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60

※ 중간에 널뛰기해서 이상해졌어...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로라는 80일간의 세계여행을 위한 거금을 모으기 위해 이곳 J&M-컴퍼니에서 말단 수습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주급은 결코 많지 않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목표한 저축액을 달성하려면 1년에서 2년 정도 허드렛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 생각과 달리 벌이가 영 신통치 않자 그녀는 주말에도 가욋돈을 벌고 있다. 핀치가 알기로는 타임스퀘어 부근에서 눈두덩이에 검정색 칠을 하고 어깨로 터키산 숄을 두른 뒤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아발론-타로트 카드로 점을 친다.
실력이 좋은지 나쁜지 그런 건 모른다. 아무튼 회사로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에는 손톱에 칠한 검정색 매니큐어를 깨끗하게 지우는 성실한 소녀다.
『이것은 무엇인가. 아아, 어둠의 기운이... 불길한 느낌이 들어, 오오오...!!』
그래도 월요일 오전만큼은 아무래도 주말의 뒤끝이 남아있는 법이다. 그녀는 막 무대에서 내려와 분장을 지운 연극배우처럼 행동했다. 흥분하여 선무당처럼 호들갑을 떨며 복사용지를 가슴에 끌어안은 핀치에게로 빠르게 접근해왔다.

『안녕, 로라.』
『오, 저런. 토성이 제 위치를 벗어나 안녕하지 못해요, 타운즈 씨.』
이곳에서 핀치가 쓰는 가명은 타운즈다.
『주말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그렇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살짝 겁이 나는구나.』
핀치가 인사치레로 방긋방긋 웃었음에도 로라는 여전히 심각했다.
『원래 말이죠, 타운즈 씨. 우리 같은 사람은 주말에는 점을 치지 못 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나야 모르지.』
『일요일은 온전히 그분의 날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천사와 정령들도 그분에게만 봉사하러 가버리죠. 관광객들에겐 대충 둘러대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영적인 소통을 이루기 힘들어요.』
『음... 무슨 말인지 더 모르겠는데, 로라.』
『이해가 가지 않아도 좋으니 들어봐요. 그치만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일요일이라고 전부 쉬는 법은 없잖아요? 그죠? 어딘가에서 화재가 나면 일요일 저녁이라고 해도 출동하잖아요. 이거와 비슷한 거예요. 그래서 주말인데도 계시가 내려오면 그건 빨간 등이 번쩍거리는 비상사태인 거죠. 타운즈 씨, 어둠의 정령이 경고했어요. 제발, 그렇게 쳐다보지 마시고요. 제 말을 믿으셔야 해요.』
그러면서 로라는 직접 가위로 오려 만든 별 모양의 종이 부적을 은밀히 그에게 내어밀었다.

핀치는 점쟁이를 믿지 않는다. 심지어 악마와 신의 존재도 믿지 않았다. 그는 무신론자다.
어둠의 정령이「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져요」이러고 경고를 한다고?
핀치는 풋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거야말로 귀여운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라를 존중하여 그녀가 준 부적은 버리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부적이라기 보다는 어린 소녀들이 재미삼아 만들어 화장대에 붙여놓는 장식처럼 보였다. 모양을 내어 오린 종이에 직접 글자를 적고, 매니큐어를 발라 색을 입혔는데 불빛에 비춰보면 반짝거리는게 참 예뻤다. 책갈피 대용으로 써먹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 부적을 쓰레기통에 넣지 않은 건「운수가 나쁠 거예요」라는 참담한 예언에 신경을 써서 그런게 절대 아니라는 말씀.
물건이 들어간 호주머니를 툭툭 치며 여러 번 애용했던 책방으로 향했다.
「혹시 모르니까 횡단보도를 건널 적에 특히 신경을 써야지.」
사랑스런 작은 마녀의 경고 때문이 아니더라도 길을 건널 적엔 좌우방향을 살펴야 함은 마땅하다.
어디서 맛이 간 오토바이나 미친 트럭이 날아들지 알 수 없으니 주의하고 또 주의하자.

그렇지만 불운은 뻔한 방법은 재미가 없다며 다른 각도로 공략해왔다.
『어, 이거 뭐야.』
서점이 문을 닫았다.
『그동안 애용해주신 고객님께 감사드립니다?!』
출판 산업은 사양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지 책은 읽지 않는다. 그나마 독서를 해도 종이로 된 책이 아니라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읽는다. 풋풋한 새 책의 냄새를 맡으며 낱장을 넘기는 재미를 알지 못한다. 하다못해 국민 잡지라 일컬어졌던 뉴스위크지도 종이 인쇄를 포기할 정도다. 출판 업계가 죄다 이런 분위기니 책을 파는 서점도 당연히 직격탄을 맞는다. 배를 곪는다 싶자 하나 둘씩 자리를 접고 빠르게 떠나가고 있다.
『오, 안 돼. 이래선 안 돼.』
점잔이고 교양이고 물 말아 잡수시고 손잡이를 잡아 비틀었다. 양손을 주먹 쥐고 봉쇄된 입구를 쾅쾅 치기도 했다. 행인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런 그를 지켜봤다.
『책 내놔~!! 책 내놓으라고~!!』
재밌는 건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람이 옆으로 한 명 더 있어 그녀는 - 여자였다 : 쌍욕을 퍼부어대며 입구를 주먹으로 두드리는 핀치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더하여 약간 업그레이드된 항의의 표시로 힐을 신은 발로 용감히 발길질도 했다.
『으악, 내 발가락~!! 아악, 내 구두~!! 썅! 예고도 없이 이러는 법이 어디에 있어!』
핀치는 이성과 교양을 지닌 남자다. 여자를 따라 발길질을 퍼붓고 3대가 망해버려라 저주하고 이러진 않았다. 대신 서점 건물을 인수한 업체를 알아내어 자금줄을 죄어 사흘 내로 도산시켜버리겠노라 결심, 씩씩거리며 서류가방을 챙겨 그대로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애플이네... 복합 문화 스토어를 만든답시고 잘 있던 서점을 털다니...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애플.』
서점 건물을 인수한 업체가 애플이면 보복성 화풀이로 말려 죽일 수는 없다. 그러기엔 여파가 너무 크다. 애플이 도산하면 못해도 미국 경제가 5년간 휘청일게다.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해킹하여 쳐다보던 핀치는 크게 절망하며 노트북 덮개를 닫아버렸다.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두통이 심해졌다.
불쾌한 통증 탓에 한참동안 머리를 감싸 쥐고 있자니 커피숍 직원이 다가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러지 말고 병원에 가봐요. 요즘 지독한 독감이 유행한다더군요.』
잔뜩 수그리고 자리에 앉아있던 핀치가 그게 무슨 소리라며 번쩍 고개를 들었다.
『나는 감기에 걸린게 아닙니다.』
감기가 아니긴, 개뿔.
커피숍에서 나온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맑은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오, 해롤드 아저씨. 멋진 코맹맹이 소리가 들리네요. 감기에 걸리셨어요?》
『윌리엄?』
손수건을 들어 코를 틀어막다 말고 핀치는 거의 비명을 질러댔다. 반가움과 놀라움이 뒤섞이고 이어 두려움과 근심이 양념으로 범벅되었다. 윌이 전화를 직접 걸어오다니, 제일 먼저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은 트위터를 떠올렸다. 그리고 비행기, 기관총, 무장반군, 폭탄 등등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은 윌리엄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이다. 그리고 미국인이다.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타깃이라 핀치는 늘 청년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지금 어디니. 혹시 미국이니?』
《지금 몇 시에요?》
휴가라도 얻어 미국으로 돌아온 거냐 물었더니 몇 시냐고 질문한다?
『얘야, 그건 왜 물어보니?』
《아, 죄송. 솔직히 시차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업무 때문에 이다에서 나와 포트 수단으로 가는 도중인데... 제가 해롤드 아저씨의 잠을 깨웠거나 새벽 3시에 미친 부르스 짓을 저지른 건 아니겠지요? 만약 그랬다고 해도 용서하실 거라 믿어요. 어... 그리고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기쁘네요. 아저씨가 감기에 걸린 건 유감이지만요.》
『아냐, 아냐. 여긴 아직 이른 저녁이야. 나야말로 정말 기쁘구나. 건강한 거지?』
《완벽하게.》
『그거 정말 좋구나.』
《어, 이런. 제 동료가 자기도 전화를 사용해야 한다며 옆에서 난리네요. 솔직히 이거 공중전화도 아니고 UN에서 파견 나온 직원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그래, 알았다. 길게 통화하기가 곤란한 거지?』
《헤헤. 나중에 상황이 허락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건강하렴. 그리고 조심하고. 사랑한다.』
행복에 잠겨 한숨과 같이하여 짧았던 통화를 끝마쳤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뒤를 돌아다보았을 적에 -
해롤드는 손에 힘을 너무 줘서 센차가 담긴 종이컵을 뭉그러뜨리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뜬 리스와 마주하게 된다.

Posted by 미야

2013/01/17 12:04 2013/01/1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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