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구름이 짙게 깔려 별들마저 숨 죽이고 있는 와중에 저 멀리서 손전등이 반짝인다. 그것은 작지만 부근에선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존재다. 마치 텅빈 창고 바닥에 떨어진 새 동전처럼 말이다. 쭉 참고 있었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리로 가면 살 수 있을 것 같고, 편히 누워 쉴 수 있을 것도 같다.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불현듯「구원」이라는 고풍스런 뉘앙스의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깟 손전등에, 엄청난 밝기의 헤드라이트도 아닌데도, 이다지 설레일 수 있다는 점에서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렸다. 물에 푹 젖은 솜뭉치다. 그러니까 그깟 작은 반딧불에 마음이 흐트러져 두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헤이.』 턱짓으로만 간단히 인사하고 옆에 앉았다. 그리고 버릇처럼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날씨가 더워 그러나, 목이 마르네.』 요점은 난 결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라는 것. 그래봤자 청년은 뜨거운 담뱃불에 엉덩이를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뛰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그랬나. 딘은 아랫입술을 지긋이 빨아들이며 자신의 경거망동을 후회했다. 이래선 오히려 쓸데없이 경계심을 자극한 셈이다. 어깨를 움츠리며 허벅지를 긴장시키는 모양새를 봐선 금방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갈 기세다. 다만 생각처럼 그러지 않은 건 누가 옆에 앉기가 무섭게 호출당한 경비원처럼 벌떡 일어서는 건 예절을 습득한 문명인으로서 썩 훌륭한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차분한 생김새만큼이나 점잖았고,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끼는 일 없게끔 충동을 애써 참는 듯했다.
괜찮아,괜찮다고.내가설마널잡아먹기라도하겠냐.일어나지말라고,일어나지말라니까. 애써 관심이 없는 척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구둣발로 톡, 하고 건드렸다. 확 하고 청년의 뺨이 붉어졌다. 이어지는 건 어색한 침묵.
『어... 그러니까...』 『그쪽은 뭘 마시고 있어? 맥주?』 『아니... 저어... 그게...』 미성년의 신분으로 몰래 술을 마시다 들킨 것도 아닐 터인데 좀처럼 문장답게 생긴 녀석이 나오질 않는다. 당황해선 입만 뻐끔거릴 뿐이다. 어쩌면 정말로 나쁜 짓을 하는 중이었을지도? 예를 들자면 가게의 금전출납기를 터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거나, 으슥한 곳에서 여자 종업원의 가슴을 만질 궁리를 하고 있었다거나... 딘은 테이블에 공손히 내려놓은 두 손에서 시선을 들어 말더듬이 청년의 투명한 헤이즐넛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러자 주변을 둘러싼 어둠이 한층 깊어졌다. 손전등의 불빛이 강해졌다. 그 감각에 놀라 어, 하고 입을 열었다가 재빨리 혀를 깨물었다. 남자의 눈동자 속에 들어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딘의 혀에 족쇄를 채웠다. 진한 슬픔. 그리고 쓸쓸함... 너무나 농도 깊어서 무엇으로도 희석될 수 없는 아픔.
『무슨 일 있어?』 목을 길게 빼고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리고 흠칫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생판 타인에게 이런 식의 목소리를 낸 적이 결코 없다. 오로지 단 한 사람에게만 허락했었다. 그리고 그 단 한 명의 사랑스런 존재는 지금 이곳에 있지도 않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다시 깍지 낀 두 손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뭐, 어흠. 제3자의 쓸데없는 참견이라 생각하겠지만 말이야... 여자는 널리고 널렸다고. 길가에 돌멩이들처럼 흔한게 여자야. 오래되어 곰팡이 핀 치즈처럼 냄새 나는 이런 말도 있잖아. 인류의 절반은 여자다.』 『에?』 『내 말은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그렇게 세상 끝장났다는 식으로 굴 건 없다는 거야.』 『하아?』 이게 아닌가. 딘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청년을 곁눈질하며 장단을 슬쩍 고쳤다. 『미안. 엉뚱한 다리를 짚은 거라면 용서해. 코에서 뇌수가 빠져나오도록 죽도록 공부했건만 학점이 바닥이라「장학금아, 바이바이. 이젠 널 다신 보지 못하리」이런 걸로 울고 있었다면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 나는 가방끈이 짧아 사실 그런 건 잘 이해가 가진 않지만 내 동생은 대학생이거든. 옆에서 봐서 대충 알고는 있어. 그래... 시험지가 코푼 휴지처럼 되었어?』
코미디였다. 딘의 질문에 청년은 버럭 소리까지 질렀다. 『뭐?! 동생이 대학생?!』 『얼레? 왜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는 거야. 진짜야! 걘 머리가 좋아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다고. 이름은 샘이고, 나보다 네 살 아래고, 지금은 스탠포드 대학에 다녀.』 그 즉시 청년의 표정이 혼란스러운 것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양념으로 섞인 건 분명 짜증이다. 『자~알 한다. 내가 아직도 대학생이냐.』 『지금 뭐라고.』 『하아... 신경쓰지 마. 혼잣말이었어.』
이후로 그는 오전 11시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사라져가는 우편배달부를 전송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눈매가 가늘어지고 턱이 앞으로 돌출되었다. 딘에게는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다.「앓느니 차라리 혀 깨물고 죽겠어」라고 투덜거리던 어린 동생의 표정 그대로다. 사람을 묘하게 깔보는 것 같으면서도「저러다 더위를 먹고 꽈당 쓰러지면 큰일」이라 염려하는 착한 마음씨가 있다. 딘은 몸을 움찔, 움찔, 움츠렸다. 소금기 묻어나는 여름 한낮에 하얀색 이너 셔츠 한 장만 입고 창밖을 내다보던 샘의 가느다란 실루엣이 고스란히 망막에 살아났다. 찌르르 울어대는 벌레, 여전히 전화 한통 없는 야속한 아버지, 땀투성이가 되어 임팔라를 손질하던 그... 바람결에 커튼이 팔락이면 이마를 구기고 있는 샘의 얼굴이 흐려진다. 그게 싫어 샘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어이? 밖으로 나와. 동생은 보란 듯이 마룻바닥을 쿵쾅거리며 거실을 가로질러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먼지 내음 가득한 뒤뜰로는 깡깡 쇠붙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치만 딘은 안다. 더운 대기 속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건 쇳가루와는 전혀 종류가 다른 것이다. 이를테면...
『딘. 괜찮아?』 『어.』 그제서야 넋을 놓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음을 인식했다. 딘은 머리를 흔들며 지평선을 향해 뜀박질을 하고 있는 사념이라는 놈의 꼬리를 잘라냈다. 『미안. 그런데 내가 언제 그쪽에게 내 이름이 딘이라고 말해줬던가.』 청년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회피하며 부드럽게 눈을 맞췄다. 『왜 그래. 머리가 아파?』 『편두통인가봐.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거든.』 『어째서?』 『불면증이야.』 실제와 허구를 교묘하게 뒤섞으며 딘은 의미심장하게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러니까 여자와 섹스를 못해서, 애인이 없어서, 옆구리가 쓸쓸하다 난리치며 밤새 뒤척이면 어느새 새벽이었습니다, 그런 뜻의 간결한 제스츄어였다. 청년은 어이가 없는 듯 눈만 깜빡거렸다. 동시에 부르릉 하고 고물 트럭에 기적처럼 시동이 걸리는 듯한 소리도 났다.
『와, 와! 미안! 미안! 농담이었어!』 딘은 재빨리 청년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꽉 쥐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놓치기 싫다. 이 사람. 『화내지 마. 부탁할게.』 『별로. 내가 그렇게 화낼 까닭도 없고...』 『그치만 진심으로 화내고 있잖아.』 『그럴지도. 하지만 세상엔 그보다 더 고약한 문제가 얼마든지 있고...』 청년의 눈빛이 흐려졌다. 『이까짓 일로 화내는 건 완전히 바보 같으니까.』
그 다음으로 벌어진 일은 무어라 설명하기가 난처하다. 신사가 아닌지라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낼 수 없었던 딘은 궁여지책으로 손등으로 청년의 눈두덩이를 쓱쓱 문질렀다. 완전히 미친 짓. 그럼에도 불구하고 딘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다. 『아파!』 『미안. 너무 세게 만졌다.』 『갑자기 왜 그래.』 『뺨 위쪽에 뭐가 묻었어. 음... 눈썹 같은 거. 지금은 없어.』 그가 눈물을 찔끔거렸다는 것도, 딘이 그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거짓말하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청년은 손바닥을 들어보이며 괜찮다는 시늉을 해보였고, 불편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편 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것은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때마침 주문을 기다리고 있는, 또는 그런 눈치인 종업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딘은 일부러 색깔 없는 목소리를 내었다.
『맥주 부탁해요.』 이상한 일이다. 보라색 아이새도우를 짙게 바른 여자는 손님의 주문을 수첩에 받아적을 생각을 않고 대신 눈에 쌍심지를 곤두세우며 갈갈이 뛰었다. 『망할 자슥! 네 눈엔 내가 웨이츄리스로 보이나!』 『어... 그럼 혹시 직원이 아니고 이 친구랑 동행이야? 그렇다고 해도 당신, 이렇게 순진한 대학생이랑 놀기엔 나이가 너무 많지 않아? 가까이서 보니 잔주름이 장난 아닌데.』 『저게 뚫린 입이라고... 성질나는데 저 잘난 대가리를 한대 팍 올려칠까.』 『리!』 『왜 말려! 반 바퀴 돌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잘 조준해서 딱 한 대만 칠게. 허락해줘.』 『형은 아파요! 정상이 아니라고요! 아시잖아요!』 『카악! 그런다고 용서해줄 것 같아?! 저것이 날 늙은 닭 취급 했어. 놔라, 샘!』
딘은 두 번 놀랐다. 청년의 이름은 샘이었다. 그리고 그 샘은 욕설을 퍼붓고 있는 여자의 팔을 밖으로 잡아끌며 그로부터 떠나려 했다. 셔츠 밑에서 심장이 엇박자로 박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검은 얼룩무늬가 무수히 시야에 나타났다. 딘은 무엇에 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자는 가도 괜찮다. 하지만 남자쪽은 아니다. 딘은 여자로부터 샘을 힘껏 잡아채서 떨어뜨렸다. 간다 안 간다 몸씨름을 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짧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든 말든 딘은 샘의 손목을 움켜쥐고 외쳤다.
『여기 위스키 두 잔!』 흥분한 여자가 쟁반으로 추정되는 -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보다 더 두껍고 무게감이 심각한 것으로 딘의 머리를 향해 휘두르려 했다. 『얼음은 넣지 말고!』 그런다고 내가 겁 먹을 줄 아나. 곰 같은 여자를 똑바로 쏘아보며 딘은 샘을 자리에 도로 앉혔다.
★ 대박을 희망하며 300,000벨어치 흰무를 샀어요. 쪽박 안 차고 잘 되길 빌어주세요. ★
Posted by 미야
2008/07/27 20:58
2008/07/2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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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도가 길었습니다. 2007년에는 끝났어야 하는 이야기를 갖고 2008년 7월에 이르기까지 뭉기적거리고만 있었으니 이를 워쩐디야. 접어둔지 오래되어 배경이 봄인지 겨울인지조차 헷갈리는군요. 설정 수첩을 뒤져보니 All Wet의 시점은 정확히 2007년 4월 27일... 잇, 무시!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신부는 바짓단에 묻은 회색 얼룩에 신경을 쓰는 척하며 뒤따라 나오는 젊은이를 관찰했다. 등이 구부정한 것은 평소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라기 보단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커다란 신장 탓이다. 출입구를 통과하거나 좁은 자동차 속으로 들어가 앉으려면 어지간히 몸을 움츠려야 할 것이다. 키가 큰 것으로 유명했던 작센 출신의 추기경을 떠올린 신부의 이마로 밭고랑이 패였다. 보다 하느님께 가까운 자는 그만한 댓가를 치루는 법이라고 했다. 겸손을 실천하기 위해 땅으로 내려서려면 남들보다 허리뼈가 고생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쭈그리고 앉는 일에만 세 배의 힘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도 거들먹거리는 동네 깡패와는 다르게 걷는 동작엔 군더기가 없었고, 보폭이 일정했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아무렇게나 떠돌아다니는 평범한 건달이 아니라는 건 신발의 앞코가 닳은 모양새만 봐도 짐작이 가능했다. 청년은 꼭 먹이를 노리는 야생 들고양이처럼 발 뒷축을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기민하고 민첩하다. 우아하기조차 하다. 「군인이 아니라면 직업모델...」 거기까지 생각한 신부는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샘은 그 작은 몸짓을 엉뚱하게 해석한 것 같았다. 『저어... 안에 뭘 두고 나오셨나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방쪽을 가리켰다. 이 착실한 젊은이는 토실토실한 몸집의 신부를 위해 기꺼이 모텔로 돌아갈 작정인 것 같다. 잊어버린 열쇠의 모양을 설명하면 그대로 뛰어갈 기색이다. 그게 아니라면 동전 지갑이라던가, 아니면 교구인들의 연락처를 메모한 수첩이라던가... 어쩌면 구닥다리 서류 가방일 수도 있었다.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호의에 가까운 제안에도 불구하고 신부는 정신 사납게 고개를 흔들어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잠시나마 샘은 그가 도리도리 춤에 도취된 나머지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한게 아닌가 의심했다. 『신부님?』 그리고 샘은 안전장치가 끌러진 채 자신의 미간을 정조준하는 38구경을 보았다.
방아쇠에 걸려있는 신부의 손가락이 안쪽으로 구부러지기라도 하는 날엔 단순히 재수가 없었다는 말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샘은 발사된 탄환이 사람의 신체 중에서 가장 단단한 뼈를 부순 뒤에 아스팔트 표면 위로 튕겨나가는 소리를 상상해 보았다. 그것은 새벽을 깨우는 교회 종소리처럼 맑고 영롱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다지 행복한 소리도 아닐 것이다.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신부님, 그건 기독교도다운 행동이 아니예요.』 『정확하게 꼬집자면 성직자가 할 행동이 아니지요.』 『제 말이 바로 그거예요.』 『그렇다면 한 번 말해보시지. 나는 방아쇠를 당길까, 아님 당기지 않을까?』 『어디 보자... 3대 7로 당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짜증나네. 그렇게 말하면 헷갈리잖아. 숫자가 큰 게 어느 쪽이오?』 『당기지 않는다.』 『알겠소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3은 이몸이 총을 쏜다는 의미겠군요.』 거기까지 말한 신부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쾅 하고 발을 굴렀다. 틀리다. 여기서 화가 났다는 표현은 지극히 단순하다. 주머니에 새끼 고양이를 집어넣고 검푸른 강물에 막 던지려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악마의 사주를 받은 악당들은 물러가라. 신부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홍해 바다를 둘로 쪼갤 채비를 갖췄다. 아니, 그 이전에 에발 산에 올라 여호와의 저주를 선포한 뒤에 새끼 고양이를 강에 던진 한심한 작자의 모가지를 와지끈 분질러... 신부의 눈으로 실핏줄이 섰다. 『틀렸다, 이놈아!』 『어... 그럼 신부님 생각으로는「총을 쏜다」는 쪽이 3이 아니라 7인가요.』 『크악! 그게 아니라~!!』 숨이 막히는 듯 잔뜩 갈라진 소리로 부르짖었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이 마당에「분석」이라는 걸 하면 어쩌자는 거요!』
시골 구석에 처박힌 한적한 모텔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타이틀은 다중 숙박 시설이다. 거기다 대낮이라는 시간대. 누군가 창밖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두 사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로마 카톨릭 신부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가 흉기를 들어 무저항의 젊은이를 살해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식이 통하던 시절은 딱 18세기까지였다고 생각하오만.』 혼잣말에 가까운 투덜거림은 슬그머니 옆으로 치워두고 샘은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한 낮의 목격자가 마약 중독자나 알콜 중독자라 치부되면 무저항의 젊은이는 단순히 강도에게 당한 것으로 처리되겠지요. 아니면 살해당한 젊은이가 피해자에서 강도로 엉뚱하게 뒤바뀔 수도 있고요. 경찰은 직업도 불분명한 떠돌이의 죽음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을 겁니다. 다만 전... 신부님이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을 무시한 채 하느님을 섬길 분은 아닐 거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날 잡아 잡수, 이러고 가만히 있었다?』 신부의 음성은 차가웠다. 어쩐지 가소롭다는 어조였다.
아무튼 샘의 판단은 옳았다. 신부는 손을 움직여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대신 입으로 유황 거품 섞인 불을 뿜었는데 그 불꽃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오르는 로켓처럼 기세등등했다. 싫든 좋든 홀라당 타버리는 나무 장작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뒤로 적당히 물러서야 했다. 『내 말을 들어보슈. 모름지기 헌터라면 말입니다, 분석따윈 하지 않아요. 눈앞으로 총구멍이 나타났다 싶으면 반격을 하거나 아예 선수를 쳐버리지요. 멕시코 뱀퍼들을 예로 들어볼까요. 그치들은 신부가 총을 들면 이거 보라는 식으로 자동화 소총을 꺼내들고 땅바닥에 몇 방 드륵 갈겨버립니다. 그리고는 발잔등을 조심하쇼 친절하게도 고함을 질러대지요.』 『애시당초 명색이 신부인데 왜 권총을...』 『아.하.하. 믿음으로 아멘하면 그 잘난 뱀파이어들이「어머? 고해성사는 14년 전에 했는데 좀 봐주시지 그래요?」라고 말하며 성호를 그을 것 같소이까. 진짜지 말이 되는 소릴 해요.』 『아니, 그러니까 어째서 신부가 뱀파이어를...』 거기까지 말한 샘은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존의 오랜 친구이자 이미 고인인 짐 신부는 뭐란 말인가. 단순히 취미 생활로 총기류를 수집하고, 반질반질하게 손질한 은탄환을 성당 지하실에 숨겨놓았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십자군 전쟁을 대비하여 숫돌에 칼날을 갈고? 웃기는 소리다. 짐이 애지중지한 톱날 나이프를 떠올린 샘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신부는 아차 싶었던지 표정을 바꿔 낼름 딴소리했다. 『아, 교황청은 뱀파이어의 존재를 공식적이든 비공식으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이래선 금요일에 고기를 맛있게 먹었음에도「방금 식탁에 올랐던 건 콩으로 만든 두부였습니다. 혹시 사천 요리라고 들어보셨나요?」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샘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도 그들을 사냥하는 헌터는 있는 거군요.』 『노우, 노. 틀려요, 샘 윈체스터 씨. 틀려도 한참 틀립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교화와 포교인 겁니다. 창녀를 교회로 불러들여 회개시키고, 그 천박스런 바빌론 음녀의 옷을 벗겨버리는 것이야말로 저희들의 성스러운 책무인 것이죠.』 『화약 냄새 진동하는 권총을 들고서요.』 『으음...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요즘엔 주님의 말씀만으로는 권능이 살지 않아요.』 무뚝뚝하게 말한 신부는 그제서야 권총을 치우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런데 그게 참 웃기는 노릇이다. 무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샘은 비로소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 당황했다. 상대는 예의「가까운 가게로 가서 커피나 마십시다」의 태도로 돌아갔고, 사흘 전에 있었던 부부 싸움에 대해 기꺼이 상담을 해주겠노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누군가 울음을 터뜨리면 손수건을 꺼내들고 눈가를 닦아줄 태세다. 위안과 위로, 그것이야말로 양떼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겠느냐며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충고를 하지요.』 올 것이 왔다. 『헌터 일은 그만 두시오.』 신부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당신에겐 어울리지 않아요.』
무의식중에 위장이 있는 곳으로 손을 가져갔다. 속이 더부룩했다. 『아직 할 일이... 나에게는 반드시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흥! 척 하면 삼천리.』 지겹다는 투로 손사레를 쳤다. 『이 일이라는게 그래요.「그저 소방관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보니 주변의 권유를 받아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몸은 엄청 고되지만 월급이 짭짤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다들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사연 한 가지씩 품에 안고 있지요. 나요? 형님이 살해당했소. 내 형님을 죽인 뱀파이어의 이름은 카일이라고 하오. 놈은 반쪽짜리 오리진이고, 강간당한 인간을 모친으로 해서 태어났소. 그리고 그놈을 낳은 자궁의 이름은 리디아 커핸이라고 하오. 요즘엔 글자를 죄다 잘라먹고「리」라고 하더이다만.』 여기까지 말한 신부는 불안한 낯빛으로 건물 쪽을 힐끔거렸다. 『아, 이건 내가 말했다고 하면 안 되요. 리디아님은 누가 자기 얘길 하는 걸 싫어하거든.』 그리고 죄 지은 사람마냥 작게 소곤거렸다. 『호적은 할머니면서 주먹은 어찌나 센지.』 샘은 그렇다, 아니다 감히 대꾸도 못 하고 멍청히 입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D-의 성적표를 가져온 손자를 코앞에 세워둔 할아버지처럼 그는 다시 표정을 바꿨다.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어요. 나는 그걸 잊으라거나, 없던 일로 치부하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아니까. 내 형님이 돌아가셨을 적에 난 완전히 망가졌소. 하느님의 존재마저 잊었다면 참지 못하고 자살했을 거요. 댁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겠지. 그래서 복수를 다짐했을 거고. 안 그렇소?』 『그건...』 『이 말을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어요. 본인이 죽으면 다 소용 없는 겁니다.』 『신부님...』 『당신은 위태로워 보여요.』 『그렇지만 나는...』 『모진 훈련을 받은 몸이니 괜찮다?』 신부의 차가운 눈동자가 샘의 위아래를 훑었다. 『총을 겨누는 자를 코앞에 세워두고 머리로 분석하는 사람은 이 일을 하면 안 되오! 그러니까 당신과 같이 있었던 형님이 크게 다친 거 아니오!』
뒷 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샘은 헐레벌떡 뛰어와 방문을 굳게 걸어잠궜다. 『어? 커피 마시러 밖에 나간 거 아니었어?』 리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문지방에 기대에 쭈그리고 앉았다. 『어머머! 얘! 너 지금 우는 거니?』 무릎을 세우고 거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작은 흐느낌이 꽉 다물린 이 틈새로 새어나왔다.
Posted by 미야
2008/07/15 13:51
2008/07/1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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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늘 자신이 섹스에 담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첫 키스의 경험도 늦었고 - 상대적으로 딘이 빨랐던 것뿐일 수도 있다 - 당연히 첫 경험도 늦었다. 그리고 그건 좋다 싫다 언급할만한 대단한 추억도 아니었다. 뭐랄까, 남들이 다 하니까 의무적으로 - 그가 이 단어를 입에 담았을 적에 딘은 동생의 등짝을 향해 토스터기를 집어 던지는 시늉을 해보였다. 막판에 그걸 던지지 않은 건 화들짝 놀란 존이 큰 소리로 말렸기 때문이었지, 딘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 적당히 해치웠다는 감각이었다. 같은 반 급우였던 소녀는 스스로 속옷을 벗으면서 대단히 계면쩍어하는 눈치였고, 두 사람은 말 그대로 교과서적인 섹스를 나누며「여기서 실수라도 하면 나중에 단단히 비웃음을 당할텐데」생각밖엔 안 했다.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황홀감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약간은 아팠고, 행여나 임질에 옮을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어서 좋아하는 상대가 생기면 같이 잤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려. 네가 무슨 목석이나 돌 덩어리 종류가 아니라는 점에선 이 형은 안심이 된다만... 뭐냐? 네 기술이 무진장 형편 없어서 여자애들이 딱지를 놓은 건 아니고?』 『호오, 절묘한 타이밍으로 내일 당장 이삿짐을 꾸리라고 명령했던 건 어디에 사는 누구더라.』 남들처럼「우린 서로 성격이 안 맞는 것 같아」라는 작별 인사를 나눠본 적이 없다.「미안해. 내일 이사 가게 되었어」로 관계는 끝났다. = 질리도록 평범한 섹스 어쩌고를 논의할 정도로 깊이 사귀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리고 샘은 제시카를 만났다. 진심이었다.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중하게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와 같이 나란히 한 침대에 누웠을 적에 샘은「완성」이라는 단어를 한참동안 가슴에 담았다. 비록 불타오르는 열정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제시카와 같이 있으면 자신의 텅 빈 부분이 채워지는 따스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와 남자로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 - 샘은 감사히 여겼다. 품에 껴안고 살갗을 부비지 않아도 위대한 사랑은 그곳에 있었다. 모성(母性), 자애(慈愛)... 그 앞에서 촉촉히 젖은 자궁 안으로 하얀 씨를 뿌려대는 행위는 오히려 신성모독인 것처럼 느껴졌다.
『핑계는 훌륭하군. 혹시 네가 고자라고 그녀가 의심하진 않든?』 『우린 잘 지냈어, 딘.』 샘은 제시카에게 어울릴만한 반지를 알아보고 다녔다. 월경을 이유로 그녀가 잠자리를 거절한 이후로 거진 한 달 가까이 육체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아무하고나 쉽게 자는 딘은 그런 동생을 이해했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이해한 척한 것일 수도 있다. 『넌 진짜지 남자가 아니야, 샘.』 『뭐야. 그래서 나에게 핑크색 머리핀을 선물한 거야?』 『왜 신경질을 부리는 건데? 머리카락이 눈을 찌른다며 불평한 건 바로 너야.』 『닥쳐, 얼간아.』 어쨌든 샘은 분홍 머리핀을 머리에 꽂고 세수를 했다. 모양은 흉측했어도 씻을 때 비누가 머리카락에 묻지 않아 좋았다. 그걸 본 딘은 배꼽을 쥐고 바닥을 굴렀지만 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셔츠에 불이 붙었을 적의 대응 요령 - 데굴데굴 - 소방관은 훌륭하다 칭찬할 것이다.
『샘. 인생은 길어. 아~주 길다고. 넌 즐기고 살 권리가 있어.』 너무 웃어 흘러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대략 훔치고 나서 딘은 그렇게 말했다. 그는 그의 오지랖 넓은 형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잘 알았다. 『알아.』 덧붙여 쓰게 웃었다. 『이건 제시카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는 섹스에 무관심한 인간이었다. 샘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분석했다고 하는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당장 하고 싶어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라는 표현은 평생 써먹을 일이 없을 것이다.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지는 일도 없고, 키스를 애걸하는 일도 없고... 분명 그럴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다. 『디-인.』 더운 날의 피부처럼 끈적거리는 목소리다. 본인도 그 점은 인정한다. 그냥 들러붙는다고 할까, 손가락을 가져가면 접착제가 찌익 소리를 내며 늘어날 것만 같다. 『크악! 동생아. 우리가 6시간 전에 버핏 할아범의 무덤에서 20년은 족히 골은 해골을 파냈다는 건 알고 있냐?!』 동이 틀 무렵까지 삽질하느라 초죽음이 된 딘은「날 가만히 내버려둬」라는 글자가 박힌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뜨거운 샤워로 근육의 뭉침과 약간의 피로를 날려버리는데 성공은 했으나 물 밖으로 보이는 빙산보다 물 아래로 잠긴 빙산의 크기가 더 커다랗다는 건 상식이다. 눈꺼풀은 지랄맞게 무거웠고, 손가락 하나 꼼짝이기 싫었다. 끔찍하게 배가 고팠음에도 샘이 밖에 나가 사가지고 온 베이컨 버거에 눈길도 주지 않은 까닭이 바로 그거였다.
찢어져라 하품하며 엉덩이를 긁었다. 『졸립단 말이야. 바깥으로 뱃지를 든 보안관이 쳐들어온게 아니라면 날 깨우지 마.』 『그치마-안.』 길게 늘어지는 묘한 여운에 감았던 눈을 하나만 떴다. 그러자 똥 마렵다는 식으로 당혹스러워하는 동생의 얼굴이 절반만 보였다. 혹시 몸이라도 안 좋아서 저러는 건가 싶어 나머지 눈도 마저 치켜떴다. 허우대만 크지 의외로 골골거리는 구석이 있는 녀석이다. 『왜. 설사야?』 『아니.』 『큼... 그럼 벽장을 열었더니 부기맨이 쭈그리고 앉아있든?』 『아니.』 『TV를 틀자마자 맥도널드 광대가 나왔어?』 『아니.』 『그럼 뭐가 문제야. 생리가 터졌는데 탐폰이 가방에 없냐?』 『하나도 안 웃겨.』 『다행이군. 지금 내가 한 말은 농담이 아니었거든, 이 계집애야.』 『계집애, 계집애 그러지 마. 나에게도 고추가 있단 말이야.』 『오오~!! 세상에! 너에게 고추가 있냐. 그런 놀라운 기적이!』
이죽거리며 비웃는 딘을 향해 샘은 야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어쩐지 귀여워 보여 딘은 동생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귀옆으로 쓸어 넘겨주었다. 보너스로 가볍게 키스 한 방. 쪽 소리를 낸 입술이 콧잔등에 떨어졌다. 『자, 그래서?』 『그래서라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저어... 그러니까...』 『응?』 『에, 저기...』 입안을 어지럽게 빙빙 돌던 단어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벽을 쳐다봤다가, 침을 삼키고, 주먹을 쥐락펴락 해보았어도 이걸 뭐라고 하면 좋을지 난감할 뿐이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샘의 눈으로 당혹함이 떠올랐다. 딘이 알아서 적당히 눈치채줬으면 하고 빌어봤으나 그의 형은 능청스럽게 팔베개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딘...』 순간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이 그릇 밖으로 흘러넘쳐 그 고유한 형태를 잃어갔다. 혼란스럽다. 어지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피스럽다. 평정을 가장하고 싶었으나 욕심에 불과했다. 『제발...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딘.』 『호오. 내가 지금 어떤 눈으로 널 보고 있는데?』 『짜증내고 있잖아.』 『그럴지도.』
예상했던 그대로 칵- 하는 반응이었다. 『우린 어제도 했어.』 『...』 『그제도 했어.』 『...』 『내 기억이 맞다면 엇그제도 했다? 그런데 오늘도 하자고?』
샘은 손바닥을 올려 활활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췄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치만 몸은 솔직해서 맨살과 맨살이 맞닿는 생생한 감각을 기억해내곤 벌써부터 날뛰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 - 기세좋게 달아오른 아랫도리는 그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고개만 길게 빼서 볼록 부풀어오른 그 부분을 흘깃거린 딘은 끄응 신음했다. 『있잖아. 정말 미안하지만 화장실에 가서 적당히 빼면 안...』 『디-인.』 『아, 진짜!』
벌컥 화를 내긴 했어도 샘의 몸을 끌어당기는 팔은 부드럽다. 『넌 진짜지 이기적인 놈이야.』 『응, 응.』 『이리 와, 멍청아.』 건조하고 커다란 손이 샘의 딱딱해진 그것을 쥐었다. 가볍게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을 뿐인데도 아랫배가 저릿저릿해서 가만히 있기가 힘들다. 귓가로 따스한 숨결이 닿고, 촉촉한 혀가 목덜미를 쓸었다. 반사적으로 샘은 허리를 비틀며 움직였다. 기분 좋다. 가까이 닿았다는 인식만으로도 머리가 부글거리고 녹아버렸다. 쾌감이라는 것이 비처럼 쏟아졌다. 『인석아, 시작도 안 했다고!』 『응.』 『으이그! 대답은 꼬박꼬박 잘 해요.』
정신 없이 혀를 엮으면서 샘은 생각했다. 나는 섹스에 담백한 사람. 숨을 헐떡이며 매달리는 동생의 등뒤로 팔을 두르면서 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목덜미, 어깨, 가슴으로 뜨거운 키스의 세례가 퍼부어졌다.
Posted by 미야
2008/06/22 22:36
2008/06/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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