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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에게 담배가 필요합니다. 천식으로 또 병원에 입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담배가 필요합니다. 욕 얻어먹고 잠수타며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나의 토코쿠키 마을이! 마을이! 마을이~!! 2007년 12월 31일과 2007년 1월 1일은 하루 차이가 아니지라. 그 결과 마을이 초토화 되었습니다.
의.욕.상.실. 단칸방부터 다시 시작.
이요... 네가 그리워. 다시 만나면 붙잡고 절대로 안 놔줄테다. 흑!
울며 불며 쓰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샘이 의자에 앉았다. 팔을 길게 뻗어 TV를 틀었다.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운 환자의 몸에 주기를 찔러넣는 장면이 나왔다. 동생은 잠시「응?」하는 표정을 짓더니 지역 케이블 TV의 채널 번호를 꼼꼼하게 확인한 뒤에 버튼을 조작했다. 화면은 이제 감청색 양복을 단정히 입은 아나운서가「아무개 씨 가게에 불이 나서 물건이 싸그리 탔시유」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샘은 예배라도 드리는 사람처럼 경건하게 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두고 뉴스를 시청했다.

까칠한 얼굴에 창백한 불빛이 반사되어 한층 더 음영이 짙게 만들었다.
딘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쓰러지게 생겼잖아! 도대체 누구야, 저 말라빠진 콩나물은!」
한 입 베어물곤 외면당한 햄버거는 이미 오래 전에 싸늘하게 식었다. 다른데 정신이 팔린 샘은 그걸 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먹은 듯했다.
「또 밥투정이야? 오, 새미... 저놈의 성질머리를 그냥 콱!」

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은 모텔 방을 한바퀴 돌고, 한숨을 쉬었다. 천장을 응시한 뒤에, 핸드폰을 들어 새로 도착한 메시지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관심도 없는 워싱턴 정가 소식과 함께 텔레비전에서 부시 대통령 얼굴이 나왔다. 인상을 찡그린 샘은 코를 만졌고, 거울을 쳐다봤고, 끙 소리와 함께 다시 의자에 앉았다. 순간 허름한 철제 의자가 무거운 체중에 질겁을 하며 야단법썩을 떨어댔다.

이 모든 걸 고스란히 지켜본 딘은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 있자... 내가 지금 뭐하고 앉았냐. 이건 완전히 스토킹이잖아.」
샘이 손을 씻는다. 샘이 거울을 본다. 샘이 노트북 전원을 켠다.
몰래 설치해둔 카메라로 은밀하게 사람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투명한 벽, 그리고 투명한 바닥.
딘은 마른 침을 삼켰다. 이건 완전히 악마의 유혹이었다. 동생의 뒷통수, 어깨와 팔, 그리고 하얀 부분이 남지 않도록 바짝 다듬어진 손톱이 비상구의 화살표처럼 점등했다.「종착지는 바로 여기입니다」딘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놈의 망할 화살표 그림을 졸졸 따라다녔다. 반짝이는 입간판은 때로는 화장실로, 때로는 냉장고 앞으로, 때로는 침대로 위치를 옮겨갔다. 그때마다 딘은 낚시줄에 코가 꿰인 물고기처럼 이동했다.

「옳지 않아, 이런 건.」
손톱으로 침대 시트를 깔작대며 긁었다.
「당장 그만둬, 딘 윈체스터.」
존은 늘 동생을 지켜보고 있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장남은 그 명령에 순종했다.
그치만 아빠의 말씀은 샘이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는 걸 빤히 쳐다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존의 명령을 왜곡하는 행위이자 모두로부터 비난받아 마땅한 불알 변태 짓이었다. 쪼르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노란 물줄기가 뭐가 좋다고... 딘은 악 소리를 내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눈 돌려, 눈 돌리라고! 아악! 나, 진짜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니.」

표정부터 멍한 것이 나사 하나를 잃어버린게 분명한 샘이 손 씻는 것을 잊었다. 깜짝 놀란 딘은 세면대 쪽을 턱짓하며 부주의한 동생을 나무랐다. 하지만 크흠 하고 목구멍으로 힘을 주어봤자 굵은 솜뭉치가 콱 틀어찬 성대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곧 시야가 검게 변했고, 몸뚱아리로부터 박리된 정신은 뇌를 하얗게 태워버렸다. 명줄이 10년은 짧아졌다. 그는 기진맥진한 몸으로 깊이를 추정하기 힘든 구덩이 아래로 추락했다. 체력이 고갈되는 건 순식간이었고, 딘은 손가락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 거덜난 몸뚱이는 침대 시트를 긁는 작은 동작조차 버거워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갗난 아기처럼 누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밖엔 안 남았다. 딘은 패배 의식에 몸부림쳤다.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눈에 고인 눈물을 밖으로 흘려보낼 기운도 없어 울지도 못 한다.

차갑게 가라앉은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그를 책망했다. 그 목소리는 기계적이었다.
- 그러고도 동생을 잘 보살피겠노라 맹세할 수 있어? 할 수 있겠어? 넌 정말 쓸모 없는 녀석이야. 아버지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던 건 당연해. 넌 실패자야. 보라고. 네 꼬락서니를 봐. 기력이 쇠진한 노인네처럼 누워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있잖아. 이래서는 샘을 지킬 수 없어. 너도 깨닫고 있겠지? 네 동생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가 없다고.
눈꺼풀을 깜빡였다. 한계 이상으로 차오른 눈물 덕분에 사물이 전부 흐릿했다.
- 하루라도 빨리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해. 샘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새미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 바비 아저씨나 아니면 앨런...
앨런? 주먹이 쥐어졌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면서 이가 빠득 갈렸다.
- 싫어!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서 새미를 못 데려가!

아드레날린이 엉망으로 휘저어놓은 뇌가 꼭대기에서부터 저 바닥까지 출렁거렸다.
맹세코 다 때려부술 것이다. 수납장 위의 물건들을 쓸어버리고, 문짝을 걷어찰 것이다. 딘은 야차의 가면을 쓰고 난동을 부려대는 자신의 모습을「바깥」에서 볼 수 있었다. 완전히 미친 개였다. 앨런의 머리로 총구를 겨누었다. 깨어진 술병과 파편으로 변한 나무 의자가 어지럽게 널린 가운데 그는 비무장의 앨런을 강제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기겁을 한 그녀가 팔을 들고 항복의 제스츄어를 취했다. 잘게 부수어진 유리 조각이 살갗을 파고들어 청바지는 금세 시뻘건 색으로 번져나갔다. 그걸 보고도 딘은 찰칵 소리가 나게끔 총을 장전했다. 눈이 뒤집혀 앞 뒤 구분이 없어졌다. 분노만이 유일하게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서 새미를 못 데려가. 당신이라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아, 앨런.
경고도 주지 않고 무직정 방아쇠를 당겼다.
무릎을 꿇고 앉은 몸이 앞으로 털썩 기울어졌다.

《와... 엄청나군. 아버지의 친우를 그런 식으로 쏴죽일 수 있는 거야?》
싸늘한 목소리가 매캐한 연무를 좌우로 흩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개 망나니.》
단벌이 아닌가 의심스런 체크무늬 재킷을 걸친 바비가 피투성이로 변한 앨런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가까운 조카 대하듯 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바비의 태도는 냉랭했다.
《너의 그런 감정적인 태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꼿꼿하게 선 바비와 앨런이 나란히 합창했다.
《냉정해져라!》

새카맣게 암전되었던 시야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려 했다.
머리를 식혀라. 흥분하지 마라. 무엇이 최선인지를 궁리해라.
꽉 쥐어졌던 주먹의 힘이 풀렸다. 미친 듯이 방망이질하던 심장이 펌프질 속도를 약간 늦추며 그 주인된 자의 눈치를 살폈다. 딘은 쓰게 웃으며 흐느낌을 닮은 호흡을 내뱉었다.
답은 사실 오래 전부터 이미 나와 있었다.
다만 그는 그게 싫어 지금껏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 새미와 떨어지는 거다.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일단은 딘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붙여 샘을 바비 아저씨에게 보낼 작정이었다. 한 달에서 두 달. 그동안 딘은 망할 화재 현장에서 채 타죽지 않고 달아난 뱀파이어 오리진을 끝까지 추적할 생각이었다. 리는「아마도 죽었을 것」이라며 그 대답을 흐릿하게 회피했지만 딘은 그 정도로「아, 그렇습니까. 그거 참 잘 되었습니다」하며 물러설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무덤을 파내 그 뼈에다 소금을 뿌려 태우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끝나지 않는다. 마무리가 엉성하면 나중까지 골치 아프다.
- 몸은 곧 회복될 거야. 리도 장담했던 거니까...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가시 선인장이 빼곡한 멕시코 오지를 끝이 뾰족한 부츠 차림새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꿈꿨다. 양편으로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여자 둘을 꿰차고... 뱀파이어를 사냥한다. 그리고 샘에게 전화를 걸어「난 여기서 떵떵거리며 잘 살테다. 그러니 넌 대학으로 돌아가던지 말던지 맘대로 하렴」장난처럼 쾌활하게 말하는 걸 상상했다.
- 괜찮아. 샘은 강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거야.
원래 남이 참견하던 걸 싫어하던 녀석이다. 대학에 가서도 공부 잘 했다.
- 녀석에겐 내가 없어도 괜찮아. 아니...
침이 말라붙은 입이 아팠다.
- 솔직해지자. 차라리 내가 없는게 샘에겐 훨씬 이득일 걸.

뼈를 갉아대는 깊은 혐오감.
동생을 필요로 한 건 나.
동생을 옆에 두고 싶어한 건 나.
새벽녘에 부득부득 찾아가선 강제로 끌어당긴 것도 나.
그런 주제에 동생에게 총구를 들이민 것도 나.
그런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작별하는 거다. 각자의 길을 가자.
눈을 뜨자 짧은 머리카락의 성모 마리아가 죄인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마를 잔뜩 찌푸린 여인은 똑같이 그 마음으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진심으로 슬퍼 보이는 그 미소에 눈물이 다시금 왈칵 솟구쳤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아름다운 여인은 부드럽게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딘은 그런 그녀의 자애로운 행동이 자신에게 허락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에겐 위로받을 자격도 없었다. 딘은 거부의 의미로 천천히 얼굴을 돌려 코로 베개를 세게 짓눌러댔다.

『형?』
풀을 먹인 종이처럼 뻣뻣하게 굳은 목소리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저어... 기분이 많이 안 좋아?』
지져스. 딘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이불을 꽉 끌어안았다.
『샘?!』

샘은 어쩔 줄을 몰랐다. 형은 큰 두려움에 빠져 있었고, 그리고 그 공포의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었다. 겁에 질린 초록색의 눈동자가 한참동안 이쪽을 살피다 이불 안으로 쏙 숨었다. 맙소사. 그는 샘이 주먹을 들어 마구 때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샘은 형의 이마를 쓰다듬기 위해 앞으로 뻗었던 손가락들을 도로 접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딘은 그대로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조바심이 났지만 샘은 물러섰다.

『어, 얼굴... 털구멍 투성이라... 미, 미안... 그, 그치만 나, 면도도 새로 하고...』
『음?』
『나, 거미 많이 닮았어?』
딘은 가만히 추측했다. 이것도 환상인가? 뜬금없이 거미? 털구멍?
현실이 아니라면 조금은 용기가 난다.
딘은 머뭇거리며 동생을 빼어닮은 형상으로 시선을 맞췄다. 화답하듯 샘이 조금 웃었다.

『안녕?』
『안녕.』
『오랜만.』
『응.』
『잘 지냈어? 그런데 그런 인사를 하기가 무색하게 모습이 영 엉망이네.』
『딘도 만만치 않아. 꼭 부랑자 같아.』
『이렇게 섹시한 부랑자 있음 나와 보라고 그래.』

같잖은 농담 따먹기에 용기가 났다.
수줍게 웃던 샘은 다시 한 번 더 딘을 만지려고 시도하며 손을 뻗었다.
순간 움찔하며 딘이 몸을 사렸다.
『안돼. 저리 가.』
『딘?』
『.......... 데려다줄테니까.』
『뭐?』
『널 안전한 곳으로 곧 데려다줄테니까.』

딘의 목소리는 대단히 작았다.
하지만 샘은 가까이에서 폭약이라도 터지는 줄 알았다.

『나에게서 떨어져.』

Posted by 미야

2007/12/30 23:57 2007/12/3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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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2007/12/31 01:08 # M/D Reply Permalink

    헉, 겨우 얼굴 한번 봤는데 떨어지라니...; 새미 충격받겠습니다...;;
    머릿속에서 샘의 퍼피 아이즈 공격이 급 망상되기 시작했어요...

    ... 흠. 역시 샘딘이라기 보단 딘샘의 관계랄까요.

  2. 밤맛만쥬야 2007/12/31 04:13 # M/D Reply Permalink

    맨날 눈팅만 하다가, 오랜만에 나온 Bloody blast에 미친 듯이 좋아하면서 살포시;; 글을 남겨요; 님의 소설은 심금을 자극하는 요소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서 읽고 또 읽어도 너무 좋아요!! 이번편을 보니 다음편에 대한 갈망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어요~후후.이런 아슬아슬한 분위기 너무 좋아효.ㅋ

  3. 와.. 2007/12/31 18:56 # M/D Reply Permalink

    이대로 영영 못보나 넘 걱정했는데,

    아..다행히 다시 글이 올라와서 넘 기쁘네요.

    일단 선리플 후 감상입니다....

    어여 빨리 두 사람... '

    행복하게 해주세요.^^

  4. 이즈 2007/12/31 22:32 # M/D Reply Permalink

    헉!! 떨어지라니...얼마만에 보는 형인데...샘 충격받았군요...ㅠ_ㅠ;

  5. 미모사 2008/01/01 00:06 # M/D Reply Permalink

    앗~~! 기다렸어요~~ㅠㅠ 돌아오셨군요~~(몸은좀 어떠신가요?)
    하지만..딘...흑흑.. 얼마만에 보는 형인데..2
    샘의 충격으로 흐려진 퍼피아이가 눈앞에 보이는듯해요;;

  6. 수수 2008/01/02 20:45 # M/D Reply Permalink

    어어엉.. 넘 오랜만이에요..기뻐여..ㅠㅠ 요즘 휴방이랑 정말 새해가 밝았지만 가슴한 구석은 허전합니다...

  7. 호야 2008/01/06 00:51 # M/D Reply Permalink

    눈팅만 하다가 첨으로 글을 남겨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담편 얼른 주세요!
    불쌍한 새미. 넘 큰 충격을 받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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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리통이라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몸살도 같이 겹친 거였어요. 상태 메롱이라는 걸 감안하셔야 할 거예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환자 간호하다 멀쩡하던 사람도 골병 든다고 했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체력 하나는 끝내줘요 큰소리 치던 리도 아흐레 째의 아침이 밝아오자 고개를 떨궜다. 아니. 정확하게는 고개를 뒤로 젖힌 거였지만, 여하간「햄버거 힐 - 그대들은 반드시 전사할 것이다」로 통칭되는 기말고사를 끝마치고 부어라 마셔라 종강 파티까지 치러낸 2년차 대학생처럼 기괴한 자세로 널부러져선 꼼짝을 안했다. 소파 등받이로 기댄 목은 이상한 각도로 꺾어졌고, 허리는 구부러졌다. 다리 하나는 학처럼 접어 가슴 안쪽으로 수납했는데 샘이 보기에 그런 자세가 가능하려면 요가 내지는 발레를 배웠어야 했다. 웰빙이라는 걸 생소하게 여길 그녀가 과연 요가에 흥미를 가졌을 것인가. 그랬기를 희망할 뿐이다. 만약에「요가? 그게 뭐여. 집에서 만든 요구르트의 한 종류야?」라고 반문하는 날엔... 쓴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랬다간 리는 우물에서 걸어나온 사다코의 이상한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사방을 휘저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샘은 그녀의 자세를 편안하게 고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할 자신도 없었다. 거죽은 술통에 빠져죽은 대학생이었을지언정 그녀는 누가 뭐래도 뱀퍼였고,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로 On 스위치가 들어가는 건 잠시 잠깐이다. 이를 다시 해석하자면 섣불리「간격」안에 들어갔다간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을 거라는 말씀.
곤드레만드레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던 존도 담요를 덮어주려 한 장남의 머리를 재떨이로 깨부수려 한 적이 있다. 발자국 소리에 반응하여 공격, 그 다음에는「누가 내 귀한 아들 머리에 구멍 냈어~!!」라고 울부짖고... 나중에 존은 무안해진 나머지「다음에는 나에게 담요를 가져다주기 전에 호루라기를 불거라」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것도 그리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왜냐면 호루라기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재떨이를 들입다 던지면 사람 머리에서 피 나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탁상 위로 놓여진 재떨이를 흘깃 쳐다봤다. 생소한 이름의 맥주 회사 로고가 인쇄되어 있고, 싸구려 유리 재질의 그것은 꽤나 무거워 보였다.
샘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드르륵 코를 골고 있는 그녀로부터 일정 거리를 떨어져 안정권 밖에 계속 머무는 편을 선택했다. 선잠에서 깨어난 다음에 뒷목이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해도 어쩔 수 없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하지 않은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피곤에 지친 그녀가 졸음을 핑계로 눈을 붙인지 정확히 40분이 지났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야! 어느 놈이야!』
샘의 판단은 옳았다. 뼛속까지 헌터인 그녀는 반사적으로 재떨이를 움켜쥐고 그것으로 가상의 적을 응징하려 했다. 차마 던지지 않았던 건 전화벨이 두 번 울렸다 곧 끊겼기 때문이었고, 더하여 뭉친 근육으로는 접었다 펴는 동작이 썩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는 악 소리를 지르며 재떨이를 놓쳤고, 껑충 뛰었고, 그 모습에 겁 먹었다는 투로 전화벨이 뚝 그쳤다.
『쳇... 모처럼 달게 자는 중이었는데.』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잠시 뒤에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슈.』
익숙한 모습이다. 존도 같은 방식으로 그들 형제에게 안부 전화를 걸곤 했다.
전원이 꺼진 시커먼 텔레비전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샘은 홀로 옛 기억을 더듬었다.

때릉때릉 소리가 계속 울리면 전화를 받지 말아라. 아버지는 두 번 신호가 가자마자 전화를 끊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신호가 울리면 그때는 딘이 전화를 받도록 해라.
팩스가 희귀품이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휴대폰 또한 잘 나가는 사장님이나 사용하는 사치품이던 때가 있었다. 그리 먼 옛날도 아니다. 존이 최초로 핸드폰을 구입한 건 1996년도 4월의 일이었고, 1995년 초반만 해도 그들은 공중 전화와 모텔 전화기에 기름 때와 지문을 마구 묻혀대곤 했다.
명심해라. 전화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네 형이다.
왜 형만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거냐 샘이 바락 대들자 존은 이렇게 대꾸했다.
딘은「네, 아버지!」단 한 마디만 하는데 너는「아빠, 거기가 어디예요? 다치신 곳은 없어요? 언제 오세요. 보고 싶어요. 아, 딘이 또 학교 가는 걸 빼먹었어요! 형에게 야단 좀 쳐주세요. 아, 그런데 아빠? 질문이 있어. 닉슨 독트린이 뭐야?」라고 속사포처럼 퍼부어대잖니. 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하다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지 금방 잊어버려.
막내는 존의 설명에 화가 났다. 그치만 반박은 할 수 없었다. 샘이 누구보다 질문이 많다는 건 남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존의 지적은 옳았다. 샘이 전화를 받으면 수중의 동전이 턱없이 부족하게 된다.

그래도요, 만약 형이 옆에 없음 어떻게 해요. 나 혼자 있을 적에 아빠 전화가 오면요. 네?
괜한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건조해진 피부가 당겨서 아팠다. 왜냐하면... 샘은 손바닥으로 뺨이 얼얼해질 떼까지 문질렀다.
형은 항상 샘의 옆에 있었다. 있어 주었다. 덩그마니 혼자 남겨진 샘이 때릉거리며 울어대는 전화기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형이 옆에 있었고,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도 형이었다. 딘은 형편 없는 솜씨로 샘에게 옷을 입혔다. 아침 밥을 챙겨주었고, 예쁜 여자 아이에게 윙크하는 법을 설명했다. 머리를 빗겨주고, 손톱이 지나치게 길게 자라지는 않았는지를 검사했다. 그는 샘을 혼자 있게 하지 않았다. 결코 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같이 있었다. 같이 있어 주었다.
그것이 형이 할 일이잖아. 널 돌보는 것, 그게 바로 내 일이라고.
샘은 거칠게 신음했다. 그에게로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이제 그만 손 털고 일어나 형의 할 일을 하란 말이야!」소리를 질러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피자를 사가지고 오마.』
뜬금 없이 피자라.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나이 산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샘은 눈꺼풀만 깜빡거렸다. 지금까지 그들은 전화로 주문 가능한 음식들만 먹어댔다. 그리고 피자 역시 전화로 배달이 가능한 종류였다. 전국에 있는 모든 피자 배달원들이 동시 파업을 일으킨게 아니라면 일부러 그녀가 가게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피자.......... 요?』
손가락에 침을 발라 급하게 눈곱만 떼어낸 리는 새벽을 맞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거리 매춘부처럼 보였다. 샘은 인상을 찡그리며 카펫트 무늬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특별히 추가하길 원하는 토핑이 있니? 샘.』
『바곳의 열매와 흰독말풀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 소리에 리의 얼굴이 걸작이 되었다.
『우와, 그거 무지 스페셜한 토핑이구나. 알았어. 페퍼로니 피자... 괜찮지?』
뜨끈뜨끈한 그 냄새만 상상해도 구역질이 치밀었다. 그래도 샘은 예, 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이 말을 했던가. 어제 저녁 해리스 에버뉴에서 교회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용의자가 경찰의 체포에 불응하다 사살되었다고 하더구나.』
카펫 무늬에서 얼른 시선을 떼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예?』
『이름은 찰리 프레슬리이고, 평생 술에 쩔어 건달처럼 살다 간 길바닥 인생이야. 가엾은 사람... 그래도 막판에 자기 몸뚱이 하나 기증하고 여러 사람 살렸으니 분명히 천국 갔겠지.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렴.』
『뭐요?!』
『빨리 좀 알아 들어. 머리 회전이 왜 이리 답답해. 한 노숙자의 사망 원인이 평범한 심장마비에서 22구경 권총 구멍 두 개로 살짝 바뀌었다는 거야. 어차피 고통은 못 느끼니까 상관 없잖아.』
그제서야 샘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얘기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뱀파이어에 의한 살인 사건은 없다는 거다. 시체도 없고, 송곳니도 없고, 피 빨린 희생자도 없어. 알겠어? 그냥 반사회적인 술주정뱅이만 있는 거지.』
리는 한참동안 샘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샘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참. 딘은 안에서 쉬고 있으니까...』
열쇠를 챙기면서 리가 잔소리를 했다.
『얼굴이라도 보겠다며 수선을 피워 그를 힘들게 만들진 마라.』

순간 혈압이 치솟았다. 샘은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싸구려 카펫트의 풀린 올의 모양새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저 안에 진드기 많다. 섬유는 세로와 가로로, 그리고 다시 꽈배기 모양으로 얽혀서 하나의 실을 이룬다. 먼지가 쌓이고, 각질이 떨어지고, 우주에서 날아온 미세한 금속 가루가 내려안고... 그 마이크로 코스모스의 세계에선 단 1cm의 거리가 지구에서부터 달 나라 만큼이나 멀다. 참고로 달은 지구로부터 약 38만km 밖에 있다.

주먹으로 무릎을 세게 때렸다. 그것만이 샘이 당장 해보일 수 있는 항의의 방법이었다.
『제기랄! 왜요!』
어째서냐. 왜 형을 보면 안 된다고 막는 거냐. 왜 딘은 날 보지 않겠다는 거지. 송곳니가 자라났나. 아님 눈동자가 노랗게 변했나. 사방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헐떡이는 숨을 토해냈다. 그간 힘들게 억눌러왔던 두려움이 갑자기 폭발하듯 용솟음쳤다. 샘은 어깨를 감싸쥐고 우, 우 하고 꼬리가 왕창 떨어져나간 개처럼 소리를 냈다. 이제는 한계다. 그는 낮이고 밤이고 에디 머피나 우피 골드버그, 레슬리 닐슨이 구르고, 눕고, 날아다니는 코미디 영화를 보며 머리를 희게 탈색했다.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치만 샘은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었다.
맙소사. 만약에 그가 뱀파이어로 변했다면... 하느님.

『워워~! 진정하라고, 도련님. 네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내가 저 안쪽 방으로 선짓국을 퍼 나르는 거 봤어? 동물의 피나, 사람의 피... 게중에 아무거나 봤냐고.』
물론 본 기억은 없다.
『정말 아닌 거예요?』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라도 할까. 날 믿어. 그의 눈동자는 노랗지 않아.』
그래도 불안감은 잠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형은...』
리는 손바닥을 들어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감각의 대혼란 때문이야. 음식을 먹으려는데 테이블로 바퀴벌레가 기어간 궤적이 보이고, 커피를 리필해주는 웨이츄리스가 4시간 전에 주방에서 점장이랑 신나게 붙어 먹었다는 것까지 훤히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상상해봐. 기분이 어떨 것 같나. 무지하게 끝내줄 것 같지? 어느날 갑자기 1미터 밖에 서있는 사람의 털구멍이 죄다 보이는 거야. 타란튤러스 거미의 200배 확대판의 이미지가 네 얼굴이라고 하자. 그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 딘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니?』
『디, 딘은... 그럼...』
샘은 크게 한 방 먹은 표정을 지었다.
『제 얼굴의 터, 터, 털구멍이 끔찍스러워 절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마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리는 점퍼 속으로 팔을 꿰었다.

Posted by 미야

2007/12/16 20:59 2007/12/1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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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 2007/12/18 01:12 # M/D Reply Permalink

    무엇보다 기다렸던 작품이네요.

    이번편이 마지막편이라고 들었는데,

    끝이 아닌가보네요.

    근데, 리.....마지막 반전 대사때문에 한참웃었네요.

    터..터..털구멍이라니....

    사실 딘은 샘 털구멍도 이쁘다고 할것같지 않나요?^^;;;;

    미야님 힘내시구...

    어서 우리 딘을 샘과 만나게 해주세요..^^

  2. 고고 2007/12/19 22:04 # M/D Reply Permalink

    아. 딘 너무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면회신청! 샘을 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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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샘 윈체스터는 필사적으로 궁리하며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공들여 면도를 하고, 양치질을 한 뒤에 얼굴에 로션을 발랐다. 머리를 단정히 빗은 뒤에는 새신랑처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망할. 손톱을 물어뜯는 것 이외엔 할 일이 전혀 없었다.

신문을 사러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탓에 샘은 TV 뉴스에 몰입했다.
20인치 이상의 LCD 모니터의 판매량이 10인치 대 판매량에 비해 20% 이상 증가했다. 미국인들은 자가용만 큰 걸 선호하는게 아니다. 여자들 젖통이 크면 클수록 좋은 것처럼 모니터도 큰게 좋다고 난리다. 남들과 차별되는 결혼식 장소를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파라다이스 여행 천국에서 추천하는 이곳은 어떠한지? 필란드의 카슬라우타넨에선 신혼부부는 에스키모인이 끄는 썰매를 타고 예식장으로 향한다. 추워서 코가 새빨개지는 부작용만 빼면 누가 뭐래도 특별한 걸 원하는 당신을 위한 준비된 패키지다. 오늘의 토막 뉴스. 변호사 필립 셰이퍼는 델타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비행기가 허공을 날아다니는 2시간 내내 뚱뚱한 남자 옆에서 통째로 짓이겨져「당혹감과 심한 불편, 심리적 고통 및 심한 정서장애」를 겪었다는 것이 셰이퍼의 주장이었다. 자! 그래서 어쨌다고?
샘은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 것 이상으로 소파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방화로 보이는 불이 나 한 교회가 전소되고, 이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 송곳니가 이상 발달한 시체들, 다수의 절단된 목과 몸통들, 악마교도들이 한바탕 날뛰기라도 한 것처럼 피범벅이 된 천장 어쩌고 대서특필까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샘의 판단으론 교회에 불이 났다는 소식은 방송을 탔어야 옳았다.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물어뜯으며 뉴스 채널을 바꿨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아나운서가 이쪽을 응시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싱으로 인한 신용카드 및 은행계좌 정보유출 피해가 확산되고 있어 금융 서비스 이용자들의 주의가 요망됩니다 - 그는 절망했다. 세상엔 너무나 많은 불운한 소식들이 넘쳐 신에게 바쳐진 건물 한 채가 지구상에서 송두리째 사라진 것 정도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가 보다. 목을 길게 빼고 아무리 기다려봐도 불에 탄 교회 소식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이틀 전에 그들을 찾아왔던 짤막한 키의 로마 카톨릭 사제들과 연관이 있는 걸까? 알게 뭐람. 리는 잔뜩 흥분해서 얼굴이 벌갰고, 사제들은 장례식을 집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우 어두웠다. 그녀는 궁금해하는 샘을 보고도 그들이 누구이며, 무슨 일로 왔는지 일절 설명하지 않았다. 두 명의 사제들 역시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 셋은 복도로 나가 은밀히 눈짓하며 독일어로 추측되는 외국어로 약 15분간 대화를 나눴는데 샘의 짧은 지식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디아데케 (죽음을 담보로 한 유언. 아무도 취소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의미), 그리고 블라스페메오 (신을 모독하는 행위), 프로스코마 (사람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게 하는 것을 의미) 라는 단어 세 가지가 전부였다.
아, 한 가지 더 있었다. 이런 좇 같은 것들. 사제들을 향해 버럭 화내며 영어로 쏘아붙인 말이 바로 그거였다.

텔레비전 하단부로 오늘의 날씨와 세계의 기상 정보가 유유히 흘러갔다. 싱가포르에선 부슬비가 온댄다. 멕시코는 가뭄이다. 독일에선 마당에 널은 빨래가 잘 마르겠다. 치명적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일가족 네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간은 잘만 흘러간다. 변한 것은 없다. 어제와 마찬가지인 오늘이다.
손바닥으로 턱을 문지르던 샘은 텔레비전을 그대로 켜놓은 채 옷가지 정리에 들어갔다.

벗어던진 빨랫감은 비닐 백에 넣어 따로 챙겼다. 그 입구를 단단히 봉했음에도 홀애비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것이 끔찍했다. 손가락으로 날짜를 차근차근 헤아리며 그들이 바지와 셔츠를 세탁한게 언제인지를 대략 가늠해봤다. 아이고, 하느님. 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독성 버섯이 안 자라난게 천만다행이다. 샘은 얼굴을 붉히며 빨랫감을 비닐로 꼼꼼하게 한 번 더 쌌다.
「아유~!! 진짜지 계집애처럼 굴고 있네.」
야유하는 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진흙탕을 뒹굴고 난 뒤에도 깨끗한 옷을 입고 있길 원하는 샘과는 달리 딘은「단벌 신사면 어떠랴」주의였다. 샘이 다섯 장의 셔츠를 벗어던질 적에 딘은 눈만 멀뚱멀뚱 뜨곤 했다. 더러운 냄새가 난다고 곁에서 타박을 하면「어디서 뭐가 이렇게 시끄럽게 짖지?」라는 표정으로 신문을 읽었다. 싱크대 위로는 양말이, 침대 밑으론 축축해진 수건이 굴러다녀도 느긋하기 짝이 없던 형이다. 섬유 유연제가 뭔지도 모르는 인간이고 색 빨래와 흰 빨래를 구분하는 법도 없다. 땀에 절은 내의는 아무렇게나 돌돌 말아 가방에 넣으면 그걸로 끝, 가끔은 처치곤란한 그것들을 어디다 팽개쳤는지 기억해내질 못해 자동차 트렁크를 발칵 뒤집기도 했다. 그런 남자에게서 세탁물을 비닐로 싸는 섬세함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샘은 넋이 나간 멍한 표정으로 벽을 쳐다봤다.
『빨래... 맙소사. 해야 하는데.』
흐느낌인지 웃음인지 모를 이상한 소리가 벌려진 이 틈새로 새어나왔다.
웃기지 않은가. 딘은 지금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는 밀린 빨래 걱정이나 하고 있다. 손으로 녹색 T셔츠를 쥐었다 폈다 하며 울컥 솟구치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래봤자 그의 눈물샘은 둑의 일부분이 무너진 저수지 같아 다량의 물을 계속해서 낮은 지대로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덕분에 뉴올리언즈가 침수되는 건 시간 문제일 듯했다.
볼륨을 낮춘 채 계속 켜놓은 텔레비전 화면에선 관절통과 경직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콘드로이틴 제품에 대한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뼈들이 웃는 낯으로 춤을 추는 이상한 그림과 함께.

『샘.』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자 어느새 리가 물컵을 들고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당황한 샘은 얼른 손으로 코와 눈가를 닦았다.
『나, 나는... 그러니까 이건 알레르기로...』
운게 아니라고 막 변명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리는 사내 자식이 흘리는 맑은 콧물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네가 지금 곤죽으로 만들고 있는 셔츠는 네 것이 아니라고 딘이 근심하며 말하더구나.』
『예?』
형을 존중한다면 그의 옷도 같이 존중해 주어라 - 딘 윈체스터가 꼭 전해달라고 했다.』
자기 할 말을 끝마친 리는 이것만이 구원이라는 투로 쥐고 있던 물컵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부탁인데... 샘.』
『알아요! 안다고요! 빌어먹을. 딘은 지금 극도로 예민한 상태니까 그를 자극할만한 소리나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던 거, 안 잊어먹었어요. 난 바보가 아니라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심지어 화장실에 가면서도 방구가 나오는 걸 억지로 참고 있단 말예요!』
애 같기도 한 그 신경질적인 반응에 리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살짝 누그러뜨렸다.
『이 천축 멍청아. 그걸 말하려던게 아니야. 나는 네가 식사를 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넌 스스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모양인데 꼬박 하루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고.』
그녀의 지적에 샘은 입을 떠억 벌렸다.
몰랐다.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다. 그런데 만 하룻동안 아무 것도 먹질 않았단 말인가.
샘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배꼽을 쳐다봤다. 위장에게 그게 진짜냐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네가 쓰러지면 누가 곤란해지는 건지를 기억해둬.』
리는 냉장고가 있는 방향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입 모양만으로「food」라고 말했다.
그게 샘의 머릿속에선「fool」로 해석되었다.
『알았지? 억지로라도 뭘 먹어둬.』

샘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딘의 옷으로 코를 박고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싸구려 세제 냄새가 희미했다.
그것은 딘의 냄새가 아니었다.
샘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이제 TV는 광고를 끝내고 한참 유행인「다빈치 코드」에 대한 다큐멘터리 방영을 예고했다. 영화에서도 나왔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투명 피라미드가 화면에 떠올랐다. 소문과는 달리 이오밍 페이가 설계한 저 유명 건축물의 유리 개수는 666개가 아니고 999개라고 한다. 왜냐하면 지상 말고 그 지하로 333개의 유리가 더 있어서... 피곤에 지쳐 텔레비전 전원을 꺼버렸다.

냉장실엔 꽁꽁 얼어버린 빵과 인스턴트 스파게티, 약간의 통조림과 맥주가 들어가 있었다.
신음을 토해내며 머리를 감싸안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스파게티를 좋아하지 않았다. 벌건 국물 속의 면발은 언제 봐도 기분이 언짢았다. 톡 쏘는 마늘의 자극적인 냄새 또한 취향이 아니었다. 게다가 제품의 가격이 싸면 쌀수록 냄새는 더욱 역했다. 그게 너무도 끔찍스러워 샘은 딘이 전자렌지로 조리해 내놓은 걸 입술을 삐죽거리며 밖으로 밀어내곤 했다.
「나는 햄버거가 먹고 싶어, 딘! 스파게티는 싫어!」
「참아줘, 동생. 음식 투정은 고추 없는 계집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그릇을 도로 동생 앞으로 진열하면서 딘은 도전적으로 씨익 웃었다.
「흐응~ 내 동생 거기엔 고추 없~다. 정말일까? 그러고보니 앉아서 오줌을 누는 걸 본 것도 같고. 어떠냐, 새미. 이 형이 지금 착각한 거냐, 아님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는 거니.」
계집애, 계집애 놀려대는게 싫어서 샘은 터진 뱃가죽 밖으로 튀어나온 내장처럼 구불거리는 면발을 억지로 집어 올렸다.
「실례야! 나도 딘처럼 서서 오줌을 눠!」
「오~! 그거 대단한 진실이군.」
「눈 굴리지 마!」
「알았어. 눈 안 굴릴게. 그러니까 빨리 밥이나 먹어, 리틀 보이. 그래야 네 키가 빨리 자랄 거 아니냐. 이 형이랑 같이 레슬링을 하려면 그놈의 땅콩 사이즈에서 바이바이 해야 한다고.」
「레슬링~!」
「그래, 꼬맹아. 나랑 레슬링 하고 싶지?」
「응!」
「나도 너랑 같이 레슬링 하고 싶어.」

사실 대단히 어려웠던 가정 형편을 생각한다면 배를 곪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 기도를 올려야 할 판국이었다. 겉으로 내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딘은 한정된 식비로 생계를 꾸리는 일로 무척 어려움을 겪었다. 존은 일정한 직업이 없었고, 어렵게 친 신용카드 사기는 그들에게 많은 돈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다니려면 공책도 사야 했고, 연필도 필요했다. 운동화는 금방 닳았고, 몇몇의 교제들은 비쌌다. 영리한 샘은 책에 욕심이 많았고, 딘은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이라도 줍고 싶은 심정이었다.
「딘은 동전이 갖고 싶어?」
만약 딘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샘은 하수구에라도 내려가 한바탕 뒤질 작정이었다.
「형이 그걸 갖고 싶다면 내가 동전을 찾아줄게.」
「아니.」
동생이 그러고도 남을 거라 생각한 딘은 기겁했다. 샘이 진짜로 하수구를 뒤진다면 존은 아마 펄펄 뛸 것이다. 그리고 딘은 이성을 잃은 아버지 옆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게거품을 물 것이다.
손가락 하나를 세운 딘은 샘에게 그걸 똑바로 쳐다보라고 명령했다.
「오해야, 새미! 잘 들어. 내가 원하는 건 동전이 아니야.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네가 내 옆에 있어주는 거야. 그러니까 샘? 내 궁둥이 뒤로 찰싹 붙어 있으라고.

끔찍한 비명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것들이 안 보이게 해줘! 제발! 멈추게 해!》
《딘! 조금만 참아. 내가 금방 진정제를 놓아줄테니까... 조금만 참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죄송해요!》
《그것들은 진짜가 아니야, 딘! 휩쓸려가지 마. 딘? 내가 하는 말 들려?》
《들려. 너무 잘 들려 탈이야. 내장에서 구륵거리는 소리까지 죄다 들린다고! 제기랄. 금붕어 심장 뛰는 소리까지 죄다 들려! 우웩.》
《여기다 토해. 숨 쉴 수 있겠어? 딘! 정신 놓으면 안돼. 나가서 동생 불러올까? 응?》
《안돼. 웩... 새미는 안돼. 우...》
《딘!》
《아직 안돼. 새미... 못 오게 해. 우우... 우우... 아파. 우우...!!》

샘은 식욕을 완전히 잃고 음식을 씹는 동작을 멈췄다.
저 아래로부터 구역질이 치밀었다.

Posted by 미야

2007/12/02 19:27 2007/12/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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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수 2007/12/02 22:42 # M/D Reply Permalink

    아아아.. 넘 궁금해요...흐흐흑..ㅜㅜ

  2. 와.. 2007/12/03 00:02 # M/D Reply Permalink

    선리플 후 감상입니다. 안그래도 넘 궁금해서 죽을 뻔했어요.
    이편의 강낭콩 공주 새미는 넘 구엽고 넘 조아요....

    그 어떤 팬픽의 새미보다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감솨합니다. 잘보겠습니다.

  3. 와.. 2007/12/03 00:17 # M/D Reply Permalink

    그나저나 딘이 뱀파이어에게 물려서 그런건가요?
    어서 새미를 생각해서라도 나아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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