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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43

※ 18일, 19일은 작업 분량이 없을 예정입니다. ※


표독스런 얼굴을 한 개는 커다란 우리에 갇혀있었다.
『그게 말이죠... 고객님.』
수의사도 아니면서 왜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는 편이 고객에게 신뢰를 얻기 쉽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하긴, 헝클어진 곱슬머리에 보풀이 일어난 싸구려 스웨터, 그리고 갈색 듀코로이 바지 차림새로는 고등학교를 갗 졸업한 풋내기로밖에 안 보였을 거다. 리스는 남자의 턱에 난 여드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노란 고름이 차오른 잘 익은 염증은 면봉으로 건드리면 톡 소리를 내고 터져버릴게 분명했다. 손톱으로 누르고 싶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가 뒷말을 흐리며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리스는 그제야 여드름에서 시선을 돌려 두꺼운 쇠창살 틈새에 갇힌 개를 쳐다보았다. 익숙한 리스의 체취를 알아차리고 친근감을 표현할 법도 하건만, 베어는 이를 드려내며 위협 중이다. 손을 대면 고기 물어뜯는 요령으로 가차 없이 이빨을 박아 넣을 기세다. 어찌나 살기등등한지 우리의 자물쇠가 튼튼했음에도 하얀 가운을 걸친 동물병원 직원은 1미터 이상 접근을 못 했다.

『우리 개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리스의 질문에 대답한 건 직원이 아니고 입원 중인 동물 쪽이었다.
케이지 속의 개들은 저마다 울부짖었고, 고양이들은 발톱을 세워댔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리스는 허리를 구부려 우리 속에 갇힌 얼굴 검은 개에게 의문을 표현했다.
『무슨 짓을 저지른 거니, 베어.』
사실 개는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다. 음... 그러니까 접시를 깬다거나, 쓰레기통을 뒤엎는 식의 소동은 없었다. 다만... 뭐랄까. 비협조적이었다고 할까. 아니면 개가 내뿜은 분노의 오라가 주변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할까. 이글거리는 갈색의 눈동자가 리스를 노려보았다. 개는 흡사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그래.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을 것 같냐? 앙?!」머쓱해진 리스는 손바닥으로 뒷통수를 문질렀다. 동시에 개의 으르렁거림이 심해졌다.「네놈이 날 감옥에 가뒀냐?! 그런 거냐?! 야! 입이 뚫렸으면 말해봐!」컹컹 외침에 병원 직원이 겁을 먹고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섰다.
『이 녀석, 화가 단단히 났네요.』
리스의 말에 직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병원 탓은 아닙니다. 베어는 자존심 강한 개더군요.』
그리고 끔찍스러울 정도로 비협조적이에요 - 라고 자괴심 어린 말투로 투덜거렸다.
앉으라고 해도 노려보고, 저리로 가자고 해도 노려봤단다.
리스는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거야 당신이 네덜란드 어로 명령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고.

한숨을 내쉰 그가 사무실로 가자며 복도 방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럼 저쪽으로 가셔서 요금 정산을 하도록 합시다.』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위치를 옮기는 와중에도 리스는 틈틈이 우리 쪽을 흘끔거렸다.
늠름한 자세로 버티고 선 개는 그 동안「죽어! 죽어!」이러고 외쳐댔다.
『여기서 데리고 나가려면 진정제를 놓아야 하는 겁니까?』
『어. 진정제를 맞추고 싶어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인 건 분명해서 남자는 콧잔등을 찌푸렸다.
『약물 남용은 사람에게도 안 좋지만 동물에게도 나빠요. 그러지 말고 꽃향기가 나는 스프레이를 구입하셔서 개의 발잔등에 소량 뿌려주세요. 그 편이 약물보다 더 좋습니다. 사람도 기분이 언짢으면 뜨거운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 들어가 긴장을 풀잖아요?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는 것보다 그 편이 더 좋죠. 건전하기도 하고.』
시험 삼아 써보라며 갈색의 작은 병을 하나 내밀었다.「진정효과」라고 적혀진 병에는 보라색 꽃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모르긴 해도 아로마 오일의 일종인 듯하다. 리스는 어정쩡한 자세로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꽃향기는 제법 강렬해서 뚜껑을 열기도 전에 코가 간질거렸다. 리스는 에취, 이러고 장렬하게 재채기했다.
『농축액을 그대로 쓰라는게 아녜요.』
코를 닦고 있는데 대략적인 사용법을 설명해주겠다며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리스는 얌전히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막상 의자로 가서 앉자 동물병원 직원은 리스가 기대했던 아로마 오일 사용법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양손을 손깍지를 낀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을 드리는 건 주제넘을 수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말이죠. 벨기안 말라노이즈는 군견이나 양몰이견으로 적합하지 장애인 안내견으로는 추천하지 않아요. 사람 머리 꼭대기로 올라탈 정도로 영리한데다 친화력이 리트리버 종류보다 낮거든요. 그리고 힘도 세고 덩치가 커서... 다리가 많이 불편한 사람이 키우기엔 벅찰 거라고 봅니다. 듣자하니 베어의 주인은 그쪽이고, 실제로 개를 보살핀 쪽은 해롤드 버틀렛 씨라고 하셨죠?』
리스는 대놓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
『무슨 의미입니까.』
유령의 집에서 스산한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차가운 공기와 땅바닥에 깔리는 연무에 기겁하고 뒤돌아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화형대 위로 올라갈지언정 할 말은 하고 죽을 각오였다.
『빙빙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버틀렛 씨가 베어를 키우는 건 체력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베어의 주인인 선생이 개를 도로 데려가야 한다고 봐요.』
『해롤드가 허리를 다쳐 입원한 건 베어 탓이 아니고 안톤 체호프 때문이었는데요.』
『어. 댁에 다른 강아지가 또 있습니까?』
리스는 입술을 앙 다문 채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주인이나 개나 똥고집이 끝내준다 - 동물병원 직원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개는 여전히 심술이 가득했다.
목줄에 줄을 채워 끌고 나오려는데 다른 방향을 쳐다보며 딴청을 부렸다. 딴청만 부렸던가. 일부러 네 다리에 힘을 주고 안 움직이려 했다.
『베어.』
그래봤자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개들도 삐진다. 그거 참.
『핀치가 안 와서 섭섭해?』
베어의 갈색 눈동자가 리스에게로 향했다가 슬그머니 출입구 방향으로 돌아갔다. 섭섭한 정도가 아니다. 개는 뒤뚱거리며 걷는 양반이 출구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를 무식할 정도의 집착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자기 주인을 리스로 각인했음에도 목을 빼고 기다리는 존재가 따로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제 가야 한다며 줄을 다시 잡아당겼다.
『핀치는 퇴원 준비 중이야. 이곳엔 직접 못 와.』
인상을 쓴 개가 끄응 소리를 냈다.
『어쩔 수 없잖니.』
제발 봐 줘라 - 리스가 두 팔을 벌리자 개는 몸을 굽혀 소중히 품고 있던 장난감을 입으로 물었다. 삐약삐약 소리가 나던 뼈다귀 모양의 장난감이다. 그 소리를 소름끼쳐하던 핀치가 바람 소리를 내던 튜브를 꺼내고 다시 바느질한 탓에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베어는 여전히 그 장난감을 가장 좋아한다. 그걸 입에 물자 마치 핸드백을 옆구리에 찬 숙녀처럼 보였다. 물론 베어는 수컷이었지만 - 아무래도 좋았다. 리스의 입장에서는 베어가 자발적으로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는게 중요했다.
『자, 그럼 도서관으로 돌아가자.』
그 제안에 베어의 꼬리가 빳빳하게 섰다.
『그런데 너, 일부러 골탕 먹으라며 장난감이며 사료봉지며 구분 안 하고 물어뜯은 거니? 병원에서 이건 물어줘야 한다면서 나에게 영수증을 잔뜩 떠밀던데.』
개가 곁눈질로 흘끔 쳐다보았다.
리스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총총 걸음으로 집을 향해 바쁘게 나아갈 뿐이었다.

Posted by 미야

2012/12/17 11:35 2012/12/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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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42

※ 날 잡아서 수정 작업 들어갑니다. 맞춤법 틀림 이런 건 애교로 넘기는 거예요. 돌아가서 읽어보니 부끄러워 미치겠네.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상식이 부족한 관계로 잘 모르는 건 대충 지어냅니다. 팬픽 쓰면서 취재 다닐 순 없잖수. 그러니 이게 진짜야? 이러지 말긔. ※


풀을 먹인 제복을 입은 두 명의 교도관이 창살 앞으로 다가갔다.
등을 구부정히 하고서 독서 중이던 죄수는 책을 내려놓은 뒤 규칙대로 침상에서 일어나 벽으로 가서 섰다. 하지만 다른 죄수들처럼 벽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며 다가오는 두 명의 교도관과 정확히 눈을 맞췄다.
쓰고 있는 안경알이 형광등 불빛을 반사하여 번들거렸다.
공손히 일어서 고객을 맞이하는 증권사 직원과 흡사한 분위기라고 하면 될까, 다니엘 서튼은 오른손을 내밀어 그에게 악수를 청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물론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았다. 죄수의 이름은 카 일라이어스. 알 카포네 급의 거물이다. 여차하면 휘두르기 위해 밸트에 찬 검은색 방망이로 손을 대고 절차에 들어갔다.
『변호사가 면회를 왔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도록.』
한 명이 여차하면 죄수를 제압할 준비를 갖춘 사이, 다른 한 명이 수갑을 채우는게 관례다.
서튼은 동료인 제임스에게 죄수를 면회실로 데려갈 차비를 하라며 눈짓을 했다.
『서두르게.』
제임스 역시 눈짓을 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그 상대는 다니엘 서튼이 아니었다.
미안함, 난처함, 그리고 두려움.
굳이 혀를 움직여 말하지 않아도 사람은 시선만으로도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일라이어스는 죄수 답지 않게 수갑을 채우는 자를 향하여 빙긋 미소를 지었다.

문제의 사내가 입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돌았다.
교도소 직원들을 상대로 엄청난 규모의 매수 움직임이 있었노라고.
단순한 뜬소문이 아닐 거라고 서튼은 직감했다. 감옥 분위기가 갑자기 돌변했는데다 교도소장의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타고 다니는 출근 차량이 고급 승용차로 바뀌었다. 월급이 적다 불평하던 소리가 쏙 들어갔다. 연휴 무렵의 느긋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렇다면 죄수들마저 통제를 잃어 교화의 분위기가 흐트러졌느냐, 헷갈리게 그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각이 잡혔다. 처치가 곤란한 아리안 순혈주의 문딩이들마저 질서정연한 움직임을 보였다. 속칭 빵이라 불리우는 각 파벌의 두목들은 저마다 동맹이라도 맺은 듯했다. 이러한 상황은 수치로도 증빙되었다. 자기들끼리 치고 싸우는 단순 폭력사건 숫자 자체가 줄어 독방이 텅텅 비었다. 이러다간 조만간 모범적인 교도소 운영으로 표창장을 받게될 거다.
그런데도 서튼은 늘 등골이 서늘했다. 빨랫감을 가득 안고 세탁기 뚜껑을 열었는데 그 속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한 마리 뱀을 본 기분이다.

『복도 한 가운데로 걷도록.』
서튼은 계속해서 규정대로 움직였다.
일라이어스는 아장아장 걸으며 순종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뒤를 돌아보거나 좌우를 살피지도 않았다. 천박하게 욕설을 퍼붓지도 않았으며 침을 뱉지도 않았다. 적당한 보폭으로 쉬지 않고 걸어 이중 쇠창살이 있는 곳까지 다가가서는 다음 절차를 기다리며 숨을 골랐다.
서튼은 다시 밸트에 찬 검정색 몽둥이로 손을 댔고, 바짝 긴장했다. 매일 빼먹지 않고 연습을 한 탓에 1초면 몽둥이를 꺼내 휘두를 수 있다.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다. 2009년에 한 흑인 죄수가 숟가락을 갈아 만든 흉기를 휘둘렀을 적에 번개보다 빠르게 몽둥이를 들어 무기를 든 죄수의 손목을 후려친 적이 있다. 조금만 늦게 반응했더라면 숟가락에 찔려 애꾸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문을 열게.』
반질거리는 일라이어스의 대머리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이렇게 보면 하나도 안 무서운데 말이지.
문지방을 넘고 일행은 다시 멈춰섰다.
『문을 닫게.』
신호에 맞춰 두 명의 제복 교도관이 더 따라붙었다. 그렇게 하여 죄수를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으로 에워싼 형국이 되었다. 글쎄... 과연 그럴까. 서튼은 쓰게 웃었다. CCTV로 보면 철통과 같은 보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감각은 완전 달랐다. 죄수는 글로벌 기업의 회장과도 같았고 호위하는 직원은 그 높으신 양반의 졸개이자 보디가드였다.

『그럼 수갑을 풀겠습니다.』
면회실 앞에 이르자 제임스 폴란코는 아예 굽신거렸다.
규정이고 나발이고 이미 다 무너진 판국이라는 걸 알기에 서튼은 이게 다 무슨 짓이냐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 서튼을 제외한 세 명의 교도관들은 공범자의 눈빛을 교환하곤 자리를 비켰다. 면회를 온 자는 변호사가 아니다. 조직의 중간보스로 눈밑으로 인상적인 흉터가 있는 백인이었다. 그러든 말든 기록으로는 풋내기 변호사가 방문한 것으로 남을 것이다.
면회실 문을 닫기 전 제임스 폴란코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마침 감시 카메라가 고장났습니다.』
『그렇습니까.』
『용무를 다 마치면 신호하세요.』
웃을 수도 없는 광경에 서튼은 가장무도회의 가면이라도 뒤집어쓰지 않고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무표정의 하얀 가면을 쓴 그는 동료들과 움직임을 같이하며 악당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아! 서튼 씨는 잠시 남아주시죠.』
일라이어스의 요청에 서튼은 기겁했다. 오늘이 내 제삿날이었단 말인가.
『오해가 있는 눈치인데... 이봐요. 내가 당신 돈을 거절했다고 해서 당신과 앞으로 적대적 관계로 나아가겠다는 뜻이 아니오.』
서튼의 해명에 일라이어스는 싱긋 웃었다.
세탁기 뚜껑을 열자 뱀 머리 튀어나왔다 - 서튼은 겁이 났다. 진실로 겁이 났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름도 알지 못하는 중간보스에게 힐끔 시선을 던졌다. 오랫동안 범죄자들을 보아온 탓에 반 점쟁이가 되어버려 상대가 도둑인지, 강간범인지. 살인자인지 순식간에 파악이 된다. 흉터의 사내에게선 비릿한 피냄새가 풍겼다. 좋지 않은 신호다.
남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신의 옆구리를 칼로 찌를 것 같다는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아플까? 당연히 아프겠지. 그럼 출혈과다로 죽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10분은 걸릴까. 그보다 더 오래 걸릴까. 서튼의 얼굴색이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생각하고 있는게 훤히 보인다며 일라이어스가 쯧쯧 혀를 찼다.
『우리가 드린 돈을 받지 않았다고 무어라 하는게 아닙니다, 미스터 서튼.』
일라이어스의 말투는 학교 선생님을 연상시킨다. 사용하는 단어는 교양 넘치고 발음은 정확하다. 어조는 부드럽고 설득력 강하다. 그래서 방금 전 말한 내용이「과제를 왜 해오지 않았니, 얘야. 어제까지 다 해오기로 약속했잖아」로 들렸다. 야단을 치면서 동시에 격려하고 있다. 묘한 뉘앙스다.
『전 그저 돈을 거절한 까닭이 궁금했어요, 서튼 씨.』
『그건...』
제임스 서튼은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한 번 중간보스를 훔쳐봤다. 흉터의 사내는 두목의 명령이 없었다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그는 비웃음도 아니고 재밌어서 그런 것도 아닌 묘한 미소만 흘렸다. 그렇다고 해도 간과할 수 없는게 두 손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채였다. 서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난 복잡해지는게 싫소.』
『복잡할게 없는데요.』
『그건 머리 좋은 사람들 이야기고. 나에겐 단순할 거라는 생각이 되질 않았소. 그리고 그 많은 돈의 출처를 아내에게 잘 숨길 자신이 없었소. 아내가 나를 의심하면 무어라 설명하라는 거요.』
당국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아내라니. 그런 자존심 파먹는 솔직한 고백이 나올 거라고는 짐작을 못했다는 눈치다. 눈이 동그래진 일라이어스가 정신과 상담의처럼 손가락을 깍지 꼈다.
『뇌물을 받은 거라 솔직하게 설명하면 아내가 화를 낼 것 같나요.』
『화를 내지 않고 나를 경멸할 거라고 생각하오. 그러니까...』재빨리 덧붙였다.『그 경멸이라는게 당신을 경멸한다는게 아니오. 기분 나빠하지 마시오. 다만 아내가 꽤나 보수적인 사람이라서...』더하여 읍소했다.『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니오. 동료들도 잘 알아요. 나는 당신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소, 일라이어스. 그냥 공돈 생기는 걸 싫어하는 꽉 막힌 사람이구나, 이러고 넘어가면 안 되겠소?』
『재밌군요. 돈에는 관심이 없다라.』
일라이어스가 손으로 턱을 괴였다.
영리하고도 냉혹한 뱀의 시선이 제임스 서튼의 얼굴을 요리조리 훑었다.

Posted by 미야

2012/12/14 12:03 2012/12/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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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41

그 남자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외로운 사람 같았다. 근심에 잠겨 옆을 지키는 이들이 없었다.
그래도 돈은 많은게 확실했다. 의료보험도 없으면서 1인용 특실에 입원을 했으니 갑부가 맞다.
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충수염에 걸려도, 썩은 이가 아파 죽을 지경이 되어도, 사고로 손등이 찢어져도 그냥 참는다. 덕분에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악화가 되는 경우도 많다. 사흘 전 그녀는 12세의 어린 소년이 저승으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원인은 패혈증이었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가난한 부모는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기만 했다. 소리를 내어 통곡을 하면 경비원에게 잡혀 밖으로 내쫓길 거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숙인 채 굵은 눈물만 쏟았다. 그 어미 된 여인은 넋이 절반은 나가 반복해서 에스파냐 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열이 나고 귀가 아프다고 했을 적에 병원에 왔어야 했는데. 하느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내 불쌍한 아기를 천국으로 데려가 버렸어.
슬픔이 솟구쳐 물기가 차오른 눈가를 더듬더듬 손가락으로 만지자 동료 간호사가 왜 그러느냐며 물어왔다.
데이나는 렌즈 때문이라고 거짓말하고 컴퓨터 모니터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가엾다 생각해서 죽은 이가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 20분 뒤에는 환자들에게 지정된 경구약을 실수 없이 정확하게 배포해야 한다. 장기 입원중인 조지아 영감의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는게 짜증스럽지만 투약 후 속이 울렁거리는 불쾌감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90kg의 거구를 움직여 출력된 인쇄물을 각각의 클립에 끼웠다. 5초도 지나지 않아 목을 까딱여 인사를 건넨 수간호사가 독수리가 토끼 잡아채듯 자기 이름을 스티커로 붙여놓은 클립보드를 집어갔다. 방송에서는 졸린 목소리로 닥터 로스코를 호출하고 있었다. 채혈된 피가 담긴 유리관을 검사실로 옮기던 직원이 호출당한 의사도 아니면서 스피커 쪽을 흘끔거렸다.

『실례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해롤드 버틀렛 씨의 병실을 찾고 있는데요.』
데이나의 송충이 눈썹이 꿈틀거렸다.
넥타이 없는 수트 차림새의 사내는 어제도 찾아왔었다. 키가 크고 잘 생긴 사내는 아무래도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괘씸하다. 그녀는 서비스 정신을 접어두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몇 호실에 환자가 입원해 있는지 이미 꿰고 있잖수.』
남자가 간호사 앞에서 실실 웃음을 쪼개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가족은 없으나 부자인 버틀렛 씨가 일반 면회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누가 찾아오든 전부 내쫒아 버려라 - 의료진들은 환자의 부탁에 꿈뻑 죽는 시늉까지 해보였다. 병원 이사 중 한 명이자 변호사이기도 한 알버트는 비굴할 정도로 손바닥을 비비기까지 했다. 그리고 데이나에게 거만한 태도로 명령했다. 절대로 면회 금지. 문제의 사내가 소아암환자 병동을 천장부터 바닥까지 리모델링할 수준의 거액을 기부한 사람이었다는 건 덕분에 알게 되었다.

거구의 간호사는 골치가 아프다는 걸 숨기지도 않았다.
『죄송하지만 미스터.』
『그게 말입니다.』
면회 사절 어쩌고 설명이 나오기 전, 남자가 재빨리 반지가 끼어진 왼손 약지를 들어보였다.
데이나의 송충이 눈썹이 재차 요동쳤다. 잘못 본게 아니라면 저건 웨딩 링이다. 간호사는 놀란 눈으로 1인용 병실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목을 길게 뺀다고 환자가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 나아가 해롤드 버틀렛의 손가락에 반지가 끼어져 있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 그녀는 눈에 띄게 동요했다. 환자의 손에 결혼반지가 있었던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안경은 쓰고 있었다. 그건 확실하다.

말을 더듬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분에게 가족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숨겨야 할 이유가 있어서요.』
물론 그러시겠지. 간호사는 음, 음, 이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명령은 명령.
『하지만 일부러 버틀렛 씨가 면회를 거부할 정도라면. 아무래도 이건...』
『우린 이 사실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았어요. 주변에선 우리 관계를 아무도 몰라요.』
『어. 그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
『그리고 우리 자기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고요.』
『자기?!』
현기증이 엄습했다. 머릿속에서 땡그렁 종소리가 들려온다. 천장이 빙빙 돈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을 한다.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소수자를 박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남편인가, 아님 부인인가. 믿어지지 않는다며 남자의 약지를 쳐다보았다. 반짝이는 반지. 새 것처럼 빛났다.
남자의 목소리가 크림 도넛처럼 달콤해졌다.
『입맛도 까다롭고 고집도 강해서 여러분들을 마구 괴롭히고 있겠군요.』
『뭐, 그쯤이야 애교에 불과하고...』
『그이를 대신해서 사과할게요.』
『그럴 필요까지는.』
『해롤드는 오늘도 기분이 많이 안 좋은가요?』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투약 중인 진통제가 효과가 없는 눈치...』
『그렇다면 제가 진통제 역할을 해야겠네요.』
남자는 조용히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쉿, 이러고 공모자의 눈빛을 띄웠다.

핀치는 무슨 수를 쓰든 쳐들어올지 알았다는 눈치다.
실실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오는 리스를 보고도 화를 내기는커녕 간식으로 나온 젤리 타르트를 먹어보라 권했다. 핀치의 기준으로는 형편없는 음식이었나 보다. 스푼이 찔러 박힌 채 방치되어 있었다. 리스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간식에서는 비타민 음료수를 50배 농축시킨 톡 쏘는 향이 났다. 천연과즙이 아닌 화공약품을 연상시키는 그런 냄새였다. 두고 볼 것 없다며 리스는 젤리 타르트를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것보다 조이 모건 양과 나눠 끼었던 반지를 왜 아직도 가지고 있는 거지요, 미스터 리스.』
『전당포에 싼 가격으로 팔아치우기엔 어쩐지 아까운 것 같아서요. 왜요?』
『당신이 반지나 목걸이 같은 장신구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요.』
『정확히 봤어요, 안 좋아합니다.』
『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갈 채비를 하고 있던 핀치는 동작 그만 상태에서 목을 옆으로 돌렸다. 위축된 근육이 당겨져 덕분에 불붙는 통증이 엄습했다. 겨우 목만 움직였을 뿐인데 - 좌절한 남자는 두 손으로 벽을 짚고 서서 신음했다.

기꺼이 부축을 해주겠다며 리스가 가깝게 다가왔다.
핀치는 체면도 잊고 욕을 퍼부어댔다.
『망할 카프카!』
『진정해요, 해롤드. 카프카는 1924년도에 이미 죽어 당신이 아무리 욕을 해도 듣지 못해요.』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남자는 반박도 못하고 끙끙거렸다.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상대의 체중을 어느 정도 가져간 리스는 슬슬 걸어보겠느냐며 제안했다.
『괜찮겠어요?』
『제기랄. 하나도 괜찮지 않아요! 속상해 미치겠다고요!』
『핀치... 그만 자책해요. 책은 얼마든지 또 살 수 있어요.』
『카프카 때문에 물을 왕창 쏟았단 말예요.』
『오호라, 몸을 던져 구하려던게 카프카가 아니었군.』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이었어요.』
안톤 체호프가 누구인지 리스는 모른다. 다만 핀치가 속상해 한다는 것만 안다. 그리고 환자의 허리를 무진장 괴롭게 만들었다는 것도 안다. 하여 노트르담 성당 담벼락에 낙서된《숙명》이란 단어에 반응, 더할나위 없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Posted by 미야

2012/12/13 14:00 2012/12/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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