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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7 노아드롭 1-08 by 미야

노아드롭 1-08

진행은 빠르지 않습니다. 오리지널 성향입니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린 자세를 취한 무색투명한 남자가 핀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해롤드, 정신 차려.》
그래도 움직임이 없자 안절부절 한다.
《눈을 떠, 이 친구야. 이대로 포기할 거야?》
핀치는 겨우 한쪽 눈만 치켜뜨고 끙끙 앓는 소리만 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선 바닥에서 뺨을 떼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프다는 통증을 인식하기 이전에 쇼크로 죽을 것 같다. 정확한 깊이는 알 수 없지만 20미터 족히 1톤 부피의 흙더미와 같이 하여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 정도 높이면 10층 건물 옥상에서 추락했다고 봐야 한다. 충격을 완화해줄 무언가의 도움이 없다면 대다수가 즉사한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곳에 매트리스나 쿠션 따위가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앓는 소리가 더 커졌다. 엉치뼈가 아무래도 박살난 모양이다. 어쩌면 하반신 전부가 가루가 되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존재감이 희미해 유령임이 분명한 남자는 근심이 한 가득이었다.
《엉치뼈 박살 안 났어. 자네 몸은 민들레 홀씨처럼 부드럽게 떨어졌다고. 그러니까 빨리 안 일어나면 노래 부른다? 하나, 둘, 셋, 넷. 쨔라쨔라 쨘쨘. 블랙위카 마을의 술주정뱅이 어부는~♪ 어허어허, 허허~♬》
귓구멍을 강력 시멘트로 틀어막고 싶어졌다. 블랙위카 마을의 술주정뱅이 어부?! 원래 그 노래에 등장하는 술주정뱅이의 직업은 어부가 아니고 벌목꾼이다. 어부는 바다, 벌목꾼은 산! 게다가 누굴 고문해서 죽이려고! 박자고 음정이고 하나도 안 맞는다. 핀치는 제발 닥치라는 의미를 담아 끙끙거렸다.

《제발... 우린 이보다 더 어려운 일도 견뎌냈잖아.》
어르고 재촉해도 못 하는 일은 못 한다.
핀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만 편안해지고 싶을 뿐이다. 아픈 것도 싫고, 힘들게 고생하는 것도 보람 없다. 매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신물이 나고,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차라리 이대로 숨이 끊어진다면 - 순간 유령이 슬픈 얼굴로 그러면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란 놈에겐 소원을 빌 자격조차 없단 말인가... 네이슨?

팔자 눈썹을 한 친우의 얼굴은 모래 크기의 작은 알갱이가 되어 서서히 흩어졌다.
《다른 소원을 빌게. 망자 앞에서 죽고 싶다는 말은 하지 말고.》
그리고 다시 사방이 캄캄해졌다.

한참만에 의식이 다시 돌아왔을 적에 이번에 그의 시야 가득 들어온 것은 신발을 신지 않은, 건강한 사람의 맨발이었다.
『...』
이걸 어떻게 해석을 하면 좋을까. 핀치의 시선은 발가락을 따라 가지런한 발톱으로, 다시 뼈가 도드라진 발등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맨발? 이 상황에서? 재미없는 환각을 보고 있는 중이라고 확신한 핀치는 눈꺼풀을 여러 번 깜빡였다. 하지만 사람의 발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고, 대신 머리 높은 곳으로부터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드릴까요.』
얼씨구나, 환각에 이어 환청까지.
차마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핀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창백한 피부로 덮힌 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따라서 대답도 할 수 없다. 모든게 질이 좋지 않은 도깨비 장난 같았다. 그렇고말고. 이것은 사람을 홀려 물에 빠지게 만드는 여우호롱불이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대단히 차분했고, 사적인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다.
『당신의 움직임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방금 의식이 돌아왔지요? 움직일 수는 있습니까. 움직일 수 없다면 억지로 움직이지는 마십시오. 그럼 이제 당신을 돕기 위해 허리 아래로 제 팔을 집어넣겠습니다.』
여우호롱불이 몸 아래로 손을 넣는다고?! 얼굴색이 변한 핀치는 빠르게 외쳤다.
『그러지 마십시오.』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십니까.』
『자신은 없지만 혼자 해보겠습니다. 저에게 몸을 추스릴 시간을 더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하지만 10분이 지나면 이쪽에서 맘대로 조처하겠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쉽게 수긍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정확히 한 발자국이었다. 이쪽에서 기침만 해도 그는 다시 두 걸음 이상 다가올 것이고, 그 즉시 핀치를 아기처럼 안아 올릴 것이다.
모르는 존재가 몸을 만지는 건 질색이다.
「마냥 꾸물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겠군.」
쓰게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생판 모르는 자의 눈이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불편한 시선이었다.「꼭 그렇게 쳐다봐야 합니까」항의하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파도 물결 따라 흔들리는 미역줄기처럼 허우적거렸음에도 결코 웃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는 끈질기게 - 어떤 면에선 매우 집요하게 - 핀치가 꾸물거리며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지켜보았다.

콧잔등이 땀으로 범벅이다. 배에 힘을 줘서 그런지 숨소리가 더 커졌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등을 바닥에 대고 똑바로 눕는데까진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기진맥진이었다.
『7분 지났습니다.』
『맙소사, 시계로 시간을 재고 있는 겁니까.』
『발끈하고 화를 내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심각한 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되겠어요. 그래도 스스로 일어설 힘은 없는 듯하니 제 팔을 붙잡으세요.』
핀치는 단칼에 거절했다.
『싫습니다.』
호의를 거절한 그는 무릎을 세운 자세에서 다시 아랫배로 힘을 주었다. 덕분에 만삭의 산모가 아기를 출산하는 현장이 되고 말았다. 으으으, 이러고 괴상한 소리가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다시 한 번 더. 으으으. 진작에 망가진 허리와 다리가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한 단어 상황 요약.
꼴사납다.

『헤치려는게 아닙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나 보다.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곁에 앉아 남자가 설득을 개시했다.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 내 인상이 그렇게 험상궂어요?』
반대다. 이 남자는 상당히 잘 생겼다. 그리고 착실하고 정직한 인상이다. 안경을 쓰고 보면 다르게 보이려나. 어쨌거나 핀치의 경계심이 살짝 누그러졌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의 식별 코드를 무작정 삭제하거나 임의대로 수정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자, 그러니 긴장을 풀고 손을 이리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존재는 결단코 인간이 아니지.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팔뚝으로 소름이 돋았다. 핀치는 이빨이 딱딱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Posted by 미야

2012/08/27 20:32 2012/08/2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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