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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드롭 1-09

맨발의 리스, 맨발의 좐 리스


2년 전 여름, 사흘간 지속된 폭우로 지반이 약해지면서 마을 뒤편 산비탈 일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적이 있다.
만반의 대비를 한 탓에 산사태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가옥이 파손되지도 않았다. 그래도 웅성거림은 그치지 않았다. 다량의 토사가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자 산 중턱에 감춰져 있던 인공 구조물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람 한 두 명은 너끈히 지나가고도 남을 구멍도 뚫렸다.
이튿날 날씨가 맑게 개자 카터의 지휘 아래 몇 명의 관계자들이 밧줄을 타고 구조물 안으로 내려갔다. 내부는 높이 약 3미터에 좌우 너비 약 15미터 크기였고, 눈에 띄는 에너지 반응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을 위해 중무장을 한 시멘스키와 카터가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그들은 10분 정도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이후로는 두꺼운 벽에 가로막혀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노아가 설계한 전형적인 구조물로 보여요. 롭은 안에 없는 듯합니다. 통로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겠어요. 여기서부터 저 산자락까지 S자로 휘어져 있는데 앞으로 격벽 차단이 되어 있어요. 밀봉 조처는 무척 오래 전에 이루어진 눈치입니다. 제어장치로 보이는 패널은 진작에 뜯겨져 나갔어요. 누가 그랬는지는 짐작도 안 갑니다. 이 안의 비상 조명도 전부 꺼졌고요.」
카터는 재빨리 표준 절차를 밟았다. 다시 말해 구멍을 통해 터널 안쪽으로 초속경몰탈을 왕창 들이붓고,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토사를 두껍게 덮었다는 얘기다.

핀치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근육이 말썽을 부린 탓에 목보다는 눈동자가 더 많이 돌아갔지만, 아무튼.
보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인위적인 풍경이 들어왔다. 막연히 자원 채굴을 위한 갱도를 상상했던 그는 충격을 받았다. 바닥은 고르고 벽면은 평평하다. 외관은 카터가 시멘트로 덮어버렸던 예의 장소와 많이 닮았다. 시멘스키가 말했던, 그러니까 격벽이 내려져 있었다는 곳으로부터 더 안쪽이거나 바깥쪽일 것이다.
하지만 규모가 전혀 달랐다.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나가는 것일까. 경이롭기까지 한 수직의 통로와 미로처럼 뻗은 땅속 터널들 - 방대한 전체 규모를 상상하면 아찔해진다.

맨발의 남자는 핀치의 반응을 다른 방향으로 이해한 듯하다. 핀치의 목 움직임을 따라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이 위쪽으로 유사시 가동되는 강제배기댐퍼 장치가 있습니다. 작동은 되지 않아요. 오래 전부터 이곳은 사용 승인이 중지된 탓에 폐쇄되어 있었거든요.』
그런게 갑자기 왜 움직인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로그-오프 상태의 제어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되살아나 오작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공기배출구가 활짝 열렸다가 도로 닫혔어요. 어쨌든 당신은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다? 저렇게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요.』
『중량을 가진 물체의 추락 움직임을 감지한 시스템이 곧바로 중력 왜곡 비상 조처를 취했습니다. 무거운 바위가 그대로 곤두박질하면 하부 구조물에 큰 손상이 발생하니까요. 그런 직후 시스템이 정지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은 죽었어요.』
『.......... 그런 일이 자주 생깁니까.』
『천만에요. 공기배출구가 저절로 열릴 까닭도 없거니와 설령 그랬다고 해도 그곳을 통해 지상의 바위나 모래가 이 안까지 쓸려 들어오는 일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공기배출구입니다. 3중의 안전장치가 이물질의 통과를 차단하지요. 저곳을 통해 사슴 같이 큰 동물이나 사람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아마 백만분의 일 정도가 될 겁니다. 야생 원숭이가 막대기를 휘둘렀는데 우연히 apple 글자가 땅바닥에 적혀진 것과 같지요.』

마침내 부축을 받고 몸을 일으킨 핀치는 쓰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야생 원숭이가 땅바닥에 과일 이름만 적은게 아니다. 정교한 비행기도 조립했다. 그것이 바로 백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는 거다. 핀치는 우연이라는 걸 결코 믿지 않는다. 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요?』
『말했잖습니까. 오래 전에 버려진 곳입니다.』
『오래 전에 버려졌다면서 이런 곳에 혼자 있는 겁니까?』
『글쎄요.』
남자는 손가락 하나를 턱에 가져가곤 머쓱한 태도로「나도 알고 싶은 부분이에요」말했다.
『뭐라고요?』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요. 기능 정지 상태로 상당히 오래 있었거든요.』
그렇게 말한 남자가 자신의 맨발을 내려다보았다. 핀치 또한 그의 발을 쳐다보았다. 신발이 없다는 점이 이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핀치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날짜나 년도는 기억합니까.』
『어디보자. 시설의 폐쇄 명령은 MSD-25년 7월 13일에 내려졌습니다.』
대답을 들은 핀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은 굉장히 이상한 셈을 하는군요. 25년? 도대체 그 기준이 뭡니까?』
『최상위 통합 MOTHER-시스템 출범일이오. 당신은 모릅니까? 이상하군. 이를 성진력으로 고치면 5379년이 됩니다. 성진력은 설마 모르지 않겠죠?』
『보다 더 이상한 셈이 나왔군. 혹시 그 성진력이라는 건 아크(방주)의 대기권 진입을 초기년으로 계산하는 그건가요.』
남자의 이마로 주름이 졌다. 올 해가 몇 년이냐를 두고 이런 식의 선문답을 하고 있다니.
『요즘은 다른 기준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겁니까?』
사실 그렇다. 오늘날에는 통합정부 수립일이 기년이다. 노아로부터 배척받았던 드롭인들이 중앙을 재건한 날로부터 이제 겨우 58년 지났다. 대학살로부터는 77년 후이다. 오늘은 센터-58년 9월 28일이며, 성진력으로 고치면 5597년이 된다.

통제가 어려운 두통이 몰려왔다.
「대략적인 그림은 보이는군. 그런데 이건 말이 되질 않아. 무려 200년이나 차이가 나잖아. 그럼 이 남자는 희귀 엔틱이라서 후대를 위해 보존 중이었나?」
그러나 이런 말은 때려 죽이겠다 협박해도 입 밖으로 낼 수 없다.
핀치는 예의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몸을 부축하고 있는 남자의 팔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순간 남자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정교하게 만들어 붙인 것 같은 인위적인 얼굴 근육 위로 인간미가 넘치는 진짜 감정이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그 감정은「짜증」이었다.
여기서 신경질을 부리다니. 그리고 그런 점이 그를 인간으로 보이게 만들다니.
핀치는 인내심 있게 웃어주었다.

남자의 콧구멍이 다소 벌어졌다.
『그래요. 당신은 걱정스럽겠죠. 하지만 시설 폐쇄는 다른 까닭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약 바이러스 오염을 걱정하고 있는 거라면...』
『네? 무슨 바이러스요?』
핀치가 어리둥절해 하자 남자는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고 쳇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이내 딴 짓을 했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이죠?』
『9월 28일입니다.』
『제 이름은 리스입니다. 존 리스. 그쪽은요?』
『핀치라고 부르세요.』
화제 전환은 성공적이었다. 핀치는「바이러스요? 무슨 바이러스?」라고 되물을 타이밍을 놓쳤다. 남자는 이때다 하고 질문을 계속했고,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은 의도된 행동이었다.

Posted by 미야

2012/08/28 20:24 2012/08/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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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드롭 1-08

진행은 빠르지 않습니다. 오리지널 성향입니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린 자세를 취한 무색투명한 남자가 핀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해롤드, 정신 차려.》
그래도 움직임이 없자 안절부절 한다.
《눈을 떠, 이 친구야. 이대로 포기할 거야?》
핀치는 겨우 한쪽 눈만 치켜뜨고 끙끙 앓는 소리만 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선 바닥에서 뺨을 떼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프다는 통증을 인식하기 이전에 쇼크로 죽을 것 같다. 정확한 깊이는 알 수 없지만 20미터 족히 1톤 부피의 흙더미와 같이 하여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 정도 높이면 10층 건물 옥상에서 추락했다고 봐야 한다. 충격을 완화해줄 무언가의 도움이 없다면 대다수가 즉사한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곳에 매트리스나 쿠션 따위가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앓는 소리가 더 커졌다. 엉치뼈가 아무래도 박살난 모양이다. 어쩌면 하반신 전부가 가루가 되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존재감이 희미해 유령임이 분명한 남자는 근심이 한 가득이었다.
《엉치뼈 박살 안 났어. 자네 몸은 민들레 홀씨처럼 부드럽게 떨어졌다고. 그러니까 빨리 안 일어나면 노래 부른다? 하나, 둘, 셋, 넷. 쨔라쨔라 쨘쨘. 블랙위카 마을의 술주정뱅이 어부는~♪ 어허어허, 허허~♬》
귓구멍을 강력 시멘트로 틀어막고 싶어졌다. 블랙위카 마을의 술주정뱅이 어부?! 원래 그 노래에 등장하는 술주정뱅이의 직업은 어부가 아니고 벌목꾼이다. 어부는 바다, 벌목꾼은 산! 게다가 누굴 고문해서 죽이려고! 박자고 음정이고 하나도 안 맞는다. 핀치는 제발 닥치라는 의미를 담아 끙끙거렸다.

《제발... 우린 이보다 더 어려운 일도 견뎌냈잖아.》
어르고 재촉해도 못 하는 일은 못 한다.
핀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만 편안해지고 싶을 뿐이다. 아픈 것도 싫고, 힘들게 고생하는 것도 보람 없다. 매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신물이 나고,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차라리 이대로 숨이 끊어진다면 - 순간 유령이 슬픈 얼굴로 그러면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란 놈에겐 소원을 빌 자격조차 없단 말인가... 네이슨?

팔자 눈썹을 한 친우의 얼굴은 모래 크기의 작은 알갱이가 되어 서서히 흩어졌다.
《다른 소원을 빌게. 망자 앞에서 죽고 싶다는 말은 하지 말고.》
그리고 다시 사방이 캄캄해졌다.

한참만에 의식이 다시 돌아왔을 적에 이번에 그의 시야 가득 들어온 것은 신발을 신지 않은, 건강한 사람의 맨발이었다.
『...』
이걸 어떻게 해석을 하면 좋을까. 핀치의 시선은 발가락을 따라 가지런한 발톱으로, 다시 뼈가 도드라진 발등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맨발? 이 상황에서? 재미없는 환각을 보고 있는 중이라고 확신한 핀치는 눈꺼풀을 여러 번 깜빡였다. 하지만 사람의 발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고, 대신 머리 높은 곳으로부터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드릴까요.』
얼씨구나, 환각에 이어 환청까지.
차마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핀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창백한 피부로 덮힌 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따라서 대답도 할 수 없다. 모든게 질이 좋지 않은 도깨비 장난 같았다. 그렇고말고. 이것은 사람을 홀려 물에 빠지게 만드는 여우호롱불이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대단히 차분했고, 사적인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다.
『당신의 움직임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방금 의식이 돌아왔지요? 움직일 수는 있습니까. 움직일 수 없다면 억지로 움직이지는 마십시오. 그럼 이제 당신을 돕기 위해 허리 아래로 제 팔을 집어넣겠습니다.』
여우호롱불이 몸 아래로 손을 넣는다고?! 얼굴색이 변한 핀치는 빠르게 외쳤다.
『그러지 마십시오.』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십니까.』
『자신은 없지만 혼자 해보겠습니다. 저에게 몸을 추스릴 시간을 더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하지만 10분이 지나면 이쪽에서 맘대로 조처하겠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쉽게 수긍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정확히 한 발자국이었다. 이쪽에서 기침만 해도 그는 다시 두 걸음 이상 다가올 것이고, 그 즉시 핀치를 아기처럼 안아 올릴 것이다.
모르는 존재가 몸을 만지는 건 질색이다.
「마냥 꾸물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겠군.」
쓰게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생판 모르는 자의 눈이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불편한 시선이었다.「꼭 그렇게 쳐다봐야 합니까」항의하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파도 물결 따라 흔들리는 미역줄기처럼 허우적거렸음에도 결코 웃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는 끈질기게 - 어떤 면에선 매우 집요하게 - 핀치가 꾸물거리며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지켜보았다.

콧잔등이 땀으로 범벅이다. 배에 힘을 줘서 그런지 숨소리가 더 커졌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등을 바닥에 대고 똑바로 눕는데까진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기진맥진이었다.
『7분 지났습니다.』
『맙소사, 시계로 시간을 재고 있는 겁니까.』
『발끈하고 화를 내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심각한 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되겠어요. 그래도 스스로 일어설 힘은 없는 듯하니 제 팔을 붙잡으세요.』
핀치는 단칼에 거절했다.
『싫습니다.』
호의를 거절한 그는 무릎을 세운 자세에서 다시 아랫배로 힘을 주었다. 덕분에 만삭의 산모가 아기를 출산하는 현장이 되고 말았다. 으으으, 이러고 괴상한 소리가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다시 한 번 더. 으으으. 진작에 망가진 허리와 다리가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한 단어 상황 요약.
꼴사납다.

『헤치려는게 아닙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나 보다.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곁에 앉아 남자가 설득을 개시했다.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 내 인상이 그렇게 험상궂어요?』
반대다. 이 남자는 상당히 잘 생겼다. 그리고 착실하고 정직한 인상이다. 안경을 쓰고 보면 다르게 보이려나. 어쨌거나 핀치의 경계심이 살짝 누그러졌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의 식별 코드를 무작정 삭제하거나 임의대로 수정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자, 그러니 긴장을 풀고 손을 이리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존재는 결단코 인간이 아니지.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팔뚝으로 소름이 돋았다. 핀치는 이빨이 딱딱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Posted by 미야

2012/08/27 20:32 2012/08/2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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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필요해져서 급조한 배너...;; 슬레이어즈 버닝 시절의 배너를 살짝 손봤음. 재활용의 대마왕.

http://blog.naver.com/w_ow_/80167544751
http://poi.xe.to/

POI 동맹이 신설되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진 글이라 스크랩은 되지 않아서 주소를 통째로 긁어왔습니다.


Posted by 미야

2012/08/25 22:24 2012/08/2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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