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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repentance 02

※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드라마의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윈체스터 가의 자알~ 생긴 남정네들이 유령을 잡으러 다니면서 뜨뜻한 형제애를 과시하는... 틀려! ※


코럴빌 노드 캐슬록 137번지.
어랍쇼, 샘은 시린 두 눈을 연속해서 깜빡였다. 어쩐지 익숙하다.
『알 것 같아. 이거, 봤어. 분명히 아는 거야. 코럴빌 137번지, 137번지...』
떠오를 듯 말 듯한 기억을 필사적으로 더듬으며 이마를 찡그렸다. 벽에다 쏜 환등기 그림처럼 137이라는 숫자가 가슴속에서 희미하게 떠올랐다. 관자놀이를 세게 눌렀다. 그러자 오래되어 누렇게 빛이 바랜 사진 한 장이 137이라는 숫자 뒤에서 서서히 실루엣을 드러냈다.

기다리는게 지겨웠던 것 같다. 딘이 집게손가락을 들고 설교하듯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다.
눈치는 있다. 샘은 앞지르기를 시도하던 형을 재빨리 제지했다.
『아무 말 하지 말고 5초만 기다려, 딘. 생각이 날 것 같으니까.』
『1초, 2초...』
『형. 손목시계는 그만 봐. 정말로 5초만 기다려주는 거야?』
『3초, 4초... 타임 아웃.』
그리고 윈체스터 가의 형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외쳤다.
『미국의 귀신들린 집, 닷컴.』
바로 그거다. 목욕통 속에 들어간 발가벗은 아르키메데스 씨는 넘치는 물에서 진리를 발견하곤 손뼉을 짝 쳤다. 자신이 기억해낸 것이 노트북으로 들여다 본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인터넷 홈페이지 화면이라는 걸 마침내 깨달은 샘은 활짝 웃었다.

「미국의 귀신들린 집. 닷컴」은 샘이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사이트다.
솔직히 말해 자료는 엉망이었다.
다수의 유령 관련 사이트가 그런 것처럼 해골 아이콘에 거꾸로 선 십자가가 배너로 걸려 있었다. 근거 없는 소문에다 과장을 일곱 번 덧칠해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 같은 모호함만 가득했다. 우물에서 기어나오는 사다코의 비디오 클립이 쉬지 않고 반복되는 가운데 꼬마 유령 캐스퍼가 장난처럼 둥둥 떠다녔다고 보면 된다. 아직 학생일 것으로 추정되는 사이트의 운영자는 오래되고 낡은 집들의 사진을 구해다 올려놓고「~카더라」식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적어놓았다. 마당에서 해골이 나온 뒤로 소파며 협탁 같은 가구가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수영장에서 빠져 죽은 뒤로 매일 밤 지하실에서 물이 솟아나온다고 합니다. 악마 숭배자들이 비밀 제단을 만들어놓은 집입니다. 밤마다 창문이 열렸다 닫겼다 합니다, 기타등등. 화장실에서 똥 싸면서 읽으면 딱일 것 같은 줄거리가 다수였다.
그래도 몇 개의 사진엔 형제들의 흥미가 동했다. 혹시라는게 있잖는가. 수 억의 모래알 속에는 깨끗한 진주 하나가 섞여 있다. 그래서 샘은「멀더 요원의 행방불명된 여동생 사만다는 사실 그 정체가 외계인이었어요」식의 맛이 살짝 간 이야기는 빼놓고 조사해볼 가치가 있겠다 싶은 것만 몇 가지 추려 도서관 공용 프린터로 인쇄를 해두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효과 좋은 수면제 대용품으로 삼았다.

『그걸 딘도 읽어봤어?』
의외다.「미국의 귀신들린 집. 닷컴」에서 인쇄한 종이를 딘이 만지는 건 못봤다. 침대에 누워 졸린 표정으로 프린트를 뒤적거리는 샘을 향해 포르노 사이트에서 야설을 다운로드 받은 거냐 질문한게 전부다. 그것도 건성이었다. 샘이 알기로는 그렇다.
『형은 관심 없어 했잖아.』
『관심 없었지. 하지만 네가 옆에서 하도 열심히 읽어대길래 나도 한 번 살펴봤다.』
『아... 그렇군. 야설이라고 생각했구나.』
『넌 졸린 눈으로 야설을 읽냐? 형은 그게 포르노가 아니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어.』
『딘? 코를 만지면서 시선을 내리깔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아.』
『하여간!』

쌍씸지를 치켜뜨며 네모 반듯하게 접은 프린트를 무슨 중요한 카드 패인양 테이블 위로 올려 놓았다. 샘이 읽다 코를 풀고 휴지통에 던지다시피 한 코럴빌 노드 캐슬록 137번지에 대한 페이지였다.
이럴 수가.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언제 챙겼담.
황당해하는 동생을 향해 딘이 눈을 찡긋했다.
이래선 아들네미가 침대 밑으로 몰래 숨긴 더러운 속옷 꾸러미를 찾아내고 의기양양해 하는 엄마다.
『겉보기엔 꽤 평범했지?』
윗부분엔 부동산 매물 광고에 써먹었을 것 같은 간단한 스냅 사진이 실려 있다. 하단부로는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집이 최초로 지어진 건 1981년이다. 이층 목조식이고 회반죽을 칠한 벽은 세월에 찌들어 곳곳에 균열이 갔다. 과격한 집수리 - 싸그리 불질러 버리자고요 - 가 요망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래도 전면적인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회색의 자갈을 깐 좁은 진입로가 있고 뒤로는 마당이 있다. 사진을 찍은 각도에서 마당에 심어놓은 나무들이 살짝 보였다. 잎사귀들이 제법 풍성하다. 비료는 잘 주었다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지붕은 평평한 편으로 짙은 색의 페인트를 발랐다. 다만 흑백 프린터기로 뽑은 사진으로는 그게 무슨 색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딘은 음,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종이를 탁 하고 튕겼다. 아기들이 우윳병을 꿰차고 빽빽 우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여기다 중고 SUV 자동차 한대만 세워두면 완벽한 미국 중산층 라이프다. 극성쟁이 사커 맘에 헬리콥터 아부지, 그리고 캥거루족 아들. 이들 세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찍은 가족의 스냅사진이 저절로 그려진다. 우아... 어떤 의미에선 귀신보다 더 무서울 것도 같다.

『그럼 홈페이지 운영자가 올린 설명을 볼까.「원래 이 자리엔 여섯 개의 무연고 묘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걸 이장하고 집을 지었는데 묘지의 주인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한 행위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여 유령들은 그 집을 지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이사 온 사람들을 공격했고, 그 탓에 여섯 명의 거주자가 심장 마비로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여섯의 묘지에 여섯 명의 죽음... 그렇다면 유령들은 마침내 안식을 찾았을까요? 심령술사 마리나 쇼우트 여사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죽음은 계속될 것이고, 영원한 안식처를 잃어버린 유령들의 저주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합니다. 목숨이 아까우십니까. 그렇다면 이 집에 들어가지 마십시오...」라고 하는군. 음, 등줄기가 오싹오싹하다. 들어가지 말란다.』
부르르 떨며 엄살을 부리는 딘을 향해 샘은「집어치워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를 외쳤다.
『그거 거짓말이야, 딘.』
『응?』
『이미 조사해봤다고. 그 집에서 심장 마비를 일으킨 사람은 없었어.』
『어? 진짜로? 여기선 여섯 명이 죽었다고 했잖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심장 마비로 죽은 사람은 없어, 딘. 그건 사이트에서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야. 암 질환으로 사망한 90세 노인이 한 명, 2층 계단에서 굴러 재수 없게 목이 부러진 남자가 한 명. 그게 전부야.』
샘은 형이 들고 있는 프린트를 뺏어 쥐고는 종이의 구겨진 부분을 손바닥으로 잘 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건데, 집을 짓기 전에 무연고 묘지를 이장했다는 기록이 없어. 깨끗했다고. 그 장소에 고양이나 개, 아니면 금붕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면 또 모르겠지만... 글세. 난 모르겠네. 형은 어떻게 생각해? 뼈도 안 남았을 금붕어 윌슨이 화가 치밀어 사람을 공격했을까?』

무덤이 없다.
고로 악령도 없다.
샘은 팔을 벌려보이며 어항에서 생을 마감했을 금붕어 윌슨의 무죄를 호소했다.
『그렇구나.』
『그렇다니까, 딘.』
『두 명이 죽었구나. 아니, 잠깐만. 정확하게 말하면 이제 세 명이 죽었지. 보름 전에 한 명이 추가되었으니까... 세 명이나 그 집에서 죽었구나.』
『형? 무덤이 없었다니까. 내 말을 듣고는 있어?』
『듣고 있지. 내 귀는 장식품이 아니거든. 자! 그만 일어나자. 할 일이 많다고.』
딘은 그게 뭐 대수냐는 식으로 테이블에 널린 신문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항의하는 투로 입을 삐죽거리는 동생은 깡그리 무시, 상의 주머니에서 자동차 키를 꺼내들었다.
그럼 악셀레이터를 신나게 밟아보자. 메탈리카의 테이프도 틀고 운전대를 잡아보자.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귀가 따갑다고 난리를 치든 말든, 국도를 따라 쌩~ 하고 달리는 것이다.

독불장군이 따로 없다. 아니면 골목 대장이다.
『엉덩이에 껌 붙었냐? 샘, 이 형이 껌 떼는 거 도와줘?』
빨리 일어나라는 독촉에 샘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래서 가끔은 형이 싫어진다. 완전히 자기 멋대로다. 이쪽에서 아니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외로운 자살」이라는 글자 아래서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 제임스 브리튼에게로 시선이 갔다. 샘은 손톱으로 테이블을 톡톡 건드렸다. 신문 기사 그대로라면 자살이 맞다. 그러나 자살이나 사고사로 오해된 심령 현상의 수가 제법 된다는 걸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것이 맞다고 섣불리 사건을 종결지어선 안된다. 사람의 등을 떠미는 불쾌하고 거친 바람이 옥상 위에 있었을 수도 있다. 물을 채운 욕조에서 실수로 잠들어 익사했다? 그 욕조 밑으로 남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시커먼 팔이 있다는 걸 모르고 넘어가는게 태반이다.

어쩔 수 없었다. 샘은 마지못해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알았어. 그럼 딘은「귀신이 붙었을 거라고 추정되는」그 집을 조사해봐. 나는 행정당국 서비스 센타를 털어 제임스 브리튼의 자살 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더 알아볼게.』
딘은 낚시용 떡밥인양 자동차 열쇠를 살랑살랑 흔들다 말고 정색했다.
『뭔 소리랴! 따로 가자고?』
『응.』
『돌았냐!』
딘은 언성까지 높여가며 벌컥 화냈다.
『샘! 네 일은 내 뒤를 봐주는 거야. 내가 귀신과 딱 마주쳤는데 내 동생은 100마일 밖에서 느긋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생과일 쥬스를 쪽쪽 빨며 검시관의 부검 결과서를 해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내가 발바닥에 불 나도록 뛰면 너도 뛰는 거야. 내가 건축물대장 보관실의 자물쇠를 따면 넌 후레쉬 전등을 들고 잽싸게 내 꽁무니를 졸졸 따라와야 한다고. 알아 들었냐! 예외는 절대, 절대로 없어.』
기타 반론은 일제 기각. 딘은 뭔가를 말 하려는 동생을 무시한 채 등을 휙 돌렸다.

『딘? 잠깐만. 난 가지 않겠다고 말한게 아니었어.』
『시끄러.』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어. 난 단지 그냥...』
『화 안났어!』
『이러지 마, 딘. 말 꼬리에 느낌표까지 붙였잖아.』
『그래서 뭐! 난 나쁜 놈이다. 이제 됐냐?!』

샘도 기분이 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코럴빌까지 장거리를 운전하는 내내 그들은 대화 비슷한 건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전방만 쳐다봤다. 어쩌다 딘이 갈림길에 이르러「왼쪽이냐, 오른쪽이냐」를 물으면 시큰둥하게 지도를 내려다보며「이쪽」이라 대꾸하는게 전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동생은 삐졌다.
딘은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상상하며 백미러를 흘끔거렸다. 낡디 낡은 카세트 테이프에선「Creeping Death」곡이 흘러나왔다. 전방에도 차량 없고, 후방에도 차량 전무. 음악도 마음에 안 들고 드라이브는 지겨웠다. 정말로 싫은 느낌이다.
테이프를 끄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조수석에 앉은 동생의 몸도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순간 심장으로 쏴아, 하고 파도가 밀려왔고 핸들을 더 크게 꺾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면 동생의 몸도 자신이 조작하는 핸들과 똑같은 방향으로 한층 더 기울어질 것이고...
맙소사, 딘은 자기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음을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널찍한 도로에서 S자 주행이라. 사고를 내고 싶어 환장했다. 이건 완전히 미친 짓이다.
옐로 카드 한 장.
스스로에게 경고장 하나를 주고 자동차 페달을 조작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임팔라의 엔진 소리가 벌렁거리는 딘의 심장소리를 살짝 감춰주었다.

코럴빌은 걱 소리 나도록 작은 마을이었다. 고만고만한 집들에 고만고만한 가로수, 그리고 낙엽과 쬐그만 도토리가 있었다. 먼발치에서 마을을 한 바퀴 돌던 딘은 내심 아차 싶었다. 이런 곳에선 낯선 사람들이 눈에 잘 띈다. 이마에「우리는 수상한 사람들이 절대로 아니거들랑요」라고 크게 써붙이고 다녀도 그 효과는 겨우 사나흘 남짓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성인 남자 둘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면 자동으로 경계 경보는 켜지게 되어 있다. 하여 지역 보안관은 힙팝 바지를 입은 마이애미의 갱이 나타났다는 식으로 슬그머니 그들의 뒤를 따라붙을 것이고, 권총집을 매단 허리에 손을 터억하니 얹고는「안녕들 하슈, 형씨들. 관광이 끝났으면 싸게 떠나봅시다」라고 으름장을...
『딘? 저쪽에 그 집이 있어.』
샘이 오른편을 손가락질을 하며 홀로 망상 극장에서 놀고 있는 딘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가까이 가서 볼 거야?』
샘의 질문에 딘은 무어라 대답하면 좋을지를 몰라 답변을 망설였다. 가까이 가서 보자고? 보기는 봐야지. 그치만 지금으로선 썩 내키지 않는다고나 할까... 속도를 늦추며 은밀히 좌우를 살폈다.
경광등이 번쩍이는 환상이 보인다. 지역 보안관이 새카만 선글라스를 벗어들고「형씨들~」하고...
순간 자전거를 탄 소년이 빠른 속도로 그들이 탄 자동차를 스치고 지나갔다. 딘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아직 10대인 것이 분명한 소년은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다 말고 뒤쪽을 돌아다 보았다. 잘 빠진 67년도 셰비 임팔라에 대한 경외심과 호기심, 아울러「댁들은 뉘슈?」라는 의문이 표정에 드러났다. 딘은 경적을 빵빵 눌러대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집어 삼키고 소년을 향해 빨리 가기나 하라고 손짓했다.
『차라리 밤에 다시 오는게 낫지 않을까.』
『아니.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어, 샘.』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큼직한 가로수 아래로 차를 세웠다.
엔진을 끈 뒤, 딘은 동생에게 내리라고 신호했다.

Posted by 미야

2006/12/01 20:55 2006/12/0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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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repentance 01

드라마 수퍼내츄럴 팬픽입니다. 아쉽게도(?) 러블리 씬은 없을 예정입니다. 배경이 현대 미국이기 때문에 모르는 건 흐지부지 넘어갑니다. 보스턴 옆에가 뉴욕인지 워싱턴인지조차 모르는데 뭘 바라슈. 일본 영화 [웰컴 투 미스터 마그드나르도(맥도널드)] 에서 시카고엔 강이 있네 없네, 바다가 있네 없네 소동이 생각나는군요. 아마 그보다 나쁘거나, 비슷할 겁니다. 헐헐.


실컷 단잠에 빠져있다가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딘 윈체스터는「도대체 뭐지-」해가며 한쪽 눈만 빼꼼 뜨고 주변을 살폈다.
실내등이 모두 꺼진 모텔 방은 제법 어두웠다. 낯뜨거운 하룻밤의 정사를 위해 모텔 주인이 달아놓은 벌거적적한 전등도 치워진 상황에선 가구의 실루엣은 희미하게밖엔 안 보였다. 뭐가 방문이고 뭐가 옷장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특히나 낯선 환경에서의 익숙치 않은 가구 배치들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하여 옷장 손잡이라 생각한 둥근 물체가 사실은 텔레비전 위에 올려둔 X등급 프로그램 안내판일 수도 있었다. 서랍장이라 생각했는데 냉장고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벽돌 모양의 몬스터일 수도 있다.
갑자기 그는 위협을 느끼고 긴장했다.
이럴 적에 공격받으면 끝장이라고 아빠는 늘 강조했다.
하여 베개 속으로 손을 넣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미리 숨겨둔 단도를 잡았다.
침입자는? 악령은?
그리고 내 동생은 안전한가.

순간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딘의 신경을 긁어댔다.
『샘?』
이웃한 침대에 누운 동생 샘이 뜨거운 라면을 식히려고 애쓰는 것처럼 숨을 불어대고 있었다. 그것도 푸~푸, 하는 소리로 봐선 대단히 뜨거운 라면이었다. 호흡이 대단히 불규칙했다.
딘은 눈썹을 찡그린 채 동생의 축구장 같은 넓직한 등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감기에 걸려 코가 막혔다? 설마. 재채기 한 번 안했으니 감기일 리 없다. 아마도 악몽을 꾸는 모양이었다. 뒤돌아 누운 동생이 몸을 더욱 둥글게 몸을 말았다. 곱슬거리는 뒷머리카락이 이불 밖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다시 한 번 더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샘?』
이걸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식은땀을 흘리는 동생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늘 괴로웠다.
한동안 나쁜 꿈을 꾸는 일이 없는 것 같더니... 조금만 몸이 피곤해지면 꼭 저렇게 끙끙거린다.
딘은 머뭇거리며 동생을 향해 가만히 팔을 뻗었다.
그러니까... 살짝 머리를 치는 거다. 샘이 펄쩍 놀라 깨어나면 엄지손가락 크기의 커다란 대왕 모기가 있었다고 대답하자.

그때였다.
『딘, 난 맥도널드 의자가 싫어...』
지금 무시라.
팔을 뻗은 채 굳어버린 딘은「내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어요」식의 표정을 지었다.
잠꼬대인 건 분명하다. 발음이 분명치 않다. 웅크린 자세 그대로에서 샘은 움직이지 않았다.
뭐, 좋다 이거야. 우리 아가 잘도 잔다. 그런데 뜬금없이 맥도널드 의자라니?
딘은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어제 우리가 햄버거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던가. 아닌 거 같은데. 오랜만에 편안하게 앉아 밥을 먹어보자며 제대로 된 식당에서 숟가락을 들었다. 햄버거는 냄새도 맡지 않았다.
『샘?』
『피에로 의자엔 난 앉기 싫다구... 형... 먼저 앉기 없기다...』
아항, 그제서야 딘은 주먹을 쥐고 자기 이마를 콩콩 때렸다.
짐작가는게 하나 있다. 그러니까 위스콘신주 메드퍼드에서 피에로로 변장하고 사람들을 해치던 락샤샤를 사냥하기 위해 서커스단에 위장 취업을 했을 적의 이야기다.
면접을 보려고 단장 사무실에 들어갔더니만? 사람도 둘이요, 엉덩이도 둘인데 앉을만한 의자는 딱 하나라는 비극이... 오른편은 낡아빠진 플라스틱 비닐 제품이고, 왼편은 나무를 깎아 만든 광대 인형 의자다. 둘 다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도 굳이 선택하라면 플라스틱 비닐 의자다. 누가 뭐래도 그 의자에 앉을 거다. 삐그덕 소리가 심하고, 시트 일부가 찢어졌고, 쿠션이 형편 없어 앉는 즉시 앉은 키가 확연히 줄어든다고 해도 그렇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그놈의 흉측한 인형에 몸을 기대느니 차라리 목을 매달고 죽어버릴테다. 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광대 인형의 무릎 위에 다소곳이 올라가 앉아「무엇이든 시켜만 주세요, 단장님. 팔뚝이 굵어져라 열심히 일하겠습니다」이라 말하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 용서도 할 수 없다. 미쳤다고 얼굴에 분칠한 남자 무릎에 신세를 지냐. 그게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조잡한 인형이었다고 해도 그렇다.
그래서 딘은 허겁지겁 달려나가 플라스틱 비닐 의자에 재빨리 엉덩이를 던졌다. 뒤따라 달려온 샘이「나는 어디에 앉으라고!」몸서리를 쳤어도... 형이니까 그 정도는 이득을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

꿈에서조차 딘에게 의자를 빼앗긴 동생이 으득- 하고 이를 씹었다.
아무래도 샘은「좋은 의자는 형님에게. 오케이?」라는 걸 납득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쁜 놈...』
동생의 분노에 찬 외침에 딘의 표정이 확 나빠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더 작아지던 샘의 잠꼬대는 원망과 미움, 그리고 난처함이 어지럽게 뒤섞여 어둠 속으로 찬찬히 녹아들어갔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기지개를 하고 찌푸드한 몸을 편 샘은 깜짝 놀랐다.
저쪽 침대에 누운 형이 머리를 팔로 받치고 누워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첫날 밤을 대단히 엉망으로 보낸 신랑이 난장판의 빌미가 된 신부를 저주하여 죽이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샘은 약간의 위기심을 느끼고 쭉 뻗은 팔을 재빨리 오무렸다.
늦잠을 잤다고 야단치는 건 아닐 것이다.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자명종 버튼을 힘차게 찍어 누르며「젠장!」소리를 낼 시간이다. 거기다 윈체스터 남자들의 일이라는 건 9시까지 정시 출근에 성공하지 못하면 담당 매니저가「당장 모가지~!」를 외치며 손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해보이는 종류가 아니다.
그렇다면 딘은 무엇 때문에 샘을 야단치려 하는 걸까.
샘은 끙 소리를 내곤 머리를 긁적였다.
『왜... 뭐가 잘못됐어? 내가 지난 밤 내내 이를 갈았다던가...』
『아니.』
『그럼 코를 골았다던가.』
『전혀.』
『발냄새가 지독했다던가...』
『글세』
『내가... 방구 꼈어?』
『꼈냐?』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제야. 샘은 두 팔을 벌리고「왜 나에게 그런 식으로 화내는 건데?」물었다.
『영문을 모르겠네. 이도 안 갈았어, 코도 안 골았어, 방구도 안 꼈어... 잘못한 거 없잖아.』
『잘못한게 없긴. 그 세 가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지독한 짓을 했다고, 어젯밤의 넌.』
형의 말투가 얼음처럼 차갑다.
샘은 이불을 들추고 자기 사타구니를 짐짓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정색했다.
『그러지 마. 오줌 안 쌌어.』
샘의 농담 아닌 농담에 딘이 진절머리를 냈다.
『누가 오줌 쌌다고 했냐! 됐으니까 빨랑 나가서 커피나 사와. 머리가 다 아프다, 임마.』

모닝 커피를 사오는 건 늘 샘의 일이다. 마실 수 있으면 목구멍에 무조건 넣고 본다는 딘과는 달리 샘은 커피 맛을 따지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몇 번인가 딘이 사온 프렌치 커피를 샘이 맛 없다며 투덜거린 적이 있다. 딘은 짜증나는 동생이라며 딱 한 마디만 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후로 딘은 커피를 사러 돌아다닌 적이 없다. 대신 지금처럼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얼른 뜨거운 커피를 쥐어달라며 단순하게 손만 내민다.
『...』
이걸 얄밉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어차피 딘은 맛 없다 투정하는 법도 없어서 아무거나 사다주면 된...
『겍. 맛 없어.』
샘의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와우, 오늘 하루는 서쪽 하늘에서 해가 뜨겠음.
의자에 앉으려다 말고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에서 2초간 정지했다.
생전 먹을 걸 두고 불만을 표현한 적이 없는 형이다. 배만 부르면 된다, 그게 형의 철학이었다. 음식은 어차피 몸을 움직이기 위해 넣어주는 일종의 연료 같은 것이고, 당장 몸에 이상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불순물이 첨가되었는지 아닌지 여부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면 되었다.
물론 이끼 낀 구정물 비슷한 느낌의 건강식 콩스프에 질겁하며 인상을 찡그리곤 한다. 비타민과 섬유질이 뭔지도 모르는 남자답게 비릿한 냄새가 나는 해초 무침에 사람 살리라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가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아버지 존이 자녀의 그런 불만을 일체 접수하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딘 스스로가「먹는 걸 가지고 투정하는 건 남자답지 않아」라고 생각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랬던 형이.
커피가 맛 없다면서 타박이다.

『솥단지 태워먹은 맛이 나.』
그러면서 예의「초야를 단단히 망친 신랑의 표정」을 또 지었다.
『푸-웃. 크림은 없냐, 새미. 크림을 챙겼어야지. 빈 손으로 덜렁덜렁 돌아오면 어떻게 하냐.』
코를 킁킁대고 냄새까지 맡는다라. 샘은 순간적으로 건너편에 앉은 가죽 재킷의 핸섬 보이가 자신의 진짜 피붙이인지, 아님 지구인처럼 분장한 외계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게다가 뭐? 크림이라고? 이건 분명 부활절 토끼 같은 질 낮은 농담이다.

『딘?』
『왜.』
『딘 맞아?』
『그럼 내가 애크미 동산의 고장난 벅스 버니일 것 같냐!』
정말로 내 형이 맞느냐는 샘의 질문에 딘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소리만 질렀던가. 샘의 커피도 뺏었다. 그리곤 샘이 입술을 대고 홀짝거린 커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기 시작했다.
『이건 좀 낫군.』

불평할 기운도 나지 않는다.
에이, 맘대로 해.
샘은 털썩 소리를 내며 의자에 무너지듯 앉았다.
어차피 커피가 문제가 아니라는 건 진작에 눈치 챘다. 본질이 전혀 다른, 뭔가가 있다.
하지만 그게 뭐냐고 물어봐도 딘은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래왔다. 몇 겹의 보자기로 속마음을 감춘다.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봤자 때가 되기 전까진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지긋이 눈싸움을 벌이는 건 부질 없는 짓이다. 싸움을 걸어봤자 딘은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능숙하게 빠져나가버릴 것이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딘이 스스로 화를 풀고 화해를 청하길 기다리는게 나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성인 남자 둘이서 커피를 두고 티격태격한다는 것도 모양이 우습고... 샘은 만사 포기한 채 테이블 위로 어지럽게 깔린 신문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것보단 표정으로 봐선 신문에 우리가 봐야 할 뉴스가 나온 모양이네. 고장난 벅스 버니씨.』
『벅스 버니 아니라고 했다, 동생아. 한 번만 더 그렇게 말하면 알지?』
콧잔등에 힘을 팍~ 주는 것으로 동생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 딘은 연필을 입에 물었다.
『벅스 버니.』
샘은 차렷 자세로 형의 인내를 테스트했다.
그 댓가는 대단히 참담했다. 딘은 들고 있던 연필을 커피 컵 속에 퐁당 꽂아버리곤 샘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눈짓했다. 원샷.
『...』
『새미. 또 말해라?』
그리고는 절망에 가득차 뜨뜻한 국물에서 연필을 건져올리는 동생 앞으로 신문을 들이댔다.

이미 딘은 필요한 부분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노아의 사촌 여동생의 그 아들들의 손자가 일으킨 글자들의 홍수 속에서 딘이 연필로 그려놓은 동그라미는 대단한 호소력을 과시하며 단박에 주의를 끌었다.

외로운 자살

헤드라인체로 적힌 제목 아래로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철 지난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고, 살짝 웃고 있다. 그런데 그게 대단히 우중충하게 보이는 미소다. 억지로 입술을 당겨 겨우 모양만으로 웃고 있었다. 눈썹 모양이 고르지 않은데다 앞 머리까지 살짝 벗겨져 전반적으로 인상이 썩 좋지 않다. 뭐랄까, 소화불량으로 10년간 죽어라 고생을 한 사람 같다. 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에 묻은 커피를 툭툭 털어냈다.

『제임스 브리튼. 나이 38세. 죽은지 보름만에 발견되었음...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고,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주변의 말을 참고하여 경찰은 그가 신변을 비관하여 자살한 것으로 판단하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무려 보름이나 지났음에도 그의 죽음을 아무도 몰랐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의 이웃과의 끔찍한 단절과 그 개인이 겪는 고독이 어떠하다는 것을... 형?』
『오냐.』
『자살이라는데.』
『그래서 우리 일이 아니라고?』
『그가 신경안정제 복용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해?』
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딘이 이 기사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건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기사 내용엔 딱히 수상한 점은 없었다. 브리튼은 2년 전에 아들을 자동차 사고로 잃었다. 아마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이혼했고, 직장을 관뒀고, 우울증을 앓았고... 썩을 놈의 인생과 바이바이 해버렸다.
어떤 의미에선 악마의 짓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냥하고 다니는 종류의 악마는 아니다.

『우리는 불운이라는 것까진 사냥할 수 없어, 딘.』
『이 형도 잘 알고 있어. 물론 그런 건 사냥 못 하지.』
『그렇담 우리가 관심을 둘 까닭이 없잖아.』
『허어. 좀 더 자세히 보도록 하려무나, 동생아.』
딘은「내 동생은 왕 바보」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틀어놓고는 혀를 끌끌 찼다.
『제임스 브리튼이 죽은 집의 주소를 보란 말이다.』
『어?』
『그러고도 모르겠다고 하면 이 형은 대단히 슬퍼할 거야.』
그렇게 말하고 딘은「우리 동생이 사온 커피는 대단히 맛 없다네」노래를 낮게 허밍했다.

Posted by 미야

2006/11/28 12:22 2006/11/2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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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렐라이 2008/03/02 19:16 # M/D Reply Permalink

    미야님 소설들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당.
    아아 재밌어용ㅠㅠ
    살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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