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생각하는 건데요, 소금과 성냥불 하나로 귀신 잡는 얘네들, 무지 위태로워 보이지 않나요? 이번에도 뼈 태우는 걸로 걍 끝나네. 어휴. 하여간 불만 많아요. 무려 3주동안 금식시키고 닝닝한 오트밀만 주는 건 너무하다 생각합니다. 허겁지겁 고기를 먹으면 체한다고 해도 그딴 배려 필요 없으얍! 고기, 고기, 고기... 내놓아라, 완소 궁뎅이 고기... ※
욱씬거리는 뒷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봤자 무릎이 타일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다시금 턱을 찧었다. 아픈 건 둘째고 상당히 볼썽사납게 되었다. 샘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낯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플라스틱 재질의 물통과 거꾸로 세워둔 대걸레였다. 반질반질하게 닳은 수도꼭지, 칸막이, 남성용 변기... 어랍쇼, 화장실이었다. 위장에 들어간 내용물을 게워내기 위해 화장실을 찾았던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빼면 그럴 듯한 가설이다. 끙 소리를 내며 세면대를 의지해 일어섰다. 눈높이가 갑자기 달라지자 헷갈리는 정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한 뇌가 경기를 일으켰다. 시야가 핑그르르 돌았다. 죽을 맛이다. 게슴츠레한 눈을 뜨자 거울 속으로「아주 맛이 갔거들랑요」라고 간판을 써붙인, 추레한 몰골의 남자가 나타났다. 이게 정말 자신인가 싶어 뺨을 만져봤다. 촉감이 푸석푸석하다. 거기다 자라난 수염이 지하실 천장으로 퍼렇게 피어난 곰팡이처럼 보였다.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대답에「그 사람은 백설공주」라고 충실히 대답했다. 하여 마녀와도 같은 심성을 가진 왕비는 독이 발리워진 사과를 바구니에 넣고 경쟁자를 무찌르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미치겠군.』 당장은 낮인지, 밤인지, 아님 새벽인지조차 모르겠다. 환기를 목적으로 달아놓은 창문은 무척이나 작았고, 게다가 작은 원숭이마저 탈출하지 못 하도록 세 개의 쇠창살로 가로막았다. 아무도 저리로 못 나가고, 반대로 들어올 수도 없다. 심지어 빛마저 차단했다. 유리를 사생활 보호 필름으로 검게 코팅해서 시야를 완벽하게 가려놓기까지 했다. 덕분에 바깥 하늘로 태양이 걸렸는지, 달이 걸렸는지, 아니면 24시간 내내 창백한 빛을 내뿜는 할로겐 램프가 걸렸는지 판단이 쉽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손목시계가 9시 12분을 가리켰다는 것이고, 그래봤자 째깍 소리가 멈춰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거였다. 싸우던 도중에 벽에 세게 부딪치기라도 한 모양이다. 분침과 초침 모두 멎었다. 요행을 기대하며 귀에 가져가 흔들어봤다. 그런다고 정상으로 움직이면 이 세상의 시계 수리공들은 밥줄이 끊겨 전멸하고도 남았다. 진작에 포기하고 시곗줄을 풀어 주머니로 넣었다. 싸구려이긴 해도 제법 아끼던 거였는데. 아깝다.
『후욱.』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 손과 얼굴을 씻었다. 냄새 고약한 입안을 행구고 눈도 비볐다. 찬물로 세안을 하자 나 몰라라 도망쳤던 정신이 조금은 돌아왔다. 덧붙여 뒷통수로 난 혹이 장난 아니게 아파왔다. 손으로 만지자 거뭇거뭇한 가루가 묻어나왔다. 말라붙은 피였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녹이 슨 쇠붙이의 비린내가 났다. 우와, 조금은 위험했던 것일지도. 더듬더듬 상처부위를 확인하자 찢어진 부위가 만져졌다. 더 세게 맞았으면「술김에 실수했습니다」수준으론 안 끝났을 거다. 다행히 출혈은 그리 크지 않았다. 병원에는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쓰게 웃었다. 어쩌면 토하러 화장실에 온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호출한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술집 종업원이 자신을 이곳에 가둬둔 것은 아닐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샘은 긴장하여 고개를 들고 출입구를 노려봤다. 그게 맞다면 저 밖에 곤봉을 쥔 경찰이 가슴 든든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큰일 났다!
「당신을 소란죄로 체포하겠소, 못 말릴 술주정뱅이 양반.」 정말로 수갑을 든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으면 어쩌지 근심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여차하면 달아나자 마음을 잡아먹었다. 성호를 긋고. 돌격. 부드러운 찰칵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어 밖으로 한 걸음 나왔다.
그런데 얼씨구? 맨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당뇨병을 걱정해야 할 것이 분명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부러진 의자 다리를 씩씩하게 휘둘러댔다는 거였다. 테이블이 엎어졌고, 빈 술병이 날아다녔고, 막판엔 대 소동이었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자의 선정적인 사진이 절반으로 꺾여져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걸 샘이 밟았다. 살색을 보고 그게 진짜 사람이라 착각한 샘이 고개를 숙인 찰나, 생판 모르던 주먹이 옆구리를 쳤다. 상당히 아팠음이다. 샘은 그 보복으로 돌려차기 시범을 보였고, 남자는 날아가 갖은 종류의 빈병들이 진열되어져 있던 장식장을 덮쳤다. 와르르 쏟아지던 빈병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 말은 즉, 파편을 주워다 담으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작은 땅콩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다. 청소 상태는 그리 완벽하진 않다. 허나 유리 파편은 하나도 안 보인다. 구둣발로 바닥을 문질러봤다. 규소 재질의 반짝이는 알갱이는 떨어져 있지 않다. 아까 그 술집... 맞아? 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나절 내내 화장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뻗어 있었다면야 모든게 설명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렇게나 긴 시간동안 사람이, 그것도 걸리버가 큰 대자로 쓰러져 있는데 나 몰라라 했을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 수수께끼다. 화장실에 시체가 = 또는 시체 비슷한게 누워있으면 건물 주인은 당연히 긴장하는 법이다. 그리고 일찌감치 호들갑을 떨며 911 버튼을 눌러댔다. 어디 그뿐인가. 도착한 응급요원에게 열변을 토하며 주장했을 것이다. 나와는 관계 없는 시체 = 또는 시체 비슷한 것을 빨리 치워가라고.
『저어, 실례합니다.』 이상한 나라로 도착한 앨리스는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는 토끼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으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샘은 무식하게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가요?』 어쩐지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남자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뮤직 비디오가 나오던 TV에서 눈을 돌렸다. 남자는 사흘을 내리 야근을 했다는 식으로 투로 매우 지쳐 있었다. 어쩌면 단순히 간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확실히 보통 사람들보다 피부가 곱절로 샛노랬다. 아픈 사람이라 그런가, 대꾸하는 목소리에도 짜증이 가득했다. 『지구.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 『예?』 『그럼 당신은 이곳이 화성이라 생각한단 말이오? 웃기는 사람이군.』 겨자색의 피부를 가진 남자가 별 이상한 사람 다 봤다며 쏘아붙였다. 음, 그러니까 지금 이 남자는 샘이 장난삼아 타임 워프에 실패한 외계인, 내지는 미래에서 전송되어온 기계 전사 흉내를 내고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길바닥에서 아무나 붙잡고「당신은 도를 믿으십니까?」라고 질문한 것과 같은 레벨이었다.「여기가 어딥니까?」라는 질문이라니. 지금이 몇 년이고, 대통령은 아들 부시가 맞느냐 물어보시지? 그래서 그따위 질문엔 대꾸를 하고 싶지 않다는 오라를 풀풀 풍기며 다시금 TV로 시선을 돌렸다. 또 거지 발싸개 같은 질문을 하면 그때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겠다는 뉘앙스다. 샘은 더 이상 그를 방해할 수 없었다.
자, 그럼 여기서의 문제. 만사 포기하고 밖으로 나갈까요, 아님 가게 안을 한 바퀴 돌아볼까요. 샘은 이도 저도 못하고 주춤거렸다.
『얼레. 세비야의 사도 이시도르가 실수했구먼. 손님 아닌 자를 이리로 보내주시고.』 금방 튀긴 팝콘 접시를 들고 있던 젊은 사내가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귀는 무지 밝았음이다. 샘은「지금 날 보고 그런 건가요?」라는 의미로 두 팔을 벌려보였다. 추측이 맞았던 모양이다. 남자가 욕설일 것이 분명한 단어를 중얼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커다란 키.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은 자다. 어디선가 한 번 봤던 사람 같다.
『저어, 죄송합니다만 아직 술기운이 제법 남아서요. 여기가 어디인가요.』 『흐응...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보다는 여기로 어떻게 왔느냐가 훨씬 더 중요할 것 같은데.』 팝콘을 주섬주섬 주워먹던 남자가 곁눈질로 샘을 쳐다봤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눈동자 빛깔이 라일락 꽃을 닮았다. 컬러 콘택트 렌즈라고 하기엔 그 색상이 너무나 엽기적이다. 거기다 수은을 엷게 붓으로 발라대기라도 한 것처럼 번들거리기까지! 조작된 특수효과 같은 것이 아니다. 샘은 움찔하여 뒤로 물러섰다. 설명되어질 수 있는 건 경험에 의하자면 딱 하나이다. 악마다! 『우리는 댁을 이곳으로 초대한 적이 없다구, 막내 윈체스터 씨. 이렇게 예고도 없이 남의 소중한 둥지로 쳐들어오는 건 반칙이라 생각하오만. 물론... 회람판에 적혀진 그대로라면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라 생각은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불리워졌음에 놀란 샘은 재빨리 생각나는 라틴어 문구를 아무거나 입에 주워담았다. 『DOMINE JESU CHRISTE, REX GLORIAE... 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왕이여.』 남자가 혀를 끌끌 찼다. 『에베-』 그리고 접시 속의 팝콘을 쥐어 샘을 향해 콩콩 던졌다. 『왜 이러시나? 보기 흉하게. 나는 쓸데없는 싸움을 매우 싫어해. 이래뵈도 난 평화주의자란 말이야. 그러니까 가만히 있는 자에게 무작정 시비를 걸진 말아주시길. 정 피가 끓어 못 살겠다 싶으면 어물전으로 나가서 저녁 반찬으로 먹을 고등어라도 토막치라고. 그게 아니면...』 마술처럼 크림색의 종이가 남자의 손바닥 위로 둥실 떠올랐다. 그 안에서 영어의 알파벳 글자들이 타자기의 휠이 돌아가는 좌라라락 소리를 내며 떠올랐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벌레처럼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 글자들은 차례대로「대학 졸업, 취직, 출세, 은행 융자금 착실히 갚기, 마당 넓은 이층집, 수영장, 예쁜 아내와 자식들...」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가 다시금 흩어졌다. 『아니면 이렇게 만난 것도 운명일테지. 이참에 나와 계약하는 건 어때? 샘 윈체스터.』 사내가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다 테이블로 올려놓았다. 그 위로 적혀진 단어는「오늘만 5% 특별 할인」이다. 동네 수퍼마켓 세일 문구에 샘도 허둥거렸지만 남자 또한 응? 소리를 내면서 눈을 깜빡였다. 『우왓?! 실례!』 당황한 것이 분명한 사내는 허겁지겁 종이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한참만에야 겨우 근엄함을 되찾고 손을 떼자 글자는「사과 파이-평온한 삶」으로 바뀌었다.
『미안. 내가 요즘 다른 걸로 정신이 좀 없어서... 아, 아무튼 나는 영혼이나 목숨을 댓가로 요구하지 않을 거야. 속된 말로 요즘엔 그런 건 잘 안 팔리거든. 대신 내가 제안하는 건...』 『거절하겠어.』 『어이? 말꼬리를 도중에 싹뚝 자르지 말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그쪽은 사람이 아니잖아. 게다가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다고.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거 아니라고. 형도 말했어. 악마는 늘 허튼 말만 지껄이니까 전부 무시하라고.』 『쳇. 언제부터 아빠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 되었을꼬? 댁은 형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동생도 아니었잖아. 지금 와서 갑자기 착한 아들에 착한 동생이 되기로 작정한 거야? 심하네.』 사내가 내려놓은 메모지는 다시 얼룩 하나 없는 순결한 백지가 되었다. 그래봤자 이미 예상했다는 투다. 별 대수롭지도 않다며 컬이 진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뭐, 맘대로 하라고. 사실 나도 억지로 권유할 필요는 못 느끼거든. 그러니 잘 가게. 나가는 길은 오른쪽이고, 도중에 이상한 걸 만나도 내 탓은 아닐세.』
그는 다시 팝콘을 주워먹는 일에 열중했다. 예의 노란 피부의 사내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다. 이제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건 리키 마틴이다. 열정적인 라틴 댄스의 가락에 맞춰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난감하다. 원래대로라면 가게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샘은 본능의 가르침에 따라 가까운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왜?』 남자가 그런 샘이 영 신경에 거슬린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마음이 그새 바뀌었어? 막내 윈체스터 씨.』 『그건 아니지만...』 『그럼 여기 앉아서 뭘 하자는 것?』 『한 가지 확인을 하고 싶어서.』 『뭐?』 『아까 나에게 보여주던 종이 있지. 다시 꺼내봐.』 『이봐! 그건 남의 영업 기밀이나 다를 바 없... 야! 맘대로 그러지 마!』
테이블에 엎어진 종이를 다시 뒤집어봤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까와는 달리 종이는 백지가 아니다. 큼직하게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귀여운 동생」 요거이 뭡니까! 샘은 잡아먹을 기세로 남자를 쏘아봤다. 남자도 지지 않고 옅은 보라색 눈동자로 맞받아 쳤다. 동시에 맥주병을 옆구리에 낀 가죽 재킷의 사내가 그들에게로 어슬렁 어슬렁 다가왔다. 『동생아, 술이다~ 마시자~♪』 그것이 너무나도 잘 아는 목소리였다는 점에서 샘은 진정으로 살기를 느꼈다.
Posted by 미야
2007/03/17 10:24
2007/03/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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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이 책의 감상을 딱 한 줄로 요약하자면...수수께끼는 네가 전부 불었잖아. 이 망할 것아. 저주할테다, 김전일. 책의 권말 부록을 보고 짐작했지만 이게 상당한 논란거리였던 모양이다. 아무튼 덕분에 탄산소다의 톡 쏘는 김은 빠져버렸다.
책에서의 유쾌, 상쾌, 폭소 부분 일부를 소개한다.
" 네가 홈즈와 천문학에 정통한 것은 잘 알겠어. 그러면 누가 널 만족시킬 수 있을까? 브라운 신부는 읽어봤어? " " 그게 누구야? 교회와는 인연이 없는데. " " 파일로 반스는? " " 뭐? 무슨 반스? " " 제인 마플은? " " 맛있겠네. " <- 이 부분에서 진짜 뒤집어졌다 ^^ " 메그레 경감은? " " 메구로 구의 경찰? " " 에르큘 포와로. " " 숙취가 있을 것 같은 이름이군. " " 도버 경감. " " 처음 들었어. " " 그럼 넌 홈즈밖에 모르는 거야? 허어! 그런데도 잘도 헐뜯는군. "
열심히 하세요, 왓슨.
어쨌거나 죽자 살자 장광설이 읽고 싶어져 <우부메의 여름>을 다시 들었다. 으아... 비닐로 책을 포장했음에도 너무 만지작거려 책이 너덜거리고 있다. 역시나 신주님이 최고. >_<
Posted by 미야
2007/03/17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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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아무리 기다려도 잠시 자리를 비운 딘이 돌아오려 하질 않았다. 혹시 볼 일을 보는 도중에 이상한 녀석들과 행여 시비가 붙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된 샘은 새끼를 잃은 암콤이 되어 건물 공중 화장실이란 화장실을 죄다 뒤지기 시작했다. 쾅쾅거리며 문짝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있자니 몇몇 사람들이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 빙글빙글 돌리는 시늉을 했다. 가슴이 무거운 돌로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답답해졌다.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톱밥이 찌그덕거렸다. 견딜 수 없어 막판엔 여자 화장실에까지 난입해서 숨박꼭질은 관두고 빨리 나오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덕분에 설사병 걸린 환자 취급에, 변태 취급에, 졸지에 실수로 자식놈 잃어버린 젊은 아빠로 오해까지 받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땅거미가 내려오자 장사가 잘 되지 않던 상점들이 정해진 폐점 시간은 무시한 채 하나 둘 셔터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샘은 자신이 혼자가 되었음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딘은 그토록이나 애지중지하던 67년형 쉐비 임팔라까지 내던지고 깨끗하게 증발해버린 것이다.
쓰러지듯 공원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아 차가운 진땀으로 젖은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 가슴 한 구석으로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각오까진 하고 있지 않았다. 『진짜로 버리고 갔어. 날 믿는다고 해놓고, 신뢰한다고 말했으면서 혼자 떠났어!』 아무도 곁에 없다. 온기 하나 없는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적의 적막함이 어깨를 찍어 눌렀다. 화분은 꽃을 피우긴커녕 말라 비틀어졌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텅 비어 있다. 숙제를 도와줄 엄마는 죽고 없다. 남들로부터 미친 사람이라 손가락질을 받는 아버지는「사냥」을 떠나 연락도 없다. 남은 건 형 하나 뿐이다.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하나뿐인 피붙이를 찾아 허우적거린다. 그래봤자 집은 여전히 어둡다. 쥐죽은 듯이 고요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냉기가 돌던 집. 불 꺼진 집... 진절머리가 나는 집. 그곳에선 눈을 감아도, 떠도 오로지 새카만 암흑만이 펼쳐져 있었다. 깍지를 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사막 한 가운데서 물통 하나 없이 조난을 당했어도 이보단 덜 당황했을 것 같다. 수중엔 나침반도 없는데 별빛 하나에 의지해 오아시스를 찾아 걸어야 한다.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당장 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행여나 딘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를 확인하는 것밖엔 없었다. 같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추위에 질려 얼굴이 새파랗게 되기까지, 사람들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혹시라도 마음을 바꿔 딘이 자신에게로 돌아와주길 기대하면서, 조금이라도 옷차림이 비슷한 젊은 사람이 보이면 눈을 크게 부릅뜨고 뛰어갔다.
『행색은 멀쩡하게 생겨가지고는... 젊은 사람이... 쯧쯧.』 그가 구걸을 하는 거라 착각한 사내가 1달러짜리 지폐를 던져주었다. 『그만하고 집에 가게. 이렇게나 날이 어두워졌잖는가.』 뭔가에 홀린 것처럼 보이는 청년은 그의 꾸지람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땅에 흘린 1달러 지폐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뒤돌아 사라졌다.
『바비 아저씨? 저예요, 샘 윈체스터.』 누군가를 붙잡아야 했다. 샘은 당장 생각나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여보세오」라고 말하기도 전에 바비는 샘이 연락을 취해올 줄 진작부터 알았다는 투로 한숨을 내쉬었다. 짐작하자면 딘이 미리 언질을 준 모양이다. 어쩌면 자기가 떠나 있는 동안 신세를 지게 해달라 개인적으로 부탁을 했을 수도 있다. 아버지 존과 친구인데다 오랫동안 윈체스터 가족과 알고 지냈으니 낯가림이 심한 딘이라고 해도 동생을 돌봐달라 고개를 숙일 법도 하다. 《샘이냐? 긴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이쪽으로 오거라. 나와 같이 있자꾸나.》 이 묵직한 사내는 어쩐지 안쓰럽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게 꼭 키우던 개를 잃어버리고 밤새도록 동네 한 바퀴를 돈 꼬맹이를 눈앞에 둔 사람 같았다. 그것이 샘의 불안감에 부채질을 했다. 지금의 바비는「네가 사랑하던 개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다」라는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어 끙끙 속앓이를 하는 어른처럼 굴고 있었다. 가뜩이나 등이 차가워 미칠 지경인데 굵은 얼음 알갱이로 문지르는 행위였다. 샘은 짧게 호흡하며 속으로 10부터 1까지 숫자를 거꾸로 세었다. 『형이 말도 안 하고 없어졌어요. 딘이 어디로 간다는 이야기를 아저씨께 하진 않았나요.』 《안 했다. 네 형의 보기와는 달리 입이 의외로 무겁다는 건 너도 잘 알 잖니.》 『알았어요. 그럼 전화 끊을게요. 안녕히 계세...』 《샘!》 『죄송하지만 많이 급해서요. 빨리 딘을 찾아야 해요.』 바비가 황급히 수화기를 고쳐 잡는 기척이 들려왔다. 《관두거라.》 『왜요?』 《왜라니! 때로는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 혼자 움직이는게 능률적일 때가 있는 법이란다. 너도 나름대로 헌터니까 잘 알잖니. 네 아버지도 종종 그러고 했다. 딘은 제대로 옳은 판단을 한 거야.》 옳은 판단 좋아하시네. 샘은 답지 않게 냉랭한 목소리를 냈다. 『틀려요, 바비 아저씨.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같이 움직이는게 모두에게 좋은 거예요.』 《글쎄다...》 바비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두 사람 모두 자식놈과 다를 바 없으니 딘도 걱정되고, 샘도 걱정이 되는 것이리라. 그래도 유능한 헌터이자 직업 퇴마꾼인 그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단독 행동에 들어간 딘이 옳다고 여기는 듯했다. 묵직한 한숨이 그래서 터져나왔다. 《샘?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딘은 곧 돌아올게다. 그러니 너도 몸을 숨기는게 어떻겠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바비 아저씨. 전화는 이만 끊을게요. 그리고 딘에게서 행여나 연락이 오면 제가 하는 말을 꼭 전해주세요.「두고 봐. 팬티를 확 벗겨버릴테다!」라고요.』 당황한 바비가 훅 숨을 들이마시는 것과 동시에 샘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로드 하우스에선 주인인 앨런이 아니라 악동 애쉬가 전화를 받았다. 한창 바쁜 시간대인 모양이다. 주변으로 술꾼들이 내는 시끌벅적한 소음이 들려왔다. 서빙을 하는 건지, 아님 눈이 풀린 주당들과 섞여 같이 나발을 부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아수라장의 상황에서 애쉬는 낄낄 웃기부터 했다. 《저런, 이게 누구신가. 샘 윈체스터 아니우. 형제분들끼리 또 싸우셨수? 아까는 형님이 전화하더니 이번엔 동생분이네.》 긴장한 샘은 전화기로 귀를 바짝 가져갔다. 『어... 딘이 뭐라고 했는데?』 축농증으로 고생하는 소리를 내며 애쉬가 코를 들이마셨다. 《적에게 내가 어디 있는지 절대로 알리지 마라. 아울러 샘에게 협조하면 넌 죽은 목숨이다.》 『애쉬!』 왁자지껄한 술집 배경음이 더 커졌다. 애쉬는 수화기를 절반만 귀에 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쥬크 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도플러 효과처럼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그랴 그랴, 이 몸은 잘 알고 있수. 하지만 난 단단히 입막음을 당한 상태라서... 댁의 형에게 주먹질 당하고픈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거들랑. 게다가 딘이 주먹질을 하면 살인은 안 된다고 형씨가 정색하고 뜯어말릴 거 아뇨. 반대로 그쪽이 주먹질하면 딘은「오, 내 동생이 드디어 남자가 되었다~♬」이러면서 나는 몰라라 뒷짐만 지겠지. 계산기를 아무리 두둘겨봐도 딘 윈체스터에게 붙는게 나에겐 유리하더라고. 그러니까 샘 윈체스터씨? 형님 행방에 대해선 묻지 마쇼. 알아도 이 몸은 말 못한다오. 아 참, 빈 방은 많으니 언제든 오시라고 앨런이 전해달랬수. 그럼 바빠서 이만... 어이! 그건 내 맥주야! 왜 허락도 없이 가져가는 거야! 그래! 나는 종업원이다! 허나 종업원도 술은 마신다! 씨불렁...》 『애쉬? 애쉬! 다른데 정신 팔지 말고... 앨런과 직접 통화하고 싶어. 바꿔줄 수 있어?』 그래봤자 이미 그는 시큰둥한 눈치다. 다리를 흔들며 건들거리는 히피의 모습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미지근하게 식은 콜라를 빨대로 한 모금 빨았다는 식으로 쳇 소리를 냈다. 《아줌마는 무지 바쁘시다오. 그나저나 언제 오실라오? 일정을 알아야 방을 미리 치워두지.》 『거기로는 가지 않아. 난 딘을 찾으러 갈 거야.』 《그랴? 바보 짓 한다고 앨런 여사께서 나중에 따끔하게 한 마디 할 걸?》 『물론 그러겠지.』 《걍 고집부리지 말고 이리로 오시지? 요즘 내가 진짜로 좋은 물뽕을 구했는데 공짜로 조금 줄게. 죽여줘. 순식간에 간다니까? 천국에서 아가씨들이 알로하 댄스를 춘다고. 행복으로 질주하는 고속도로야. 속도 위반으로 쓰러질 지경이지. 어때?》 『나중에.』 《.......... 씨씨.》 로드 하우스의 악동은 길게 권하고픈 생각은 없다며 코를 킁킁거렸다. 전화는 곧 끊겼고, 샘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떨궜다. 그렇다면 이제 나머지 사람들에게... 번호를 누르려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길을 인도해줄 별빛은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 샘이 가지고 있는 수첩은 얇았고, 그나마 살갑게 안부 인사를 나누던 헌터들은 악마에게 빙의된 메그에게 목이 잘려 운명을 달리한 뒤다. 샘은 사막의 별빛이 곧 먼지 구름에 가리워져 곧 보이지 않게 될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되면... 그는 곧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모텔을 잡을 기력도 없었다. 늘 하던 버릇대로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으로 기어들어간 샘은 몸을 둥글게 말고 눈을 감았다. 『아빠...』 눈두덩이가 숯덩이처럼 뜨거워지면서 저도 모르게 약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날 도와줘요. 제발... 부탁해요.』
반경 2km 안으로 접수된 자동차 도난 신고 접수 내용을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떠났다면야 모르겠다만, 그의 성격이라면 차를 훔쳤을 것이다. 단, 주 경계선을 벗어나면 훔친 차를 바로 버리고 다른 차로 갈아타기 때문에 계속적인 추적은 결코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참을성이 요구되는 일이다.「격분」과도 흡사한 지금의 마음가짐으론 불가능하다.
손으로 턱 아래를 쓰다듬다 말고 눈물이 말라 빡빡해진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보니... 머리에 구멍이 뚫려 죽은 여자가 자동차로 쫓아오면서 입에 담았던 말이 뭐였더라. 입술을 깨물고 느릿느릿 고개를 흔들었다.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여자의 앵앵거리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힌트를 줄게.》 술집 바빌로니아!
그리하여 간판을「바빌로니아」로 적은 모퉁이 술집으로 재앙이 닥쳤다. 거인은 이미 몇 잔의 술을 들이킨 상태였다. 붉게 변한 눈동자로 사방을 쏘아보며 손님들을 밀치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발잔등을 심하게 밟힌 뜨내기 여행자가 제발 조심하라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래봤자 덩치가 남산만한 사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곧장 카운터로 진격했다. 주문받은 데킬라를 준비하던 바텐더가 놀라서 눈을 휘둥글 떠보였다. 짐승 같은 사내가 살기를 드러낸 채 테이블로 두 손바닥을 짚었다. 그 모습이 워낙에 위협적이라 바텐더는 숨겨둔 장총을 잡고자 슬그머니 손을 아래로 내렸다. 이건 완전히 강도다. 이제 곧 그는 금전출납기에 들어간 현금 전부를 내놓으라고 협박을 할... 음, 오해였다. 그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었다. 『딘을... 어쨌어.』 『뭐요?』 『우리 형을 어쨌느냐고!』 『당신, 돌았소?!』 『내놔! 당장 돌려줘!』 『어디서 행패야~!!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는 법이 어딨소?! 사람을 찾는 거라면 경찰소로 가시오! 여기선 술만 파니까!』 『우리 형... 몰라? 딘 윈체스터라고 하는데... 정말 몰라?』 『취했구먼, 이 친구 꼭대기까지 취했어.』 『여기 이름이「바빌로니아」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딘을 알 거 아냐. 알잖아!』 『간판 이름이랑 그거랑 뭔 상관이오! 차라리「이라크의 후세인과 친구지?」라고 물어봐줘요.』 『정말 몰라?!』 『보이스카웃 선서라도 할까요. 모르오.』 바텐더는 입에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불곰의 등짝을 밖으로 내밀었다.
또 다른「바빌로니아」에서는 패싸움이 벌어졌다.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만 골라서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으니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애인이 필요한 거라 오해한 남자가 자기랑 같이 호텔을 잡자며 수작을 걸어왔다. 샘은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는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 자식! 딘에게도 그렇게 말했어?! 말했냐고!』 『이봐? 진정해. 난 딘이라는 사람은 몰...』 『같이 잤어?! 제기랄, 같이 잤냐고~!!』 『뭐?』 『용서 못 해. 죽여버릴테다.』 이쪽 대답은 제대로 듣지 않고 손등 껍질이 벗겨지도록 멋지게 후드려 팼다. 그걸 말려보겠다고 사람 다섯이 덤벼들었다. 그래봤자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샘이 숫자상 불리하다고 뒤로 뺄 리가 없었다. 의자를 던졌고, 맥주병을 깼고, 한 사람당 연속 펀치 세 방을 날려가며 짐승처럼 표효했다. 『이리로 딘을 데리고 오란 말이야~!!』 그것이 말도 안 되는 투정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으나, 한 점 거짓 없는 진심인 것도 사실이었다. 『돌려줘! 당장 돌려줘!』 누구에게 화를 내는 건지도 모르면서 샘은 울부짖었다. 뒷통수로 딱딱한 물체가 충격을 가하면서 정신이 아득해지기까지, 샘은 외치고 또 외쳤다.
불 꺼진 집에 홀로 남겨지는 건 질색이다. 그런 집이 싫어 도망쳐왔다. 같이 돌아가자고 손을 잡을 때는 언제고.
『멋대로 사라지기나 하고 말이야...』 털썩 쓰러지면서 샘은 원망을 하나 가득 담아 투덜거렸다.
Posted by 미야
2007/03/14 23:13
2007/03/1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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