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계단 위에서 나타난 경우 : 곤란하다.
예전 군 복무 시절에 들었던 훈련 교관의 퉁명스러운 설명이 떠올랐다. 이 경우 곤란하다는 표현은 너무 많은 의미를 한꺼번에 함축하고 있어서 이를 접한 생도 또한 입장이 곤란했다. 다친다는 건가, 죽는다는 건가, 아니면 닥치고 작전상 후퇴라는 건가.
그보다 조금 더 친절했던 부사관이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적의 다리를 쏠 수 있으며, 적은 나의 머리를 노릴 수 있다 : 잿밥 털리는 날이 된다.
덧붙여 악마 같았던 2인조는 어리버리한 훈련생들을 발길질하여 계단 아래로 굴러뜨렸다.
그렇다면 품속에 반자동 브라우닝을 숨기고 있을 저 사내도 나를 걷어찰 것인가.
리스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멈추지 않고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그래, 일라이어스는 요즘 어떤가.』
『물어봐줘서 고맙군, 존. 두목은 건강하셔. 다만 최근 살이 7파운드나 불어서 다이어트를 고민하고 계시지.』
여전히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남자가 이쪽 눈치볼 것 없이 어서 올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물론 먼저 인기척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이쪽을 공격할 의향이 없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는 변덕스러운 성격이었고, 고음 처리가 유별난 이태리 오페라 같은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악수를 청한다고 아무렇게나 손을 내밀었다가는 독사의 어금니가 손바닥을 물게 된다. 기본적으로 그는 믿어선 안 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이제 두 사람의 거리는 겨우 계단 다섯 개의 차이밖에는 남지 않았다.
『혹시 나에게서 좋은 다이어트 방법을 추천받고 싶은 건가.』
『아무렴 어때. 치즈를 잔뜩 넣은 라쟈냐는 이제 그만 끊는게 좋겠다고 설득하는게 먼저야.』
반자동 브라우닝이 골치가 아프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우리 두목은 저지방 치즈니까 마음껏 먹어도 괜찮다고 우기지. 건강에 좋지 않아요, 라는 이쪽의 충고따윈 한쪽 귀로 흘려버려. 하지만 뭐... 두목이 좋아한다면야.』
독사 같은 이 남자는 맹독의 애정을 가득 담아 그렇게 투덜거렸다.
특이한 사내다. 리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리스의 판단에 의하면 저 사내가 움직이는 원동력은 기계적인 충성심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인가다. 공포? 두려움? 틀리다. 그런 어두컴컴하고 불길한 감정이 아니다. 그와는 정 반대로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배우를 따라다니는 극성 팬의 심리와 매우 닮았다. 이 남자는 일라이어스에게 광적으로 반해 있다. 일라이어스라는 신화에 한껏 취해 있다. 너무 좋은 나머지 물불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일라이어스는 피리를 불고 독사는 음률에 맞추어 흔들흔들 춤을 춘다. 그리고 독니를 드러낸다. 희생자를 물어뜯는다. 리스는 휘파람 소리를 닮아 있을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좌우로 흔들거리는 독사의 머리 움직임에 주목했다.
자, 그래서?
이게 다 무슨 소동인 거지, 일라이어스.
『미안하지만 수다는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군. 이 앞으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오! 미안, 복도가 좁아서 그런 거지 내가 일부러 가로막은 건 아니라고.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면 막지는 않겠네, 존. 어서 지나가게. 하지만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그다지 보기 좋은 구경 거리는 아닐 거야.』
『그게 무슨 뜻이지.』
동시에 건물 안쪽에서 한 남자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총성 없음. 몸싸움 기척 없음. 리스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1, 2초의 간격 후, 다시 울부짖는 소리가 콘크리트 벽면을 할퀴었다. 첫 번째 비명이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였다면 이번에는 흥분한 코끼리에게 옆구리를 밟혀 납작하게 짜부라진 소리에 가까웠다. 간헐적인 흐느낌과 애원을 닮은 신음이 그 뒤를 이었다.
리스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며 장갑을 낀 사내를 노려보았다.
다시 한 번 저 멀리서 아르멘다리즈가 숨 넘어가는 비명을 질러댔다. 피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울음이었다.
독사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거냐고 묻는 시선이군. 그러면서도 알고 있어. 전부 다. 내가 설명할 필요가 과연 있나? 입만 아파질 것 같은데.』
리스는 비명을 쫓아 달리지 않았다. 대신 계산을 했다. 인원은 두 명 이상. 제압 완료. 아르멘다리즈는 이미 움직임을 제한받는 상태가 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린치를 당하고 있다. 살해당할 것 같으냐고? 어쩌면. 하지만 일라이어스는 콜롬비아산 헤로인을 멋대로 유통시키려는 놈들에게 본보기로「메시지」를 보내고 싶어하는 거지 잔챙이 아르멘다리즈를 관 속에 처박고 싶어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를 경찰에 넘길 생각이야.』
『우리 두목도 그럴 생각이야, 존.』
『시체로?』
『우리 두목은 널 대단히 좋아하지. 내 마음엔 들지 않지만 두목이 널 좋아하니까 널 봐서 놈의 목숨은 살려둘 거야.』
『그렇다면 지금 멈추어야 해.』
『오, 걱정 말게. 금방 끝나.』
장담한 바 그대로 안쪽에서 문을 열고 거구의 사내 둘이 의기양양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가스통이 장착된 휴대용 네일 건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경찰보다는 구급대가 필요했다.
의료진들은 양 팔이 못 박힌 남자를 벽에서 떼어내기 위해 근육을 절개해야만 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