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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20 시즌2 : 마탑요시1-2 by 미야

시즌2 : 마탑요시1-2

구석구석 진귀한 유적들이 들어선 유서 깊은 도시다. 공장에서 집단으로 핸드폰을 조립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입원은 확실하겠다. 기둥 세 개 남은 신전 앞에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팔기만 해도 시민들의 호주머니는 금방 불룩해질 것이다. 가우리는 감탄하며 천 년은 되었을 구름 다리를 건넜다.
다리 위로 석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팔뚝이 떨어져 나갔어도 꽤나 아름답다.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여자는 역시나 같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방울새와 놀이 중이었다. 이미 없어진 오른손으로 먹이를 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날갯짓하는 방울새가 아쉬운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졸라대는 쪼롱 소리가 기뻤던지 여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한가닥 머리카락에 잔잔한 행복이 숨어 있다. 그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훔쳐보려고 가우리는 손바닥을 눈가에 가져갔다. 하얀 햇살에 반사되어 석상의 하얀 목덜미가 뽀얀 우윳빛으로 다가온다. 황홀하리만치 유혹적이다.

『멋진 곳이네. 그지?』
그러나 리나는 동의를 구하는 가우리의 질문에 대꾸도 하지 않는다.
멋진 관광 도시? 고풍스런 조각? 천 년의 역사? 다 집어 치우라고 해라.

탑의 도시로 들어와서 그녀가 보인 행동이라는 누가 풀 깡통을 들고 가지는 않는지 찾고 또 찾는 것밖엔 없었다. 포스터를 옆구리에 꿰찼다 싶으면 뛰어서 그 어깨를 붙잡았다. 눈이 벌개져선 주먹을 흔들어댔다. 들고 있는 광고지가 텍사스 카바레 2호점 오픈을 알리는 내용이라 해도 벌컥 화냈다.「심수봉이 출연한다니까요!」라며 어쩔 줄 몰라하는 포스터 부착 아르바이트생에게「네가 내 가슴 작다고 광고했어?」라며 따져 물었다. 타조에게 가서 누가 닭의 알을 낳았느냐 물어보는 식이어서 당연히 그들 사이로 곱지 않은 고성이 오갔다.

『이성을 되찾읍시다.』
제로스는 구세군 냄비 앞에 선 자원봉사자처럼 작은 종을 딸랑 흔들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판단하자면 지금의 리나는 아무나 잡고 시비를 거는 주책의 여행자였다.
뜬금없이 화를 내며「난 가슴이 작지 않아!」라고 주장한다.
누가 뭐랬수? 지나가는 사람이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 빙빙 돌린다.
그걸 보고 리나는 불처럼 다시 화낸다.
이것의 악순환이다.
『이성을 되찾읍시다.』
제로스는 두부 장수 딸랑 소리를 내며 다시 한 번 리나를 설득했다.

『일단 가까운 사원으로 가봅시다. 문제의 벽보를 붙인 이들이 사제복을 입고 있다고 했잖습니까. 그쪽에 가서 물어보면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무작정 뛰어다니면서 우연히 어망에 큰 고래가 걸리길 기다려선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그린피스에게 습격만 당합니다.』
아니면 마을 회관으로 가서 게시판 부착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누가 누가 나타나나 감시하는 방법도 있다. 아직 이 도시엔「그 여자 가슴 작아」라는 광고가 붙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 곧 붙게 된다는 것이고, 어딘가의 누군가가 접수필증을 받으러 관공서를 방문한다는 얘기가 된다.

『신전과 마을 회관. 어느 쪽으로 하시겠어요?』
제로스는 열심히 흔들던 노란색 종을 잠시 내려놓고 질문했다.
『제 개인 생각으로는 신전 쪽을 노리고 싶습니다만.』

제로스가 말한「노린다」의 말 뉘앙스가 어쩐지 탐탁지 않은지라 리나는 눈썹부터 찌푸렸다.
텍사스 카바레 광고지를 네 번 접어 휴지통에 넣다 말고 흐응 소리를 냈다.
『신전에 가고 싶으시다? 나 때문이라는 건 순전히 핑계고 실은 따른 목적이 있는 거 아냐? 이를테면 정탐이라던가, 시한 폭탄 장치라던가...』
『여보쇼! 내가 테러리스트라도 된답니까?!』
『너, 지금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그 전엔 순간적으로 움찔했어.』
『...』
『찔렸군, 찔렸어. 정곡을 찔렸어.』

살아온 세월을 비교하자면 그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한쪽은 인간이고 다른 한쪽은 마족이다. 이 둘은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인간이 죽어 백골이 진토가 되도록 마족은 이마에 주름살 하나 안 생긴다. 리나의 124대 조상님이 요람에서 울음을 터뜨렸을 적에도 제로스는 지금의 모습으로 드래곤을 손가락질 하나로 참살하고 있었다.
허나 결계 밖 세상에서 겪은 경험의 길이만 논하자면 리나와 제로스 둘 모두 거기서 거기다. 탑 랭크의 마법사 리나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천 살은 넘게 나이를 잡수신 마족 제로스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더 많은 실정이다.
지난 천 년간 결계를 경계로 왕래 자체가 원천 봉쇄된 땅이다. 이곳 사람들이 밑반찬으로 개구리를 먹는다는 얘기를 들어도 정보 부족 탓에 그게 농담인지 아닌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 놀라야 할지, 아님 웃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정상인지조차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리하여 지상 과제는 떨어졌다.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를 수집할지어다.

『여기 사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가 알아 보라고 네 상관이 시키든?』
리나의 말투엔 뾰족한 가시가 돋쳐 있었다.
『남은 속상해 죽겠는데 정작 네놈은 이곳 신전 건축대장 표제부를 훔칠 생각만 하고 있다 이거지!』
『건축대장 표제부? 아니예요. 전 그저 이곳 신전 도서관 장서 목록만 확인하면...』
『허! 도서관 장서 목록이라!』
리나는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는 그 벗은 신발로 황급히 자기 입을 틀어막은 마족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같이 따라다니겠다고 설쳐댄 이상 개인 플레이는 반칙이다. 도서관 장서 목록 확인에 정신이 팔려 취미가 중상모략인 사제들 찾는 일은 건성으로 하시겠다? 리나는 벗은 신발을 도로 신기 전, 제로스의 뒷통수로 찍힌 230 사이즈 자국에 다시금 손바닥 도장을 덧발랐다.
『자슥아. 딴 생각 말고 나에게만 집중해!』
아무렴. 지금은 범인 체포가 최우선이다.

『그치만 이 넓은 도시에서 전단지 붙이고 돌아다닐 사제를 뭔 재주로 찾아내느냐고요, 리나님. 차라리 어항에서 자연 모래와 인공 모래를 구분해서 갈라놓으라 하세요.』
머리에 묻은 먼지 자국을 털어내며 마족은 불평했다.
『리나님에게 집중하라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그러면서 예쁜 아낙을 살포시 끌어 안았다. 왼쪽 팔이 은근슬쩍 엉덩이에 닿았다. 아이고, 이 포동포동한 감촉. 이 맛에 세계 멸망이라는 위대한 포부도 잠시 접었다.
『사제들 찾는 일은 쉽지가 않아요, 쉽지가.』

뭐가 쉽지가 않냐.
리나와 가우리의 고개가 동시에 옆으로 돌아갔다.
저기 있잖아, 저기.

젊은 청년이 붓과 깡통을 들고 간다. 그 뒤를 포스터임이 분명한 종이를 돌돌 말아 옆구리에 꿰찬 영감님이 따라간다. 부록으로 목에 하얀 붕대를 동여맨 남자가 붙었는데 사색이 되어「이러시면 안된다니까요」라고 호소하고 있다.
앞의 두 명이 휘파람까지 불어가며「아이구, 신나 죽겠네」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진땀 투성이의 이마를 손등으로 훔치고 무거운 한숨을 몰아쉰다. 총총 걸음으로 앞질러가 노인네의 소매춤을 붙잡는 것으로 동행을 만류해본다. 고집이 꽤나 있어 뵈는 노인은 들은 척도 안 한다. 대신 오른 손을 뻗어 벽에 들러붙은 모기를 단방에 때려 죽이는 시늉을 해보였다. 이마를 세차게 얻어맞은 청년이 으악 소리를 내곤 눈물을 글썽였다. 정말로 아팠겠다. 피부가 발갛게 물들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맞은 것도 서러운데 붓과 깡통을 든 사제가 뒤를 돌아다보곤「그러니까 내가 뭐랬는가. 얌전히 있으시게」라고 면박까지 준다.
성질 나는데 확 자살해버릴까. 청년은 울상지었다.

『자네는 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네, 발란틴. 밝게 생각해. 햇살이 따스하고, 하늘은 청명하고, 지나가는 아낙은 우릴 보고 웃어주고. 뭐가 아쉽다고 우거지상인겐가. 젊은 나이에 이마로 내천자 주름 생길라. 자! 웃으시게, 형제. 먹이통을 향해 달려가는 다섯 마리의 꽃돼지들처럼 우아한 곡선을 그리라구.』
『하지만...』
『말지만!』
이상한 말투로 남의 말꼬리를 과감히 잘라버린 노인은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풍이다, 소풍. 오전 한차례 소낙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를 미리 걱정해서 뭘 하누. 내리면 내리는 것이오,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잠시 피하면 그만이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도시락을 언제 먹을 것인지만 생각하자. 오늘의 점심은 삼색 김밥에 찐 달걀이다. 특별 서비스로 쏘시지 볶음이 있다. 노인은 입맛을 다셨다. 허브를 넣어 향기를 더한 찐 달걀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검소한 식탁」이라는 사제들의 밥상 법칙에도 어긋나지 않으며, 건강에도 좋다 하니 이 어찌 반갑다 하지 않을 수...

『점심?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군, 구스틴. 찐 달걀이 아니라 계란말이일세.』
앞서가던 풀 깡통 청년이 귀를 쫑긋 세우다말고 섭섭한 말을 거냈다.
『예?』
『설탕과 맛술을 넣어 달짝지근하게 부쳐낸 계란말이일세. 요모하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지. 서민적이면서도 맛깔스럽다네. 구스틴은 안 좋아하나?』
『아이고! 그거 참담하군. 소인은 당뇨 기운이 있사옵니다.』
『당뇨?! 저런. 몸 아프단 말은 내 앞에서 한 번도 안 했잖나. 도대체 언제부터?』
『한 3년 정도 되었나... 갑자기 쓰러지거나 하진 않을테니 심려치 마소서. 병세가 심각하진 않사옵니다.』
『심각하지 않아도 그렇지. 조심하게. 자네 나이가 어디 보통 나이던가.』

도시락 김밥 냄새를 맡고 그들 뒤를 추격하던 리나는 잠시 이마를 찌푸렸다.
이상한 3인조다.
『깡통 쪽이 신분이 월등히 높군.』연장자 쪽이 존댓말을 쓰면서 뒤를 따른다. 이게 가능하려면 나이 어린 자가 노인보다 신분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돈은 없어. 거의 알거지 수준.』
사제복은 사제복인데 장식 금단추 하나 안 달린데다 평범한 면 섬유 제품이다. 3명 중에서 옷차림이 가장 후질구레하다. 주름지고 헤어진 옷자락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염색도 싸구려다.
허나 변장을 위해 그런 옷을 일부러 골라 입은 건 아닌 듯하다. 어디까지나 낡고 초라한 옷에 익숙한 사람이다. 암행을 나온 임금님이 핫바지를 입고 있으면 무척 어색해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저 자는 팔꿈치를 덧댄 셔츠가 잘 맞고 있다. = 자기 옷이다.
『목에 기브스를 한 자가 척 보아 가장 서열이 낮은 것 같긴 한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기도 하고... 도통 모를 일 투성이군.』
다른 사람들은 짐을 들었어도 그의 손은 텅 비어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어느 동네 사장님이 직원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느냔 말이다. 목을 다쳐 이를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상이 심각하지 않다는 건 청년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동작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저 붕대는 순전히 장식이다. 그의 목은 위로, 그리고 아래로 잘만 돌아갔다.「깡통」과「영감」을 번갈아 쳐다보기 위해 좌우 방향으로도 잘 움직였다.

『어떻게 할까요.』
잠자코 따라오던 제로스가 넌지시 목소리를 낮춰 그녀의 의향을 물어왔다.
『죽여버릴까요.』

무덤덤한 말투로「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그가 싫어지려 한다.
『멋대로 나서지 마. 죽이는 건 내가 할테니 넌 신발만 벗어 이리 줘.』
『아우?』
『신발.』
그러더니 자신의 신발까지 벗었다.

목표물은 셋.
좌표 입력하시고.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눌러 적을 응징하고자 하였다.
『날아랏!』
구두 세 짝이 쏜살처럼 날아올라 장관을 이루었다.
딱. 딱. 딱.
한 치의 오차 없이 명중.
머리를 부여잡고 세 명의 사제들이 자리에 주저 앉았다.

Posted by 미야

2006/04/20 12:55 2006/04/2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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