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 61 : Next »
장미꽃의 낭만이 아니라 라면과 밀가루 같은 생필 필수품의 절박함을 닮은 키스였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초코렛처럼 달콤한 - 이라는 전형적인 광고 문구 위로 두 개의 밑줄이 그어졌다. 이건 뭐 끝장이다 싶은 입맞춤 10위권 내로 당당히 진입이다. 제일 먼저 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튀긴 닭의 맛이 난다」라는 점이었다. 사과 맛도, 풍선껌 맛도 아닌, 후라이드 치킨이었다.
딘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운게 불과 몇 분 전이니까 이 틈새로 적지 않게 찌꺼기도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더럽고 지저분한 입안에서 서로의 혀가 어지럽게 얽히고 있었다.

비위생적이야
- 지극히 상식적인 샘이 가까이에서 고개를 흔들어댔다.
로맨틱하지도 않고 - 넌더리도 냈다.
샘은 어쩐지 재수 없게 굴고 있는 자신의 일부를 뒷발로 뻐엉 걷어찼다. 지금 그게 문제야? 반 고호가 묘사한「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잇몸이 문질러지자 귓속에서 벌레가 앵앵거렸다. 견딜 수가 없어져 신음 소리를 흘리며 딘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먹지도 않은 치킨의 맛은 더욱 강렬해졌고, 입천장을 자극하는 혀의 움직임에 머리가 흐릿해졌다.

『으응...!』
두 번째 벽돌 위로 다섯 번째 기왓장이 아슬아슬하게 얹혀졌다. 그것이 언제 균형을 잃고 소복히 주저앉을지는 하느님도 모를 것 같았다. 순서도 엉망, 모양도 엉망, 뒤뜰에 창고를 만든다면서 수영장을 파고 있었다. 설계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고 일하러 나온 인부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즉흥적으로 움직였다. 엉뚱한 삽질로 지하에 매설된 수도관에 구멍만 안 뚫으면 다행 - 찬란하게 빛나는 별은 사이프러스 나무 위에서 형형의 색채로 뒤섞였다. 눈을 감았음에도 무수한 작은 점들이 반짝반짝 빛을 냈다.

샘은 반 고호가 미쳤던 것처럼 자신도 미쳐가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반 고호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귀를 잘라야 할까.
어쩌면 이미 잘려나간 건지도. 딘이 그 손을 들어 귓불을 쓰다듬자 그저 흐느껴 울고만 싶었다. 온몸이 녹아 반투명한 젤리로 변한 것 같았다. 아니, 귀만 남고 나머지 부분은 송두리째 사라진게 분명했다. 머리도 없고, 몸통도 존재하지 않았다. 약한 부분이 반복적으로 어루만져지자 샘은 자신이 누구였고, 어디에 살고 있고, 무엇이었는지조차 깨끗하게 잊어버렸다.
숨 같은 건 안 쉬어도 좋다. 머리 위로 뜨거운 숯불이 올라가 있지만 상관 없다. 계속 이대로만 있을 수 있다면 영혼마저 불필요하다.
『딘.』
더욱 밀착하기 위해 고개의 각도를 바꾸며 형의 두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사랑해.

그는 총소리라도 들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몸을 벌떡 일으키려다 균형을 잃고 뒹굴었다. 거기까지도 충분히 꼴불견인데 가뜩이나 커다란 눈을 부릅뜨곤「올해가 서기 2019년이 맞나요?」식으로 허둥거렸다. 높이 400층의 마천루 밖으로 택시가 잠자리처럼 날아다니고, 경찰들이 불법 복제인간을 사살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건 유독한 산성의 비로 건물의 처마는 일찍이 부식되어 그 형태를 잃어버렸다.
검은 하늘. 그리고 검은 비. 유황불에 살 타는 냄새.
『미, 미안해!』
딘은 벽을 쳐다보며 연거푸 사과했다. 아직은 동생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엉뚱하게 테이블 모서리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다.』
그리고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머리를 숙였다.
『다신 안 그럴게. 정말이야. 맹세코 다시는...』

채 듣지 않고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딘은「왜?」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모르겠다는 얼굴이어서 샘은 화가 치밀었다.
『그런 말은 하지 마.』
『뭘.』
『다신 안 하겠다는 말.』
『그게 무슨...』
이마를 찌푸리며 무어라 반박하려는 입술을 빠르게 눌러 막았다.
『읏!』
『닥치고 키스 해.』
놀란 것이 분명하다. 딘의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평소의 얌전하고 고지식한 동생에게선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샌님 같은 녀석이 보일 돌발 행동 역시 아니었다.

워, 잠깐잠깐잠깐잠깐만.
필사적으로 샘의 머리를 힘주어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되려 역습을 받고 혀의 뿌리부터 세게 빨리웠다. 여유가 사라지고 강약 조절이 생략된 행위는 어딘지 모르게 폭력을 많이 닮았다. 분명 쾌감도 있지만 그에 반하는 고통도 상당했다. 찡그리며 입술을 비틀자 그 틈새로 타액이 흘러나왔다. 그 한 방울이 아깝다며 샘이 혀로 그것을 쫓았다.
『그만!』
『왜 그래. 시작은 형이 먼저 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런다고 해도 용서치 않을테니까...』
『알았어. 이해했어. 화가 많이 났구나. 그래, 내가 죽을 놈이야. 그러니까 샘? 떨어져.』
『맞아. 나는 화가 났어. 하지만 형이 짐작한 거와는 많이 달라.』

셔츠깃을 단단히 움켜쥔 채로 이쪽을 똑바로 응시해왔다.
그게 어쩐지 무서워져 딘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맨발로 달아나봤자 샘은 운동화로 갈아 신고 똑같은 속도로 뒤따라왔다.
『우린 잘못하지 않았어.』
헐떡이는 호흡이 이마에 닿았다.
『잘못된게 아니야.』
호소하는 동생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형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오히려 기쁘다. 기뻐서 견딜 수가 없다. 가능하다면 매일 하고 싶다.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잠들기 전에 생각한다. 깨어나서도 생각한다. 딘과 같이.

『머리에 총 맞았냐.』
불쑥 튀어나온 말에 샘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딘!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어?!』
『그치만 이건 정상이 아니라고. 맙소사, 나는 너에게 위해를 가해선 안돼. 상처 입히지 않을 거야. 널 안전하게 지키겠다고 아빠와 약속했어!』
『하지만 딘과 키스하면 기분이 좋아. 그럼 괜찮은 거 아니야?』
『인석아... 대학에 가서 그 좋은 머리로 법률 공부한 거 맞냐. 네 이론대로라면 대마초는 당연히 합법이겠다. 기분이 좋으니 그걸로 끝,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라고. 자연적 생리반응을 왜곡하지 마. 그러니까... 찬물에 집어넣으면 손이 시린 것과 마찬가지야.』
『형이나 멋대로 왜곡하지 마시지. 아무하고나 키스한다고 기분이 좋지는 않아. 그리고 흥분하지도 않아. 적어도 나는 그래.』

흠칫해서 시선을 거기로 향했다.
나사는 화성의 시도니아 평원에 자리한「얼굴 바위」가 빛과 그림자가 만든 일종의 허구라며 인공 구조물 설을 부정했다. 그치만 지금 그가 눈으로 보고 있는, 바지의 그 부분이 부푼 모양은 결코 빛과 그림자로 인한 착각이 아니다.

식은땀이 났다. 바보처럼 입술을 오므리고, 어버버 소리를 내면서,「네 똘똘이가 커졌잖아!」외치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이럴수록 이성을 잃어선 안 된다. 침착하게, 논리적으로... 숨을 몰아쉬며 금방에라도 끊어질 것 같은 자제력을 놓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25 더하기 36은 모두 얼마지. 답은「뇌가 펄펄 끓고 있다」.

겉옷을 움켜쥐고 바람처럼 뛰었다.
『밖에 나갔다 올게!』
『딘!』
만류하는 샘의 동작에 딘은 발악했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만지고 싶어진단 말이야!』
『만지면 되잖아.』
『안됏!』
세상이 끝장나도 그것만은 절대 안돼. 위협적으로 검지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이며 경고했다.
『형을 너무 부추기지 마.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어중간하게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건, 네가 알고 나도 알아.』
『난 끝까지 가도 상관 없는데.』
『난 상관 있어!』
『왜. 내가 그렇게 싫어?』
『이 멍청아! 내가 널 싫어할 리가 없잖아!』
『그럼 뭐가 문제야? 응? 뭐가 문제냐고!』
서로 닿고 싶다고 생각한다. 만지면 행복해질 것 같다. 눈빛만으로 범한 것도 여러 번이다.
분명한 의도를 담고 손목을 붙잡았다.
『보내지 않을 거야. 못 나가!』

붙잡힌 피부가 뜨겁게 달궈진 인두로 지저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널 키웠다고! 내가! 누가 너에게 우유를 먹였다고 생각하는 거냐! 누가 너에게 기저귀를 채웠지?! 나야! 그건 바로 나라고! 그러니까 안돼! 이건 옳지 않아!』
하느님, 용서해 주세요.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샘을 바짝 끌어안았다. 동생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 점이 딘으로 하여금 더욱 절망에 빠지게 만들었다. 벨트를 풀고 바지를 무릎 아래까지 내려도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속옷의 선을 좌우로 벌려 그 안으로 머뭇머뭇 손을 집어넣었을 적에도 - 오히려 샘은 팔을 둘러 딘에게 매달렸다.

목덜미로 뜨거운 숨이 불어왔다.
『우린... 결코 잘못하고 있는게 아니야, 딘.』
잔뜩 달아오른 상징이 보다 많은 자극을 요구했다.
『어서. 빨리!』
딘은 엉뚱한 곳으로 눈물이 흐른다고 생각했다. 손바닥에 고이고 있는 투명하고 따뜻한 액체는 원래라면 그의 양쪽 눈구멍에서 흘러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왜 샘의 발기한 그곳에서 쉬지 않고 새어나오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기가 막혀서? 아님 단순히 출구를 잃어버려서?

거친 호흡이 귓전에 울렸다.
입술을 깨문 채 빈틈 없이 감싼 샘의 그것을 흝어 올렸다.
샘이 경련을 일으켰다.

딘은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야겠다고 결심했다.

Posted by 미야

2008/03/09 21:17 2008/03/09 21:17
Response
No Trackback , 7 Comments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803

Comments List

  1. hoya 2008/03/09 22:07 # M/D Reply Permalink

    먼저 댓글 남기고 심호흡하고, more 살포시 누르러 갑니다 ㅡ_ㅡ*

  2. 아이렌드 2008/03/09 22:12 # M/D Reply Permalink

    얼쑤!!!! 미친듯이 봉산탈춤...(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리요~)

  3. 로렐라이 2008/03/09 22:50 # M/D Reply Permalink

    아이렌드 님과 더불어 모니터를 부여잡고 미친듯한 광란의 봉산탈춤의 세계로 떠난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네요, 세상이 아름다워요 'ㅂ'*

  4. 2008/03/10 15:26 # M/D Reply Permalink

    ^_^b 정말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ㅠㅠ

  5. 마리 2008/03/10 21:38 # M/D Reply Permalink

    엄훠. 말이 나오지 않네요!!!//ㅁ//
    전 원래 샘딘파였는데 미야님 소설읽고 딘샘파가 됐습니다.

  6. 소나기 2008/03/10 21:46 # M/D Reply Permalink

    얼쑤!!! 봉산탈춤에 상모돌리기 추가요!!!!!!

  7. 바람의노래 2008/03/17 22:13 # M/D Reply Permalink

    얼쑤~~~ 봉산탈춤에 상모돌리기에 풍악추가요~!!!

Leave a comment

모든게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 딘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찼다.
오랜만에 배를 채우고 나자 샘의 안색은 눈에 띄게 좋아져 영양제를 처방받고 분갈이를 마친 화초처럼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날아갈 것 같은데 6월의 햇살은 따스하고 기분 좋았다. 완벽하게 정비된 임팔라의 엔진은 시동을 걸자마자 건강한 소리를 냈다. 라디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건 블랙 사바스, 거기다 운좋게 일거리다 싶은 것도 건져냈다.
『캘리포니아에 세입자 세 명이 연달아 자살한 아파트가 있대, 샘.』
사람이 죽었다는데 기쁜 듯이 말해 그거 하나는 유감이다. 그러나 본심은 캐스터네츠라도 두드리며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입에다 장미꽃 한 송이를 물고 탱고 박자에 맞춰 허리를 뒤로 꺾을 의향도 있다. 단, 운전 중에 그런 짓을 했다간 대형 사고는 필연인 관계로 거위처럼 목을 앞뒤로 뒤뚱거리는 걸로 타협을 봤다.

세 명의 천사들이 마리화나를 피운다. 세 명의 천사들이 사기 포커를 친다. 완벽한 삼위일체, 야이야이호~♪
토니 아이오미가 뿜어내는 전자 기타의 현란한 오르내림을 만끽하며 자동차 속도를 올렸다.
『어때, 동생아. 우리가 그 문제의 아파트로 가서 네 번째 세입자가 되는 건?』
조수석에 앉은 샘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딘의 제의에 보일락말락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치명상이라고 여겼던 상처로 분홍색 새 살이 올라온다. 그깟 딱지와 흉터가 다 뭐라냐. 아파트 입주금이 수중에 없다는 문제는 나중이다. 유리창을 열고 신선한 바깥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기다려라, 캘리포니아! 휘파람을 불며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당장 캘리포니아로 가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엉덩이를 들썩거렸으면 최소한 국도를 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지극히 엉뚱해서 딘은 피자와 도넛, 콜라와 같은 불건전 음식을 잔뜩 챙겨선 상다리가 휘어지게 진열을 했다.
소화도 참 잘 되는 인간이다. 점심 먹은게 언제라고.
토기가 올라올 정도의 진한 양념 냄새에 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그랬음 좋겠는데 그곳 아파트 관리인이 지금 부재 중이야. 전화를 걸어 언제나 올 수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빨라도 이틀 뒤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대답하지 뭐니.』
그래봤자 핑계다. 예전 같으면 관리인의 사정 같은 건 개의치 않고 무작정 현관을 따고 들어갔다. 실제로 필라델피아의 한 아파트에서 금발의 여자애가 감쪽같이 사라졌을 적엔 EMF 미터기를 들고 건축물 안전진단과 공무원인양 온 건물을 들쑤셨다. 출발을 미루고 지금처럼 미적거리는 건 단순히 딘이「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손바닥을 싹싹 비벼가며 아이스크림과 맥주도 꺼내놓았다. 안주로 삼을 짭짤한 맛의 과자도 샀다. 가게에서 몇 개의 DVD를 빌려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봉투 속의 내용물을 하나하나 체크하던 샘은「고질라」타이틀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것도 역대 최악이라 평가받은 1998년도 헐리우드 리메이크다. 저놈이 드디어 미쳤나 - 형을 쳐다보는 시선이 지극히 불손해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라면 그나마 속는 셈치고 들춰보겠지만 영화는 지역 케이블 방송에서 지겹게도 틀어대는 블록버스터 오락물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돈이 썩었다.
『뭐부터 시작할까. 킹콩을 볼까? 아님 헐크부터 볼까.』
『진심이야, 형? 차라리 람보를 보겠어.』
『미안, 새미. 그건 안 빌려왔는데. 미리 귀띔을 해줄 것이지. 이 형이 눈치가 없었다. 언제는 톰 크루즈가 최고라더니 언제부터 네 취향이 실베스타 스텔론으로 바뀌었냐?』
『누가 내 취향이야! 둘 다 싫다는 얘기야!』
기가 막혔던 것도 같다. 어느새 샘은 엉덩이에 뿔난 강아지를 야단치는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DVD는 그렇다 치자. 딘이 사가지고 온 음식의 전부가 불량 식품을 닮아 있었는데다 둘이서 먹어치우기엔 터무니없이 양이 많았다. 핫도그 먹기 대회 최강자인 고바야시 다케루를 개인적으로 초대한 거라면야 또 모른다. 드럼통을 닮은 아이스크림 포장 용기만 봐도 질리려 했다. 4인 가족이 여름 내내 숟가락을 빨아대도 바닥이 안 드러날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다.
어느 정신 나간 시의원이 계곡을 채워 산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관보에 게시했다. 40일 뒤에 엄청난 홍수가 날테니 시 예산으로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세금을 착실히 내는 일반인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일이다. 죽일 놈의 시의원, 망할 탄핵소추, 얼어죽을 홍수.

『제정신이야?』
『아우움야우?』
타락의 로마는 영원하다. 입에는 도넛, 양손으로는 리모컨과 쿠션을 꿰찬 딘은「뭐가 잘못됐어?」라며 반문했다. 인간의 탈을 쓴 돼지 - 샘은 평균적 위장 크기와 올바른 식습관에 대한 설교를 포기한 채 맥주 뚜껑을 땄다. 상호는 아이다, 고맙게도 샘이 제일 좋아하는 종류다. 딘은 그거 하나는 동생을 위해 배려했다.

『그런데, 형. 아까 말한 신문은 어디에 뒀어? 사람 잡는 아파트 어쩌고 말이야.』
고질라가 미끼로 놓여진 물고기를 우적거리며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 고질라를 빼닮은 누군가 씨는 휴지를 들어 기름 투성이로 변한 입가를 허겁지겁 닦아냈다.
『와... 벌써 조사야? 이봐, 샘. 출발은 내일이라고. 좀 느긋해져라.』
『나는 지금도 느긋하거든?』
『참으로 그러십니다.』
모처럼 멍석을 깔았음에도 같이 어울려주지 않는 동생을 향해 눈을 야렸다.
그런다고 주눅들 샘이 아니다. 최신 유행식의, 사람을 깔보려면 이렇게 하라, 마이애미 과학수사대 반장이 범인을 쏘아볼 적의 스타일로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턱을 치켜올렸다. 그래, 노력 많이 해서 호레이쇼 케인* 닮았다. 다음부턴 제스로 깁스* 흉내라도 내보시지? 딘은 지겹다는 투로 피자 아래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으이그!』
존은 일기장에 이거다 싶은 정보를 꾸역꾸역 적어놓곤 했다. 신문에서 오려낸 기사를 문구용 풀로 빽빽이 붙여놓기도 했다. 단, 그게 정리와는 담을 쌓은 방식이라 헌팅이라는 가족 사업을 물려받은 아들들은 그걸 해독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웬디고에 대한 장황한 설명 옆으로 편하고 튼튼한 아웃도어 신발을 파는 가게 전화번호가 적혀져 있는 식이다. 그리고 수십 페이지 뒤로 다시 식인과 금지된 산테리아 종교의식에 관한 내용이 뜬금없이 튀어나왔다. 더하여 웬디고를 묘사한 그림은 원시인의 동굴 벽화 수준이었다. 두 개의 작대기가 머리와 몸뚱아리를 묘사하고 곧장 상황 종료. 그 정신사나움에 딘은 진작부터 진절머리를 냈다.

「아빠를 정말로 사랑하지만 이건 진짜지 아니라고 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팔자 편하게 남의 흉을 볼 처지가 아니다! 자료인 신문을 피자판 아래로 깔아놨다고라.
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기름기를 잘도 흡수한 종이는 반투명한 해초처럼 변해있었고, 서로 철썩 들러붙어 분리가 불가능해 보였다. 여러장이 겹쳐져 인쇄된 글씨는 당연히 읽을 수 없었다.
『딘!』
악에 받쳐 외쳐봤자 그의 형은 헤롱거리는 표정으로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못 살아!』
나는 동생일 뿐인데 어째서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가 된 기분이 들어야 하는 거지 - 울컥하는 마음에 딘의 뒷통수를 찰싹 때렸다.
『왜 이래!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따로 잘 챙겨둔 거란 말이야!』
『그게 피자 상자 밑이야?』
『맙소사, 샘. 그럼 그걸 금고 속에라도 넣어둬야 했다는 거니?』
평화주의자 마하트마 간디 씨는 잠시 눈 감고 계십시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서 당연히 발끈했다. 복수랍시고 샘의 엉덩이를 힘주어 꼬집었다.
『아욱!』
아파서라기보단 당황해서 지른 비명이었다. 아기도 아닌 성인 남자의 엉덩이를 꼬집다니, 손바닥으로 얼얼한 살을 문지르던 샘은 머리 혈관이 끊어진 표정을 지었다.
『지금 했지.』
『했다. 어쩔래.』
『후회할 거야.』
『겍~ 지금 나에게 으름장 놓는 거야? 오, 새미... 분위기 잡아봤자 절대적으로 안 어울려.』
『흥!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는 두고 보자고.』
두 팔을 걷어부치고 옆으로 털썩 앉았다.
『어쭈?』
리모컨부터 빼앗아 멀직히 집어던졌다. 다리를 들어 작정하고 딘의 허벅지 위에 걸쳤다.
『야! 무거워!』
그러든 말든「덤벼라!」표정을 지은 샘은 압도적인 신장의 차이를 이용해서 교묘하게 괴롭혔다.
이제 딘은 소파에서 일어날 수도 없고,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떨어진 리모컨을 주을 수도 없었다. 온몸으로 기대어오는 체중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샘은 천적을 만난 무당벌레처럼 팔다리를 활짝 벌린 채 벌렁 누웠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여전히 주먹만한 크기의 작은 새끼라고 생각한 대형견 말라뮤트가 어리광을 부린답시고 앞발을 들고 주인에게 덤벼든 꼬락서니였다.
 
『치워!』
『숨막혀!』
『화면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샘!』
나 죽는다 야단에 샘이 장난스럽게 분홍색 혀를 쏙 내밀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 없었다.
으스스한 표정을 한 배심원들을 향해 딘 윈체스터는 더듬거리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잘난 척하는 모습이 하도 밉꼴맞아서 마, 말입니다. 옆구리를 간질이려고 했던 겁니다.」
떠민다고 움직일 녀석이 아니었다. 궁리 끝에 손가락이 셔츠 위를 부지런히 달렸고, 샘은 잔뜩 화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지 말라는 의미에서 팔꿈치가 휘둘러졌다. 하지만 헌터 생활 20년에 그까짓 공격을 피하는 건 어린애 수준의 장난이었다. 딘의 손은 다시 보기 좋은 근육으로 덮힌 샘의 허리를 더듬었고, 가엾게도 동생은 목이 쉬어버릴 지경으로 깔깔거렸다.
『어떠냐! 이렇게! 이렇게!』
『으하하하! 제발!』
거기서 그만뒀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늘씬한 신체가 막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퍼득거리기 시작했다. 딘은 손바닥을 위로 더 찔러 넣었다. 셔츠 안쪽에서 벌어지는 부드러운 학대 행위에 동생은 눈물까지 질질 흘리며 몸을 좌우로 마구 뒤틀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초록색 피부의 괴물 헐크가 갑자기 슈렉으로 정체를 바꿨다. 저만치 떨어진 꽃밭에서 피오나 공주가 환영의 의미로 팔을 흔들었다. 딘은 부근에서 장화를 신은 고양이도 봤다는 기분이 들었다.
『으응...』
어쨌거나 상관 없다. 장화를 신은게 고양이가 아니라 하마라고 해도 상황은 변치 않는다.
『샘...』
헐떡거리며 그 몸을 구속했다. 눈물로 인해 짠 맛이 나는 뺨 위로 입술을 눌렀다. 샘의 생각으론 틀린 위치였다. 즉각적으로 터져나온 건 불만의 신음 소리, 알고 있다. 더 정확한 지점을 찾아 고개를 움직이자 그제야 안심이라며 샘의 눈이 스륵 감겼다. 그 입술을 내밀고 - 부끄러움에 목덜미를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Posted by 미야

2008/03/01 22:14 2008/03/01 22:14
Response
No Trackback , 5 Comments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792

Comments List

  1. 로렐라이 2008/03/02 14:13 # M/D Reply Permalink

    오마이갓ㅠㅠ 이게 웬 횡재랍니까 덩실덩실ㅠㅠ
    Paradise Lost 3편을 올려주셨네요!!
    행복의 구렁텅이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ㅠㅠㅠ
    마지막의 바람직한 상황에 그저 웃지요ㅠㅠ

  2. 밤맛만쥬 2008/03/02 14:48 # M/D Reply Permalink

    혹시,혹시..해서 들어왔는데 올라와 있네요~너무 좋아요~
    ㅎㅎㅎ 딘이 이제 빼도박도 못하게 된건가요?

  3. 2008/03/02 15:13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글을 읽던 유령입니다;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죄송해요ㅠㅠ
    요즘에 글 읽느라 살맛납니다. 감사드려요!!!!!!
    끝이 절묘하게 잘렸습니다~ 그 뒤로는 어떻게? 아하하 흥미진진합니다.^^

  4. 아이렌드 2008/03/02 16:32 # M/D Reply Permalink

    아, 그렇게 다시 찰싹 붙어서 부비작거릴거면서 튕기긴 왜 튕겼대~~
    자자, 좀 더 진도를.... 훠이훠이.

  5. 모모야 2008/03/02 18:13 # M/D Reply Permalink

    아예 이젠 발뺌못하게...좀 더 진도를...저 역시.;..쭈우우웅욱..빼주세요.ㅎ

Leave a comment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다는 뱀이 웃는 낯으로 손짓했다.
악의를 띈 노란 눈동자가 신경에 거슬렸지만 샘은 착한 아이처럼 다가가 뱀이 건네는 과일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피처럼 새빨갛고, 어쩐지 죄악을 닮아 달콤하기 그지없는 향이 나는 열매였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그를 향해 뱀은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 먹으라고 시늉했다.
그렇게 하면 타는 목마름은 비로소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 삼켜라. 그리고 만져라 - 방문 판매원의 속 보이는 거짓말을 닮은 그 권유에 한참을 머뭇거렸다. 잘 익은 과실은 사람의 가슴을 둘로 쪼개고 끄집어낸 심장처럼 보였다. 혀를 가만히 대자 그 표면은 불처럼 뜨거웠으며, 과즙은 독처럼 진했다. 끈적거리는 액이 떨어진 땅으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났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마라, 불칼을 든 신은 진작에 경고했다.
하지만 과일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탐스러웠고, 풍요로웠다.
그래서 샘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열매를 둘로 쪼개어 그의 형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리라 결심하고....

『어이, 지금 눈 뜨고 졸고 있냐? 멍청하게 있지 말고 얼른 주문해야지.』
팔꿈치로 툭 치며 딘이 신호했다. 샘은 그제서야 백일몽에서 깨어나 멍한 시선을 메뉴판으로 돌렸다. 그래봤자 숫자의 나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림들은 전부 울긋불긋했다. 무료한 표정으로 주문을 기다리던 종업원이 그의 시력 나쁨을 의심하며 돗수 높은 안경의 부재에 혀를 찬 건 당연한 거였다. 눈앞의 젊은이는 입맛 당기는 치즈버거 그림을 무슨「중고 자전거 팝니다」전단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고, 치즈의 노란색은 안장, 토마토의 빨간색은 손잡이라고 짐작하는 듯했다. 흥미도 없을뿐더러 그걸 왜 들여다봐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눈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 할 늦은 점심 시간이라는 걸 염두에 두자면 그런 샘의 반응은 남들로 하여금 충분히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도 남았다.

『샘?』
『모르겠어.』
『모르긴 뭘 몰라. 스페셜 미트와 에그롤 2인분, 그리고 커피 둘이오.』
동생을 대신해 주문하고 메모지에 받아쓰기를 하는 종업원을 향해 웃어주었다. 우린 수상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연필로 수첩의 모퉁이를 꾹꾹 찍던 종업원은「커피 둘이오」라는 딘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그러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들의 행색을 살폈다. 머릿속으로 수배범 전단지를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글씨를 적는 손에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갔다. 세 블록 떨어진 꽃집으로 망할 도둑이 들어 겁에 질린 주인을 몽둥이로 때린게 겨우 일주일 전이다.
 딘은 눈치껏 다시 웃었다. 얘가 좀 아프거든요. 요즘 감기는 정말 지독하죠?
삭막하게 달아오는 눈자위는 딘의 말대로 감기 바이러스로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녀는 새벽녘에 금전 출납기를 털로 온 강도들이 지금의 샘과 매우 흡사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걸 마음에 두고 있었다. 정말로 감기인가. 주방 쪽을 향해 걸어가다 말고 뒷편을 흘깃거리는 건 의심이 덜 풀려서이다.

테이블 아래서 다리를 움직여 동생의 신발을 무슨 스위치라도 되는 양 밟았다.
『저 아줌마는 네가 권총을 끄집어들고「모두 바닥에 엎드려~!」소리를 지를까봐 조마조마한 모양이다. 샘? 얼굴 좀 풀어. 그렇게 찡그린 채로 밥 먹으면 체한다고.』
『알게 뭐야. 어차피 입맛이 없어 못 먹어.』
『어제 저녁도 먹는둥 마는둥 했잖아. 이 형은 네가 제대로 먹은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그럴 수밖에. 형은 기억력이 형편 없으니까.』
시큰둥한 대답에 신발코를 누르는 힘이 더 세졌다.
머리가 나쁘다는 비아냥에 화가 나서가 아니다. 딘은 진실로 걱정이었다. 옷을 여러 겹 입어 몸을 감췄지만 한 눈에 척 보기에도 7파운드가 빠졌다. 접히는 군살과 늘어지는 뱃살에 고민하는 팔자였다면 만세를 불렀겠지만 샘은 옛날부터 휘청거리며 걷는 녀석이었다. 여기서 동생의 체중이 더 내려가면 앞으로 무덤을 파는 건 온전히 그의 몫이 되어버린다. 누구는 힘들게 삽질하고, 누구는 편하게 서서 손전등으로 불빛이나 비추고 - 동생더러 망이나 보고 있으라고 지시한게 당사자라는 건 까마득히 잊어먹은 딘은 불공평한 현실에 푸념했다. 뚝 소리가 날 것만 같은 가냘픈 손목이 다 뭐라냐. 아닌게 아니라 쫓아오는 언데드를 피해 달아나다 쓰러져 뼈를 분지른 적도 있다. 겨우 넘어진 것 정도로... 이래선 한심해서 야단도 못 친다.

『형. 국제 조난 신고는 그만 보내.』
아파서라기 보단 짜증이 나서 이마를 찌푸렸다. 서로의 발을 툭툭 건들이며 모르스 부호를 날리는 건 진작에 졸업했다. 정확하게는 형의 발이라 착각하고 존의 구두를 꽉 밟았던 날부터다. 듣기 민망한 쌍욕을 달고 사는 장남에게조차 너그러웠던 존이지만 장난으로 신발을 밟히는 건 달랐다. 그는 격분했고, 버르장머리가 그게 뭐냐며 혼쭐을 냈다. 이후로 막내는 남의 발을 밟으며 장난치는 걸 관뒀다. 대신 딘의 감독 하에 식탁에 올라간 소금통을 갖고 놀았다.

『내 신발은 장난감 부저가 아니야, 딘. 애처럼 굴지 말라고.』
『너야말로 애처럼 굴지 마시지.』
쓸데없이 소금통을 만지작대는 동생에게 눈을 흘기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물에다 소금을 타서 먹을 것도 아니면서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건 정신 사납다고. 누가 보면 소금이 너무 좋은 나머지 환장한 사람이라 착각할라.』
『여기서 누가 날 본다는 거야. 아무도 안 봐.』
『다른 사람이 문제야? 내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건 안 보여? 이리 내, 소금통!』
『뭐야. 소금에 환장한 건 내가 아니라 형이잖아. 물에 소금을 타서 마시고 싶어?』
『그래, 새미! 내가 전생에 인어 왕자라서 소금물이 막 땡긴다.』
『인어 왕자가 아니라 붕어였겠지.』
『하! 멍청아, 붕어는 민물 고기야.』
『고래더러 물고기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형에게 그런 지적은 듣고 싶지 않아.』

기가 막혀 입만 뻥끗거리는 딘을 무시하고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차피 식욕은 없다. 노트북을 갖고 나오지 않은 이상, 딘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지나가는 자동차와 행인들을 구경할 작정이었다.
어중간한 시간이라 거리엔 인적이 드물긴 해도 사람 관찰은 늘 흥미로웠다. 머리를 레게 스타일로 꾸민 청년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갔다. 한쪽 신발만 유독 닳은게 눈길을 끌었다. 아마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게 취미인가 보다. 외발로 지면을 밀면 저렇게 된다. 반대편으로 걸어오는 뚱뚱한 중년의 사내는 닥스훈트 종의 개와 같이 산책 중이다. 표정은 썩 좋지가 않다. 이마에 땀이 났고 피곤해 보인다. 다리가 짧은 외모와는 달리 개는 의외로 걸음이 민첩했고, 만성적 운동부족에 허덕이는 주인은 그 속도를 맞추느라 초죽음이었다. 제발 천천히 가자, 주인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개는 오소리라도 사냥할 기세로 도로를 누볐다. 2차선 도로 위로 파란색 자동차가 지나갔고... 그 뒤를 우유 배달 차량이 바짝 붙어 갔다. 샘은 우유와 알래스카의 침엽수 그림이 무슨 상관인지를 잠시 고민했다. 그만큼 신선하다는 의미인가. 하지만 숲은 파랗기만 하지 신선하지는 않다. 광고는 한참 잘못되었다.

접시와 접시가 부딪치는 딸각 소리가 들렸다. 샘은 현실로 돌아왔다.
『샘. 네가 식사를 하지 않으면 이 형도 먹지 않을테다.』
 『그건 내가 일곱 살 시절에 이미 써먹었던 거잖아. 지금은 안 통해.』
죽어도 럭키 참스만 먹겠다고 우기는 동생의 버릇을 고쳐놓기 위해 딘은「네가 럭키 참스를 먹으면 나는 온종일 굶을테다」라고 선언했다. 샘은 형의 말을 안 믿었다. 구석에 숨어 나 모르게 우유라도 먹겠지 - 샘은 식탁에 미리 준비된 럭키 참스를 보란 듯이 먹어치웠다. 결론만 말하자면 꽤나 안일한 판단이었다. 딘에겐 식탐만 있는게 아니었다. 독한 구석도 있었다.

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지금은 안 통한다는 거지?』
『그때는 형도 꽤 순진했거든. 하지만 지금은 교활하고 약아빠졌지. 그때처럼 배가 고파 운동장에 주저앉는 일은 없을 거야. 대신 현기증이 난다며 세면대 아래로 드러눕겠지. 잔뜩 먹어 배가 통통한데도 말이야. 결국 난 안 속을 거라는 말씀.』
『기대를 저버려 미안하지만... 그때도 난 네 생각처럼 순진하진 않았어.』
『뭣? 그럼 운동장에 나 보란 듯이 쓰러졌던 건 가짜였어?!』
『당연하지! 제대로 밥을 먹지 않아 쓰러졌다면 아동 학대로 신고가 들어갈게 뻔하잖아. 애를 굶겼다고 의심이 들면 의사는 의무적으로 당국에 신고를 하게 되어 있어. 아빠가 고발당하면 어떻게 해. 네가 위탁 가정으로 보내지면? 나는 바보가 아니야. 그런 위험한 짓은 하지 않아.』
예기치 않은 진실에 샘의 입이 벌어졌다. 그러든 말든 딘은 접시를 동생 쪽으로 들이밀었다.
『그치만 지금은 사정이 틀려 아동 보호국 직원이 들이닥치진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 따라서 난 그때처럼 연극은 하지 않을 거다. 자!』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그걸 포크로 집어 샘에게 먹이려 했다.
『아, 하고 입 벌려.』
연인끼리 먹여주는 것도 낯간지럽다. 하물며 성인 남자 둘이서 대낮에 참 잘 하는 짓이다.
샘은 기겁을 하고 상체를 뒤로 뺐다.
『미쳤어?!』
『안 미쳤어.』
『정색하고 말하는게 바로 비정상이라는 증거야!』
『좋아. 비정상이라고 하자. 그래도 난 상관 안 해. 그러니까 새미? 아, 하고 입 벌려.』
건너편 좌석에 앉은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피를 서빙하던 종업원이 동전을 떨어뜨렸다.
그래도 딘은 오로지 샘만을 쳐다보았다.

이래서 딘이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남들이 흉을 보든,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염두에 두질 않는다. 그의 세계는 온전히 샘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샘이 괜찮으면 나머지는 상관이 없다. 샘이 괜찮지가 않으면 세계는 파국이다. 그가 인식한 유일한 정의이자, 잘난 머리로 납득한 유일한 선이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살인마저도 불사한다. 닭살의 게이 커플로 오해받는 것쯤은 우습다. 킥킥대며 웃는 사람들의 비아냥따윈 별 거 아니다. 과보호에 팔불출인 그의 형은 어리고 연약한 새끼에게 모이를 먹이려는 자신의 행동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그만큼 떳떳했고, 그렇기에 충실했다.

「뭐든지 할 수 있어.」
어쩐지 소리내어 울고 싶어졌다. 샘은 코앞으로 다가온 한 점의 고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뭐든지 다 할 거야.」
목이 메이려 했다. 억지로 참으며 육즙이 흐르는 고기를 받아 먹었다.
딘은 긴장이 풀린 표정을 지으며 헤실거렸다.
『맛있지? 거봐, 새미. 뒤로 뺄 까닭이 없다니까. 자, 내친 김에 조금 더 먹자.』
『그만해. 나 혼자서도 먹을 수 있어.』
『정말?』
『고개 갸웃거리며 묻지 마. 유치원생이 내 형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해져.』

참으로 우습다.
먹기만 해도 기뻐하는 그의 형은 샘이 간절히 원하는 단 한 가지만큼은 절대로 해주지 않는다.
붉디 붉은 과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뭐든지 다 해주겠다 말했으면서 그는 그것에 대해선 단호하게 거절한다.

Posted by 미야

2008/02/20 15:19 2008/02/20 15:19
Response
No Trackback , 7 Comments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785

Comments List

  1. 밤맛만쥬 2008/02/20 22:35 # M/D Reply Permalink

    이브샘희와 아담딘...맨몸으로 에덴동산을 활보하고 다닐 두 사람을 생각하면 이미 호흡이 거칠어지고..하악하악..그 열매먹음 안돼! 그럼 옷 입게된단말야...<중요한건 그게 아닐텐데.

  2. gin 2008/02/21 00:14 # M/D Reply Permalink

    수퍼내추럴에 홀려서 -실은 딘의 말려 올라간 속눈썹과 눈물이 반짝거릴 때의
    그 눈에 홀려서;;;;-떠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소설 너무 잘 읽고 있다고..
    감기 잘 다스리시고 계속 건필하셔요.^^

  3. 모모야 2008/02/21 01:37 # M/D Reply Permalink

    에공..이랬던 새미가 시즌 갈수록 자꾸 우락부락 해져서 진짜 샘짐승이될까봐 걱정..

    1시즌까지만 해도 키만컸지, 딘 어깨너비 반정도에..바람불면 날아갈 것 같았는데;...

    새미야...

    운동그만하고..살빼자..ㅠ-ㅠ

    그나마 이 소설속의 새미는 1시즌새미를 연상시켜서 정말 좋군요.

  4. 로렐라이 2008/02/21 15:23 # M/D Reply Permalink

    재밌는 미야님의 소설을 쫓아 허겁지겁 읽다보니 벌써 끝을 봐버렸네요 ㅠㅠ
    아아 중독성이 너무 강합니다~^^

  5. 소나기 2008/02/22 20:17 # M/D Reply Permalink

    밤맛만쥬님 댓글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먹으면 옷을 입게 될테니 안될 일이고, 안먹으면 내가 못살아 안될 일이고!!!
    이거 이거 어쩌면 좋습니까!!

  6. 마리 2008/02/23 15:55 # M/D Reply Permalink

    새미한테 밥 먹여주는 딘을 진짜로 보고싶어요...
    어디 그런 에피 안 나오나.

  7. 루이아나 2008/05/28 22:10 # M/D Reply Permalink

    ㅎㅎ 어제 새벽에 [...] 젠슨 애클스씨를 열심히 검색하면서 찾은 사이튼데요 +_+

    작가님 너무 멋지세요 +_+;;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 61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20614
Today:
459
Yesterday:
1861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