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4월에 학기가 시작된다고... 쿨럭. 하는군요. 이걸 어쩌나. 한국처럼 3월 학기 시작인 걸로 글을 써와서 수정을 할 부분이 제법 많을 것 같습니다. 



귀청이 떠나가라 화재경종이 울렸다.
비명 소리가 들린 것과 거의 동시여서 무엇이 먼저였는지 나중에까지 판단이 쉽지 않았다.

후에 출동했던 소방서 공식 보고서에는「비명 소리가 들렸다」내용 자체가 쏙 빠져 있었다.
따라서 뱀을 봤다, 천장에서 시커멓게 덩어리진 구정물이 떨어져 내렸다, 둥글게 말린 검은 밧줄이 곳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등등의 진술 또한 당연히 빠진 채였다.
2004년 꽃이 만개하던 어느 날, 그날 학교에서는 화재경종이 울렸다.

모두가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바닥으로 뱀이 기어갔다.
천장에서 정체 모를 시커먼 것들이 후드득 떨어져 체육복으로 갈아입던 중인 스가와라 미즈키를 덮쳤다.
『피해!』
이이지마 하나에가 체육복 상의를 붙잡고 미즈키를 검은 덩어리로부터 끌어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미즈키는 어느새 입안까지 들어간 시커먼 덩어리를 뱉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양은 그렇다 치고 뒷맛이 쉰 냄새가 진동하는 걸레를 짠 구정물과 비슷했다. 너무나 역겨워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냉장고에 집어넣은 채 까먹어 8개월 뒤에야 꺼내봤던 미역 초무침도 이것과 비교하자면 양반이었다. 미끄덩거리던 특유의 상한 미역 질감까지 떠오르자 어질어질해졌다.

「보통 일이 아니다. 다른 애들의 눈에도 보인다.」
소스라쳐서 뒷걸음질 치는 학생들의 반응으로 보아 눈에 보이는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지 닿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책상 위로 올라간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이이지마 하나에의 판단으로는 그다지 썩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부해는 천장으로부터 뚝뚝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거기에 닿지 않으려면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가야 했다.

대걸레 자루를 빼앗아 그걸로 검은 덩어리를 찔렀다. 눈에 보이니 어쩌면 물리적 대응이 가능할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대걸레 자루는 표면에 닿는 일 없이 깊이가 짐작되지 않는 연못 아래로 가라앉듯 빨려 들어갔다. 아니, 오히려 안쪽에서 세게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망했어! 이럴 적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자칫하면 같이 휩쓸리게 생겼기에 쥐고 있던 걸 얼른 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대걸레 자루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한 입에 꿀꺽 먹어치웠다는 느낌이었다.
『선배! 위험해요!』
검은 덩어리의 한 가운데 부분이 쩍 갈라졌다. 대걸레 자루는 맛이 없었는지 이번에는 사람을 삼키기 위해 입을 벌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을 부릅떴지만 피할 방법이 없었다.
얼굴에 차갑고 비린 것이 닿았다고 깨달은 것과 동시에 팟, 하고 빛이 사라졌다. 완벽한 암전이었다.

이불을 개어두던 벽장 안에서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아버지 이이지마 노부히코는 거실에서 컴퓨터 마우스를 딸각딸각 움직이며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앞치마를 걸치고 거실에서 주방, 다시 안방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바빴다.
오른손으로는 강아지 인형을, 왼손으로는 악어 인형을 쥔 하나에는 어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두 인형을 서로 인사시켰다.

「안녕하세요, 어제 옆집으로 이사를 왔수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이름이 어떻게 되요? 저는 하나에라고 해요. 이 동네에선 쓰레기를 밖에 내놓는 요일이 어떻게 되요?」
「어머,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부인! 쓰레기는 수요일 날 아침에 배출되어야 해요.」
「정말 친절하세요. 그런데 빠가사리(ばか) 아들은 나이가 어떻게 되요?」
「하나에 씨와 같은 나이에요. 호호호.」
「저에게 모래를 뿌리더라고요, 세상에. 다음 주 수요일에 다른 쓰레기와 함께 내다 버리세요.」

딸의 기괴한 인형극을 목도한 어머니가 걸레질을 멈추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일단 빠가사리란 말을 쓰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의미도 잘 모르면서 어디서 배워왔는지 딸아이는 곧잘 빠가, 빠가, 이러면서 곳곳에 붙여 사용하곤 했다. 빠가사리 밀크, 빠가사리 텔레비전, 빠가사리 크레파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빠가사리 마마, 빠가사리 파파라는 말은 결코 입에 담지 않았다는 거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쁜 말이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건넛방 걸레질을 모두 마친 어머니는 하나에가 혼자서도 잘 놀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에 영차 소리를 내어 몸을 일으키곤 방 밖으로 나갔다.

인형놀이가 지겨워진 소녀는 악어를 집어던지고 속눈꺼풀을 열었다.
언제부터인지 벽장 안쪽으로 속눈꺼풀을 열어야만 보이는 수상쩍은 무늬가 하나 생겼다.
구불구불한 선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무늬는 색을 내어 은은하게 빛이 났는데 손을 대어 만졌을 적에 손가락으로 그 빛이 옮겨 붙곤 했다. 때로는 파랗게, 때로는 붉게 번지는 빛깔이 고와 아이는 넋을 잃었다.
「차가워.」
밝게 빛나던 그것은 따스할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다르게 얼음보다 차가웠다. 살이 에이는 느낌이었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어 먹을 적마다 코를 아프게 하던 냉기를 닮아 있었다.
「추워.」
입김이 나고 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 하며 무늬에 손가락을 대고 둥글게 원을 그렸다.
번져나가던 빛이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아름답게 회전했다. 꼭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다.
「시려워.」
예쁜 건 예쁜 거고 북극곰과 나란히 냉동식품이 될 지경이었다. 끙 소리를 내고 문양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세상이 뒤집혔다.

『어럽쇼.』
눈을 떠보니 다다미방 한 가운데다.
부스스 몸을 일으킨 이이지마 하나에는 낮잠을 자다 방금 일어났다는 멍한 느낌을 억지로 밀어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비어있는 방이었다. 뺨을 대고 누워있었던 터라 한쪽 뺨에 다다미 자국이 생겼다.
여전히 잠에 취해서일까,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교복을 입고 낯선 방에서 눈을 떴다.
『뭐여. 여기가 어디여.』
침을 흘렸을지도 모를 입가를 닦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한참을 추스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배를 긁으며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게 흡사 끈적거리는 풀이 발려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벽장 안에 빛나는 문양이.
아니다.
소스라치게 놀라 네발로 바닥을 후다닥 기었다.
『제기랄!』
어렸을 적에 인외세계로 떨어졌을 때의 감각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오늘에 이르러 다시 그 느낌을 곱씹으면서 뇌가 어렸을 적의 경험을 재현해내 꿈으로 보여줬다.
농담이 아니다. 거칠어지려는 호흡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눈만 데굴 굴렸다.

건물 내부다. 일본식 건물이었다. 장지문으로 사방이 가로막혔고, 어째서인지 아무런 색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색이 없는 다다미를 더듬거리며 방의 가장자리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조명도 없는 방구석인데 구조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깨닫고 보니 속눈꺼풀이 열린 상태다.
그렇다고 속눈꺼풀을 닫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럴 때 시야가 가려져봤자 이득이 될 건덕지가 없다. 공포영화 주인공처럼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중에 건전지가 떨어지면 –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만 궁리하자.

숨을 죽이고 장지문을 가만히 열었다.
무턱대고 나가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감각을 세워 냄새부터 맡고 보았다.
「희미하게 썩은 내가 난다.」
오래된 폐가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방부목도 제때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썩어가기 시작한다. 부패는 자연의 이치다. 철은 녹이 슬고 바위는 쪼개진다. 벌레가 갉아먹어 들보가 내려앉고 기둥이 부러진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나무가 송장벌레에게 먹혀가는 냄새를 맡았다.
무릎걸음으로 약간만 나아갔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좋다. 이곳은 인외세계다. 긴장하여 넙죽 엎드렸다.

부웅.
순간 바람이 정수리 위를 가깝게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다. 단순한 바람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묵직하게 물량감이 있는 거였다.
덜덜 떨리는 걸 참고 곁눈으로 옆을 보았다.
『미친!』
혀가 굳을 지경이었다.
어느 틈에 벌써 손도끼를 든 기모노 차림새의 여자가 무표정으로 이이지마 하나에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주술회전 팬픽이 아니라 일본 작가 미쓰다 신조를 찬양하는 글이 되어가는 것 같네요.
아무튼 취재를 하고 글을 썼다면 참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난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듸. 지명이라던가, 이름이라던가 하는 부분도 그렇고 일본 고유의 사정을 잘 모르니 어색해지는 부분이 계속 발생하네요. 4월 입학도 그렇고... 세상에, 3월이 아니라니. 사건의 날짜가 그럼 4월이 아닌 5월로 넘어가게 되는데 일본의 공휴일은 어떻게 되는가,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뭐. 늘 그랬듯이 어물쩍 넘어갑니다.

Posted by 미야

2021/03/23 17:07 2021/03/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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