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뭥미~ 하실 분들이 많을 거예효. 그치만 단편은 단편이 아니고, 이야기의 끝도 아니죠. ※


샘은 신중한 아이다.
원래부터 생겨먹길 그렇기도 했거니와「어쨌든 진격! 그런데 이 망할 캠코더의 야간 모드는 어떻게 작동시키는 거지?」인 아버지와「어라, 소금인줄 알았는데 후추였네. 엣취!」인 형이 가족으로 있는 이상 그것은 샘이 짊어져야 할 숙명이었다.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하나가 그것을 대신 채운다 - 세상의 이치는 그렇게 돌아갔고, 나이 어린 샘은 침착하고 고요한 얼굴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음식은 열 번씩 꼭꼭 씹어서, 걸고리는 꼭 잠궈 문단속을 철저히.
덕분에 새로 사귄 여자 친구를 만나러 몰래 창문을 뛰어넘고 하던 딘은 새벽마다 봉변을 당하기 일수였다. 차가운 이슬에 젖어 오들오들 떨었던게 모두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융통성 끝장인 막내는 누가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도 딘이 반쯤 조작해둔 뒷문의 열쇠까지 강제로 돌려놓곤 했던 것이다.
그랬던 샘이... 그딴 건 내 알바 아니라는 식으로 구는 건 생각하기 힘들다.

『문이 그냥 열려져 있더구나.』
기세가 한 풀 꺾인 딘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출입구 쪽을 흘깃거렸다.
문짝을 발로 걷어차며 제7기병대를 습격하는 인디언인양 한바탕 이야이야호를 계획했던 그가 곤두선 눈썹을 도로 내린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손잡이를 돌리자 거짓말처럼 문이 스륵 열려버린 것이다.
빗장이 풀린 성문 앞에서 적의 요새를 함락하라 고함을 지른 장군님은 얼굴이 벌개졌다. 성루 높은 곳에선 제갈량이 한가롭게 금을 뜯었다. 튼튼한 사다리를 준비하고 성벽을 기어올라갈 준비를 마친 부하들은 저마다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부주의하게 잠금 장치를 눌러놓는 걸 잊다니, 어이가 없다. 아니, 사실 어이가 없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좀도둑 환영이라고 아예 푯말이라도 써서 붙여놓지 그래.』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샘은 대답을 하기에 앞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를 내는 건 의외로 까다로워서 삼류 코미디 배우가 교과서를 읽는 어투로 대사를 읊는 것만큼이나 어색했다. 그리고 코맹맹이 소리는 노력한다고 빠르게 감춰지지도 않았다.
『어차피 훔쳐갈 것도 없혀. 가방엔 양말밖에 안 들었혀.』
『그러냐. 척 보기에도 그런 것 같긴 하다.』
『갖고 싶다면 와서 가져가라고 그래. 멍청한 도둑 같은 거, 내가 알게 뭐햐.』

뻣뻣한 통나무 동작으로「우리 마을」이란 제목의 무대에 올랐던 동생이다. 그래서 저 아래 객석에선 킥킥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더랬다. 딘은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억지로 참았지만 당혹스러워 하는 동생과 눈이 마주쳤을 적엔 설사가 터지는 것처럼 해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샘의 장래 희망이 배우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었다. 애가 셋이나 딸린 삼류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겠다고 해도 기꺼이 응원해줄 작정이었지만 배우가 되겠다고 하면 그때는 얘기가 달랐다. 천둥과 번개 사이를 달려나가는 슬프고 아름다운 공주의 이야기를 유니콘이 거억 트림하는 이야기로 바꿔놓는게 바로 샘 윈체스터였으니까.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계속 실수하는 저 아이, 참 귀엽네」웃던 아줌마의 옆 얼굴이 빠른 속도로 딘의 마음을 헤집었다. 십 수년이 흐른 오늘에 이르러 다시금 뱃가죽에 힘을 주었다. 연기가 그게 뭐냐 야유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중이다.
『너, 혹시 내가 와서 데리고 가주길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거냐?』
멍청하다 싶도록 똑바로 날아온 직구에 샘은 곧바로 몸을 경직시켰다.
『아냐!』
『그래?』
『미쳤혀?! 내가 형을 왜 기다혀!』
『흐음. 그렇구나.』
딘은 평범한 인간이라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에서 징조를 보고, 바닥에 떨어진 자갈에서 신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그는 크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사실 이건 그다지 고차원적인 것도 아니다. 카드에 적힌 숫자가 3이면 눈으로 보고「3」이라고 소리내어 읽기만 하면 되었다. 바람에 섞여 비릿한 냄새가 나니까 오후 늦을 무렵부터 비가 올 것 같다고 말한다. 구태여 예레미야가 가진 놀라운 능력따윈 필요치 않았다. 지팡이를 쥐고 푸른 연기가 피어오른 산등성이로 올라가라. 그곳에 인가가 있다. 아무렴 야생 곰이 밥 짓겠다고 장작불을 지피겠는가.

『그럼 전화번호부 책자에 제일 먼저 등재된 모텔로 짐 락포드라는 이름으로 투숙은 왜 했어.』
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치다. 사과 파이에 사과가 왜 들어가느냐고 질문하면 할 말이 궁진해진다. 너무도 당연한 걸 묻다니? 이마에 가는 주름이 잡혔다. 이래선 열 세 번째 종소리를 내는 괘종시계를 찾아 전국을 쏘다니는 괴짜 수집가의 이야기가 훨씬 자연스럽다.
『무슨 소리야, 딘? 그게 우리끼리의 약속이잖아. 떨어졌을 때 서로를 찾는 방법... 아!』
짧게 외마디 소리와 같이 해서 얼굴이 확 하고 달아올랐다.
그랬다. 그런 거였다. 사전에 약속된 짐 락포드의 가명을 사용한 건 결국「날 찾아주세요」라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도 몰랐던 걸 한 번 깨닫고나자 피가 머리로 몰렸다.

『모, 몰라!』
『야! 이불 속으로 도로 숨지 마!』
『시끄럿! 난 자는 중이야!』
죽을 힘을 다해 이불 끝자락을 움켜쥐었다. 얄팍한 자존심이 푸쉭 소리를 내고 주저앉은 마당에 벌겋게 달아오른 뺨까지 들키는 건 꼴불견이다. 팔꿈치로 등 한가운데를 꾹꾹 찔러대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걸죽한 녹색으로 가득찬 단지가 스푼으로 마구 휘저어지는 걸 상상하며 모로 돌아누웠다. 순간 마녀의 요술 솥단지를 닮은 그릇 속에서 쿨렁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하게는 낡은 침대 스프링이 체중에 못 이기는 소리였지만, 아무튼 샘은 고슴도치처럼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난 몰라. 하나도 몰라. 그렇게 개구리 뒷다리를 잘게 썰어놓은 것에 쓴 맛이 나는 잡초를 버무려 아무도 입에 대지 않을 죽을 쑤었다.

화덕에서 냄새 고약한 연기가 피어오르자 딘은 제대로 짜증이 났다.
『샘!』
『다 필요 없어. 날 그냥 내버려둬.』
『고집은 그만 부리고 돌아가자.』
『어디로?』
집이라고 할 장소가 그들에겐 없다. 따스한 불빛이 스며나오는 곳, 매일 밤 돌아가 지친 머리를 뉘일 수 있는 곳... 한줌의 안식이 허락된 장소... 샘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어디로 돌아가자는 거야? 딘.』
냉소적으로 쏘아붙이며 주먹을 쥐었다.
『형의 임팔라가 주차된 모텔? 웃기지 말아.』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뚫어진 즐거움이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거긴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니야. 깔깔한 소금이 사방에 그득그득하고, 베개춤에 칼이 숨겨져 있고, 서랍속엔 권총이 들어가 있고... 단지 그뿐이잖아. 지긋지긋한 그딴 것들, 내가 알게 뭐람!』
등유를 입에 가득 머금고 있는 것처럼 해서 혀가 굴러갔다. 입속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아님 형은 싸구려 계집들이랑 뒹굴 동안 짐을 안전하게 지켜줄 사람이 필요한 거야? 하! 그거 참 미안하네. 내가 이렇게 나와버렸으니 더러운 병균 투성이 여자들과 재미를 못 봤겠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웃고 있는가. 아님 찡그리고 있는가.
『도대체 딘은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 거야? 형이 밤새도록 창녀들과 놀아날 적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모텔방에서 죽치고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어? 음? 그쪽이 네 다섯 병의 맥주를 마시는 동안 나는 손톱의 반을 먹어치우지. 딘이 샹들리에 귀걸이와 배꼽 피어싱에 눈길을 돌릴 적에 나는 벽장이나 노려보고 있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딘은 지금 웃고 있는가. 아님 찡그리고 있는가.
『다 알고 있으면서!』
모든게 엉망진창.
『돌아가! 내 옆에 다정하게 누워줄 것이 아니라면 당장 꺼져버려!』
덧붙이는 말은 완전히 정 반대.
『혼자는 싫단 말이야!』
아마도 머리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샘은 낄낄거리고 미친 사람처럼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온 딘은 발버둥치려던 샘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건 샘이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흔들면서 뿌리치려 했다.
『만지지 마! 꺼져!』
『알았어. 갈게.』
『아냐! 가지 마. 가지 말아줘! 여기에! 여기 있어!』
막내가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는 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딘은 눈을 감았다.

『있잖아, 새미.』
부드러운 머릿결을 반복하여 쓰다듬으며 딘이 말했다.
『듣자하니 스톱워치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드라. 그러니까... 거 뭐시다냐. 너무 붙어 있으면 인질이고 범인이고 하나가 되어버린다는 거야. 나와는 달리 머리가 좋으니까 넌 그게 뭔지 이미 알고 있겠지?』
『재미 없어. 지금 스톡홀름 신드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거였나. 아무튼 지나치게 가까이 있으면 서로 머리가 돌아버린대.』
『뭐? 그러니까 딘이 테러리스트고 내가 인질이라고?』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리고 왜 내가 범인이야! 네가 범인일 수도 있잖아.』
『눈 흘기고 그래도 어림 없어. 난 죽어도 범인 안 해.』
『그려. 내가 악당 할란다. 알았으니 네가 인질 해.』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하고 딘이 불평했다.

『들어봐, 새미. 형도 그동안 많이 고민해봤는데 말이지... 우리가 지금 그 상태가 아닐까 싶어. 있잖아... 때로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해. 총을 전자렌지에 데워 먹어버려야 한다고 믿어버리거나... 모듬 발로 껑충껑충 뛰어서 기찻길을 건너는게 옳다고 하거나... 그게 의무이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그리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되묻는 거야. 뭐가 잘못되었나요. 나는 정상이랍니다. 그런 눈초리로 쳐다보지 마세요...』
『딘?』
『스트레스 때문이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63번 고속도로를 타고 계속해서 달린 다음, 불 켜진 술집에 들러 데킬라를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버려선 아침까지 쭉 뻗어버리면 돼.』
『딘...』
『착각이야.』
강한 어조로 반복해서 말했다.
『이 혼란스런 감정들은 그저 착각에 불과해.』

노란 스탠드 조명 아래서 딘의 얼굴은 유령처럼 떠다녔다. 목소리도 유령 같았다.
『여자를 안아, 샘. 그럼 알 수 있어.』
『나더러... 여자를 안으라고?』
『개나 소나 아무나 안으라는 건 아니야. 좋은 사람을 찾아. 네 마음에 드는... 괜찮은 사람을.』
못이 박힌 손바닥이 샘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럼 지금의 이 모든 소동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질 거다. 지나고 나면... 웃기기만 할 걸. 맥주를 마시면서 농담조로 지껄일 이야기 꺼리가 될 거라고.』

샘은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딘은「날 믿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샘은 혼잣말을 했다.

그의 얼굴이 가라앉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뭐랄까, 표백제로 깔끔하게 지워진 하얀 담벼락 비슷했다. 이것은 좋지 않았다.
안색을 살피며 그 눈을 머뭇머뭇 응시했다.
『샘?』

동생은 가게에서 양파를 뺀 햄버거라도 주문하는 투로 명랑하게 대꾸했다.
『죽여버릴 거야.』

Posted by 미야

2008/05/04 22:25 2008/05/0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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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렐라이 2008/05/05 15:27 # M/D Reply Permalink

    야호~ 덩실덩실 ㅠㅠ 드디어 파로 막편이 올라왔네요!
    아..전 이번 단편에서 내심 둘의 마음이 통하기를, 딘이 샘의 간절함을 받아들이고 그만 인정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끝까지 스톱워치(잠시 웃겠습니다 으하하핳!)가 아닌 스톡홀름 신드롬 이야기를 꺼내며 여자를 안으라고 샘에게 말하네요 ㅠ 아아 안타까워요..ㅠㅠ 둘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싶은데 말이죠.
    이제 파로가 끝났는데 여기에 이어지는 단편내용을 더 쓰실 생각인지 아니면 본편 진도를 나가실건지 매우 궁금합니다! 전 어떤쪽을 택하시던지 둘다 좋지만요~ 아무튼 많이 기다렸던 것 만큼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ㅠㅠ

  2. 아이렌드 2008/05/06 09:45 # M/D Reply Permalink

    아~ 이제 피튀기는 혈투가 시작되는 겁니까? SN 첫회에서 이 둘이 어둠속에서 툭닥거리는 장면(자체해석은 안돼요~)은 정말 좋았지요. ㅋㅋㅋ 누님들은 이 혈투 말고 다른 쪽 혈투를 간절히 바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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