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각의 이야기는 큰 줄거리를 가지고 서로 연결됩니다만, 순서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습니다. 옛날 버릇이 고스란히 튀어나와 정말 죄송합니다. 이게 먼저인가, 저게 나중인가는 나중에 고민합시다. 개인의 취향과 시각에 따라 대단히 불쾌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마우스 버튼을 재빨리 눌러 윈도우 화면을 닫아주세요. ※
샘은 뜨거운 주전자를 잘못 만지고 실수로 손을 데인 사람처럼 마구 뛰었다. 『싱크대에 썩은 양말 올려놓지 말라고 내가 누누이 강조했잖아, 형!』 침대에 걸터앉아 신발끈을 X자로 교차하여 매듭을 묶던 딘은 동생의 고함에 벙벙한 눈을 했다. 그러든 말든 샘의 목소리는 옥타브 더 올라갔다. 완전히 오페라 카르멘이다. 담배 공장으로 호위를 나온 호세는 방금 전에 카르멘의 등으로 칼을 찔러넣었다. 『바퀴벌레와 친구 하자고 하면 인생이 즐거워? 즐겁냐고!』
그런데 여기서의 문제는 바로 이거다. 샘은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양말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게 아니다. 냉장고 안에서 영구 결빙된 바퀴벌레가 발견된 것도 아니고, 씻겨 내려가지 못한 똥이 화장실 변기 구석으로 역겨운 얼룩을 남긴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지금의 이 말다툼은 제과점 진열대에 올라간 초코렛 케이크 위로 딸기 장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논쟁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쉽게 말해 쓸데없다는 얘기다. 그깟 딸기, 있으면 어떻고, 또 없으면 어떠랴. 어차피 타이틀은 딸기 케이크가 아니라 초코렛 케이크다. 엉뚱한데서 딸기를 찾는다며 제과점 주인에게 머리를 파리채로 맞아도 할 말이 없다.
딘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짧게 다듬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마구 빗질했다. 요컨대 샘이 유원지에서 코를 빨갛게 칠한 살인 광대와 정면으로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구는 까닭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다음부턴 주의할게, 새미.』 『새미가 아니라 샘이야!』 『알았다고, 동생아.』 『알긴 뭘 알아! 맨날 입만 살아서...』 『잘못했다고. 이제 됐지?』
틀에 박힌 가짜 웃음을 흘리며 허겁지겁 화장실로 도피했다. 그리고 나서야 샘이 분노한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망할 bitch.』 밤까지도 없었던 보라색 멍울이 목덜미에 생겼다. 어제 만났던 전갈좌의 여자가 심하게 빨아댄 탓이다. 작심하고 덤벼들지 말라고 싫은 표정을 했어도 여자는 발정기의 살쾡이마냥 뜨거웠고, 그 결과 그들의 하룻밤 잠자리는 엎치락 뒤치락 난리통이 되어버렸다. 변태 기질이 농후한 - 팬티 스타킹 하나만 입은 채 기마 자세로 엎드려 서스럼 없이 펠라치오를 해준 그녀는 끝까지 잠자리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딘은 짐짐한 기분으로 여자의 요구대로 애널에 삽입까지 했다. 화끈하면서도 뒷맛이 안 좋은 섹스였다.
기본적으로 딘은 잠자리 테크닉에 탐닉하지 않는 편이다. 섹스 중독자도 아닌데 처방전도 없는 짝퉁 비아그라를 입안에 털어넣곤 동네방네 낯간지럽게 앗앗 소리를 질러대는 건 사절이다. 간밤의 여자가 수상한 알약을 권하며 눈빛을 반짝였을 적에도 단호히「No!」라고 거절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적당히 엉덩이를 붙잡고, 찔러박고, 흔들다가, 배출하면 끝.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막무가내로 질주해봤자 새벽이 고달프다.
거울에 비친 초췌한 안색의 남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말은 잘 한다. 꽤나 담백한 섹스를 즐기신다 이거냐? 하지만 그걸 누가 믿어주냐. 하루도 안 빼놓고 밤놀이에 열중하는 주제에. 남들이 들으면 웃다가 틀니 튀어나올라. 찬물을 틀어 세수부터 했다. 쥐어짜도 정액이 안 나올 지경으로 아무렇게 몸을 굴려댔다. 혹사당한 성기가 얼얼했다. 이 마당에 밋밋한 섹스 어쩌고 떠들면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세면대 아래로 탁한 비눗물이 흘러갔다. 입안을 물로 헹구고 수도꼭지를 힘주어 잠궜다.
『아침부터 소리를 질러 미안해, 형.』 샘은 차분한 표정으로 되돌아가 사과를 했다. 과연, 카르멘이 꽥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자 호세는 정신이 번쩍 들었나 보다. 『몰아붙인 건 잘못했어.』 『어, 그러냐.』
평소라면 딘은 그깟 양말에 사람을 잡으려 했다며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형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건 착한 동생이 할 짓이 결코 아니라는 둥, 신경질을 부리는 걸 보니 생리할 때가 되었다는 둥, 말 나온 김에 가게에 가서 탐폰을 사오겠다는 둥, 시덥잖은 말들을 주워대며 샘을 약올렸다. 아니면 신고 있던 양말을 공처럼 말아 보란듯이 싱크대에 던지고는「워쩔겨~ 새미? 내가 또 어질렀다?」이러고 도발했다. 어중간하게 어, 그러냐 대꾸하며 머리를 긁어대는 건「막내가 짜증을 부릴 적엔 이렇게 하세요」장남 매뉴얼에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치만 정말이지 이번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딘은 초조했고, 좀처럼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샘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냉장고에서 상한 치즈를 발견했을 적의 난감함도 있다. 무자비한 햇살 아래로 구멍난 속옷이 빨랫대에 걸린 기분이고, 늑대 인간이라 오해하고 털 많은 사람을 엉뚱하게 잡은 것도 같다. 샘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으니 이쪽에서도 뭐라고 한 마디 해야 하는데「사과는 애플, 오렌지는 맛있어, 뉴욕의 심볼은 자유의 여신상」이러고 말도 안되는 문장이 입안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혼란스럽다. 그리고 부끄럽다.
후, 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에라, 모르겠다. 아예 주제를 바꿔 달나라로 워프하자. 공격의 빌미가 된 검정색 양말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며 딘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었다. 『있잖아, 새미. 여기서 체크 아웃하고 바비 아저씨에게로 가자. 어때? 브록스턴즈에서의 일 이후로 연락도 제대로 못 드렸잖아. (* MLR : 본편 미진행) 아저씨도 우리가 보고 싶으실 거야. 가서 형이랑 같이 바비네 냉장고를 털자. 어쩌면 우리가 관심 가질만한 일에 대해 괜찮은 정보를 알려주실지도 몰라. 요즘 우리들, 지나치게 한가했잖냐.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빈둥거릴 수는 없지. 사냥을 한지 오래되다 보니 몸에 녹이 슬 것만 같아. 손목을 돌리면 관절에서 막 삐그덕 소리가 난다고.』
샘은 회의적이었다. 『그것도 좋겠지, 딘. 바비 아저씨에겐 신세를 졌으니 제대로 인사해야 할 거야. 하지만 형과 나는 사냥을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즉시 딘은 우호적이기도 하고, 비굴하기도 한 미소를 지으며 샘의 발을 가리켰다. 『어... 내 발등엔 불 안 떨어졌는데. 네 발엔 성냥이라도 떨어졌냐? 저런, 조심 했어야지!』 언제나 그랬듯이 딘은 농담으로 화제의 핵심을 슬그머니 비켜갔다. 윤곽이 희미한 유령처럼 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냉기가 올라왔지만 짐짓 모르는 척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거다. 야구를 하며 웃고 떠들고 있는 어린 소년들을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는 거 아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학부모들이 성추행범으로 의심되는 수상한 사내에게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따지고 들면 날짜가 지난 신문을 가리키며「댁은 눈도 없소? 공원을 산책 중이오」라고 대꾸한다지, 아마.
동생은 목소리를 낮추어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봤자 나는 당신이 아이들 무릎을 훔쳐보고 있다는 걸 잘 알아요. 『우린 키스했었어, 형.』 댁이 읽고 있는 신문이 일주일 전에 발간된 거라는 걸 지적하고 싶군요. 『언제까지 이럴 거야. 그 문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해야만 해.』 그래서 말인데요. 난 여기로 당장 경찰을 부를 작정이예요, 이 찢어 죽일 양반아. 『없었던 일로 하기엔 난 무척 심각하단 말이야.』
샘은 제대로 숙면을 취한지가 언젯적 일인가를 곰곰이 따져보았다. 뜬눈으로 천장을 쳐다보다 기진맥진하여 기절하듯 잠시 눈을 붙이는 나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벽에서 들려왔고, 온 세상의 자동차들이 클랙슨을 울려댔다. 샘은 누군가 자신에게 몹쓸 저주를 걸었다고 믿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처음 이틀 동안은 책에서 본 내용을 참고로 부적을 만들기도 했다. 소금과 약간의 약초, 카모밀라, 그리고 이국의 향료를 섞어서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냄새가 향긋해서 베개 밑에 숨겨두니 기분이 좋았다. 결과만 말하자면 기.분.만. 좋았다. 아흐레 뒤에 샘은 부적 주머니를 변기에 집어넣고 망설임 없이 물을 내렸다. 눈꺼풀은 여전히 깔깔했고, 커피를 서른 여섯 잔이나 마신 것처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안절부절해하며 다리를 흔들면 의자까지 덩달아 덜컹덜컹 움직였다. 모든게 일그러지기 시작한 건 그 무렵부터였다. 샘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소시지를 마흔 조각으로 잘라서 먹었다. 아니, 먹었다는 말엔 어폐가 있다. 죽어라 난도질만 했을 뿐, 입안에 넣고 삼키지는 않았으니까. 잠이라는 녀석이 가출을 해버리자 덩달아 식욕이라는 녀석도 가방을 싸들고 도망을 쳤다. 그 두 가지는 다시는 샘에게로 돌아오지 않을 속셈인 듯 싶었다. 밖으로 나가 짤막한 엽서 한 장 없는 걸 봐선 의중은 분명했다.
갑자기 목이 메여왔다. 입술을 깨물며 샘은 하소연했다. 『난 지쳤어, 딘.』 흐리멍텅한 상태에서 고개를 돌리면 텅 빈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서늘한 기운에 흠칫하여 그때마다 이불을 어깨 위까지 끌어올리곤 했다. 그러나 발버둥쳐도 몸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음이 너무나 추웠기 때문에 히터는 무용지물이었다. 놀이를 마친 딘이 열쇠를 따고 방으로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눈 내리는 벌판에서처럼 하얗게 입김이 나왔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이러지 말아.』 원망하며 형을 쳐다보았다. 『형은 나에게 이러면 안돼.』
딘은 지치고 낙담했다는 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나는 너에게 그러면 안돼. 그러니까... 음, 키스 말이야.』 순간 동생이 철렁 내려앉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미처 눈치채지 못한 딘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나도 인정해. 그러니까 그건... 뭐랄까, 오믈렛에 넣어진 고추냉이 같은 거였어. 설탕인지 알았는데 소금이었고, 전자렌지용 그릇이라 생각했던게 일회용 플라스틱이었어. 비유가 엉망이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게 이해가 가니? 샘.』 그리고 더듬거렸다. 『하, 하지만 나는 그걸 바로잡을 거야. 진짜야. 약속해. 그리고 곧 그걸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나에게 약간의 시간만 허락해준다면... 그래, 새미. 형은 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어. 그리고 조만간 우리는 무슨 국경일이라도 된 것처럼 잔치를 하게 될 거야. 날 믿어!』
샘은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상처받은 눈빛을 하고 무릎 사이로 깍지 낀 손을 꾸셔넣었다.
Posted by 미야
2008/02/1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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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모텔로 돌아가 그저 발 뻗고 자고 싶었다. 반면 흥이 오를대로 오른 그의 형님은 양편으로 여자를 둘이나 꿰차고는 입이 귓가에 걸린 상태다. 자신이 무슨 헐리우드 신흥 프로덕션 관계자인양 흐린 연막을 치며「어때, 생각이 있으면 카메라 테스트를 받아보겠어?」라고 말하는데 두손 다 들었다. 낧아빠진 중국제 청바지를 입은 스카우터가 말이 되느냔 말이다. 게다가 그가 신은 신발엔 간밤에 무덤을 파느라 생긴 진흙 얼룩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약이나 하는 동네 건달도 구두만큼은 번지르르하게 신는 법이다. 쓰레기장으로 직행할 그의 신발은「내 직업은 사실 외판원이랍니다. 아님 그와 비슷한 거겠죠」주장을 하고 있었고, 솔직히 말해 딘이 승부 카드로 여자들에게 내밀만한 것은 반반한 외모밖엔 없었다.
『어머, 하지만 내 가슴은 너무 작고...』 『왜 그러시나, 아가씨들. 요즘은 개성으로 승부하는 시대야. B컵도 충분히 섹시하다고.』 『정말?』 『그럼! 실리콘으로 크게 해봤자지. 요컨대 사이즈가 아니라 봉긋 솟은 모양이 중요한 거야.』 『크기가 아니라 모양인가. 하지만 남자들은 사.이.즈.가 더 중요하잖아요? 그죠? 호호호!』
문제는 형이 낚은 상대가 평범한 처자들이 아니라 닳고 닳은 세이렌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딘의 같잖은 허풍을 한 눈에 꿰뚫어 보았다는 점이었다. 알면서 속아준다는 말은 이럴 적에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만 들어도 현기증이 났다. 게다가 그 가식적이고 음탕한 몸짓들... 샘은 벽돌 사이즈의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을 가져와서 그들의 머리를 후려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금발로 머리를 염색한 여자가 딘의 무릎 위로 올라가 앉으려 했고, 후끈 달아오른 딘은 험프리 보가트 스타일로 위스키를 들이켰다. 빨간색 힐을 신은 여자가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둥글게 문질렀다. 정확히 가슴돌기가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지금 당장 모텔로 돌아가고 싶다니까욧!
불쾌감이 솟구치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샘은 그런 신체적 반응을「아마도 취해서 그런 모양」이라 가정하고 눈앞에 놓인 냉수를 벌컥거렸다. 그리고나선 곧 후회했다. 왜냐하면 그런 천치 같은 행동은 필연적으로 사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목구멍이 급격히 수축하는 것과 동시에 격렬한 기침이 터져나왔다. 덩달아 두 개의 안구가 눈구멍에서 튀어나오려 발악했다. 『어이, 어이. 괜찮아?』 누군가 안쓰럽다는 투로 등을 쓸어주었다. 샘은 큰 문제 없으니 함부로 만지지 말라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고, 자신의 무사함을 표현하는 손짓은 우습게도「살려주세요!」를 많이 닮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남에게 매달리는 꼴이 되었고, 상대방은 그것이 무슨 구조 요청이라도 된다는 듯이 옆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샘의 팔을 붙잡아 주었다. 눈물이 가득차 흐리멍텅해진 눈으로는 그가 밝은 청회색의 재킷을 입었다는 것밖엔 알아볼 수 없었다. 연령대 불명, 생김새 불명, 피부색(인종) 불명. 넥타이를 매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가 인디언 억양이 섞인 말투를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샘은 계속해서 기침을 터뜨렸고, 남자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다 내장까지 튀어나올라. 숨 쉴 수 있겠어?』 『괜... 콜록! 괜찮아요.』 『알레르기는 아니겠지? 저런,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었는 걸.』 남자는 의사라도 되는 것처럼 샘의 안색을 이리저리 살폈다. 순수하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까? 모르겠다. 다만 신경쓰이는 건 여전히 그의 등을 덮고 있는 커다란 손이었다. 뭐랄까, 그건 친밀감을 한껏 드러내는 행위라서「나랑 당신이 언제 친구이기라도 했나요?」진지하게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세게 뿌리치는 건 무례할 거다. 샘은 고민했다.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뒤로 물러서라 요구하려면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 걸까. 사탄아, 썩 물러가라?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샘의 눈으로 제일 먼저 히끗히끗한 흰머리가 들어왔다. 『의사는 의사인데 사람은 치료하지 못 하는 그런 의사일세.』 『그럼 수의사이신 모양이군요.』 『바로 맞췄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동시에 깨달았다. 남자는 샘을 병원으로 주사를 맞으러 온 개 다루듯 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끙끙대는 골든 리트리버의 털가죽을 쓰다듬으며「착하지?」이런 거다. 스트레스를 받은 개에게 개껌을 내밀었음 - 자신이 뭔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아차린 남자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직업이 직업이라지만 사람과 개를 착각하다니. 『앗, 미안. 버릇이 되서!』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뗐다. 그리고는 연거푸 사과했다. 『미안하네! 이상하게 오해받을 짓을 저질렀네. 하지만 맹세코 수상한 의도는 없었다고.』
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다른 사람이 먼저 반응했다. 『수상한 의도는 없으셨다고라... 아앙?』 갑작스레 드리워진 그림자에 두 사람은 흠칫거리며 위를 쳐다보았다. 잔뜩 굳은 얼굴인데 오로지 뺨만 붉다. 『그런 허튼 변명을 믿으라고? 이놈이 어디서!』 떡 벌어진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음성치곤 톤이 대단히 높았다. 『나에게 한 번 죽어봐라.』 칙칙폭폭 연기를 뿜는 기차가 차단기 신호를 무시한 채 힘차게 전진하려 했다. 샘의 머릿속으로 찢어지는 경종이 울렸다. 진정하라며 두 손을 들어올렸지만 아마도 그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딘!』 『이보쇼. 우리 얘기로 합시...』 『이 늙다리가 순진한 아이를 꼬셔서 뭘 어쩌려고!』 『오해야! 오해라고! 제발! 엉뚱한 사람에게 주먹질 하지 마!』 『이 변태 자식! 오늘 임자 만났다.』
펄펄뛰는 딘의 모습에 수의사 양반은 단단히 얼은 눈치였다. 샘은 눈치껏 신호했다. 『도망쳐요!』 그리고는 냉큼 뒤따라가려는 딘을 가로막았다. 『빨리 가요!』 남자는 샘에게 고맙다고 눈짓하며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자알~한다. 새미. 얼마나 빈틈 투성이면 같지도 않게 놈팽이가 와서 수작을 걸고 말이야.』 설명하고픈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철부지 어린애를 야단치는 형의 태도에 샘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침 내가 제때 발견해서 망정이지, 아님 끌려갔어.』 그는 확신했다. 『끌려갔다고!』 그래서 분을 못 삭이고 씩씩거렸다.
나는 그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아 - 편의점 강도와 맞붙어 이길 자신도 있다. 딘과 비교하자면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흑심을 품은 멍청이에게 끌려가 험한 짓을 당할 정도로 엉망인 건 아니다. 핸디캡이 없는 상황이라면 성인 남자 둘을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은 분명 있다. 그들의 아버지는 아들을 일종의 테러리스트로 양성시키려 했고 - 그 테러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악령들이라서 천만 다행 - 남들이 이등변 삼각형의 꼭지점에서 밑변의 중점으로 내린 선분은 밑변에 수직이라는 걸 두고 머리를 쥐어싸고 있을 적에 그는 형과 같이 판크라티움을 강제로 익혀야 했다. 그들이 태어난 곳이 현대 미국이 아니라 기원 전 스파르타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수영, 달리기, 격투기... 덕분에 허점을 노리고 손을 뻗어 상대의 목을 조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나이도 많은 영감에게 끌려가 그렇고 그런 짓을 당한다는 가정 자체가 웃기다.
가슴 위로 두 팔을 깍지끼고 딘은 도리질했다. 『하나도 안 웃겨, 새미. 실제로 끌려갔었잖아. 미네소타 주에서의 일, 기억 안 나? 끼꺼덕 소리나 내는 고물 트럭을 모는 괴상한 영감에게 납치당했던 주제에. 술집 앞에서!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울화가 치밀었던 것 같다. 딘은 계속해서 으르렁댔고,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으려 했다. 『자식아. 제발 부탁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란 말이야!』 『과장 좀 하지 마, 딘. 그 남자는 내가 사래가 들려서 걱정해준 것뿐이야.』 『말도 안돼. 걱정한다면서 남의 등을 막 쓰다듬고 그러니? 내가 봤을 적에 그건 완전히 성희롱이었어! 조금 더 나갔으면 그 자식이 네 넙적다리를 만졌을 거다.』 『그만해, 딘.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는 거 아냐.』 『임마. 네 형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앗! 그 늙은이의 눈빛을 네가 못 봐서 그래!』 『그래도 그 남자는 내 가슴은 안 만졌어. 형이 집적거리던 여자들과는 다르게!』
완전히 삐진 동생이 눈을 흘기자 딘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팔을 활짝 벌렸다. 『이봐, 똥강아지. 왜 비교를 하필 그 따위로 하냐.』 『그 여자들, 젖꼭지 만졌다고!』 『그게 뭐가 대수냐. 여자들이잖아.』 『젠장! 그럼 나도 형처럼 말할래. 생판 모르는 남자가 날 만졌다. 그게 뭐가 대수야!』 『어허,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지, 새미.』 딘은 차갑게 말하며 경고조로 손가락 하나를 까딱거렸다. 『정말로 그랬다간 난 그 자식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죽일 거란 말이다.』
엄청난 말을 들은 것도 같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아님 단순히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다. 샘은 다리가 붕 뜨는 것을 느끼며 두 눈만 꿈뻑거렸다.
『하, 하지만 나는 그 여자들을 안 죽일건데...』 당연히 그러시겠지. 딘은 어깨를 으쓱였다. 『알아. 대신에 넌 날 죽이려 덤빌 거 아니냐.』 『어... 그게...』 『착하구나, 새미. 절대로 아니라고 부정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막 감동 먹는다.』 거기까지 말한 딘은 기색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정신을 놓고 있는 샘을 억지로 차에 밀어넣었다.
Posted by 미야
2008/02/14 19:19
2008/02/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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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샘은 이게 무슨 신종 게임인가 싶었다. 사흘에 걸쳐 딘이 시선을 피했다. 똑바로 쳐다보며「양말 벗고 빨리 가서 발 씻어」라고 말한게 억만 년 전으로 지금은 형의 눈동자 색이 뭐였는지 가물가물했다. 그렇다고 골이 났거나, 불만이 쌓인 눈치는 아니다. 따로 할 말이 있었다면 딘은 진작에 샘을 바닥에 앉혀놓고 일장연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는 남이 실수로 똥을 밟으면 즉석에서 얼레리꼴레리 놀려먹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데... 샘이 노트북을 꺼내들고 다른 일에 열중할라 싶으면 기회는 이때다 뒤에서 빤히 쳐다 보았다는 거다. 뒷통수가 쏘는 것처럼 아파「왜?」라는 표정으로 돌아보면 무기를 점검하는 척하며 얼른 딴청을 부리긴 했지만.
결국 샘이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저게 날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먼.
엄마가 돌아가신 날도 아니다. 아빠의 생신도 아니었다. 이름도 모르는 외삼촌의 결혼 기념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샘은 숫자가 잔뜩 그려진 달력을 한참동안 쳐다봤다가 한숨을 내쉬었고, 딘이 혼외정사를 즐기다 실수로 임신이라도 한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딘의 배가 좀 앞으로 나오기도 했다.
『임마! XY의 염색체를 가진 동물은 암만 재주를 굴러도 임신을 할 수 없다는 거, 모르냐?』 머리 좋다던 동생의 생물학 점수는 낙제였다. 얼토당토한 추정에 버럭 고함부터 질러댔다. 『게다가... 뭐? 배가 나왔다고?』 탁탁 소리가 나게끔 잔근육이 가득한 배를 두둘겼다. 『출렁거리는 삼겹살을 때려선 이런 탱탱한 소리는 절대 안 난단 말이야!』
그러나 내심 뜨끔하는게 있어 딘은 오늘 저녁만큼은 맥주를 안 마시기로 결심했다. 맨날 사냥한다고 뛰어다니는게 아니다. 요즘처럼 개점 휴업인 상태에선 잉여 칼로리는 고스란히 살가죽 속에 남는다. 그런데도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퍼마셨고, 베이컨 치즈 버거를 맛있게 씹었다. 입맛을 다시며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맨날 입는 바지가 여전히 헐렁하다고 방심했다간 바비 아저씨의 후덕함을 모방하는 건 금방이다. 오래된 저택을 탐색하는 와중에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이 꺼졌다고 하면 놀림감밖엔 되지 않는다. 아아, 제발 부탁이니 이 배꼽 아래로 잡히는게 군살이 아니라고 해줘. 숨을 멈춘 채 동생 모르게 배를 안으로 들이밀었다.
『임신 아니야. 안 했다고. 반대로 내가 임신을 시켰다면 또 모를까.』 『시켰구나.』 『아냐!』 『그럼 뭐가 문제야, 딘?』 변호사 지망생답게 (비록 과거형이긴 해도) 샘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냈다. 『임신이 아니라면 다른 까닭이 있다는 거군. 그렇지?』
딘은 내심「당했다」생각했지만 이미 동생은 갖은 방석을 끌어다놓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실 샘은 오랜만에 형과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그깟 뱃살 운운에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는 형의 반응이 재밌기도 했다.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무덤에 들어간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 시신에 말뚝을 힘차게 박아대는 인간이 고작 5파운드 - 2.2kg의 살덩이에 우거지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웠다. 확언하거니와 딘의 그런 행동은 순전히 엄살이다. 어차피 윈체스터 집안엔 간경화나 비만으로 고생했다는 사람은 없다. 편안하게 쿠션 위로 등을 기대면서 샘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대신 악마가 꼬여 진작에 인생을 조졌지만.
샘의 냉소적인 미소를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해석한 딘은 발끈했다. 『우~우~웃었어?!』 『설마. 내 목숨은 하나밖에 없거든.』 『거짓말 말아. 방금 웃었잖아! 욘석아!』 『진짜입니다, 형님.』 『못 믿겠는데. 너, 지금 뒤로 손가락 꼬고 있지.』 『미안해. 천 개의 팔을 가진 관음보살이라면 뒤로 손가락으로 꼬는 용도로 하나쯤 남겨두었겠지만 슬프게도 내 팔은 딘이 보다시피 딱 두 개밖에 없다고.』 거기까지 말한 샘은 옆으로 와서 앉으라는 의미로 쿠션을 탁탁 두드렸다.
그는 동생의 낯간지러운 요청을 단숨에 거부했다. 팔짱도 꼈다. 나는 네가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는 똘똘이가 아니란다 - 하지만 이마에 큼직하게 내걸린 나이키 에어 광고를 보고도 샘은 그런가 보다 가볍게 넘겼다. 이럴 적엔 다르게 구슬러대면 되니까. 『나, 목 말라. 냉장고에서 맥주 가져다 줘.』 『뭐?』 『맥주.』 보통의 형님들은 네가 직접 가져다 마시라고 버럭질을 한다. 그런데 딘 윈체스터는 얼른 달려가 냉장고를 열었다. 뿐만 아니다. 이쪽에서 어설프게 돌리는 시늉을 하면 손수 병뚜껑도 따준다. 차마 부끄러워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먹여달라고 부탁을 하면 우유병을 물리는 기분으로 병 주둥이를 기울여 입가에 대줄 것이다. 트림하라고 등을 토닥거리지만 않으면 다행 - 그래도 나름 이점은 많다. 아기처럼 굴면 딘은 경계심을 풀고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샘이 다 자란 어른이고, 자동차에 앉아 기어 조작을 할 줄 알고, 키가 198cm나 되고, 남의 머리 꼭대기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는 걸 잊어버린다. 대신 묘하게 안절부절해 하면서 귀여운 아기 동생이 괜찮은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든다.
이쯤해서 인정해야만 할 거다. 샘은 찬찬히 뜯어보는 딘의 시선이 좋았다.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레드 카펫을 걸어가는 미모의 여배우라도 된 기분 - 비유를 해도 참으로 걸작이군 - 딘이 빤히 쳐다보는 걸 즐기며 천천히 맥주를 입에 털어넣었다.
순간적으로 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샘은 사래가 들린 것처럼 가볍게 기침했다. 『있잖아, 형이 열 세 살이 되던 해에 말이야...』 『뜬금없이 웬 옛날 이야기?』 눈썹을 찡그리는 상대를 향해 샘은 집중하라는 제스츄어를 취해보였다. 『고백 시간이라고, 형님.』
딘이 드디어 열 세살이 되었다. 틴 에이저가 되었다. 유대 식의 거창한 성년식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딘은 세상이 갑자기 확 달라진 것처럼 우쭐거렸다. 평소 아이들 생일을 챙기지 않던 존도 축하한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답지 않게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느냐 물어왔다. 『나는 내 방을 갖고 싶다고 말했어.』 『맞아. 그래서 어빠는 크게 당황하셨지. 왜냐하면 형이 청바지나 시계를 갖고 싶다고 말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셨으니까. 실제로 아빠는 손목 시계를 하나 마련해 두기까지 하셨어. 그걸 어떻게 아느냐곤 묻지 말아.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포장된 박스를 몰래 풀어봤노라 고백하는 건 쪽팔리니까.』 『그거 대단히 쪽팔리겠구나.』 딘은 어이가 없는지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딘은 자기만의 방을 원했다. 그가 요구한 건 최신 카셋트 플레이어도, 게임기도, 비싼 운동화도 아니었다. 존은 아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십대가 된 장남이 사적인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걸 이해했다. 바야흐로 피가 끓는 시절이었고, 갓난쟁이 시절부터 궁둥이 밑으로 찰싹 붙어있던 동생을 어렵사리 따돌리며 자위를 해야 하는 딘의 고충을 납득했다. 침대에 엎드려 도색잡지를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팬츠 속으로 손을 넣을 수는 없다. 욕구는 있는데 처리는 불가하다? 삐뚤어지는 건 잠깐이다. 남자 대 남자로서 존은 아들의 불만을 접수했다. 그래서 허락했다. 단, 샘은 이해 자체를 못 했다.
딘이 좋아라 하며 개인 물건을 박스에 넣는 걸 보고 샘은 할 말을 잃었다. 낑낑대며 형의 뒤를 따라다녔다. 이불을 절반은 씹어먹었다. 숙제를 빼먹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상급생 세 명에게 무지하게 얻어맞고 집으로 돌아왔지.』 샘이 마시던 맥주를 빼앗아 입안에 털어넣었다. 오늘 하루는 안 마시겠다는 맹세는 걷어치웠다.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자 어쩐지 뿔딱지가 났다. 『나는 훌쩍거리며 우는 널 다그쳐서 널 때린 녀석들 이름을 알아냈고.』 『톰슨, 조나단, 캐빈.』 『질린다. 이름도 기억하냐. 하여간 나는 그 길로 뛰쳐나가선 녀석들을 묵사발로 뭉개버렸어.』 『그랬지.』 『그 사실을 안 아빠가 나에게 무지하게 화를 내셨어.』 『하는 수 없지, 딘. 애들 이는 부러뜨리지 마라 - 아빠가 항상 형에게 하던 말씀이었잖아.』 『억울해. 난 그저 코피만 내게 하려고 했는데 조준이 잘못된 것뿐이야.』
조준이 잘못되었든, 아니든, 존은 싸움을 한 아들을 꾸짖으며 펄펄 뛰었다. 그리고 방을 따로 가져도 된다는 결정을 그 날로 취소해버렸다. 막연히 외출 금지를 짐작했던 딘에겐 말 그대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있잖아... 딘.』 그쯤해서 샘은 더듬거렸다. 그리고 한참동안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일부러 그랬어.』 톰슨에게 뻐드렁니라고 욕했다. 조나단에게 모래를 뿌렸다. 캐빈에겐 발길질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상급생들은 코흘리개 샘에게 본때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일부러 그들에게 싸움을 걸었다는 거냐?』 『맞아. 때리라고 내가 도발했어.』 『흐응~ 왜 그랬느냐고 묻기도 싫어지는군.』 딘이 고개를 돌리자 샘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더듬거렸다. 『혀, 형이 싸우고 돌아오면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잘 알고 있었거든. 그, 그래서...』
대꾸하는 딘의 말은 샘에겐 충격적이었다. 『알고 있었어.』 『뭐?』 『이 멍청아. 넌 그걸 제대로 숨겼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진작에 알고 있었어. 박스에 넣었던 내 소지품을 도로 풀어놓았을 적에 네 표정은「만세, 이제 됐다!」였거든. 이 녀석이 일부러 얻어맞고 와서 날 도발했구나 하고 깨달은 건 순식간이었다고.』 샘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 그런! 딘은 지금껏 나에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잖아!』 『뭐 하러 하냐, 그런 말을.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 딘은 멎적게 웃었다. 『나는 그다지 네게 화가 나지 않았다고.』
샘은 조심스러워졌다. 『화가 안 났다고?』 『그래. 대신 웃겼지.』 『뭐?』 『손가락에 침을 발라 눈가에 문지르면서「형, 맞은 곳이 아파 죽겠어. 엥엥」엄살을 부리는 건 귀여웠다고. 네가 어떻게「우리 마을」이란 연극을 했는지 모르겠다. 넌 진짜지 연기력이 꽝이야. 자, 그러니까 새미. 이쯤해서 그만둬. 네가 숨겨둔 비밀을 하나 어렵게 고백했으니 사나이 대 사나이답게 나도 비밀을 하나 고백하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이 형에겐 안 먹히니까.』
맞받아치는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모든 걸 다 안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 그, 그래도 형이 모르는 건 있어!』 『그래? 내가 그럼 뭘 모르고 있지?』 『내가 형을 사랑한다는 거!』 뜬금 없는 고백에 딘의 눈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뭐?』 『거봐. 당황하고 있잖아. 그건 몰랐지? 그건 몰랐을 거다! 그렇고 말고!』 샘은 바보처럼 의기양양해 하며 어깨를 부풀렸다.
한심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동생의 머리를 주먹으로 쾅 하고 내리쳤다. 『아얏!』 그리고 흘겨보며 말해주었다. 『이 바보야. 이 형은 그것도 이미 알고 있어.』
Posted by 미야
2008/02/12 11:10
2008/02/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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