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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8 노아드롭 1-09 by 미야

노아드롭 1-09

맨발의 리스, 맨발의 좐 리스


2년 전 여름, 사흘간 지속된 폭우로 지반이 약해지면서 마을 뒤편 산비탈 일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적이 있다.
만반의 대비를 한 탓에 산사태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가옥이 파손되지도 않았다. 그래도 웅성거림은 그치지 않았다. 다량의 토사가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자 산 중턱에 감춰져 있던 인공 구조물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람 한 두 명은 너끈히 지나가고도 남을 구멍도 뚫렸다.
이튿날 날씨가 맑게 개자 카터의 지휘 아래 몇 명의 관계자들이 밧줄을 타고 구조물 안으로 내려갔다. 내부는 높이 약 3미터에 좌우 너비 약 15미터 크기였고, 눈에 띄는 에너지 반응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을 위해 중무장을 한 시멘스키와 카터가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그들은 10분 정도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이후로는 두꺼운 벽에 가로막혀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노아가 설계한 전형적인 구조물로 보여요. 롭은 안에 없는 듯합니다. 통로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겠어요. 여기서부터 저 산자락까지 S자로 휘어져 있는데 앞으로 격벽 차단이 되어 있어요. 밀봉 조처는 무척 오래 전에 이루어진 눈치입니다. 제어장치로 보이는 패널은 진작에 뜯겨져 나갔어요. 누가 그랬는지는 짐작도 안 갑니다. 이 안의 비상 조명도 전부 꺼졌고요.」
카터는 재빨리 표준 절차를 밟았다. 다시 말해 구멍을 통해 터널 안쪽으로 초속경몰탈을 왕창 들이붓고,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토사를 두껍게 덮었다는 얘기다.

핀치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근육이 말썽을 부린 탓에 목보다는 눈동자가 더 많이 돌아갔지만, 아무튼.
보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인위적인 풍경이 들어왔다. 막연히 자원 채굴을 위한 갱도를 상상했던 그는 충격을 받았다. 바닥은 고르고 벽면은 평평하다. 외관은 카터가 시멘트로 덮어버렸던 예의 장소와 많이 닮았다. 시멘스키가 말했던, 그러니까 격벽이 내려져 있었다는 곳으로부터 더 안쪽이거나 바깥쪽일 것이다.
하지만 규모가 전혀 달랐다.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나가는 것일까. 경이롭기까지 한 수직의 통로와 미로처럼 뻗은 땅속 터널들 - 방대한 전체 규모를 상상하면 아찔해진다.

맨발의 남자는 핀치의 반응을 다른 방향으로 이해한 듯하다. 핀치의 목 움직임을 따라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이 위쪽으로 유사시 가동되는 강제배기댐퍼 장치가 있습니다. 작동은 되지 않아요. 오래 전부터 이곳은 사용 승인이 중지된 탓에 폐쇄되어 있었거든요.』
그런게 갑자기 왜 움직인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로그-오프 상태의 제어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되살아나 오작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공기배출구가 활짝 열렸다가 도로 닫혔어요. 어쨌든 당신은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다? 저렇게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요.』
『중량을 가진 물체의 추락 움직임을 감지한 시스템이 곧바로 중력 왜곡 비상 조처를 취했습니다. 무거운 바위가 그대로 곤두박질하면 하부 구조물에 큰 손상이 발생하니까요. 그런 직후 시스템이 정지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은 죽었어요.』
『.......... 그런 일이 자주 생깁니까.』
『천만에요. 공기배출구가 저절로 열릴 까닭도 없거니와 설령 그랬다고 해도 그곳을 통해 지상의 바위나 모래가 이 안까지 쓸려 들어오는 일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공기배출구입니다. 3중의 안전장치가 이물질의 통과를 차단하지요. 저곳을 통해 사슴 같이 큰 동물이나 사람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아마 백만분의 일 정도가 될 겁니다. 야생 원숭이가 막대기를 휘둘렀는데 우연히 apple 글자가 땅바닥에 적혀진 것과 같지요.』

마침내 부축을 받고 몸을 일으킨 핀치는 쓰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야생 원숭이가 땅바닥에 과일 이름만 적은게 아니다. 정교한 비행기도 조립했다. 그것이 바로 백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는 거다. 핀치는 우연이라는 걸 결코 믿지 않는다. 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요?』
『말했잖습니까. 오래 전에 버려진 곳입니다.』
『오래 전에 버려졌다면서 이런 곳에 혼자 있는 겁니까?』
『글쎄요.』
남자는 손가락 하나를 턱에 가져가곤 머쓱한 태도로「나도 알고 싶은 부분이에요」말했다.
『뭐라고요?』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요. 기능 정지 상태로 상당히 오래 있었거든요.』
그렇게 말한 남자가 자신의 맨발을 내려다보았다. 핀치 또한 그의 발을 쳐다보았다. 신발이 없다는 점이 이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핀치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날짜나 년도는 기억합니까.』
『어디보자. 시설의 폐쇄 명령은 MSD-25년 7월 13일에 내려졌습니다.』
대답을 들은 핀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은 굉장히 이상한 셈을 하는군요. 25년? 도대체 그 기준이 뭡니까?』
『최상위 통합 MOTHER-시스템 출범일이오. 당신은 모릅니까? 이상하군. 이를 성진력으로 고치면 5379년이 됩니다. 성진력은 설마 모르지 않겠죠?』
『보다 더 이상한 셈이 나왔군. 혹시 그 성진력이라는 건 아크(방주)의 대기권 진입을 초기년으로 계산하는 그건가요.』
남자의 이마로 주름이 졌다. 올 해가 몇 년이냐를 두고 이런 식의 선문답을 하고 있다니.
『요즘은 다른 기준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겁니까?』
사실 그렇다. 오늘날에는 통합정부 수립일이 기년이다. 노아로부터 배척받았던 드롭인들이 중앙을 재건한 날로부터 이제 겨우 58년 지났다. 대학살로부터는 77년 후이다. 오늘은 센터-58년 9월 28일이며, 성진력으로 고치면 5597년이 된다.

통제가 어려운 두통이 몰려왔다.
「대략적인 그림은 보이는군. 그런데 이건 말이 되질 않아. 무려 200년이나 차이가 나잖아. 그럼 이 남자는 희귀 엔틱이라서 후대를 위해 보존 중이었나?」
그러나 이런 말은 때려 죽이겠다 협박해도 입 밖으로 낼 수 없다.
핀치는 예의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몸을 부축하고 있는 남자의 팔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순간 남자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정교하게 만들어 붙인 것 같은 인위적인 얼굴 근육 위로 인간미가 넘치는 진짜 감정이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그 감정은「짜증」이었다.
여기서 신경질을 부리다니. 그리고 그런 점이 그를 인간으로 보이게 만들다니.
핀치는 인내심 있게 웃어주었다.

남자의 콧구멍이 다소 벌어졌다.
『그래요. 당신은 걱정스럽겠죠. 하지만 시설 폐쇄는 다른 까닭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약 바이러스 오염을 걱정하고 있는 거라면...』
『네? 무슨 바이러스요?』
핀치가 어리둥절해 하자 남자는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고 쳇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이내 딴 짓을 했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이죠?』
『9월 28일입니다.』
『제 이름은 리스입니다. 존 리스. 그쪽은요?』
『핀치라고 부르세요.』
화제 전환은 성공적이었다. 핀치는「바이러스요? 무슨 바이러스?」라고 되물을 타이밍을 놓쳤다. 남자는 이때다 하고 질문을 계속했고,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은 의도된 행동이었다.

Posted by 미야

2012/08/28 20:24 2012/08/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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