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충격에 빠진 나머지 성 정체성에까지 혼란이 와버렸다.
『난 임신하지 않았어요!』
원래는 비웃어야 마땅하나 마찬가지로 정신이 나간 딘은 미친 장단에 맞춰 마카레나 춤까지 췄다.
『당연하지! 내가 피임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데! 콘돔을 빼먹은 적은 한 번도 없어!』
『정말이예요. 저놈의 낯짝 두꺼운 형은 맨날 나한테 콘돔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거든요. 상점 직원이「형씨에겐 거시기 사이즈가 맞지 않을테니 요놈은 선반에 다시 올려놓고 한 칫수 더 큰 걸 가져오쇼」라고 지적할 적마다 얼마나 무안한지... 잠깐만! 내가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그거랑 이거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
『상관이 뭐가 없냐, 인석아! 나 골탕 먹으라고 일부러 맞지 않은 사이즈로 골라왔다 이거지! 어쩐지 맨날 헐렁하더라.』
『왜 나에게 신경질을 부려? 그런 건 직접 사!』
『앞으로 임신하면 모두 네 책임이야. 그런 줄 알아.』
『얼씨구?! 그게 왜 내 책임이야. 형은 책임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남자답게 책임지면 되잖아! 임신했어? 그럼 쑥덕 낳아!』
『뭐? 그럼 누가 애를 키워! 난 못 키워!』
『징그럽게 못난 놈. 눈 부릅뜨고 하는 말 좀 봐라.』
『하지만 난 아기 안는 방법도 모른단 말이야!』
『누가 네놈의 똥기저귀를 갈았다고 생각하냐. 그런 건 나한테 맏겨.』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웃긴다, 남자 둘이서. 이것도 대화라고 하고 앉았나.
『가만 있어봐, 샘. 어차피 너나 나나 수컷이라 죽었다 깨어나도 임신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나 개도 아닌데 수컷이라는 말은 쓰지 마. 남자, 남성, 사내라는 등등의 점잖은 표현이 얼마든지 있잖아. 형은 침대에서 짐승일지 몰라도 난 인간이야.』
『그으~래. 넌 나완 다르게 인간이지.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냐, 새미? 넌 남자가 아니잖아. 이 세상의 어느 남자가 분홍색 셔츠를 즐겨 입고 화장실에서 브러쉬로 눈썹을 그리겠냐. 응?』
울컥한 동생은 뒷자석에 자리한 제3자의 시선도 까마득히 잊었다.
『외모를 단정하게 다듬는 건 비난받을 짓이 아니야, 딘. 게을러서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는 사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그리고 난 눈썹을 그리진 않아. 잔털을 정리할 뿐이지!』
『시끄러, 쨔샤. 족집게로 눈썹을 뽑아대며 눈물을 질질 짜는 주제에 단정함 운운하는 건 역겨워.』
『누가 눈물을 질질 짠다는 거야! 언제 본 적은 있어?!』
『이거 왜 이러시나.「으, 따가워, 따가워」소리를 질러대는데 내가 모를 것 같아?』
『미치겠다. 형은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에다 귀를 대고 막 그래?!』
『그래! 네놈이 안에서 하도 끙끙거리니까 무슨 문제가 생겼나 무서워져서 그랬다!』
『변태.』
『닥쳐! 넌 내가 변기에 앉아 똥을 쌀 적에도 앵앵대며 절대로 화장실 문을 못 닫게 했었어! 그러기만 했게. 옆으로 바짝 붙어서 코를 움켜쥐곤「형아, 똥 다 쌌어?」물어봤다고! 그것도 10센트짜리 동전에 그려진 인물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맞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진지하게! 우리 둘이서「누가 더 변태인가요」대회에 나가면 네가 1등을 먹는다는 걸 아셔야지!』
『기가 막혀. 그건 내가 코흘리개였을 적 얘기잖아. 그리고 난 그딴 대회엔 참가하지 않아.』
얼굴이 벌개진 샘은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난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테니 형이나 그 잘난「파이 많이 먹기」대회에 출전하시지!』
『기억력이 엉망이구나, 새미. 초기 치매냐. 형은 슬프다. 누가 더 변태인가요, 대회라고.』
『잘났어! 가서 바지 내리고 좇이나 열심히 흔들어.』
감정이 상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뒷좌석의 조나단 - 그 이름이 아니라고 했지 않았나 - 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줄 것도 아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른 딘은 자기 혐오에 몸부림쳤다.
아닌게 아니라 조나단은「그럴 줄 알았어. 문제가 없긴 뭐가 없어. 심각하기만 하잖아.」시선으로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새까맣게 때에 절은 셔츠를 입고 구멍난 양말을 신은 망령난 늙은이를 마주보고 있다는 식이다. 이제 곧 그는 악당을 취조하는 형사인양 손깍지를 끼고「속옷을 갈아입은 것이 언제죠?」라고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길게 자란 손톱과 떡진 머리를 지적하며 입술을 비틀 것이다. 딘은 국물을 식탁에 흘리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다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부끄러워졌다.
낯뜨거움을 느꼈던 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죄송해요. 방금 점잖치 않은 말을 써서.』
자~알 한다, 새미. 거기서 왜 변명하고 앉았냐. 시어머니 앞에서 밥그릇이라도 깼냐.
『우리가 늘 이렇게 싸우는 건 아니고요, 사이가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예요.』
딘은 못난 동생을 옆으로 확 떠밀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자기에게 말을 할 적엔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굴더니 지금은 온몸으로「나는 나쁜 어린이가 아닙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돌변해도 괜찮은 건가. 여름의 날씨가 갑자기 겨울로 바뀌면 곡식은 말라죽고 질병이 창궐하는 법이다. 날씨의 변덕은 수박만한 우박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음... 그러니까 지금은 그저 의견이 맞지 않았던 것뿐이예요.』
샘은 내 말이 맞지? 형도 빨리 맞다고 해, 이런 투로 눈치껏 운전석을 힐끗거렸다.
딘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려, 넌 집채만한 우박에 맞아 죽어도 싸.
욱씬거리는 통증을 호소하는 목덜미를 세게 눌렀다. 옛 속담에도 호랑이 굴이 무너지면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 아, 거기서 무너진게 호랑이 굴이 아니던가. 아무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잡소린 그만두고 나와서 형이나 도와.』
딘은 투철한 직업 정신에 입각하여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었다.
『쇠파이프로?!』
샘은 믿을 수 없다며 눈을 치켜떴다.
『미쳤어?!』
유령은 순철을 싫어한다. 그래서 헌터들은 몸을 방어하기 위해 순철로 만든 나이프를 하나쯤 소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베고 찌르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다. 순수한 철은 관리가 어려울뿐더러 너무 물러 무기로서의 기능을 100%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가정이나 군대에서 사용하는 칼에는 크롬, 니켈, 텅스텐, 바나듐 같은 금속이 첨가된다. 최근에는 비철인 티타늄이나 세라믹 재질로만 만들어진 것도 통용되는 추세다. 다시 말해 아무 가게로 들어가 별 생각 없이 25달러짜리 중국산 칼을 구입하면 귀신은 혓바닥을 메롱거리게 된다는 말씀, 그래서 윈체스터 형제들은 장식용 칼은 진작에 관두고 공사장에서 슬쩍해온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편을 선호했다. 운동장에서 야구 배트 휘두르는 감각으로 적들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는 것이다.
『그걸로 저 사람을 치겠다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동생을 향해 딘은 대놓고 눈을 흘겼다. 그리고 신성한 의무를 떠넘겼다.
『최근에 이 형이 아팠잖니.』
『뭐?! 나, 나보고 이 사람을 치라고?!』
『응.』
그게 우리가 늘 하던 일이잖아 - 딘은 가볍게 응수하고 뒷트렁크를 도로 닫았다.
『싫어! 천사를 쇠파이프로 때렸다고 나중에 하느님에게 작살나게 혼나면 어쩌라고!』
『글쎄다. 난 오히려 천사를 사칭한 놈을 잡아줘서 고맙다고 감사패를 받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딘은 특유의「하겠다는 거야, 아님 말겠다는 거야」으름장을 놓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되기 위해선 특별한 역경을 뛰어넘어야 한다며 가서 여자애 치마를 들추고 오라 명령했을 때가 생각났다. 딘은 그런 면에선 대단히 모질었다. 죽은 개구리를 머리에 올려놓기도 했었고, 납작하게 눌린 바퀴벌레를 운동화 밑창 아래로 끼워넣기도 했다. 축구공만 잘 찬다고 딘 윈체스터의 자랑스런 동생이 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무릇 남자라면 - 이가 갈린다 - 곱게 빗은 여자애들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겨 리본 장식이 된 머리핀이 땅바닥에 떨어지게끔 해야 했다.
샘은 방광이 오줌으로 가득 차기라도 한 것처럼 안절부절해 하며 뒷자석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덩치 큰 상급생과 붙어 주먹질을 하는 건 차라리 괜찮다. 하지만 여자애들을 울리는 건 질색이다. 마찬가지로 무저항의 귀신 코딱지 등등을 공격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 이상 가능한 냅두고자 하는게 그의 바람이다. 딘은 그런 동생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언젠가 큰 화를 불러올 거라 경고하곤 했으나... 젠장, 세상엔 긁어 부스럼이라는게 분명히 존재한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초록 점퍼의 사내는 샘이 보기에 매우 익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찌든 양말을 싱크대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딘에게 제대로 짜증을 부릴 적에 그가 짓곤 하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못할 짓이다.
『오해가 없도록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이봐, 샘!』
『제발, 딘!』
게거품을 무는 딘을 향해 애원의 몸짓을 보인 뒤, 샘은 이마로 베어나온 축축한 땀을 닦았다.
『아무튼 설명하겠습니다.』
「부디 그렇게 하십시오.」
『이것은 쇠파이프입니다.』
「저도 압니다.」
『부탁이니 그런 눈초리로 쳐다보지 말아주시겠어요. 아무튼 이 빨간 부분은 피가 아녜요. 녹이 슬어 그런 겁니다. 우린 이걸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요.』
「정말입니까. 뒷트렁크에서 그걸 꺼내든게 어쩐지 지금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만. 당신네들, 그걸로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요. 설마... 강도질?」
『아니예요! 우린 고속도로 강도가 아니예요! 그러니까 이건... 음, 얘기하자면 복잡한데...』
말을 대충 얼버무린 샘은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냉장고에 자석 붙이듯이 해서 살짝 들이밀었다.
파이프의 끝자락이 사내의 옷에 톡 하고 닿았다. 그게「휘둘러댄다」라는 사전적 의미와는 하나도 맞지 않는 행동인지라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딘은 숨이 막혀 죽으려 했다.
『이 계집애야!』
『젠장,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설명은 차분히 들을테니 그 흉물은 일단 치우고 봅시다. 그래도 되겠지요?」
기분이 불쾌한 것이 분명한 사내가 창백한 손을 들어 쇠파이프를 가만히 밀어냈다.
샘은 눈을 휘둥글 치켜떴다. 놀란 건 당연하고 기뻐서 손뼉까지 쳤다.
『딘! 이거 봤어?! 방금 전에 이거 봤냐고! 이 사람이 쇠파이프를 만졌어!』
진짜로 이 사람은 천사인가봐, 외치며 환하게 웃었다.
끔찍스런 두통을 느낀 딘은 머리통을 감싸쥐고 주저앉았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