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전화기가 놓여있는 책상 위에는 먹다 남은 과자봉지와 초콜릿 포장지가 소심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흘깃 보니 고구마 맛탕 과자다. 행정직 직원은 화재경종을 듣고 대피하면서 까먹던 간식을 제대로 치우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금방 돌아올 거라고 여겼는지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과자봉지 입구를 개어두지도 않았다. 그 태평스러움에 어쩐지 맥이 풀리려 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과자봉지를 시선에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전화기 숫자 버튼을 눌렀다. 「리쓰 할아버지가 한 번에 전화를 받아야 할 텐데.」 생활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 이이지마 리쓰는 핸드폰 충전하는 일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먹거리를 구입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제 날짜에 공과금 내는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모두가 핸드폰을 쓰는 시대에 이이지마 리쓰는 고집을 부리며 가정용 집 전화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모르지 않았기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은 핸드폰이 아니라 먼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문제는 거실에 있는 전화기가 때릉때릉 울리면 서재에서 일을 하던 리쓰가 전화를 받으러 나오기도 전에 제멋대로인 성격의 사역마가 튀어나와 종료버튼을 눌러버린다는 거다. 벨 소리가 거슬린다는 게 이유였다.
신호가 다섯 번 갔다. 제발, 이러고 기원의 말을 중얼거리는데 신호가 뚝 끊어졌다. 「망할! 식충이 파충류 사역마가 이번에도 또!」 주먹질로 재다이얼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뚜우, 하고 죽었던 신호음이 다시 이어졌다. 학교 행정실에서 쓰는 공용 전화기는 집 전화와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들끓던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여보세요? 리쓰 할아버지?』 다행이다. 별 문제없이 상대방이 수화기를 들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어졌다. 《무슨 일이니, 하나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듣자마자 기분이 시궁창에 처박혔지만.
『카이 삼촌?』 《하나에. 항상 말하는 거지만 나는 네 삼촌이 아니야.》 남자는 상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냉정한 것도 아닌 모호한 어투로 관계부터 재정립하고 보았다. 사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는 리쓰의 작은아버지로, 건너건너건너 먼 핏줄로 태어난 하나에와는 사실상 타인이나 마찬가지라서 하나에가 그를 삼촌 호칭으로 부르는 건 맞지 않았다. 그렇다한들 그녀가 카이를 삼촌으로 부르는 건 일종의 버릇이었고, 그때마다 카이가 나는 네 삼촌이 아니다, 지적하는 건 온전히 습관이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리쓰와 카이는 데면데면한 관계다. 아니, 이이지마 카이가 일방적으로 조카 리쓰로부터 거리를 두는 편이다. 명절을 맞아 본가로 찾아오는 일도 없고, 안부전화를 걸어오지도 않는다. 초대를 하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다 끝내 거절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어진 사이도 아니다보니 뭐랄까.., 비유하자면 늘그막에 이혼한 부부처럼 건조했다. 다시 말하면,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손님으로 놀러온 카이가 거실에서 여보세요 이러고 수화기를 든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어째서 리쓰 할아버지 집에서 카이 삼촌이 전화를 받는 건데?!』 《무슨 소리니, 하나에. 번호를 헷갈렸니?》 『그건 아닌 것 같지만... 끊지 마세요.』 비유하자면 퀴즈 프로그램에 나간 참가자가 외치는 전화 찬스 같은 거다. 연결이 잘못되었다고 바로 끊어버리면 정답을 맞힐 기회는 영영 날아간다. 《급한 일이라서... 설명하자면 길지만 도움이 절실해. 학교에 문제가 생겼는데... 부해가, 제기랄, 이걸 어떻게 설명하라는 거야.』 《침착하렴.》 『지금 느긋하게 굴 때가 아니야, 삼촌. 그러니까..., 고쿠로쿠치나와님은 죽어서 부해만 남은 거 아니었어? 아니면 죽은 신은 좀비로도 변할 수 있는 거야? 여기, 우리 학교 지금 지랄 났어!』
어떤 말이 지뢰 포인트가 되었는지 몰라도 이이지마 카이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학교에 지랄이 났다 라... 흠. 과연. 큭! 게다가 좀비라니, 그럴 리 없잖아. 잘 생각해봐, 하나에. 고쿠로쿠치나와님이야. 이름 그대로 머리 넷 검은 뱀님이라고.》
잘난 주술사들은 신을 조복하겠다며 떠들어댔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태풍이 상륙하는데 거센 바람을 막아보겠다며 나무판자를 세우고 모래주머니를 산처럼 쌓아봤자 쓸려 나가는 건 크게 변함이 없다. 실제로도 이름을 날리던 술사 후지와라 오오모리노, 아베 나타, 하루하라 나쓰미, 아라후네 마시즈 등이 죽었다. 멀쩡한 자기 손가락을 하나 자르고 주물을 대신 상처에 붙이고 갔던 카리야세 사치코는 각오했던 바 그대로 뼈조차 안 남기고 장렬하게 산화했다.
《머리가 네 개. 자른 건 세 개.》 산수는 할 줄 알지? 넷 빼기 셋은 얼마 게.
목덜미가 서늘했다. 이이지마 카이는 주술사다. 본인은 어쭙잖은 잔재주를 부리는 정도라며 스스로의 능력치를 비하하지만 이이지마 하나에의 몸에 고차원의 봉인술식을 새겨 넣은 사람도 카이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부의 사역마를 부리며 주술로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그냥 알 수 있었다. 카이는 이단(異端)이다.
부근은 토지신이 부재하여 덕분에 부해가 들끓는다고 했다. 8백만 신들에게 맛있는 잔칫상 음식으로 노림을 받고 있는 이이지마 하나에가 숨어 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라고 했다. 몇 가지 꼼수를 더하면 완벽할 거라고 속삭였다. 주력을 담은 팔찌를 만들어 주고, 가서는 안 되는 장소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장소들을 알려줬다. 고쿠로쿠치나와님의 사당을 청소하라며 참배 길을 올라가게 만든 사람도 카이다. 콧쿠리님을 모시라고 아이들에게 암시를 걸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다. 매번 잔소리처럼 너와 나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잘라 말하는 사람이었다.
전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는 음의 고저 없이 차분했다. 어쩐지 독이 든 사과인양 달콤하기까지 했다. 《왜 말이 없니, 하나에. 듣고 있단다.》 이이지마 하나에의 목소리도 덩달아 낮아졌다. 떨림을 감추려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있잖아, 카이 삼촌... 카이는 왜 나더러 카제야마 중학교에 가라고 했어?』 《그게 좋을 것 같아서.》 『나에게 그게 좋을 거 같아서야, 아님 카이 삼촌에게 좋을 거 같아서야?』 《너를 위한 건 결코 아니었어. 그렇다고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었어.》 『그건 무슨 뜻?』 《리쓰를 위해서.》 『뭐야 진짜... 그거 무슨 뜻인데.』 《인간은 신을 죽일 수 없어. 네가 너에게 손대지 못한 까닭이지. 신을 죽이는 건 신이다. 그러니까 이제 이 지긋지긋한 광대 짓을 멈추고 거기서 얌전히 잡혀 먹히라는 얘기야, 하나에. 틈만 나면 심기 여린 내 조카에게 달라붙어 살려 달라 애원하는 짓은 그만 하고, 이 양심도 없는 계집애야.》 하나에는 숨을 들이켰다. 『야, 이 미친놈아! 나는 아직 미성년이라고! 어른이면 도와줘야 하잖아! 사지로 몰아넣는 게 아니라!』 《소리 지르지 마.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 이대로는 8백만 신들에게 잡아먹힐 거라며 도망쳐온 게 3년 전이야. 무려 3년이라고. 어리니까, 약하니까, 앞으로도 계속 도와줘야 한다고? 그동안 조카 녀석이 몇 번을 손을 내밀어줬는지 기억은 하고 있나. 먹이고, 입히고, 재워준 것만으로도 부족해 앞으로도 쭉 목숨까지 구해 달라? 어리광이 심하잖아. 너무한 건 너다.》 『카이 삼촌!』 《항상 말하는 거지만, 나는 너의 삼촌이 아니야. 하나에.》 냉정하게 잘라 말하고 카이가 먼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날이 오리라고 어딘가로 짐작하고 있었던 건지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 이이지마 카이는 부의 주술사입니다. 주술회전 설정으로는 주저사가 되겠군요. 백귀야행도 후반부를 보지 못했고, 주술회전은 만화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건 아닌데, 라는 부분이 당연히 많습니다. 주술회전 설정이라면 식신인 아오아라시가 인간의 말을 한다는 건 무리죠. 그래서 아오아라시의 등장도 뺐습니다. 후시구로가 옥견을 부르는 것처럼 이이지마가 아오아라시를 불러내면 제법 멋질 것 같지만... 네, 삭제. 다음부터 후반부 들어갑니다. 업로드 속도는 많이 느려질 예정입니다.
Posted by 미야
2021/04/0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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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키가 컸던 고죠 사토루는 어렵지 않게 다나베 고우지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물론 시선 높이의 차이일 뿐, 그게 힘겨루기 우위를 가름하는 척도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약간의 만족감은 있었다. 이름 없는 가게의 생크림 케이크를 막 한 스푼 떠서 입에 넣었을 때의 흡족함이었다. 맛이 훌륭하진 않아도 어쨌든 케이크였다.
그 비뚤어진 미소를 본 게토 스구루가 눈치껏 팔을 엑스 자로 교차해 보였다. 주술고전 1학년 담임인 야가 마사미치는 고죠 사토루가 특정 표정을 짓는다 싶으면 일단 안 돼, 라고 말하라고 부탁을 해온 적이 있다. 주인이 한눈을 판다 싶으면 쓰레기통부터 뒤엎고 보는 말썽꾸러기 강아지 취급이었지만,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전원 아득히 먼 하늘까지 날려버린 뒤에 비술사만 딱딱 골라 얌전히 바닥에 착지시키고 나머진 피떡으로 만들어선 곤란했다. 예전에도 저주사를 대상으로 콩주머니 던지기 놀이를 한 전적이 있었기에 게토 스구루의 염려는 기우 같은 게 아니었다.
『그럼 네 생각은 뭔데, 스구루.』 『음... 애들의 안전을 고려해서 먼저 협상 비슷한 걸 해보는 건 어때.』 『진심이냐?』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상대와 대화를 시도한 게 지금이 처음인 건 아니잖아.』
잠시 생각해보고 고죠 사토루가 사람인 척하는 그것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애들은 풀어줘, 썩은 귤. 아니면 콱 모가지를 따서 죽여 버린...』 형편없는 말본새에 게토 스구루가 고죠 대신 바통을 이어나갔다. 『꼭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밖으로 나가면 사람이 더 많다. 일부러 붙잡지 않을 테니 건물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먹던지 말던지 맘대로 해보는 건 어때.』
그것은 눈을 가늘게 뜨고 꼭 낯선 일본어를 처음 듣는 외국인의 낯을 했다. 학교 밖으로 나가라는 말이 거슬린 걸까, 아니면 나가서 사람을 먹으라는 말에 반응한 걸까. 진짜로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닐 테니 변화구를 던져 계속해서 떠보는 게 좋을 것이다. 『싫어? 별로야?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 아니면 여기서 떠날 수가 없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원하는 것이 있어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지?』
옛날, 신이 타락하여 특급 주령이 되었다.
주술적인 이유로 땅에 종속되었다면 떠나고 싶어도 발이 묶여있을 수 있다. 지박령 같은 것들은 사실상 초강력 접착제로 땅에 붙들려 있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이동이 자유로운데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거라면 골치가 아파질 수 있다. 고죠 사토루는 과거, 이 장소에서 특급 조복을 위해 특급 주물이 사용되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게토 스구루의 생각으로도 충분히 그럴싸한 줄거리였다. 그럴 듯해서 그 특급 주물이라는 게 어디로 가지 않고 여전히 이곳에 잠자고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봤다. 몇십 년에 걸쳐 걷어도 걷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무지막지한 양의 부해 – 비정상적인 현상에는 항상 원인이 따로 있는 법이다.
옛날, 주술사들은 조복에 실패했다.
게토 스구루는 희극적으로 팔을 벌려 보였다. 『그게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대로 해보고 싶지 않아? 학생들을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인간의 아이들을 해치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뱀의 눈을 한 남자를 응시하며 살살 구슬렸다. 『애들은 보내줘. 그러는 편이 이득이야.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생각해봐. 나라면 다 포기하고 홀가분하게 여기서 빠져나갈 거야.』
뚱한 얼굴로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그것이 마침내 말했다. 《그대의 소원은 하찮군.》 『어?』 《짜증날 정도로 하찮아. 제국과 만세일계(※ 萬世一系 천황제 국가 이데올로기.일본 왕실이 단 한 번도 단절된 적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의 번영을 기원하지는 않더라도 개인의 영화 정도는 빌어봄직 하지 않은가. 다 포기하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소원이라니... 되었다. 가거라. 네 소원은 이루어졌다. 대가는 받았다.》 『어어?』
잠깐만 기다려, 외치는 사이에 시야가 훅 바뀌었다. 어느새 건물 밖이었고, 옆에는 과잉 친절을 베풀어 동료인 고죠 사토루까지 제대로 모셔져 있었다. 욱신거리는 격한 통증을 느껴 아래를 내려다보니 왼손 검지와 중지의 손톱이 빠져있었다. 어이가 없다. 이게 대가? 게다가 그따위 소원을 언제 빌었다고. 제멋대로 착각해놓고 사람을 모지리 취급... 머리카락이 정전기에 올이 일어선 스웨터처럼 변했다. 『크아앗, 새끼. 갈아버린다~!!』 『앗, 우리 스구루 눈 돌아갔다.』 『게다가 왜 손톱을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뽑아버린 거야! 어째서 저 녀석과 나를 세트 취급 하느냐고! 세트 취급하려면 마트처럼 원 플러스 원으로 계산하던가! 제기랄, 쓰라려!』 『화를 내는 포인트가 이상해.』 『화가 안 나게 생겼어?! 쓰잘머리 없는 물건을 강매당한 기분이라고!』 하나는 인정해도 두 개는 아니야. 내 손톱 내놔, 외치며 손가락을 움직여 인(印)을 맺었다. 보랏빛의 연무처럼 보이는 것이 나타났고, 이윽고 제각각의 주령들이 떼를 지어 학교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두꺼비의 눈을 하고 유리창에 철썩 들러붙은 주령의 모습에 이이지마 하나에는 몸을 사렸다. 「말세구나. 뱀 다음에는 두꺼비냐.」 개굴개굴 소리를 낼 것처럼 생긴 것이 바깥에서 유리창을 쾅쾅 두드렸다. 예의를 차려 노크를 하는 모양새가 아니고 정말로 부셔버리겠다는 투지를 드러내며 때렸다. 방탄유리도 아닌데 영 깨질 기미가 없자 두꺼비처럼 생긴 그것은 더 약한 부분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두꺼비의 시선을 피해 교무실 바닥을 거의 기다시피 움직여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책상 안쪽으로 몸을 숙이고 들어갔다. 누구의 자리인지는 몰라도 체취처럼 남은 발 냄새가 지독했는데 스프레이 파스 냄새까지 뒤섞여 코점막을 고문했다.
억지로 숨을 참고 있는 도중에 쿵, 하고 큰 진동음이 울렸다. 놀랐는지 옆에 있던 스가와라 미즈키가 히익 소리를 냈다. 덧붙여 딸꾹질까지 시작했다. 『조용히!』 『죄송해요.』 스가와라 미즈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터진 딸꾹질은 마음먹은 대로 멈추지 않았고, 그녀가 알고 있는 딸꾹질을 멈추는 방법은 물을 한 컵 마시는 거였다. 당연히 주변에는 마실 물 같은 건 있지 않았기에 불가항력적으로 히끅 히끅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때 다시 쿵, 하고 건물이 흔들렸다. 기분 탓인지 바닥이 오른쪽으로 기운 것 같았다. 재차 쿵, 쿵, 진동음이 울리자 이번에는 바닥이 아래로 내려앉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던 두꺼비 주령이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서두르자.』 미즈키의 손을 잡은 이이지마 하나에는 유선전화가 있을 행정실 방향으로 낮은 오리걸음으로 걸었다. 『뭘까요. 방금 전 그건 지진이었던 걸까요?』 스가와라 미즈키는 일반인이다. 주령이니 하는 것들을 눈으로 볼 수 없다. 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감이나 육감 같은 게 완전 퇴화하여 사라진 상태여서 석고상을 들고 사람 아닌 것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을 정도다. 그러니 물결치며 쓸려오는 주령들이 거대 진동음을 내고 있어도 그다지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눈치다. 딸꾹질은 끝났고 지진은 염려스러웠다. 무릎으로 기어가면서 걱정했다.
『또 흔들리면 어쩌죠?』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보호해야겠지.』 『무서워요. 하나에 선배는 안 무서워요?』 『나도 무서워.』 『저, 엄마 보고 싶어요.』
눈물 젖은 목소리를 내는 후배의 어깨를 기운 내라며 툭툭 쳤다.
그리고 속으로 한탄했다. 엄마가 보고 싶니? 부럽네. 난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는데. 엄마도 아빠도,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Posted by 미야
2021/04/0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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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오작동으로 의심했던 화재경종이 영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3학년 3반 수업을 진행하던 지리과목 담당교사는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원시용 안경을 벗었다. 옆 반에서는 이미 수업을 중단하고 대피에 들어갔다. 연기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타는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니 두말할 것도 없이 오작동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설이 낡아가고 고장이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만, 예산부족을 탓하며 제대로 손보는 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어 이런 식으로 수업에 지장이 생기는 일이 간혹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만의 하나라는 것이 있고, 과거 이 학교 미술실이 영문 모를 화재로 피해를 입은 적도 있으니 훈련이라 생각하고 슬슬 움직여야 할 것이다. 벗은 안경을 셔츠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은 교사는 손바닥으로 교탁을 탕탕 때렸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을 쨀 수 있게 되었다며 몇 눈치 없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기뻐했는데 진도를 나가지 못한 부분은 숙제의 형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터이니 좋아하기엔 아직 일렀다. 『그만 떠들고 일어나 일렬로 운동장으로 이동하도록. 숨어서 자겠다는 놈 있으면 깨워서 데리고 나가라.』 상급반일수록 층수가 낮아 3학년 교실은 1층과 2층에 집중되어 있다. 현관 출입구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3학년 3반 전원이 중앙 출입구 앞에 다다랐을 적에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인원이 자기들끼리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격렬하게 의사소통을 벌이는 중이었다. 다들 흥분한 상태여서 대화가 아니라 싸움 수준이었다. 더하여 세 명이 동쪽에서 달려 나왔다. 지갑을 두고 나와 교실로 돌아갔다 온 것도 아니다. 시원한 표정이 아닌 것으로 보아 화장실에 다녀온 건 더더욱 아니었다.
학생들을 양몰이 하며 뒤에서 따라오던 교사가 역정을 내며 다가갔다.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단순했다. 신발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 다수가 실내화를 벗고 실외화로 갈아 신은 뒤였다. 교칙위반이었다. 『야! 너희들. 운동화를 신고 누가 마음대로 복도를 뛰어다니랬-』 『창문으로 나가보자. 가서 걸상을 가지고 와.』 『아니, 멀쩡한 출입구를 놔두고 왜 창문으로 나가려는 거냐고. 너네, 제대로 설명 안 할 거야?!』 『나중에요.』 아이들은 교사의 호통을 대놓고 무시했다.
의자를 밟고 창문을 넘어보자 제안하는 학생은 3학년 5반이었다. 그 옆에서 손톱 거스러미를 잡아 뜯고 있는 여학생은 명찰을 보니 3학년 1반이었다. 『절대 인정 못해! 인정 못 한다고! 나도 콧쿠리님을 모셨단 말이야!』 『거짓말. 언제는 미신이라며 비웃었잖아.』 『기합 넣기 체조가 싫어서 거짓말했어. 그게 내 잘못이야?』 그렇게 외치던 여학생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언저리를 손등으로 마구 문질렀다. 몰래 바른 화장품이 엉망으로 번졌어도 당사자조차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걸상이 준비되자 멋대로 순번을 자처한 여학생이 앉는 부분을 밟고 올라갔다. 운동신경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신중한 성격이었는지 다소 굼뜬 동작으로 다리 하나를 창틀에 올렸다. 그런데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혀 뛰어 넘는다는 다음 행동으로의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더듬거리자 막이 느껴졌고, 주먹으로 치니 출렁거렸다.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외마디 소리를 지른 그녀는 몸을 던진다는 요령으로 어떻게든 나가고자 했다. 그래봤자 눌린 뺨이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질 뿐이었다.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래!』 의자에 올라선 상태로 그녀가 악을 써댔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사과할게. 사과한다고! 그러니까!! 당장 그만둬!』
지금도 계속해서 운동장으로의 대피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대다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출입구를 잘 빠져나왔다. 그렇다면 밖으로 나오는 게 아예 불가능한 몇몇의 학생들은 뭐냔 말이다.
운동장 밖으로 이미 대피를 완료한 학생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쪽을 쳐다봤다. 본능적으로 창가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의자 위에서 발을 구르고 있는 애를 강제로 끌어내렸다. 얼굴색을 바꾸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하하 웃었다. 경련하듯 입술이 떨렸지만 웃었다. 인정하면 진짜가 되어버린다. 저주라는 건 그런 것이다. 『출구가 여기만 있는 건 아니니까 다른 곳으로 가보자.』 『어,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럼 우린 구름다리 쪽으로 가볼게.』 그러면서 그들 중 몇은 1학년의 콧쿠리님과 2학년의 콧쿠리님이 몇 반이었는지를 곰곰이 떠올렸다. 그게 지푸라기이든, 썩은 동아줄이든, 잡아야 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신발을 양손에 쥐고 양말 차림새로 복도를 살금살금 걸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이게 최고다. 수업을 몰래 빼먹던 실력은 어디로 가지 않아 계단을 올라오던 상급생이 알아채지 못하고 4층으로 향했다. 납작 몸을 숙였던 이이지마는 속눈꺼풀을 열고 스쳐지나간 3학년을 관찰했다. 머리부터 발목까지는 외관이 멀쩡했지만 발목 아래부터는 형태가 일그러져 잘 보이지 않았다. 부해 찌꺼기를 잔뜩 밟은 탓인지 옮겨 붙었다. 따라가는 일행도 옆구리부터 목덜미까지 먼지에 뜯어 먹힌 형상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옥상, SOS 글자, 헬기가 오면, 영화처럼」단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골탕 좀 먹겠군, 생각하며 목을 길게 빼고 아래층의 냄새를 맡았다. 상급생 두 명은 재작년 자살소동으로 옥상 출입문을 봉쇄했다는 걸 까먹은 눈치다. 『연기 냄새는 안 나요.』 마찬가지로 코를 킁킁거리던 스가와라 미즈키가 그렇게 말했다. 진짜로 화재가 발생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중이라고 여기고 있기라도 한 건지 집중해서 화재의 징후를 찾고 있었다. 설명이 귀찮았던 탓에 오해를 바로잡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자며 신호했다.
1학년 2반 아이들 중 다수가 부해에 접촉했다. 그중에서 단연코 사정이 월등하게 나빴던 건 머리부터 무릎까지 부해를 왈칵 뒤집어쓴 스가와라 미즈키다. 깨끗하게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하수구에서 건져 올린 미역다발이라고 오해할 법한 수준으로 더러움이 옮겨 붙었다. 손을 뻗어 검게 얼룩진 미즈키의 뺨을 문질러봤다. 그런들 기름얼룩 같은 종류가 아니니 지워질 리 없었다. 얼굴도 그렇거니와 문제는 입안부터 목구멍까지 새카맣게 변했다는 거다. 아, 하고 입을 벌리면 검댕이 잔뜩 묻은 굴뚝처럼 보였다.
당연히 좋지 않다. 게토 스구루의 말에 의하자면 미술 선생님 다나베 고우지의 몸 안으로 뱀의 모습을 취한 것이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스가와라 미즈키도 조만간 뱀을 토할지도 모른다. 뱀만 토하면 차라리 다행이고... 몸을 떨면서 우우, 우우우 이러고 이상한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닐지 걱정이었다. 이이지마 하나에가 가진 얄팍한 지식으로는 이걸 어떻게 해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 짐작이 안 갔다. 조언을 듣기 위해 급히 할아버지 이이지마 리쓰에게 전화를 시도했더니 전파수신 상태를 보여주는 그림의 막대가 아예 사라져 있었다. 무려 통화권을 이탈했단다. 유선전화가 필요했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허리를 구부정히 숙인 모습으로 5층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내려오던 고죠 사토루는 무진장 저기압이었다. 그리고 그의 불편한 심기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투로 1층에 자리하고 있던 미술 교사 다나베 고우지와 맞닥뜨리고부터는 절정을 이루었다. 그것은 대피하는 아이들을 돕는 척하며 출입구를 한 가운데 자리를 떠억 잡고 있었다.
빙의했다고 해도 안에 든 내용물이 영 별로인데 확 찌그러뜨릴까. 고죠 사토루가 막 불순한 생각을 품었을 때 다나베 고우지가 대피 중이던 학생 한 명을 끌어당겨 방패처럼 세웠다. 딱 봐도 협박이었다. 네가 뭔 짓을 하면 나도 뭔 짓을 해버리겠다, 말을 하지 않았어도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확고했다. 보고 있던 고죠 사토루의 한쪽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부해 찌꺼기 주제에 협박까지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당장 찌그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손가락 관절을 우둑 소리가 나도록 꺾으며 계단을 하나 더 내려왔다. 앞으로 다섯 계단만 더 내려가면 반으로 접어버릴 작정이었다.
『하지 마! 애들이 다쳐.』 다급하게 만류하는 목소리는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3층에서 게토 스구루가 머리만 내밀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걸 멈춘 고죠 사토루가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 위쪽을 삐딱하게 쳐다봤다. 『싫은데.』 말은 그렇게 했으나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는 걸로 마음 먹었던 걸 철회했다. 반으로 접어버리려고 했던 것이 다나베 고우지가 아니라 학교 건물이었으니 아직 대피하지 못한 아이들 입장에서는 목숨을 건진 셈이었다.
Posted by 미야
2021/03/31 16:51
2021/03/3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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