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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55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팔레 루아얄 인근의 길고 더러운 거리를 걷고 있던 오귀스트 뒤팽이「솔직히 샹티이는 덩치가 너무 작아. 그보다는 바리에테 극장이 더 잘 어울릴 거야」라고 말하는 것으로 타인의 속마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들었을 적에 비상한 추리력으로 뇌를 스캔당한 친구는 감동을 먹기는커녕 거북스러움과 위화감을 느꼈을 거라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사과 광주리, 포장석, 스테레오토미, 에피쿠로스, 니콜라스 박사, 오리온, 샹티이.
과일장수와 부딪친 친구가 삐져나온 포장석 조각을 밟고 미끌어져 발목을 긁혔는데 이후 15분간에 걸친 사고의 회로를 고스란히 따라가 구두장수에서 연극배우로 전업한 샹티이 이름을 불쑥 꺼낸다. 이게 과연 감동스러운가? 물론 책 본문에는「자네는 혹시 무당인가! 아님 천리안이라도 되는가!」외치며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뒤팽은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탐정으로 그 위대한 머리는 어디까지나 불쾌감의 대상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핀치는 셜록 홈즈의 업적을 찬미하는 왓슨 박사가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여겼다. 손가락에 묻은 쵸크 가루를 보고 그가 남아프리카 광산에 투자하지 않기로 했다는 걸 알아차리는 위험한 사람을 가까이 해선 곤란하다.

누군가 그의 머리를 들여다보는 건 사양할란다.
핀치는 예의 가식으로 잘 꾸며진 미소를 지으며,
bool accessGranted = false; // 비관적
try {
// c: est.txt에 액세스했는지 확인합니다.
- 수순의 절차를 이행했다.
간단히 말해 이도저도 아니게 나름 연막을 피웠다는 얘기다.

『이곳으로 들어온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아신 거죠? 혹시 어디 반응 좀 볼까 이러고 장난삼아 꺼내본 얘기인가요?』
이 바닥에서 베테랑인 것이 분명한 윙필드는 핀치를 고스란히 흉내냈다. 그러니까 기계적으로 입술과 뺨의 얇은 근육을 잡아당겨 조잡한 웃는 표정을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해도 눈은 구부러지지 않아 붕괴된 발란스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결과적으로 미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냉소도 아니다.
『재밌네요. 의사는 모든 환자에게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말하죠. 그러니 탐정 역시 모든 의뢰인에게 미행을 당하고 있다 알려줘야 해요. 그렇지 않나요?』
『아, 네...』
『그래요. CC-TV 모니터로 수상한 사람의 행동거지를 본 것도 아닌데 어디 반응 좀 볼까 이러고 옆구리를 찔러보는 거죠.』
『감시 카메라요?』
『뉴욕은 편집증적인 도시라 이 건물 출입구에도 여러 대 달려 있답니다.』
그녀는 경찰이 아니다. 아울러 그녀의 사무실은 심문을 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세운 핀치를 보고 윙필드는 순식간에 100보 이상 물러섰다. 이 사람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 그녀는 상대에게 명함을 건네주고 대략적인 서비스 요금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반드시 의뢰를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없었고, 캐묻는 시선도 없었다. 상대가 안에서 빗장을 걸어잠구면 바깥에서 억지로 여는 건 불법 행위가 된다. 그런 까닭에 영차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먼저 일어난 사람도 데보라 윙필드 쪽이었다.
『마음이 바뀌면 다시 오십시오.』

다리가 불편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뛰었을 것이다.
초조감에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았던 핀치는 겅중거리는 걸음으로 건물에서 보다 멀리 떨어지기 위해 애썼다. 그래봤자 모든 CC-TV 카메라가 그런 그를 거리낌 없이 뒤따라올 것이 뻔했고, 팔짱을 낀 데보라 윙필드가 그 화면을 전부 보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고 있을 회색의 마녀를 확인하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15층짜리 건물은 다른 고층 빌딩에 가리워져 일부분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다한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지켜보고 있다 - 전부를 - 속속들이 파헤치며 - 머리카락 개수마저 헤아려 - 전부를 보고 있다.
아차하는 사이에 숨 쉬는 리듬을 놓쳐버렸다. 심호흡을 하며 걷는 속도를 조절하려 했으나 공황발작이라도 일으킬 참이라 이마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가슴이 뻐개지듯 아파왔다.

『!!』
누군가 재빨리 겨드랑이로 팔을 넣어 그를 부축해줬다. 잘게 부수어진 숨을 헐떡이던 핀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시야가 빙글빙글 도는 바람에 친절을 베푼 사람을 쳐다보는 일엔 실패했다. 남자는 조심해요, 앞을 봐요, 괜찮나요 등등의 말은 일절 하지 않은 채 핀치를 끌어당기며 제멋대로 걷기 시작했다.
『리스 씨.』
이름을 불러봐도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보도블럭에 발이 닿고 있는지 확신도 들지 않는 상태에서 핀치는 남자가 하자는 대로 끌려갈 뿐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걱정하는 눈초리를 보내오는 행인들을 일절 무시하고 리스는 핀치의 팔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하는 수 없이 설명은 핀치가 대신 했다.
『전 지금 이 사람에게 납치당하는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조수석에 강제로 밀어 넣어질 때까지 그 말을 도대체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웃기게도 모두로부터 납치범으로 오해받은 리스는 단 한 번도 입을 뻥끗하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은 그는 졸려 죽으려 하면서 - 계속해서 부운 눈을 꿈뻑거리며 - 교통신호를 준수하고 - 간혹 수염이 돋아난 두 뺨을 세수하듯 문지르는 것으로 쏟아지는 졸음을 무진장 참고 - 박스터 거리에 위치한 로프트로 그의 고집불통 고용주를 실어 날랐다.

『리스 씨?』
열쇠로 문을 열고 건물 내부로 들어오고 나서도 리스는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의식의 절반가량이 가수면 상태로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다. 행동은 답지 않게 굼떴고, 숨소리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눈빛도 멍했는데다 결정적으로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핀치는 그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리스 씨.』
이름을 부르는 핀치의 목소리에 반응, 두 눈을 꿈뻑거린 리스는 고용주의 캐시미어 외투를 잡아당겨 벗겼다. 넥타이도 풀었다. 양복 단추도 끌렀다. 여기까지 소요된 시간이 도합 15초, 외투를 4등분으로 접어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손가락으로 퀸 사이즈의 더블베드를 가리켰다. 아마도 저리로 가서 누우라는 의미인 듯했다.
『누우라고요?』
네, 바로 맞췄어요 - 리스의 손가락이 허공에 위치한 보이지 않는 한 점을 콕 찍었다.
핀치가 어색해하며 구두를 벗고 침대에 올라가자 리스는 얇은 하얀색 홑겹이불을 펼쳐 핀치의 다리 전부를 감쌌다. 그리고는 홀겹 이불을 반으로 반듯하게 접어 무슨 선물상자 포장하듯 핀치의 두 다리를 싸기 시작했다.
불안해하는 눈으로 쳐다보자 이번엔 베개를 가리켰다.
내용을 알아듣고 쭈삣거리며 누웠다.
그렇게 침대 한 가운데서 자리를 잡자 절반은 눈이 감긴 리스가 이불을 들어 핀치의 몸을 덮었다.
성인 남자가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인형놀이를 하고 있다 - 최소한 핀치의 판단으로는 그랬다.
『존?』
침구의 상태를 최종적으로 점검한 리스는 눈동자를 또록 굴리며 눈치를 살피느라 바쁜 핀치를 다독였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잠자리에 들 시간이에요.』
이제야 발 뻗고 잘 수 있다며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을 지은 리스는 그대로 소파로 직행했다.
코 고는 소리가 들린 건 그로부터 정확히 10초 뒤였다.

Posted by 미야

2013/01/09 12:34 2013/01/0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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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54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번호는 작성 순서를 의미하며, 일부 설정은 원작과 같지 않습니다. 전체 공개 정책이 변경되어 아자씨들이 눈 맞으면 비번 걸어둡니다... 그래봤자 비공 개수가 없음. ※


기계는 번호를 제공함에 있어 이쪽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때려죽인다 해도 자야겠어요.』
사흘 연속 철야로 무리를 한 리스는 항복을 선언했다.
수중에 해결이 나지 않은 번호, 그러니까 리스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 또 다른 번호를 쥐고 있던 핀치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 가서 그만 쉬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메모지를 공처럼 굴려 리스가 보지 않는 틈을 타 재빨리 양복 주머니 속에 넣었다.
깔깔해진 눈을 손등으로 비비고 있던 리스는 집으로 돌아갈 기력도 없었던지 도서관 구석에 이불을 깔고 그대로 드러누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단 잠이 들자 미동조차 하지 않아 시체로 착각할 지경이다. 양말과 신발도 벗지 않은 채였다.
매트리스 대용품의 접이식 쿠션을 사용한다고 해도 이곳은 눈을 붙이기엔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다. 바닥에선 차디찬 냉기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칙칙한 빛깔의 군용담요는 포근함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래도 3시간 정도 재웠다가 흔들어 깨워 집으로 돌려 보내는게 좋을 것이다. 몸살이 나서 도저히 못 움직이겠노라 호소하면 근처 호텔에 전화를 걸어 방을 하나 잡을 생각이었다.
무리를 해서 좋을 거 없다. 사람은 피로가 쌓이면 능률이 저하되는 법이다.

시계바늘을 쳐다보던 핀치는 동시에 자신의 신체리듬도 따져보기 시작했다.
현장을 직접 뛰어다녀야 하는 리스보다는 사정이 괜찮기는 해도 사흘간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납덩이처럼 몸이 무거웠다. 카페인이 잔뜩 들어간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고 불면증 걸린 토끼처럼 컴퓨터 앞을 지켰지만 약물에 의한 속임수가 사라지자 더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체력고갈과 스트레스는 잦은 근육선통을 불러와 틈만 나면 발가락이 저릿저릿 아프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그렇게 쥐가 나면 10분가량은 신음소리도 못 냈다.
『나이는 속일 수 없군.』
생각 같아선 곤히 잠든 리스를 옆으로 밀치고 그리로 가서 벌러덩 드러눕고 싶었다.
하지만 핀치는 참을성이 많은 사내다. 머리꼭대기까지 담요를 뒤집어쓴 동료를 곁눈질로 쳐다보곤 구도하는 성직자처럼 자세를 가다듬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말라붙은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기계가 보내온 9자리 번호의 주인을 서둘러 찾기 시작했다.

여자는 먼젓번 주요 용의자와는 달리 꼭꼭 숨어있지 않았다. 반대로 광고에 자기 이름을 실었다.
《윙필드 탐정사무소》
이름만 보면 남자로 생각하기 쉽다. 그녀도 그걸 노렸던 것 같다. 놋쇠로 만들어 붙인 사무실 문패엔 미스, 혹은 미세스라는 호칭이 지워져 있었다. 몰개성적인 디자인과 글씨체에선 묘한 익명성이 느껴졌고,「비밀보장」이라는 케케묵은 표현마저 진지하게 보이는 효과를 자아냈다.
뭐, 그런다고 해봤자 광고와 현실은 서로 같지 않은 경우가 흔한지라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비좁고 초라한 응접세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집기비품의 허름함으로 미루어 보아 그다지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으리으리한 대리석 바닥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해서 뒤돌아 나가버릴 그런 분위기다.
눈껍질이 용접한 쇠붙이처럼 서로 달라붙을 지경인 핀치는 제일 먼저 소파로 눈길을 주었다. 아아, 낡은 건 둘째고 푹신해 보인다. 가서 누워봤으면.

『어떻게 오셨죠? 먼저 전화를 주셨던 분인가요?』
곱슬머리의 30대 후반 연령의 여자가 모서리 작은 방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른손에 아무런 표기가 되어있지 않은 파일을 하나 들고 있었다. 언뜻 보아 윙필드 탐정의 비서라고 착각하기 쉬웠지만 사전 조사를 끝마친 핀치는 그녀가 월급을 받는 직원이 아닌 사장 본인이라는 걸 알고 있다. 물론 정식으로 소개받기 전까지는 아는 체 하지 않을 작정이다.
전화라는 단어에 반응, 핀치는 테이블에 올라가 있는 표준 모델의 유선 전화기로 눈길을 주었다.
『저어, 오기 전에 전화를 먼저 해야 하나요?』
여자는 질문을 듣고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아무래도 다른 분과 착각을 한 것 같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이곳은 예약이 필수인 치과병원이 아니니까요. 괜찮으시다면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려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은 편에 속했고 듣기 좋은 깊은 울림이 있었다.
핀치는 말 잘 듣는 착한 소년이 되어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의자로 향했다.
기다리라 해놓고 여자는 다시 나왔던 방으로 사라졌다.

처음부터 많은 걸 할 생각은 없다. 반듯하게 앉는 척하며 엉덩이 아래로 손을 내려 능숙하게 도청기를 설치했다. 카메라까지 달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으나 아직은 그럴 기회가 아니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책상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들켜봤자 좋은 소리 못 듣는다. 게다가 핀치 생각엔 사무실 안에 이미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을 것 같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탐정 사무소 안이다. 무선 신호만 해킹할 수 있다면 번잡스럽게 이쪽에서 카메라를 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잘 돌아가지 않는 목을 움직여 대략 이쯤이겠거니 짐작되는 부분들을 쳐다보았다. 쓸데없이 큰 그림 액자는 작은 디지털기기를 숨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아니면 장식용 도자기 화병은 어떨까. 위치로 보아 아주 적격이다. 아니면 절반가량 내려온 창문의 블라인드 뒤로 감춰뒀을 수도 있다.
감시 카메라를 상상하자 기분이 나빠졌다.
「직접 찾아온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을지도.」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고 있는데 안쪽에서 캐비넷을 닫는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다시 빠른 걸음으로 돌아온 윙필드의 손은 이번엔 텅 비어있었다. 그녀는 사무적으로 미소를 지으며「핀치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아무개 씨처럼」출입구를 마주보는 위치를 골라 앉았는데, 일반적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과는 모양이 사뭇 달랐다. 덕분에 핀치는 그녀의 옆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게 생겼다. 그다지 편한 느낌은 아니었다.

『제 소개를 하죠. 데보라 윙필드입니다.』
그녀가 솔직하게 직구를 던져왔다.
핀치는 가만히 생각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놀란 척을 약간 하는게 좋겠지.
『여자 분이셨군요.』
『더블브레스트 양복을 입고 모자를 쓴 탐정이 아니어서 놀라셨나요. 그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뒤로 생략된 말은 다음과 같다. 여자라서 일을 맡길 수 없다 생각되면 나가셔도 좋습니다.
그리고는 1분가량 어려운 침묵을 지켰다. 아무래도 의뢰인에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찬스를 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녀는 손가락을 깍지 낀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불편한 1분이 그렇게 지나갔고.
탐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미행을 당하고 있으신 거죠?』
지어낸 용건을 그럴듯하게 털어놓으려던 핀치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네? 제가 미행을 당하고 있다고요?』
『키는 185에서 189cm 가량. 보통 체격에 짧게 다듬은 머리. 언뜻 봐선 사복 경찰 비슷해 보이지만... 분위기로 보아 경찰은 아닐 것 같군요. 자, 그래서. 당신은 누구에게 쫓기고 있는 거죠?』
워우워우야. 핀치는 당황한 상태에서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라며 깨워서 내보냈다. 리스가 그를 따라왔을 리는 없다.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럴 리 없습니다.』
『하지만 짐작가는게 있으신 거죠.』
측면으로 앉은 여자가 핀치의 안색을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제가 미행하는 사람의 외모를 묘사했을 적에 당신의 눈이 좌우방향으로 희미하게 움직이더군요. 특정 사람을 떠올리고 계셨던 거에요. 동시에 몸을 딱딱하게 긴장시켰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창문을 쳐다보려 하지 않았어요. 보통 미행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밖에 누가 있는지 관심을 두게 되죠. 그리고 그 관심은 창문을 쳐다보는 동작으로 이어져요. 하지만 당신은 창문이 아닌 나를 보고 있네요.』
여자가 다리를 꼬았다.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있지도 않은 마누라 뒷조사를 해달라는 이야기는 까먹었다. 순간 핀치의 등줄기가 차가워졌다.

Posted by 미야

2013/01/08 11:34 2013/01/0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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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53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칼 비처는 8구역 마약단속반 소속의 젊은 형사로「엉덩이 무지 가벼움 = 아무튼 여자를 잘 꼬셔요」로 제법 이름이 높았다.
카터가 그쪽 부서로 비처의 연락처를 묻자 반응이「그럼 그렇지」로 들렸던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 평소에도 업무상 용무를 가장한 채 접근을 시도하는 여자들이 제법 있었던 모양으로 강력계 형사라는 이쪽의 신원을 밝혔음에도 수화기 저편의 접수계 직원은「비처, SOB(개자식). 원 스트라이크~!」반응을 보였다.
귓구멍에 닿은 소문이 그렇다보니 느끼한 바람둥이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카터는 손가락에 커다란 금반지를 세 개나 낀 남자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예의바르고 정중한 타입이었다. 비처는 잘 생겼고, 손가락에 반지를 안 꼈고, 매너가 좋았다. 초대받은 저녁식사 자리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는 어색함을 날려버릴 즐거운 화제로 여성을 기쁘게 해줬고, 저속하지 않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울 줄 알았다. 첫 번째 데이트에서 그들은 가벼운 키스를 나눴는데 카터가 결정을 못 내리고 우물거리자 그 즉시 물러나 여성을 배려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오늘 밤, 정말 즐거웠어요, 카터.」
「집까지 배웅해줘서 고마워요, 비처.」
만장하신 가운데 땀이 찬 사타구니를 손으로 벅벅 긁는 사람들이 주변에 널린 탓에 이런 식의 존중은 카터를 우쭐하게 만들어 주었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던 그 순간만큼은 머리통 커진 아들을 키우는 싱글 마더도 아니었으며,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나는 용의자를 향해 킥을 날리는 형사도 아니었다. 비처는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으로서 카터를 대우해줬다. 와우. 그건 정말 기분 좋았다.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며 거울을 보자 오랜만에 붉어진 뺨으로 행복해하는 자신이 보였다.
네글리제 차림으로 의자에서 일어서서 가슴과 허리, 그리고 골반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차분히 뜯어보았다. 여전히 매력적이다. 머리를 빗는 브러시를 손에 쥐고 만세라도 부르고 싶어졌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카터.』
『제가 지금 콧노래를 불렀던가요.』
『오- 아뇨.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콧잔등 부위를 가리키며 동료 경관이 히죽 웃었다. 매일 찡그리고 있던 얼굴에서 주름이 없어졌다는 의미다. 하여간 고등학교도 아니면서 이런 방면의 소문은 무척 빠르게 돌았다.
「누구와 누구가 서로 좋아한대요. 얼레리꼴레리.」
사생활과 업무는 어디까지나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데이트를 궁금해 하는 눈빛들은「그 둘이 별개의 것이었어?」어처구니 없게 되묻고 있었다. 흥미진진해하는 표정들이 카터의 행동을 훔쳐봤다. 데이트 후에 꽃을 보내오지 않는다며 오지랖 넓게 대신 화를 내주는 이도 나왔다. 분위기 좋은 장소를 골라주겠다며 친절 아닌 친절을 베푸는 동료도 있었다. 카터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어떤 의미에선 그 간섭이 기분 좋았고, 어느 의미에선 성가셨다.

『의외로 이 바닥이 좁잖수.』
라이오넬 푸스코는 그 정도는 예상했었어야 한다며 가볍게 킁, 콧소리를 냈다.
『게다가 마음 놓고 데이트도 못 하는 세상이라고요.』
그게 무슨 동치미 국물로 발가락 닦는 소리야, 이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렇고말고. 마음 놓고 데이트도 못 하는 세상 맞다.
《요즘 형사님 얼굴색이 무척 좋다고...》
『시끄러워욧, 핀치!』
《그 사내가 형사님을 괴롭게 만들면 제가 직접 찾아가...》
『시끄럽다고 했잖아요, 존!』
그녀의 데이트 사실이 타임스퀘어 광장 대형 광고판에 걸릴 정도의 사건이던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이제 그녀의 어머니가 부재중 전화를 걸어오는 일만 남았다.
딸아, 요즘 데이트를 하고 있다며. 그 남자가 누구니?

냉정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 기를 쓰며 그녀가 주장했다.
『이건 제 사생활 침범이에요. 당신들, 선을 넘었다고요.』
딱딱거리는 카터의 불만에 리스는 평소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지루한 내용의 교과서라도 읽는 뉘앙스였다.
《주의하고 있어요, 카터. 분위기가 진전된다 싶으면 이어폰을 뺄게요.》
『그러니까~!! 누군가 다 듣고 있다 생각하면서 분위기를 로맨틱하게 진전시킬 수는 없다고요!』
《그럼 사전에 약속을 해둘까요. 테이블을 세 번 치면 진도 나가기 일보직전이다... 이렇게.》
『이 사람들이 진짜!』
여기서 무슨 덮밥처럼 얹어진 푸스코의 조언이 걸작이었다.
『핸드폰 전원을 끄고 밖에 나가면 괜찮을 것 같죠? 천만에요. 무슨 마법을 부리는 건지 쟁반에 얹혀진 1회용 핸드폰이 주문하지도 않은 와인과 같이 나오는 겁니다. 벨이 울려서 받아보면 척척박사 그 양반이고요, 점잖은 목소리로 당장 꺼놓은 핸드폰을 원래대로 해놓으라고 요구하죠. 기가 막혀서 난 아무 말도 못 했다우.』
그들에게 감히 대들 생각 자체를 못하는 푸스코는 엿듣고 싶음 맘대로 엿들어라 이러며 모종의 여인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눈치다.
『성질 고약한 시어머니가 붙었다니까요. 이쪽 생각 좀 해달라 그랬더니 원더보이는 느끼하게 웃기만 합디다. 그래서 뭐, 다음부터는 극장처럼 시끄러운 장소를 고르고 있지요.』
『읔.』
보고서를 작성 중이던 푸스코가 안경을 고쳐 쓰며 그녀에게 충고했다.
포기해요, 카터. 포기하면 편해져요.

목요일 저녁에 시간이 날 것 같아 미리 약속을 잡아두었다.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과감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나갈 작정이다. 분위기가 좋게 이어지면 기꺼이 남녀관계도 가질 생각이다. 그녀는 그럴 자격이 충분했고,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을 까닭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임약도 구해다 놓았다. 야한 느낌의 속옷도 준비했다.
『목이 아픈가요, 카터?』
아까부터 헛기침을 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비처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오, 별 거 아니에요. 건조해서 그런가봐요. 물을 마시면 나아질 거예요.』
『어딘지 불편한 모습이군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길까요?』
『아녜요, 칼. 그러지 않아도 되요.』
그러면서 카터는 테이블을 손등으로 초조하게 세 번 두드렸다.
『조스?』
『호호호, 별 거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다시 세 번 더 두드렸다.
『오늘 좀 이상한데요, 조스.』
『그래요? 그렇게 보여요?』
포기하면 편해진다는데 그 포기가 쉽게 되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Posted by 미야

2013/01/07 13:20 2013/01/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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