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방한다니까 기운이 쫙 빠지네요. 먼젓번 글의 연장선입니다. 취향이 아니다 싶으면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을 닫고 레드썬을 외쳐주세요. ※
내 것이 아닌 체중이 실려 삐걱대며 요동치는 매트리스의 움직임에 기겁했다. 그러나 주먹을 뻗어 미지의 적을 응징한다는 계획은「지난 8월부터 11월에 걸쳐 화성인이 자기네 행성에 운하를 건설했습니다」이상으로 허황된 것으로 판명났다. 반사적으로 발길질을 하려는 것보다 익숙한 체취를 코로 들이마시는게 더 빨랐고, 순간「적이 나타났다!」고함치던 전의는 네모반듯하게 접혀져 서랍장 안쪽으로 스륵 빨려 들어갔다.
물끄러미 위를 올려다봐도 어둠이 삼킨 얼굴은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윤곽조차 희미하다. 그렇다고 해도 무섭지 않다. 반대로 행복하기까지 하다. 샘은 상대방이 보다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다. 침대가 다시 좌우로 흔들렸고, 이내 차가운 손가락이 확인하듯 샘의 뺨을 가만히 쓸었다. 그 동작은 흡사「겁먹지 마, 침착해, 널 다치게 하지 않아」등등의 말을 걸어오는 것과 같았다. 샘은 알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신뢰와 애정을 가득 담아 그 손에 입을 맞췄다. 설령 그가 샘을 다치게 하고 싶다고 해도 허락할 것이다. 뭐든지, 부디 뜻대로. 샘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손길을 따라 입술을 움직였다.
킬킬 웃는 소리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 웃었을 수 있고, 어쩌면 둘 다 웃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샘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목덜미 사이로 뿜겨오는 뜨거운 숨결과 묵직하게 눌려오는 체중에 집중하며 엉덩이를 느리게 흔들었다. 각자의 아랫배가 맞물렸다 떨어지길 반복하면서 조화의 음률을 자아냈다. 얇은 속옷 한 장 너머로 문질러지는 서로의 살갗이 너무나 기뻤다.
『좋아...』 애정으로 가득찬 신음 소리가 쏟아진다. 『좋아해...』 밀착된 하복부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렁그렁 목을 울리며 서로의 몸을 비벼대는 동작에 열중했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온몸의 혈액이 한곳으로 몰려들자 샘은 키스를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술을 찾아 우물거리는 소리를 냈다.
딘의 입술, 형의 혀.
『패리스 힐튼이 얼라리 까꿍해가며 알몸이라도 보여줬어?』 어지간히 민망한 동작에 끔찍스런 소리를 냈던 모양이다. 딘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어댔고, 치약을 짠 칫솔까지 덩달아 흔들어댔다. 『베개까지 쪽쪽 빨아대며 아주 그냥 난리 블루스더구나. 이 형은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몰라 난감했다.』 『프라이버시 침해야, 딘.』 『좁은 방구석에서 나더러 어쩌라는 거니.』 『눈 돌리고 귀 막아.』 『웃기고 있네.』 아침부터 말다툼을 벌이기 싫었던 딘은 그 정도에서 얘기를 끝냈다. 다 큰 성인 남자가 야한 꿈을 꾸고 흥분하는 건 정상적인 것이고, 솔직히 말해「잠결에 지랄하는」횟수는 딘 쪽이 압도적이었다. 가슴 큰 여자, 엉덩이가 큰 여자, 금발머리, 통통한 여자, 훌쭉한 여자... 체위도 다양했고, 가끔은 여러 명과 동시다발적으로 품바야를 했다. 그런다고 누가 뭐랄 것도 없다. 꿈이니까. 그걸 갖고 타박하는 쪽이 정신병자다.
신나게 양치질을 하다 말고 딘이 욕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여? 여우라크나디 케코다니오?』 『부탁이니 영어로 말해줘, 형. 내게는 MIB(맨인블랙) 통역기가 없거든.』 부랴부랴 되돌아가 세면대로 하얀 거품을 한웅큼 뱉어낸 딘은 가까스로 정상적인 인간의 언어를 입에 담을 수 있었다. 『크리스티에게 연락해보는 건 어떠냐고 물은 거야.』 『크리스티가 누군데.』 딘은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했다. 『네 여자 친구! B컵 분홍색 발렌타인 브라자!』 『그녀의 이름은 케이트야. 어... 아니다. 캐시던가.』 『얌마!』
샘이 망가졌다. 망가진게 분명하다. 돈을 주고 창녀를 사는 건 싫어한다고 했으니 그때 봤던 크리스티가 전화번호부 책으로 연락처를 올려놓은 직업 데이트 여성은 아닐게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여자 친구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을 못 하는 지금의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해야 하나.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형제들이 두 명인지 세 명인지 잘 모른다고 하면 그건 납득이 간다. 허나 이름이 캐시인지 케이트인지 헷갈린다면 이건 심각하다. 오로지 섹스를 목적으로 사귀었다고 해도 정도가 지나치다. 사실 딘은 크리스티에 대해 궁금했다. 어디서 만났어? 어쩌다 눈 맞았어? 뭐 하던 여자야? 사는 곳은 어디래? 네가 마음에 든대? 그런데 그걸 샘이 제대로 답변해줄지 확신이 안 선다. 이름도 모르는데 그녀의 직업이 뭔지 꿰고는 있을까. 유원지에서 사탕을 파는지, 아님 커피숍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지 신경도 안 쓸 것 같다.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어도 기적일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불행하게도 딘은 감이 좋았다.
칫솔을 입에 물고 동생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심하다고, 새미. 이 형은 널 그런 볼썽사나운 남자로 키운 기억이 없다.』 샘은 내 알 바 아니라는 투로 딘을 흘겨봤다. 『낡아빠진 브리프 한 장만 입고 훈계해봤자지. 됐어. 돌아가서 양치나 계속해.』 무뚝뚝하고 고집스런 표정을 지은 동생은 침대를 정리하는 척하며 등을 돌렸다. 『그래도 보고 싶으니까 그런 꿈을 꾸는 거 아니야?』 아직도 그 주제인 겁니까. 신경질적으로 작게 웃는 샘을 향해 딘은 두 팔을 벌려보였다. 『잠결에 좋아, 좋아, 엄청나게 반복해서 말하더라, 너. 그러니까...』 샘은 그 아버지로부터 방과 후 공차기를 그만두고 당장 전학을 가야 한다고 통보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반응했다. 쉽게 말해 상대방이 말하는 걸 깡그리 무시한 채 화장실로 들어가 철컥 소리내어 문을 잠궜다는 거다.
『그러니까 크리스티가 보고 싶으면 내 눈치 볼 것 없이 만나라고.』 애꿎은 벽에 대고 크게 말하면서 딘은 뒷통수를 긁어댔다.
그녀를 누구라고 소개할지 막막했다. 「나와 같이 악마를 추적하던 헌터야.」 입술에 침 바르고 거짓말을 하기엔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바비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폐차장에서 은둔하는 구닥다리 헌터라고 무시하기엔 그의 정보망이 너무나 위력적이었다. 딘은 쉽게 속아 넘어가겠지만 바비는 다르다.「크리스티라는 이름의 여자 헌터에 대해 물어봤는데 주변에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구나.」이걸로 끝이다. 샘은 그런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여자 친구.」 이건 더 웃긴 소리다. 형을 살려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부터 복수심에 불타 릴리스를 뒤쫓았다. 그렇게 테네시에서 줄행랑을 친 악마들을 추적해 폰티악으로 흘러 들어온게 겨우 하루다. 그렇다면 샘은 단 24시간만에 안전한 잠자리를 확보하고, 악마가 흘린 단서를 찾고, 몸매 괜찮은 여자를 건져, 모텔까지 끌여들였다는 얘기가 된다. 참으로 부지런하다. 그리고 얼뜨기 바보 같다. 「그야 잰 피 끓는 청춘이니까요.」 딘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지만 바비는 과식으로 속이 더부룩하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이게 10대 소년이 치어리더와 라커룸에서 즉흥적으로 붕가붕가 하는 것과 같은 레벨이냐 - 그리곤 샘이 투숙한 방안을 마치 숙제 검사라도 하는 투로 꼼꼼히 둘러보았다. 「악마에게 씌인 여자애가 계획적으로 접근한 거였으면 어쩌려고.」 바비에 잔소리에 아닌게 아니라 악마에게 씌인 여자애 맞네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샘은 두 사람에게 냉장고에서 꺼내온 맥주를 건네주며 미적지근하게 웃었고, 다행스럽게도 화제는 악마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다.
흐지부지 묻어둘 수 있다면 계속 그렇게 할 작정이다. 「딘에게 나를 어떻게 설명할래?」 루비의 질문에 샘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루비는 어떻게 되었어?」 딘의 묻는 말에 샘은 그녀가 죽었거나, 지옥에 있을 거라고 대꾸했다. 머리가 아프다. 아니, 이건 머리통이 잘못된 거다. 꿈에서의 내용을 곱씹으며 페니스를 감싸쥐었다. 단단한 손, 커다란 손, 나의 것이 아닌 손, 눈을 감고 상상했다. 위로 아래로 애무하며 움직인다. 뿌리부터 끝부분까지 기세좋게 슬라이드하다 약올리듯 잡아당긴다. 『하읏!』 가슴에서 복부로 입술자국을 남기며 내려간다. 손에 의한 교묘한 자극과 뜨거운 숨결에 동시에 반응하며 몸을 비튼다. 부끄럽다. 동시에 부끄럽지 않다. 쾌감 때문에 소름이 돋는다. 맨살을 탐하며 구석구석을 혀로 핥는다.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으며 아슬아슬한 부분을 우악스럽게 쥐어뜯는다. 열기가 척추를 타고 단숨에 정수리까지 도달한다. 아직은 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무너지고 싶기도 하다. 고꾸라져서, 복종의 뉘앙스로 팔다리를 버둥대며, 자존심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고 네발로 기어 하나로 엉켰으면 좋겠다. 『으으, 으읏!』 이름을 부르고 싶다. 목이 쉬도록 이름을 부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단 한 명.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 입을 주먹으로 틀어막았다.
왜 기억해주지 않은 거야. 『크흑!』 어째서 잊어버린 거야. 우리의 사랑이 그렇게나 아픈 거였어? 『아, 아앗!』 손가락에 힘을 꽉 주는 것과 동시에 사정했다.
『역시 너... 여자 친구에게 전화하는게 좋겠다.』 한참만에 화장실에서 나온 동생을 향해 딘은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Posted by 미야
2008/11/30 23:49
2008/11/30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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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어 대가리야. 오죽하면 껍질을 벗겨 김치통에 넣는 꿈을 꿨겠냐. 기분전환용 습작. ※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딘!』 신문을 읽는 척하다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고 우렁차게 가스를 뿜던 형은 동생의 타박에「내가 뭘?」이라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입술을 뾰족하게 하고 한참을 노려봤음에도「자연스런 생리현상인데 시원하게 뀌면 그만이지 그걸 왜 참냐」는 답변만 돌아왔다. 더 웃긴 건 자기가 뿜어댄 독가스에 자기가 질식해선 손바닥으로 부지런히 부채질을 했다는 거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얄밉게도「악몽의 가스 덩어리」를 동생에게로 밀어버리는 시늉까지 했다. 『정도껏 해!』 코를 움켜쥐고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더니 그제야 무천 도사의 에네르기파 동작을 그만둔 딘은 읽던 신문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도 있었다. 『어때.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소식이라도 뭐 있어?』 『어... 음.』 방금 샤워를 끝마치고 나온 샘이 무릎이 닿도록 가까이 앉자 딘은 불편한 안색을 했다. 왜? 라는 의미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자 신랄한 지적이 돌아왔다. 『젖은 몸으로 나에게 기대지 마. 형의 옷이 축축해지잖아.』 샘은 얼른 형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미안하다 사과했다. 그러나「잘못했다」고 말하는 입과는 다르게 그가 왜 자신의 허벅지로 손을 올리는 않는지를 열심히 생각했다. 아마도 딘은 샘에게서 아무런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쭈삣거리는 동생에게서 약간만 거리를 벌린 딘은 침을 바른 손가락으로 신문의 다음 장을 넘겼다.
『악마들이 요즘 휴가를 갔나 보다. 대신 외계인이 좀 바쁘신 것 같어.』 샘은 침 묻은 손가락이 자신의 입술 안으로 당당하게 침범하는 걸 상상했다. 입안을 훑고, 잇몸을 더듬고, 혀를 쓰다듬고... 『외계인?』 『미세스 데커리가 자기 집 뒷마당을 부지런히 파고 있는 외계인을 목격했단다.』 『흐음, 개의 유전자를 가진 외계인인가.』 『그게 아니라 미세스 데커리의 뇌로 흥분제가 잔뜩 발린 개의 털이 들어간 건지도 모르지.』 그리고 딘은 그놈의 망할 개털이 샘의 콧속을 침범한 건 아닐까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동생의 얼굴은 온통 붉었고, 빠르게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왔다는 식으로 얕은 숨을 빠르게 뱉고 있었다. 각도를 달리해서 보자면 흥분한 것도 같았는데「땅을 파는 외계인」이 샘의 취향이 아닌 이상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게 문제였다. 『샘. 너, 괜찮니?』 『괜찮고말고.』 재빨리 표정을 바꾼 샘은 딘의 어깨를 툭 치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흩어진 뼈를 모아, 살을 붙여, 소거되었던 생기를 복구시킨다. 하느님의 숨결, 재차 불어넣어진 신의 호흡.
작은 티끌로부터 온전한 인간을 일으켜 세운 천사는 찢어지고 베인 흉터를 생략했다. 부러진 곳이 잘못되어 휘어졌던 손가락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동생과 살을 맞대고 같이 잤다는 과거 역시 지웠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밤과, 낮과, 그리고 기억들은 그들의 판단으로는 되돌릴 가치가 없는 거였다. 손가락을 고친 것처럼 천사는 굴곡진 기억도 망치로 두드려 평평하게 폈다. 그리하여 옷을 벗은 동생을 쳐다보는 딘의 시선은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제발 샤워하고 나와서 그렇게 돌아다니지 마. 뭐라도 입고 있어. 날 피 말려 죽일 셈이냐. 너만 보면 이성이 마비되는 것 같아. 제기랄, 젖은 머리카락으로 무방비한 표정은 짓지 마. 도저히 못 참겠네. 이리와. 당장 해야겠어.
참을성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짐승처럼 군다고 흉보던 시절도 있었다. 샘은 눈두덩이를 누르며 실소했다.
『샘?』 최근들어 그의 동생은 하루 권장량의 네 배의 카페인을 섭취한 사람처럼 굴었다. 살짝 돌은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혼자서 킬킬거리며 웃다가 급격히 우울해했고, 등을 구부린 채 느리게 움직이다 갑자기 미친 생쥐처럼 돌아다니기도 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요즘의 샘은 그 증세가 병적이었다. 뭐, 갈기갈기 찢김을 당해 죽었던 사람이 4개월만에 지옥에서 되돌아와「이 형, 멋지지 않냐?」이랬으니 당연한 반응인 것도 같지만... 할 말이 있다는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고개를 돌리는 건 나름 짜증스러웠다. 생략된 질문이「당신, 정말로 내 형이야?」인 것 같아서,「이 모든게 악마의 속임수인 건 아니야?」라고 묻고 있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순은의 나이프로 피부를 갈라 흐르는 피를 보여주고, 성수를 마시고, 후추 가루에 반응하여 삼세번 재채기를 해보였어도 저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는 의심은 해소되지 않은 듯했다. 「명색이 헌터인데 의심 한 번 안 하고 넙죽 믿어줬어도 문제지만 말이지...」 샘의 태도를 칭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욕할 수도 없는 딘은 속이 답답할 뿐이었다.
이 모든 걸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이 세상의 어떤 현자도 거기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없으리라.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딘은 동생을 향해 어색하게 웃다가 그렇게 눈치를 볼 까닭이 없음을 깨닫고 도로 웃음을 거뒀다. 샘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다가왔다. 자, 그래... 동생아. 나는 네 형인 딘 윈체스터다. 도대체 무엇을 더 납득시켜야 하니. 동생은 주먹을 쥐었고, 1, 2초 정도 주춤거렸다. 결국엔 눈을 질끈 감더니 잘 익은 수박을 골라낼 때처럼 딘의 머리를 세 번 두둘겼다.
『야! 지금 이게 뭔 짓이야~!!』 『안돼. 역시 이것으로는 확인할 수 없겠어.』 『확인하다니. 뭘!』 『중요한 거야.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거지. 그런데 그게 사라졌다고, 딘.』 『뭐?』 『찾을 수 있을까?』
화낼 기운도 없다. 솔직히 뭔 소린지도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게 사라졌다고 하니 찾을 뿐이다. 신문을 반으로 접어 테이블에 올려놓은 딘은 그 즉시 바닥에 넙죽 엎드려 손바닥으로 카펫을 세심하게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긴 거야, 없어졌다는 거... 얌마, 그렇게 쳐다보지만 말고 뭐라고 말을 해. 주둥이에 풀 발렸냐. 말을 하라니까... 샘?』
Posted by 미야
2008/11/23 23:25
2008/11/2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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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뉴암스테르담을 연속 시청하고 상태 메롱이라능. 실험적으로 써봤습니다. 본편으로는 들어가지 않아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피곤을 풀기 위한 수면이 아니다. 생리적으로 자지 않으면 죽어버리니까 의무적으로 잠을 청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편안한 베개니, 아늑한 이불이니 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소원하는 건 그저 꿈을 꾸지 않았으면 하는 것 하나 뿐...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 불면은 필연적으로 악몽을 불러들였다. 붉고 붉은 이미지만 계속된다.「꿈」이란 단어는 그래서 더 이상 달콤하지 않다. 샘은 침대라는 사물을 증오하기에 이르렀다. 절망은 그의 유일한 벗이 되어주었다.
-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걸 기억해? 내가 가르쳐준 걸 기억하니?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 너는 계속해서 싸워나갈 수 있어. 살짝 떨리며 흐려지는 형의 목소리... 섬세한 체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리는 것 같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은 고쳤다. 대신 딘의 유품이 되어버린 에뮬렛을 만지막대는 새 버릇이 생겼다.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것으로 지긋지긋한 모든 걸 끝장내고 싶어질 적마다 충동을 억누르며 에물렛을 만졌다. - 포기하면 안 돼, 샘 윈체스터. 싸워야만 해. 이를 악물었다. - 그것이 딘이 바라던 거야. 위안을 얻고자 손을 가슴으로 올렸다.
『후욱!』 만져지는게 아무것도 없자 샘은 침대에서 단숨에 몸을 일으켰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목에 걸려 있어야 할 에뮬렛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딘을 매장하고 난 뒤로 한 번도 몸에서 떼어낸 적이 없는 물건이다. 그게 왜 없지, 언제 사라졌지, 어디다 떨어뜨렸나, 누가 훔쳐갔나, 비통함에 젖어 목을 잡아뜯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다 구석으로 굴러다니는,「내 것이 아닌」더러운 양말을 발견했다. 안심한 나머지 다리가 풀려버렸다. 만약 이것이 꿈의 연속이라면,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게끔 행복한 꿈이다. 주먹으로 눈두덩이를 누른 채 심호흡했다. 이제 그는 에뮬렛이 아닌 딘의 젖꼭지를 희롱하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바비는 말을 삼갔다. 단순히「오늘은 구름이 두꺼운게 비라도 내릴 것 같다」라고 혼잣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홀로 남은 어린 윈체스터가 무척이나 상처를 받을 것임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뭐라도 먹지 않으련?」묻지 않았다.「소파에 누워 눈을 붙이렴」권하지도 않았다. 울고 불고 난리라도 치면 차라리 손을 써볼 수 있었을 것을, 몰골이 참담한 청년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채 바닥에 쌓인 먼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시신은 곧 부패하기 시작했다. 발톱에 찢긴 틈새로 튀어나온 내장은 비참한 냄새를 풍겼다. 사방에서 파리가 앵앵거렸고 딘의 피부는 검푸른 빛깔로 변색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부풀었다.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티끌로 돌아가기 위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 이제 딘은 더 이상 섹시하지도, 핸섬하지도 않았다. 송장의 코와 입으로 벌레가 부지런히 드나들었고 치명적이었던 상처 틈새로 하얗게 구더기가 꼈다. 벌레들은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살을 씹어댔다.
더 이상 흉한 꼴을 무시할 수 없었던 바비는 밖에서 네모난 판자를 주워왔다. 그리고 만성적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반나절 내내 땅땅거리며 망치질을 했다. 그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소리처럼 웅장하게 울려퍼졌다. 『화장은 하지 않을 거예요, 바비.』 일주일만에야 입을 연 샘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장작과 휘발유는 필요없어요.』 점수를 후하게 줘도 엉성한 궤짝이라고밖엔 표현할 수 없는 나무 관으로 시신을 옮기고자 기를 쓰던 바비는 동작을 잠시 멈췄다. 『그렇게 하자구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소금은 뿌려야겠구나, 얘야.』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하던 바비를 향해 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제가 가서 소금을 가져올게요.』 겨우 대화다운 걸 나눴다고 바비는 내심 안도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샘의 눈빛은 지독하리만치 공허해서 바닥이 없는 늪을 연상시켰다. 그 속으로 돌을 던지면 언제까지 가라앉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극단적이고도 비합리적인 좌절감 속에서 샘의 영혼은 조각조각 부서지고 있었다.
- 나는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어요. 유품이 되어버린 딘의 에뮬렛을 자기 목에 걸면서 샘은 그렇게 잘라 말했다. - 나는 그 누구의 도움을 받을 자격도 없어요.
걱정을 억누를 수 없었던 늙은 헌터는 반복해서 안부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조차 싫었던 샘은 핸드폰 번호를 아예 바꿔버렸다.
난 싸워야만 해. 딘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 허나 생각처럼 쉽진 않았다. 여전히 송장 냄새가 났다. 꿈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딘은 계속해서 썩어갔다. 부풀어 올라 검게 변한 그의 얼굴은 대단히 기괴하다. 아름다웠던 안구는 진작에 사라져 지금은 뻥 뚫린 두 개의 구멍에 불과하다. 얇은 종이처럼 변해버린 피부는 허물을 벗기 시작하고, 가스가 차오른 몸은 가끔씩 쿨렁 소리를 내며 요동친다. 걸죽한 액체로 변한 살덩이들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흘러내리고, 관절끼리의 연결은 느슨해진다. 딘 윈체스터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계속해서 부패하고, 또 부패한다. 사방에서 썩은내가 났다. 독한 보드카에서조차 썩은 냄새가 풀풀 풍겼다. 들녘에 핀 이름 모를 꽃으로 벌이 아닌 파리가 앉는다. 왜냐하면 꽃은 보기와는 달리 향기롭지 않았고, 그것 역시 매일매일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죽기보다 곱절로 어려운 일이었다.
떨림이 가라앉았다. 침착함을 되찾은 샘은 세수하는 동작으로 얼굴을 문지른 뒤 딘을 찾았다. 『형, 어딨어?』 화장실 불은 꺼져있었다. 눈살을 찌푸린 샘은 방안을 두리번거리다 커튼 틈새로 밖을 살폈다. 2초 뒤, 그는 복도로 통하는 문을 열고 어두운 계단을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신의 은총으로 지옥으로부터 벗어나 지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지옥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노라 했다. 하지만 악몽을 꾸었고, 술을 지나치게 마셨으며, 가끔씩 멍한 표정을 짓곤 했다. 특히 밤이 힘들었다. 때로 그는 잠드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늙은 나귀처럼 등을 구부리고 숨을 죽였다. 추적하여 쫓아오는 검은 그림자가 문 밖에 서기라도 한 것처럼 긴장했다. 그는 예전처럼 수다를 떨지 않았다. 깔깔 웃지도 않았다. 대신 이를 꽉 다물고 근육을 부풀렸다. 딘의 귀에는 팔 벌리고 선 재앙이라는 놈이 내는 발소리가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여차하면 주먹을 날릴 기세로 앞을 주시하곤 했다. 역설적으로 말해 뒤돌아 도망치는게 불가능했기에 투쟁의 의욕은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딘 윈체스터가 입은 은혜의 실체다.
1층 주차장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팽팽하게 날이 선 공기가 주변을 에워쌌다. 그들은 뭔가의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샘의 판단으로는 단순히 잡담을 나누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실수로 당신 자동차 옆구리를 긁었소」이상의 심각함이 그 장소에 있었다.
훔쳐보는 샘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등 돌리고 선 카스티엘 쪽이 먼저였다. 『샘... 윈체스터.』 두 사람은, 아니. 한 인간과 한 천사는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피곤에 쩔은 천사라니. 피식 웃음이 나올 노릇이다. 과로사가 내일 모레라는 인상으로 눈밑의 다크서클이 장난이 아니다. 두 손을 공손이 깍지끼고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엔 파워가 가득했지만 번개와도 비슷한 눈빛만 빼면 나머진 죄다「과장님, 이러다 나 쓰러져요」다. 유행에 뒤쳐지고 구김진 코트는 추레하기까지 해서 방금 전까지 격무에 시달린 말단 사무원처럼도 보였다.
『무슨 일이야? 형.』 딘은 제대로 짜증이 났다는 얼굴을 하고 구석으로 퉷, 침을 뱉었다. 이가 덜덜 떨리는 건 단순히 춥기 때문이다. 『카스티엘과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어?』 옷을 두껍게 입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소름이 돋는 것이다.
『별 거 아닐세, 샘.』 카스티엘은 어쩐지 난처해 하는 눈치다. 『뭐랄까... 좀 사소한 문제라네.』 『사소한?』 『내가 천사라고 해도 전자기적 문제엔 영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일세... 그래서 나 대신 경찰의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해서 실종신고 한 건을 취소시켜 줬으면 해서.』 『예?』 『이 남자는 자신의 죽은 육신이 하느님의 일에 쓰임받는 것에 기꺼이 동의했지만 그 가족은 아니었나 봄세. 심장마비로 잡작스럽게 죽었다는 걸 모르고 그 고모되는 여인이 실종신고를 냈더군. 지난 9월에 미네소타 주로 출장갔다가 그대로 사라졌다고 하면서 말일세.』 코가 시렸던 샘은 보기 좋게 재채기를 터뜨렸다.
『젠장젠장젠장곱배기! 절대로 안 도와줄 거야.』 딘은 콧방귀를 뀌며 침착하지 못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날 뭘로 생각하는 거야. 내게는 남이 싼 똥을 치우는 취미는 없다고.』 그리고 자세를 삐딱하게 했다.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을 가족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카스티엘은「불쌍하다」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여러 번 반복하여 굴리며 인상을 썼다. 너무나도 거룩한 신의 사자에겐「지상 잡 것들의 감정」은 이해가 어려운 것이리라. 그것은 인간이 개의 감정을 쉽게 알지 못하는 것과 흡사했다.
셔츠를 훌렁 벗어던진 딘의 어깨로 손바닥 모양의 화상 자국이 드러났다. 카스티엘이 남긴 흔적이다. 이 몸은 하느님의 소유다, 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양새가 뚜렷했다. 『딘, 날씨가 추워.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셔츠를 도로 입도록 해.』 노트북을 열고「불법으로」경찰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하던 샘은 잠시 잔소리했다. 『난 감기따윈 안 걸려, 새미.』 『하긴... 속설에 의하면 바보는 감기에 안 걸린다고 하지.』 『누구더러 바보라는 거냣!』 베개가 슝 하고 날아들었다. 그걸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샘은「내가 그렇다고 했어? 속설이라고 했잖아, 속설」푸념했다.
Posted by 미야
2008/11/18 15:37
2008/11/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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