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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충격에 빠진 나머지 성 정체성에까지 혼란이 와버렸다.
『난 임신하지 않았어요!』
원래는 비웃어야 마땅하나 마찬가지로 정신이 나간 딘은 미친 장단에 맞춰 마카레나 춤까지 췄다.
『당연하지! 내가 피임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데! 콘돔을 빼먹은 적은 한 번도 없어!』
『정말이예요. 저놈의 낯짝 두꺼운 형은 맨날 나한테 콘돔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거든요. 상점 직원이「형씨에겐 거시기 사이즈가 맞지 않을테니 요놈은 선반에 다시 올려놓고 한 칫수 더 큰 걸 가져오쇼」라고 지적할 적마다 얼마나 무안한지... 잠깐만! 내가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그거랑 이거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
『상관이 뭐가 없냐, 인석아! 나 골탕 먹으라고 일부러 맞지 않은 사이즈로 골라왔다 이거지! 어쩐지 맨날 헐렁하더라.』
『왜 나에게 신경질을 부려? 그런 건 직접 사!』
『앞으로 임신하면 모두 네 책임이야. 그런 줄 알아.』
『얼씨구?! 그게 왜 내 책임이야. 형은 책임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남자답게 책임지면 되잖아! 임신했어? 그럼 쑥덕 낳아!』
『뭐? 그럼 누가 애를 키워! 난 못 키워!』
『징그럽게 못난 놈. 눈 부릅뜨고 하는 말 좀 봐라.』
『하지만 난 아기 안는 방법도 모른단 말이야!』
『누가 네놈의 똥기저귀를 갈았다고 생각하냐. 그런 건 나한테 맏겨.』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웃긴다, 남자 둘이서. 이것도 대화라고 하고 앉았나.
『가만 있어봐, 샘. 어차피 너나 나나 수컷이라 죽었다 깨어나도 임신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나 개도 아닌데 수컷이라는 말은 쓰지 마. 남자, 남성, 사내라는 등등의 점잖은 표현이 얼마든지 있잖아. 형은 침대에서 짐승일지 몰라도 난 인간이야.』
『그으~래. 넌 나완 다르게 인간이지.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냐, 새미? 넌 남자가 아니잖아. 이 세상의 어느 남자가 분홍색 셔츠를 즐겨 입고 화장실에서 브러쉬로 눈썹을 그리겠냐. 응?』
울컥한 동생은 뒷자석에 자리한 제3자의 시선도 까마득히 잊었다.
『외모를 단정하게 다듬는 건 비난받을 짓이 아니야, 딘. 게을러서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는 사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그리고 난 눈썹을 그리진 않아. 잔털을 정리할 뿐이지!』
『시끄러, 쨔샤. 족집게로 눈썹을 뽑아대며 눈물을 질질 짜는 주제에 단정함 운운하는 건 역겨워.』
『누가 눈물을 질질 짠다는 거야! 언제 본 적은 있어?!』
『이거 왜 이러시나.「으, 따가워, 따가워」소리를 질러대는데 내가 모를 것 같아?』
『미치겠다. 형은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에다 귀를 대고 막 그래?!』
『그래! 네놈이 안에서 하도 끙끙거리니까 무슨 문제가 생겼나 무서워져서 그랬다!』
『변태.』
『닥쳐! 넌 내가 변기에 앉아 똥을 쌀 적에도 앵앵대며 절대로 화장실 문을 못 닫게 했었어! 그러기만 했게. 옆으로 바짝 붙어서 코를 움켜쥐곤「형아, 똥 다 쌌어?」물어봤다고! 그것도 10센트짜리 동전에 그려진 인물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맞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진지하게! 우리 둘이서「누가 더 변태인가요」대회에 나가면 네가 1등을 먹는다는 걸 아셔야지!』
『기가 막혀. 그건 내가 코흘리개였을 적 얘기잖아. 그리고 난 그딴 대회엔 참가하지 않아.』
얼굴이 벌개진 샘은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난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테니 형이나 그 잘난「파이 많이 먹기」대회에 출전하시지!』
『기억력이 엉망이구나, 새미. 초기 치매냐. 형은 슬프다. 누가 더 변태인가요, 대회라고.』
『잘났어! 가서 바지 내리고 좇이나 열심히 흔들어.』
감정이 상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뒷좌석의 조나단 - 그 이름이 아니라고 했지 않았나 - 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줄 것도 아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른 딘은 자기 혐오에 몸부림쳤다.
아닌게 아니라 조나단은「그럴 줄 알았어. 문제가 없긴 뭐가 없어. 심각하기만 하잖아.」시선으로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새까맣게 때에 절은 셔츠를 입고 구멍난 양말을 신은 망령난 늙은이를 마주보고 있다는 식이다. 이제 곧 그는 악당을 취조하는 형사인양 손깍지를 끼고「속옷을 갈아입은 것이 언제죠?」라고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길게 자란 손톱과 떡진 머리를 지적하며 입술을 비틀 것이다. 딘은 국물을 식탁에 흘리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다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부끄러워졌다.

낯뜨거움을 느꼈던 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죄송해요. 방금 점잖치 않은 말을 써서.』
자~알 한다, 새미. 거기서 왜 변명하고 앉았냐. 시어머니 앞에서 밥그릇이라도 깼냐.
『우리가 늘 이렇게 싸우는 건 아니고요, 사이가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예요.』
딘은 못난 동생을 옆으로 확 떠밀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자기에게 말을 할 적엔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굴더니 지금은 온몸으로「나는 나쁜 어린이가 아닙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돌변해도 괜찮은 건가. 여름의 날씨가 갑자기 겨울로 바뀌면 곡식은 말라죽고 질병이 창궐하는 법이다. 날씨의 변덕은 수박만한 우박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음... 그러니까 지금은 그저 의견이 맞지 않았던 것뿐이예요.』
샘은 내 말이 맞지? 형도 빨리 맞다고 해, 이런 투로 눈치껏 운전석을 힐끗거렸다.
딘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려, 넌 집채만한 우박에 맞아 죽어도 싸.

욱씬거리는 통증을 호소하는 목덜미를 세게 눌렀다. 옛 속담에도 호랑이 굴이 무너지면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 아, 거기서 무너진게 호랑이 굴이 아니던가. 아무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잡소린 그만두고 나와서 형이나 도와.』
딘은 투철한 직업 정신에 입각하여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었다.
『쇠파이프로?!』
샘은 믿을 수 없다며 눈을 치켜떴다.
『미쳤어?!』

유령은 순철을 싫어한다. 그래서 헌터들은 몸을 방어하기 위해 순철로 만든 나이프를 하나쯤 소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베고 찌르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다. 순수한 철은 관리가 어려울뿐더러 너무 물러 무기로서의 기능을 100%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가정이나 군대에서 사용하는 칼에는 크롬, 니켈, 텅스텐, 바나듐 같은 금속이 첨가된다. 최근에는 비철인 티타늄이나 세라믹 재질로만 만들어진 것도 통용되는 추세다. 다시 말해 아무 가게로 들어가 별 생각 없이 25달러짜리 중국산 칼을 구입하면 귀신은 혓바닥을 메롱거리게 된다는 말씀, 그래서 윈체스터 형제들은 장식용 칼은 진작에 관두고 공사장에서 슬쩍해온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편을 선호했다. 운동장에서 야구 배트 휘두르는 감각으로 적들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는 것이다.

『그걸로 저 사람을 치겠다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동생을 향해 딘은 대놓고 눈을 흘겼다. 그리고 신성한 의무를 떠넘겼다.
『최근에 이 형이 아팠잖니.』
『뭐?! 나, 나보고 이 사람을 치라고?!』
『응.』
그게 우리가 늘 하던 일이잖아 - 딘은 가볍게 응수하고 뒷트렁크를 도로 닫았다.

『싫어! 천사를 쇠파이프로 때렸다고 나중에 하느님에게 작살나게 혼나면 어쩌라고!』
『글쎄다. 난 오히려 천사를 사칭한 놈을 잡아줘서 고맙다고 감사패를 받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딘은 특유의「하겠다는 거야, 아님 말겠다는 거야」으름장을 놓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되기 위해선 특별한 역경을 뛰어넘어야 한다며 가서 여자애 치마를 들추고 오라 명령했을 때가 생각났다. 딘은 그런 면에선 대단히 모질었다. 죽은 개구리를 머리에 올려놓기도 했었고, 납작하게 눌린 바퀴벌레를 운동화 밑창 아래로 끼워넣기도 했다. 축구공만 잘 찬다고 딘 윈체스터의 자랑스런 동생이 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무릇 남자라면 - 이가 갈린다 - 곱게 빗은 여자애들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겨 리본 장식이 된 머리핀이 땅바닥에 떨어지게끔 해야 했다.
샘은 방광이 오줌으로 가득 차기라도 한 것처럼 안절부절해 하며 뒷자석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덩치 큰 상급생과 붙어 주먹질을 하는 건 차라리 괜찮다. 하지만 여자애들을 울리는 건 질색이다. 마찬가지로 무저항의 귀신 코딱지 등등을 공격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 이상 가능한 냅두고자 하는게 그의 바람이다. 딘은 그런 동생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언젠가 큰 화를 불러올 거라 경고하곤 했으나... 젠장, 세상엔 긁어 부스럼이라는게 분명히 존재한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초록 점퍼의 사내는 샘이 보기에 매우 익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찌든 양말을 싱크대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딘에게 제대로 짜증을 부릴 적에 그가 짓곤 하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못할 짓이다.

『오해가 없도록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이봐, 샘!』
『제발, 딘!』
게거품을 무는 딘을 향해 애원의 몸짓을 보인 뒤, 샘은 이마로 베어나온 축축한 땀을 닦았다.
『아무튼 설명하겠습니다.』
「부디 그렇게 하십시오.」
『이것은 쇠파이프입니다.』
「저도 압니다.」
『부탁이니 그런 눈초리로 쳐다보지 말아주시겠어요. 아무튼 이 빨간 부분은 피가 아녜요. 녹이 슬어 그런 겁니다. 우린 이걸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요.』
「정말입니까. 뒷트렁크에서 그걸 꺼내든게 어쩐지 지금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만. 당신네들, 그걸로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요. 설마... 강도질?」
『아니예요! 우린 고속도로 강도가 아니예요! 그러니까 이건... 음, 얘기하자면 복잡한데...』
말을 대충 얼버무린 샘은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냉장고에 자석 붙이듯이 해서 살짝 들이밀었다.
파이프의 끝자락이 사내의 옷에 톡 하고 닿았다. 그게「휘둘러댄다」라는 사전적 의미와는 하나도 맞지 않는 행동인지라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딘은 숨이 막혀 죽으려 했다.
『이 계집애야!』
『젠장,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설명은 차분히 들을테니 그 흉물은 일단 치우고 봅시다. 그래도 되겠지요?」
기분이 불쾌한 것이 분명한 사내가 창백한 손을 들어 쇠파이프를 가만히 밀어냈다.

샘은 눈을 휘둥글 치켜떴다. 놀란 건 당연하고 기뻐서 손뼉까지 쳤다.
『딘! 이거 봤어?! 방금 전에 이거 봤냐고! 이 사람이 쇠파이프를 만졌어!』
진짜로 이 사람은 천사인가봐, 외치며 환하게 웃었다.

끔찍스런 두통을 느낀 딘은 머리통을 감싸쥐고 주저앉았다.

Posted by 미야

2008/11/14 11:16 2008/11/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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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4 13:30 # M/D Reply Permalink

    수업들어가기 전인데 정신줄을 놓고 끅끅거리는 여자가 여기 하나..ㅠㅠ
    미야님의 윈체스터즈는 거사를 치르든 말든 상관없이 엄청나게 유쾌하고 짠합니다. 은혜로운 글에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이전의 티스토리 초대장은 메일을 늦게 확인하는 바람에 제 때에 보내드리지 못했는데, 잘 해결되어 다행이에요.)

  2. 달비 2008/11/14 13:37 # M/D Reply Permalink

    두통으로 주저앉는 딘은 참 동정이 가지만.. 샘 너무 귀여운걸요ㅎㅎㅎ

  3. 테리온 2008/11/14 15:35 # M/D Reply Permalink

    애들처럼 투닥거리고 말싸움 하는 형제 좋군요.갑자기 시즌 초반때가 생각나서 애틋해지고..

  4. 쥬레스 2008/11/14 20:36 # M/D Reply Permalink

    아아 오랜만에 보는 문라...ㅠㅠ

    역시 형제는 투닥대는 그 맛에(...응?)

    이번 내용 좀 춈 짱이네요 ㅋㅋㅋㅋ

    오랫동안 기다렸던 보람이 있었어요; ㅅ;

  5. 안전제일 2008/11/15 14:26 # M/D Reply Permalink

    역시 이 형제는 이런게 좋아요..ㅠ.ㅠ

    잘읽었습니다.ㅠ

  6. 나마리에 2008/11/15 15:26 # M/D Reply Permalink

    와~~ 드디어 올라왔닷~ 하고 기뻐서 읽다보니.. 어느 사이에 이 단계 저 단계 다 뛰어넘은 건가요? 하하핳하하하 타임라인이 어렵. ㅎㅎㅎㅎ
    너무 귀여워요~ ^^ 조나단(이 아니라고 했지만) 천사도 귀엽네요.
    아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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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딘을 좋아하면서 딘샘이면 이상한 건가요? 알게 뭐람, 샘 굴리자.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날 수를 다 채우고 바닥으로 찢겨져나간 10월의 달력은 윈체스터 가문에선「凶 」을 상징한다.
이맘때면 딘은 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형을 마주 대하는 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닥쳐올 겨울을 암시하는 회색의 하늘이 모든 걸 대변한다. 11월은 영 재수가 없다.

격렬한 근육통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다. 모텔에서 제공한 이불이 얇았나, 어깨가 춥다. 어쩌면 몸살 기운이 있는 건지도... 그렇게 몸을 뒤척이다 진실을 깨달았다. 악령이 되어버린 남자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 탓에 어깨부터 등허리까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물도 없이 억지로 삼킨 타이레놀은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않았다.
『끄응.』
이게 내 팔이 맞나 싶은 걸 억지로 굽혀 손목시계부터 확인했다. 오전 8시 13분,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어중간한 아침이다. 다만 오늘이 평일이 아닌 일요일이라는 걸 감안하자면 아마도 빠른 편에 속할 것이다. 직장 생활에 지친 평범한 미국인들은「난 닭이고, 당나귀예요. 깨우지만 말아요」호소하며 베개를 힘껏 붙들고 있을 터, 부족한 잠을 보충한답시고 맘껏 게으름을 부려도 괜찮은게 일요일 아침이다. 하느님도 쉬었다는데 인간이라고 쉬지 못할 까닭은 없다. 일중독자 부장님과 사장님은 물렀거라. 시간은 잔잔한 시냇물처럼 느릿느릿 흘러갔다.

버릇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웃한 침대를 살폈다.
아침 잠이 많은 딘은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올린 채 몸을 둥글게 말고 있다.「좋은 아침, 새미」라고 인사를 해주지 않는 걸로 봐선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숨죽인 채 단순히 그런 척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굳모닝 인사를 받지 못했다고 심통이 나던 시절과는 진작에 작별했다. 소년은 그런 걸로 상처받지 않는다. 11월 2일, 기뻐하자. 오늘은 축복 가득한 일요일이다.

세면대 앞에 선 젊은이는 무척이나 초라해 보였다. 피부는 거칠고 눈가엔 잔주름이 깊었다. 그리고 눈동자에 빛이 없었다. 창백한 형광등 탓이 아니다. 갈가리 찢겨 피 흘리는 심장을 가진 사람 특유의 음습함이 그곳에 있었다.
『내 이름은 샘 윈체스터입니다.』
겨우 한 발자국 이웃한 곳으로 바닥없는 절망이 넘실거리고 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긴장하지 않으면.
눈을 감은 채 1분 정도 깊은 심호흡을 했다.
주의하자. 실수로 고꾸라지는 날엔 통째로 새카만 어둠에 삼켜지게 된다.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풍선껌 맛의 치약을 짜서 꼼꼼하게 칫솔질을 하기 시작했다.
분홍색의 치약은 순식간에 새하얀 거품으로 바뀌어 입안에 가득 찼다. 아랑곳하지 않고 구석구석 문질러 닦았다. 오른쪽, 왼쪽, 위쪽, 아래쪽, 따끔한 감각에 거품을 뱉어내자 약간의 피가 섞였다. 눈살을 찌푸리고 수도꼭지를 틀어 벌거적적한 흔적을 지웠다. 잇몸이 약해진 모양이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 섭취를 늘려야 할 것이다.

《난 정말 잘났어, 이렇게 대단할 수가, 너무 멋있어서 무서울 정도야~♪》
스텐포드 대학교에서 만난 그의 괴짜 친구는 하루에 세 번씩 저 말을 반복하곤 했다. 이른바 긍정적 마인드를 위한 자기 암시다.
《헤이! 댁도 어서 날 따라서 말해보라우. 땅만 쳐다보지 말고.》
리처드는 샘이 수줍음 많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런 행동이 도서관 책벌레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난 정말 잘났어~♬ 크게 외치라우, 전액 장학생 샘. 으쓱, 으쓱. 대단해~♬》
오해다. 샘이 입을 꼭 다물고 그 흉물스런 대사를 따라하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 샘은 땀이 흥건한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지르며 억지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히려 밑바닥 별종이지.

비누칠도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오늘에 이르러 그 별종에겐「하느님의 사자마저 난감해한」이라는 요란한 수식어까지 따라붙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의 어머니도, 여자 친구도 죄 없이 죽임을 당해 천장에 매달렸다. 희생제물의 갈려진 배로 흘러내린 붉은 피는 샘의 얼굴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가엾은 여자들의 몸으로 검푸른 불길이 치솟았고, 그는 살과 내장이 타들어가는 매캐한 연기를 코로 들이마셨다. 그러고도 평범함을 갈구한다면 미친놈이다. 애초부터 잘못되었다. 아예 태어나지 말 것을...
신경질적으로 거울을 문질렀다. 하지만 반사된 영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태어났기에 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못 견뎌하며 입술을 깨물어도 거울 저편의 청년은 그 행동을 똑같이 따라할 뿐이다.

『아침이야. 그만 일어나, 딘.』
자는 척하고 있는게 맞았다. 이불 속에서 몸을 말고 있던 딘은「망할, 내 바지 어딨어」등등의 어줍잖은 대사를 주워삼키지 않았다. 대신 팔을 뻗어 협탁에 놓인 리모컨을 쥐었고, 달팽이가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는 느릿한 동작으로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전원이 켜진 텔레비전에선 식칼로 통통통 양파를 써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눈치껏 보자면 호텔 주방장이 출연하는 전문 요리 프로그램은 아니고 결혼 12년차 주부가 자신만의 솜씨를 자랑하는 듯했다. 분홍색 앞치마를 걸치고 열심히 야채를 다듬는 모습은「엄마」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통조림 콩을 꺼내들고「인스턴트 식품이 모두 죄악인 건 아니랍니다」설명했다. 아니, 그게 죄악이 아니란 말이야? - 딘이 콧방귀를 뀌는 것과 동시에 냄비에 콩이 쏟아졌다. 옆에서 허둥거리는 남편이「여보, 내 넥타이가 안 보여」라고 말하면 딱일 것 같다. 평범하고 또 평범하다. 딘은 그걸 감정이 상실된 무뚝뚝한 얼굴로 지켜봤다.

『딘?』
재촉한 것도 아닌데 그는 리모컨을 다시 들어 채널을 바꿨다. 화면은 차분한 파란색이 되었고 패널로 참석한 저널리스트가 11월 4일에 치러질 미국 대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연필로 종이 모서리를 꾹꾹 찔러가며 세치 혀로 일장연설을 퍼부어댔다. 그렇다고 해도 윈체스터 형제들은 정치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망할 릴리스가 루시퍼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점엔 변화가 없을뿐더러 도움도 되어주지 않을 것이다. 의회에서 악마부활 금지법을 통과시키고 초자연적 빙의방지 특별 위원회를 결성시킬 성 싶은가. 껄껄 웃으면서「뭐? 악마? 루시퍼? 그건 새로 찍는 맨인블랙 3탄이오?」이죽거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딘은 한참동안 텔레비전 너머를 쳐다봤다. 그러다 변화의 미국 등등의 이야기를 한쪽 귀로 흘리면서 방광을 비우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샘의 귀로는 자신의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는 딘이 아직까지 자기에게 단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셔츠의 단추를 목 위에까지 차곡차곡 잠궜다.
남들이 얼굴색이 왜 좋지 않으냐 질문하면 이렇다 대답할 핑계꺼리가 필요하다.

『촌구석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이 시간에 문을 연 가게가 있을지 모르겠다.』
글쎄다. 거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서 이곳이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닌 꾸며진 영화 세트장인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앞에서부터 뒤쪽까지 빙 둘러봐도 셔터가 내려진 가게가 대부분이다. 장삿꾼들끼리 사전에「주일은 온전히 쉽니다」약속이라도 한 모양이다. 알렉산드리아의 등대인양 홀로 문을 연 곳은 간단한 물건만 취급하는 편의점이 전부, 그렇다고 열량이 많은 초컬릿 바와 콜라로 식사를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동작은 그래서 신경질적이었다. 식성이 아무리 좋아도 댓바람부터 냉동 피자로 끼니를 때우는 건 싫다. 딘은 한숨을 삼킨 채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샘의 동작은 더욱 부산스러워졌다. 시리얼에 차가운 우유를 부어먹는 건 샘도 사양하고 싶었다.
『도대체 다들 어디로 간 거야! 땅 파서 지구 반대쪽으로 사라졌나!』
딘은 재차 투덜거렸고, 샘은 아예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음식점을 하나 보긴 했는데 잘못 본게 아니라면 앞에 걸린 푯말은「닫혔음」이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평범한 샌드위치일 뿐인데. 쳇.』
조수석에 앉은 샘은 딘의 불평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원.하.는. 평.범.한. 샌.드.위.치.

못 찾을 만도 하다. 영원히 구할 수 없으리라.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일요일은 싫어.』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할 발언을 입에 담은 딘은 길게 내민 입을 삐죽거렸다.
『따뜻한 밥 한 숟갈 제대로 먹기 힘들고.』
그들은 15분 전부터 문을 연 식당을 찾는 일을 포기했다.
『청승맞게 이 꼴이 다 뭐야.』
시골의 식당은 일요일엔 문을 열지 않는다. 촌부들은 배를 곪는 외지인이라는게 뭔지 모른다.
딘은 교회로 가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노부부를 정신줄 놓고 쳐다봤다.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으로 지팡이를 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평온해보여 화가 치민다. 천천히 길을 걷는 노인의 온화한 분위기가 비뚫어진 마음 구석을 자극했다. 타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불행을 깨닫는 건 비참하다. 깊숙이 파인 세 줄의 이마 주름은 그래서 도로 펴지지 않았다.

『젠장, 미친 척하고 교회라도 갈까.』
『에? 딘은 기도를 하지 않잖아.』
『그래도 넌 기도하잖니.』
거기까지 말한 딘은 동생의 멍이 들지 않은 쪽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가서 하느님에게「가게 문을 열어주세요」라고 해.』
샘은 살짝 웃었다.
『진심이야?』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리는 것이리라. 딘은 이것밖엔 할 일이 없다는 투로 자신의 발잔등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신발코에 생긴 얼룩이 양파를 닮았다고 상상하는 듯했다.
무려 5분간이나.

샘의 미소는 맹물이 잔뜩 들어간 오렌지 주스처럼 서서히 그 맛을 잃어갔다.
악수를 청한 손을 감싸쥔 카스티엘의 피부는 냉랭했다. 온기라곤 터럭만큼도 없었다.
「샘 윈체스터. 악마의 피가 흐르는 소년...」
그는 모든 불행의 원흉이다.
더러운 피.
모두를 비참하게 만든다.

『미안.』
딘은 동생의 사과를「창피해서 그런 걸로는 기도할 수 없어」로 해석한 것 같았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쓰게 웃었다.
『하긴, 카스티엘이 알면 대놓고 우릴 비웃어댈 걸. 전능하신 양반에게 고작 기도한다는게 밥 좀 줘요, 라니. 내가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사람이 한 끼 굶는다고 설마 죽겠냐. 관둬, 관둬. 기도따위 하지 않아도 돼. 교회엔 가지 말자.』
『딘.』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야.』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피로한 목구멍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듯한 거친 소리만 튀어나왔다.
샘은 한참 뒤에야 그게 울음을 닮았다는 걸 깨닫곤 소스라쳤다.

Posted by 미야

2008/11/06 21:12 2008/11/0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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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테리온 2008/11/07 14:39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미야님..항상 팬픽 즐겁게 보고있는 팬입니다.
    맨날 와서 글만 몰래보고 가곤했는데, 오늘 앞에 쓰신 글때문에 도저히 리플을 달지 않을수 없었어요.:D
    전 이제껏 저만 딘 좋아하면서 딘샘 지지하는줄알았거든요. 딘샘쓰시는 분들이 거의 샘 팬분이셔서 미야님도 당연히 그러실줄알고있었지 뭡니까.
    아무튼 지금 너무 반가워서 혼자 좋아하고 있는 중이고..
    으아...아무튼 소설 너무 잘 보고있습니다.헤헤

  2. 미야 2008/11/08 09:35 # M/D Reply Permalink

    나름 장문의 댓글을 썼는데 엔터를 누르자「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당」으로 나오면 사람은 그저 기가 막혀 죽는 거예요. 이놈의 업체를 갈아치우던가 해야지, 원... 그런데 호스팅 서비스를 옮기는 건 장난이 아님. 흑흑. 다 때려쳐.

    아무튼 제가 슈퍼내츄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건 딘 윈체스터에게 반했기 때문이었고, 당시에는 샘 윈체스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싫어했죠. 이런 대왕 싸가지(지송), 형보다 못 생긴게(지송), 머리도 떡져서(지송), 도도한 척 신경질은 다 부리고(지송), 형의 뼛골 빼먹는 놈(지송).
    그랬던 제가「새미 예쁘다」조심스럽게 말을 바꾸기 시작한 건 순전히 딘 횽아의 동생 사랑이 안드로메다 여왕 프로메슘이 화투짝을 치다 쓰리고를 외친 것을 능가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 뭔 소린지. 아무튼 그런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둘이 합쳐 윈체스터라고 지인에게 설파하고 있고, 형님의 입장에 동조하여 동생 사랑도 부르짖고 있습니다. 까놓고 말해 임팔라 부릉부릉도 형님의 것, 새미 윈체스터도 형님의 것, 콜트도 형님의 것, 카스티엘도 형님의 것(뭐?)라는 거듸요. 써놓고 보니 제 사상이 딘 총공인 것처럼 보입니다만,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슈퍼내츄럴은 가족애를 그린 드라마다」라고 떠들며 달아나겠습니다. 저건 제가 한 말도 아녜요. 크립키 대머리 대마왕이 분명 그렇게 말했쩌요.

  3. 달비 2008/11/09 22:28 # M/D Reply Permalink

    참.. 그저 감사하단 말씀을 어딘가에는 적고 싶어서요...^^ 저도 딘 윈체스터에 반해서 슈내를 봤고 동생욕을 바가지로 했었고.. 역시나 형의 앞뒤위아래없는 동생사랑에 동조되서 한 3시즌(응?)부터 새미에게 좀 이뿌구나 라고... ㅎㅎ 미야님은 소설을 써도 댓글을 써도 흡입력이 대단하세요.. 소설을 감사히 잘 읽고있습니다. 골쪽방을 헤매며 밤을 보낸지 이제 일주일이 되어가네요.. 세상에 미야님을 이년전에 알았다면 물론 더 기뻤겠지만 그당시 취업준비중이였었죠;;; 지금이라도 골쪽빵을 알게되서 참 행복합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4. 달려라 딘 2008/11/10 01:06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저두 미야님 페이지에 자주 들려서 즐거워하는 유령 팬입니당. 모든게 딘 꺼 <-라는 미야님 말에 으앗, 완전 내 마음과 씽크로 되는 느낌에 심박동이 진동을 일으켜서 저도모르게 이상한 이름 달면서 덧글을 달아요. 정말 매번 잘 보고 있구요. 답장해줘야한다는 압박감은 받지않으셔두 되요. 님은 쵝오니깐요. ㅋㅋㅋ 그리고 개인적으로... 왈왈과 JJ시리즈도 무척이나 정말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 되어가면서 잘 봤습니다. 다음편도 올라왔으면하고..살피곤 한답니다. 이히히 ^^* 행복하세요. ^^

  5. 테리온 2008/11/10 01:48 # M/D Reply Permalink

    앗..두번씩이나 답글을 달게 되는군요..;;
    까놓고 말해 임팔라 부릉부릉도 형님의 것, 새미 윈체스터도 형님의 것, 콜트도 형님의 것, 카스티엘도 형님의 것(뭐?)라는 거듸요. 써놓고 보니 제 사상이 딘 총공인 것처럼 보입니다만<--이거이거 진짜 공감이예요.

    저도 아직까지 슈퍼내추럴을 보고 있는게 딘 윈체스터에게 반해서 거든요.하하...
    게다가 1시즌 중반에 새미 정말 싫어했는데,형한테 애정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다시 좋아졌어요;;;;
    정말 딘에 대한 애정하나로 샘이 몬스터가 됬든,딘이 꼬꼬마 초딩이되어가던,
    아무리 봐도 분위기가 리버스가 될거같던 어찌됬든 딘 총공을 유지하려고 발악하고 있어요.
    다른건 모르겠는데 딘이 심하게(?)깔리는거;;보면 가슴이 그냥 찢어지더군요..
    뭐 그래도 일단 샘딘쓰시는 분중에도 좋아하는 분이 꽤 있다는...;;Orz
    아..너무 수다가 길었습니다.
    아무튼 미야님 글 정말 재밌게 잘보고있어요.;ㅁ;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6. 바자소녀 2009/02/28 04:48 # M/D Reply Permalink

    저도 미야님 댓글 읽으면서 완전 동의하고 있는 중이에요~~저어게 있어 딘 오라버니는 강한 분!! 뭐든 가질 자격이 있는 분이죠~~ㅋㅋ 슈내 안의 모든 건 다 딘오라버니님의 것 입니다^^
    갠적으로 영어울렁증 때문에 미드를 못보던 저에게 무한 반복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분이 딘오라버니죠~~거의 이틀만에 1,2기와 3기 나온 부분까지 다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저도 미야님 처럼 처음엔 샘이 좋아지질 않았답니다~샘이 좋아진 것도 딘의 샘 한정 무한 편애에 물들어서 그런 것 같다는^^;;ㅋㅋ
    아무튼 저도 딘오라버니 총공 완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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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다가 끄적이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밖으로 나간 형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샘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텔에서의 체크아웃은 오전 12시가 기준으로 (* 아니면 말고) 착착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시곗바늘은「이대로라면 싫든 좋든 하루 투숙비를 더 내야할 걸세」라며 낮은 목소리로 주장했다.
하루 더 머문다고 누가 뭐랄 것은 없겠으나 샘은 그들이 머물던 방이 정말 싫었다.
썩은 이끼색의 외벽은 촌스러웠고, 굵직한 무늬의 벽지와 카펫은 지나치게 현란했다. 거기다 초록색 소파와 보라색 침대커버의 조화라니. 천장에 거울이 달린 것만큼이나 현기증이 난다. 어느 인테리어 업자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정리하던 가방에서 손을 떼어내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으로 맞은편 침대로 시선을 주었다. 상대적으로 동생보다 늘 늦게 기지개를 켜고, 동생보다 늘 지저분하던 딘은「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다」라는 걸 몸소 보여주며 모든 정리를 일찌감치 끝마쳤다. 아무도 자리에 눕지 않았다는 식으로 시트는 주름 하나 없고 베개는 부동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불의 모습만 보자면 시끄럽게 코를 고는 그의 형은 샘의 머릿속에서 나온 환상이다.

경기를 일으키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혼란스러웠다. 또한 무서웠고, 안정이 되지 않았다.
환상 따위가 아니야. 딘은 여기에 나와 같이 분명 있었어.
참을 수가 없어져 일부러 시트자락을 헝클어뜨렸다.
창문 너머로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뚜벅뚜벅 걷는 기척. 에취 재채기 소리...
이제 곧 종업원이 방들을 청소하러 들이닥칠 것이다. 샘은 숙였던 머리를 똑바로 들었다.

소지품을 모두 끌어내 임팔라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두 다리를 써가며 온 동네를 정처없이 휘저었다. 여기 마을은 규모가 작다. 주민의 수는 기껏해야 1,214명밖에 되지 않는다.
샘은 제일 먼저 도넛 가게로 찾아가 커피 향기에 반응하며 코를 킁킁거렸다. 찢어지게 하품을 하던 어린 점원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보조 테이블을 걸레로 문질렀다. 그래봤자 졸음이 길게 매달린 속눈썹은 무거워 보였다. 할로윈 파티의 후유증이다. 친구들과 마신 술이 채 깨지 않아 지금이 21세기가 아니라 3세기 전쯤 앞당겨 살고 온 것 같은 그런 기분일 터, 샘이 서있는 방향에선 등만 보일 거라 판단한 점원은 재차 하품을 터뜨렸고 테이블을 닦는 동작은 점점 더 둔해졌다.
아무튼 딘 윈체스터는 이곳엔 없다. 샘은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를 사서 손에 쥐고 가게를 나왔다.

핸드폰으로 연락하면 아마도 딘은 곧장 대답할 것이다.
《여어, 얼간아. 숨을 헐떡거리며 뭔 일이고?》
호주머니로 넣던 손을 도로 뺐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은지 그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전화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1월 1일, 토요일.
가판대에서 여러 종류의 선정적인 잡지와 신문을 팔던 흑인 남자는 딘을 기억하지 못했다.
『날씨가 매우 좋죠?』
하느님의 사자로부터 그 삶을 온전히 빼앗길 뻔했던 1,214명 중의 한 명인 그는 종말이 자신에게서 비켜간 것 역시 알지 못했다.
『이런 날엔 꽤 멀리까지 산책을 나가도 될 거예요.』
다이어트 펩시를 홀짝거리던 사내는 눈부신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래봤자 눈에 익은 고슴도치 머리통을 찾아「99센트 스토어」쪽을 기웃거리던 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요즘은 물가가 많이 올라서...』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흑인 남자는 손사레를 쳤다.
『99센트짜리 물건은 이제 애들 풍선껌밖엔 남지 않았죠. 중국에서 수입한 싸구려 고무 깔창도 1달러가 넘어요. 클린턴 시절엔 안 그랬는데 진짜지...』
듣는둥 마는둥 해가며 주말 신문을 1부 구입했다.
헤드라인을 장식한 기사는「할로윈 대소동, 공동묘지에서 시체가 진짜로 부활하다?」였다.

바람이 불어와 샘의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했다.
딘은 공원 벤치에 앉아 야구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공들의 방향을 좇아 그의 머리와 좌우로 왔다갔다 움직였다. 와, 하고 함성이 일었다. 빨간색 운동화를 신은 소년이 공을 줍기 위해 달려 나갔다. 귀를 쫑긋 세운 강아지가 이때다 하며 운동장을 가로질렀고, 최근들어 개를 끔찍하게 혐오하게 된 딘은 다리를 움찔 오무렸다. 글쎄다, 공을 먼저 줍는게 임자라면 소년은 오늘 입장이 꽤나 곤란하게 될 것이다. 풀밭에 떨어진 공을 입에 물고 꽤나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은 개는 이미 반대편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아나는 중이었다.
『형.』
그는 길을 잃은 노인처럼 보였다. 피부에 주름이 많이 잡혔다는 얘기가 아니다. 국물이 튄 더러운 바지를 입고 셔츠 단추를 엇갈려 채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뭐랄까... 그랬다. 딘은 끔찍하게 지쳐 있었다.
『여기 있었네?』
딘은 심란한 적마다 늘 그랬듯이 오른손에 낀 반지를 빙글빙글 돌렸다.
『아아.』
그러다 곧 그 행동을 그만두었다.
『샘... 왔니?』

토요일, 11월의 첫째 날.
사탕을 얻으러 어둠 가운데로 쏘다니던 할로윈의 밤은 이미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다.
『내 공을 돌려줘, 스투피~! 돌려달라니까!』
화난 아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몇몇의 어른이 그 광경에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스투피~!!』
야구를 다시 시작하려면 이제 그들은 흥분한 개를 먼저 붙잡아야 할 것이다.

어느새 딘도 빙그레 따라 웃기 시작했다.
저 멍청한 개는 자칫하면 오늘이 제삿날일 수도 있겠군 - 약간의 심통도 섞여있긴 했지만, 아무튼 세상은 겉으로 봐선 젼혀 변하지 않았다. 목을 뻣뻣이 세워가며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느냐를 따지는 것이 우스워질 정도로 한결 같았다. 그네를 타는 소녀들이 만화 주제가를 허밍하고, 엄마들이 손을 흔들었다. 구석에선 닌텐도 게임기를 두고 싸움이 났다. 보다 덩치가 큰 소년이 게임기를 오래 차지하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다. 이를 얄밉게 느낀 소년이 덩치의 등을 두 팔로 확 떠밀었다.「5분만 한다고 그랬잖아!」진짜지 질리도록 변함이 없는 세계다.

『그러고보니 이 형은 너랑 야구를 한 기억이 없구나.』
『그야 우리 형편에 야구 글러브는 비쌌으니까.』
『야구 글러브는 핑계다, 너. 손목 힘이 형편없어 공을 던지라고 하면 발잔등 아래로 뚝 떨어뜨리곤 하던 녀석과 캐치볼 놀이가 가능했을 것 같냐.』
『실례야! 멀리 던질 수 있었어! 다만 방향 조절이 잘 되질 않아서... 힘껏 던지면 맨날 유리창이 깨졌지. 그래서 일부러 살살 던졌던 거야!』
『아이고, 무서워. 알았어, 이 지지배야. 그렇게 눈 부릅뜨고 말하니까 무섭다, 얘.』
『정말이라니까!』

샘은 신문을 둥글게 말아 그걸로 벤치의 등받이 부분을 탁탁 두들겼다.
초겨울의 바람이 다시 불었고, 나뭇잎이 사방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샘은 고개를 조금 숙이고 눈썹을 찌푸렸다.
누렇게 바랜 작은 잎사귀 하나가 딘의 어깨로 내려앉았다.

『우린 옳은 결정을 내린 거야.』
딘은 둥글게 말았던 손을 내리고 보다 자세를 편안하게 했다.
『삼하인의 봉인은 풀렸고, 넌 초능력을 사용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난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영롱한 헤이즐넛 빛깔의 눈동자로 동생을 응시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덩어리져 뭉쳤던게 풀어지려 한다.
샘은 안도감과 무한의 감사를 느끼고 공 던지기에 열중하는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  아무래도 자판을 새로 사야겠사와요. 종종 Num-Lock 버튼의 불이 꺼지면서 모든 키가 먹통이 되어버리네요. 재부팅을 하거나 본체와 연결된 줄을 잡아당겼다 놓았다 하면 도로 돌아오지만 것도 한 두번이지...;; 글자 치는데 아주 전쟁이었다능. 차라리 컴퓨터를 새로 샀음 좋겠다능.

Posted by 미야

2008/11/02 21:00 2008/11/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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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나기 2008/11/02 23:57 # M/D Reply Permalink

    408이 이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한다니까요...
    또 훌쩍 건너뛰어서 임팔라안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건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ㅠ.ㅠ

  2. 음냐 2008/11/03 01:59 # M/D Reply Permalink

    우린 옳은 결정을 내린거야...좋아요 ^^
    저역시 그들이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해요..
    천사씨들이 경고를 했지만서도,,,
    좋은 일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쓴걸요 ;ㅅ;
    그리고, 전 도대체 왜 힘을 쓰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능...
    왠지 아깝다능...;ㅅ; 하지만 샘에게 심적, 육체적으로 무리가 올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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