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는 좌변기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심하게 구토하고 있다. 다른 한 남자는 만사 포기한 표정으로 세면대에서 참방거리며 체크무늬 손수건을 빨고 있고.
오줌을 누러 화장실을 찾은 트럭 운전수는 두말할 것 없다며 뒤돌아 나가버렸다. 최근에는 CCTV 설치가 늘어 자칫하면 전국적으로 개망신 당할 걸 각오해야 하지만... 에잇, 무릇 남자라면 으슥한 도로변 아무데서나 바지 지퍼를 내리는 것으로 요의를 처리해도 그만이다. 7년 가까이 화물 트럭을 운전하면서 나무에 공짜 비료를 갈긴게 어디 한 두 번이냐. 『왜애엑-』 지금으로서는 오장육부를 죄다 뒤집고 있는 저 불길한 사내가 그와 같은 식당에서, 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케에엑-』 상한 굴 요리를 잘못 먹으면 죽기도 한다. 운전수는 근심에 젖어 자신이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를 차근차근 점검했다. 어디 보자. 소고기 케밥에 삶은 달걀 둘. 버섯 오물렛에 베이컨 추가... 아! 그리고 냉동 참치 샐러드. 가만 있자. 거기에 들어간 마요네즈는 과연 신선했던가.
『뒈질 소시지!』 더러운 타일 벽으로 체중을 기대다 말고 서너 마디 욕설을 덧붙였다. 『이러다 식도에 염증 나겠네. 썩을 주방장! 유통기한이 넘었던 거야. 분명해.』 물방울이 튄 화장실 거울을 통해 딘의 안색을 살피던 샘이 그 말을 듣고 즉각 코웃음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딘이 고른 소시지는 그도 같이 주문해서 점심으로 먹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먹었는데 한 사람은 건강하고 다른 한 사람만 배탈이 났다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닥쳐. 넌 핫 소스 안 발라 먹었잖아.』 『흐응, 그래서 이젠 말을 바꿔 소시지가 아니라 소스가 이상했다?』 『평소 때와는 달랐어. 보다 맵고 시큼했달까, 아님 찝질했달까. 그런 걸 듬뿍 발라 먹었으니 속이 뒤집힐 수밖에.』
한숨만 나온다. 샘은「넌 바보냐」표정을 감출 필요성도 못 느꼈다. 딘은 애써 음식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구토의 원인은 정작 단순하다. 그게 뭐냐고? 멀미다. 샘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정비된 스위스 기계처럼 냉정했다. 『덧붙이자면 멀미라는 건 배나 자동차, 비행기를 탔을 적에 속이 메슥거리면서 어지럼증을 느끼는 걸 말해. 혹시 형이 모를까봐 알려주는 거야. 고맙게 여겨.』
짐작했던바 그대로 딘은 발끈하여 샘의 주장을 송두리째 부정했다. 『이게 누굴 바보 취급하고... 하! 웃겨. 이 딘 윈체스터가 자동차 멀미라니. 차라리 내 정체가 화성으로 간 목성인이라고 하지 그러냐.』 바퀴 달린 탈 것에 대한 그의 유별난 애정은 멀미에 대해 이해하려는 생각 자체를 방해했다. 비록 면허증은 없었지만 열 네 살적부터 잠정적 묵인 하에 - 윈체스터가 남자들이 목을 길게 빼고 애지중지한 임팔라는 빼고 - 운전대를 잡았던 몸이다. 그것은 날아오는 공을 피해 몸을 굽히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어린애의 신체 사이즈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가속기 페달을 밟으려면 가라데 발차기 비슷한 동작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런 건 근성으로 아멘하고, 비디오 반납일에 맞춰 능숙하게 2차선 포장도로를 누볐다. 혹시 모를 단속에 대비하여 코 밑으로 가짜 티가 팍팍 나는 검정색 수염까지 붙이고서 말이다. 『알간? 넌 지금 이 위대하신 형님을 모욕한 거야. 간혹 방향 깜빡이를 켜는 걸 잊고 왼쪽으로 차를 튼 적은 있어도 태어나 지금껏 멀미를 일으킨 적은 없다.』 『틀려. 모욕을 주려는 의도는 없어. 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지적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그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는 거다, 새미. 세계 선수권 모터사이클 대회 우승자가 두 발 자전거를 타다 균형을 잃고 도랑을 굴렀다는 소리나 마찬가진데 그게 있을 수 있는 얘기니?』 『그 위대하신 모터사이클 대회 우승자의 나이가 올해 일흔 아홉이라면 가능하지. 농구의 황제라는 마이클 조던도 할아버지가 되면 3점 슛은 불가능해져. 영광은 그리 길지 않아.』
칵. 하여간 이놈의 자식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해요.
잡아먹을 기세로 세면대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몸과는 반대 방향으로 뇌가 빙글 돌면서 다리가 풀려버렸다. 눈꺼풀 안쪽에선 하얀 반점이 너울거렸다. 이건 흡사「카드 빚 대신 내 한쪽 콩팥을 떼어가도 어떠한 군소리도 하지 않겠소이다」계약서에 서명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빨래를 금방 널었는데 하늘에서 굵은 소나기가 쏟아질 참이다. 변기로 다이빙하지 않고 뱃속에 머물던 약간의 소시지가 재차 부글부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코로 내뿜은 숨에서 시궁창 비슷한 냄새가 났다. 입안으로 떫은 맛의 침이 고였다. 한계다. 딘은 잔뜩 굶주린 사자가 피가 흥건한 신선한 고깃덩이에 달겨드는 것처럼 해서 샘을 밀쳤다. 이제 세면대는 그만의 독차지다.
제법 거친 취급을 당했음에도 샘은 그다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폭력을 다 이해한다는 투여서 딘은 속으로 열불이 났다. 『짜증은 나겠지만 어쩔 수 없어. 멀미가 나면 찬바람을 쐬면서 느긋하게 쉬는 수밖에.』 『멀미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 우게엑~!!』 『한 발 양보해서 그게 식중독이라고 해도 말이지. 지금의 형에게 더 이상의 이동은 무리야. 오늘은 그만 쉬어야 해.』 『뭐?! 벌써?! 아직 오후 2시밖에 되질 않았...』 『정확히 2시 3분이야. 그래도 형은 침대에 누워야 해.』 초침이 착착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샘이 단정지었다.
존의 큰 아들은 대놓고 신음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개인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보편적으로 인간은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약 열 여섯 시간 활동한다. 그중에서 제일 활발하게 움직일 때가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사이. 그런데 뭐? 하늘이 멀겋게 하얀 대낮인데 침대로 가서 누워? 베짱이가 동료하자며 좋아라 할 소리다. 손이 떨리는 걸 애써 감추며 수도꼭지를 틀었다. 시설은 척 보기에도 낡았으나 손수건을 빨겠다며 동생이 미리 선수를 친 탓에 쏟아지는 물은 녹물 하나 없이 맑았다. 『눕긴 어딜 눕냐. 계획대로라면 우린 오늘까지 위스콘신 주를 넘어야 해.』 『알게 뭐야. 못 넘는다고 어디서 누가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 뻐드렁니의 못생긴 여자가「임신했어요. 그러니까 책임져」구호를 외치며 형의 뒤를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비, 비유를 해도 어쩜 그 따위로...』 『쉽게 말해 무리할 까닭이 없다는 거지. 느긋하게 임팔라의 타이어를 바꿔 끼고, 바꿔 끼고, 또 바꿔 끼면서 달리면 돼.』
얼마 전에 딘은 뱀파이어에게 당했다. 다행이라면 딘이 뱀파이어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불행이라면 그가 병들었다는 것이다. 『샘? 난 안 아파.』 높은 선반에서 조미료를 꺼내야 하는 호비트 족의 비참한 심정을 모방하며 딘이 코를 찡그렸다. 화덕에선 야채를 익힌 국물이 끓고 있는데 팔을 꺼떡꺼떡 흔들어도 조미료 통까지 손가락이 닿지 않는다. 짜증이 치솟는다. 『이젠 환상을 보거나 하지 않아.』 오리진. 모든 뱀파이어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 그들의 힘은 교통사고로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진 사슴으로 하여금 아무렇지도 않게 도로변을 기어가게 만든다. 감각이니 사고능력이니 하는 것들이 엉망으로 휘저어지기 때문이다.「바닥을 기어라」라는 오리진의 명령은「움직일 다리가 없습니다」라는 현실을 가볍게 상회한다. 심지어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다 나았어. 말짱하다고.』 그렇다. 지구상의 어떠한 약물로도 흉내가 불가능한 강력한 최면이다. 영혼마저 굴복시키는 올가미다. 실로 묶어 잡아당기면 그대로 지옥까지 끌려가버린다. 어쩌다 운 좋게 풀려나 지상까지 도망친다 해도 뼛속까지 침투한 독기는 계속해서 그 정신을 갉아먹는다. 그리하여 일부는 발광, 더러는 자살. 『운이 좋았지.』 실제로 딘도 자살하겠다며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겨누었다고 한다. 여기서「그렇다고 한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건 당사자가 그 사실을 정확히 기억 못하기 때문이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을 적에 느꼈던 격렬한 감정은 고스란히 남았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의 머리통은 털 빠진 곳 없이 여전히 둥글다. 그래서 때때로 딘은 겉으로 표현은 안 했어도 모든게 질 나쁜 꿈이 아니었을까 의심을 품는 눈치다. 현실처럼 느껴진 생생한 악몽 말이다. 내용들은 하나같이 뒤엉켰고, 순서도 없었고, 뒤죽박죽이었다. 그리고 지독히 슬펐다. 『그러니 대낮부터 침대에 안 누워도 돼.』
샘은 눈에 띄게 여위어 뺨이 움푹 파인 자신의 하나뿐인 혈육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음영이 도드라진 딘의 얼굴은 환자처럼 해쓱했다. 후 하고 불면 촛불처럼 꺼질까봐 무서웠다. 생각 같아선 부드러운 담요로 싸서 아기 어르듯 흔들어주고 싶다. 단, 정말로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나중에 구둣발로 불알을 차이게 된다. 『길게 따질 것 없이 간단하게 테스트를 해보자. 자, 그럼 심호흡을 한 뒤에 나에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철자를 말해봐.』 『엥?』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지금 네 머리에 꽃 폈냐?』 『하나도 틀리지 않게 말할 수 있으면 플러스 30점. 두 개 정도 철자가 틀리면 5점. 난 학교를 못 다녔거든요 수준이면 마이너스 10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을 못하면 마이너스 50점.』 『여보세요?』 『오케이. 바나나 케이크는 언제 먹나요 식으로 날 쳐다봤음. 그렇다는 건 마이너스 50점.』 『잠깐!』 『인정해. 형은 아직 정상이 아니야.』 『비열한 자식! 문제를 냈으면 최소한 10초의 생각할 시간은 줘야 하잖아!』
약이 바짝 올랐던 것 같다. 딘은 동생이 몸을 목까지 해변가 모래밭에 파묻어 버리겠다며 으르렁댔다. 그리고 러시아 불곰처럼 아랫배를 볼록 내밀며 대가리를 후려치려는 동작을... 『형! 위험해!』 그가 빈혈을 일으킨 만삭의 임산부처럼 비틀거린 것과 동시에 샘은 두 팔을 벌리며 똑바로 섰다. 딘은 2층에서 화분이 추락하는 것과 비슷하게 해서 안겨왔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단히 걱정스럽게도 그건 연극적인 몸짓이 아니었다. 때리겠다고 쥐었던 주먹은 맥없이 풀어졌다. 『맙소사! 똑바로 설 수 있겠어?』 『내 몸에 손대지 말아. 네 손을 내 어깨에 얹을 생각도 말아... 꿈도 꾸지마. 아유, 속이 울렁거려 미치겠군.』 『딘?』 『새미... 나 죽어.』 샘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의미를 담아 딘의 어깨를 한층 더 세게 끌어안았다.
찰칵 소리를 내고 누군가 문을 열었다. 『헛! 실례했수다.』 놀란 외침과 같이해서 쾅 하고 화장실 문이 도로 닫겼다.
Posted by 미야
2008/09/03 20:44
2008/09/0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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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각각의 내용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됩니다. 배경이 2시즌 중반으로 고정되어 있으니 주의하기 바람. 따라서 아자젤은 눈 부릅뜨고 잘 살고 있고, 콜트는 행방불명된 상태입니다. ※
사랑하던 아내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난 이후로부터 존은 인간성 붕괴에 직면했다. 메리와 존이 서로 팔을 끼고 사이좋게 언덕을 나란히 내려가는 장면을 목격할 적마다 부러움으로 가득찬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은 이내 까다로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존은 목욕도 하지 않았다. 면도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잠도 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늘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형용하기 힘든 분노에 몸을 태우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체중이 눈에 띄게 줄었고, 눈빛이 변했다. 그는 술병을 입에 달고 있었다.
자네에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네. 딘은 기억한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난지 아마 넉 달이 지난 시점이었을게다. 양복을 그럭저럭 차려입은 사내가 초인종을 누르고 인사했다. 딘은 겁에 질려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고, 그는 무뚝뚝한 어조로 자신이 존의 직장 상사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리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썩기 시작한 토마토 스프 깡통과 구석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더러운 아기 기저귀를 보고 경악했다. 남자는 너무 오래 입어 세탁이 절실해 보이는 딘의 옷과 새카만 때가 낀 손톱을 눈여겨 보았다. 그의 눈이 커졌다. 최악의 무언가를 상상했던지 존을 향해 홱 돌아서는 그 모습은 타이어가 펑크난 자동차를 향해 들입다 발길질하는 성난 젊은이를 많이 닮아 있었다.
「맙소사, 존!」 「시끄럽소. 사직서는 우편으로 제출했으니 다 끝난 거 아니오? 저리 꺼지쇼!」 「이보게! 자네가 지금 어떤 심정일지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닐세.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야지! 애에게 밥은 먹이고 있는 거 맞나?! 게다가 둘째는 아직 젖먹이잖나!」 「제기랄! 나도 노력하고 있소. 노력하고 있단 말이오.」 「하아... 이게 그 노력이라는 건가? 그 망할 보드카는 그만 마셔, 이 한심한 작자야. 멍청하게 굴지 말아. 자네가 그렇게 주장해봤자 남의 눈엔 그렇게 안 보인단 말일세.」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잠에서 깬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제기랄, 존!」 「뭐요!」 「아기가 울고 있잖는가!」 「누가 어쨌다고.」 「자네 아들이 울고 있다고!」
무겁게 침체되어 있던 주변 공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남자는 그가 버럭 화를 내며 아기를 다치게 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존은 예상과는 달리 샘을 부드럽게 안아 싱크대 쪽으로 데리고 갔다. 딘은 그 시선을 아기에게 고정시킨 채 그 뒤를 뒤뚱뒤뚱 따라갔다. 「똥을 쌌소.」 「뭐?! 지금 내가 똥 같다고?!」 「욕을 한게 아니오, 아서. 있는 그대로일 뿐이오. 새뮤얼이 똥을 쌌소.」 존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첨벙첨벙 물 튀기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샘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엄지손가락을 빨았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화재 이전으로 - 마음이 초토화되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랬다. 벼랑 끝에 선 위태위태한 남자를 현실로 붙들어 매어놓은 존재는 바로 샘이었다. 그 작은 아기가 아니었다면 존은 사람이 건너선 안 되는 울타리를 훨씬 오래 전에 넘어갔을지 모른다. 뭐, 일반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쌍방 간의 영역 침범은 진작에 이루어진지 오래지만... 그건 그렇다치고. 요점은 이렇다. 딘이 코를 훌쩍였을 적엔 전혀 인식을 못 하던 남자가 샘이 울자 반응을 보였다는 거다.
노력하고 있다는 존의 말은 어디까지나 사실이었다. 그는 젖병을 데우기 위해 짜증나는 전자렌지의 작동 설명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그러고도 실패하자 - 모르긴 몰라도 해병으로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다 - A/S 센터로 전화를 걸어「설명서대로 전자렌지에 물을 담은 알루미늄 냄비를 넣고 빨간 단추를 눌렀소. 그런데 시퍼런 불꽃이 팟 하고 튀었소. 뭐가 문제요?」라고 질문했다. 샘이 우유를 토하자 팔꿈치를 책상 위에 걸친 채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의 턱 바로 아래로는 글자가 빽빽이 적힌 두툼한 책이 펼쳐져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이「정글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법」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명확해서 딘은 아버지를 향해 어린 동생이 아무래도 아픈 것 같다는 말을 구태여 두 번씩 반복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샘을 진심으로 사랑하셔. 그 점에 대해 불만은 딱히 없다. 나는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눈치지만. 새미만 건강하면 되었다. 억울하다 항의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너 자신을 돌보기 전에 동생을 먼저 살펴라. 그것이 네 의무다」라는 존의 명령엔 반박이 불가능했다. 오히려 존의 그 요구는「하느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옳은 것처럼 여겨졌다. 딘은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였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잠자리에서 깨어나자마자 샘을 살폈고,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동생의 안색을 확인했다. 정작 샘은 그 일을 당연히 여기지 않았다는 다소 복잡한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형은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 말고 따로 하고 싶은 건 없어? 아이들은 잡초처럼 빨리 자란다. 나에게 신경쓰지마. 난 괜찮으니까. 간섭받는다고 여기기 시작하면 반항하기 시작한다. 형은 형의 인생을 살 권리가 있어.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인생을 살 권리가 있지. 그 다음부터는 양손에 권투 글러브 끼고 격하게 펀치 팡팡이다.
그것은 그의 의무이다. 동생을 돌보는 것. 그치만 샘은 아빠 말에 무조선 순종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느님이 진짜로 천지를 창조하신 건지, 다윈의 말대로 아메바가 분열한 건지 알아서 잘 판단하라고 했다. 아빠가 하신 말씀 전부가 옳지는 않아. 형은 내가 아니라 형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해. 웃기게도 그 대사는「당신과는 결혼하지 않겠어요」처럼 들려서 딘을 아프게 만들었다. 정성을 다해 청혼했는데 여자는 싫댄다.
나는 대학에 갈 거야. 부정당한 그의 의무. 나중에 변호사가 되고 싶어. 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샘. 헌터는 되지 않아. 이런 삶은 이제 지긋지긋해. 난 독립할 거야. 상실감이 굶주린 짐승처럼 그의 등을 짓밟았다. 송두리째 모든게 뒤집힌다. 유리컵이 식탁에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아아, 기분이 안 좋다.
『그래서? 자칭 예술적인 공예품 찬장을 만드는 목수 나으리.』 딘은 자신이 한참동안 딴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응?』 『그럼 앞으로는 조수따윈 필요 없는 거야?』 어느새 다가온 예의 여자는 영화배우의 엉덩이 속살 따위에 열광하는 천박한 시선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껌 대신 육포를 질겅 씹어대면서 말이다. 딘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여자를 경계했다. 입술에 붉게 립스틱 바르고 치마만 둘렀다 싶으면 물불 안 가리는 주의라지만 색깔이 지나치게 짙은 이 여자는 어딘지 모르게 아마존의 위험한 독 개구리를 연상시켰다. 노랗고, 빨갛고, 알록달록한... 『뭐야, 언니. 아직도 안 가고 이곳에 있었어? 훠이~』 『미안허다. 갈 곳이 없어 아직도 있으시다.』 불퉁하게 대꾸하며 여자는 딘에게 표면에 이슬이 맺힌 캔맥주를 집어던졌다. 단, 아까처럼 물이 아닌, 진짜 술이었다.
입맛을 다시며 엄지손가락으로 요령껏 뚜껑을 땄다. 여자는 싫어도 맥주는 싫지 않다. 『글쎄. 아직 배워야할 것도 많으니까... 독립하기엔 이르고... 당분간은 아버지 조수 노릇을 해야겠지. 아버지 친구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그쪽으로도 가보고... 그러다 익숙해지면...』 『옳커니. 그럼 동생은 별도로 하고, 거 뭐시냐. 영업이라고 해야 하나, 장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당분간은 혼자인 거야?』 『글세.』 『헤에~♡ 그럼 나랑 같이 하는 건 어때?』 『뭐?』 『나도 톱질하는 거 꽤 잘 하거든. 이래 뵈도 팔뚝 굵다.』
그때까지 얌전히 숨죽이고 있던 샘은 목구멍 너머로 삼켰던 물을 도로 토했다. 그리고는 정말로「톱으로 써는」시늉을 리얼하게 재현하는 리를 쳐다봤다. 여기서 툭툭 잘려져 나가는 건 나무가 아니다. 한때는 사람이었고, 현재는 사람이 아닌 것들이다. 그런 것들의 목을 날카로운 무기로 베는 것이다. 톱밥을 날리며 단단한 목재를 가공하는 종류와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리의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피냄새 진동하는 살육이었다. 그래서 소름끼쳤다. 『아하하, 대패질을 아무나 하는 줄 아나.』 샘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목공 일을 연상한 딘은 말꼬리를 흐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안돼, 안돼. 여자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망치로 못 박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그쪽 언니에겐 절대로 무리. 단순해 보인다고 아무나 덥썩 덤벼들 그런 분야가 아니거든?』 『어머나~ 섭섭한 말씀. 나는 그 아무나가 아니예요. 어쩌면 내가 너보단 훨~씬 잘 할 걸?』 그러면서 리는 벽에서 튀어나온 압정을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두, 두 사람 다 자, 잠깐 기다려...』 『같이 캐나다로 가자.』 샘이 만류하려는 걸 가뿐하게 무시하며 리가 밝게 말했다. 『그곳엔 잘라내야 할 나무가 아주 많다고.』 남미에서「얼씨구나 풍년일세」입국한 뱀퍼들을 피해 미국내 뱀파이어들이 죄다 캐나다로 도주한 모양이다. 그걸 리는「나무」라고 돌려 표현했고, 아무래도 사냥은 북쪽으로 계속 번지는 듯하다. 단, 더운 기후에 익숙한 뱀퍼들이 도망치는 뱀파이어를 추적하며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추측이 곤란하다. 앞으로 6개월 뒤면 계절은 이가 시린 겨울이 되어버린다. 지독한 독감에 걸려 콧물을 훌쩍거릴 뱀퍼들은 그때쯤이면 슬슬 선인장 가득한 고향의 냄새가 그리워질 것이다.
『뭐? 캐나다? 나랑 같이?』 깊숙한 내막은 전혀 모른 채 딘은 어쩐지 재밌어 하는 눈치다. 아니나 다를까, 양팔로 아랫배를 감싼 채 눈물을 찔찔 짰다. 『이거, 이거. 서방님 정력이 영 시원찮은 모양이군. 와하하! 뭐야, 톱질은 핑계고 결국은 사랑의 도피라는 거냐. 뭐, 나쁘진 않군.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도 아니겠다, 정말로 가 버릴까, 나무 자르러. 그리고 국경을 넘자마자 눈에 띄는 가장 가까운 모텔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하던 말을 다 끝마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순식간에 새하얀 광선이 번쩍였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그렇게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 눈으로 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귀로 들은 것이다. 샘이 주먹으로 쾅 소리를 내며 테이블을 후려갈겼다. 온 힘을 다해. 말 그대로 죽을 힘으로.
덕분에 캐나다로 떠나겠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샘이 두 눈을 부릅뜨자 딘은 호되게 야단맞은 어린애처럼 몸을 움추렸다. 『씨잉.』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불평의 말들을 주워삼켰다.
※ 다음 이야기 광고 ※ 그럭저럭 몸을 회복한 딘은 샘을 바비에게 데려다 주기로 결심한다. 신경질적으로 변한 샘은 완전히 손톱 세운 호랑이가 되었고,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는 그야말로 매운 고춧가루다. 이 와중에 간댕이가 부운 자칭 천사라는 수상쩍인 남자 - 유령까지 임팔라 뒷좌석에 무단 승차하면서 형제들의 싸움박질은 화산폭발 직전의 난리통으로 발전한다. - 천사 조나단이라는 드라마도 못 보셨습니까. 저도 천사입니다. 그런데 딘? 달리는 차속에서 산탄총을 꺼내봤자지.
Posted by 미야
2008/08/27 10:47
2008/08/2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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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이렇게 형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게 얼마만이더라. 가만히 손가락을 헤아리던 샘은 여섯까지만 숫사를 세고 도중에 포기했다. 왜냐하면 평범한 인간의 손가락은 열 개를 넘지 않으니까. 발가락까지 동원한다면야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 이전에 냄새 지독한 구두와 양말을 벗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부끄럽지만 샘의 발냄새는 남들과 비교하면 제법 심한 편이다.
「좋아, 어쨌거나 지금의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라고 해도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약간은 겁에 질렸고, 당혹스러웠다. 가까이 다가서는 시늉만 해도 저리 가라며 악을 쓰며 거부하던 딘이 바로 코앞에 붙어있다. 그리고 손도 잡고 있다. 순수하게 기뻐하기 이전에 악어 입에 손을 집어넣은 것 같아 가슴이 벌렁거렸다. 입을 헤프게 벌리고 있을 뿐인 악어에겐 아무런 악의가 없다. 하지만 그놈의 악어가 졸린 눈을 게슴츠레 올려뜨곤 턱을 꽉 다물기라도 하는 날엔 단순히 팔뚝이 아프다는 표현으론 끝나지 않는다. 700kg의 어마어마한 악력 앞에선 형체나마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희망 사항이다. 팔은 깨끗이 잘려나갈 것이다. 갑자기 흥분한 딘이 자신을 뒤로 밀치는 걸 상상한 샘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원래대로라면 팔을 빼내야 한다. 그것이 옳다. 그런데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니, 하기가 싫다.
『아, 미안.』 샘의 우는 소리를 불쾌하다는 의미로 착각한 딘이 붙잡고 있던 팔목을 얼른 놓았다. 성인 남자끼리는 악수를 나누는 경우를 제외하곤 손을 잡아선 안 된다. 아이들은 부엌으로 진흙을 묻혀들일 때부터 이 말을 어른들로부터 듣고 자라난다. 딘은 풀죽은 목소리로 사과부터 했다. 『오해하지 말아줘. 나는 게이가 아니야.』 당연히 그러시겠지. 철들고 나서부터 여자 문제로 온 동네를 벌집 쑤시듯 뒤집어놓던 형이다. 『그쪽에게 흑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꼬시려는 거 아니야.』 샘은 전부 알고 있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남자랑 붙어먹어 난리가 난 적은 한 번도 없다. 신은 남자의 엉덩이보다 여자의 가슴을 훨씬 더 예쁘게 창조하셨다. 브리프를 벗기느니 브래지어를 벗기자~! - 술에 잔뜩 취했을 적에 딘이 농담조로 한 말이다. 『진짜라니까.』 어색하게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했다. 『연장자로서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그런 거야. 세상에 널리고 널린게 여자지만 가끔은 베베 꼬인 불량품도 있으니 그때는 적당히 피해가야 한다고. 저런 여자들은 순진한 대학생을 먹이처럼 노리는 밥이야. 아차하는 사이에 주머니를 털리니까... 저어, 기분이 좋지 않아?』 샘이 설명은 귀담아 듣지 않고 계속해서 고개만 흔들고 있자 불안해진 모양이다. 눈이 동그란 스패니얼 개처럼 끙끙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맙소사! 관심과 걱정을 표현하면서 정말로 냄새를 맡았다.
『난 괜찮아. 그러니까 그렇게 살피지 않아도 되거든?』 동생과 같은 이름을 가진 청년은 얼른 대꾸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래봤자 잔뜩 긴장한 채여서 말과는 다르게「하나도 괜찮지가 않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냄새를 맡는다는 행동이 그를 겁먹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딘은 자신의 바보스런 행동을 저주했다. 아무렴, 이 사내는 동생이 아니다. 따라서 그 냄새가 동생과 같을 리 없다. 도대체 난 뭘 확인하려고 하는 거지?! 있지도 않은 말벌을 쫓는 시늉을 하며 팔을 휘둘렀다. 잘 한다. 이제 그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미치광이 마약중독자로 의심받을 것이다. 그런데 더 한심한 문제는 한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구제불능의 골초가 담뱃곽을 부러뜨린지 이제 정확히 여덟 시간이 지났다. 망할 재떨이로 시선을 주지 않으려면 손톱으로 테이블이라도 두드려야 했다. 자~알 한다. 비정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이제 확신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있잖아... 난 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아.』 철근이 부러지는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듯이 한 말에 그 즉시 샘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대학생인 동생의 이름도 샘이야. 당신 이름도 샘이지?』 딘은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엔 포도주 찌꺼기를 닮은 약간의 울분도 섞여 있었다. 『난 샘과 사이가 좋지 않아.』
어라. 사이가... 좋지 않았던가.
모르겠다. 샘은 텅 빈 극장 안에 홀로 앉아있다는 식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딘은 샘에게 있어 엄마이자, 아빠였고, 형제이며, 친구였다. 피로한 인생살이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피붙이였다. 그들은 늘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처럼 처절하게 다퉜고, 폭우가 쏟아지는 정글에서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끔찍하게 보살폈다. 사이가 좋다, 나쁘다는 식으로 짧게 설명할 수 없다. 파란불, 노란불 신호등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 만약 그런게 가능하다면 천문학자는 우주의 창조와 그 비밀을 200자 내외로 쉽게 풀어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샘은 그런 훌륭한 업적을 이룩한 과학자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사이가 안 좋다고?』 샘의 어조는 전립선 비대증에 걸린 노인네를 비웃는 것처럼 불손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가시 돋친 샘의 말은 건성으로 흘렸다. 목이 말랐던 것 같다. 딘은 맹물을 무슨 위스키라도 되는양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문풍지 틈새로 찬 바람이라도 불어온다는 식으로 어깨를 움추렸다. 『그게... 복잡해. 일단은 대학에 가는 걸 반대했거든. 그것도 돈 문제로 반대한게 아니야. 내 동생은 장학금을 받게 되어서 학자금 융자로 골머리를 썩힐 일도 없었다고. 그런데 죽자 살자 기를 쓰고 반대했으니 걔로부터 미움을 받을 법도 하지.』 거기까지 말한 딘은 얼른 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였다. 『이거 하나는 분명히 말할게. 질투 때문이 아니야. 동생의 신세를 망치게 할 의도는 아니었어. 하지만 우리집은 대대로 목수인데다 대패와 망치를 쥐고 공예품 찬장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할아버지도, 삼촌도 대학은 안 갔어.』 『고, 공예품 찬장...?!』 『왜 눈을 뒤집고 그래. 하여간 그렇다는 거야. 가업! 그러니까 가업이라는 거지.』
딘은 기분을 추스려 명랑하고 즐거운 어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눈치였다. 『나랑 내 동생은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게 되어 있었어. 난 그게 싫지는 않았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좋기까지 했어. 의외로 꽤 멋졌다고? 톱밥 가루 휘날리며 대패를 휘둘러대며 쓰윽, 쓱쓱 통나무를 다듬는 거야. 탁발승 머리 정수리 미는 것만큼 재밌어.』 『웃겨. 언제 나무를 깎았다는 거야. 줄로 은탄환을 갈아댄 적은 많지만 나무는 아니잖아.』 피로감이 묻어나는 샘의 혼잣말을 이번에도 딘은 건성으로 흘렸다. 『난 동생이 내 조수가 되길 원했어. 그래서 샘이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샘은 심사가 불편해졌다. 딘은 의사로부터 병세가 위중하니 오늘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굴었다. 『동생은 죽었다 깨어나도 목수가 되기 싫었던 거야. 그런데 난 그걸 모르는 척했고,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모든게 잘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어. 안이한 판단이었지. 잡아둔다고 가만히 있으면 애완동물이나 다름 없게? 하물며 샘은 머리가 너무 좋았어.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바락바락 대들더라니까.』 하아, 하고 한숨이 터져나왔다.
- 여기서 나가면 넌 내 아들이 아니다. 내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겠다! - 바라던 바예요!
그의 아기 동생은 이미 각오를 해뒀던게 분명했다. 샘은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끔 짐을 싸두고 있었다. 탕, 하고 현관 문이 세게 닫기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뒤에 거실에서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켰다. 아나운서가 무어라 웅얼대는 잡음이 10분 정도 들려왔다. 존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을 것이다. 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로 텔레비전이 꺼졌다. 집안은 무시무시한 적막감에 휩싸였다. 무슨 몹쓸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틀렸다. 차라리 포탄을 퍼붓는 것처럼 말다툼이 벌어지는게 나았다. 딘은 식탁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1분 정도 깊게 심호흡을 했다. 잠시 뒤엔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고 온몸을 담갔다. 물이 완전히 차가워진 뒤에야 딘은 욕조에서 나왔다. 물기를 닦고 새옷을 갈아 입었다. 존은 그동안 위스키 두 병을 깨끗이 비워버렸다. 못난 아버지의 꾸깃꾸깃한 머리통을 노려보던 딘은 뒷문으로 나가 계단참에 주저앉았다.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새벽에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딘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완전히 엉망진창... 동생은 다신 돌아오지 않겠노라 선언하고 집을 나갔어. 그래서 지금은 연락두절. 안부 전화도 없고, 엽서도 없고...』 남북전쟁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어느쪽이 승리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깊게 남은 상흔은 치유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딘은 주먹쥔 손을 맞닿게 했다 전극이 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뚝 떨어뜨렸다. 동작의 의미는 간결했다. 탯줄이 끊어져나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는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샘은 안달이 난 사람처럼 다리를 흔들어댔다. 『동생에게 전화는 걸어봤어?』 『글세. 샘은 고집쟁이라 전화를 건 사람이 나라는 걸 알면 받지 않을 걸.』 『물론 그랬겠지...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혹시 모르니까 이쪽에서 먼저 고개를 숙여봐라?』 딘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당신, 꼭 케일럽처럼 말하네. 아, 미안. 케일럽이 누군지 당신은 모르지. 그는 아버지 동료야.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나랑도 엄청 친해.』 『그래! 케일럽! 그 고집쟁이라는 동생은 당신이 전화해주길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몰라! 외로워서!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서! 당신 목소리를 듣고 싶어할 지도 모른다고!』 『그럴 리 없어.』 『이 바보! 그걸 어떻게 확신해!』 『그냥 알아.』 딘은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동생을 필요로 하는 건 나야. 난 멍청하니까. 반대로 샘에겐 내가 필요 없어. 왜냐면 걘 겁나게 똑똑하거든. 알기 쉽게 간단하지? 정말이지 빌어먹게 단순명료한 사실이라니까.』
Posted by 미야
2008/08/10 22:42
2008/08/1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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