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에게 치명적이랜다.
그렇다면 서둘러 자리를 뜨도록 하자.
리나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해가며 가우리를 부축하여 옮기려는 사제들을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그 작은 몸으로 금발의 키큰 검사를 손수 등에 엎으려 했다.
자, 기절한 개구리를 봄날의 따스한 언덕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아이고, 리나 인버스님.』
『왜. 내가 댁들을 도와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놓기라도 했어? 싫어. 난 빠질테야. 다른 사람을 알아 보슈.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갈 것이고, 다시는 이 동네로는 오지 않을 거야.』
『그게 아니라... 사내를 엎고 갈 거라면서 정작은 깔린 형상이 되어 길바닥에 드러누우면 어쩌자는 거요.』
『어.』
마음은 굴뚝인데 생각대로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사람의 몸은 - 그것도 축 처진 성인 남자의 몸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히 무거웠다. 리나는 포로타스의 불타는 산적 소굴에서 거대 황금 염소상을 억지로 들고 나왔을 적에 맛보았던 끔찍한 고통에 허리를 펴지 못했다.
기를 쓰고 팔뚝에 힘을 주면 질질 끌려오기는 한다. 한 5cm 정도.
이를 악물고 힘이여 솟아라 기합을 넣으면 조금은 더 끌려 온다. 한 10cm 정도.
이럴 리는 없다 싶어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즉시 기분 나쁜 우둑 소리가 들린다.
하여 판단한다.
가우리, 너 살쪘구나.
당황해서 눈으로 제로스를 찾았다. 안 되겠다. 100원을 줄터니 도와달라고 하자.
『예전부터 죽 이랬던 건 아니겠지요?』
『그야 당연하죠.』
하지만 배반자는 탑에 온통 정신이 팔려 SOS 신호를 보내는 존재를 망각했다.
수첩만 쥐었으면 목격자 진술을 받는 경찰이다. 연필에 침만 바르지 않았을 뿐이지 꼬치꼬치 깨묻는 폼이 골백번 해본 전문가다. 최대한 그 어투는 단조롭게, 그러면서도 허튼 거짓말은 안 통한다는 기백으로 무장하고 제로스는 질문을 계속했다.
『그럼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최초의 시작은 추정하기론 18년 전부터라고 생각됩니다.』
『생각됩니다? 지금 (이 마당에) 그럴 거라 추측한다는 겁니까?』
『아. 그게 말이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시점이 꽤나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겐 아직 뚜렷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아요. 엘프, 아니면 그 혼혈자는 사정이 다르지만요. 그런데 이곳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동네이지 엘프가 사는 마을이 아니잖습니까. 주변에서 엘프는 보기 힘들죠. 그러니 어쩌다 여행길에 들린 엘프가 병들어 쓰러져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겁니다. 단순히 어제 저녁에 먹은 음식이 대단히 나빴나 보다~, 하고 고개만 흔든 거죠.』
『알겠습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깨달으려면 발생한 사건의 빈도수가 뒷받침을 해주어야 하는데 여건이 그렇질 못 했다는 거죠? 엘프는 습성상 여행을 잘 하지 않으니까요.』
『예, 예. 18년 동안 이곳을 방문한 엘프의 수는 겨우 열 다섯입니다. 그래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열 다섯... 그 열 다섯의 엘프가 마을로 오는 족족 황천길로 떠났다?』
『일부는 갔고... 더러는 황천까지는 안 갔더라도 그 옆 동네까지는 갔죠. 하여 전날 먹은 전복죽이 상했다는 가설은 당장 기각되었습니다.』
이래서는 썩은 전복죽이 아니라 카오스풍 만도라고라 스프잖아 - 라고 생각한 리나는 한쪽 눈썹을 활처럼 구부렸다.
눈치는 삼단이다. 단발머리씨가 손을 흔들어가며 황급히 주장했다.
『그 전복죽, 제가 안 만들었습니다!』
『뒤로 느낌표까지 안 달아도 돼.』
아무렴, 죽과 스프는 물크덩한 것이 비슷은 해도 완전히 같지는 않음이다.
『그러니까 긴장 풀어. 그 어느 누구도 너를 범인으로 지적하지 않아요.』
라고 놀리며 좀전까지 발란틴이 어깻짓으로 가리킨 하얀 탑을 손가락질 했다.
『잊었어? 사람들 말이 저게 웬수라잖아.』
그렇다 해도 수수께기다.
뭔 놈의 탑이 사람을 - 엘프를 잡냐.
귀신 붙었나?
하지만 귀신 붙은 탑 치고는 모양이 곧다. 거미줄과 형님 아우님 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반대로 위풍당당 행진곡의 대명사다. 곧장 올려다 보니 눈부시게 하얀 몸체가 하늘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벽돌을 굽고 역청을 발라 신의 위엄에 한 걸음 다가서고자 했다던 옛 바벨인들의 오만함까지 느껴진다. 자존심이 드세 하찮은 귀신 같은 건 되려 탑으로부터 내쫓김을 당할 것 같다.
리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암만 봐도 귀신 붙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잠깐, 잠깐! 지금 뭐 하는 겨?』
하늘로부터 땅으로 시선을 내린 리나는 황급히 워워~ 소리를 냈다.
부적임이 분명한 노란색 종이를 품에서 꺼낸 요세이가 왜 그러슈- 눈초리를 했다.
『동작 그만. 지금 가우리를 갖고 강시 만드나.』
길다랗게 오려낸 노란 종이를 가우리의 이마에 붙이려다 말고 요세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노란 바탕에 빨간색 문양. 그것도 정 중앙에 태극의 무늬가 있다.
길이가 제법 있어 후- 하고 코와 입으로 숨을 쉬면 종이가 팔락거린다.
으음, 느낌이 좀 그런가. 그럼 분홍색 종이로 붙여보자. 소매춤에 손을 넣어 다른 부적을 골랐다.
『그런 자잘한 문제가 아니잖아!』
『분홍도 싫소? 그거 참 까다롭네. 그럼 이건 어떻소? 심플한 검정인데.』
가우리가 희미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심플한 검정이고 분홍이고간에 일단 땅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면 안 되겠니.
기운이 다해 다시 코를 흙바닥에 박았다.
원망에 사무쳐 기절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번엔 지붕이 있는 반듯한 건물 안이었다.
만져보니 이마엔 분홍의 부적이 붙었고 발 아래로는 다섯 권의 책을 괴어 놓았다. 아무래도 다리의 높이를 머리보다 높게 하기 위해 그런 것 같다.
그런 관계로 폭신한 베개는 생략. 덕분에 목덜미가 뻣뻣했다.
굳은 몸을 어렵게 뒤척이며 인상을 썼다.
리나는 어디에 갔을까.
『내가 뭐랬나, 발란틴 형제. 풀 깡통을 챙기라고 했잖는가. 아직 라벨도 떼지 않은 물건이니 철물점에 가 영수증을 제시하면 현금으로 환불받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저어, 영감님. 저에겐 붓만 챙기라 그러셨지 깡통 이야긴 하지 않으셨습니다.』
『깡통과 붓은 세트잖는가. 이게 토를 막 달아요.』
『토를 다는 것이 아니고요, 깡통은 처음부터 요세이님이 들고 계셨잖습니까. 마지막까지 요세이님이 깡통을 들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요. 그걸 길바닥에 흘렸을 거라 누가 알았남요.』
깡통, 깡통, 깡통...
들리는 건 말싸움 뿐이다. 그것도 리나가 아니라 예의 포스터를 붙인다고 설쳐대던 사제들이다.
실눈을 뜨고 쳐다봤다.
나이가 어린 쪽이 세숫대야를 들고 있다.
그 옆에서 할아버지가 물 주전자를 옆구리에 꿰고 무어라 툴툴대고 있다.
『이제야 깨어나셨습니까.』
가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제로스가 차가운 손바닥으로 가우리의 이마를 철썩 때렸다.
『아야!』
『반응이 괜찮은 걸 보니 당장 죽진 않겠네요.』
그러면서 마족은 리나가 안 보인다며 불안해하는 쿼터 엘프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