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주술회전은 애니 초반부만 감상한 상황이라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자가발전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만화책이라도 사다 읽어야하나 고민 중인데 등장인물이 갈려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증발하는 수준이라고 들어 당혹스럽군요.
그들은 벌칙수행 중이었다. 정정한다. 고죠 사토루는 벌칙수행 중이었다. 동행한 게토 스구루는 상층부의 요청에 따라 일종의 도련님 감시자 역할로 따라붙었을 뿐으로 귀찮다는 내색을 감추지도 않은 채 설설거렸다. 『으아, 사방에 음식물 쓰레기가... 너도 와서 도와, 스구루.』 『싫거든.』 『친구 사이에 그러기냐. 너와 나의 우정은 그렇게 얄팍하지 않잖아.』 『얇아. 계란 부침보다 못한 두께지.』 육교 아래로 좋지 않은 것들이 썩은 표주박처럼 주렁주렁 맺혔어도 게토 스구루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주술고전에 입학에서 고죠 사토루와 통성명을 마친 게 얼마 전이다. 살갑게 친구타령을 하기엔 아직 빠른 거 아닌가, 그는 생각했다. 부러 거리를 둘 마음도 없지만 먼저 다가가 가깝게 지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게토 스구루는 제법 낯을 가리는 편이다. 그런 서툰 부분을 도련님은 오히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지만. 『평가가 너무 야박한 거 아냐? 스구루. 우리의 우정은 최소한 비프 스테이크 두께라고. 이~ 정도쯤?』 『역시 좋은 집에서 자란 도련님이네. 그만큼 두꺼운 고기도 썰고.』 손가락으로 이 정도 두께라고 어림짐작해 보이는 고죠 사토루를 향해 피식 웃어 보이는 게토였다.
예전부터 실수를 저지른 주술사에게 페널티를 부과할 필요가 생기면 뱀신 마을로 보내 제대로 골탕을 먹이는 게 관행이다. 파충류를 좋아하고 취미로 도마뱀을 기르는 부류라면 페널티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한 정신적 부담을 지게 된다. 사방에서 뱀이 솟구치는 – 여기에도 뱀, 저기에도 뱀 – 정작 퇴치해야 할 주령은 4급에서 5급 피라미들이라서 상대할 가치도 없는 것들이고, 대신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은 반세기 전부터 부해(腐賌)하여 결국 거름이 되어버린, 과거 신으로 모셔지던 것의 잔해다. 『반성한다고, 젠장! 영혼을 다해 반성한다고~!!』 장소 불문하고 주룩 흘러내리는 검정의 찌꺼기, 그것도 뱀의 형상을 한 무더기의 부해가 지뢰밭처럼 널려있는 걸 보고 있자면 「내가 왜 그때 결계가 완성되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주령의 모가지를 똑 따버렸을까. 1초만 참았더라면. 과거의 나, 반성해라!」극심한 후회에 빠질 수밖에 없다. 머리 위로 상한 토사물을 닮은 역겨운 것이 후드득 쏟아지는 느낌에 질색했다. 무하한이라는 술식이 있어 직접적으로 닿는 일은 결코 없지만, 아무튼 썩은 미역줄기를 뒤집어쓰는 건 충분히 기분 나빴다.
『확실히 기분 좋은 광경은 아니긴 한데...』 어깨에 묻은 부해를 고양이 털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내며 게토 스구루가 말했다. 『숫자가 어마어마해서 그렇지 크게 해롭지도 않은 종류래. 여기 뱀신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익숙해져서 이런 거에 닿는다고 앓는 법도 없다고 하더라. 야가 선생님도 삼나무 꽃가루 취급하면 된다고 하셨어.』 『뭐가 삼나무 꽃가루야! 삼나무 꽃가루는 주술사가 나서서 일부러 치우는 법 없잖아!』 『가짜로 우는 척하지 마, 고죠. 1급 주술사가 부해 정도로 죽는 소리나 하고 앉았고... 모자란 너님 인격수양에 큰 도움이 될 거라던 담임 쌤 말씀을 떠올려.』 『음식물 쓰레기 앞에서 인격수양이 뭔 말이야! 빌어먹을 야가 선생! 나를 썩은 뱀 마을로 보내놓고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다! 농담이 아니야. 이러다간 밧줄만 봐도 뱀이다 고함치게 생겼다고!』
토지신이 타락하면 특급의 주령이 된다. 그러면 주술사들이 나서 조복(調伏)을 한다.
『마무리가 엉성하면 나중에까지 이렇게 개지랄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군.』 담장에서 전봇대까지 엄청난 량의 부해가 왁자지껄하게 엉켜 붙어 있다. 5년에서 6년 터울로 주기적으로 주술사가 방문하여 부해를 걷어내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 정도의 양이라면 과거에는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안 갔다. 『주술사들에게도 빨간 종이(징집영장)가 떨어졌던 시대에 벌어진 일이라고, 스구루. 젊은 실력자들은 전쟁터에서 구르고, 어쩔 수 없이 관짝 입성 하루 전날의 영감님들이 요통을 호소하며 어여차 했는데 상대가 특A급이다 보니 쉽지 않았던 모양이야. 요행으로 조복에 성공은 했는데 딱 거기까지였던 거지. 듣자하니 비술사 주술사 가리지 않고 사망자도 제법 나왔다고 하더라.』 『나는 비술사 집안 출신이라 그런 이야긴 몰라, 고죠.』 『주술사 집안이라고 다 아는 것도 아니야. 젠인 가문에서도 이곳 뱀신 마을 이야기에 대해 꿰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걸? 기록 불가에 함구령까진 떨어진 사건이라고. 고죠라서 그나마 정보가 있던 거고... 뭐,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야. 잘난 척하는 영감님들이 바지춤도 못 내리고 똥을 지렸는데 얼마나 부끄러웠겠어.』 꿈틀거리는 부해를 손으로 잡아 쥐어 터뜨리던 고죠 사토루가 대놓고 이죽거렸다. 『줏대도 없고, 능력도 없고, 콧대만 높아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똥이나 싸는 것들.』 진짜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일이 없었다.
『저는 중학교 1학년이라고요! 제 키는 평균이고, 코가 땅바닥에 닿는 일은 없다고!』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일이라곤 요만큼도 없었다. 이쪽을 봐도 뱀, 저쪽을 봐도 뱀. 성가시게 코딱지까지 뱀을 달고 나타났다. 『그만해, 고죠! 여기서 주력 꺼내지 마. 비술사... 아니, 일반인이잖아. 게다가 중학생이고.』 저게 어딜 봐서 일반인이야. 고죠 사토루는 대놓고 투덜거렸다.
짜리몽땅이 발목에 감고 있는 뱀은 지금까지 보아온 부해와는 모습이 달랐다. 덜 썩었고, 훨씬 실재감이 강했다. 문드러진 곤약 젤리가 아니라 뱀 머리형태가 선명했다. 심지어 비늘도 달렸다. 눈이 좋은 고죠 사토루는 비늘에 난 소용돌이 문양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부해는 썩어 사라지는 게 아니었나? 이쪽에서 일부러 약간의 주력을 흘려보내자 반응을 보였다. 아주 약간이었지만 색이 검게 짙어졌다. 『한여름도 아닌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까 보이는 게 없지!』 정작 그 뱀을 달고 있는 코딱지는 일절 반응이 없다는 게 신기했다.
주력은 주술사와 비술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많고 적음이 다르고, 본인의 의지로 그걸 다룰 수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주령만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도 주력에 반응한다. 실수로 가발 벗겨진 교장 선생님 앞에 선 기분 – 게토 스구루는 그런 비유를 쓰기도 했다. 그게 정확히 그게 무슨 기분인지 일반인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는 고죠 사토루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식은땀이 나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선천적으로 둔감한 체질인가.」 저 중학생은 어디를 봐도 가발 벗겨진 교장 선생님 앞에 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의 교복을 입은, 키가 더 큰 쪽은 그와 반대로 얼굴 표정이 대단했다. 기회를 보고 여차하면 달아날 태세지만 아직까지 걸음아 나 살려라 하지 않는 건 그가 흘려보낸 주력에 반응해 몸이 굳어서이고, 더하여 의리 없게 땅딸보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내적 갈등 탓인 듯했다.
재밌어하며 고죠는 흘려보내던 주력을 조금 더 늘렸다. 사람이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 컨트롤하는 건 물론 잊지 않았다. 『히이익! 포, 포장해 드릴게요! 말씀하신 꿀빵 다 드리겠습니다! 딸기크림, 조림 사과, 바나나 화이트치즈, 맞죠? 금방 준비하겠습니닷!』꿀빵 가게 점원이 주력에 반응했다. 『와, 도련님 인성 보소.』게토 스구루가 뒷목을 잡았다. 『중생의 의미는 중간에 생기다 말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다!』 여중생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뽐내며 같지도 않은 코를 세웠다.
오른발을 내밀어 팡 소리가 나도록 발을 굴렀다. 주력을 실은 간단한 동작에 발목을 감고 있던 뱀이 풍선처럼 부풀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졌다.
허겁지겁 꿀빵을 포장지에 담던 가게 종업원이 어, 소리를 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는 곧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왜 귀를 막았지? 것보다 방금 뭐였어? 어디서 가스통이 터졌나? 그런데 소리가 들리긴 했나? 반사적으로 텔레비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미야기현 지진특보가 흘러나올 거라 생각해서였다. 동시에 아랫배를 부여잡은 이이지마 하나에가 돼지 멱따는 웨엑 소리를 내며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21/03/13 19:46
2021/03/1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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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와 나란히 하교하는 미즈키를 향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해한다. 하나에 선배는 미인이니까. 공주님과 선머슴의 조합은 아무래도 눈에 띈다. 소곤거리며 귓속말을 나누는 이들 중에는 반장 하시모토와 그녀의 단짝 이시즈미도 있었다. 막상 미즈키와 시선이 마주쳤을 적엔 고개를 홱 소리가 나도록 돌려버렸지만... 어쩐지 반장은 속이 불편한 표정이었다. 찡그린 모습이 콜라와 된장 콩볶음 반찬을 같이 먹었을 적과 비슷했다. 아마도 변비로 인한 배변감이 남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미즈키는 짐작했다. 성장의 후폭풍을 맞은 다수의 여중생들이 여드름 이전에 변비라는 복병을 만나 고생을 하고 있다.
모쪼록 내일 아침 화장실에서 좋은 소식과 마주치기를. 상대방이 호응을 해주든 말든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선배와 발맞추어 교문을 나섰다.
너무 기뻐 전봇대를 껴안고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술 취한 주정뱅이 회사원 흉내는 내고 싶지 않았기에 전봇대를 상대로 추태를 부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햄버거 가게 마스코트 인형을 껴안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음 진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울렁증까지 왔다. 젊었던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을 적에 멀미를 일으키고 토를 했다더니, 그 피는 어디로 가지 않았다.
『괜찮니? 스가와라. 안색이 창백한데.』 『스가와라라고 부르지 말고 미즈키라고 이름 불러주세요. 저도 하나에 선배라고 부를게요.』 그 와중에도 챙길 건 챙기고 보는 미즈키였다.
『무리를 시킨 건가 싶어 미안하네. 잡초 뽑는 거, 많이 힘들었어?』 『괜찮아요. 이래 뵈도 근육 많아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청소는 1시간 정도 걸렸다. 담배꽁초나 포장종이 이런 걸 줍지는 않았는데 잡초 파워가 생각보다 대단했다. 귀찮다고 내버려두면 쑥쑥 자라 나중에는 원예용 가위나 낫 같은 도구를 동원해 베어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단다. 날씨가 더워지고 비가 오기 시작하면 누가 일부러 배속시키기라도 한 양 잡초의 성장속도가 눈부시게 빨라져 여름에는 청소부가 아니라 원예부로 업태 변경되는 일도 있다고 했다. 휘발유를 뿌리고 불이라도 지르고 싶다는 유혹도 그래서 생긴다나. 『위험하잖아요.』 『당연히 위험하지. 산불로 번지면 학교 체육관까지 순식간이야.』 그나마 산이 그늘지고 서늘한 편이라 부원 숫자가 없어도 일이 돌아가는 거라고 하나에가 설명했다.
『그렇군요. 청소부에 부원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역시 영화 감상부나 추리소설 클럽처럼 인기가 있을 수는 없겠죠.』 반장 하시모토 리코가 가입한 해리 포터 원서 독해부는 2003년에 출간된 불사조의 기사단을 읽기 시작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부원이 증가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제일 커다란 부실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낡은 음악실을 개조한 장소에 모두 모이면 무려 마흔 명까지 의자에 앉는다.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 영어 원서를 소리 내어 읽으면 꼭 불경을 개굴개굴 외우는 모양새가 되었다. 개의치 않고 부원들은 팔까지 휘두르며 마법 스펠링을 합창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으... 제발 학교에서 그런 짓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법 주문을 소리 내어 읽다니.』 이이지마 하나에가 50대의 아저씨처럼 허리를 구부리며 진절머리를 냈다. 『선배는 해리 포터 안 좋아하세요?』 눈치껏 짐작하자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미즈키의 생각에 이이지마의 취향은 해리 포터가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의「인간 실격」쪽이다. 책장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장편소설「설국」도 꽂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을 귀 옆으로 쓸어 넘기며 히라가나 별도 표기 없이 세로방향으로 한문이 잔뜩 적힌 낡은 책을 집중해서 읽어 내려가지 않을까. 『...... 영화 정도는 봤어.』 『그럼 다음 시리즈가 나오면 같이 보러 가요. 올해 여름방학 시즌에 아즈카반의 죄수가 개봉될 거래요.』 어린애처럼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면서 미즈키가 약속을 졸라댔다.
이상하게 그러자, 말자,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미즈키는 겨울날 눈 맞은 강아지처럼 한 바퀴 더 빙글 돌았다. 『하나에 선배?』 『젠장. 있잖아, 후배님. 여기까지 와서 도중에 바꾸자고 말하는 건 좀 미안한데, 오늘의 메뉴를 꿀빵에서 카레라이스로 변경하면 안 될까? 갑자기 미친 듯이 카레가 먹고 싶어졌어. 응. 그래. 오늘은 카레다.』 무엇을 봤기에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뜬금없이 하나에가 카레 타령을 했다.
목적지인 오로보로당 가게 앞으로 가쿠란을 입은 남학생 두 명이 서있었다. 두 사람 다 운동하는 사람처럼 키가 굉장히 컸다. 몰라도 180cm는 넘을 터였다. 하지만 배구나 농구선수는 분명 아니다. 왜냐하면 한 명은 머리를 하얗게 탈색한데다 색이 짙은 선글라스를 썼고, 다른 한 명은 어깨에 닿는 길이로 머리카락을 길렀기 때문이다. 교복도 개인취향을 반영해 수선을 한 눈치다. 그러니까 학교 교칙과는 담 쌓고 사는, 질 나쁜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탈색남이 징징거렸다. 『나는 딸기크림 꿀빵이 먹고 싶다고오. 왜 팔지를 않겠다는 거야.』 『손님, 그게... 품절이라서. 팔지 않겠다는 게 아니고.』 진열대 앞에 서있던 아르바이트 점원이 애원하듯 목소리를 떨었다. 두 남학생의 덩치에 완전히 압도당했는지 평소 유창하던 접대멘트는 전부 까먹고 버벅이느라 바빴다. 대학교 3학년이 고등학생에게 쫄았다. 『저쪽 포장박스에 남아 있잖아. 하나, 둘, 셋, 넷, 여섯 개나 남았네.』 『그것은 비매품으로. 죄송하오나. 네. 여섯 개군요.』 오로보로당 주인은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젊어서 고생을 잔뜩 했던 기억 때문인지 부족한 학비를 벌기 위해 가게에 취업한 아르바이트 점원에게 가욋돈을 더 붙여준다는 식의 친절을 자주 베풀곤 했다. 상자에 담아 미리 빼둔 꿀빵 또한 오로보로당 사장이 주는 일종의 선물이다. 집에 돌아가 동생들과 같이 먹으라며 인기가 많아 금방 품절이 되는 종류로 골라 때때로 챙겨주곤 했다. 그러한 속사정을 미즈키가 상세히 꿰고 있는 까닭은 그녀 또한 비매품으로 빼둔 꿀빵에 눈독을 들이고 하나만 달라 졸라댄 적이 있어서다.
『고죠. 너는 비매품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거냐. 상품으로 팔지 않겠다는 뜻이잖아.』 장발남 쪽이 적당히 하라며 한 소리 했다. 『그럼 더 잘됐네. 돈 내고 사지 말고 서비스로 받아가면 되겠다. 그지?』 멋대로였다. 탈색남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우기고 보았다. 『에, 그러니까 저쪽 비매품 딸기크림은 서비스로 전부 주시고. 설탕조림 사과 맛이랑 바나나 화이트치즈 포장해주세요. 열두 개 세트요.』
미즈키가 하나에의 귀에 대고 살짝 귓속말했다. 「못 보던 교복인데 아마 양아치인가 봐요.」
귀가 밝았다. 탈색남이 아앙? 날티 가득한 소리를 내고 이쪽을 쳐다봤다. 『방금 뭐라고.』 『뭐긴요. 꿀빵이 참 맛있다고요.』 『양아치라고 하지 않았어?』 『양갱이라고 했는데요.』 목숨은 하나다. 미즈키는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거짓말했다. 『그쪽이 귀가 안 좋은 거예요. 비매품이라는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잖아요.』 『지금 싸우자는 거냐.』 『아뇨. 훈수 두는 건데요. 설탕조림 사과보다 허니 시나몬을 사가요. 그게 더 맛있어요.』
언짢았던 모양이다. 상대방의 기운이 매서워졌다. 『기분 더러워. 도쿄에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짜증나는데 양갱이니 양아치니...』 『그만해, 고죠! 여기서 주력 꺼내지 마. 비술사... 아니, 일반인이잖아. 게다가 중학생이고.』 『저게 어딜 봐서 중학생이야. 똑바로 보라고, 스구루. 초등학생이잖아!』 『교복 입었어.』 『땅에 코가 닿고 있잖아! 불쾌한 초등학생이야!』 미즈키는 참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이라고요! 제 키는 평균이고요. 한여름도 아닌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까 보이는 게 없지!』 『너무 잘 보여서 쓰고 있는 거야, 이 어리석은 중생아.』 『중생의 뜻은 알아? 비매품의 뜻도 몰랐으면서.』 『중간에 생기다 말았다는 거잖아, 꼬마야. 아무렴 이 위대하신 고죠 사토루님이 그것도 모를까보냐.』 허리에 손을 댄 사내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 가뜩이나 커다란 자신의 신장을 더욱 크게 보이게 만들었다. 미즈키도 이에 질세라 뒤꿈치를 들어 올렸는데 슬프게도 그래봤자 남자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Posted by 미야
2021/03/1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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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어어~기부터, 저어어어어~기까지. 사실 어느 정도 규모인지 명확치 않다. 그냥 터무니없게 넓다고 보면 되었다. 까마득히 떨어진 강으로부터 너무 멀어 희게 보이는 산까지가 고쿠로쿠치나와님의 영역이라고 했다. 민속학자이자 괴담소설 작가인 이이지마 리쓰가 먼 친척뻘의 손녀 같은 하나에에게 지명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설명을 해주었는데 발음 곤란한 옛날 이름이다보니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아무튼 지도를 펼쳐보면 센다이 중심부가 아닌, 야마가타 현과 더 가까웠다.
「신사 관계자라면 내막을 더 잘 알 것 같구나. 하지만 말 그대로 내부정보라서 우리 같은 외부인에게 결코 알려주려 하지 않지.」 「일본에는 800만이나 되는 신이 계신다면서 뭔 특급 비밀 취급이래요? 할아버지.」 「특급이니까.」
고쿠로쿠치나와님은 천 년은 족히 묵은 토지 신으로 예로부터 치노후부사야 씨 일족의 숭배를 받았다. 강력한 토지 신을 등에 업고 일족도 몇 백 년에 걸쳐 엄청난 부를 누렸던 모양이다. 번성기에는 일족이 궁궐 같은 집에 살았고, 면장이 굽신거리는 등, 공권력도 감히 손댈 수 없는 위엄이 넘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 위풍당당도 권력의 뒷받침이 없음 맛있는 먹잇감으로 전락할 뿐. 군불에 타들어가듯 서서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다 군부로부터 거액의 사기를 당한 1920년대 후반부터는 지역 유지 타이틀도 빼앗기고 기왓장이 내려앉았다고 한다. 이후 온천개발이나 관광산업 등에 투자하여 나름 재기에 분투하였으나 주춧돌 하나 남기지 못하고 쫄딱 망한 게 쇼와 18년, 그러니까 서기 1943년 9월 14일이다.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 함락 일처럼 멸문 날짜가 명확하게 남은 건 그 날짜에 당주를 포함하여 무려 여덟 명에 이르는 집안사람이 한꺼번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당주는 피를 토하고 쓰러져 의식불명인 채로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아내는 야산에서 목을 맨 상태로 나중에 발견되었다. 장남은 둔기에 맞아 머리가 깨졌고, 장녀와 차남은 각자 자기들 방에서 목이 부러져 사망했다. 장녀는 거의 목이 잘린 상태여서 거죽 하나만으로 목이 몸통에 붙어 있었다. 유모는 우물에 처박혔다. 밖에서 낳아 데려왔다던 양녀는 유모의 시체 아래쪽에 구겨져 있었는데 유모가 다리부터 떨어진 것과 다르게 양녀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물구나무 선 자세였다. 결혼을 하지 않아 같이 한 집에서 거주하던 당주의 여동생도 9월 14일 사망... 특이하게 이쪽은 오래된 지병 악화로 인한 병사다.
그야말로 긴다이치 탐정의 사건수첩에 등장할 법한 미스테리 사건의 향연이라 세간이 시끄러웠을 법한데 보도통제가 있던 시대인 만큼 신문이나 일간지에 일절 내용이 실리지 않고 묻혔다. 수사도 미진해서 이 끔찍한 학살의 주범은 외부인이 아니고 피 토하고 죽은 당주인 걸로 잠정 결론 났다. 일가족 살해 후 음독자살,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 사업 실패에 대한 감정적 동요, 대충 그런 모양새로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엔 지나치게 피 냄새가 났다.
「누가 범인이었던 거에요?」 「긴다이치 탐정이라면 사망 순서부터 조사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린 뒤에, 사실과 다른 부분을 하나하나 밝히고, 동기가 무엇인지, 사건을 촉발시킨 원인을 유추하고 범인을 상상해보겠지.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탐정이 아니라서.」 「그래도 뭔가 알고 계시잖아요.」 「짐작 가는 건 있지.」 「그게 뭔데요?」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거... 반드시 기억해두렴, 하나에. 삿된 것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거래를 제시하면 결코 응해선 안 되는 거란다. 이 할아버지가 대학생이었을 적에 팥빵을 다섯 개 주면 낙제를 면하게 해주겠다던 툇마루 요괴가 있었어. 어땠을 거 같니.」 「툇마루 요괴가 대학교 리포트도 쓸 줄 안데요? 어우야, 능력 좋은데?」 「그럴 리가 있겠니. 대학 강사를 자동차로 크게 다치게 해서 그 학기 강좌를 통째로 날려버리더구나. 삿된 것과의 거래라는 건 그런 거야. 인간이 생각하는 범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어 버리지.」
언덕길의 끝에서 미즈키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 제법 높아!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여요!』
그렇게 스러져 뒤안길로 사라진 치노후부사야 일족의 본가가 있던 자리가 현 카제야마 중학교다. 이이지마 하나에와 스가와라 미즈키가 빗자루니 걸레니 하는 청소도구를 들고 걸어 올라온 산도 원래 치노후부사야 일족의 소유지였다. 소유자가 몇 번 바뀌다가 지금은 시에 매입된 공유지이고, 산의 일부는 잘려져 나와 1979년 카제야마 중학교 부지가 되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의 입구가 학교 체육관 뒷길인 건 그런 까닭에서다.
『선배. 올라왔던 길과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상점가로 빠르게 갈 수 있겠는데요?』 『그건 포기하는 게 좋아, 스가와라. 옻나무 군락을 뛰어넘어야 하거든.』 가파른 외길에 짜증을 느낀 이이지마 하나에가 보다 편한 길을 찾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뒤져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결말은 항히스타민제 연고 처방이었다. 『스가와라는 옻나무가 어떻게 생긴지 알아?』 『전혀요. 그래도 옻이 오르면 밤나무 잎을 끓인 물로 목욕을 하면 좋다는 건 알아요.』 『오. 그래?』 어머니가 가르쳐주셨어요, 라며 스가와라 미즈키가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선배, 청소를 해야 한다는 사당은 어디 있어요?』
사당은 제례를 지내는 곳이다. 따라서 법으로 정해진 크기는 없을지 몰라도 예식에 필요한 물건과 성인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미즈키가 보통의 가정집 크기를 가진 일본식 목조 건축물을 상상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린 건 상식에 의한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겁니다.』 『거짓말?!』 『진짭니다.』 하나에가 어색한 동작으로 뺨을 긁었다. 이해합니다. 나도 처음엔 님과 같은 반응이었어요.
천 년이나 묵었다던, 그것도 속된 표현으로 엄청 강려크 했다는 신을 모신 사당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백엽상 크기라는 건 납득이 어렵다. 열어보면 온도계와 습도계가 들어가 있을 것만 같다. 흰색으로 칠이 되어 있으면 누가 뭐래도 저것은 백엽상이다. 크기와 모양새까지 흡사한데 오로지 색만 검정색이다. 여기까지 잘 따라 와줬던 스가와라 미즈키가 지금까지 날 속인 거냐 표정을 짓고 이이지마를 휙 돌아보았다. 하지만 맹세코 속인 건 없다. 이이지마 하나에가 1학년이었을 적에도 그것은 백엽상처럼 생겨먹었고, 주물 쇠붙이 고리가 달린 양문을 잡아 열면 그 안에는... 『필~통?!!』 주인을 잃어버린 헝겊으로 만든 빨간색 필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거 농담이죠?!』 『질 나쁜 장난처럼 보인다는 건 나도 인정해.』
원래의 신체주물(神體呪物)이 무엇이었는지 하나에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부터 지퍼 달린 평범한 빨간색 필통으로 대체되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물건의 낡기로 짐작해보면 몇 년 내의 최근이다. 콧쿠리님으로 섬김을 받았던 과거 학생이 엿 먹어봐라 이러고 장난을 친 건 아닐까. 필통의 색이 빨간색이니 분명 여학생의 짓일 거다. 남자도 정열의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주장하면 반박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이곳은 이미 오래 전부터 텅 비었다는 점이다. 짐짓 속눈꺼풀을 열고 사당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색이 사라지고, 음영이 반전되어 무슨 현상한 필름처럼 시야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속눈꺼풀을 열었다고 이런 식으로 사물이 뒤틀려 보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속눈꺼풀은 일곱 살이 되면 대부분 저절로 닫힌다. 극소수만이 나이를 먹은 나중에까지 속눈꺼풀을 열어 사물을 볼 수 있었는데 친척 할아버지 이이지마 리쓰의 말대로라면 능력으로 음화 이미지로 바꾸어 보는 일은 하나에가 유일했다. 「요령이 붙기 전까지는 어색해서 엄청 고생했지.」 검정색의 사당은 구름보다 희게 바뀌었다. 그뿐이었다. 요력이라던가 신력이라던가 하는 종류는 터럭만치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분 좋을 정도로 깔끔했다. It's empty.
『얏호! 청소하자~!! 다 끝나면 먹고 싶은 거 사줄게, 후배님. 라멘 먹을까? 아님 아이스크림?』 빗자루를 움켜쥔 미즈키가 태세를 바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오로보로당의 꿀빵!』 집에서 돼지라고 불리는 건 다 까닭이 있는 거였다.
Posted by 미야
2021/03/10 13:36
2021/03/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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