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각의 이야기는 큰 줄거리를 가지고 서로 연결됩니다만, 순서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습니다.
옛날 버릇이 고스란히 튀어나와 정말 죄송합니다. 이게 먼저인가, 저게 나중인가는 나중에 고민합시다. 개인의 취향과 시각에 따라 대단히 불쾌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마우스 버튼을 재빨리 눌러 윈도우 화면을 닫아주세요. ※
샘은 뜨거운 주전자를 잘못 만지고 실수로 손을 데인 사람처럼 마구 뛰었다.
『싱크대에 썩은 양말 올려놓지 말라고 내가 누누이 강조했잖아, 형!』
침대에 걸터앉아 신발끈을 X자로 교차하여 매듭을 묶던 딘은 동생의 고함에 벙벙한 눈을 했다.
그러든 말든 샘의 목소리는 옥타브 더 올라갔다. 완전히 오페라 카르멘이다. 담배 공장으로 호위를 나온 호세는 방금 전에 카르멘의 등으로 칼을 찔러넣었다.
『바퀴벌레와 친구 하자고 하면 인생이 즐거워? 즐겁냐고!』
그런데 여기서의 문제는 바로 이거다.
샘은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양말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게 아니다. 냉장고 안에서 영구 결빙된 바퀴벌레가 발견된 것도 아니고, 씻겨 내려가지 못한 똥이 화장실 변기 구석으로 역겨운 얼룩을 남긴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지금의 이 말다툼은 제과점 진열대에 올라간 초코렛 케이크 위로 딸기 장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논쟁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쉽게 말해 쓸데없다는 얘기다. 그깟 딸기, 있으면 어떻고, 또 없으면 어떠랴. 어차피 타이틀은 딸기 케이크가 아니라 초코렛 케이크다. 엉뚱한데서 딸기를 찾는다며 제과점 주인에게 머리를 파리채로 맞아도 할 말이 없다.
딘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짧게 다듬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마구 빗질했다.
요컨대 샘이 유원지에서 코를 빨갛게 칠한 살인 광대와 정면으로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구는 까닭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다음부턴 주의할게, 새미.』
『새미가 아니라 샘이야!』
『알았다고, 동생아.』
『알긴 뭘 알아! 맨날 입만 살아서...』
『잘못했다고. 이제 됐지?』
틀에 박힌 가짜 웃음을 흘리며 허겁지겁 화장실로 도피했다.
그리고 나서야 샘이 분노한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망할 bitch.』
밤까지도 없었던 보라색 멍울이 목덜미에 생겼다. 어제 만났던 전갈좌의 여자가 심하게 빨아댄 탓이다. 작심하고 덤벼들지 말라고 싫은 표정을 했어도 여자는 발정기의 살쾡이마냥 뜨거웠고, 그 결과 그들의 하룻밤 잠자리는 엎치락 뒤치락 난리통이 되어버렸다. 변태 기질이 농후한 - 팬티 스타킹 하나만 입은 채 기마 자세로 엎드려 서스럼 없이 펠라치오를 해준 그녀는 끝까지 잠자리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딘은 짐짐한 기분으로 여자의 요구대로 애널에 삽입까지 했다. 화끈하면서도 뒷맛이 안 좋은 섹스였다.
기본적으로 딘은 잠자리 테크닉에 탐닉하지 않는 편이다. 섹스 중독자도 아닌데 처방전도 없는 짝퉁 비아그라를 입안에 털어넣곤 동네방네 낯간지럽게 앗앗 소리를 질러대는 건 사절이다. 간밤의 여자가 수상한 알약을 권하며 눈빛을 반짝였을 적에도 단호히「No!」라고 거절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적당히 엉덩이를 붙잡고, 찔러박고, 흔들다가, 배출하면 끝.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막무가내로 질주해봤자 새벽이 고달프다.
거울에 비친 초췌한 안색의 남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말은 잘 한다. 꽤나 담백한 섹스를 즐기신다 이거냐? 하지만 그걸 누가 믿어주냐. 하루도 안 빼놓고 밤놀이에 열중하는 주제에. 남들이 들으면 웃다가 틀니 튀어나올라.
찬물을 틀어 세수부터 했다.
쥐어짜도 정액이 안 나올 지경으로 아무렇게 몸을 굴려댔다. 혹사당한 성기가 얼얼했다. 이 마당에 밋밋한 섹스 어쩌고 떠들면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세면대 아래로 탁한 비눗물이 흘러갔다. 입안을 물로 헹구고 수도꼭지를 힘주어 잠궜다.
『아침부터 소리를 질러 미안해, 형.』
샘은 차분한 표정으로 되돌아가 사과를 했다.
과연, 카르멘이 꽥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자 호세는 정신이 번쩍 들었나 보다.
『몰아붙인 건 잘못했어.』
『어, 그러냐.』
평소라면 딘은 그깟 양말에 사람을 잡으려 했다며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형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건 착한 동생이 할 짓이 결코 아니라는 둥, 신경질을 부리는 걸 보니 생리할 때가 되었다는 둥, 말 나온 김에 가게에 가서 탐폰을 사오겠다는 둥, 시덥잖은 말들을 주워대며 샘을 약올렸다. 아니면 신고 있던 양말을 공처럼 말아 보란듯이 싱크대에 던지고는「워쩔겨~ 새미? 내가 또 어질렀다?」이러고 도발했다. 어중간하게 어, 그러냐 대꾸하며 머리를 긁어대는 건「막내가 짜증을 부릴 적엔 이렇게 하세요」장남 매뉴얼에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치만 정말이지 이번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딘은 초조했고, 좀처럼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샘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냉장고에서 상한 치즈를 발견했을 적의 난감함도 있다. 무자비한 햇살 아래로 구멍난 속옷이 빨랫대에 걸린 기분이고, 늑대 인간이라 오해하고 털 많은 사람을 엉뚱하게 잡은 것도 같다. 샘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으니 이쪽에서도 뭐라고 한 마디 해야 하는데「사과는 애플, 오렌지는 맛있어, 뉴욕의 심볼은 자유의 여신상」이러고 말도 안되는 문장이 입안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혼란스럽다. 그리고 부끄럽다.
후, 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에라, 모르겠다. 아예 주제를 바꿔 달나라로 워프하자.
공격의 빌미가 된 검정색 양말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며 딘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었다.
『있잖아, 새미. 여기서 체크 아웃하고 바비 아저씨에게로 가자. 어때? 브록스턴즈에서의 일 이후로 연락도 제대로 못 드렸잖아. (* MLR : 본편 미진행) 아저씨도 우리가 보고 싶으실 거야. 가서 형이랑 같이 바비네 냉장고를 털자. 어쩌면 우리가 관심 가질만한 일에 대해 괜찮은 정보를 알려주실지도 몰라. 요즘 우리들, 지나치게 한가했잖냐.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빈둥거릴 수는 없지. 사냥을 한지 오래되다 보니 몸에 녹이 슬 것만 같아. 손목을 돌리면 관절에서 막 삐그덕 소리가 난다고.』
샘은 회의적이었다.
『그것도 좋겠지, 딘. 바비 아저씨에겐 신세를 졌으니 제대로 인사해야 할 거야. 하지만 형과 나는 사냥을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즉시 딘은 우호적이기도 하고, 비굴하기도 한 미소를 지으며 샘의 발을 가리켰다.
『어... 내 발등엔 불 안 떨어졌는데. 네 발엔 성냥이라도 떨어졌냐? 저런, 조심 했어야지!』
언제나 그랬듯이 딘은 농담으로 화제의 핵심을 슬그머니 비켜갔다. 윤곽이 희미한 유령처럼 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냉기가 올라왔지만 짐짓 모르는 척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거다. 야구를 하며 웃고 떠들고 있는 어린 소년들을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는 거 아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학부모들이 성추행범으로 의심되는 수상한 사내에게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따지고 들면 날짜가 지난 신문을 가리키며「댁은 눈도 없소? 공원을 산책 중이오」라고 대꾸한다지, 아마.
동생은 목소리를 낮추어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봤자 나는 당신이 아이들 무릎을 훔쳐보고 있다는 걸 잘 알아요.
『우린 키스했었어, 형.』
댁이 읽고 있는 신문이 일주일 전에 발간된 거라는 걸 지적하고 싶군요.
『언제까지 이럴 거야. 그 문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해야만 해.』
그래서 말인데요. 난 여기로 당장 경찰을 부를 작정이예요, 이 찢어 죽일 양반아.
『없었던 일로 하기엔 난 무척 심각하단 말이야.』
샘은 제대로 숙면을 취한지가 언젯적 일인가를 곰곰이 따져보았다.
뜬눈으로 천장을 쳐다보다 기진맥진하여 기절하듯 잠시 눈을 붙이는 나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벽에서 들려왔고, 온 세상의 자동차들이 클랙슨을 울려댔다. 샘은 누군가 자신에게 몹쓸 저주를 걸었다고 믿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처음 이틀 동안은 책에서 본 내용을 참고로 부적을 만들기도 했다. 소금과 약간의 약초, 카모밀라, 그리고 이국의 향료를 섞어서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냄새가 향긋해서 베개 밑에 숨겨두니 기분이 좋았다. 결과만 말하자면 기.분.만. 좋았다. 아흐레 뒤에 샘은 부적 주머니를 변기에 집어넣고 망설임 없이 물을 내렸다.
눈꺼풀은 여전히 깔깔했고, 커피를 서른 여섯 잔이나 마신 것처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안절부절해하며 다리를 흔들면 의자까지 덩달아 덜컹덜컹 움직였다. 모든게 일그러지기 시작한 건 그 무렵부터였다. 샘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소시지를 마흔 조각으로 잘라서 먹었다. 아니, 먹었다는 말엔 어폐가 있다. 죽어라 난도질만 했을 뿐, 입안에 넣고 삼키지는 않았으니까. 잠이라는 녀석이 가출을 해버리자 덩달아 식욕이라는 녀석도 가방을 싸들고 도망을 쳤다. 그 두 가지는 다시는 샘에게로 돌아오지 않을 속셈인 듯 싶었다. 밖으로 나가 짤막한 엽서 한 장 없는 걸 봐선 의중은 분명했다.
갑자기 목이 메여왔다. 입술을 깨물며 샘은 하소연했다.
『난 지쳤어, 딘.』
흐리멍텅한 상태에서 고개를 돌리면 텅 빈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서늘한 기운에 흠칫하여 그때마다 이불을 어깨 위까지 끌어올리곤 했다. 그러나 발버둥쳐도 몸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음이 너무나 추웠기 때문에 히터는 무용지물이었다. 놀이를 마친 딘이 열쇠를 따고 방으로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눈 내리는 벌판에서처럼 하얗게 입김이 나왔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이러지 말아.』
원망하며 형을 쳐다보았다.
『형은 나에게 이러면 안돼.』
딘은 지치고 낙담했다는 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나는 너에게 그러면 안돼. 그러니까... 음, 키스 말이야.』
순간 동생이 철렁 내려앉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미처 눈치채지 못한 딘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나도 인정해. 그러니까 그건... 뭐랄까, 오믈렛에 넣어진 고추냉이 같은 거였어. 설탕인지 알았는데 소금이었고, 전자렌지용 그릇이라 생각했던게 일회용 플라스틱이었어. 비유가 엉망이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게 이해가 가니? 샘.』
그리고 더듬거렸다.
『하, 하지만 나는 그걸 바로잡을 거야. 진짜야. 약속해. 그리고 곧 그걸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나에게 약간의 시간만 허락해준다면... 그래, 새미. 형은 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어. 그리고 조만간 우리는 무슨 국경일이라도 된 것처럼 잔치를 하게 될 거야. 날 믿어!』
샘은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상처받은 눈빛을 하고 무릎 사이로 깍지 낀 손을 꾸셔넣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