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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06 person of interest (48) by 미야

person of interest (48)

앵앵거리며 하소연을 퍼붓다가 빨리 꺼내달라고 난리다.
《처음엔 신호위반이라더니 이 짭새들이 이젠 내가 음주운전을 했다는 거야. 그래서 내 입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아~ 입김을 불었어. 그랬더니 씨발, 코를 움켜쥐곤 경관 폭행죄를 추가하겠다며...》
속으로 생각했다.
술은 안 마셔도 코크는 자주 하잖아.
『혈액 검사에 응하겠다고 해, 데상트. 혈중 알콜 농도 확인해보자고 하면 되잖아.』
《미쳤어?!》
역시 약은 빨았나 보다. 빨리 변호사 내놔라 감 내놔라 난리를 치는 걸 봐선 그의 집 소파 아래로 숨겨져 있는 건 감기약이나 두통약 같은 걸 섞어 만든 칵테일*보다 더 쎈 종류다. 라비니에는 손가락으로 눈가를 비비며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부류의 맞장구 - 응, 이라던가, 과연, 이라던가 식의 모호한 말들을 흘렸다.
변호사? 지금 그게 문제냐. 정작 머리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약 15분 전 그의 계좌에서 정확히 9,999 달러가 인출되어 사라졌다.
수취인은 세이브더칠드런 이라는 이름의 단체다. 생판 모르는 단체다. 것보다 그들이 왜 남의 피 같은 돈을 허락도 받지 않고 가져갔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은행의 단순 착오라고 판단, 아까부터 접속을 시도했으나 유효한 인증키가 아니라며 반복하여 튕기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은행에 직접 나가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영업점 업무 시간이 아니다.
《이봐, 라비니에. 서둘러 변호사를...》
『시끄럿! 닥쳐! 제발 입 닥치라고!』
여전히 속수무책인 와중에 모바일 뱅킹 안내 메일이 다시 도착했다.
이마가 땀으로 젖어 기분 나쁘게 축축했다. 라비니에는 말 그대로 펄쩍펄쩍 뛰었다.
『동남아프리카 기아구제 협회?! 말도 안 돼! 이건 또 뭐야!』
다시 9,999 달러가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패닉 상태에 빠진 라비니에에게 누군가 전화를 걸어온 건 다시 15분이 지난 후였다.
《인사는 나중으로 미루죠. 이제 우리 두 사람이 협상을 할 시기인 것 같은데요.》
『당신 누구야.』
으르렁거리는 라비니에와는 대조적으로 상대방 남자의 목소리는 어려운 내용의 교과서를 지루해하는 학생들 앞에서 낭독하여 읽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차분했다.
《제가 누구인지를 아는게 중요합니까, 아님 당신 계좌에 남아 있는 돈이 중요합니까.》
『썩을! 어디에 사는, 뭐 하는 놈이냐고!』
《알겠습니다.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가 중요하고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거군요. 그렇다면 이번엔 국경 없는 의사회로 기부를 해보도록 할까요. 따로 생각해둔 단체가 있음 미리 알려주셔도 됩니다. 음...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영국의 NESTA는 어떻습니까. 아님 그린-야뜨라 환경보호 단체도 있어요. 터키 인권단체인 인류구호협회 IHH도 양호합니다. 모두 당신의 돈을 좋은 뜻으로 잘 써줄 곳들입니다.》
『잠, 잠깐잠깐 기다려! 그러지 마, 그러지 말라고!』
《9,999 달러를 이체하겠습니다.》
『스탑, 스탑! 알았어! 내 돈! 당신에게 관심 없어! 그러니 내 돈은 그냥 내버려... 으악!』
다시 계좌 잔액이 9,999 달러 내려갔다.
남자가 핸드폰 저편에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궁금합니까. 나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돈 전부를 말려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 그럼 저와 협상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여기는 이스트 사이드.
리스가 카운터의 눈알을 후벼 파는 것과 같이하여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들 우르르 뛰었다. 걸음아 나 살려라 입구를 향해 달아나는 자들도 있었다. 가방에 든 무기를 잡기 위해 그쪽으로 몰려가는 이들도 있었다. 프랭키와 산발타는 상의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리스는 카운터의 몸을 붙잡고 재빨리 그의 몸을 방패처럼 이용했다.
프랭키가 쏜 두 발 중 하나가 레게 머리의 복부를 휘저었다. 그는 만세 동작을 취하더니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다. 맞은 각도가 나빴던지 그 다음부터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
동료가 쓰러지자 크로우가 고함을 질러댔다.
『하지 마! 구석으로 몰고 아직 쏘지 마!』
그 말이 유언이 되었다. 크로우가 떨어뜨린 데저트 이글을 집어든 리스는 반동에 주의하며 크로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삽시간에 그의 머리 절반이 없어졌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총이 아니라 흡사 대포다.
『히익, 히이익!』
턱뼈와 치아 조각이 안개처럼 휘날리자 산발타가 원숭이 울음소리를 내며 네 다리로 바닥을 기었다. 똑바로 서기엔 허리에 힘이 풀린 듯했다.
리스는 그의 등을 조준했다.
그러다 도중에 마음을 고쳐먹고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반응이 느린 노인은 입을 벌리고 제자리에 서있었다. 현실감도 없었고, 귀는 멀었다.
『영감! 뛰어! 뛰라고! 죽고 싶어?! 뛰어!』
누군가 악을 쓰며 그에게 어서 움직이라 외쳤다.
겁에 질린 노인의 눈이 리스와 마주쳤다.
『바닥에 엎드리시오.』
리스의 명령에 노인은 군소리 없이 꾸물꾸물 움직여 자세를 낮췄다.

22구경 권총을 들고 있던 젊은 남자는 리스를 쳐다보곤 오줌을 지렸다. 뿐만 아니라 방아쇠를 당기기 전, 질끈 눈을 감았다. 그 틈을 타 오른손으로 총신을 붙잡고 왼팔의 팔꿈치로 그의 머리를 쳤다. 깨어나면 지독한 숙취를 닮은 고통을 느끼겠지만 어쨌든 죽지는 않았다.
시야각에서 인간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숙이며 빼앗은 22구경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타겟 포착. 두 발 속사. 머리숱이 적은 사내가 자신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무너져 내렸다. 그가 지르는 비명은 밀폐된 공간에서 사방으로 반향 되어 더욱 크게 울렸다. 순간 공포가 솟구친다. 리스는 어렵지 않게 감정을 제어할 수 있었지만 훈련을 받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에겐 그런 건 불가능했다. 누군가 철문을 주먹으로 두드리고 있다. 나가게 해줘. 이곳에서 도망치게 해줘. 리스의 감각은 더욱 예민해진다. 그는 옆으로 달린다. 누군가가 쏜 빗나간 총알이 팔뚝을 긁는다. 뛰는 속도를 높인다. 이곳은 엄폐물이 적은 곳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숨지 못한다. 그리고 적 역시 그의 시야로부터 달아나지 못한다. 적은 사방에 있다. 아니, 적은 그의 마음 안에 있다. 규칙적으로 뛰는 그의 심장이 요구한다. 머리를 노려. 움직이는 것들 전부를 노려.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리스는 자신이 웃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아아, 가까이 오지... 캊!』
총신으로 사람의 목을 노리고 내려친다. 뼈가 안쪽으로 무너져 내리는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후두부가 망가진 그는 호흡을 하지 못한다. 커다랗게 벌려진 눈동자가 나를 어떻게 한 것이냐 묻고 있다. 리스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온전히 귀를 열고 발자국 소리를 탐색한다. 왼편 측면으로 몸을 돌려 발사, 응사하려는 적의 오른쪽 가슴을 명중시킨다.

돌아가야 하니까.
핀치가 있는 곳으로 무사히 돌아가야 하니까.
억눌러왔던 짐승이 단호한 어조로 명령한다.

죽여.

Posted by 미야

2012/08/06 19:15 2012/08/0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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