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ㅆ밤. 오늘 휴방이야.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지금과 같은 리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는 핀치를 향해 이런 말을 했다. 《내려요. 노트북은 그냥 두고 차에서 내려요, 해롤드.》 위압적인 분위기에 원래 약한 남자다. 그의 고용인이 명령조로 얘기했을 적에 핀치는 만성적인 허리의 통증도 잊고 지체 없이 차에서 튕겨 나왔다.「서둘다보니 지갑을 두고 나왔는데요」이딴 얘기 전혀 못 꺼냈다. 넋을 잃은 얼굴로 미친 속도로 웨스트-사이드 고속도로로 향하는 자동차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때 맛보았던 탈진감이 오늘에 이르러 다시금 반복되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목구멍에 고무로 만들어진 마개가 끼워진 기분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에서 흘러넘치는 녹차와 굳어진 리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뜨거운 물이 닿아 리스의 손등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피부가 보내왔을 독특한 화상의 통증은 태평양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이름 모를 무인도에 떨어진 조난자가 휘둘러대는 흰색의 런닝 셔츠처럼 취급되었다. 리스의 두 눈은 온전히 핀치에게로 고정되어 있었고, 굶주린 로빈슨 크루소가 바다 생선을 날로 잡아먹든 그다지 관심이 없는 눈치다. 그래도 리스와 달리 비릿한 생선 냄새를 맡은 핀치는 머뭇거리며 손수건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물기는 도서관과 상극이다. 책들도 그러하지만 손수 설치한 여러 컴퓨터 장치들은 물을 아주 싫어한다. 바닥으로 작은 웅덩이를 이룬 녹차를 근심스럽게 여기며 약간의 용기를 내어 리스에게로 반보 접근했다. 쉽게 말해 오른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콧물=병균」생각이 떠오른 건 그 무렵이다. 병균이 잔뜩 묻은 손수건으로 그의 손을 닦을 수는 없었다. 감기를 옮겨서는 안 된다. 판단을 달리해 티슈 상자로 팔을 뻗었다. 『미스터 리스, 녹차를 엎질렀...』 그리고 뒤로 강하게 떠밀렸다.
떠밀렸다, 이러고 적는 건 지나치게 함축적인 표현일지도. 철퍽 소리를 내며 종이컵이 추락했다. 도서관 바닥으로 뜨거운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동시에 키 188cm의 거한이 온 체중을 실어 핀치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목을 조르지만 않았을 뿐으로, 잔뜩 짓눌린 탓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책이 꽉 들어찬 책장이 등에 닿았고, 크기가 남달라 삐죽 튀어나온 책이 중세 시절의 고문도구처럼 살을 찔러댔다. 본능적으로 고통을 덜고자 상체를 앞으로 숙였지만 수평으로 들어 올린 리스의 팔이 다시 한 번 더 힘을 주어 흉부를 압박했다. 그러자 멱살이 잡힌 것도 아닌데 몸이 벽을 타고 저절로 들려 올라갔다. 『윽, 리스!』 이런 난폭한 취급을 받을 까닭이 과연 있는가.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팔을 뻗어 리스를 밀어내려 했다. 그리고 단호하게 외쳤다. 『물러서! 뒤로 물러서! 존!』 새된 외침을 듣고 리스의 눈동자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그렇다고 해도 핀치를 곱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 건 분명해서 밀어붙이는 팔에서 약간의 힘만 빠져나갔을 뿐이었다. 서로 대치하고 서로 노려보는 상황은 아까와 비교하여 크게 달라지지 않... 아니, 말을 바꾸겠다. 분위기는 보다 험상궂게 변해 리스의 목에서 짐승의 으르렁 소리가 새어나왔다. 여유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그대로 핀치의 목을 부러뜨릴 기세다. 활짝 펼쳐진 커다란 왼손이 - 리스는 왼손잡이다. - 넥타이 매듭 위를 덮었다. 순간 핀치의 심장이 엇박자로 뛰었다.
「위기에 처했을 적에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폭력의 당사자가 직접 가르쳐준 방법을 시도해봤다. 그러니까 엄지손가락을 잘 갈무리한 다음, 상대방의 눈을 찌르고, 안구가 뇌에 처박힐 때까지 좌우로 비벼...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 비언어로 이루어진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엄지손가락으로 리스의 배와 옆구리를 아무렇게나 찔렀다. 리스는 실소했다. 침착함을 잃고 싶지 않았으나 핀치의 몸은 스트레스에 반응, 사시나무처럼 진동했다. 흉해, 흉해, 이런 거 흉해. 수차례 이루어진 엄지손가락 공격은 금방 그 기세를 잃고 무기력하게 되었다.
리스의 왼손이 위쪽으로 미끌어져 올라가 턱 아랫방향으로 이동했다. 강요를 받아 고개를 바짝 쳐든 핀치는 본인의 의사와는 아랑곳없이 먹이사슬에서 상위를 차지한 포식자인 짐승의 눈을 정면에서 마주해야 했다. 『나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미스터 리스.』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핀치.』 『내가 무엇을 했다고 이러는 건가요.』 『방금 전 그 전화...』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 통화는 당신과는 상관없는 겁니다, 미스터 리스.』 『어째서 나와 상관이 없나요, 해롤드. 우린 파트너잖습니까.』 『나의 사생활이니까요.』 『그렇지 않아. 당신에겐 사생활 같은 건 없어.』 『정말이지... 리스! 그런 억지가...!!』 격분한 핀치가 좌우로 몸을 비틀어댔다. 성하지 않은 다리로 발길질도 시도했다. 리스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체격과 체중을 이용해 그런 고용주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봉쇄시켰다. 바짝 엉겨 붙은 상태로 몸싸움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움 몸부림이 벌어졌지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도로 잠잠해졌다. 『당신은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전화라고 생각한 겁니까. 지인과의 안부 전화였을 뿐입니다!』 『해롤드.』 『이제 그만. 등이 아파! 뾰족한게 등을 찔러서 아프다고요!』 『해롤드.』 『제발 존. 날 그만 놔줘요!』
존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핀치는 이제 그가 설명, 혹은 변명, 그것도 아니라면 일방적인 주장 따위를 꺼낼 거라 여기고 거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삼켜진 공기는 밖으로 다시 나오지 않았다. 핀치는 눈살을 찌푸렸고, 리스의 미간으로도 역시 세로로 길게 골이 파였다.
윌리엄 잉그램은 친근함을 표현하며 그를 아저씨라고 부른다. -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으면 바스티유에 투옥시키겠다. 으하하. 술에 취해 정신 사나운 몸짓을 보였던 해롤드가 떠올랐다. 더하여 알콜 냄새 진동했던 깊은 입맞춤도 같이. - 나는 한때 당신이 내 아들과 같이 잤을 거라 의심했어요. 그리고 올리비아의 서슬 퍼런 비난까지.
리스는 초조하게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이번에는 과연, 이러고 핀치가 채비를 갖추고 그의 입술의 움직임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존은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상대를 미행하고, 도청하고, 스토킹해서 마음은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화가 치밀었고, 분노했고, 의심했으며, 좌절했다. 자, 그래서? 이제 누구를 비난하면 좋은 거지? 이건 누구의 잘못인 거지? 『존.』 초조해진 핀치가 재차 그의 이름을 불렀다. 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가족이 없어요. 나에게는 친구라고 할 사람이 당신밖에 없어요.』 이것은 변명? 아니면 다른 무엇? 리스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사랑한다」말하는 걸 보면서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
위협적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반대로 그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Posted by 미야
2013/01/18 10:55
2013/01/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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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널뛰기해서 이상해졌어...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로라는 80일간의 세계여행을 위한 거금을 모으기 위해 이곳 J&M-컴퍼니에서 말단 수습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주급은 결코 많지 않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목표한 저축액을 달성하려면 1년에서 2년 정도 허드렛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 생각과 달리 벌이가 영 신통치 않자 그녀는 주말에도 가욋돈을 벌고 있다. 핀치가 알기로는 타임스퀘어 부근에서 눈두덩이에 검정색 칠을 하고 어깨로 터키산 숄을 두른 뒤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아발론-타로트 카드로 점을 친다. 실력이 좋은지 나쁜지 그런 건 모른다. 아무튼 회사로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에는 손톱에 칠한 검정색 매니큐어를 깨끗하게 지우는 성실한 소녀다. 『이것은 무엇인가. 아아, 어둠의 기운이... 불길한 느낌이 들어, 오오오...!!』 그래도 월요일 오전만큼은 아무래도 주말의 뒤끝이 남아있는 법이다. 그녀는 막 무대에서 내려와 분장을 지운 연극배우처럼 행동했다. 흥분하여 선무당처럼 호들갑을 떨며 복사용지를 가슴에 끌어안은 핀치에게로 빠르게 접근해왔다.
『안녕, 로라.』 『오, 저런. 토성이 제 위치를 벗어나 안녕하지 못해요, 타운즈 씨.』 이곳에서 핀치가 쓰는 가명은 타운즈다. 『주말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그렇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살짝 겁이 나는구나.』 핀치가 인사치레로 방긋방긋 웃었음에도 로라는 여전히 심각했다. 『원래 말이죠, 타운즈 씨. 우리 같은 사람은 주말에는 점을 치지 못 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나야 모르지.』 『일요일은 온전히 그분의 날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천사와 정령들도 그분에게만 봉사하러 가버리죠. 관광객들에겐 대충 둘러대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영적인 소통을 이루기 힘들어요.』 『음... 무슨 말인지 더 모르겠는데, 로라.』 『이해가 가지 않아도 좋으니 들어봐요. 그치만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일요일이라고 전부 쉬는 법은 없잖아요? 그죠? 어딘가에서 화재가 나면 일요일 저녁이라고 해도 출동하잖아요. 이거와 비슷한 거예요. 그래서 주말인데도 계시가 내려오면 그건 빨간 등이 번쩍거리는 비상사태인 거죠. 타운즈 씨, 어둠의 정령이 경고했어요. 제발, 그렇게 쳐다보지 마시고요. 제 말을 믿으셔야 해요.』 그러면서 로라는 직접 가위로 오려 만든 별 모양의 종이 부적을 은밀히 그에게 내어밀었다.
핀치는 점쟁이를 믿지 않는다. 심지어 악마와 신의 존재도 믿지 않았다. 그는 무신론자다. 어둠의 정령이「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져요」이러고 경고를 한다고? 핀치는 풋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거야말로 귀여운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라를 존중하여 그녀가 준 부적은 버리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부적이라기 보다는 어린 소녀들이 재미삼아 만들어 화장대에 붙여놓는 장식처럼 보였다. 모양을 내어 오린 종이에 직접 글자를 적고, 매니큐어를 발라 색을 입혔는데 불빛에 비춰보면 반짝거리는게 참 예뻤다. 책갈피 대용으로 써먹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 부적을 쓰레기통에 넣지 않은 건「운수가 나쁠 거예요」라는 참담한 예언에 신경을 써서 그런게 절대 아니라는 말씀. 물건이 들어간 호주머니를 툭툭 치며 여러 번 애용했던 책방으로 향했다. 「혹시 모르니까 횡단보도를 건널 적에 특히 신경을 써야지.」 사랑스런 작은 마녀의 경고 때문이 아니더라도 길을 건널 적엔 좌우방향을 살펴야 함은 마땅하다. 어디서 맛이 간 오토바이나 미친 트럭이 날아들지 알 수 없으니 주의하고 또 주의하자.
그렇지만 불운은 뻔한 방법은 재미가 없다며 다른 각도로 공략해왔다. 『어, 이거 뭐야.』 서점이 문을 닫았다. 『그동안 애용해주신 고객님께 감사드립니다?!』 출판 산업은 사양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지 책은 읽지 않는다. 그나마 독서를 해도 종이로 된 책이 아니라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읽는다. 풋풋한 새 책의 냄새를 맡으며 낱장을 넘기는 재미를 알지 못한다. 하다못해 국민 잡지라 일컬어졌던 뉴스위크지도 종이 인쇄를 포기할 정도다. 출판 업계가 죄다 이런 분위기니 책을 파는 서점도 당연히 직격탄을 맞는다. 배를 곪는다 싶자 하나 둘씩 자리를 접고 빠르게 떠나가고 있다. 『오, 안 돼. 이래선 안 돼.』 점잔이고 교양이고 물 말아 잡수시고 손잡이를 잡아 비틀었다. 양손을 주먹 쥐고 봉쇄된 입구를 쾅쾅 치기도 했다. 행인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런 그를 지켜봤다. 『책 내놔~!! 책 내놓으라고~!!』 재밌는 건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람이 옆으로 한 명 더 있어 그녀는 - 여자였다 : 쌍욕을 퍼부어대며 입구를 주먹으로 두드리는 핀치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더하여 약간 업그레이드된 항의의 표시로 힐을 신은 발로 용감히 발길질도 했다. 『으악, 내 발가락~!! 아악, 내 구두~!! 썅! 예고도 없이 이러는 법이 어디에 있어!』 핀치는 이성과 교양을 지닌 남자다. 여자를 따라 발길질을 퍼붓고 3대가 망해버려라 저주하고 이러진 않았다. 대신 서점 건물을 인수한 업체를 알아내어 자금줄을 죄어 사흘 내로 도산시켜버리겠노라 결심, 씩씩거리며 서류가방을 챙겨 그대로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애플이네... 복합 문화 스토어를 만든답시고 잘 있던 서점을 털다니...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애플.』 서점 건물을 인수한 업체가 애플이면 보복성 화풀이로 말려 죽일 수는 없다. 그러기엔 여파가 너무 크다. 애플이 도산하면 못해도 미국 경제가 5년간 휘청일게다.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해킹하여 쳐다보던 핀치는 크게 절망하며 노트북 덮개를 닫아버렸다.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두통이 심해졌다. 불쾌한 통증 탓에 한참동안 머리를 감싸 쥐고 있자니 커피숍 직원이 다가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러지 말고 병원에 가봐요. 요즘 지독한 독감이 유행한다더군요.』 잔뜩 수그리고 자리에 앉아있던 핀치가 그게 무슨 소리라며 번쩍 고개를 들었다. 『나는 감기에 걸린게 아닙니다.』 감기가 아니긴, 개뿔. 커피숍에서 나온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맑은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오, 해롤드 아저씨. 멋진 코맹맹이 소리가 들리네요. 감기에 걸리셨어요?》 『윌리엄?』 손수건을 들어 코를 틀어막다 말고 핀치는 거의 비명을 질러댔다. 반가움과 놀라움이 뒤섞이고 이어 두려움과 근심이 양념으로 범벅되었다. 윌이 전화를 직접 걸어오다니, 제일 먼저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은 트위터를 떠올렸다. 그리고 비행기, 기관총, 무장반군, 폭탄 등등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은 윌리엄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이다. 그리고 미국인이다.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타깃이라 핀치는 늘 청년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지금 어디니. 혹시 미국이니?』 《지금 몇 시에요?》 휴가라도 얻어 미국으로 돌아온 거냐 물었더니 몇 시냐고 질문한다? 『얘야, 그건 왜 물어보니?』 《아, 죄송. 솔직히 시차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업무 때문에 이다에서 나와 포트 수단으로 가는 도중인데... 제가 해롤드 아저씨의 잠을 깨웠거나 새벽 3시에 미친 부르스 짓을 저지른 건 아니겠지요? 만약 그랬다고 해도 용서하실 거라 믿어요. 어... 그리고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기쁘네요. 아저씨가 감기에 걸린 건 유감이지만요.》 『아냐, 아냐. 여긴 아직 이른 저녁이야. 나야말로 정말 기쁘구나. 건강한 거지?』 《완벽하게.》 『그거 정말 좋구나.』 《어, 이런. 제 동료가 자기도 전화를 사용해야 한다며 옆에서 난리네요. 솔직히 이거 공중전화도 아니고 UN에서 파견 나온 직원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그래, 알았다. 길게 통화하기가 곤란한 거지?』 《헤헤. 나중에 상황이 허락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건강하렴. 그리고 조심하고. 사랑한다.』 행복에 잠겨 한숨과 같이하여 짧았던 통화를 끝마쳤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뒤를 돌아다보았을 적에 - 해롤드는 손에 힘을 너무 줘서 센차가 담긴 종이컵을 뭉그러뜨리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뜬 리스와 마주하게 된다.
Posted by 미야
2013/01/1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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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악한다고 되는 일은 없음. 세상 이치는 다 그런 거임.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오늘날의 사법체제는 개인의 복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결투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던 황야의 서부시대는 진작에 끝나버려 사람 뱃가죽에 총알을 쑤셔 넣자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정의는 법으로써 이루어진다. 죄의 댓가를 묻는 행위는 배심원들에게 돌려야 한다. 당신은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으나 태초에 선악과를 따먹은 인류를 불꽃의 검으로 징벌하고 에덴에서 내쫓은 대천사의 존재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리스는 차분한 어조로 그 점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쏘고 싶어요? 크게 맘 먹었으면 다른데 말고 머리를 조준해요, 데보라.』 차분하게 설명 어쩌고 좋아하네. 모니터링 중인 핀치가 기겁을 한 나머지 붙잡고 있는 마우스로 책상을 탕탕 내리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미스터 리스! 지금 뭐라고 말한 겁니까. 도발하면 안 됩니다. 총을 내려놓으라고 해야죠!》 음...... 그러니까 얘기가 많이 복잡하다.
감정이 격앙된 여자의 눈동자는 좌우로 와들와들 떨렸다. 불길하게스리 팔도 떨렸다. 그 손아귀에 안전장치가 풀린 22구경 권총이 쥐어져 있으니 누구의 말마따나 도발하는 건 현명치 않은 짓이다. 여자는 방아쇠를 당기기 일보직전이었고, 그 최후의 결심에서 0.5g의 무게를 지닌 한줌의 망설임이 훼방을 놓고 있을 뿐이었다. 깃털보다 가벼울 그 망설임이 떨어져 나간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돌변할 것이다. 데보라와 마주하고 있는 사내들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어서 엉거주춤 팔을 벌린 자세에서 불필요한 언행을 삼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프랭클린 경위는「대화」를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흥분한 범인과 대치해본 경험이 많은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긍정적인 제스츄어를 해보였다. 교본대로의 움직임이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천천히 움직일 것, 그리고 협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것, 동시에 그는 권총집에서 무기를 꺼내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들 것인지를 계산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니니까 꺼내자마자 빵! 이런 건 어림도 없다. 그래도 프랭클린의 사격 점수는 상위권이다. 100발을 쏘면 80발은 과녁에 맞았다.
나머지 빗나간 20발을 근심하며 새파란 눈을 깜빡였다. 『데보라.』 『입 다물어, 프랭클린.』 『데보라, 이러는 건 도움이 되지 않...』 『닥치라고 그랬지!』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러지 말고 말을 해. 그래야 우리가 자네를 도울 수 있어.』 『뭐? 당신이 나를 돕는다고?! 닥쳐! 닥치라고, 이 배반자!』 꽃과 풀을, 그리고 나무를, 녹음에 깃든 생명 전부를 온전히 불사르는 화마가 거기에 있었다. 마음속에 분노가 쌓여, 그런게 있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어느새 차올라 선명한 모습을 갖췄다. 벌겋게 불타는 눈동자가 프랭클린에게 향했다. 우는 것도 같다. 아니면 웃고 있는 것도 같다. 일그러진 입술이 저주를 읊조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고 싶어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마침내 오늘이 왔어. 난 당신을 죽여 버릴 거야. 배반자는 죽어야 해. 그러니 지옥에나 가버려.』 『데보라!』 『그만둬. 친한 척 이름을 부르지 마! 역겹단 말이다!』
그녀가 콧물을 들이마시는 소리를 냈다. 총구가 둥근 궤적을 그리며 다시금 와들와들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프랭클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감정의 동요 및 흥분이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는 강력계 형사다. 그녀의 몸짓은 어딘지 모르게 약에 쩔어 제정신을 놓은 건달을 닮아 있었다. 그는 날카롭게 질문했다. 『데보라.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약을 먹은 건가.』 『약?!』 그녀의 얼굴에 짙은 혐오감이 드러났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내가 마약 중독자처럼 보여?』 『자네가 직접 설명해보게. 그럼 맨 정신이라는 건가? 응? 맨 정신이냐고! 과거의 동료였던 사람에게 총을 겨누고 있잖는가! 죽이겠다 위협하면서. 그러니 다시 한 번 더 묻겠네. 데보라, 자네 약을 하나?』 『헛수작하지 마. 나는 맨 정신이야. 하! 그런 식으로 뒤집어씌우려고?! 그게 당신 특기인가 보지? 놀랍네. 에드거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도 이런 식으로 했어?』 『지금 뭐라고?』 『에드거 디블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도 이런 식으로 했느냐고 물었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
프랭클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란에 가득 찬 그의 얼굴은 어떻게 보자면 데보라 윙필드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미궁에 갇혀 소의 머리를 가진 괴물과 마주쳤다. 겁이 나서 다리가 후들거린다. 하지만 무섭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왜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이유라도 알아야 괴물에게 잡혀 먹어도 덜 억울할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건 시커먼 총구밖에 없고, 표효하는 소 머리 (여자) 괴물은 이성을 잃었다. 『지금 디블 이야기를 한 건가. 디블 이야기냐고. 맙소사... 그가 배반자였잖아. 그가 정보를 누설했어. 그렇지 않아? 그가 뇌물을 받고 더 락의 체포 작전을 누설했어.』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며 마찬가지로 팔을 벌리고 선 동료 션을 돌아보았다. 『션?』 그리고 달각 소리를 내며 고장 난 회전목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렵게 침을 삼키는 션의 눈빛만 보고도 프랭클린은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깨달았다. 퍼즐의 숨겨진 그림 - 은화 30개를 받고 예수를 판 가롯 유다는 누구인가 - 기가 차고 코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맙소사, 션... 자네.』 『프랭클린.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너였어? 디블이 아니고?!』 『프랭클린.』 『개자식, 너였어?! 너였냐고.』 『프랭클린. 진정해. 그러지 말게. 저년이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럼 말해! 더 락에게 붙은 건 자네게 아니라고 맹세해봐!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아니라고 말해!』 『젠장, 프랭클린. 내, 내가 아니야. 진짜야. 신에게 맹세코 내가 아니야.』 『이 새끼! 지금 누구 앞에서 수작질을!』 프랭클린과 션은 누가 먼저라고 말하기 어려운 타이밍으로 서로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세 명의 사람. 그리고 세 개의 총자루. 이렇게 된 얘기다.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미스터 리스.》 『그게 쉬울 것 같습니까? 뱀이 자기 꼬리를 잡아먹는 꼴사나운 형상이라고요.』 데보라는 션을, 션은 프랭클린을, 그리고 프랭클린은 데보라를 조준하고 있다.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앞으로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보기도 전에 둥글게 선 세 사람 전부 총 맞아 죽게 생겼다.
마치 영혼을 노리는 저승사자처럼 등장한 리스는 기꺼이 훈수를 두는 걸 사양하지 않았다. 『노리려면 머리를 조준해요, 데보라.』 『뭣?!』 『충고하자면 그립은 두 손으로 쥐는 겁니다. 지금과 같아선 명중시키지 못 해요.』 『다, 당신 누구...』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날 봐요. 내가 하는 걸 자세히 봐요, 데보라. 사람을 죽이려면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리스는 군살 없는 간결한 동작으로 데보라 윙필드의 머리를 조준했다. 이제 네 명의 사람, 그리고 네 개의 총자루가 되었다.
Posted by 미야
2013/01/16 11:47
2013/01/1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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