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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탈출을 해봅시다.

시나님이 올리신 과제 이야기를 듣고 잠시 망상 모드.
그런데 방법 50가지는... 벅차요. 일단은 15가지만.

1. 해변가에 모닥불을 피워놓아 근방을 지나가는 배에 「여기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있음」을 알린다. 운이 좋으면 한달 정도, 나쁘면 50년 정도 걸리겠지.
2. 통나무를 깎아 배를 만들어 직접 바다로 뛰어든다. 상어밥이 될 확률이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스탠다드한 무인도 탈출방법이다.
3. 핸드폰으로 집에 전화를 걸어「어서 데리러 와줘, 달링」이라고 말한다. 밧데리가 나갔을 경우엔 대략 난감. 핸드폰이 없어도 대략 난감.
4. 열심히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어「바다여, 갈라져라~」라고 외쳐본다. 모세는 가능했었다. 또 아나.
5. 바다 코끼리를 조련한다. 거북이 껍질을 타고 바다로 나가보자. 무천도사냐고 묻지는 말아라.
6. 요가를 열심히 하여 순간이동법을 습득해 보자. 심즈 게임에선 되드라.
7. 땅을 계속 판다. 지구 반대편이 나올 때까지. 설마, 저 반대편은 바다가 아니라 육지겠지- 하고 믿어보자.
8. 바닷물을 밖으로 죄다 퍼낸다. 그리고 유유히 건조된 땅을 걸어서 탈출한다. 계획부터 실행, 완료까지 32만년쯤 걸리려나, 그건 잘 모르겠다.
9. 고래를 잡아 먹어라. 그린피스가 중무장을 하고 달려온다.
10. 짱가나 홍반장...을 기대하자. 나는 위기에 처했다. 달려와라, 달려와!
11. 피라미드를 건설하라. 인공위성에서 사진을 찍고는 놀라 고고학팀을 파견할 것이다.
12. 밀림의 나무를 계획적으로 베어내어 하늘에서 HELP라는 글자가 보이게끔 만들자. 아스카에선 더 복잡한 그림도 그렸다더라. 난 할 수 있다.
13.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찾아 고쳐주고 박씨 하나를 선물로 받자. 그 많고 많은 박중에 대형 유람선 한척 정도는 안 들어가 있을까? 뭐? 안 들어가 있다고? 게다가 박을 썰 톱은 어디서 구하느냐고? 무시하라.
14.「저는 무인도에서 조난을 당했습니다」라는 편지를 적어 유리병에 넣고 바다로 띄어보낸다. 누군가는 보고 911에 신고할 것이고, 누군가는 쓰레기를 투척했다며 벌금을 부과할 것이다.
15. 대륙 이동설을 믿으니 무인도도 이동할 것이라 믿어본다. 그 이동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기 위해 바닷가에서 노를 저어본다. 배가 없으니 무인도를 끌고 육지로 가자.

Posted by 미야

2006/04/26 12:31 2006/04/2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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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야 2006/04/26 16:07 # M/D Reply Permalink

    조개를 잡아먹고 그 껍질을 모아 바다를 메운다 - 걸어서 탈출한다 - 라는 방법도 하나 건짐.
    비슷한 방법으로 섬의 흙을 퍼서 조금씩 남쪽(북쪽도 상관 없음)으로 옮기는 것으로 섬 자체를 대륙 방향으로 이동시킨다 라는 것도 생각해냄.
    그래봤자 17가지밖에 안 되네. 무슨 재주로 50가지 방법을 강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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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 : 마탑요시2-1

선생님이 출석부로 머리통을 때리면 그 아픔보다는 울분 때문에 눈물이 나는 법이다. 하물며 신발이다. 어쩌면 개똥도 밟았을 물건으로 머리를 얻어맞았다는 걸 깨달은 사내는 소매춤으로 눈가를 가렸다. 많고 많은 것들 중에 하필이면 신발? 서럽게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울긴 왜 울어, 이 친구야. 이건 기쁨의 소식일세. 보시게, 기다리던 이들이 와주시었네.』
시골 총각 발란틴과는 반대로「깡통」과「영감」은 희희락락한 표정을 지었다. 기쁨이 더욱 큰지라 머리통이 아프다는 건 잠시 접어 두었다.
『오늘이 정확히 15일째지? 2주일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 오버했군.』
『마제스쪽 갈림길이 좀 헷갈립지요. 푯말 수리가 제때 되질 않아 길이 익숙치 않은 여행객들은 이곳이 아닌 요만 계곡으로 잘못 방향을 틉니다.』
『아, 그 망할 안내판! 나도 실수한 적 있지. 그런데 일단 계곡 방향으로 끝까지 갔다 싶으면 왕복 사흘이잖소.』
『저치들 길눈이 참으로 밝았나 봅니다. 실수를 깨닫고 도중에 왔던 길을 되돌아 온 듯하군요.』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러면서「깡통」은 리나 인버스를 반갑게 쳐다보... 사실은 여성의 가슴 부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대어본다.
17세* 성장기임을 망각한 초초초 스몰 A컵.
필라멘트 전구에 환한 불이 들어온다.
제피리아 출신 마도사가 분명.
본인 확인 절차를 끝마친「깡통」은 친교의 악수를 청했다.
『와하하. 처음 뵙겠소이다, 리나 인버스씨.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인사는 뒷전이다. 리나는 양말 바람으로 달려와「깡통」사제로부터 붓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형수님, 불쌍한 아이들이 굶고 있소」라며 하소연한 흥부의 뺨대기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철물점에서 사 가지고 나왔을 법한 붓은 새 물건답게 제법 뻣뻣했다. 당황한 사제가 어이쿠, 어이쿠 소리를 내며 질겁을 했다. 돼지털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는 금방 붉어졌다. 밥주걱으로 때린 자리엔 밥풀이라도 남았지만 이쪽은 생채기밖에 안 남는다.
궁여지책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일보 후퇴에 저쪽은 이보 전진으로 반응한다. 반복되는 철썩철썩 소리에 정신이 없다. 감정이 끼어 매맞는 아픔이 곱절로 커졌다.

뒷짐만 지고 있던 제로스는 뚜껑도 따지 않은 풀 깡통을 들어 돌멩이처럼 내리치려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리나를 말리려 들었다.
게다가 승려에게 손찌검을 함부로 하고 있는 여자를 본 주민들이 놀라 까무라치는 시늉을 하고 있다.
이쪽 결계 밖 동네에선 승려의 지위가 월등히 높다. 머리만 박박 민다고 아무나 중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공부를 곱절로 많이 해야 한다. 아는 것이 많으니 할 일도 많다. 일손이 부족한 일부 마을에선 그들 사제들이 행정 업무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는 시골 주민들은 그래서「선생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대접한다. 신심이 부족하야 절간 문지방을 넘는 일이 없을지언정 먼 발치에서 사제 그림자만 보고도 존경을 담아 절을 한다.
이 마당에 어떤 미친 년이 나타나 승려복을 입은 사제를 개 패듯 팬다?
전후 사정은 아무도 고려 안 한다. 오로지 리나만 죽을 년 된다.
『자자, 이제 그만~ 깡통은 내려 놓으세요. 그걸로 때리면 머리가 깨져요.』

그런데 그거 참 이상타.
맞은 사람이 아니라 때린 사람이 후후 숨을 불며 울고 있다.
남의 머리통에서 뽑아낸 한 웅큼의 머리카락도 그녀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없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봐. 내가 댁더러 임포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기분 좋겠어?!』
『그야... 음. 기분은 썩 좋지 않겠죠. 당신이 화내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떤 상황.』
『현재 거주지가 불명확한 사람을 찾아 빠른 시일 내로 이곳으로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입지요. 그래서 고민 끝에「어디에 있는지 찾아낼 수 없다면 그쪽에서 직접 찾아오게 만든다」라는 고전적 방법을...』
『납득했어. 그건 좋다 이거야. 하지만 그 많고 많은 문구 중에「가슴 납작」이 뭐야.「슈퍼급 마도사, 리나 인버스」라던가.「롱 다리의 미소녀」등등으로 광고하면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치기라도 한다든?! 꼭 이런 식으로 불을 질러야 만족할 거야?!』
『롱 다리는 아니잖소. 나는 거짓말은 하지 못 하오.』
『닥쳐!』
『게다가 지상 최대의 마도사님,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 등등의 칭찬 일색으로 떠들면 본 척도 하지 않을 거라고 세일룬에서 미리 언질을...』
『세일룬!』

손가락 마디 관절을 두둑 꺾는 소리가 두렵다. 정말로 사람 잡을 기세다. 엉겹결에 세일룬의 이름을 입밖에 낸 남자는 자신의 부주의함을 저주했다. 이 여자라면 세일룬 왕도로 달을 떨어뜨리고도 남겠다. 달을 떨어뜨리지 못하면 최소한 원한의 굵은 우박이라도 내리겠다.
「가슴 납작」이라 한 마디만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올 거라 꼼수를 내놓은 세일룬 관계자도 누누이 강조하지 않았더냐.
쉿.
다쳐.
자칫 잘못되는 날엔 필립오넬 전하 및 세일룬의 백성들이 두꺼운 솜 이불을 뒤집어쓰고「온다, 온다, 리나 인버스가 온다」며 떨게 된다.

억지로라도 분위기를 바꿔보자. 남자는 간사한 미소를 흘렸다.
『이렇게 서서 얘기만 나눌 것이 아니라 어디 들어가 식사라도 같이 하십시다. 가만 있자, 2시가 좀 넘었군. 시간이 어중간하니 가볍게 교자 만두라도 드시지요.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그런데 그쪽에 계신 검사님은 홀로 점심을 거르셨소이까? 보아하니 엄청 많이 시장하신 듯하온데...』

배가 많이 고파 보인다?
제로스는 뒤돌아 금발의 검사를 바라보고는「어랍쇼?」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다. 창백한 안색이 그리 보기 좋지 않다. 가만히 배를 끌어안고 있는데 다른 각도로 보자면 배가 아파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이 남자가 배앓이를 하는 건 본 기억이 없다. 비누를 삼켜 잘도 소화시키는 남자다.
마족은 안스러이 쯧쯧 혀를 차며 가방을 열어 비상 식량인 초컬릿 바 하나를 꺼냈다.
『오무라이스를 세 접시나 드셨으면서 벌써 배가 꺼졌어요? 자요.』
친절히 손수 그 포장지를 벗겼다.

『아마 그게 아닐 걸.』
가만히 있던 구스틴 영감이 표정을 달리하고 앞으로 나섰다. 뭔가 짐작가는 것이 있었는지 의사 선생님처럼 정색하고 싫다는 가우리의 혀를 억지로 잡아당겼다.
일행은 깜짝 놀랐다.
잡아당겨진 혀의 색이 거짓말처럼 하얗다.
영감은 혀를 끌끌 차며 눈꺼풀도 뒤집어 보았다.
『요세이님? 이자는 쿼터입니다. 그래서「반응」을 보인 겁니다.』
『뭐라고! 이거 큰일났군. 내가 부축할테니 도와주시오.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봅시다.』
『알겠사옵니다. 검사? 토할 것 같으면 참지만 말고 미리 말하시오. 어지럽거나, 메슥거리거나, 눈앞이 빙빙 돌아도 말하시오.』
가우리는 갑작스런 환자 취급에 뻗대며 반항했다.
『이봐? 왜들 이래. 난 병에 안 걸렸어.』
꽃가루 알레르기라도 일으킨 것처럼 몸이 나른하고 어지럽다. 평상시의 베스트 컨디션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죽어가는 중환자 취급을 받을 까닭이 없다.
이마를 만져봤다. 차갑다. 아주 차갑다.
가우리는 이것 보라며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열은 없다구.』

요세이라는 자가 표정을 달리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차갑다는게 문제요. 앞으로 체온이 더 내려갈 거요. 아~아주 나쁘죠.』
『에?』
『내버려두면 앞으로 반나절만에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꼼짝도 못하게 될 거요. 가사 상태, 말 그대로 의식도 없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되지요.』
『에에?!』
『그리고 한달 뒤엔... 그 실터럭 같은 가냘픈 호흡조차 멎어...』
요세이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새파랗게 눈을 부릅떴다.
『죽습니다.』
『으에에에~?!』
『죽습니다!』
『으에에에~!!』

바로 이것이었나.
저들 사제들이 체면 불구하고「당신 가슴 형편 없네」타령을 하면서까지 리나를 황급히 불러들인 까닭이란 것이?
포장지를 벗겼으니 도로 가방 속에 집어넣을 수는 없다. 가우리에게 먹이려던 초컬릿 바를 한 입 베어물고 제로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프에게 치명적인 -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 뭔가가 있는 겁니까?』
『예, 있어요.』
그러면서 시골 총각 발란틴은 등 뒤로 보이는 고색찬란한 하얀 탑을 어깻짓으로 가리켰다.
『 한 마디로 웬수죠.』


천천히 가기로 하고 작정하여 조각조각 내고 있습니다. ^^ 내킬 적마다 쓰는 것도 신선하네요.

Posted by 미야

2006/04/25 14:23 2006/04/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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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우 2006/04/26 04:46 # M/D Reply Permalink

    '온다온다 리나 인버스가 온다'에서 뒤집어졌습니다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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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 : 마탑요시1-2

구석구석 진귀한 유적들이 들어선 유서 깊은 도시다. 공장에서 집단으로 핸드폰을 조립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입원은 확실하겠다. 기둥 세 개 남은 신전 앞에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팔기만 해도 시민들의 호주머니는 금방 불룩해질 것이다. 가우리는 감탄하며 천 년은 되었을 구름 다리를 건넜다.
다리 위로 석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팔뚝이 떨어져 나갔어도 꽤나 아름답다.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여자는 역시나 같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방울새와 놀이 중이었다. 이미 없어진 오른손으로 먹이를 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날갯짓하는 방울새가 아쉬운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졸라대는 쪼롱 소리가 기뻤던지 여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한가닥 머리카락에 잔잔한 행복이 숨어 있다. 그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훔쳐보려고 가우리는 손바닥을 눈가에 가져갔다. 하얀 햇살에 반사되어 석상의 하얀 목덜미가 뽀얀 우윳빛으로 다가온다. 황홀하리만치 유혹적이다.

『멋진 곳이네. 그지?』
그러나 리나는 동의를 구하는 가우리의 질문에 대꾸도 하지 않는다.
멋진 관광 도시? 고풍스런 조각? 천 년의 역사? 다 집어 치우라고 해라.

탑의 도시로 들어와서 그녀가 보인 행동이라는 누가 풀 깡통을 들고 가지는 않는지 찾고 또 찾는 것밖엔 없었다. 포스터를 옆구리에 꿰찼다 싶으면 뛰어서 그 어깨를 붙잡았다. 눈이 벌개져선 주먹을 흔들어댔다. 들고 있는 광고지가 텍사스 카바레 2호점 오픈을 알리는 내용이라 해도 벌컥 화냈다.「심수봉이 출연한다니까요!」라며 어쩔 줄 몰라하는 포스터 부착 아르바이트생에게「네가 내 가슴 작다고 광고했어?」라며 따져 물었다. 타조에게 가서 누가 닭의 알을 낳았느냐 물어보는 식이어서 당연히 그들 사이로 곱지 않은 고성이 오갔다.

『이성을 되찾읍시다.』
제로스는 구세군 냄비 앞에 선 자원봉사자처럼 작은 종을 딸랑 흔들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판단하자면 지금의 리나는 아무나 잡고 시비를 거는 주책의 여행자였다.
뜬금없이 화를 내며「난 가슴이 작지 않아!」라고 주장한다.
누가 뭐랬수? 지나가는 사람이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 빙빙 돌린다.
그걸 보고 리나는 불처럼 다시 화낸다.
이것의 악순환이다.
『이성을 되찾읍시다.』
제로스는 두부 장수 딸랑 소리를 내며 다시 한 번 리나를 설득했다.

『일단 가까운 사원으로 가봅시다. 문제의 벽보를 붙인 이들이 사제복을 입고 있다고 했잖습니까. 그쪽에 가서 물어보면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무작정 뛰어다니면서 우연히 어망에 큰 고래가 걸리길 기다려선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그린피스에게 습격만 당합니다.』
아니면 마을 회관으로 가서 게시판 부착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누가 누가 나타나나 감시하는 방법도 있다. 아직 이 도시엔「그 여자 가슴 작아」라는 광고가 붙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 곧 붙게 된다는 것이고, 어딘가의 누군가가 접수필증을 받으러 관공서를 방문한다는 얘기가 된다.

『신전과 마을 회관. 어느 쪽으로 하시겠어요?』
제로스는 열심히 흔들던 노란색 종을 잠시 내려놓고 질문했다.
『제 개인 생각으로는 신전 쪽을 노리고 싶습니다만.』

제로스가 말한「노린다」의 말 뉘앙스가 어쩐지 탐탁지 않은지라 리나는 눈썹부터 찌푸렸다.
텍사스 카바레 광고지를 네 번 접어 휴지통에 넣다 말고 흐응 소리를 냈다.
『신전에 가고 싶으시다? 나 때문이라는 건 순전히 핑계고 실은 따른 목적이 있는 거 아냐? 이를테면 정탐이라던가, 시한 폭탄 장치라던가...』
『여보쇼! 내가 테러리스트라도 된답니까?!』
『너, 지금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그 전엔 순간적으로 움찔했어.』
『...』
『찔렸군, 찔렸어. 정곡을 찔렸어.』

살아온 세월을 비교하자면 그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한쪽은 인간이고 다른 한쪽은 마족이다. 이 둘은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인간이 죽어 백골이 진토가 되도록 마족은 이마에 주름살 하나 안 생긴다. 리나의 124대 조상님이 요람에서 울음을 터뜨렸을 적에도 제로스는 지금의 모습으로 드래곤을 손가락질 하나로 참살하고 있었다.
허나 결계 밖 세상에서 겪은 경험의 길이만 논하자면 리나와 제로스 둘 모두 거기서 거기다. 탑 랭크의 마법사 리나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천 살은 넘게 나이를 잡수신 마족 제로스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더 많은 실정이다.
지난 천 년간 결계를 경계로 왕래 자체가 원천 봉쇄된 땅이다. 이곳 사람들이 밑반찬으로 개구리를 먹는다는 얘기를 들어도 정보 부족 탓에 그게 농담인지 아닌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 놀라야 할지, 아님 웃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정상인지조차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리하여 지상 과제는 떨어졌다.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를 수집할지어다.

『여기 사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가 알아 보라고 네 상관이 시키든?』
리나의 말투엔 뾰족한 가시가 돋쳐 있었다.
『남은 속상해 죽겠는데 정작 네놈은 이곳 신전 건축대장 표제부를 훔칠 생각만 하고 있다 이거지!』
『건축대장 표제부? 아니예요. 전 그저 이곳 신전 도서관 장서 목록만 확인하면...』
『허! 도서관 장서 목록이라!』
리나는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는 그 벗은 신발로 황급히 자기 입을 틀어막은 마족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같이 따라다니겠다고 설쳐댄 이상 개인 플레이는 반칙이다. 도서관 장서 목록 확인에 정신이 팔려 취미가 중상모략인 사제들 찾는 일은 건성으로 하시겠다? 리나는 벗은 신발을 도로 신기 전, 제로스의 뒷통수로 찍힌 230 사이즈 자국에 다시금 손바닥 도장을 덧발랐다.
『자슥아. 딴 생각 말고 나에게만 집중해!』
아무렴. 지금은 범인 체포가 최우선이다.

『그치만 이 넓은 도시에서 전단지 붙이고 돌아다닐 사제를 뭔 재주로 찾아내느냐고요, 리나님. 차라리 어항에서 자연 모래와 인공 모래를 구분해서 갈라놓으라 하세요.』
머리에 묻은 먼지 자국을 털어내며 마족은 불평했다.
『리나님에게 집중하라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그러면서 예쁜 아낙을 살포시 끌어 안았다. 왼쪽 팔이 은근슬쩍 엉덩이에 닿았다. 아이고, 이 포동포동한 감촉. 이 맛에 세계 멸망이라는 위대한 포부도 잠시 접었다.
『사제들 찾는 일은 쉽지가 않아요, 쉽지가.』

뭐가 쉽지가 않냐.
리나와 가우리의 고개가 동시에 옆으로 돌아갔다.
저기 있잖아, 저기.

젊은 청년이 붓과 깡통을 들고 간다. 그 뒤를 포스터임이 분명한 종이를 돌돌 말아 옆구리에 꿰찬 영감님이 따라간다. 부록으로 목에 하얀 붕대를 동여맨 남자가 붙었는데 사색이 되어「이러시면 안된다니까요」라고 호소하고 있다.
앞의 두 명이 휘파람까지 불어가며「아이구, 신나 죽겠네」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진땀 투성이의 이마를 손등으로 훔치고 무거운 한숨을 몰아쉰다. 총총 걸음으로 앞질러가 노인네의 소매춤을 붙잡는 것으로 동행을 만류해본다. 고집이 꽤나 있어 뵈는 노인은 들은 척도 안 한다. 대신 오른 손을 뻗어 벽에 들러붙은 모기를 단방에 때려 죽이는 시늉을 해보였다. 이마를 세차게 얻어맞은 청년이 으악 소리를 내곤 눈물을 글썽였다. 정말로 아팠겠다. 피부가 발갛게 물들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맞은 것도 서러운데 붓과 깡통을 든 사제가 뒤를 돌아다보곤「그러니까 내가 뭐랬는가. 얌전히 있으시게」라고 면박까지 준다.
성질 나는데 확 자살해버릴까. 청년은 울상지었다.

『자네는 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네, 발란틴. 밝게 생각해. 햇살이 따스하고, 하늘은 청명하고, 지나가는 아낙은 우릴 보고 웃어주고. 뭐가 아쉽다고 우거지상인겐가. 젊은 나이에 이마로 내천자 주름 생길라. 자! 웃으시게, 형제. 먹이통을 향해 달려가는 다섯 마리의 꽃돼지들처럼 우아한 곡선을 그리라구.』
『하지만...』
『말지만!』
이상한 말투로 남의 말꼬리를 과감히 잘라버린 노인은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풍이다, 소풍. 오전 한차례 소낙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를 미리 걱정해서 뭘 하누. 내리면 내리는 것이오,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잠시 피하면 그만이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도시락을 언제 먹을 것인지만 생각하자. 오늘의 점심은 삼색 김밥에 찐 달걀이다. 특별 서비스로 쏘시지 볶음이 있다. 노인은 입맛을 다셨다. 허브를 넣어 향기를 더한 찐 달걀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검소한 식탁」이라는 사제들의 밥상 법칙에도 어긋나지 않으며, 건강에도 좋다 하니 이 어찌 반갑다 하지 않을 수...

『점심?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군, 구스틴. 찐 달걀이 아니라 계란말이일세.』
앞서가던 풀 깡통 청년이 귀를 쫑긋 세우다말고 섭섭한 말을 거냈다.
『예?』
『설탕과 맛술을 넣어 달짝지근하게 부쳐낸 계란말이일세. 요모하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지. 서민적이면서도 맛깔스럽다네. 구스틴은 안 좋아하나?』
『아이고! 그거 참담하군. 소인은 당뇨 기운이 있사옵니다.』
『당뇨?! 저런. 몸 아프단 말은 내 앞에서 한 번도 안 했잖나. 도대체 언제부터?』
『한 3년 정도 되었나... 갑자기 쓰러지거나 하진 않을테니 심려치 마소서. 병세가 심각하진 않사옵니다.』
『심각하지 않아도 그렇지. 조심하게. 자네 나이가 어디 보통 나이던가.』

도시락 김밥 냄새를 맡고 그들 뒤를 추격하던 리나는 잠시 이마를 찌푸렸다.
이상한 3인조다.
『깡통 쪽이 신분이 월등히 높군.』연장자 쪽이 존댓말을 쓰면서 뒤를 따른다. 이게 가능하려면 나이 어린 자가 노인보다 신분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돈은 없어. 거의 알거지 수준.』
사제복은 사제복인데 장식 금단추 하나 안 달린데다 평범한 면 섬유 제품이다. 3명 중에서 옷차림이 가장 후질구레하다. 주름지고 헤어진 옷자락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염색도 싸구려다.
허나 변장을 위해 그런 옷을 일부러 골라 입은 건 아닌 듯하다. 어디까지나 낡고 초라한 옷에 익숙한 사람이다. 암행을 나온 임금님이 핫바지를 입고 있으면 무척 어색해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저 자는 팔꿈치를 덧댄 셔츠가 잘 맞고 있다. = 자기 옷이다.
『목에 기브스를 한 자가 척 보아 가장 서열이 낮은 것 같긴 한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기도 하고... 도통 모를 일 투성이군.』
다른 사람들은 짐을 들었어도 그의 손은 텅 비어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어느 동네 사장님이 직원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느냔 말이다. 목을 다쳐 이를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상이 심각하지 않다는 건 청년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동작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저 붕대는 순전히 장식이다. 그의 목은 위로, 그리고 아래로 잘만 돌아갔다.「깡통」과「영감」을 번갈아 쳐다보기 위해 좌우 방향으로도 잘 움직였다.

『어떻게 할까요.』
잠자코 따라오던 제로스가 넌지시 목소리를 낮춰 그녀의 의향을 물어왔다.
『죽여버릴까요.』

무덤덤한 말투로「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그가 싫어지려 한다.
『멋대로 나서지 마. 죽이는 건 내가 할테니 넌 신발만 벗어 이리 줘.』
『아우?』
『신발.』
그러더니 자신의 신발까지 벗었다.

목표물은 셋.
좌표 입력하시고.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눌러 적을 응징하고자 하였다.
『날아랏!』
구두 세 짝이 쏜살처럼 날아올라 장관을 이루었다.
딱. 딱. 딱.
한 치의 오차 없이 명중.
머리를 부여잡고 세 명의 사제들이 자리에 주저 앉았다.

Posted by 미야

2006/04/20 12:55 2006/04/2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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