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하는 거, 너무 비싸요. 그치만 3시간 넘게 걸리는 걸 염두에 두자면 꼭 비싼 것도 아닌 것 같고... 라고 해도 한 번에 7만원 와장창은 출혈이 크혀. ※
생판 모르는 사람의 집에 들어와 그 거주자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제일 먼저 뭘 하면 좋을까. 간단하다. 집안을 장식한 각종 사진을 뒤지면 된다. 《정확하게 따지면 생판 남은 아니지. 여긴 내 집이고, 사는 사람은 바로 이 몸이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모던한 느낌의 액자를 집어들었다. 그리곤 풋 하고 콧김을 뿜었다.
디즈니랜드에서 샘과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연미복을 입고 따라붙은 미키마우스가 어지간히 짜증났던지 사진 속의 그는 우거지상이다. 반면에 샘은 사탕을 선물받은 어린애처럼 좋아서 난리가 났다. 그리고 딘은 곧바로 눈치챘다. 샘이 기뻐하는 까닭은 단순히 도널드 덕이나 구피 때문은 아니었다. 뺨의 홍조와 시선의 위치만 봐도 그건 너무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식, 혼자서 신났군.』 진짜지 다 커다란 남자 둘이서 창피하게 손깍지를 끼고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사진을 집었다. 이번에는 혈압이 곤두박질쳤다. 청바지에 T셔츠 차림새의 그가 검지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총을 쏘는 시늉을 해보이고 있다. 바보처럼 혀도 낼름 내밀었다. 웃자고 그런 건지, 아님 보는 이들을 허탈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건지는 구분이 안 갔다. 아니면 의도했던게 둘 다일 수도. 사진이 찍힌 날짜는 2002년이다. 배경으로는 친구로 짐작되는 젊은이들이 저마다 큼직한 술병을 하나씩 꿰차고 까무라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어 딘은 눈꺼풀을 꿈뻑거렸다. 웃통을 벗어던진 채 털복숭이 가슴에다「얼간이」란 글자를 낙서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애쉬다.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여전히 어깨를 덮었고, 오랜 음주 습관으로 배가 나온 것도 똑같았다. 다만 여기선 MIT 공대를 무사 졸업했는지 히피가 갖기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비싼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었다. 구석으로는 썬글래스를 착용한 조도 보였다. 분위기로 보아 그녀는 경찰인 것 같았다. 황당하게도 무리 속엔 I♡NY 로고가 찍힌 셔츠를 허리에다 질끈 동여맨 메그도 들어가 있었다.
탁 소리가 나게끔 해서 액자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평범한 일상. 피냄새 자욱한 전쟁과는 거리가 먼 평온한 삶. 아무도 죽지 않았고, 죽을 위험에 처해 있지도 않다.
자신의 본명으로 된 신용카드 청구서를 찾아냈을 적엔 목젖이 다 드러나게끔 웃음을 터뜨렸다. 미스터 마호고프도, 버코비츠도, 맥귈러커디도 아니었다. 딘 윈체스터는 비자 카드로 식료품을 구입했고, 자동차에 기름을 넣었다. 다이하드 4편 DVD를 주문하고, 식사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는 착실히 세금도 내고 있을 것이다. 『와하하하! 이거 재밌다. FBI로부터 추적을 당할 일은 죽어도 없다는 거군.』 흘러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일정한 직업도 없고, 이렇다 할 연고지도 없던 어제의 나는 잊어주세요. 신용카드 위조에, 살인 혐의, 은행강도 어쩌고도 신경쓰지 마시고요. 휘파람을 불며 청구서를 구겨 쓰레기통 속으로 골인시켰다.
마침 집으로 배달되어온 청구서는 한 장이 더 있었다. 『어디 보자... 새뮤얼 싱어.』 그들이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라는 샘의 주장은 정말이었던 거다. 꺼림직한 느낌에 눈썹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황새는 메리에게 고추 달린 아기 바구니를 전달하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끔찍스런 배달 사고다. 럼주를 잔뜩 먹고 취한 것이 확실한 황새는 문패의 이름을 잘못 읽고선 윈체스터 집안이 아닌 잘 알지도 모르는 싱어라는 부부에게 갖난 아기를 데려갔다. 샘 윈체스터는 그래서 샘 싱어가 되었다. 거액의 소송, 그리고 변호사가 필요하다.
머리카락이 쭈삣 곤두섰다. 얼씨구? 그럼 나는 외동 아들인 거야?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상황이다. 죽상을 하고 아기 똥기저귀를 갈았던 딘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샘에게 이유식을 떠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노래를 불러주고, 걸음마를 연습시키고, 베이비 샴푸로 머리를 감겨주었던 형은 없다. 그거 참 편리하네. 바퀴벌레가 우굴거리던 싸구려 모텔방에서 안간힘을 다해 샘을 보호하던 그의 노력은 송두리째 증발했다. 대신 그 모든 것들이 전적으로 싱어 부부의 책임이 되었다. 최우선 순위를 무조건 샘으로 두지 않아도 된다니, 믿을 수가 없다. 혹시라도 샘이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걱정해야 하는 건 싱어 부부의 몫으로 이제 그는 자유다.
자유...? 흠칫해서 몸을 곳추세웠다. 갑작스런 통증이 어금니를 시리게 만들었다. 정말 괜찮아? 코찡찡이에게 닷셈과 뻴셈을 가르쳤을 싱어 부인과, 아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을 싱어 씨에게 모든 걸 넘겨도 괜찮은 거야? 럭키참스만 먹겠다고 고집을 피워대던 녀석의 버릇을 그들이 어떻게 고쳐놨는지, 넌 하나도 모르게 되는 거라고.「우리 마을」이란 제목의 연극에서 농부로 분장한 샘이 대사를 더듬으면 손을 흔드는 건 네가 아니고 싱어 부인이야. 모르겠다. 비디오 카메라를 들이대며「우리 아들 잘 해라~♬」응원하는 여자를 상상해봤다. 좋은 부모들이었을까? 자상했을까? 그들과 같이 해서 샘은 행복했을까? 축구화를 사주기는커녕 축구공도 못 차게 했던 존을 떠올리자 왠지 모르게 갈비뼈가 뻐근해졌다. 존은 샘이 학급 대표로 연극을 한다는 것도 몰랐다. 그는 포터러프스에 나타난 늑대 인간을 처리하기 위해 한 달 가까이 집을 비웠고, 참석을 신신당부하는 선생님의 알림장은 석 달 뒤에나 겨우 들춰봤다. 이쯤해서 더 나쁜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존은 샘에게 좋은 아빠 노릇도 못 하고 자리를 비워 미안하다고 말해주지도 않았다.
『우리 고집쟁이 막내에게서 원망받을 일은 이곳에선 없겠네요, 아버지.』 신문에서 오려낸게 분명한 종이 조각에 대고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용감한 영웅 - 수퍼마켓에서 복면 강도와 싸우다 사망. 삽시간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린애를 데리고 쇼핑을 나온 임산부를 지키기 위해 맨몸으로 강도에게 덤벼들었고,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 안타까운 희생에 지역 경찰 총장이 직접 애도를 표했다. 딘은「영웅」이라는 글자에 목이 매었다. 흐릿한 사진 속의 존은 반듯한 슈트 차림새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전의 그의 직업은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사냥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다. 그래도 불의와 싸우고 사람 셋을 살리고 갔으니 그 다웠다.
『딘.』 상념에 빠져있는 그를 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그 즉시 딘은 허겁지겁 눈물을 지우고 부기맨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씩씩한 형으로 되돌아갔다. 약한 모습을 샘에게 들켜선 결코 안 된다. 헛기침을 하며 어수선하게 늘어놓은 물건들을 치웠다. 『왜 그러니.』 그것들이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 지긋이 관찰하던 샘의 표정은 어두웠다. 『잠이 안 와.』 딘은 반사적으로 텔레비전 리모컨을 집어들고 전원을 껐다. 『미안, 이제 시끄럽지 않을 거야.』 『저어, 그게 아니라...』 『응?』 『자고 싶어. 재워줘.』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 부탁에 딘은 비굴하고 더부룩한 미소를 지었다. 스무 살이 넘은 남자가 자고 싶다고 말하는 건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잠을 자고 싶다는 소리가 아니라는 건 상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뒤돌아 달아날 태세도 진작에 갖추었다. 동생에게 등을 보이고 달아나다니, 치욕적이다. 그치만 사냥꾼의 본능은 보름달의 지배를 받는 그 무언가를 단단히 경고하고 있었다. 『눈 감고 하나, 둘, 숫자를 세면 어느새 잠이 슬슬 온다네.』 『딘.』 『그래! 나는 문단속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다시 가서 확인을 해야겠다.』 『그거, 오토 록인데.』 『기계를 맹신하지 마, 샘. 전기 면도기가 수염을 제대로 깎지 못 한다는 말도 있잖아.』 『저어... 지금 날 피하는 거야?』 『어허! 거북하게 그런 거 묻지 말고. 그러니까 너는...』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이라도 하는게 어떻겠니 - 라는 말은 도중에 쏙 들어갔다.
찍어 누르는 키스다. 아니, 이런 건 키스도 아니다.「공격, 레슬링, 압박, 강제적 인공호흡」기타등등의 단어들이 노란색 전구를 반짝이며 광속으로 날아갔다. 입술만 닿았을 뿐인데도 딱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테크닉 꽝, 무드 꽝, 오로지 아프다는 느낌밖엔 없었다.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샘의 키스는 서툴렀다. 그런데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 건 상대가 너무나도 필사적이라서 이러다 죽겠다는 말이 결코 엄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샘. 지, 진정하고... 샘! 아윽!』 질겁하여 고개를 뒤로 젖혀 피하려고 하자 아랫입술을 꽉 깨물렸다. 여유라고는 좁쌀 만큼도 없는, 그야말로 심장을 헤집고 할퀴는 행위였다. 순간 코끝에서 200배 농도로 압축된 탄산 음료의 충격이 질주했다. 상대로 하여금 도망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라는 건 알겠다. 그래도 이래선 안 되는 거다. 찢어지기라도 했는지 살갗이 끔찍하게 쓰라렸다. 거기다 세게 눌리기까지 하고 있어서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비릿한 피맛에 신음하며 얼음에 닿기라도 한 것처럼 추워하는 샘을 밀었다. 엉뚱하게도 녀석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반항했다. 《인석아! 아픈 건 나라고!》 결박하겠다며 팔을 두르고 그저 덤비는 것밖엔 할 줄 모르는 그를 어처구니 없다는 시선으로 올려다 보았다. 핏방울이 옮겨가 샘의 입술은 온통 붉었다. 그리고 녀석은 세상의 끝이라고 보고 온 듯한 절망적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08/01/19 23:11
2008/01/1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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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무게를 가진 망치를 찾아 자신을 향해 재빨리 휘둘러야만 했다. 맹세하거니와 그것이 그가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공구 상자 비슷하게 생긴 건 어디에도 없었고, 당연한 얘기로 딘은 스스로의 머리통을 박살낼 수가 없었다. 그는 낙담했다. 『딘? 자다 말고 갑자기 왜 그래.』 어리둥절해 하는 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굴러다니던 셔츠를 아무렇게나 끌어당겨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아이고, 예수님. 이로 씹히고 빨린 가슴을 어떻게든 가리고 봐야 했다. 그리고 딘은 그보다 곱의 곱절로 씹히고 빨린 샘의 가슴 역시 모자이크 시각 처리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거친 애무로 붉게 부어오른 가슴돌기로 시선이 흘러가자 시속 100㎞로 질주하는 자동차가 주유소를 정면으로 들이받은게 되어버렸다. 쉽게 말하자면 펑 소리를 내고 뇌로 불 붙었다.
멸망을 알리는 불꽃이 속수무책으로 하늘을 찔러대는 가운데 딘은 사람 살리라고 외쳤다. 『너도 나처럼 뭐라도 걸쳐. 당장!』 그나마 다행이었다. 절망에 사로잡힌 구조 요청을 귀담아 들은 샘은 상체를 구부려 파자마 바지부터 찾기 시작했다. 이걸로 한 시름 덜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 간밤에 전혀 다른 의도로 같은 동작을 했을 거라는 깨달음에 그조차 얼른 그만뒀지만, 아무튼 침대에서 단숨에 뛰어내려온 딘은 활활 타는 주유소는 나 몰라라 내버려두고 거실로 탈출했다.
난 안 본 거다. 하얀 엉덩이. 안 봤어. 그런 거 있었어? 끝내주는 하얀 엉덩이. 난 못 봤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그런데 거기에「끝내주는」이란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면 어쩌자는 거야!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견딜 수가 없어 창문을 벌컥 열고 외쳤다. 『이 빌어먹을 괴물아! 바꿔! 바꾸라고!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잭 팟을 터뜨리고, 양편으로 늘씬한 미녀 둘을 꿰차고선 VIP룸에서 으쌰으쌰!!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거야! 이런게 아니야~!!』 놀란 동네 똥개가 화답하여 컹컹 짖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3자의 입장에선 딘이 완전히 돌은 사람처럼 보였을 거다. 덩달아 맨발로 뛰쳐나온 샘은 어쩐지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딘이 보이고 있는 비이성적 행동에 대한 타당한 설명은 딱 하나였다. 바로 약에 취했다는 것, 그것도 대단히 해롭고, 부작용 또한 심각한 규제 약물 말이다.
『아냐, 임마! 내가 그런 거 싫어한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입김이 뿌옇게 나오는 2층 창가에서 몸을 떼어내고 강하게 부정했다. 『약 같은 건 안해. 내가 미쳤냐! 그런 걸 하게.』 『나도 알아, 딘.』 말로는 수긍하면서도 샘은 조심스럽게 딘을 주시했다. 그리고 이 정도면 도발하지 않겠다 싶은 선에서 가까이 접근하려 기를 썼다. 손바닥을 들어보이는 건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라는 제스츄어. 어이가 없어 눈알을 굴렸다.
『그거 알아? 여긴 2층이지만 거기서 뛰어내리면 상당히 아파, 딘. 무척 아프다고.』 『아이고, 혈압 오른다. 네 말인 즉, 내가 여기서 점프라도 할 것처럼 보인다는 거냐?! 앙?!』 『제발... 거기 서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줘. 내가 이렇게 애원할게. 응?』 『야! 나, 안 미쳤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 맛이 간 건 맞지. 남동생과 같은 침대에 누워 벌거벗고 뒹구는게 어디 정상이냐. 미친 놈의 대명사라던 네로 황제도 로마를 홀라당 불태웠을망정 남동생 엉덩이를 거시기로 마구 쑤시진 않았거든.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딘은 무엇으로 수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샘. 넌 들어가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도록 해라. 넌 잘못 없고, 잘못 되지도 않았어. 다 이 형님이 못난 탓이니까 내가 책임지고 알아서 정리할게.』 숨부터 돌리고 보자. 담배라도 태웠음 좋겠다. 입맛을 다시며 땀이 벤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그런데 이놈의 집구석에 담배가 과연 있으려나... 현실에서의 샘은 담배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환상 속의 샘도 똑같이 담배를 싫어할 수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대충 훑어본 협탁에는 재떨이처럼 생긴 것이 올라가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집안 서랍을 모조리 열어봐도 원하는 걸 찾아내기는 어려울 거라는 말씀. 답답한 마음에 날짜가 지난 신문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곳곳을 기웃거렸다. 허나 그런다고 없던 담배가 허공에서 쨘 하고 굴러 떨어질 리는 없었다.
좋아. 진정하는 거다, 딘 윈체스터. 담배가 없다면 그 다음엔 맥주가 있다. 설마하니 남자 둘이서 사는 집에 그 흔한 맥주 하나 없겠어? 냉장고를 열기만 하면 된다고. 가자! 주방으로!
결심하고 이쪽이겠다 싶은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다 기겁하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어느새 기척을 죽이고 가까이 다가온 샘이 냉큼 손목을 잡아챘고, 그 즉시 딘의 입에서는 생으로 털이 뽑히고 있는 오리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아이고, 아파!』 짓눌린 손목뼈가 똑 소리를 내며 부러지려 했다. 그래도 샘은 손아귀의 악력을 줄이지 않았다. 『아프다고 했잖아!』 동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것만이 최선이라며 딘을 와락 안았다.
처음에는 몸을 좌우로 비틀며 반항했다.
하지만 밀착된 가슴 저편으로부터 광란하며 질주하는 심장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딘은 그 즉시 샘을 뒤로 밀쳐내려던 걸 멈췄다. 쾅쾅거리며 혈관을 때리는 세찬 진동이 심상치 않았다. 해머로 벽을 때려도 이럴 수는 없다. 놀라서 눈을 크게 치켜떴다. 『어이, 어이. 너,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무서워서 졸도할 거 같아.』 『엇, 그럼 안되지.』 비록 현실이 아닐지언정 샘이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건 질색이었다. 딘은 울기 직전의 동생을 달래며 양팔을 위아래 방향으로 반복하여 문질렀다. 아, 이건 추워서 소름이 돋았을 적의 요령. 틀렸다는 걸 깨닫자 방법을 바꿔 등 한 가운데를 마사지했다. 어라, 이건 딸꾹질이 멈춰지지 않을 적의 요령. 그렇다면 기절 직전의 아이를 진정시키는 방법은 뭐지. 눈자위가 새빨갛게 된 동생을 소파로 인도하며 한참을 허둥거렸다. 『부기맨 없다, 부기맨은 없다... 그러니까 안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워.』 어렸을 적에 샘은 벽장 속에 사는 괴물을 끔찍이도 무서워했다. 부기맨이 잡으러 온다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코로 부드러운 살내움을 하나 가득 빨아들이며 딘은 그의 소중한 아기 형제를 다독거렸다. 『하나도 안 무섭네. 형이 있으니까 하나도 안 무섭네.』
보람이 있어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던 샘의 호흡은 서서히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잔뜩 찌푸려진 이마는 평평하게 펴질 생각이 좀처럼 없는 듯했다. 『딘.』 『응.』 『아까부터 쭉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형」이라는 말을 써?』 『그야 내가 네 형이니까.』 『누가.』 『내가.』 『딘이?』
이거 뭔가 이상하다. 어떻게 거기서 1초도 안 기다리고 반문이 나오냐. 딘은 콧잔등을 찡그리며 샘을 똑바로 응시했다. 『웃기는 자식. 그럼 넌 내가 네 삼촌이라고 생각해?』 『아니.』 샘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딘은 내 삼촌이 아니야. 그렇다고 내 형도 아니지. 이건... 맙소사, 진짜지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왜 갑자기 딘이 내 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에.』 『나, 딘의 동생 아니야.』 『에.』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죽어도 동생 같은 거 안해.』 『뭐시라.』 『난 딘의 애인이야. 그거 말고는 다른 거 절대 안해. 안 한다고.』
그는 창문을 벌컥 열고 다시 외쳤다. 《야, 이 나쁜 자식아~! 설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이래선 적응을 할 수가 없잖아~!》 쩌렁쩌렁 울리는 그 외침을 듣고 건너편 건물로 불이 켜졌다.
Posted by 미야
2008/01/16 19:32
2008/01/1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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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를 추적하는 건 이것으로 두 번째다. 솔직히 말해볼까. 딘은 이번 사냥이 썩 내키질 않았다. 언젠가 일리노이 주에서 엉켜붙었던 지니가 그만의 신성불가침 영역 - 너무나도 예쁜 우리 엄마 - 을 건드린 이후, 그는 지니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바퀴벌레와 에이즈, 꽉 찬 음식물 쓰레기통과 동급으로 취급했다. 그 망할 것은 끝내주게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내는 메리를 보여주었다. 천장에 매달려 불에 탔다고? 그녀는 로렌스에서 여전히 잘 살고 있었다. 비록 섹시한 미인 과부라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 그러면 어떠랴, 모르긴 몰라도 존은 아마 이해할 것이다 - 곧 손자가 생길 거라는 뉴스와 둘째 아들 놈이 장가간다는 더블 펀치에 맞아 최고로 축복된 생일날을 보내기까지 했다. 임신 탓에 체중이 불어 당분간 미인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게 된 제시카가 샘에게서 받은 반지를 자랑하자 메리는 기쁨에 들떠 환히 웃었다.
욱 하고 배가 들끓었다. 메리가 만들어준 그때의 샌드위치 맛이 입안에 맴돌면서 장이 꾸룩거렸다. 당혹감에 반사적으로 손을 내려 배꼽 부근을 세게 눌렀다. 딘은 이 증상이 단순히 배가 고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실이 아니었다.
『형? 내 손전등이 아무래도 맛이 간 것 같아. 아까부터 자꾸만 깜빡거려.』 『으이그.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것까지 말썽이냐.』 『혹시 건전지 남은 거 있어?』 『그러지 말고 손바닥으로 툭툭 쳐봐.』 『형, 내 손전등...』 『아악! 시끄러!』
사소한 것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건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심장이 조각나는 상처 앞에서조차 냉정해야 하는 헌터가 고작 불량 상태의 손전등에 대고 목소리를 높인다라. 참 잘 하는 짓이다. 딘은 자신의 손전등을 샘에게 냉큼 집어던지고, 동생이 들고 있던 걸 빼앗아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양의 피로 적신 은칼로 지니의 엉덩이를 쑤셔댔음 소원이 좋겠다. 『이제 됐지? 샘.』 『되긴 뭐가 됐다고 그래.』 『씁! 그냥 됐다고 해라.』 뒤편으로 눈을 야리고 허름한 창고의 문턱을 재빨리 뛰어넘었다.
축축한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짐짐한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닥에 물기가 고여 있었다. 골조를 이룬 나무 프레임에서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났다. 용도를 짐작하기 힘든 포장용 박스들은 진작에 썩었고, 구석구석으로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려진 험한 말투의 낙서가 눈에 띄었다. 딘은「네 엄마 보지를 졸라 쑤셔봤어」라는 낙서 위로 그려진 역십자 문양에 주의했다. 별 생각 없이 그려댄 기호들이 때로 악령을 역사하게 만든다는 건 상식이다. 액땜의 의미를 담아 사금파리를 주워 스프레이 페인트 위로 짧게 사선을 그었다. 이것으로 이제 기호는 망가졌고, 혹시라도 작용했을 힘은 방금 전에 사라졌다. 그럼 계속 진입이다.
예민한 샘이 무의식중에 코를 쥐었다. 어딘가에 쥐도 죽어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떠돌이 개일 수도 있다. 딘은 그놈의 망할 지니가 바지를 세탁해서 입는 걸 300년간 잊어버렸다는 거에 10달러를 걸었다. 손전등을 들어 창문이라 짐작되는 부분을 비췄다. 그래봤자 두꺼운 널빤지를 대고 못질을 해놔 창인지 벽인지 구분도 안 갔다. 방범용 쇠창살의 일부가 남아 과거에 그곳으로 신선한 공기와 햇빛이 들어왔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담 쌓았다. 『지니가 좋아할만한 곳이군.』 먼지가 입안에 가득 찼다. 딘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텁텁한 맛의 침을 뱉었다.
『서두르자, 샘. 이 망할 것이 납치한 사람들을 상한 고깃덩어리처럼 매달아놓고 있을 거야.』 습기, 인적이 드믄 넓은 공간,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이 세 가지 조건은 사악한 정령이 둥지를 틀기에 매우 이상적인 환경이 되어준다. 그리고 지니는 자신의 서식처로 사람 통조림을 보존하는 습성이 있었다. 이 부근에서 행방불명된 사람은 모두 셋. 게중 한 명은 진작에 시체가 되어 강에서 떠오른 상태다. 그리고 형제들은 매를랜드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와 이 창고를 찾아냈다.
『오케이. 위로 올라갈까, 아님 내려갈까.』 『예로부터 멍청이들은 위로 올라가고, 머저리들은 아래로 내려가는 법이지.』 『그래서, 뭐. 올라가자고, 아님 내려가자고. 어느쪽이야, 딘?』 『그거야 머리 좋은 네가 결정해야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샘이 투덜거리며 곳곳에 남은 위험한 구조물의 여부를 체크했다. 일부 주저앉은 천장이 위태롭게 보였다. 철근 구조가 훤히 드러난 곳으로는 사람의 내장처럼 석면 내장재가 질질 흘러나와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위치를 바꿔 불빛을 비췄다. 속이 텅빈 파이프들은 진작에 썩고 휘어져 잘못 건드리면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생겼다. 타박타박 발자국 소리를 내어 걷다 자칫 날벼락 맞는 건 아닐까 무서워졌다.
그 즉시 딘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지금 뭐라고 했나. 고작 발자국 소리에 파이프가 떨어질 거라고?』 『그게... 말을 하자면 그렇다는 거고...』 『말을 하다 왜 도중에 흐려. 새미? 너, 요즘 걸으면 퉁퉁 소리가 날 정도로 몸이 불었냐.』 『아냐!』 『어디 볼까. 우리 동생 배 나왔나, 안 나왔나.』 『어, 어딜 만져! 싫어.』 살찐 건 아니냐는 딘의 의심에 샘은 꽤나 억울해 하는 눈치였다.
두 사람은 철제 계단을 이용해 아래로 내려섰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속도가 아까보다 느려졌다. 어딘가에서 새카맣게 생긴게 불쑥 튀어나오기라도 할까봐 샘은 머리카락까지 세우고 있었다. 딘도 살짝 긴장했다. 사냥은 늘 위험했다.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엔 장의사가 진지한 낯짝으로 주판 알을 굴리게 된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그런데 댁의 형님을 화장할까요, 아님 매장할까요 - 까만 양복을 입은 신사가 절반은 넋이 나간 동생에게 그 질문을 던지는 걸 상상한 딘은 도리질했다.
『특별히 수상한 기척은 없는 것 같아, 딘.』 『넌 영화도 안 보냐. 등장 인물이 그런 말을 하는 순간에 귀신이 덮친다고. 조심해, 샘.』 『조심하고 있습니다, 형님.』 『말만 꼬박꼬박 잘 하지. 입으로만 움직이지 말고 무슨 기척이 들리진 않는지 잘 살펴.』 『여긴 더 어둡다. 콜록... 그리고 냄새! 아유, 더러워.』 『불평은 그만하고 미끌어져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 바닥에 물기가 많다.』 『그나저나 밖에서 봤던 것보다 꽤 넓네. 어떻게 할래, 딘. 시간도 절약할 겸 둘이 나눠서 찾아볼까? 내가 오른쪽으로 돌게.』 『저쪽으로 문이 하나 보이는군. 오케이. 나는 저리로 간다. 넌 반대편으로 한 바퀴 돌아봐.』 『알았어. 무슨 일 있음 신호해.』
딘은 잠굼 장치가 없어진 문을 바깥으로 밀었다. 경첩이 삐걱이는 쇳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후다닥 소리를 내며 쥐가 뛰어갔다. 깨진 유리를 밟았다. 순간 미묘하게 공기가 흔들렸다. 딘은 흠칫해선 움직임을 멈춘 채 위를 쳐다봤다. 동작하지 않는 환풍구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어쩐지 새카만 그림자가 가로질러 지나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그가 들고 있던 손전등이 약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픽픽거렸다. 『Come on~! 이러지 말자!』 동시에 돌연 장면이 바뀌어 딘은 널직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게 뭐야. 악! 난 몰라! 또 지니에게 당한 거야! 당한게 분명해! 샘이 좋아라 비웃겠군.》 잠에서 덜 깬 듯한 흐리멍텅한 머리로도 그건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니다. 밖에는 비가 온다. 대단히 늦은 시간이고, 텔레비전에선 오래된 흑백 영화가 방영되고 있다. 옆으로는 생판 모를 여자가 나체로 누워 있을 것이고,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이다. 아닌게 아니라 침대에 엎드려 누운 딴 사람이 보였다. 눈꺼풀을 뒤집으며 하느님 맙소사 신음했다. 《잘 한다, 딘 윈체스터. 역시나 재수가 없어. 그렇다면 지금쯤 나는 다른 희생자들처럼 어딘가에 매달려 피를 생으로 뽑히고 있겠군.》 이쯤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샘이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던가, 아님 스스로의 힘으로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저번처럼 자살을 시도하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둘 다 마음에 안 든다. 《어쩌다 내가 또 같은 실수를! 진짜지 나는 학습 능력이 제로인 건가?!》 머리를 감싸쥐고 한참을 끙끙거려봤자 달라지는 건 하나 없다는게 끔찍스러울 뿐이다.
카르멘이 몸을 뒤척였다. 흠칫하고 침대 모서리 부근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카르멘... 이렇게 보니 당신 다리에 털이 많네. 저번에는 그렇게 예뻤으면서 지금은 관리 전혀 안 하는 거야? 머리카락도 짧게 잘랐네. 혹시 맥주 모델 일에서 은퇴라도 했어? 에이전트 사장이 당신더러 이런 일을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고 그랬어?
호기심에 고개를 길게 뺐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건 그 즈음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게야... 여자라고 하기엔 등이 너무 넓어... 키도 크고... 근육도 붙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걸 참고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심장이 뚝 하고 멎었다. 그는 하얗게 질려 입만 뻐끔거렸다.
『딘? 왜...』 상대가 눈을 뜨고 졸린 목소리를 냈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샘이 손등으로 눈을 부비고 깨어났다.
Posted by 미야
2008/01/15 14:43
2008/01/1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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