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올린다고 했는데 그만 깜빡했습니다. ^^ 으아, 몸에서 식용유 냄새가 진동하네요. 다들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즐거운 설날 보내세요. 그런데 올라가는 글은 꾸리꾸리하다...;; ※


피부 위로 도드라진 속박의 문양이 파랗게 빛을 내기 시작했을 적에 지니는 숨어 있던 장소로부터 뛰어나와 먹이를 향해 팔을 뻗었다. 갑작스런 기척에 흠칫하고 떨던 남자는 평균치보다 반응이 월등하게 빨라서 이쪽에서 채 덤비기도 전에 호전적인 호박색 눈을 크게 부릅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니는 그 눈빛에 겁이 났다. 그러나 결심하고 방아쇠를 채 당기기도 전에 부채꼴 모양의 푸른 광선이 남자의 이마를 눌렀고, 인간의 의식은 숟가락처럼 구부러졌다.「이럴 수는 없어!」라는 낭패감 어린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눈꺼풀이 감겼다.
잡아 먹고, 먹히는 그런 세계... 누가 먼저 상대의 목덜미로 이빨을 들이박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보다 빠르면 살 것이고, 처지면 죽는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남자가 떨어뜨린 산탄총을 멀찍이 치워놓은 뒤, 지니는 짧은 숨을 들이켰다. 말로만 들었던 헌터와 직접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싫든 좋든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헌터는 그를 죽일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을 정확히 꿰고 있는게 분명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코 집어들 수 없는 것 - 양의 피가 묻은 은칼을 발견한 지니는 몸서리를 쳤다.

《20년 이상이나 완벽하게 숨겨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길 어떻게 찾아낸 거지.》
이제 그의 둥지는 심각한 위험에 처했으며,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떠나야겠군.》
허리를 펴고 햇빛이 닿지 않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위쪽으로 다른 헌터들이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 했다. 갈지자로 느릿느릿 기어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나무 판자를 옆으로 치웠다. 얇은 판자로 어설프게 가려놓은 바닥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크기의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는데 그곳을 통해 매설 하수관까지 직접 내려갈 수 있었다. 악취가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 있긴 있었지만 냄새에 둔감한 정령에겐 다행스럽게도 코를 찌르는 썩은내는 그리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끙끙 신음하며 의식이 없는 남자의 두 다리를 힘껏 끌어당겼다. 머리부터 구멍 속으로 밀어넣을 작정이었다. 그렇게 남자를 거꾸로 떨어뜨리고 나면 다음으로는 위장용 판자를 도로 덮고 그 또한 하수관으로 얌전히 내려가면 되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오랫동안 그곳을 출구로 이용한 탓에 눈을 감고도 외벽으로 삐져나온 철근을 사다리처럼 밟을 줄도 알았다. 행여 재수가 없어 미끌어지더라도 저 아래엔 젖은 낙엽과 들쥐의 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곁눈질로 구멍의 위치를 짐작하며 지니는 남자의 발을 세게 잡아당겼다.

『씨발! 그만 좀 잡아당겨!』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모른 채 엉덩방아를 찧고 바닥을 굴렀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던 것도 같다. 아니, 그것보단 발길질을 당한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손에는 무슨 영험한 보물인양 낡은 신발 한짝이 쥐어져 있었고, 덤으로 외짝 양말도 하나 얻었다.
믿을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앉은 남자는 주먹을 아무렇게나 휘둘러댔다.

《어, 어떻게?》
몸을 곧추세우기도 전에 사내가 곧장 덤벼들었다. 그리고는「볕에 널어 말리려다 엉망으로 상해버린 영양 고기 - 임팔라」에 대한 억울한 심정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쓰벌 놈의 자식아! 임팔라를 몰고 최대 속도로 곧장 가로수를 향해 돌진해야만 했던 내 마음이 어땠는지 상상이 가냐?! 피눈물 나왔어, 피눈물! 제기랄, 에어백을 달던가 해야지... 쇠창살도 아닌 운전대가 사람 갈비뼈를 그렇게 쑤셔대도 되는 거냐고. 야! 듣고 있냐?! 내 보물단지 임팔라가 종잇장처럼 부숴졌단 말이다! 쾅, 와직, 우직끈! 표정이 그게 뭐야. 내가 지금 외계어로 떠들고 있냐?! 아니잖아. 산산조각난 유리창 밖으로 내 뼛조각이 튕겨나갔다고!』
눈에 보이는게 없는 듯했다. 남자는 고함을 지르며 눈앞에 자리한 정령을 있는 힘껏 떠밀었고, 지니는 얼굴을 바닥에 문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내 임팔라!』
양탄자는 알아도 자동차는 전혀 모른다. 당황한 지니는 몸을 굴려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남자는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고자 애쓰는 그의 노력을 삽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무릎을 세워 등짝을 힘껏 찍어눌렀다.
『으으, 내 임팔라!』
숨을 몰아쉬고, 욕설을 퍼부으며, 이판사판 죽어보자는 식의 태도로 날뛰었다.
『젠장! 새벽 다섯 시에! 나체로 발광하는 새미 앞에서!』
지독하게 흥분한 탓에 목소리가 철쑤세미처럼 갈라졌다.
『최악이야!』

고통과 모멸감이 뒤섞인 어지러운 눈빛이 지니의 머리 꼭대기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지니는 깨달았다. 이것은 분노다. 사악하리만치 깊고 어두운 분노였다. 어째서? 지니는 그가 귀신처럼 화를 퍼붓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잠에서 깨어난 것도 놀라웠지만 바위를 둘로 쪼개버릴 기세로 폭발하는 것 역시 놀라웠다.
뭐가 잘못된 걸까. 지니의 힘은 사막을 횡단하는 자에게 푸른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보여준다. 그 낙원과도 같은 푸르름에 나그네는 고단한 여정을 포기하고 마침내 평온한 안식을 얻었음에 기뻐하게 된다. 그것은 미끼이자, 먹이로 바쳐진 목숨에 대한 댓가였다.
지니는 자신의 힘이 혹시 송두리째 메말라버린 건 아닌가 의심하며 질문했다.
《꿈을... 꿈을 꾸지 않았는가.》
『그~래, 신나게 꿨다. 이 개자식아. 무지하게 야한 꿈이었다! 검정색 끈팬티를 입은 여자가 한 다스나 나와서 랩댄스를 췄다고. 그래서 내가 네놈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냐?』
펄펄 뛰며 퍽 소리가 나게끔 지니의 콧잔등을 내려쳤다.
지니의 얼굴은 교수형을 당한 여자의 것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그러든 말든, 아무래도 헌터는 그 순간만큼은 주먹질 정도로는 정령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걸 깜빡 잊은 듯했다. 빠른 속도로 되감기는 비디오 테이프의 한 장면처럼 두두다다 양손 펀치가 작렬했다.

『형? 지니는 목졸라 죽일 수 없어.』
『오야.』
『그리고 아무리 막대기로 때려도 코피가 안 나와.』
『누가 뭐랬냐.』
『그런데 왜 막대기를 들고 때렸어?』
사냥이 끝나면 형제들은 의무적으로 늘 가까운 술집에 들려 회포를 풀었다.
단순히 긴장을 풀고 즐기려는게 목적은 아니다. 뭔가를 죽였다는 사실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황폐케 만들었고, 특히나 감정이 예민한 샘은 한동안 소리내어 웃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정서적으로 어두워지곤 했다. 그리고 사흘 가까이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다녔다.
『내가 왜 막대기를 들었냐고?』
술 자체가 그리 큰 위안이 되어주진 않는다. 하지만 텁텁해진 뱃구멍을 속일 뭔가로는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것 역시 딘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딘은 주량이 늘었다.
『흥! 너도 봤잖아, 새미. 그 그지 똥갱이 자식이 내 신발을 홀랑 벗겨갔다고. 순간 꼭지가 확 돌더라고.「오늘 저녁은 오뚜기 카레」라는 식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게 아니잖아?』

샘은 데킬라를 두 잔 마셨고, 주량이 센 딘은 이미 그 세 배를 먹었다.
앉아서 시작한지 이제 15분이다. 속도가 너무 빨랐다.
눈썹을 찌푸린 샘은 형의 몫으로 놓여진 유리잔을 슬그머니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알콜을 감추려는 행동에 딘의 한쪽 눈썹이 활처럼 휘었다. 우직스런 사내들의 세계에서 그런 치졸한 행동은 선전포고와 마찬가지였다. 아닌게 아니라 딘은 노골적으로 불평했다.
『뭐하는 거냐. 내 동생이 아니었음 앞니가 부러졌어, 새미.』
『그렇다면 난 위조한 보험증을 들고 치과에 가야겠네.』
『좋아. 선생님 앞에서 아~ 하고 입 벌리렴.』
『싫어. 딘은 의사 선생님이 아니잖아.』
『겁 먹지 마. 형이 어금니가 썩지는 않았는지 살펴볼테니. 아아~ 크게 입을 벌리세요.』
『저리 가, 영감탱이!』
『어익후, 우리 동생 화났다.』
『내가 딘보다 곱의 곱절로 양치질을 한다는 걸 잊지마.』
『엣헤헤. 그건 그렇지.』

낄낄거리고 웃음를 터뜨리는 딘을 보고 나서야 샘은 마음을 놓았다.
솔직히 쇠몽둥이로 지니를 두둘겨 패는 그를 발견했을 적엔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딘은 쓸데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다. 필요하면 비무장인 여자를 향해 총을 쏠 수도 있었지만 그럴만한 까닭이 충분하지 않으면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요컨대 샘이 목격한 광경은 하수구에서 순결한 천사가 올라오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양의 피를 묻힌 은칼은 고스란히 냅두고 다짜고짜 쇠몽둥이로 퍽퍽? 당신이 정녕 딘 윈체스터 맞소이까?

『저어... 있잖아, 딘.』
『저 갈색머리 아가씨, 네가 보기엔 어떠냐, 새미.』
캐묻는 듯한 동생의 시선을 피해 딘은 왕가슴 바텐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일부러라고밖엔 설명이 안 되는 꾸며낸 목소리로 음담패설을 주워담았다.
『형은 저 여자 다리를 가로로 찢고 싶어. 와우, 무지하게 뜨거울 것 같아. 저 멋진 엉덩이를 보라고. 예술이 따로 없구나. 가서 말을 붙여볼까?』
「어디 한 번 그렇게 해보시지?」순식간에 샘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형은 천치 바보야!』
『그래. 그러는 너는 구제불능의 얼간이고.』
『못난이.』
『계집애.』
『술이나 잔뜩 마시고 취해버려랏.』
『네 말대로야. 이 형은 머리가 망가지도록 잔뜩 취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찰나이긴 했다. 딘은 샘을 똑바로 응시했다.
은폐된 비밀들과 결코 누설되지 않을 거짓이 그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회전목마가 광대의 우스꽝스런 음악을 연주하며 거꾸로 뒤집히려 했다. 그의 시선이 동생의 눈동자에서 코로, 다시 입술로 내려갔다.「안돼」주머니 깊숙이 찔러넣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붕대로 묶인 주먹은 이미 바위처럼 단단했고, 어깨가 경련을 일으켰다.「나는 그걸 하지 않을 거야」가만히 눈을 감았다. 좋은 꿈, 그리고 원하던 꿈...「참아」딘은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샘은 바짓자락의 주름을 잡아당기다가 무척이나 어색해하며 물어왔다.
『괜찮아? 저어... 정말 괜찮은 거야?』
폭주하는 영혼따윈 암염탄으로 쏘아버리면 된다.
딘은 가슴에 박힌 커다란 소금 결정을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거짓말했다.
『괜찮고 말고.』

Posted by 미야

2008/02/07 11:52 2008/02/07 11:52
Response
No Trackback , 5 Comments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774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 List

  1. 밤맛만쥬 2008/02/08 14:32 # M/D Reply Permalink

    디이인~, 참지마, 참지마, 참지마...울면서 무한반복하는 중이에요. 딘의 샘에 대한 마음이 안타까워요. 둘이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ㅜ.ㅜ
    미야님, 남은 설 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세요~

  2. oka25 2008/02/10 21:06 # M/D Reply Permalink

    쇠막대기로 진을 마구 때리는 딘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ㅋㅋ
    진짜 현실이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안타까운 딘...
    진짜 재밌게 잘 봤어요 ~~^^

  3. 로렐라이 2008/02/21 15:06 # M/D Reply Permalink

    안타까운 딘 ㅠㅠ
    에휴...잘 보고 갑니다 ~ ㅠㅠ
    두 형제가 편한날은 언제 오련지~..

  4. 마리 2008/02/23 15:58 # M/D Reply Permalink

    으휴...바보같은 딘 윈체스터. 형제가 뭐라고...<<
    니넨 이미 자타가 공인한 부부란 말이다...

  5. 언니햐 2010/02/20 02:26 # M/D Reply Permalink

    유혹하는샘은 정말이지 ..... 너무섹시해!!!
    그걸 뿌리치는 딘도 정말 딘 답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번하고 깨어나지 그랫니..ㅠㅠㅠ 이 애타는 마음은 쩌라는거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277 : 1278 : 1279 : 1280 : 1281 : 1282 : 1283 : 1284 : 1285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96034
Today:
91
Yesterday:
221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