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앙, 도넬리~! 원츄.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그나저나 노트북 자판은 치기 어렵다. 델리트 키가 왜 아래로 붙은겨?! 눈으로 보지 않고 F10 키를 누르면 그 자리에 프린트 스크린 키가 있엉! ※
윌리엄 잉그램의 트위터는 그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내용으로 갱신되지 않았다. 수단은 오랫동안 분규에 휩싸였고, 사회 인프라는 사실상 1910년대 이전으로 퇴보한 상태다. 그러니 봉사활동 중인 미국인이 그곳에서 자유롭게 인터넷 회선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귤 까먹으며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난민캠프로 수인성 전염병이 돌아 숟가락을 뜰 시간도 없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그 이후로 깜깜무소식이다. 사태는 심각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작성한 내용은 분위기가 어두워 20세 이상 성인 남자에게 수퍼시리얼을 배급하는 문제를 두고 그쪽 실무자와 한바탕 언쟁을 높였다고 했다. 유니세프 규정은 임신한 여성과 아동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하라 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구호단체로부터 배제되어 염소처럼 풀을 뜯어먹고 있는 어른들이었다. 만성 영양부족 탓에 수인성 전염병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었고, 식사를 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약을 투여해봤자 효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배급을 받기 위해 일부러 임신하려는 여자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그녀들의 임신은 축복보다는 재앙에 가까워 다수의 태아들은 발달 미숙 상태로 태어난다. 이런 마당에 급성 설사에 대한 의학적 조처를 설명하는 팜플렛을 제작하여 배포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서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짧막한 글에는 어떠한 감정도 섞여있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걱정되었다. 사람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앞에선 좌절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좌절은 분노를 낳는다. 한손으로 턱받침을 한 자세로 수심에 잠겼다. 「분노는 사람을 망가뜨리는 법이지.」
부족함 없이 자란 윌리엄이 부모의 이혼 문제를 겪었을 적에 청년은 도박에 빠졌다. 놀란 네이슨이 핀치를 대동하고 라스베가스로 그를 잡으러 갔을 적에 그는 3년간 세탁하지 않은 양말짝의 악취를 풍기며 사막의 퇴락한 거리 한 가운데서 담배 한 개비를 구걸하고 있었다. 이러한 행동을 단순히 젊은 날의 호기라고 치부하기엔 어딘지 구슬펐다. 「맙소사, 윌리엄!」 「애고, 들켰네.」 「우린 네가 이 정도로 빠져들 거라고 생각 못 했어. 왜 이런 거야.」 「글쎄요. 생각만큼 그다지 재미는 없었어요. 헤헤.」 「얼굴이 반쪽이잖아. 당장 네 엄마에게 연락해야겠다.」 「그건 어려울 걸요. 어머니는 지금 나폴리에 계세요. 것보다 배가 고픈데... 저어. 햄버거 하나 사주시지 않을래요? 해롤드 아저씨.」 이후 윌리엄은 의사가 되겠다는 어릴 적 꿈을 잠정적으로 접었다.
그를 친아들처럼 여긴다. 사랑한다. 이렇게까지 방어를 풀고 정을 준 타인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가족인 건 아니어서 그가 아버지도 아닌 사람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고 순종하길 기대해선 한 된다. 이 경우 기대를 품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내가 돌아오라고 해서 돌아오겠냐고.」 핀치는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렇게 행동하는 건 곤란하다 생각했음에도 이미 시도를 해봤다는 거다. 유산 정리 어쩌고 핑계를 대며, 모호한 표현을 써서, 지나치게 본론을 비켜 말한 탓에 윌리엄의 대답이《그렇담 창고 열쇠를 아저씨에게 보낼게요》가 되어버렸다는게 문제지만... 그 누가 알랴. 어쩌면 속뜻을 훤히 알고도 일부러 동문서답을 했을지도. 윌리엄은 상당히 영특하다.
『주식이 폭락이라도 했답니까, 아님 부채상한 조정이 꼬였답니까. 갑자기 웬 한숨이에요?』 핀치는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성가신 안구건조증이 다시 재발하려 했다. 『그냥 심란해서요, 미스터 리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도넛 하나를 입에 물고 간식으로 우물거리던 리스가 옷깃에 묻은 슈가 파우더를 툭툭 털어냈다. 언뜻 봐선 상당히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면으로 예민한 핀치는 그 속에서 일종의「가식」을 보았다. 그러니까 뭐랄까, 이 모든게 잘 꾸며진 일상극과도 같았다. 그는「도넛을 먹는다」라는 연극 지문을 충실히 이행했고, 마찬가지로 가루가 묻은 옷을 보란 듯이 털었다. 핀치는 뚜껑이 열린 도넛 상자와 설탕 가루가 묻은 리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의문이 든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는 왜 저걸 과시하면서 먹고 있는 거지?」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 어려웠으나 위화감이 느껴졌다. 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리스가 다시 도넛 하나를 집어 천천히 입에 넣었다. 못난 본능이다.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반사적으로 입안으로 침이 돌았다. 『그거 맛있나요.』 『쓸데없이 달아요. 기름기도 많고. 것보다 화제를 슬그머니 돌리지 말아요, 핀치.』 『어, 음. 그러니까.』 『무슨 일 있어요?』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럽다. 그 입가에 설탕가루가 묻지 않았다면 노려보는 무서운 얼굴로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평소 잘 생겼다는 말을 듣고 있어도 총을 늘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사람답게 리스의 인상은 제법 날카로운 편이고, 그런 그가 작정하고 째려보면 닳고 닳은 마피아 조직원들도 움찔하며 자세를 바꾸곤 한다. 그러니 간이 평균 사이즈인 민간인은 오죽하랴. 이런 식으로 서로의 눈이 마주칠 때면 핀치는 두 사람 중 누가 보스인지 헷갈려 할 때가 있다. 『그러지 말고 이걸로 입가를 닦아요, 리스 씨.』 뭐, 아무리 그래도 입에 설탕가루를 달고 있는 사람에게 겁먹어서는 안 될 것이다. 친절하게 티슈박스에서 휴지 한 장을 뽑아 건네면서 손가락으로 턱과 입언저리 부위를 둥글게 한 바퀴 돌려 표적을 그려 보였다. 웃기게도 리스는 어이쿠 소리를 내며 휴지가 아닌 손등으로 얼른 입을 닦았다. 그리고는 더러워진 손등을 핀치가 건넨 휴지로 문질렀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프린터 노즐이 고장났어요.』 『그게 당신을 한숨짓게 만듭니까?』 핀치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평범한 사무직 직원처럼 인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프린터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드라이버를 사용해 직접 덮개를 열고 문제부분을 찾아내어 수리를 해버리고도 남는다. 그게 귀찮으면 아예 신제품으로 한 대 구입해도 된다. 열 받으면 프린터 생산 공장 자체를 구입해버릴 수도 있다. 이런 마당에 해롤드 핀치라는 사람이 겨우 그깟 프린터 노즐 때문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헤어진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중년의 찌질함을 흉내낼 것 같은가. 리스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핑계가 너무 설득력 없다. 다 듣고 판단하라며 핀치가 쯧쯧 혀를 찼다. 『그리고 제가 구축한 도서관 시스템으로 3회에 걸친 해킹 시도가 있었지요.』 그 말을 들은 리스는 바짝 긴장했다. 『음, 그건 대단히 위협적으로 들리는데요.』 『아직은 괜찮습니다, 미스터 리스. 새로운 방화벽을 구축 중에 있고요. 조만간 완성될 겁니다.』 『그렇다는 건...』 『베어가 900번대 서가에서 용변을 봤어요.』 『어?』 『산책을 가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있는 거예요. 이번 주 산책 담당은 리스 씨잖아요.』 『어어?』 『것보다 존, 서랍장을 전부 열어보며 그 안에 뭐가 들어가 있나 살피는 걸 가지고 무어라 하진 않을게요. 하지만 사탕과 쿠키를 제 동의 없이 임의로 전부 치워버린 건 동의할 수 없군요. 그 마른 과자는 차와 같이 먹는 겁니다. 그리고 치즈와 와인도 전부 사라졌더군요.』 전직 CIA 요원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미리 생각해둔 핑계를 꺼냈다. 『쥐가 나올까봐 미리 청소를 해둔 겁니다. 그리고 과자는 유통기간이 지나가 있었어요.』 『흠.』 『진짜니까 좀 믿어요.』 핀치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와인은? 그것도 유통기한이 지나가 있었답니까?』 그 비싼 걸 세면대에 전부 콸콸 부어버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서 거짓말했다. 『미안해요, 핀치. 그건 맛있어 보여서 제가 다 먹어버렸어요.』 『그럴 수가!』 『당신은 원래 술을 안 좋아하잖아요. 그냥 통 크게 술 잘 마시는 사람 줘버렸다고 쳐요.』 그리고는 화해의 제스츄어랍시고 내용물이 절반가량 남은 도넛 상자를 들이밀었다.
Posted by 미야
2013/01/0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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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의 시작은 토너가 줄줄 새는 프린터와 함께...;; 썅.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일부 내용이 드라마 설정과 같지 않습니다. ※
거울 속의 여자는 어쩐지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보였다.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며 핸드백을 열어 무기-화장도구를 꺼냈다. 정기적으로 관리한 탓에 헤어스타일이나 피부, 눈썹모양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노화에 따른 미세한 잔주름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눈 밑과 턱의 처진 군살은 고가의 미용시술로 감쪽같이 없애버렸다. 머리카락은 원래의 색보다 한 단계 밝게 염색했고, 눈두덩이엔 옅은 살구색의 아이새도우를 발라 생기가 돋보이게끔 연출했다. 잡아당겨진 옆머리 아래로 진주 귀걸이가 반짝였다. 「완벽해. 그러니 기죽을 것 없어.」 입술에 립스틱을 덧바르며 차분히 외모를 점검했다. 시차 적응 탓에 피부가 거칠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옷맵시까지 살피고 나니 아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 번져나간 화장품을 새끼손가락으로 문질러 지워내며 전투 준비를 끝마쳤다.
화장실에서 빠져나와 다시 호텔 라운지로 돌아갔다. 입구 방향부터 차분히 살폈지만 그녀와 약속을 잡은 남자는 아직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상대가 누구이든 항상 10분 먼저 와서 기다리던 전남편과는 다르게 딱 시간을 맞춰 도착하려는 모양이다. 아니면 갑자기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 탓에 의도하지 않게 늦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도시의 교통체증은 맑은 날에도 악명이 높다. 뉴욕시 인구가 어느 날 갑자기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모를까, 무지개가 뜨든 폭풍우가 몰아치든 앞으로도 좋아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금방 그칠 비는 아니야. 어쩌지, 우산을 안 가져왔는데.」 입구로부터 거리가 제법 있었음에도 기분 나쁜 습기가 느껴졌다. 부르르 떨던 그녀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라운지 옆에 위치한 커피숍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여성이 먼저 테이블에 앉아 남성이 오기를 기다리는 건 제3자가 보기에 썩 좋지 않은 모양새지만 오늘은 그냥 예외로 치기로 했다.
그렇게 몇 걸음 걷다 반대편에서 다가오던 커다란 남자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 미안합니다, 부인.』 부주의하게 앞을 보지 않고 걷고 있던 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검정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황급히 사과하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렇다고 해도 세게 부딪친 건 아니었기에 올리비아는 교양 있게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남자는 바쁜 일이 있는지「그거 다행이군요」한 마디만 덧붙이곤 빠른 걸음으로 승강기를 타러 갔다. 올리비에는 그 남자가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는 것만 보고는 다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상념에 잠긴 탓에 남자의 이목구비나 목소리는 금방 잊었다. 하지만 그가 넥타이를 하지 않은게 어쩐지 기억에 남았다.
올리비아가 만나려고 한 남자는 죽은 전남편의 친구로 이름은 해롤드 렌이라고 한다. 남편과는 MIT 대학에서 만났고, 직업은 손해사정사이고, 직원의 수가 자신을 포함하여 다섯이 넘지 않는 작은 보험회사를 운영한다. 규모는 작아도 주 거래 고객들이 상류층이다보니 먹고 사는데 부족함은 없고, 취미는 희귀서적 모으기. 듣기로는 결혼은 하지 않았다. 자녀도 없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올리비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이가 나쁜 시누이에 대해 꿰고 있는 내용도 이보다 곱절은 더 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전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사내에 대해 아는 내용이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물며 그와 직접 만난 건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서 언젠가 한 번은 그가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편이 지어낸 일종의 상상친구인 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다. 「그건 아니지, 올리비아. 실제로 의심했던 건 그런 내용이 아니었잖아?」 교통 체증으로 늦었다며 사과하는 남자를 향해 억지웃음을 짓던 올리비아는 가벼운 두통을 느꼈다. 그랬다. 아주 먼 옛날, 그녀는 해롤드 렌이 어쩌면 남편의 동성애 파트너가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다.
『오랜만입니다, 올리비아. 이렇게 보니 건강해 보여서 좋군요.』 인사말은 형식적이고 딱딱했다. 『올리비아?』 한 번 더 이름이 불리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빗물에 젖은 남자의 어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이상한 기분이다. 그녀는 화들짝 꿈에서 깨어나 30년 가까이 학습한 미소 - 이른바 상류사회에서 표준 모델이라고 여겨지는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뺨과 입술 근육을 솜씨 좋게 잡아당겼다. 의붓딸의 학교 행사에서 곧잘 써먹는 가면으로 지루해 미칠 것 같은 본심을 감추기에 엄청 효과적이다. 고백하자면 가끔은 재혼한 남편과 부부싸움을 할 적에도 사용한다. 『갑자기 연락을 드렸음에도 이렇게 만나주셔서 감사해요, 해롤드.』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니오, 저도 방금 전에 도착했답니다. 그보다 시간을 내주셔서 고마워요.』 올리비아의 발음엔 런던 억양이 교묘하게 섞여 있었다. 그녀의 친정은 영국이다. 『괜찮습니다. 일정이 한가해서 시간을 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남자 역시 기계적으로 웃었다. 마치 보험금 지급 절차에 대해 문의하는 고객을 앞에 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반듯하고 예의발랐다. 하지만 친절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으로 사내의 눈빛은 냉정했다. 그리고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유리알을 닮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저 밑바닥에서 차가운 불꽃이 튀었다. 「사기꾼!」 죽은 전남편 네이슨 잉그램은 이 남자를 전적으로 신뢰한 듯하다만. 올리비아는 단 한 번도 해롤드 렌이라는 자를 좋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격렬히 증오했고, 원수처럼 미워했다. 그것이 본심이다.
싸늘함이 안개처럼 그녀의 주위를 에워쌌다. 주문한 홍차에는 입조차 대지 않았다. 『부탁할게 있어서요.』 『무엇을?』 해롤드가 남편의 동성 애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곧 착각이었던 것으로 판명났다. 왜냐하면 그들 부부 사이가 멀어지기가 무섭게 네이슨 잉그램이 젊은 여자들과 신나게 바람을 피워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남편은 열 살 연하의 여자까지 침대에 끌어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비아는 화가 나지 않았다. 반대로 안심이 되었다. 남편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게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해묵은 오해가 풀렸다고 좋아하기는 일러서. 비밀스런 눈빛, 공모하는 손짓, 잊을 듯하면 매번 걸려오는 짧은 안부전화. 방향을 잃은 그녀의 막연한 의심은 더욱 복잡해졌고, 어두워졌으며, 보다 심각해졌다.
올리비아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제야 고백하는 건데 나는 내 아들 윌리엄이 당신을 지나치게 따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나는 당신과 윌이 성관계를 가진게 아닌가 의심했었죠.』 『올리비아. 지금 뭐, 뭐라고요...?』 둔기로 세게 얻어맞은 충격에 들고 있던 찻잔을 비스듬히 잘못 내려놓았다. 덕분에 3/1가량 남아 있었던 홍차가 흘러넘쳐 테이블을 더럽혔다. 찻잔이 쓰러졌든 말든, 해롤드는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내의 동공은 계속해서 크게 벌어졌다. 윌리엄과 성관계를 가졌을 거라 의심했다고? 기겁을 한 손해사정사의 입이 금붕어의 그것처럼 뻐끔뻐끔 열리고 닫겼다. 『그런! 나는. 결코. 단 한 번도!』 『알아요.』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다른 방향으로 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건 아들과 멀어져버린 못난 여인의 몹쓸 상상이죠. 윌리엄과 나는 더 이상 피가 통하는 아들과 엄마가 아니에요. 막막한 타인과 같은 관계죠. 그 아인 내게 얼마나 예의바르게 구는지 몰라요. 마치 날 큰 기업체 CEO처럼 대해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해롤드 삼촌이라 부르면서 애정을 표현하지요? 그 아이가 당신에게 전화를 걸면서 웃는 걸 봤어요. 마치 애인과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맙소사. 내가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윌은 철이 들고나선 나에겐 그런 표정 보여준 적 없어요.』 속눈썹이 빠르게 깜빡깜빡 움직였다. 마침내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눈가를 눌렀다. 『그러니 부탁할게요. 수단에서 봉사활동은 그만두고 미국으로 돌아오라 당신이 얘기해줘요. 그 아인 내 말은 더 이상 듣지 않으니까... 이런 부탁하기, 죽기만큼 싫어요. 그치만 나는.』 거기까지 말한 여인이 품위도 잊고 콧물을 들이마시는 소리를 냈다.
Posted by 미야
2013/01/0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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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번호는 작업 순서를 의미하며, 내용의 연속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일부 내용은 드라마 설정과 같지 않습니다. ※
아세트알데히드. 알데히드 화합물의 일종으로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의 대사과정에서 형성되며 숙취의 원인 물질... 부리로 콕콕 쪼는 특유의 두통에 신음하며 왼팔을 이마에 올렸다. 시간관념이 뒤틀려 지금이 좋은 아침인지 늦은 오후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부어서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창밖의 밝기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낮과 밤의 판단이 되지 않는 건 여전했다. 흐린 날씨 탓이거나 아니면 두껍게 쌓인 먼지 탓이다. 유리 건너편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추한 회색 빛깔로 덧발려 마치 현실이 아닌 듯한 몽환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것은 새벽의 아스라함을 많이 닮아 있었고, 동시에 우거진 수풀의 그림자가 층층이 겹을 이룬 거스러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핀치는 이마에 올린 팔을 조금 아래로 내려 눈두덩이를 둥글게 문질렀다. 투과되지 않는 입자, 그리고 굴곡 되는 광선, 천궁으로 삼켜질 별들이 눈꺼풀 속에서 왱왱 회전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끄응... 15년만에 한 껀수 올렸구먼.』 네이슨 잉그램이 어렵게 구한 대마초 전부를 변기에 넣고 흘려보낸 건 룸메이트 탓이다. 동시에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술을 즐겼던 것 또한 특이체질을 가진 룸메이트 탓이다. 「자네는 일정 주량을 넘으면 폭주하는 성향이더군. 옆에서 보기에 무척 재밌었어. 하지만 매키니 교수의 수업은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F학점을 벗어나기 힘들게야. 다섯 명의 증인이 보는 앞에서《이것이야말로 멱수열의 합을 유도하는 과정입니다》어쩌고 떠들며 키스했거든. 여기서 맹세하는데 나는 보고만 있지 않았어. 너를 말리려 노력했어. 그 증거로 내 코를 봐, 해롤드. 어제와 같은 크기지?」 「네가 피노키오냣!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게!」 「아무튼 나는 노력했어. 그러니 나중에 나와 같이 사이좋게 추가 학점을 노리도록 합세.」 술에서 깨어나 고통 받는 건 숙취 때문이 아니다. 필름이 끊겨서 그랬다고 변명도 못 하게 세부 내역 전부를 상세히 기억하고 있어서다. 의식이 또렷해지는 것과 같은 속도로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갔다.
초록색 군용담요에 돌돌 말린 상태라서 똑바로 일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 감기에 걸리면 안 된다며 친절을 베풀었다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짐짝 취급을 닮아있었다. 다리 부위는 강박증이 의심될 정도로 두 겹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베개 대신으로 접은 모포만큼이나 그 방식이 철두철미했다. 어쩐지 그 느낌이 납치범들이 인질을 다루는 방식을 연상시켜 입이 썼다. 한참을 바둥거려 상체를 일으키자 이번에는 오른팔이 조립식 소파에 결박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밧줄 대용품으로 사용된 건 핀치의 넥타이였다. 그걸 보트를 부두에 묶어둘 적에 써먹는 매듭으로 잘도 꼬아 놨다. 시험 삼아 팔을 잡아당겨 보았다. 자유로운 왼손 하나로 매듭을 풀기엔 아무래도 난이도가 제법 높을 듯. 핀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로 말미암아 전달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허름한 모텔 방에서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전화벨 소리를 듣고 깨어나 보니 한 손이 케이블타이로 결박당한 채 오성급 호텔에 눕혀져 있었죠.》 리스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 적에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을 상기시키려 한 것 같다. 《우리 같은 사람은 만에 하나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 때문에라도 과음을 해선 안 됩니다.》 빗물 얼룩이 생긴 천장을 쳐다보며 반복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과음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과음을 해서는 안 됩...》 잔소리를 닮은 충고가 리스의 목소리로 머릿속에서 반복하여 자동 재생되었다. 동시에 오래된 고물 레코드는 거기에 약 먹은 소리를 섞어 내보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장난으로 키스하면 안 됩니다. 장난으로 키스하면 안 됩니...》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근거리로 뚜껑을 따지 않은 생수병과 안경, 그리고 핸드폰이 일렬로 놓여있었다. 그중에서 안경을 제일 먼저 집어 들었다. 다음으로는 핸드폰을 잡고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오후 5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그는 6시간 정도 잠들어 있었다. 분발하자. 《R.J는 절도 혐의로 경찰에 수배 중입니다. 굿피플네이버스라는 봉사단체 사무실에 몰래 침입해서 금고를 뜯고 현금과 장부를 훔쳤다고 했습니다. 문제의 택시에 올라탔을 적에 그는 범행 후 도주 중이었던 모양입니다. 장부는 사실상 별 거 아닌 내용들이고 다수가 세탁소니 슈퍼마켓이니 하는 스폰서 업체 전화번호 기록이라고 해요. 하지만 R.J 가 그걸 어떻게 해석할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게다가 우리 때문에 풀려야 할 오해가 거꾸로 더 커졌어요.》 핀치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하, 하, 하 이러고 쓰게 웃었다. 사실 이건 블랙 코미디와 마찬가지다. 성당이나 사원을 통해「우리에게 후원을 해주세요」홍보하는 단체 중 사기성 단체는 있어도 테러리스트들은 없다. 왜냐하면 국가가 이미 이런 통로를 통한 지원을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진짜배기 악당들은 이슬람 사원 게시판을 일절 이용하지 않는다. 이 점을 모르는 건 기부에 일절 관심이 없는 일반인 - 그리고 R.J 뿐이다.
『원래대로라면 장부를 보고 오해가 풀려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군요.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 중인데 경찰도 아닌 리스 씨가 과격한 방법으로 강제로 끼어들었으니까요. 시커멓게 생긴 당신을 보고는 장부를 되찾으려 한 테러리스트라고 오해를 한 거예요.』 저편에서 리스가 끙 소리를 냈다. 《에... 저는 시커멓게 생기진 않았지만. 뭐, 그런 겁니다. 당신을 구조하러 간 저를 보고는 굿피플네이버스 단체가 테러리스트 소굴이 맞다 단단히 착각했죠. 확신을 갖고 911에 전화를 걸었어요. 이때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자신이 한 짓은 파렴치한 도둑질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어요. 그 증거로 훔친 돈을 넣어둔 가방의 위치를 알려줬는데 카터의 말로는 대형마트 무인보관함이라고 하더군요.》 『카터 형사님과 같이 그쪽으로 가보실 건가요.』 핀치의 질문에 리스는 단호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곳에 R.J를 추적할 단서가 남아 있지는 않을 겁니다. 것보다 자기 멋대로 착오를 일으킨 R.J가 누구를 노리진 않을지 그게 걱정이에요.》 『굿피플네이버스 단체를 다시 노리진 않을까요, 미스터 리스.』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그가 국토안보부에 신고한 내용을 토대로 누구를 1순위 테러리스트 분자로 의심하고 있는지 추정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전 그를 뒤쫓을 방법을 강구할게요, 아저씨.》 『응?』 취기를 쫓기 위한 따뜻한 녹차를 우려내던 손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아저씨?!
순간 리스가 작게 키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저씨라고 불러라, 그러지 않음 화를 내겠다, 기억 안 나요?》 『..........』 기억이 너무 잘 나서 문제다. 하지만 핀치는 결코 인정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핀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짓말했다. 그게 거짓말이라는게 고스란히 보였던 걸까,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리스가 다시 질문했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핀치.》 기억이 나다마다. 꺽다리 친구의 무릎이 휘청거릴 정도로 혀를 얽고 입술을 빨았다. 치아의 열을 하나하나 두드리며 확인하는 혀의 움직임과 감각적으로 찍고 누르는 입술에 취한 리스는 온 체중을 실어 핀치에게 기대왔고 덕분에 무거워서 죽는 줄 알았다. 『몰라요.』 《아저씨?》 『모른다니까.』 신경질적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꾹 눌러버렸다. 자, 힘 내자. 집중하여 일할 시간이다. 그러니 잡담금지.
Posted by 미야
2012/12/31 12:53
2012/12/3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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