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중학생은 위대하다. 화재경종이 울리고 있는데 아무도 대피를 하지 않는다. 교사부터 학생까지, 그딴 것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모두를 빠르게 대피하게 만들려면 허위신고가 아니라 진짜로 학교에 불을 질러야 하는 거였나. 이동술식으로 옥상으로 자리를 옮긴 고죠 사토루는 발신인이 시금치로 뜬 핸드폰을 쥔 채 아주 작게 망할, 이라고 중얼거렸다.
호우코우(보고), 렌라쿠(연락), 소우담(상담), 앞 글자를 따서 호우렌소우(시금치). 《현4급 현장으로의 긴급 진입을 보고받았습니다.》 나이가 제법 많을 거라 추측되는 전화기 저편의 여성은 자기소개를 생략한 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주술을 육안으로 볼 수 있으나 주술사는 아닌 자들로 이루어진 집단, 창. 평소에는 주술고전 관계자들에게 하인이나 수족처럼 마구 부려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때로 그 힘의 관계는 아주 간단하게 역전되기도 한다. 《주술전문고등학교 1학년 생도는 빠른 퇴각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모양은 권고이나 사실상 명령 조처다. 권고에 따르지 않을 시 보조감독을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다굴을 쳐서 10년이고 20년이고 못살게 굴겠다는 뒷말이 생략되어 있으니 다른 의미에선 협박과도 마찬가지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 목소리로 추정하자면 60대, 실력과 능력을 우선시하는 주술계라도 나이를 아주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느 조직이든지 관록이 붙으면 위로 올라가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정도의 나이면 제법 고위층 관계자일 거라고 합당한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고죠 사토루는 전화기 저편의 음성이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인지 헤아려봤다. 코흘리개 시절 유모로 일하던 여자와 느낌이 흡사하다는 것 말고는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르는 파편이 없었다. 그러니까 심드렁하게「기저귀를 갈아드리겠습니다.」말하던 사용인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장소가 장소인데 이대로 후퇴해도 괜찮을까? 아직 하교하지 않은 애들이 바글거리는 중학교라고, 여기.』 《네. 장소가 장소이니까요. 거긴 폐퇴신역(閉頹神域)이잖습니까. 아직 경험이 부족한 자가 함부로 개입하면 곤란한 곳이죠.》 『하아?』 감정이 일절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여자가 느린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주령이 얽힌 일이 아닐테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기이현상은 봉인술식이 오래되어 느슨해진 탓입니다. 마지막으로 결계를 보수하신 분이 지금은 고인이라 적임자를 찾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곧 안정화를 시킬 적임자를 파견할 겁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 눈에 띄는 행동을 자제하고 그 장소에서 벗어나기를 권고합니다.》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하네. 부해가 살아 움직이면서 사람에 씌는 걸 직접 못 봐서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는 거지. 그 적임자의 파견이라는 거 말이야... 5분 안에 가능해?』
고죠 사토루의 질문에 여자는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화재발생 신고를 받고 소방차가 도착하는 게 5분이지, 적임자 파견은 당연히 5분 내 도착이 불가능하다. 먼젓번 관계자는 고인이다. 세상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새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도 신역봉쇄가 가능한 초특급 봉인술식 실력자를 찾아야 한다. 하루가 걸릴지, 한 달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외국의 전문가를 모셔 와야 하는 수도 있는데 그 적임자가 한국인이면 케케묵은 국가 간 감정 때문에 초반부터 일이 틀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쪽은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해도 자존심을 걸고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5분 내 적임자 파견이 불가능하다고 사실을 넙죽 알리는 건 더 곤란했다. 《최대한 분발하겠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관리용 멘트를 읊었다.
『주술고전 1학년생이 아니고 고죠가(家) 당주대행으로 다시 물어도 같은 대답일까?』 《저어, 그건.》 당주대행 카드를 내밀었더니 상대가 당황했다. 그래서 살짝 더 압박해봤다. 『고죠가(家) 당주대행이면서 최강의 주술사 자격으로 다시 물으면 이번엔 뭐라고 할래? 있잖아, 내 입으로 말하기가 쬐꼼 부끄럽지만, 고죠 사토루님은 지구 뿌셔 최강입니다.』 여자는 이쪽의 소리가 전달되지 않도록 핸드폰의 스피커 부분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른 채 가만히 욕을 했다. 썩을, 빌어먹을, 얼어 죽을, 귀가 좋은 고죠 사토루가 알아듣기로는 대충 그 셋 중 하나였다.
아무튼 중학생은 위대하다. 화재경종이 울리고 있는데 아무도 대피를 하지 않는다. 고작 한 뼘 너비밖에 되지 않는 4층 창틀 턱 위로 닭둘기인양 쭈그리고 올라가 앉은 게토 스구루는 이걸 어쩌나 싶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몸과 정신의 성장이 심한 불균형을 이루게 되어 천상천하 유아독돈, 망상에 가까운 자기도취에 빠진다. 오죽하면 세간에서 중이병이라는 표현을 쓸까. 게토 스구루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먼 시선으로 자신의 지난 행적을 더듬어봤다. 「뭐, 나도 만만치 않은 과도기를 보내긴 했지.」 외벽을 타고 올라온 수상한 사람을 향해 중학생이 용감하게 실내화를 집어 던졌다. 궤적을 그리며 1층으로 떨어지는 실내화를 보았을 적에 게토 스구루의 뇌리로 딱 떠오른 단어가 그거였다. 중이병. 상대방의 정체는 안 궁금하고 일단 때리고 보겠다는데 그게 중이병이 아니면 뭐겠느냔 말이다. 앞뒤 가리지 않는 그 만용이 무섭다. 오늘만 살고 뒷일은 전혀 생각을 안 하는 눈치다. 드르륵 소리를 내어 창문을 열고 칠판 정면에 붙은 급훈을 쳐다봤다. 액자 속 내용은 제법 멀쩡해서「성실한 오늘, 더 나은 미래」라고 적혀져 있었다. 하지만 페이크일 수도 있다. 뒤집어보면「죽어보자!」글귀로 바뀌는 건지도 모른다.
『불이야, 소리가 들리면 밖으로 대피하라고. 그 정도는 상식 아니야?』 그런데 옆 반에서 외치는 비명은 약간 다르긴 했다. 뱀이야. 따져 묻는 중학생들의 시선을 회피하며 게토 스구루는 성큼 걸음으로 둥글게 부푼 부해 덩어리를 향해 다가갔다.
부해가 일종의 장막처럼 기능하는 건 처음 봤다. 질감은 고무풍선 같았는데 두께가 얇아도 안이 비처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손목까지 주력을 두르고 시험 삼아 톡 건드리자 태동하는 태아처럼 꿈틀거렸다. 『선배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그 말을 듣고 바람이 든 비닐 풍선을 잡아 뜯는 요령으로 거죽을 찢었다.
안에 갇혔던 이이지마 하나에를 끄집어냈을 적에 맛이 간 중학생은 회까닥한 눈빛으로 언령부터 날리고 보았다. 팡, 하고 높게 세운 교복의 목깃이 풀어헤쳐지면서 단추가 날아갔다. 손가락을 집게처럼 사용해서 입을 다물게 하지 않았더라면 다음으로는 뭐가 날아갔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진짜지 못 말린다, 중학생.
『으븝!』 『패닉 상태라는 건 이해하지만 진정해줬음 좋겠는데.』 『으븝, 으븝!』
이이지마 하나에의 눈이 빠르게 왼쪽으로 향했다. 대가리 터진 뱀 시체 없음. 이번엔 반대편 오른쪽으로 향했다.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쥔 1학년 2반 학생들이 보였다.
마침내 주둥이가 자유를 찾았을 적에 하나에는 외쳤다. 『제기랄, 올해가 몇 년이지?!』 게토 스구루의 반응이 싸했던 걸로 보아 시간의 오차는 염려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저기, 혹시 본인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던가, 집 주소를 잘 모르겠다던가...』 『기억상실증 아니거든?! 진짜로 올해 몇 년인데.』 『헤이세이 16년.』 『조상님, 감사합니다!』
그보다는 상황정리가 우선이다. 계속 버티면 정학 조처를 취하겠다고 윽박질러 마침내 교실 문을 열어젖힌 선생님이 악을 쓰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건물 전체로 화재 경종이 귀청 따갑게 울리고 있는 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것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서 뭐하고 있었어. 싸웠어? 학폭이야?! 패싸움 중이냐고. 저 커다란 남학생은 뭐야. 교복이 우리 학교 교복이 아니잖아! 거기 책상 위로 올라간 너, 당장 내려오지 못...』 눈을 살벌하게 부릅뜬 하나에가 팔을 옆으로 휙 움직여 문을 닫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정말로 탕, 굉음을 내며 저절로 문이 닫혔다.
『성질부리지 마. 그러다 봉인술식 터진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다다미방을 돌아다니면서 손도끼를 들고 따라오는 여자랑, 사람을 먹으려고 하는 뱀과 싸워보지 않았으면 입 다물어.』 진실로 중학생은 위대하다. 구해준 사람에게 입 다물라 하는 패기 좀 보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토 스구루는 이 맛 간 중학생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Posted by 미야
2021/03/29 12:33
2021/03/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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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근육이 거의 없는 여자여서 그런지 움직임이 둔했고 속도도 매우 느렸다. 발동작이 전통 무용을 닮아 궤적을 예상하고 움직이면 중학생이라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들고 있는 것이 손도끼다. 상대가 날붙이를 들고 있으면 비벼볼 꿈은 꾸지도 말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쳐야 하는 법, 도주할 방향으로 몸을 튼 다음 검지와 검지를 붙이고 호령했다. 개(開).
탕, 탕, 탕, 소리를 내며 헤아리기 어려운 수의 장지문이 일시에 열렸다. 현실에서 이런 구조의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면 빌 게이츠 부럽지 않을 갑부일 거다.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져 백 명 연회가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료칸도 맞거울에 비친 형상처럼 되는 일은 없다. 따라서 공간이 기형적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추측하는 편이 타당성 높았다.
뒤에서는 여전히 손도끼를 든 여자가 비틀거리며 따라오는 중이었다. 손도끼 무게가 버거웠던지 걸음을 옮길 적마다 좌우로 크게 휘청거렸는데 덕분에 문설주에 스스로 머리를 박는 꼴사나운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보는 입장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진 이가 출근 중인 샐러리맨이 아니고 요코즈나 스모선수라고 해보자. 아무도 안 웃는다.
『이유나 말해주고 쫓아오던가!』 여자가 신음소리 하나 없이 다시 몸을 추슬렀다. 이상하게 표정이 없어 인형 얼굴을 오려내어 가면처럼 씌워놓은 것 같았다. 덕분에 국화로 치장한 관속에 누워있는 송장 느낌이었다.
마주대고 있던 검지와 검지를 안으로 구부렸다. 폐(閉). 손도끼를 든 여자의 코앞에서 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장지문이 닫혔다. 토지신의 몸으로 쓸 수 있는 술(術)이 겨우 열려라 참깨, 닫혀라 참깨, 딱 두 가지라는 건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럽다. 하지만 나름 할 말은 많다. 새로 태어난 토지신은 아주 맛있는 영약이다. 먹고 싶다며 잔칫상 차려놓고 요리할 궁리를 할 신들이 일본에 무려 800만이나 있다. 지금까지 기척을 숨기는 데 기력을 집중하다보니 몸을 지킬 비기를 익힐 짬 같은 건 없었다. 맹물을 술로 만드는 잡술 정도나 겨우 해봤다고 할까... 사실은 보리차로 맥주를 만들려고 시도한 게 전부다. 그리고 성공도 못했다. 후회가 되지 않느냐고? 지금에 와서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좋았을까 가정을 해보는 건 전날 야식으로 먹은 라면을 후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얼굴은 땡땡 부었다.
술을 이용해 강제로 닫은 장지문이 달각달각 흔들렸다. 그래봤자 종이를 바른 장지문이다. 무겁고 단단한 서양식 문과는 애당초 기능 자체가 달라 공간을 분할한다는 의미밖에는 없다. 문 뒤에 숨어 몸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거는 자체가 어리석다. 도끼질 한 방에 장식용 살이 떨어져 나가고 그 틈새로 이쪽을 응시하는 여자의 눈과 제대로 마주쳤다. 순간 찌릿하는 전기가 이이지마 하나에의 척추를 타고 흘렀다. 『샤이닝이냐! 맛 간 잭 니콜슨이냐고!』
옆으로 달아날 수 없다면 위를 노린다. 다시 검지를 마주대고 이번에는 머리 꼭대기를 향해 외쳤다. 개(開). 지붕 뚜껑이 날아갈 거라고 계산했는데 너무 얕봤나 보다. 팡, 하고 떨어져나간 반자의 장식판자 너머로 다다미가 보였다. 그러니까 꺼풀을 벗겨낸 천장 너머로 지붕을 지탱하는 대들보가 드러난 게 아니라 거울로 반사된 이미지의 방 구조물이 나타났다. Ctrl+C 복사하여 Ctrl+V 붙여넣기 하면서 위아래를 반전시킨 거다. 저릿한 느낌이 다시 척추를 타고 머리꼭대기로 향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간에서 과연 탈출이 가능한가.
인외세계의 시간은 인계와 다르게 흐른다. 제 마음대로라서 느리게 흘러갈 수도, 빠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하나에와 비슷하게 저쪽의 토지신에게 붙잡혔던 이이지마 카이는 무려 20년이 지나서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경계의 덤불숲에서 이쪽의 사람들이 카이를 성공적으로 낚아챘을 적에 그는 놀랍게도 실종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학생의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저 며칠이 흘렀을 뿐이었다며 카이는 말을 잃었다. 그동안 대학교 동기들은 결혼도 하고, 승진도 하고, 집도 샀는데 본인은 대학중퇴 이력을 가진 거주지 불명자 신세로 전락했다. 집 거실에 놓여 있던 버튼식 전화기를 한참이나 응시하던 카이는 그 전에는 다이얼식이었노라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일곱 살 무렵에 토지신에게 납치되었던 하나에는 5분 안팎의 시간을 그쪽에서 보냈다. 어렸기 때문에 더 길게 느꼈을 뿐으로 어쩌면 그 절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둥근 도넛 모양으로 양 갈래 머리를 묶은 동자가 작은 다과상을 가져왔고, 하나에는 잘 먹겠습니다 인사하고 떡을 집어 먹었다. 콩알 크기의 떡을 먹는데 몇 초가 걸리겠는가. 뒷맛이 떫어 몇 번 씹지도 않았다. 절반은 삼키고 절반은 뱉었더니 밖은 이미 6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안 돼. 절망하기엔 아직 일러. 무사히 빠져나갔더니 10년 뒤였습니다, 꼭 이렇게 될 거라는 보장이 어딨어. 여기서 30년을 보냈는데 바깥은 3초 뒤일 수도 있잖... 거헉!」 무릎을 꿇었다. 이곳 인외세계에서 배가 고파진다거나, 잠이 온다거나, 소변이 마려워지는 일은 없을 거다. 그렇다고 30년의 세월을 이딴 장소에서 낭비한다면 정신이 회까닥 돌아버린다. 30년은 고사하고 정신 줄을 놓아버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다.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게 과학적으로 설계된 특수한 방에 들어간 인간은 40분 이상을 참지 못했다.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들으면서 종국엔 감각 소실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이이지마 하나에도 그와 비슷한 과정을 겪다가 종국엔 완전히 망가져버릴 거다.
「밖에서 인외세계 안으로 들어오는 건 쉽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건 대단히 어렵다.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까득 어금니를 씹었다. 어떻게든 돌아간다. 포기할까보냐.
수직으로 떨어지는 손도끼를 피해 옆 구르기를 하면서 손가락으로 인을 맺었다. 개(開). 여자의 기모노 앞섶이 좌우로 벌어졌다. 속안까지 전부 풀어 헤쳐져 봉긋한 가슴이 드러났다. 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열.어.라. 여자의 배가 위아래 방향으로 벌어졌다. 찢어진 틈새로 대장에 소장에 위까지 장기가 주룩 흘러내렸다. 아직이다. 열.어.라. 이제 여자의 등이 갈라졌다. 여자의 뒤편에 있던, 도끼질에 부서졌던 장지문까지 벌컥 열렸다. 주인을 잃은 손도끼가 바닥을 찍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사람 모습을 한 뭔가를 고깃덩이로 갈아버렸다. 꿈에 보일까 걱정이 될 지경으로 끔찍한 몰골이었다. 그래도 갈라진 여자의 몸에서 피보라가 날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심장이 뛰지 않으면 출혈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생생하게 피를 쏟은 건 이이지마 하나에다. 뜨끈하고 비릿한 액체가 인중을 타고 턱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점막까지 부어오르는 건지 곧 숨 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답답함을 못 견디고 코를 푸는 요령으로 킁킁거렸다. 그 즉시 쏟아지는 코피의 량이 배로 늘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소리가 들린다.」 손바닥에 피을 뱉고 손도끼를 집어 들었다. 스윽, 스윽, 다다미를 빗자루로 쓰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누군가 빗자루로 방안을 청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채 귀를 쫑긋 세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짐작해봤다. 도끼를 내려칠 준비를 하고 문설주 옆으로 기대어 섰다. 스윽, 스치는 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독이 오른 그녀는 발을 쿵 내딛고 선공을 시도했다.
《□□□ □◆□■■□□!》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천장으로부터 구렁이 몸집의 큰 뱀이 뚝 떨어졌다. 어리석은 것, 이럴 줄 알았다, 기습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대충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기겁을 한 이이지마 하나에는 손목 스냅을 사용해 뱀의 머리부위를 향해 손도끼를 휘둘렀다. 아쉽게도 살을 가르는 대신 막대로 목탁 때리는 소리만 났을 뿐이다. 『이거 뭐야, 날이 없는 도끼야?!』 기술이 부족했던 건지, 아님 단순히 힘이 부족해서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거나 큰 뱀의 몸에는 생채기도 안 생겼다.
《●□□□ ○■■■, □□□□◆□□.》 어차피 해석되지 않는 말이니 귀에 담지 않았다. 보나마나 맛있게 먹어주겠다느니, 반항은 그만두라느니 식의 승자선언 발언이었을 거다. 『開 열어라!』 죽을힘을 다하면 죽는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평소에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라는 말을 엄청 싫어했다. 하지만 맹세코 지금만큼은 죽을힘을 다했다. 『開 열어!』 뱀의 입이 벌어졌다. 먹이를 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구를 사용해 강제로 잡아 벌린 모양새가 되었다. 그것의 눈에 감정이 실렸다. 아마도 당혹감 비슷한 거였을 거다. 멈추지 않고 세 번째로 호령했다. 『開 열어라~!!』 《■■■ ◆○■■■■■■■□!!!》 멧돼지도 삼킬 수 있을 정도로 뱀의 입이 벌어졌다. 전후좌우로 부드럽게 움직임이 가능한 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계는 존재한다. 결국 약간의 턱 아래 조각만 남기고 뱀 주둥이가 전부 찢어발겨졌다.
Posted by 미야
2021/03/2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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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4월에 학기가 시작된다고... 쿨럭. 하는군요. 이걸 어쩌나. 한국처럼 3월 학기 시작인 걸로 글을 써와서 수정을 할 부분이 제법 많을 것 같습니다.
귀청이 떠나가라 화재경종이 울렸다. 비명 소리가 들린 것과 거의 동시여서 무엇이 먼저였는지 나중에까지 판단이 쉽지 않았다.
후에 출동했던 소방서 공식 보고서에는「비명 소리가 들렸다」내용 자체가 쏙 빠져 있었다. 따라서 뱀을 봤다, 천장에서 시커멓게 덩어리진 구정물이 떨어져 내렸다, 둥글게 말린 검은 밧줄이 곳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등등의 진술 또한 당연히 빠진 채였다. 2004년 꽃이 만개하던 어느 날, 그날 학교에서는 화재경종이 울렸다.
모두가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바닥으로 뱀이 기어갔다. 천장에서 정체 모를 시커먼 것들이 후드득 떨어져 체육복으로 갈아입던 중인 스가와라 미즈키를 덮쳤다. 『피해!』 이이지마 하나에가 체육복 상의를 붙잡고 미즈키를 검은 덩어리로부터 끌어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미즈키는 어느새 입안까지 들어간 시커먼 덩어리를 뱉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양은 그렇다 치고 뒷맛이 쉰 냄새가 진동하는 걸레를 짠 구정물과 비슷했다. 너무나 역겨워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냉장고에 집어넣은 채 까먹어 8개월 뒤에야 꺼내봤던 미역 초무침도 이것과 비교하자면 양반이었다. 미끄덩거리던 특유의 상한 미역 질감까지 떠오르자 어질어질해졌다.
「보통 일이 아니다. 다른 애들의 눈에도 보인다.」 소스라쳐서 뒷걸음질 치는 학생들의 반응으로 보아 눈에 보이는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지 닿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책상 위로 올라간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이이지마 하나에의 판단으로는 그다지 썩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부해는 천장으로부터 뚝뚝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거기에 닿지 않으려면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가야 했다.
대걸레 자루를 빼앗아 그걸로 검은 덩어리를 찔렀다. 눈에 보이니 어쩌면 물리적 대응이 가능할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대걸레 자루는 표면에 닿는 일 없이 깊이가 짐작되지 않는 연못 아래로 가라앉듯 빨려 들어갔다. 아니, 오히려 안쪽에서 세게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망했어! 이럴 적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자칫하면 같이 휩쓸리게 생겼기에 쥐고 있던 걸 얼른 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대걸레 자루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한 입에 꿀꺽 먹어치웠다는 느낌이었다. 『선배! 위험해요!』 검은 덩어리의 한 가운데 부분이 쩍 갈라졌다. 대걸레 자루는 맛이 없었는지 이번에는 사람을 삼키기 위해 입을 벌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을 부릅떴지만 피할 방법이 없었다. 얼굴에 차갑고 비린 것이 닿았다고 깨달은 것과 동시에 팟, 하고 빛이 사라졌다. 완벽한 암전이었다.
이불을 개어두던 벽장 안에서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아버지 이이지마 노부히코는 거실에서 컴퓨터 마우스를 딸각딸각 움직이며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앞치마를 걸치고 거실에서 주방, 다시 안방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바빴다. 오른손으로는 강아지 인형을, 왼손으로는 악어 인형을 쥔 하나에는 어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두 인형을 서로 인사시켰다.
「안녕하세요, 어제 옆집으로 이사를 왔수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이름이 어떻게 되요? 저는 하나에라고 해요. 이 동네에선 쓰레기를 밖에 내놓는 요일이 어떻게 되요?」 「어머,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부인! 쓰레기는 수요일 날 아침에 배출되어야 해요.」 「정말 친절하세요. 그런데 빠가사리(ばか) 아들은 나이가 어떻게 되요?」 「하나에 씨와 같은 나이에요. 호호호.」 「저에게 모래를 뿌리더라고요, 세상에. 다음 주 수요일에 다른 쓰레기와 함께 내다 버리세요.」
딸의 기괴한 인형극을 목도한 어머니가 걸레질을 멈추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일단 빠가사리란 말을 쓰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의미도 잘 모르면서 어디서 배워왔는지 딸아이는 곧잘 빠가, 빠가, 이러면서 곳곳에 붙여 사용하곤 했다. 빠가사리 밀크, 빠가사리 텔레비전, 빠가사리 크레파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빠가사리 마마, 빠가사리 파파라는 말은 결코 입에 담지 않았다는 거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쁜 말이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건넛방 걸레질을 모두 마친 어머니는 하나에가 혼자서도 잘 놀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에 영차 소리를 내어 몸을 일으키곤 방 밖으로 나갔다.
인형놀이가 지겨워진 소녀는 악어를 집어던지고 속눈꺼풀을 열었다. 언제부터인지 벽장 안쪽으로 속눈꺼풀을 열어야만 보이는 수상쩍은 무늬가 하나 생겼다. 구불구불한 선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무늬는 색을 내어 은은하게 빛이 났는데 손을 대어 만졌을 적에 손가락으로 그 빛이 옮겨 붙곤 했다. 때로는 파랗게, 때로는 붉게 번지는 빛깔이 고와 아이는 넋을 잃었다. 「차가워.」 밝게 빛나던 그것은 따스할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다르게 얼음보다 차가웠다. 살이 에이는 느낌이었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어 먹을 적마다 코를 아프게 하던 냉기를 닮아 있었다. 「추워.」 입김이 나고 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 하며 무늬에 손가락을 대고 둥글게 원을 그렸다. 번져나가던 빛이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아름답게 회전했다. 꼭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다. 「시려워.」 예쁜 건 예쁜 거고 북극곰과 나란히 냉동식품이 될 지경이었다. 끙 소리를 내고 문양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세상이 뒤집혔다.
『어럽쇼.』 눈을 떠보니 다다미방 한 가운데다. 부스스 몸을 일으킨 이이지마 하나에는 낮잠을 자다 방금 일어났다는 멍한 느낌을 억지로 밀어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비어있는 방이었다. 뺨을 대고 누워있었던 터라 한쪽 뺨에 다다미 자국이 생겼다. 여전히 잠에 취해서일까,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교복을 입고 낯선 방에서 눈을 떴다. 『뭐여. 여기가 어디여.』 침을 흘렸을지도 모를 입가를 닦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한참을 추스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배를 긁으며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게 흡사 끈적거리는 풀이 발려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벽장 안에 빛나는 문양이. 아니다. 소스라치게 놀라 네발로 바닥을 후다닥 기었다. 『제기랄!』 어렸을 적에 인외세계로 떨어졌을 때의 감각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오늘에 이르러 다시 그 느낌을 곱씹으면서 뇌가 어렸을 적의 경험을 재현해내 꿈으로 보여줬다. 농담이 아니다. 거칠어지려는 호흡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눈만 데굴 굴렸다.
건물 내부다. 일본식 건물이었다. 장지문으로 사방이 가로막혔고, 어째서인지 아무런 색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색이 없는 다다미를 더듬거리며 방의 가장자리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조명도 없는 방구석인데 구조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깨닫고 보니 속눈꺼풀이 열린 상태다. 그렇다고 속눈꺼풀을 닫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럴 때 시야가 가려져봤자 이득이 될 건덕지가 없다. 공포영화 주인공처럼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중에 건전지가 떨어지면 –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만 궁리하자.
숨을 죽이고 장지문을 가만히 열었다. 무턱대고 나가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감각을 세워 냄새부터 맡고 보았다. 「희미하게 썩은 내가 난다.」 오래된 폐가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방부목도 제때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썩어가기 시작한다. 부패는 자연의 이치다. 철은 녹이 슬고 바위는 쪼개진다. 벌레가 갉아먹어 들보가 내려앉고 기둥이 부러진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나무가 송장벌레에게 먹혀가는 냄새를 맡았다. 무릎걸음으로 약간만 나아갔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좋다. 이곳은 인외세계다. 긴장하여 넙죽 엎드렸다.
부웅. 순간 바람이 정수리 위를 가깝게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다. 단순한 바람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묵직하게 물량감이 있는 거였다. 덜덜 떨리는 걸 참고 곁눈으로 옆을 보았다. 『미친!』 혀가 굳을 지경이었다. 어느 틈에 벌써 손도끼를 든 기모노 차림새의 여자가 무표정으로 이이지마 하나에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주술회전 팬픽이 아니라 일본 작가 미쓰다 신조를 찬양하는 글이 되어가는 것 같네요. 아무튼 취재를 하고 글을 썼다면 참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난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듸. 지명이라던가, 이름이라던가 하는 부분도 그렇고 일본 고유의 사정을 잘 모르니 어색해지는 부분이 계속 발생하네요. 4월 입학도 그렇고... 세상에, 3월이 아니라니. 사건의 날짜가 그럼 4월이 아닌 5월로 넘어가게 되는데 일본의 공휴일은 어떻게 되는가,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뭐. 늘 그랬듯이 어물쩍 넘어갑니다.
Posted by 미야
2021/03/23 17:07
2021/03/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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