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은 모텔로 돌아가 그저 발 뻗고 자고 싶었다.
반면 흥이 오를대로 오른 그의 형님은 양편으로 여자를 둘이나 꿰차고는 입이 귓가에 걸린 상태다. 자신이 무슨 헐리우드 신흥 프로덕션 관계자인양 흐린 연막을 치며「어때, 생각이 있으면 카메라 테스트를 받아보겠어?」라고 말하는데 두손 다 들었다. 낧아빠진 중국제 청바지를 입은 스카우터가 말이 되느냔 말이다. 게다가 그가 신은 신발엔 간밤에 무덤을 파느라 생긴 진흙 얼룩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약이나 하는 동네 건달도 구두만큼은 번지르르하게 신는 법이다. 쓰레기장으로 직행할 그의 신발은「내 직업은 사실 외판원이랍니다. 아님 그와 비슷한 거겠죠」주장을 하고 있었고, 솔직히 말해 딘이 승부 카드로 여자들에게 내밀만한 것은 반반한 외모밖엔 없었다.

『어머, 하지만 내 가슴은 너무 작고...』
『왜 그러시나, 아가씨들. 요즘은 개성으로 승부하는 시대야. B컵도 충분히 섹시하다고.』
『정말?』
『그럼! 실리콘으로 크게 해봤자지. 요컨대 사이즈가 아니라 봉긋 솟은 모양이 중요한 거야.』
『크기가 아니라 모양인가. 하지만 남자들은 사.이.즈.가 더 중요하잖아요? 그죠? 호호호!』

문제는 형이 낚은 상대가 평범한 처자들이 아니라 닳고 닳은 세이렌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딘의 같잖은 허풍을 한 눈에 꿰뚫어 보았다는 점이었다. 알면서 속아준다는 말은 이럴 적에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만 들어도 현기증이 났다. 게다가 그 가식적이고 음탕한 몸짓들...
샘은 벽돌 사이즈의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을 가져와서 그들의 머리를 후려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금발로 머리를 염색한 여자가 딘의 무릎 위로 올라가 앉으려 했고, 후끈 달아오른 딘은 험프리 보가트 스타일로 위스키를 들이켰다. 빨간색 힐을 신은 여자가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둥글게 문질렀다. 정확히 가슴돌기가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지금 당장 모텔로 돌아가고 싶다니까욧!

불쾌감이 솟구치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샘은 그런 신체적 반응을「아마도 취해서 그런 모양」이라 가정하고 눈앞에 놓인 냉수를 벌컥거렸다. 그리고나선 곧 후회했다. 왜냐하면 그런 천치 같은 행동은 필연적으로 사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목구멍이 급격히 수축하는 것과 동시에 격렬한 기침이 터져나왔다.
덩달아 두 개의 안구가 눈구멍에서 튀어나오려 발악했다.
『어이, 어이. 괜찮아?』
누군가 안쓰럽다는 투로 등을 쓸어주었다.
샘은 큰 문제 없으니 함부로 만지지 말라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고, 자신의 무사함을 표현하는 손짓은 우습게도「살려주세요!」를 많이 닮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남에게 매달리는 꼴이 되었고, 상대방은 그것이 무슨 구조 요청이라도 된다는 듯이 옆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샘의 팔을 붙잡아 주었다.
눈물이 가득차 흐리멍텅해진 눈으로는 그가 밝은 청회색의 재킷을 입었다는 것밖엔 알아볼 수 없었다. 연령대 불명, 생김새 불명, 피부색(인종) 불명. 넥타이를 매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가 인디언 억양이 섞인 말투를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샘은 계속해서 기침을 터뜨렸고, 남자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다 내장까지 튀어나올라. 숨 쉴 수 있겠어?』
『괜... 콜록! 괜찮아요.』
『알레르기는 아니겠지? 저런,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었는 걸.』
남자는 의사라도 되는 것처럼 샘의 안색을 이리저리 살폈다.
순수하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까? 모르겠다. 다만 신경쓰이는 건 여전히 그의 등을 덮고 있는 커다란 손이었다. 뭐랄까, 그건 친밀감을 한껏 드러내는 행위라서「나랑 당신이 언제 친구이기라도 했나요?」진지하게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세게 뿌리치는 건 무례할 거다. 샘은 고민했다.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뒤로 물러서라 요구하려면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 걸까. 사탄아, 썩 물러가라?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샘의 눈으로 제일 먼저 히끗히끗한 흰머리가 들어왔다.
『의사는 의사인데 사람은 치료하지 못 하는 그런 의사일세.』
『그럼 수의사이신 모양이군요.』
『바로 맞췄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동시에 깨달았다. 남자는 샘을 병원으로 주사를 맞으러 온 개 다루듯 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끙끙대는 골든 리트리버의 털가죽을 쓰다듬으며「착하지?」이런 거다. 스트레스를 받은 개에게 개껌을 내밀었음 - 자신이 뭔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아차린 남자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직업이 직업이라지만 사람과 개를 착각하다니.
『앗, 미안. 버릇이 되서!』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뗐다. 그리고는 연거푸 사과했다.
『미안하네! 이상하게 오해받을 짓을 저질렀네. 하지만 맹세코 수상한 의도는 없었다고.』

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다른 사람이 먼저 반응했다.
『수상한 의도는 없으셨다고라... 아앙?』
갑작스레 드리워진 그림자에 두 사람은 흠칫거리며 위를 쳐다보았다.
잔뜩 굳은 얼굴인데 오로지 뺨만 붉다.
『그런 허튼 변명을 믿으라고? 이놈이 어디서!』
떡 벌어진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음성치곤 톤이 대단히 높았다.
『나에게 한 번 죽어봐라.』
칙칙폭폭 연기를 뿜는 기차가 차단기 신호를 무시한 채 힘차게 전진하려 했다. 샘의 머릿속으로 찢어지는 경종이 울렸다. 진정하라며 두 손을 들어올렸지만 아마도 그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딘!』
『이보쇼. 우리 얘기로 합시...』
『이 늙다리가 순진한 아이를 꼬셔서 뭘 어쩌려고!』
『오해야! 오해라고! 제발! 엉뚱한 사람에게 주먹질 하지 마!』
『이 변태 자식! 오늘 임자 만났다.』

펄펄뛰는 딘의 모습에 수의사 양반은 단단히 얼은 눈치였다.
샘은 눈치껏 신호했다.
『도망쳐요!』
그리고는 냉큼 뒤따라가려는 딘을 가로막았다.
『빨리 가요!』
남자는 샘에게 고맙다고 눈짓하며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자알~한다. 새미. 얼마나 빈틈 투성이면 같지도 않게 놈팽이가 와서 수작을 걸고 말이야.』
설명하고픈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철부지 어린애를 야단치는 형의 태도에 샘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침 내가 제때 발견해서 망정이지, 아님 끌려갔어.』
그는 확신했다.
『끌려갔다고!』
그래서 분을 못 삭이고 씩씩거렸다.

나는 그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아 - 편의점 강도와 맞붙어 이길 자신도 있다. 딘과 비교하자면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흑심을 품은 멍청이에게 끌려가 험한 짓을 당할 정도로 엉망인 건 아니다. 핸디캡이 없는 상황이라면 성인 남자 둘을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은 분명 있다. 그들의 아버지는 아들을 일종의 테러리스트로 양성시키려 했고 - 그 테러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악령들이라서 천만 다행 - 남들이 이등변 삼각형의 꼭지점에서 밑변의 중점으로 내린 선분은 밑변에 수직이라는 걸 두고 머리를 쥐어싸고 있을 적에 그는 형과 같이 판크라티움을 강제로 익혀야 했다. 그들이 태어난 곳이 현대 미국이 아니라 기원 전 스파르타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수영, 달리기, 격투기... 덕분에 허점을 노리고 손을 뻗어 상대의 목을 조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나이도 많은 영감에게 끌려가 그렇고 그런 짓을 당한다는 가정 자체가 웃기다.

가슴 위로 두 팔을 깍지끼고 딘은 도리질했다.
『하나도 안 웃겨, 새미. 실제로 끌려갔었잖아. 미네소타 주에서의 일, 기억 안 나? 끼꺼덕 소리나 내는 고물 트럭을 모는 괴상한 영감에게 납치당했던 주제에. 술집 앞에서!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울화가 치밀었던 것 같다. 딘은 계속해서 으르렁댔고,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으려 했다.
『자식아. 제발 부탁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란 말이야!』
『과장 좀 하지 마, 딘. 그 남자는 내가 사래가 들려서 걱정해준 것뿐이야.』
『말도 안돼. 걱정한다면서 남의 등을 막 쓰다듬고 그러니? 내가 봤을 적에 그건 완전히 성희롱이었어! 조금 더 나갔으면 그 자식이 네 넙적다리를 만졌을 거다.』
『그만해, 딘.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는 거 아냐.』
『임마. 네 형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앗! 그 늙은이의 눈빛을 네가 못 봐서 그래!』
『그래도 그 남자는 내 가슴은 안 만졌어. 형이 집적거리던 여자들과는 다르게!』

완전히 삐진 동생이 눈을 흘기자 딘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팔을 활짝 벌렸다.
『이봐, 똥강아지. 왜 비교를 하필 그 따위로 하냐.』
『그 여자들, 젖꼭지 만졌다고!』
『그게 뭐가 대수냐. 여자들이잖아.』
『젠장! 그럼 나도 형처럼 말할래. 생판 모르는 남자가 날 만졌다. 그게 뭐가 대수야!』
『어허,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지, 새미.』
딘은 차갑게 말하며 경고조로 손가락 하나를 까딱거렸다.
『정말로 그랬다간 난 그 자식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죽일 거란 말이다.』

엄청난 말을 들은 것도 같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아님 단순히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다.
샘은 다리가 붕 뜨는 것을 느끼며 두 눈만 꿈뻑거렸다.

『하, 하지만 나는 그 여자들을 안 죽일건데...』
당연히 그러시겠지. 딘은 어깨를 으쓱였다.
『알아. 대신에 넌 날 죽이려 덤빌 거 아니냐.』
『어... 그게...』
『착하구나, 새미. 절대로 아니라고 부정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막 감동 먹는다.』
거기까지 말한 딘은 기색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정신을 놓고 있는 샘을 억지로 차에 밀어넣었다.

Posted by 미야

2008/02/14 19:19 2008/02/14 19:19
Response
No Trackback , 5 Comments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779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 List

  1. 밤맛만쥬 2008/02/15 00:38 # M/D Reply Permalink

    누가누가 질투가 더 심한가 대결인가효..ㅎ죽이겠다고 달려드는 형아 땜시롱 샘희뿐만 아니라 저도 햄볶았어요~ㅋ. 억지로 밀어넣고 팔라 안에서 질척질척 하악하악하게 놀았으면 좋겠...<상상만으로 물엿 한 사발 흘리고 있긔...

  2. 모모야 2008/02/15 00:57 # M/D Reply Permalink

    일단 진행상황이 둘이 ,통했고...
    서로 확정된 상태인가효?


    만약 그렇다면.... 그럼에도 딴 여자들이 들어오는 디니 나빠요..ㅋㅋㅋㅋ

  3. 아이렌드 2008/02/15 10:34 # M/D Reply Permalink

    아... 억지로 차에 밀어넣은 다음이 무쟈게 궁금하다....둑은둑은

  4. 로렐라이 2008/02/21 15:18 # M/D Reply Permalink

    투닥투닥~ 누가누가 더 좋아하나~
    얼레꼴레 /ㅁ/
    귀엽습니다!

  5. 마리 2008/02/23 15:43 # M/D Reply Permalink

    아니 왜 갑자기 정다운 부부싸움인가요.
    가끔 이 형제들을 보면 부부인지 형제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273 : 1274 : 1275 : 1276 : 1277 : 1278 : 1279 : 1280 : 1281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14256
Today:
108
Yesterday:
45

Calendar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