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팔레 루아얄 인근의 길고 더러운 거리를 걷고 있던 오귀스트 뒤팽이「솔직히 샹티이는 덩치가 너무 작아. 그보다는 바리에테 극장이 더 잘 어울릴 거야」라고 말하는 것으로 타인의 속마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들었을 적에 비상한 추리력으로 뇌를 스캔당한 친구는 감동을 먹기는커녕 거북스러움과 위화감을 느꼈을 거라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사과 광주리, 포장석, 스테레오토미, 에피쿠로스, 니콜라스 박사, 오리온, 샹티이.
과일장수와 부딪친 친구가 삐져나온 포장석 조각을 밟고 미끌어져 발목을 긁혔는데 이후 15분간에 걸친 사고의 회로를 고스란히 따라가 구두장수에서 연극배우로 전업한 샹티이 이름을 불쑥 꺼낸다. 이게 과연 감동스러운가? 물론 책 본문에는「자네는 혹시 무당인가! 아님 천리안이라도 되는가!」외치며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뒤팽은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탐정으로 그 위대한 머리는 어디까지나 불쾌감의 대상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핀치는 셜록 홈즈의 업적을 찬미하는 왓슨 박사가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여겼다. 손가락에 묻은 쵸크 가루를 보고 그가 남아프리카 광산에 투자하지 않기로 했다는 걸 알아차리는 위험한 사람을 가까이 해선 곤란하다.
누군가 그의 머리를 들여다보는 건 사양할란다.
핀치는 예의 가식으로 잘 꾸며진 미소를 지으며,
bool accessGranted = false; // 비관적
try {
// c: est.txt에 액세스했는지 확인합니다. - 수순의 절차를 이행했다.
간단히 말해 이도저도 아니게 나름 연막을 피웠다는 얘기다.
『이곳으로 들어온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아신 거죠? 혹시 어디 반응 좀 볼까 이러고 장난삼아 꺼내본 얘기인가요?』
이 바닥에서 베테랑인 것이 분명한 윙필드는 핀치를 고스란히 흉내냈다. 그러니까 기계적으로 입술과 뺨의 얇은 근육을 잡아당겨 조잡한 웃는 표정을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해도 눈은 구부러지지 않아 붕괴된 발란스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결과적으로 미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냉소도 아니다.
『재밌네요. 의사는 모든 환자에게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말하죠. 그러니 탐정 역시 모든 의뢰인에게 미행을 당하고 있다 알려줘야 해요. 그렇지 않나요?』
『아, 네...』
『그래요. CC-TV 모니터로 수상한 사람의 행동거지를 본 것도 아닌데 어디 반응 좀 볼까 이러고 옆구리를 찔러보는 거죠.』
『감시 카메라요?』
『뉴욕은 편집증적인 도시라 이 건물 출입구에도 여러 대 달려 있답니다.』
그녀는 경찰이 아니다. 아울러 그녀의 사무실은 심문을 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세운 핀치를 보고 윙필드는 순식간에 100보 이상 물러섰다. 이 사람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 그녀는 상대에게 명함을 건네주고 대략적인 서비스 요금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반드시 의뢰를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없었고, 캐묻는 시선도 없었다. 상대가 안에서 빗장을 걸어잠구면 바깥에서 억지로 여는 건 불법 행위가 된다. 그런 까닭에 영차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먼저 일어난 사람도 데보라 윙필드 쪽이었다.
『마음이 바뀌면 다시 오십시오.』
다리가 불편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뛰었을 것이다.
초조감에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았던 핀치는 겅중거리는 걸음으로 건물에서 보다 멀리 떨어지기 위해 애썼다. 그래봤자 모든 CC-TV 카메라가 그런 그를 거리낌 없이 뒤따라올 것이 뻔했고, 팔짱을 낀 데보라 윙필드가 그 화면을 전부 보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고 있을 회색의 마녀를 확인하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15층짜리 건물은 다른 고층 빌딩에 가리워져 일부분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다한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지켜보고 있다 - 전부를 - 속속들이 파헤치며 - 머리카락 개수마저 헤아려 - 전부를 보고 있다.
아차하는 사이에 숨 쉬는 리듬을 놓쳐버렸다. 심호흡을 하며 걷는 속도를 조절하려 했으나 공황발작이라도 일으킬 참이라 이마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가슴이 뻐개지듯 아파왔다.
『!!』
누군가 재빨리 겨드랑이로 팔을 넣어 그를 부축해줬다. 잘게 부수어진 숨을 헐떡이던 핀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시야가 빙글빙글 도는 바람에 친절을 베푼 사람을 쳐다보는 일엔 실패했다. 남자는 조심해요, 앞을 봐요, 괜찮나요 등등의 말은 일절 하지 않은 채 핀치를 끌어당기며 제멋대로 걷기 시작했다.
『리스 씨.』
이름을 불러봐도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보도블럭에 발이 닿고 있는지 확신도 들지 않는 상태에서 핀치는 남자가 하자는 대로 끌려갈 뿐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걱정하는 눈초리를 보내오는 행인들을 일절 무시하고 리스는 핀치의 팔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하는 수 없이 설명은 핀치가 대신 했다.
『전 지금 이 사람에게 납치당하는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조수석에 강제로 밀어 넣어질 때까지 그 말을 도대체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웃기게도 모두로부터 납치범으로 오해받은 리스는 단 한 번도 입을 뻥끗하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은 그는 졸려 죽으려 하면서 - 계속해서 부운 눈을 꿈뻑거리며 - 교통신호를 준수하고 - 간혹 수염이 돋아난 두 뺨을 세수하듯 문지르는 것으로 쏟아지는 졸음을 무진장 참고 - 박스터 거리에 위치한 로프트로 그의 고집불통 고용주를 실어 날랐다.
『리스 씨?』
열쇠로 문을 열고 건물 내부로 들어오고 나서도 리스는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의식의 절반가량이 가수면 상태로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다. 행동은 답지 않게 굼떴고, 숨소리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눈빛도 멍했는데다 결정적으로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핀치는 그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리스 씨.』
이름을 부르는 핀치의 목소리에 반응, 두 눈을 꿈뻑거린 리스는 고용주의 캐시미어 외투를 잡아당겨 벗겼다. 넥타이도 풀었다. 양복 단추도 끌렀다. 여기까지 소요된 시간이 도합 15초, 외투를 4등분으로 접어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손가락으로 퀸 사이즈의 더블베드를 가리켰다. 아마도 저리로 가서 누우라는 의미인 듯했다.
『누우라고요?』
네, 바로 맞췄어요 - 리스의 손가락이 허공에 위치한 보이지 않는 한 점을 콕 찍었다.
핀치가 어색해하며 구두를 벗고 침대에 올라가자 리스는 얇은 하얀색 홑겹이불을 펼쳐 핀치의 다리 전부를 감쌌다. 그리고는 홀겹 이불을 반으로 반듯하게 접어 무슨 선물상자 포장하듯 핀치의 두 다리를 싸기 시작했다.
불안해하는 눈으로 쳐다보자 이번엔 베개를 가리켰다.
내용을 알아듣고 쭈삣거리며 누웠다.
그렇게 침대 한 가운데서 자리를 잡자 절반은 눈이 감긴 리스가 이불을 들어 핀치의 몸을 덮었다.
성인 남자가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인형놀이를 하고 있다 - 최소한 핀치의 판단으로는 그랬다.
『존?』
침구의 상태를 최종적으로 점검한 리스는 눈동자를 또록 굴리며 눈치를 살피느라 바쁜 핀치를 다독였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잠자리에 들 시간이에요.』
이제야 발 뻗고 잘 수 있다며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을 지은 리스는 그대로 소파로 직행했다.
코 고는 소리가 들린 건 그로부터 정확히 10초 뒤였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