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변기를 부여잡고 통곡했다.
아파서 그런 것도 아니고 : 적으로부터 심각한 고문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몸살은 애들 장난이다.
슬퍼서 그런 것도 아니고 : 제시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적에도 그는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자기혐오의 발현이었다.
마치 인간쓰레기라도 된 기분 -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와 현세와 내세를 오락가락하는 정신이 못 견딜 정도로 짜증스럽다. 토악질한 분비물의 악취는 그의 인간가치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졌다. 스위치를 여러 번 눌러 물을 흘려보냈지만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오물은 여전히 그의 뇌리에 처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똥이고, 이건 엿이다.
화장실 문밖에서 베어가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서둘러 심호흡을 했다. 변기와 어깨동무한 자세로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는 개를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갑자기 다다닥 이러고 베어가 현관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이어 문이 열리고 닫혔다.
『아빠 왔다... 베어?』
개는 열성적으로 방문자를 환영하며 제자리 뛰기를 했다. 그리고 주둥이를 사용해 핀치의 몸을 화장실 방향으로 밀어댔는데 여의치 않자 옷을 물고 잡아당기기까지 하였다. 양손에 짐 꾸러미를 들고 있었던 핀치는 사람 손을 빌려달라는 개의 요청에 난색을 표할 뿐이었다.
『베어! 진정하렴. 무슨 일인데 그러니.』
『제가 화장실에 쓰러져 죽었다 착각해서 그래요.』
창백한 유령처럼 보이는 남자가 비척거리며 걸어 나왔다. 사내는 맨발이었다.
『열은 좀 내렸습니까? 미스터 리스.』
『약은 먹었습니다.』
등을 구부정히 하고 뒤편으로 걸어가는 사내를 곁눈질하며 상의를 벗었다. 옷걸이가 지척에 있었음에도 리스와 달리 정리벽이 없는 그는 반으로 접은 옷을 소파 등받이에 걸쳐두었다. 호기심을 느낀 베어가 이빨로 소매를 잘근잘근 씹어 먹을 수도 있는데 거기까진 생각이 닿지 않은 듯했다. 하긴, 어린아이와 동물에겐 한 없이 관대한 사람이다. 눈 튀어나오게끔 비싼 넥타이를 레일라가 침으로 범벅을 만들어 못쓰게 만들었을 적에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리스는 베어가 벗어놓은 옷가지의 냄새를 맡으려 하자 쯧쯧 혀를 차는 소리를 내어 개를 멀리 쫓았다. 핀치의 냄새를 좋아하는 개가 자기 둥지로 양복을 물어갈 수도 있다. 그건 나쁜 짓이다.
자기 집처럼 곳곳이 익숙한 핀치는 집주인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꾸러미를 식탁에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체크 들어가신다.
『빈속에 약만 먹음 안 됩니다, 미스터 리스. 보아하니 또 아무것도 먹지 않았군요.』
흘러내린 안경을 도로 치켜 올린 고용주는 끌끌 소리를 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환자가 프라이팬을 쥐고 요리를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고... 그렇다고 통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하기엔 식욕이 없다. 냉장고에서 꺼내 먹은 건 사실상 물이 전부, 휑한 주방엔 빈 그릇 하나 나와 있지 않았다.
돌아서서 가지고 온 꾸러미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핀치는 요리를 하지 못한다. 어쩌면 먹기 위해 무언가를 조리하는 행위를 귀찮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리스는 그가 직접 요리하는 걸 본 적이 없고, 도마와 주방 나이프를 다루는 걸 본 적도 없다. 천문학적인 갑부답지 않게 배달음식을 잘 먹었고, 애들처럼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포장용기에 든 고기 튀김을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경우가 흔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환자에게 먹일 거라며 조리된 음식을 밖에서 사가지고 왔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안전한 용기에 내용물을 덜어 전자렌지에 집어넣고 2분 40초 데우는게 전부. 수저는 플라스틱이 아니라는게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릇을 두 개 가져와 리스에게 하나 내밀고 하나는 자기가 집어 들었다.
『이게 뭐죠?』
『야채와 해물을 곱게 다져 만든 유동식입니다. 소화가 잘 될 거예요.』
먹어보라 권하지 않고 대신 자기가 먼저 입에 넣고 삼켰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핀치의 표정만 봐서는 판단이 힘들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쩝쩝 소리를 냈고, 연거푸 수저를 들어 해물 죽을 입안에 가득 넣었다. 잠자코 남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스는 시선을 내리깔고 자기 몫의 그릇을 보았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도 눈으로는 그다지 식욕이 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흐느적거리는 식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걸 어쩌지 당황하여 다시 핀치를 쳐다보았다. 그는 빠르게 그릇을 비워나가고 있었다. 식사예절을 따지지 않아도 되었기에 입을 대고 후루룩 마시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갑자기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덩달아 게 눈 감추듯 수저로 죽을 떠먹었다.
『트레비노의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었습니까, 핀치.』
『환자는 어떻게 하면 병이 빨리 나을까 그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가 엉뚱한 물건을 잘못된 장소로 배달한 것 같다고 푸스코가 말해주더군요.』
『그런 걸 고민하니 열이 안 내리는 겁니다.』
『그치만 마약상인이 연루되어 있다면 핀치 혼자서는...』
『리스? 말 들어요.』
먼저 식사를 마친 핀치는 잘 씻은 사과를 꺼내 껍질째 먹기 시작했다. 비타민 C를 섭취하려면 껍질까지 전부 먹어주는게 좋다. 과도를 사용하는게 서툴러 그러는게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
책임량이라면서 리스에게도 사과 한 알을 건네주었다.
역시나 정리벽이 없는 사내라서 다 먹은 그릇과 수저는 그대로 방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스의 눈이 움직이는 핀치의 동작을 졸졸 따라갔다.
『핀치, 거기서 뭐해요?』
『따뜻한 물수건을 만드려고요.』
물에 적신 수건을 세 번 접어 전자렌지에 넣고 버튼을 조작했다. 땡, 소리는 금방 들렸다.
『따뜻한 물수건이 왜 필요한데요?』
『땀이 났을 거예요. 옷을 팬티까지 전부 벗고 이걸로 겨드랑이를 문질러 닦도록 해요.』
『어, 그건.』
『진정해요, 미스터 리스. 나는 가서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도록 할테니 그렇게 허둥거리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렴, 내가 당신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할 거라 생각해요?』
『어쩌면.』
『훌륭합니다. 의심은 좋은 태도죠.』
심술궂게 큭큭 웃으며 적당히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도 채우고 옷도 갈아입었겠다, 침대에 눕자 졸음이 쏟아졌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눈을 꿈뻑거리며 소파에 앉은 고용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몰래 설치한 감시카메라로 트레비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중인가 보다. 핀치의 시선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가끔씩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깨물었다.
하품이 나왔지만 참았다. 그가 잠들면 핀치는 잠자코 일어나 도서관으로 돌아가 버릴 것이고 리스는 그게 죽기보다 싫었다.
애처럼 투정한다는 걸 알면서도 부탁을 해봤다.
『저어... 오늘밤 계속 여기 있어주면 안 돼요?』
노트북에서 얼굴을 떼어낸 핀치가 침대 방향을 쳐다보았다.
불빛이 반사되어 안경알이 하얗게 보였다.
『왜요?』
『......』
원하던 대답을 듣지 못한 리스는 이불을 얼른 머리꼭대기까지 뒤집어썼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