끈을 놓아버리도록 하자. 졸음이 날벌레인양 등줄기를 타고 간질간질 올라왔다. 샘은 극도의 피곤함을 느꼈다.
「원숭이가 여덟 마리, 아홉 마리, 열 세 마리... 열 다섯 마리...」 그런데 그놈의 망할 원숭이들은 아무래도 동물원 오락단 출신인 모양이었다. 야생에선 구경도 못할 커다란 심벌즈를 쥐고 탕탕탕 소리를 내고 있으니 도대체 성가셔서 눈을 감을 수가 없다. 뾰족하게 생긴 파티용 모자를 쓴 원숭이가 스물 여섯 마리 - 여기까지 인식한 샘은 베개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제발! 나에게 왜 그러는 거야! 왜 날 못살게 만들어!』 꼬리를 둥글게 말고 사방으로 도망치던 원숭이들은 일제히 끽끽 소리를 냈다. 화가 치밀어 손에 쥐고 있던 모텔의 카드키를 위협의 의미로 던졌다. 그런다고 해봤자 그것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나 같이 무표정한데다, 눈동자가 지나치게 바싹 구워진 팬케이크 빛깔이었다. 샘은 절망했다. 녀석들은 어차피 살아 있지도 않았다.
욕을 바가지로 퍼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이대로 잠들려고 한 내가 죄인이다.』 도망갈 곳을 미처 찾지 못한 양떼들이 메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걸 모조리 붙박이 옷장에 쳐넣은 뒤, 쾅 소리를 내어 입구를 닫아버렸다. 다시는, 다시는! 샘은 손가락을 흔들며 심각한 어조로 경고했다. 『내일 아침까지 거기서 절대 나오지 마! 알아 들었어?』 확실히 하기 위해 샘은 붙박이 옷장 앞으로 의자를 세워두기까지 했다. 만들다 만 뜰채처럼 생긴 부적도 손잡이에 걸어두었다. 좋다. 그럼 다시 침대로 가는 거다. 손바닥을 탁탁 털며 등을 돌렸다.
「그치만 이건 괜찮은 방법이 아니야. 나에게 닥친 이 문제가 성가신 토끼들 때문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거든.」 제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어느새 양들은 두툼한 털 코트를 집어던지고 토끼가 되었다. 샘은 움켜쥔 주먹으로 이마를 때렸다. 부적을 씹다 버린 껌처럼 여긴 토끼가 벽장에서 튕겨나와 줄넘기를 돌리며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메리고라운드, 메리고라운드, 얼레리 꼴레리~♬ 토끼의 머리가 천장에 닿으려 했다. 그때마다 조롱조의 노랫소리는 한 옥타브씩 더 올라갔다. 샘 윈체스터는 바보입니다, 샘 윈체스터는 얼간이입니다~♪
『그래! 나는 천하에서 둘도 없는 바보다. 보태어준 거 있냐!』 좁은 방을 한 바퀴 돌았다. 열 걸음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샘은 다시 두 바퀴 더 돌았다. 침착해져야만 했다. 손톱을 맹렬하게 물어뜯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방안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왜 나는 편히 쉴 수가 없는 거지. TV를 켜면 괜찮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샘은 곧바로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먼지투성이의 브라운관으로 알록달록한 색점들이 떠오르면서 스무 살이 안 되었음직한 젊은이가 도로를 쏜살처럼 가로질러가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분위기로 보아 탐정물인 모양이다. 제목은 알 길이 없었다. 두어 발의 총성이 울렸고, 무리에게 쫓기던 사내가 날렵한 동작으로 담장을 넘어갔다. 《뒤쪽으로 따라가! 어서!》 악당들의 외침에 - 아니면 정장을 한 수사관일 수도 있다. 샘은 내용을 따라갈 수 없었다. 본 적이 없는 영화였다 -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자가 뒤돌아 보았다. 머리가 길다는 점만 빼면 용모가 딘을 많이 닮았다. 샘은 리모컨을 제자리에 내려놓곤 시뻘겋게 불을 토하는 말들이 달려가는 걸 지켜봤다. 괴물을 닮은 말들을 피해 딘은 뒷골목으로 달아났다. 경광등을 요란스럽게 번쩍이며 경찰차들이 도로를 질주했고, 음모에 걸려든 불운한 젊은이 또한 뒷골목으로 몸을 던졌다.
남자가 달아난다. 딘이 달아난다. 아무도 그들을 잡을 수 없다. 왜냐하면 딘은... 『아냐, 이건 정말이지 아니야.』 코앞으로 눈부신 손전등을 들이대고 있다는 감각이다. 눈이 멀 것만 같았다. 팔을 갈지자로 휘젖던 샘은 TV를 도로 꺼버렸다.
『하느님!』 그의 소망은 너무나도 조촐했다. 그렇지 않은가. 새로운 제2의 천지창조를 희망하는게 아니다. 그저 숙면을 취하고 싶을 뿐이었다. 세상 모르고 잠들어, 어떠한 꿈도 꾸지 않고, 행복한 기분으로 깨어나면 좋겠다고 바랄 따름이다. 『그런데도 나를 벌하는 겁니까!』 느리게 이동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커튼 너머로 넘실거렸다. 불규칙적 모양을 띈 빛의 물결이 반대편 벽지를 타고 천장까지 흘러갔다. 그러자 방안은 물이 가득찬 어항이 되었다. 『하느님!』 신은 원망 섞인 질문에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눈을 뜨면 향긋한 커피가 머리맡에 놓여있다. 바닐라 향이 첨가된 달콤한 커피다. 《이제야 일어났냐, 우리 잠꾸러기~!》 반쯤 열린 욕실에서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려온다. 《너, 어제 늦게까지 게임했지. 이 형에게 숨길 생각일랑 말아. 나는 배트맨이란 말이다! 여자들 옷, 어디까지 벗겼냐. 팬티는 벗겨봤냐.》 하얀색 거품 투성이의 칫솔을 쥐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봤자 하나도 안 무섭다. 거기다 화를 내는 요점이「성인 사이트에 접속해서 저속한 옷 벗기기 게임이나 하며 밤새도록 놀았다」가 아니라「여자 브래지어 벗기는데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려」서야 기운이 쏙 빠져버린다. 「그러는 형은 얼마나 빨리 벗기는데!」 도날드 하비*와 오빌 메이져스*, 닥터 케보키언*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는 설명은 뒤로 접고 샘은 발끈해서 소리부터 치고 본다. 《알몸으로 만드는데 딱 5분.》 죽음의 천사고 안락사고 하나도 모르는 형은 손가락 다섯 개를 자랑스럽게 들어보인다. 그러다 돌연 표정을 바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런데 거들은 착 달라붙어서 잘 안 움직이긴 해. 아무리 나라도 그건 좀 힘들어.》
욕실 문은 닫겨 있다. 그런데도 샘은 여전히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식으로 문가를 쳐다봤다.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면 안에서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립고, 또 그리운 얼굴이 말이다. 《새미? 화장실 비었다. 너도 오줌 눌테야?》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곳의 전등은 계속해서 꺼져있는 채로 있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샘은 화가 난 채 웃어댔다. 그리고 울었다. 얼룩에 얼룩을 더하는 새 눈물을 손등으로 부지런히 닦아내며 한 맺힌 저주의 주문을 읊었다. 『아빠에게 일러바칠테다.』 존이 죽어 이젠 이 세상에 없다는 건 나중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주문. 그리고 강력한 주문. 『아빠에게 이를 거야. 두고 봐.』 그야말로 어린애다운 발상이다. 창피하다는 인식은 있어서 그 증거로 코가 새빨갛게 번졌다. 그러나 박탈감과 피로감에 곤죽이 된 머리로는 빈 깡통을 향해 딱딱한 복숭아 씨앗을 던지는게 왜 어리석은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몸을 똑바로 유지하기 위해선 손으로 벽을 지탱해야만 했다. 샘은 고개를 숙인 채 1분가량 깊게 심호흡했다. 그러나 그 어떤 행동을 취해도 몸은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납작하게 몸이 눌려 유리판 사이에 낀 듯한 느낌이었다.
달콤한 냄새, 꿈의 냄새. 부탁이니 손을 잡아줘. 《샘? 넌 그냥 내 궁둥이 아래로 착 붙어있기만 하면 돼.》 절망감이 바람에 둥둥 떠다녔다. 《괜찮아. 내가 있어. 네 옆에 이 형이 있다고. 그러니까 넌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야. 하나도 괜찮지가 않아... 팔을 교차시켜 스스로의 몸을 안았다.
딘은 섹스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눈빛에서 샘은 전혀 다른 사실을 보았다. 5분.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기는데 소요되는 시간. 그가 사타구니로 손을 뻗었을 때 샘은 뜨겁게 신음소리를 흘렸다. 자존심 같은 건 진작에 걷어치웠다. 네 발로 엎드려선 빌었다. 가슴과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차례로 입을 맞춰달라고 애원했다. 딘이 한 손으로 샘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엄지손가락으로 뺨을 쓸었다. 샘은 입술을 핥았고, 딘의 등으로 팔을 둘렀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야만 했다. 《나는 너와 섹스하고 싶지 않아.》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결코 사실이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 샘은 구역질했다 - 그토록이나 싫었다면 딘의 목덜미가 흥분감으로 붉어질 턱이 없었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럴 것이다.
『살려줘.』 나선으로 회전하며 쏟아지는 불가사의한 폭포가 이곳에 있다. 영원히 미명의 새벽은 오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밤. 다시 밤. 샘은 눈을 붙이고자 한 자신의 노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세제 향이 강렬하게 남은 이불을 머리꼭대기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줄넘기를 하는 토끼와 한 무리의 양떼들, 그리고 심벌즈를 쥐고 있는 원숭이들이 이때다 하고 달겨들었다. 욱 하는 것도 잠시, 온몸의 뼈가 달그닥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정신을 갉아먹는 짐승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동안 샘은 얌전히 그들의 발 아래서 짓밟히고만 있었다. 『살려줘...』 그 애원에 호응하듯 긴팔 고릴라가 샘의 머리를 꽉 하고 눌렀다.
『곱게도 지랄한다!』 웅크리고 누워 훌쩍대는 그 모습이 어찌나 한심스럽던지 딘은 방금 전까지 동생을 살해하고자 칼날을 갈아댔다는 것도 깡그리 잊었다. 『잘 하는 짓이다. 임마! 여기서 뭐 하냐. 혼자서 질질 짜고!』 놀란 샘은 숨을 훅 들이마셨다. 『.......... 딘?』 『배트맨이시다!』
Posted by 미야
2008/04/20 23:50
2008/04/2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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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이 터져도 바퀴벌레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 진절머리를 내며 잡지를 둥글게 말아 적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프랑스 일부 지방에서는 이놈의 망할 벌레를 재물의 수호 영물로 간주해서「그곳에 있었으냐?」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로 관망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에드먼드 포는 바퀴벌레를 적그리스도의 화신으로 취급하는 아일랜드계 태생이다. 그의 할머니는 바퀴벌레를 보이는 족족 죽였고, 아멘 할렐루야를 외쳤으며, 더럽다고 질색하는 손주를 향해「이것들은 예수님을 배반했으니 죽어도 싸다」라고 가르쳤다. 벌레에겐 목사님의 설교를 알아먹을 귀가 없으니 배반이고 뭐고 없지 않느냐 대들어봤자 할머니의 믿음은 굳건했다. 바닷물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짠 것처럼 신념은 변함 없었다. 그것들은 죽어야 했다. 재밌게도 정작 나이가 들자 에드는 그토록 싫어하던 할머니의 행동을 고스란히 답습했다.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으라차차, 갈색의 윤기나는 곤충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게 되어 자신을 부리는 악마에게로 돌아갔다.
『우라질 것들.』 허연 내장을 까발리고 죽은 벌레를 씩씩거리며 노려봤다. 그리고 낙담하여 잡지를 집어 던졌다. 풍만한 여자의 가슴이 인쇄된 부분으로 등껍질의 일부로 여겨지는 부스러기가 옮겨 붙었다. 여자의 가슴이 D컵이 아니라 G컵이라고 해도 잡지는 이제 다 봤다. 『날이 밝는대로 소독업체를 불러야겠군.』 채 읽지 않은 잡지가 아까워 에드는 한층 더 으르렁댔다. 이번 여름에 유행할 비키니를 다룬 특집 기사엔 젖꼭지를 훤히 드러낸 여자들이 지방 흡입술의 완벽함을 으스대며 엉덩이를 흔들고 있을 터다. 그 멋진게 일시에 곤죽이 되어버렸으니 원망이 하늘을 찔렀다. 『싸그리 불질러 버려야지, 이거 원...』 그래서 에드는 창백한 안색의 젊은이가 오피스 데스크의 유리창을 가만히 두드렸을 적에 고양이 꼬리로 불 붙었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돈 벌자고 사업한다는 건 까마득히 잊고 말이다.
『뭐요!』 『실례합니다.』 『뭘 실례한다는 거요!』 『저어, 싱글 침대로 방을...』 『뭐? 방을 달라고?!』 전화번호부 책에 맨 처음으로 이곳 에이든 모텔의 이름이 올라간 건 어디까지나 알파벳 때문이지 친절 순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심하다. 기분이 상했는지 남자의 얼굴에서 태연한 표정이 사라졌다. 『그럼 이대로 돌아갔다 낮에 다시 와야 합니까.』 낯 두꺼운 에드는 퉁명스럽게 변명했다. 『미안하오. 내 말인 즉, 체크 인을 하기엔 많이 늦은 시각이라는 거요. 어디 보자, 자정이 좀 넘었구먼... 현금으로 계산하실 거요? 아님 카드?』 『현금으로 계산하겠습니다.』 남자는 바지 뒷춤에서 지폐 다발을 꺼내 필요한 액수 만큼를 세어 내려놓았다. 『옛소. 18호실이오. 이곳에 서명하쇼.』 공손히 열쇠를 받아든 그는 숙박부에 깔끔한 글씨체로「짐 락포드」라고 적었다. 남자가 볼펜을 굴리는 동안 에드는 볼륨을 낮춘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려 둥글둥글한 여배우의 젖통이 위 아래로 마구 흔들리는 걸 집중하여 보았다. 등 뒤로 해서 여자를 안은 남자가 콘돔을 씌운 페니스를 거칠게 찔러넣었다. 카메라가 이동하면서 붉게 달아오른 여자의 성기가 클로즈업 되었다. 에드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
『나는 짐 락포드라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연거푸 말하지만 이곳 에이든 모텔이 전화번호부 책에 제일 먼저 실린 까닭은 순전히 알파벳 때문이지 직원의 친절함과 서비스 정신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누굴 찾는다고?』 『짐 락포드.』 『지금이 몇 시라고 생각하쇼, 형씨.』 『새벽 3시가 좀 넘었군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며 유리창으로 체중을 기대왔다. 그리고 짐짓 자신의 손목시계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시계의 유리판은 자잘한 흠집으로 가득차 대단히 거친 그의 인생을 어렵지 않게 상상하게 만들었다. 『흐음, 정확히 3시 13분이네요.』
내가 알게 뭐야 - 그것이 에드의 머리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가 그렇게 말할 거라는게 훤히 들여다 보인다며 낡은 가죽 재킷을 입은 사내가 빙긋 웃었다. 조심해, 이 양반아. 나는 완전무결한 미치광이라고. 그 미소는 유령처럼 싸늘했고 소름끼쳤다. 마치 시체가 웃는 듯했다. 에드는「내가 알게 뭐람」라고 떠드는게 결코 이롭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하고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는 두 눈 시퍼렇게 뜬 상태로 다리 아래로 던져지는 걸 원치 않았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건 더더욱 사절이었다.
어두운 창고로 흐릿한 전구가 켜졌다. 아까보다 더 큰 불안감에 휩싸인 에드는 탐색하듯 상대방을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잠깐만... 형씨. 찾는게 누구라굽쇼?』 『짐 락포드.』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는 침착한 어조로 그 이름을 한 번 더 반복하여 들려주었다. 덥지도 않은데 땀이 흘렀다. 미소도 어느새 지워지고 이제 그의 눈은 어두워졌다. 가까이 있어도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유령 - 두꺼운 고무창을 덧댄 신발을 신고 소리도 없이 복도를 걸어다니는 - 이래저래 복잡한 감정에 혼란스러워졌다. 『댁은 경찰이나 알바 짭새 뭐 그런 거요? 짐 락포드인가 하는 작자가 수배범이라도 되오?』 질문을 던져놓고 스스로 혀를 깨물었다. 경찰이라면 진작에 신분증부터 들이밀었다. 그리고 눈에 레몬즙이 들어간 사람처럼 굴지도 않았다.
『아뇨. 그저 말도 없이 가출한「건방진」애를 찾고 있는 것뿐이예요.』 남자가 많이 해본 솜씨로 지폐를 약간 던졌다. 『밤새 이러고 있고 싶진 않군요.』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소득을 움켜쥐고 에드는 말했다. 『18호실.』 그리고나서 에드는 지나치게 달아오른 오븐 속에서 회색의 연기를 풀풀 피워대고 있는 칠면조 요리를 떠올렸다. 새카맣게 타서 포크로 살짝만 건드려도 바삭 부스러지고 마는... 그리고 곧 혼잡한 LA 도로 한 가운데서 미친 사람처럼 뜀박질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곧 차에 치일 것이다. 머리가 무거웠다. 아스피린이 필요했다.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문을 부순다. 동전의 뒷면이 나오면... 그때도 문을 부순다.』 딘 윈체스터는 천천히 말하며 문앞에 적힌 숫자를 헤아렸다. 방금 전에 그는「15」를 봤고,「12」를 봤을 적보다 두 배는 흥분했다. 그리고「16」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오자 이제 세 배로 흥분했다. 머리로 피가 몰려 이마가 선명한 주홍색이었다. 화재경보기라도 울리면 아주 완벽할 것 같았다. 『이걸 그냥... 응? 아주 그냥...』 심장이 파열되지 않는게 이상했다. 아니, 사실 분노로 가득찬 그의 가슴은 진작부터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공허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과하게 쌓인 열기를 한줌이라도 덜어내려 시도를 해보았다. 허나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밖으로 내보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울화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어서「쾅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종결될 지경이었다. 술꾼들에게서 나는 입냄새 만큼이나 그것은 제법 확실했다. 『살껍질을 벗기던가... 팔목을 확 비틀어...』 무지막지하게 살기등등한 미소가 얼굴에 퍼졌다. 『패버릴테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텅 비어버린 옆 침대를 발견하고 망연자실한 것도 잠시다. 악마가 잡아갔다 - 비명을 지르며 시트를 움켜쥐었다. 공포는 그가 느낄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동생이 사라졌다. 딘은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침대를 마구 흔들었다. 「없어졌어요!」 콧물이 코에서 나오는 것도 모르고 딘은 핸드폰에 대고 아우성을 쳤다. 「자, 잠깐 눈을 뗐을 뿐인데! 어, 어쩌면 좋아요, 바비!」 날카로운 칼날이 배를 찌르고 들어왔다는 식으로 고함을 질러대서 바비는 딘이 말하는 내용의 절반도 알아듣질 못했다. 몇 개의 단어만이 가까스로 귀에 들어왔다. 짐승처럼 씩씩거리는 호흡을 곁들여 샘, 없어져, 사람 살려, 대충 이런 것들이 꼬리를 무는 뱀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딘. 무슨 문제지? 의자에 앉은 뒤에 심호흡을 하고 나서 차분히 말해보렴.》 『샘이, 새미가 없어졌어요!』 《소리는 그만 지르고 침착해라. 마지막으로 동생을 본게 언제지?》 『몇 시간 전에요!』 《그렇담 아주 멀리 가진 않았겠구나. 너희들, 뭘 하고 있었지?》 정확하게는 뭘 노리고 있었냐는 질문이었다. 어떤 놈을 사냥하고 있었는가에 따라 샘이 처한 위험도 달라질 터다. 연장자의 노련함으로 바비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저울질했고, 헨젤과 그레텔이 흘린 빵부스러기를 따라 샘을 서둘러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 데바처럼 골치 아픈 종류가 아니라면 그들은 심각한 부상을 입기 전에 존의 막내 아들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해내야 했다. 바비는 마지막 질문을 반복했다. 《너희들, 뭘 하고 있었지?》 남의 속도 모르고 딘은 다음처럼 낼름 대답했다. 『키스했어요!』 《......》 핸드폰 저편에서 거칠게 숨을 훅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열 여섯 살의 아이티 창부와 섹스해서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고백하는 것보다 질이 나빴다. 신음하며 손으로 머리를 감싼 딘은 얼른 말을 바꿨다. 『어... 죄송해요. 싸웠어요.』 《싸웠다고?》 그제야 악마 어쩌고의 가능성을 배제한 딘은 여차저차한 인사말도 생략한 채 폴더를 닫아 통화를 종료시켰다. 체스판을 거꾸로 뒤엎는 행동에 바비가 앗 소리를 냈지만 이미 다른데 정신이 팔린 딘의 귀에까진 닿지 않았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악령은 이번 일엔 관계가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자신을 올려다보던 동생은 자진하여 제 발로 걸어나간 거였다.
목이 칼칼했다. 딘은 물을 마셨다. 총을 챙겼다. 전화번호부 책을 들어 모텔 항목을 찾아 첫 번째 페이지를 뜯어냈다. 「나는 잠을 자고 싶을 뿐이야. 걱정하지 마. 아침엔 반드시 돌아와」라고 적은 짤막한 메모가 협탁 위에 올려져 있는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마누라가 도망친 사내들이 다 그러하듯, 망가진 자동차를 도끼로 내려치는 상상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을 뿐이다.
Posted by 미야
2008/04/13 23:27
2008/04/1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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