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각각의 내용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됩니다. 배경이 2시즌 중반으로 고정되어 있으니 주의하기 바람. 따라서 아자젤은 눈 부릅뜨고 잘 살고 있고, 콜트는 행방불명된 상태입니다. ※


사랑하던 아내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난 이후로부터 존은 인간성 붕괴에 직면했다. 메리와 존이 서로 팔을 끼고 사이좋게 언덕을 나란히 내려가는 장면을 목격할 적마다 부러움으로 가득찬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은 이내 까다로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존은 목욕도 하지 않았다. 면도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잠도 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늘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형용하기 힘든 분노에 몸을 태우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체중이 눈에 띄게 줄었고, 눈빛이 변했다. 그는 술병을 입에 달고 있었다.

자네에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네.
딘은 기억한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난지 아마 넉 달이 지난 시점이었을게다. 양복을 그럭저럭 차려입은 사내가 초인종을 누르고 인사했다. 딘은 겁에 질려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고, 그는 무뚝뚝한 어조로 자신이 존의 직장 상사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리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썩기 시작한 토마토 스프 깡통과 구석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더러운 아기 기저귀를 보고 경악했다. 남자는 너무 오래 입어 세탁이 절실해 보이는 딘의 옷과 새카만 때가 낀 손톱을 눈여겨 보았다. 그의 눈이 커졌다. 최악의 무언가를 상상했던지 존을 향해 홱 돌아서는 그 모습은 타이어가 펑크난 자동차를 향해 들입다 발길질하는 성난 젊은이를 많이 닮아 있었다.

「맙소사, 존!」
「시끄럽소. 사직서는 우편으로 제출했으니 다 끝난 거 아니오? 저리 꺼지쇼!」
「이보게! 자네가 지금 어떤 심정일지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닐세.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야지! 애에게 밥은 먹이고 있는 거 맞나?! 게다가 둘째는 아직 젖먹이잖나!」
「제기랄! 나도 노력하고 있소. 노력하고 있단 말이오.」
「하아... 이게 그 노력이라는 건가? 그 망할 보드카는 그만 마셔, 이 한심한 작자야. 멍청하게 굴지 말아. 자네가 그렇게 주장해봤자 남의 눈엔 그렇게 안 보인단 말일세.」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잠에서 깬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제기랄, 존!」
「뭐요!」
「아기가 울고 있잖는가!」
「누가 어쨌다고.」
「자네 아들이 울고 있다고!」

무겁게 침체되어 있던 주변 공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남자는 그가 버럭 화를 내며 아기를 다치게 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존은 예상과는 달리 샘을 부드럽게 안아 싱크대 쪽으로 데리고 갔다. 딘은 그 시선을 아기에게 고정시킨 채 그 뒤를 뒤뚱뒤뚱 따라갔다.
「똥을 쌌소.」
「뭐?! 지금 내가 똥 같다고?!」
「욕을 한게 아니오, 아서. 있는 그대로일 뿐이오. 새뮤얼이 똥을 쌌소.」
존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첨벙첨벙 물 튀기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샘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엄지손가락을 빨았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화재 이전으로 - 마음이 초토화되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랬다. 벼랑 끝에 선 위태위태한 남자를 현실로 붙들어 매어놓은 존재는 바로 샘이었다. 그 작은 아기가 아니었다면 존은 사람이 건너선 안 되는 울타리를 훨씬 오래 전에 넘어갔을지 모른다. 뭐, 일반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쌍방 간의 영역 침범은 진작에 이루어진지 오래지만... 그건 그렇다치고. 요점은 이렇다.
딘이 코를 훌쩍였을 적엔 전혀 인식을 못 하던 남자가 샘이 울자 반응을 보였다는 거다.

노력하고 있다는 존의 말은 어디까지나 사실이었다. 그는 젖병을 데우기 위해 짜증나는 전자렌지의 작동 설명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그러고도 실패하자 - 모르긴 몰라도 해병으로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다 - A/S 센터로 전화를 걸어「설명서대로 전자렌지에 물을 담은 알루미늄 냄비를 넣고 빨간 단추를 눌렀소. 그런데 시퍼런 불꽃이 팟 하고 튀었소. 뭐가 문제요?」라고 질문했다. 샘이 우유를 토하자 팔꿈치를 책상 위에 걸친 채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의 턱 바로 아래로는 글자가 빽빽이 적힌 두툼한 책이 펼쳐져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이「정글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법」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명확해서 딘은 아버지를 향해 어린 동생이 아무래도 아픈 것 같다는 말을 구태여 두 번씩 반복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샘을 진심으로 사랑하셔.
그 점에 대해 불만은 딱히 없다.
나는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눈치지만.
새미만 건강하면 되었다. 억울하다 항의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너 자신을 돌보기 전에 동생을 먼저 살펴라. 그것이 네 의무다」라는 존의 명령엔 반박이 불가능했다. 오히려 존의 그 요구는「하느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옳은 것처럼 여겨졌다. 딘은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였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잠자리에서 깨어나자마자 샘을 살폈고,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동생의 안색을 확인했다.
정작 샘은 그 일을 당연히 여기지 않았다는 다소 복잡한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형은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 말고 따로 하고 싶은 건 없어?
아이들은 잡초처럼 빨리 자란다.
나에게 신경쓰지마. 난 괜찮으니까.
간섭받는다고 여기기 시작하면 반항하기 시작한다.
형은 형의 인생을 살 권리가 있어.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인생을 살 권리가 있지.
그 다음부터는 양손에 권투 글러브 끼고 격하게 펀치 팡팡이다.

그것은 그의 의무이다.
동생을 돌보는 것.
그치만 샘은 아빠 말에 무조선 순종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느님이 진짜로 천지를 창조하신 건지, 다윈의 말대로 아메바가 분열한 건지 알아서 잘 판단하라고 했다.
아빠가 하신 말씀 전부가 옳지는 않아. 형은 내가 아니라 형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해.
웃기게도 그 대사는「당신과는 결혼하지 않겠어요」처럼 들려서 딘을 아프게 만들었다. 정성을 다해 청혼했는데 여자는 싫댄다.

나는 대학에 갈 거야.
부정당한 그의 의무.
나중에 변호사가 되고 싶어.
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샘.
헌터는 되지 않아. 이런 삶은 이제 지긋지긋해. 난 독립할 거야.
상실감이 굶주린 짐승처럼 그의 등을 짓밟았다. 송두리째 모든게 뒤집힌다. 유리컵이 식탁에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아아, 기분이 안 좋다.

『그래서? 자칭 예술적인 공예품 찬장을 만드는 목수 나으리.』
딘은 자신이 한참동안 딴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응?』
『그럼 앞으로는 조수따윈 필요 없는 거야?』
어느새 다가온 예의 여자는 영화배우의 엉덩이 속살 따위에 열광하는 천박한 시선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껌 대신 육포를 질겅 씹어대면서 말이다. 딘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여자를 경계했다. 입술에 붉게 립스틱 바르고 치마만 둘렀다 싶으면 물불 안 가리는 주의라지만 색깔이 지나치게 짙은 이 여자는 어딘지 모르게 아마존의 위험한 독 개구리를 연상시켰다. 노랗고, 빨갛고, 알록달록한...
『뭐야, 언니. 아직도 안 가고 이곳에 있었어? 훠이~』
『미안허다. 갈 곳이 없어 아직도 있으시다.』
불퉁하게 대꾸하며 여자는 딘에게 표면에 이슬이 맺힌 캔맥주를 집어던졌다.
단, 아까처럼 물이 아닌, 진짜 술이었다.

입맛을 다시며 엄지손가락으로 요령껏 뚜껑을 땄다. 여자는 싫어도 맥주는 싫지 않다.
『글쎄. 아직 배워야할 것도 많으니까... 독립하기엔 이르고... 당분간은 아버지 조수 노릇을 해야겠지. 아버지 친구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그쪽으로도 가보고... 그러다 익숙해지면...』
『옳커니. 그럼 동생은 별도로 하고, 거 뭐시냐. 영업이라고 해야 하나, 장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당분간은 혼자인 거야?』
『글세.』
『헤에~♡ 그럼 나랑 같이 하는 건 어때?』
『뭐?』
『나도 톱질하는 거 꽤 잘 하거든. 이래 뵈도 팔뚝 굵다.』

그때까지 얌전히 숨죽이고 있던 샘은 목구멍 너머로 삼켰던 물을 도로 토했다. 그리고는 정말로「톱으로 써는」시늉을 리얼하게 재현하는 리를 쳐다봤다. 여기서 툭툭 잘려져 나가는 건 나무가 아니다. 한때는 사람이었고, 현재는 사람이 아닌 것들이다. 그런 것들의 목을 날카로운 무기로 베는 것이다. 톱밥을 날리며 단단한 목재를 가공하는 종류와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리의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피냄새 진동하는 살육이었다. 그래서 소름끼쳤다.
『아하하, 대패질을 아무나 하는 줄 아나.』
샘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목공 일을 연상한 딘은 말꼬리를 흐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안돼, 안돼. 여자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망치로 못 박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그쪽 언니에겐 절대로 무리. 단순해 보인다고 아무나 덥썩 덤벼들 그런 분야가 아니거든?』
『어머나~ 섭섭한 말씀. 나는 그 아무나가 아니예요. 어쩌면 내가 너보단 훨~씬 잘 할 걸?』
그러면서 리는 벽에서 튀어나온 압정을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두, 두 사람 다 자, 잠깐 기다려...』
『같이 캐나다로 가자.』
샘이 만류하려는 걸 가뿐하게 무시하며 리가 밝게 말했다.
『그곳엔 잘라내야 할 나무가 아주 많다고.』
남미에서「얼씨구나 풍년일세」입국한 뱀퍼들을 피해 미국내 뱀파이어들이 죄다 캐나다로 도주한 모양이다. 그걸 리는「나무」라고 돌려 표현했고, 아무래도 사냥은 북쪽으로 계속 번지는 듯하다. 단, 더운 기후에 익숙한 뱀퍼들이 도망치는 뱀파이어를 추적하며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추측이 곤란하다. 앞으로 6개월 뒤면 계절은 이가 시린 겨울이 되어버린다. 지독한 독감에 걸려 콧물을 훌쩍거릴 뱀퍼들은 그때쯤이면 슬슬 선인장 가득한 고향의 냄새가 그리워질 것이다.

『뭐? 캐나다? 나랑 같이?』
깊숙한 내막은 전혀 모른 채 딘은 어쩐지 재밌어 하는 눈치다.
아니나 다를까, 양팔로 아랫배를 감싼 채 눈물을 찔찔 짰다.
『이거, 이거. 서방님 정력이 영 시원찮은 모양이군. 와하하! 뭐야, 톱질은 핑계고 결국은 사랑의 도피라는 거냐. 뭐, 나쁘진 않군.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도 아니겠다, 정말로 가 버릴까, 나무 자르러. 그리고 국경을 넘자마자 눈에 띄는 가장 가까운 모텔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하던 말을 다 끝마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순식간에 새하얀 광선이 번쩍였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그렇게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 눈으로 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귀로 들은 것이다. 샘이 주먹으로 쾅 소리를 내며 테이블을 후려갈겼다. 온 힘을 다해. 말 그대로 죽을 힘으로.

덕분에 캐나다로 떠나겠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샘이 두 눈을 부릅뜨자 딘은 호되게 야단맞은 어린애처럼 몸을 움추렸다.
『씨잉.』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불평의 말들을 주워삼켰다.


※ 다음 이야기 광고 ※
그럭저럭 몸을 회복한 딘은 샘을 바비에게 데려다 주기로 결심한다. 신경질적으로 변한 샘은 완전히 손톱 세운 호랑이가 되었고,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는 그야말로 매운 고춧가루다. 이 와중에 간댕이가 부운 자칭 천사라는 수상쩍인 남자 - 유령까지 임팔라 뒷좌석에 무단 승차하면서 형제들의 싸움박질은 화산폭발 직전의 난리통으로 발전한다.
- 천사 조나단이라는 드라마도 못 보셨습니까. 저도 천사입니다.
그런데 딘? 달리는 차속에서 산탄총을 꺼내봤자지.

Posted by 미야

2008/08/27 10:47 2008/08/2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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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렐라이 2008/08/27 17:55 # M/D Reply Permalink

    아T-T 이렇게 All Wet이 마무리되었군효! 잘 읽고 갑니다 미야님T-T
    엇, 그런데 다음 이야기 광고를 보니 상황이 낯설지 않은 게...드디어 문제의 그 장면(!)이 나오며 스톱워치 신드롬의 상황과 슬쩍쿵 연결되는 것인가효? 다음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ㅜㅜ

  2. 음냐 2008/08/28 00:59 # M/D Reply Permalink

    완결 축하드려여 :D 빵긋~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날씨 감기조심하세여~

  3. 멍든물고기 2008/08/30 03:52 # M/D Reply Permalink

    헉 All wet 이 완결되었군요 축하드려요 ㅎㅎ 다음이야기도 변함없이 기대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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