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처음부터 순탄치 않은 여행이었다.
여전히 딘의 시선은 도로 정 중앙을 향한 채였다. 하지만 그가 설치한 고성능 접시 안테나는 옆으로 드러누워 불온한 공기를 열심히 탐색하느라 바빴다. 마침내 달각 소리를 내며 불이 켜진 최신형 컴퓨터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나사의 과학자를 위해 간략한 보고서를 인쇄했다.「메탄과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인 대기, 인간의 허파로는 호흡이 불가능, 고약스런, 숨 쉴 수 없는...」
말을 하기 위해 아, 하고 입을 벌렸다가 잠시 숨을 골랐다.
『뭐가 문제지? 새미.』
『새미가 아니라 샘이야.』
엉덩이에 종기가 났다는 식으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샘은「형의 실수」를 깍듯이 정정해준 다음, 다시 한 번 자세를 고쳐 잡았다. 글자로 옮겨놓고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한 샘의 행동은 딘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도 남았다. 왜냐하면 1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샘은 무려 열 일곱 번씩이나 따끔거리는 가시가 허벅지를 찌르고 있다는 식으로 움찔거렸고, 그때마다「주의, 좌측으로 스테고사우루스 출현. 피해갈 것」이라는 잘못된 메시지가 스팸 메일처럼 접수되었던 것이다.
완벽하게 구워진 웨딩 케이크 위로 파리가 앉았다.
이걸 파리채로 철썩 후려갈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살충제를 뿌릴 수도 없고.
하얀 크림 위에서 징그러운 왕파리가 다리를 싹싹 비비고 있다. 살기가 치솟는다.
『형이 묻잖아. 뭐가 문제냐고, 새미!』
이 얼마나 탁월한가. 좌우 엉덩이에 번갈아 체중을 싣는 것 정도로 남을 열 받게 만들다니.
『젠장! 똑바로 앉지 못해?!』
이쯤해서 동생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나, 화장실 가야 해.』
입이 떡 벌어지는 발언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딘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허깨비를 본 것도 아닌데 왜 눈을 비벼.』
머리가 좋은 샘이 재빨리 틀린 부분을 지적했지만 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장거리 여행에 익숙해진 몸은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습관처럼 어떤 의식을 치렀다. 그게 뭐냐고? 화장실에 가서 방광을 비우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미키마우스 인형에 열광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거였다. 딱히 신호가 오지 않았음에도 딘은 심지어 두 번, 세 번 다녀오기도 했다.
『출발한지 이제 겨우 40분이다, 인석아. 모텔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오줌을 누지 않은 거니?』
『틀려.』
『젠장. 깜빡 잊고 양치질을 빼먹었다고 하면 귀엽기라도 하지!』
『그게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
『속도 좀 줄여. 아랫배가 살살 아프단 말이야.』
『뭐어?! 지금 큰게 마렵다고 했어~?!』
이거야말로 기자들이 연필에 침을 바르고 좋아라 난리를 치며 대서특필할 사건 - 공주처럼 우아한 샘 윈체스터가 궁댕이를 옴죽거리며 똥이 마렵다고 했다. 하얀색 변기가 광채를 띄며 초음속 비행기처럼 날아다녔다. 남성용 소변기가 하나, 그리고 위풍당당한 좌변기가 두 개였다. 아니다. 딘은 여우에게 홀린 상태에서 깨어나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어떤 누구도, 대통령이든 교황이든, 인간이라면 감히 피해갈 수 없는 생리현상을 비웃어선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배꼽이 빠져라 (비)웃는 대신 심각해졌다. 소프트볼 경기장 근처의 벤치에 앉아「왜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지」를 곱씹으며 눈물을 참던 시절로 되돌아가 이마에 깊은 고랑을 만들었다. 이 마당에 흥분하면 망하는 거다. 침착해지자.
『설사냐.』
『몰라.』
『그러니까... 그게... 크음! 제법 심각하냐?』
『주유소가 보이면 얼른 세워.』
방구 뀐 놈이 당당하다고 샘은 대놓고 명령했다.
『그리고 속도를 줄여. 지금 괄약근에 힘주며 긴장하고 있는데 좌우로 차체가 흔들리면 실수로 폭탄이 터지게 될 거야. 짐작하건데 그건 딘도 원하지 않을 걸.』
이쯤해서 딘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당신은 누구세요?」를 외쳤다.
『크리스토!』
『그래, 맘대로 지껄여.』
『내가 지금 의심 안 하게 생겼니?! 샘! 이건 말이 되질 않아! 말이 되지 않는다고!』
『형과 마찬가지로 나도 음식을 먹고, 소화를 시켜선, 배설을 해. 뭐가 의심스럽다는 거야.』
『식은땀 하나 안 흘리면서 맨질맨질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까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한 거다! 스펀지밥이 사는 바다속 동네 이름이 비키니 시티가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의심을 안 하냐! 너라면 그딴 개소리를 믿겠니?!』
그리고는 화가 잔뜩 나서 쏘아붙였다.
『솔직히 바비 아저씨에게 가기 싫다고 털어놔. 네놈이 거짓말을 지어내면 개그가 되어버려.』
입술을 안으로 오무린 샘이 눈을 흘겨떴다.
이에 질세라 딘은 단상에 올라 상습 지각생들을 나무라는 교장 선생님의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싸늘한 눈빛만으로 충분히 각자의 의견을 전했다.
『얼간이.』
『멍청이.』
쓰잘데기 없는 부연 설명을 뒤로한 채 임팔라는 끽 소리를 내며 갓길에 정차했다. 그와 동시에 샘은 날렵한 동작으로 - 그게 과연 괄약근에 힘주고 있다는 사람의 자세인가 - 튕겨나가듯 땅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문짝이 부스러져라 차문을 닫는 것으로 딘의 마음 씀씀이에 대한 작은 고마움을 표현했다. 밍크 고래가 수족관에서 헤엄을 쳐도 이보다 더 웅변적이진 않으리라. 딘은 눈을 질끈 감고 하나, 둘 숫자를 헤아렸다. 이 정도로 동생을 때려선 안 된다, 이 정도로 동생을 때려선 안 된다. 동생을 때려선... 하느님, 왜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십니까!
붕붕 소리가 나도록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며 목이 터져라 고함질렀다.
『이 새끼가 지금 죽을라꼬! 당장 돌아와!』대답 대신 샘은 고개를 빳빳이 세웠을 뿐이다.
『우린 지금 네 녀석 고추 깔대기를 손보러 비뇨기과를 방문하는게 아니야. 왜 뒤로 빼고 지랄이야! 아무렴 바비 아저씨가 야메로 고래를 잡겠냐! 야! 새미!』
집요하고도 꿰뚫는 것 같은 시선만 돌아왔다. 유독한 물질에 중독되기라도 한 것처럼 동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순전히 재미로 편의점에서 초콜렛이나 건전지, 성인용 잡지책 같은 잡동사니를 훔쳤을 적에 짓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원망, 그리고 비난... 그리고 천사와 유니콘의 존재를 믿는 소년의 애원이었다.
열려진 창문을 통해 입안에 고인 쓴 맛의 침을 뱉었다. 그리고 악을 썼다.
『그래!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은데 이 형이 거기로 데려가주지 않아 정말 미안허다! 기린이 보고 싶은데 동물원에 못 가서 어떻게 하냐. 게이들의 기독교회에서 찬송가를 불렀어야 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뜯어말린 이 못난 형의 양심이 마구 가책을 받는다!』
감정적 소모전은 그가 다룰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딘은 말싸움으로는 동생을 못 이겼다. 침묵이 안개처럼 깔리는 전장에선 더더욱 기를 못 폈다. 담벼락 위에 일렬로 세워놓은 빈 맥주 깡통을 모조리 명중시킬 줄 알아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어린 동생 앞에선 그딴 건 별 소용없었다. 샘을 다루려면 존이 가르쳐준 것 말고 전혀 다른 기술과, 전혀 다른 전술이 필요했다.
『잘 들어, 이 못난 자식아! 다섯까지 세는 동안 안 돌아오면 길바닥에 내버려두고 나 혼자 갈 테다! 하나, 둘, 셋~!!』
윽박지르는 것 말고는 설득의 수단이 없다는 건 서글프다.
『망할 놈의 똥강아지.』
그리하여 마지막 말은 푸념 섞인 혼잣말에 가까웠다.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긴 샘은 시선을 길바닥 쪽으로 떨어뜨렸다. 검정색 잉크로 찍혀진 작은 발자국들의 흔적을 따라가듯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어쩌면 땅위로 올라온 개미가 줄을 지어 기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낭패다. 비가 올 거라는 신호니까.
『옛날에도 그랬어.』
『뭐?』
『옛날에도 그랬다고! 형이 지독한 독감에 걸렸을 적에 아빠는 나를 데리고 짐 신부님에게로 갔어! 가는 도중에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먹게 해주고, 평소에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하던 그림책도 잔뜩 사줬어!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신부님께 인사시키고는 그대로 내뺐어! 형이랑 둘이서만 집으로 돌아갔다고!』
『에?』
『그때도 아빠는 정면만 응시하며 운전을 했어! 콜록거리며 힘들어하는 형에게 콜라를 건네준다고 했다가 실수로 뒷자석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었을 때도 수건만 던져주고 내 눈은 안 쳐다봤어!』
그런 일이 있었던가. 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억에 없다.
『있었어!』
『그런데 왜 나는 생각이 나지 않는 거지?』
샘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건... 내가 너무 울어대서 30분 뒤에 짐 신부님이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거든.』
『오우!』
애가 울어봤자 얼마나 울겠느냐 우습게보면 안 된다. 진짜지 샘은 질리게 울어댈 줄 아는 신통한 녀석이었고, 일단 악을 쓰기기 시작하면 몹쓸 망령도 귀를 막고 십 리 밖으로 달아나고도 남았다.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건 애교에 가깝다. 그리고 경보기는 총으로 쏘아 망가뜨려도 된다.
「어쩔 수 없겠소, 존. 독감에 걸린 두 명의 윈체스터에게 죽도록 시달릴 각오를 하고 이리 돌아오시오.」
마귀와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신부도 서럽게 울부짓는 어린애 앞에선 일찌감치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아니. 그런 걸 떠나서. 싱크대에 세제를 풀어넣는 요령으로 손가락을 둥굴게 휘저었다.
『그게 언젯적 일이냐. 세 살? 아님 다섯 살?』
『잘 모르겠어. 으음... 형이 노먼 영감님네 고양이 매카티를 납치했던 때가 언제지?』
『맙소사! 그럼 넌 네 살이었어, 샘!』
『그래서?』
『나는 여덟 살! 하지만 독감에 걸렸던 건 기억이 나지 않아. 너, 제대로 알고 떠드는 거냐? 아무래도 전혀 다른 내용을 엉뚱하게 각색해서 기억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 형은 첫 번째 키스 상대의 이름조차 틀리게 기억하는 돌머리지만 (* A signal for Help : 샘은 딘에게 그의 첫 번째 여자친구의 이름이 에밀리가 아니라 엘리슨이라고 지적했지요. 팬픽 설정입니다.) 난 안 그렇거든.』
『흥이닷! 그 가엾은 여자애한테 유통기한 지난 썩은 우유를 끼얹는 심술을 부린 건 새카맣게 잊어먹고 있었으면서 어디다 대고 자기 머리 좋다고 자랑질이냐, 이 왕대갈박 악당아!』
『형이야말로 멋진 창작의 세계에서 살고 있네요. 이야기를 멋대로 지어내지 마시지!』
『너야말로 마크 트웨인 뺨친다, 야!』
『켁! 마크 트웨인을 알기는 알아?「톰 소여의 모험」도 안 읽은 주제에!』
『읽었어! 그러니까 독후감도 써서 제출했지!』
『거짓말이라는 거 다 알아, 딘. 미시시피 강에서 톰은 헤엄을 쳤습니다, 풍당풍당. 이렇게 딱 한 줄만 적어서 냈잖아!』
이쯤해서 제2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실례합니다, 두 분.」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소곳이 충고했다.
「위험하니까 계속 갓길에 정차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젊은 두 청년이 목이 터져라 언성을 높이고 있으니 누군가 관심을 갖고 접근할 수 있다. 상대가 교통 경찰관이라고 생각한 딘은 재빨리 가식된 미소로 표정을 바꾸고 이쯤이겠거니 싶은 곳을 응시했다.
『아이고~ 수고 많으십니다!』
어랍쇼, 그런데 열심히 기웃거렸어도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딘! 뒤쪽이야!』
그럴 수밖에.
상대는 꼭 붙인 무릎 위로 양손을 올려놓은 채 임팔라 뒷자석에 이미 얌전히 앉아 있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