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는 언제 나오냐고요? 훗훗훗. (사악한 미소) 나는 사장님 팬입니다. 리스는 나중에 늦게 나와도 괜찮은 거에요. 그리고 여기서 후스코찡은 15세입니다.
『곰 같은 여자가 아니고 괴수 같은 여자야.』
『무서웠어. 오늘은 특히 무서웠어.』
『옥수수 다섯 푸대 당장 물어내, 이러고 고함을 지르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군.』
『핀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데 괜찮아요?』
『얼음주머니 필요한 사람.』
『저요.』
모임이 해산되고 나서도 약간의 인원이 주점에 남았다. 다들 넋이 절반은 나갔고, 일부는 옷차림이 엉망이 되었다. 카터를 진정시키려 했던 애덤의 셔츠 단추는 세 개나 뜯겨져 나갔다. 시멘스키도 술주정뱅이와 드잡이라도 한 몰골이다. 핀치는 머리카락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팔꿈치로 얻어맞은 턱은 아프다 못해 얼얼한 감각밖에 안 남았다. 발길질 당한 곳은 또 어떻고. 속옷이 훤히 보일 지경이었음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게 올라가던 그녀의 늘씬한 다리를 떠올린 핀치는 쓰게 웃었다. 지금도 징조가 그리 좋지 않지만 아침이 되면 보다 훌륭하게 부어오를 것이다.
『어디보자. 흡사 야생 동물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꼬락서니군. 어디보자, 연고가 필요할까?』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신세를 지게 되네요.』
『인사는 됐수. 것보다 요깃거리가 필요하면 얘기해요. 빵과 스프 정도는 서비스 해주지.』
주점 주인인 로버트 소워스키는 넉살 좋게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이곳 2층은 종종 회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논의 중 언성이 높아져 서로 주먹질을 하는 일은 일상다반사로 벌어지곤 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위에서 요란하게 우당탕 광음이 들려도「생쥐 한 마리가 천장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다」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만다. 코피를 흘리며 누군가 계단을 뛰어내려 온다? 싸우면서 철든다. 무시하자. 지금처럼 혼비백산한 무리들이「하마터면 죽을 뻔했어」가슴을 쓸어내려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원래 다수의 의견을 하나로 수렴하는 일은 그만큼 힘든 법이다.
『그래도 핀치 씨는 언행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애덤이 싹싹하게 굴던 평소 태도를 접고 돌연 볼멘소리를 내었다.
『매번 카터 씨의 심기를 긁고 있잖아요.』
『하아... 미안합니다.』
『정말입니다, 핀치. 우리들 중 제법 많은 숫자가 카터의 결정은 늘 옳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어요. 그녀의 도덕적 기준은 대단히 높고, 판단력 또한 뛰어나니까요. 그런 카터가「너는 틀렸어, 너는 잘못했어, 너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 반성을 해야만 해」이러고 반복해서 말하며 화를 낸다면 우린 지적당한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시겠지요?』
『알다마다.』
핀치는 구부린 손등을 사용해 코 아래로 송송 솟아오른 땀을 닦았다.
더위를 느끼지 않았음에도 인체는 땀을 흘릴 수 있다.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믿어주셔야 합니다. 나는 실수를 한 게 아닙니다.』
『핀치 씨가 실수를 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요. 문제는 사실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고요...』
겉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뒤로 생략된 말은 이런 거였다.
아저씨는 어떻게 한 번 휙 쳐다본 것만으로 제트-트랜스 전지가 모조품인지 진짜인지 알아낼 수 있는 거죠. 우리들 중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죠.
초대받지 않은 핀치의 손님도 똑같은 말을 했다.
『어떻게 알아차렸지.』
오늘은 운수 나쁜 날이다. 집안으로 들어와 현관문 걸쇠를 잠구던 핀치는 하마터면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쓰러질 뻔했다. 얻어맞아 아픈 부위를 끌어안고 끙끙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더니 이번에는 시커멓게 생긴 밤손님이 거실 정 중앙에서 두 다리를 벌리고 서있었다. 남자는 진작부터 문을 따고 들어와 핀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눈치다. 의자 쿠션엔 눌린 흔적이 있다. 테이블에는 사용한 적 없는 컵이 올라가 있다. 사내는 남의 집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랍도 열어보고 그릇을 꺼내 물도 마셨던 모양이다. 강박증이 남다른 핀치는 바르르 떨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누구십니까.』
『내가 누군지 알잖아. 대장간에서 내 얼굴을 봤을 터인데. 것보다 호미는 안 샀나. 호미를 그렇게 들었다 놓았다 했으면서 지금 보니 빈손이군. 대장간 주인이 실망했겠어.』
『아, 이제 알겠습니다. 거래를 하러 왔던 움무이군요. 그런데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거래는 무사히 종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마을을 떠나 무리로 돌아갔어야 합니다.』
침입자가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흥미로워. 도둑이 나타났다, 이러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제일 먼저 내가 누구냐 정체를 묻는 군. 거기다 중앙의 관료가 사용할 법한 세련된 말투야. 당신, 예상했던 대로 평범한 시골 촌부가 아니야. 집에는 이렇게 책들이 가득하고...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이라니. 자칭 순혈 귀족이라고 떠들어대는 중앙 놈들도 거실에 책장이 있는 집은 드물어.』
그 즉시 핀치는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대신 눈동자는 사내의 동작을 따라 바쁘게 움직였다.
시멘스키는 그들의 무리가 중무장을 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오라클 임펄스 화기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남자도 지금 무장 중일까? 가능성 있다. 거기다 체격이 좋다. 핀치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주먹을 휘두른다고 해도 싸워 이길 만한 상대가 아니다. 오히려 간단히 제압을 당하고 역으로 두드려 맞을 거다. 그리하여 결론, 함부로 덤비지 말자.
핀치는 입구와의 거리를 염두에 두고 집밖으로 무사히 달아날 확률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뒤돌아 문의 걸쇠를 재빨리 풀고, 손잡이를 돌려서...
『허! 상상도 하지 마.』
생각하는게 뻔히 보인다며 움무 상인이 경고했다.
『그대로 당신 몸을 낚아채서 목을 부러뜨릴 수도 있어.』
단순 위협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핀치는 뒷걸음질 치던 동작을 멈추었다. 어설프게 도망치려 시도했다간 저 사내는 진짜로 그를 잡아 죽이려 들 것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낸 거죠.』
『알아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 자네가 대장간으로 들어왔을 적에 머리카락이 곱슬거리는 통통한 체격의 어린애를 먼저 앞세웠잖는가. 그 소년에게 뭔가 아는 내용이 있을 거라 판단했지.』
핀치의 인상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맙소사, 후스코! 당신... 후스코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남자가 진정하라며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허어! 그렇게 쏘아보지 말게. 애들이 소중하다는 건 나도 잘 알아. 난 노인과 여자들까지 목을 따봤지만 어린애는 맹세코 죽인 적이 없어. 그저 아는 것만 털어놓게 약간 손만 봤을 뿐이야. 꿀밤만 먹였다고? 지금쯤 엉엉 울면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을 거야. 믿어도 좋네.』
거기까지 말한 스틸스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며 턱을 빳빳하게 세웠다.
『그러니까 다시 질문하는데... 어떻게 알아차렸지?』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